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라.
그런 식으로 자신을 기소하지 마라.
지금까지 지구 위를 걸어다녔던 사람들 중에서 네가 최악의 인간인 것도 아니고, 네가 악마의 화신인 것도 아니다.
너는 실수를 저지르면서 집으로 돌아올 길을 찾으려고 애쓰는 인간 존재일 뿐이었고, 지금도 그럴 뿐이다.
네가 과거에 그랬던 것은 네가 혼란스러웠기 때문이다.
너는 예전에 미아였다.
너는 한때 길 잃었지만, 이제 찾아졌다.
그러니 이번에는 자기 연민이라는 미궁과 자책이라는 미로 속에서 다시 길을 잃는 일이 없게 하라.
그보다는 차라리 네가 지금껐 "자신"에 대해 지녔던 가장 위대한 전망의 다음 번 가장 숭고한 해석으로 자신을 불러내라.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너도 가치 있다.
너 자신을 자신보다 못하다고 여기는 모든 생각이 사실은 나를 부정하는 것이고,
너 자신을 비하하는, 너 자신에 관한 모든 말이 나를 부정하는 것이며,
어떤 종류든, 부족과 불충분함의 역할을 연출하는 너 자신을 통해서 나오는 모든 행동이, 사실은 나를 부정하는 것이다.
생각에서만이 아니라, 말에서만이 아니라, 행동에서도.

무가치함은 지금까지 모든 인간 종족을 찾아온 것 중에서 최악의 고발장이다.
너는 과거에 근거해서 네 가치를 평가하지만, 나는 미래에 근거해서 네 가치를 평가한다.
미래, 미래, 언제나 미래다!
너희 삶은 미래에 있지, 과거에 있지 않고, 너희 진리 역시 미래에 있지, 과거에 있지 않다.
너희가 한 일은 너희가 하려는 일에 비하면 중요하지 않고, 너희가 얼마나 잘못했는가는 너희가 얼마나 창조할 지에 비하면 무의미하다.

나는 네 잘못을 용서한다, 그 전부를.
나는 네 잘못된 열정을 용서한다, 그 전부를.
나는 네 그릇된 관념과 오도된 이해와 상처주는 행동과 이기적인 결정을 용서한다, 그 전부를.
남들은 너를 용서하지 않을 지 모르지만, 나는 용서한다.
남들은 너를 죄의식에서 풀어주지 않을지 모르지만, 나는 풀어준다.
남들은 네가 잊고 앞으로 나가 새로운 뭔가가 되게 놔두지 않을지 모르지만, 나는 그렇게 한다.
왜냐하면 나는 네가 예전의 너가 아니라 지금의 너고, 앞으로도 항상 그럴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어떤 죄인이라도 한 순간에 성인으로 될 수 있다.
단 일초만에, 단숨에.
사실 "죄인" 같은 건 없다.
적어도 내게는 아무도 죄지을 수 없기 때문이니, 내가 너를 "용서한다"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내가 이 용어를 쓰는 건 그것이 너희가 이해할 것 같은 용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나는 어떤 것에 대해서도 너희를 용서하지 않는다.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내게는 용서할 게 없으니, 그럴 필요가 없다.
하지만 내가 너희를 방면시켜줄 수는 있다.
그러기에 나는 그렇게 한다.
내가 그 많은 스승들의 가르침을 통해 예전에 그토록 자주 그래왔던 것처럼, 지금 여기서 다시 한번.


"나는 생명이요 길이다"는 얼마나 "거만한가"?
이 정도면 너한테는 충분히 거만하지 않느냐?
네가 갖는 자신에 관한 가장 위대한 전망은 나다!
그것이 바로 나다!
우리 중에 오직 하나만이 있다.
너희와 나는 하나다.
네가 네 가장 위대한 부분을 부정할 때, 너는 나를 부정하고 있다.
나는 너희를 낮추려고 온 것이 아니라 높이려고 왔다.
너희가 높여지면, 나 역시 그렇게 된다.
그리고 너희가 낮춰지면 나 또한 그렇게 된다.


참된 선각자는 이것을 안다.
참된 선각자가 모든 사람들을 '참된 그들'로 인정하고, 그들더러 겸손이라는 미명으로 자신의 장대한 측면들을 부정하지 말고 스스로를 인정하라고 격려하는 이유 역시 이것이다.
예수는 들을 귀를 가진 모두에게 분명하게 자신을 알렸고, 자신을 선언했다.
그리고 너희 행성을 걸었던 다른 모든 선각자들 역시 그러했다.
그러니 자신을 알리고, 자신을 선언하라.
그런 다음 네가 선언했던 그 존재상태 속으로 완전히 옮아가라.
지금이라는 모든 순간들마다 네가 지금껏 '자신'에 대해 지녔던 가장 위대한 전망의 가장 숭고한 해석으로 너 자신을 새롭게 재창조하라.
이렇게 할 때 나는 찬미 받으리니.
신의 영광이란 참으로 경이롭게 표현된 너희의 영광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