우리는 누구인가?  [2004.]


우리는 신(神)이다. 작은 하느님이다.

왜?  어떻게?!

우리를 있게 한 존재, 우리를 낳아준 영과 육의 부모가 창조주인 까닭이다.


창조주의 의식과 몸에서 우리는 태어났다.
예수님은 우리 인류 모두가 하느님의 아들 딸 임을 가르쳤으며
우리가 자신이 한 일보다 더욱 큰 일도 이루어 낼 수 있는 형제, 자매임을 선언했다. (요한복음 - 14 : 12)
부처님은 우리 모두가 부처임을 가르쳤으며 그 이상의 존재에 대한 개념을 말한 바 없는 것은, 우리가 神이며 하느님임을 가르치신 것이다.  

지금 우리의 현실이 곤궁하고, 우리 인류가 비천한 존재임이 분명하다고 많은 사람이 스스로 느끼고 있음은,  말로만 스스로를 부처요 하느님의 가장 사랑하는 아들 딸임을 외치고 있을 뿐  그러한 진실의 핵심을 바르게 이해하지도 알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현실을 보자
지구의 반은 전쟁을 위한 온갖 무기로 무장하고 직접 간접으로 전쟁에 관련되어 긴장상태에 있으며 하루가 멀다고 총알이 하늘을 날고 폭탄이 터진다.  또한 지구의 반은 굶주림과 의 식  주의 결핍에 대한 두려움 속에서 하루 하루를 보낸다.

우리 모두가 창조주 하느님의 아들, 딸이며 부처로서 전지전능한 지혜와 권능을 물려받았다면 어떻게 이러한 현실이 가능할 수 있는가?  한 형제로서 서로 총 칼을 휘두르는 것과 극심한 빈부의 차이로 온 세상이 시끄러운 것은 무슨 이유인가?!
이것은  크게 두 가지 이유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는 우리가 비천한 피조물일 뿐 위대한 창조주의 피붙이가 아니거나,
둘째는 우리가 이해하고, 알고 있는 우주적 진실에 대한 기존 종교의 가르침에 중대한 오류가 있거나, 우리가 진실의 핵심에서 크게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내가 나름대로 예수님과 부처님의 가르침을 살펴본 바, 거기에는 가슴을 울리는 진실과 지혜가 담겨 있다.
구수한 된장찌개의 맛을 보았던 사람이 그 맛을 기억하듯이 나는 그 분들의 가르치심이 진실한 체험,  지극한 지혜와 사랑 속에서 전해진 것이라는 것을 내 가슴으로 느끼기에, 지금 그 분들의 가르침대로 우리가 창조주의 가장 사랑하는 아들 딸이며  창조주의 위대한 지혜와 권능을 온전하게 물려받은 작은 하느님들이라는 것에 전적인 공감과 확신을 가지고 있다.
또한 이 확신은 내가 ‘배우면서 살겠다!’라는 삶의 태도를 선택한 이후 약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내 삶의 여정에서 스스로 확인하고 이해할 수 있었던 여러 자료와 정보에 의한 것이다.

내가 근원적 진실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길을 떠나던 시기에 내 주변에는 교회가 있었고 또 여러 성직자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과의 대화에서 얻을 수 있었던 답이라고는 ‘인간은 무지하고 어리석어서 위대한 창조주의 깊은 뜻을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납득되지 않는 부분은 오로지 신뢰와 믿음으로 받아 들이라!’는 결론으로 귀착되었다.
그러나 나로서는 이해되지 않는 비 합리적이고 비 논리적인 결론을 적당히 넘어가듯 젖혀 놓고 눈감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 답을 찾기로 결심했다.
내 마음 깊은 곳에서는 ‘구하면 얻어지리라’는 확신이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떠난 여행 길이었으나 나는 내가 스스로 선택한 내 의지에 따른 결정이었기에 발걸음은 가벼웠다. 마치 모든 답을 찾아낸 듯 가슴이 후련했다.
오로지 진리에 대한 진실성과 열정을 가지고 시작한 여행 길에 동반자는 거의 없었다. 어쩌다 스쳐가는 행인들이 간간히 있기도 했으나 서로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 할 수 있고, 같은 꿈과 목표를 가진 사람들을 만나기는 어려웠다.
그렇게 지내기를 약 20년, 1990년대를 들어서면서 주변에 서로 말이 통하고 뜻이 같은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그와 더불어 나의 의문을 풀어주는 많은 자료와 정보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이런저런 책과 사람들을 통해서.. 2000년도를 넘어서면서는 인터넷을 통하여.

최근의 10년 간은 내게 여러 가지 해결되지 않았던 의문들이 풀어지는 참으로 기쁨과 즐거움으로 가득한 시간이었다.
전지전능한 창조주는 자신의 가장 사랑하는 자식들이 가지는 어떠한 의문에 대해서도 완벽하고 명쾌한 답을 줄 수 있다는 것이 앞뒤가 맞는 이야기이며, 그것을 나는 10여 년에 걸쳐서 시원시원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오로지 앎이 아닌 믿음으로 해결하고 넘어가려는 것은 최선을 다하는 태도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무지와 어리석음을 신의 무한한 지혜와 깊은 뜻이라는 핑계로 감추려는 것이며, 전지전능한 신을 욕되게 하는 것이다. 더구나 많은 어린 양들을 인도하는 목자들이 취할 선택이 아니다.

‘나는 아직 모른다!’라고 말하는 자에게는 언젠가 그 해답이 주어질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니 그냥 의심하지 말고 믿어라!’고 말하는 자에게는 그가 그 생각을 바꾸지 않는 한 그 답이 주어지지 않는다.

문은 두드리는 자에게 열리는 것이다.

구하라 그러면 얻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