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가지 상태(생시, 꿈, 깊은 잠) 모두에서 끊이지 않고 계속되는 명상이 가장 훌륭한 명상입니다. 명상은 '내가 지금 명상하고 있다'는 생각조차 일어날 틈이 없을 정도로 치열해야 합니다.
기만적인 감각 기관을 통해 사물을 보려는 애착을 가라앉히고, 그리하여 마음, 즉 날뛰는 에고의 대상적 앎(objective knowing)을 종식시킨 후 심장 속에서 빛 없는 빛, 소리 없는 소리를 아는 것이 진정한 요가의 힘(yoga-sakti)입니다.


슈리 라마나는 '나'라는 생각에 대한 자각이 진아 깨달음의 전제조건이라고 강조하므로, 자연히 그는 이러한 요소가 포함되어 있지 않은 모든 수행법들은 간접적이며 비효과적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이 길['나'에 대한 주시]이 직접적인 길이며, 다른 모든 길들은 간접적인 길입니다. 전자의 길은 진아로 나아가지만 다른 길들은 딴 데로 갑니다. 비록 후자의 길로 진아에 이른다 해도, 그것은 그 길들이 마지막에는 전자의 길로 나아가서 이 길이 마침내 그 방법들로 하여금 깨달음이라는 목표에 이르게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수행자들은 결국 전자의 길을 따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왜 지금 그렇게 하지 않습니까? 왜 시간을 낭비합니까?1

다시 말해서, 다른 방법들로 수행할 경우에는 수행자가 어쩌다가 자기주시(self-attention) 또는 자기자각(self-awareness)이 이루어지는 내적인 고요함의 상태에 때때로 이를 수는 있지만, 그것은 진아에 도달하는 데 있어서 아주 둘러가는 길인 것이다. 슈리 라마나는 다른 수행법들은 결국 자기탐구가 시작되는 그 지점에 도달하게 해줄 뿐이라는 점을 강조했으며, 따라서 그는 어느 특정한 질문자가 자기탐구를 도저히 할 수 없거나 이 방법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판단될 경우가 아니면, 다른 방법들을 결코 권하지 않았다. 이 점은 {슈리 라마나 기따}(Sri Ramana Gita)[그의 초기 어록의 하나]에 수록된 한 문답에서 잘 드러나고 있는데, 여기서 그는 왜 자기탐구가 진아를 깨닫는 유일한 길인지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한 질문자가 슈리 라마나의 설명을 주의 깊게 듣고 나서도 여전히, 자기탐구가 진아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라는 점을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고, 진아를 깨달을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없는지를 물었다. 슈리 라마나는 다음과 같이 답변하고 있다.

[어떤 대상에 대해] 명상하는 사람이나 자기탐구를 수행하는 사람이나 목표는 동일합니다. 한 사람은 명상을 통해서 고요함에 도달하고, 다른 한 사람은 지知를 통해서 도달합니다. 한 사람은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 애쓰고, 다른 한 사람은 얻고자 애쓰는 자가 누구인지를 탐색합니다. 앞의 사람은 시간이 더 오래 걸리지만, 그래도 결국에는 진아에 도달하게 됩니다.2

주체와 대상이 있는 명상(subject-object meditation)을 더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진 이 사람의 신념을 동요시키고 싶지 않았고, 또 그가 자기탐구의 방법을 받아들이지 않으리라는 것을 이미 알았기 때문에, 슈리 라마나는 그에게 그가 선택한 방법으로도 진아에 도달할 수 있다고 말함으로써 그가 그 길을 따라가도록 고무해 준 것이다. 슈리 라마나의 견지에서는 아무 방법도 없는 것보다는 어떤 방법이라도 택하는 것이 더 나은 것이다. 다른 방법도 언젠가는 자기탐구로 들어갈 가능성을 항상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와 비슷한 이유로, 이와 비슷한 많은 다른 답변들을 해주었다. 자기탐구나 순복이 아닌 그러한 방법들로도 진아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고 하는 이러한 답변들은 그러나,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런 답변들은 자기탐구에 마음이 끌리지 않고 자기 자신의 방법을 따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만 해준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당신이 이른바 '간접적 방법'(indirect methods)이라고 부른 이러한 방법들에 집착하지 않은 다른 헌신자들에게는 보통, 자기주시가 궁극적으로 필요 불가결하다는 사실을 거듭 강조하곤 하였다.

비록 슈리 라마나가 자기탐구법에 관한 자신의 견해를 강력하게 변호하기는 했지만, 결코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신념이나 해 오던 수행법을 바꾸라고 하지는 않았으며,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자기탐구법을 받아들이지 못할 때에는 다른 방법들에 관해서도 기꺼이 조언해 주곤 하였다. 이 장章에 수록된 대화들은, 전통적인 명상법(dhyana)에 관해서 그의 조언을 구하는 사람들의 질문에 주로 답하는 내용이다.

그는 이러한 조언을 해주면서 보통, 명상이라는 것은 한 생각에 집중함으로써 다른 모든 생각을 물리치는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따금 그는 마음을 진아 안에 고정해 두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명상이라고 말함으로써 명상을 한 차원 높게 규정하기도 했다. 이 후자의 수행은 사실상 자기탐구와 같은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그의 초기 저작들 중의 하나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마음을 항상 진아에만 고정시켜 두는 것이 자기탐구이며, 반면에 명상은 자신을 브라만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