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채식은 기아에 굶주리는 사람들을 살려냅니다.

   지금 이 시각에도 1분에 23명 꼴로 기아로 사람들이 죽어간다는 가슴 아픈 소식을 월드워치 연구소의 자료는 우리들에게 말해줍니다. 그런데 지구에는 전 인구가 먹을 수 있는 양보다 훨씬 많은 곡물이 생산된다고 하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일까요?
   여기엔 곡물분배의 문제와 더불어 사료용 곡물 생산에도 큰 원인이 있습니다. "노동의 종말"이라는 명저의 저자인 제레미 레프킨이 쓴 "쇠고기를 넘어서"라는 아래의 글은 이러한 점에서 많은 것을 시사해 줍니다.

   '미국에서 지금 "쇠고기는 왕이다"  평균적인 미국인들은 한 해 65파운드의 쇠고기를 먹는다. 미국에서 십만 마리 정도의 소들이 스물 네 시간마다 도살되고 있다. 전 세계 쇠고기의 생산량의 23퍼센트를 미국인들이 소비하고 있다. 이러한 수치는 앞으로 10년 간 극적으로 변화할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이 특권적인 쇠고기 클럽에 가입하는 일본 사람과 한국 사람의 수가 자꾸만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과 한국의 쇠고기 값은 미국보다 네 배나 비싸지만 1990년에 이들 나라의 쇠고기 수요는 1965년 수준의 3.5배로 올랐다. 1990년에 뉴욕보다도 도쿄에서 더욱 많은 맥도날드 햄버거가 팔렸다.'

   산업화된 나라에서 보는 이와 같은 쇠고기 중독은 전지구적인 식량 위기를 초래하였다. 오늘날 제 1세계의 소비자들이 차돌박이 쇠고기를 먹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귀중한 곡물이 수억 마리 소들의 먹이로 이용되고 잇다. 북쪽나라들에서 사람들이 곡물로 길러진 쇠고기를 게걸스레 먹고 있는 동안 개발도상국에서 수백만의 사람들이 굶주리고 있다. 곡물이 사람이 아니라 가축들에게 주어지고 있는 것은 우리 시대의 가장 중대한, 그러나 거의 인식되어 있지 않은 문제 중의 하나이다.

   소와 기타 가축들은 지구상에서 생산되는 곡물의 3분의 1을 먹어치우고 있다. 오늘날 미국에서 생산되는 곡물의 70% 이상이 가축의 먹이로 제공된다.

   이것은 농업의 역사에서 새로운 현상이다. 처음으로 소들이 방대한 양의 곡물을 먹게 된 것이다.
   소들이 꼴이 아닌 곡물을 먹게 된 것은 전적으로 이번 세기동안 일어난 일이지만 거의 아무런 논쟁 없이 이 일이 일어났다. 그런데 이 일은 토지이용과 식량배분 문제에 어떤 한 가지 요인보다 심대한 영향을 끼쳐왔다.

   코넬 대학의 데이빗 피멘틀 교수의 추정에 따르면, 미국에서 가축의 먹이를 완전히 바꾸면  1억 3천만 톤의 곡물이 절약되어 약 4억이 넘는 사람들을 먹여 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가축 대신에 인간을 먹이는 데 곡물을 이용한다면 10억 이상의 사람들이 먹을 수 있게 될 것이다. 대부분 아이들인 4천만 내지 6천만명의 인간이 해마다 굶주림과 그와 관련된 영양실조 등의 질병으로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이러한 통계는 엄청난 의미를 갖는다.
   1984년 에티오피아에서는 날마다 수천명의 사람이 기근으로 죽었다. 그런데 바로 그 때 에티오피아가 영국과 기타 유럽 국가들에 가축 사료를 수출하기 위해서 농토의 일부를 아마씨와 목화씨와 평지씨 깻묵을 생산하는 데 전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사람은 별로 없다. 현재 제 3세계 토지 수백만 에이커가 유럽의 가축 사료를 생산하는 데만 전적으로 이용되고 있는 형편이다. '식량이냐 사료냐' 하는 문제는 다가오는 수십년 동안 남북관계에 점점 큰 비중을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다음 십년 동안 세계인구가 거의 20%나 증가할 것으로 예측되는 상황에서 세계 곡물생산의 3분의 1이 소나 다른 가축들에게 주어지고 있다는 것은 세계적인 식량위기를 이미 자초하고 있는 셈이다.

   또한 EBS 채식 관련 방송에 의하면, 지구상에 존재하는 소는 약 13억 마리인데, 이들 소를 비롯한 여러 가축들이 전세계 곡물의 약 40% 정도를 소비한다고 합니다. 또한, 1350kg의 콩과 옥수수로 22명의 사람을 먹여 살릴 수 있지만 이것을 소에게 먹아면 단 한 사람만이 고기와 우유를 먹을 수 있다고 합니다.

   곡물을 소에게 먹여 그 소를 먹는 것은 곡물을 직접 먹는 것에 비해 약 10배 정도의 농지가 필요하다고 하니, 육식을 하는 것은 채식을 하는 것에 비해 지구상의 식물을 약 10배 이상 파괴하는 것이 되는 셈입니다.

   5. 채식은 고통받는 동물들의 고통을 덜어 줍니다.

   현대의 축산업이 거대화, 집약화, 기계화 되면서 현재의 목장에는 과거의 한가로이 풀 뜯는 낭만적인 목장의 풍경을 찿아보기 어려워졌습니다. 좁은 면적에 많은 가축들을 기르는 현재의 주류 축산업은 가축들에게 예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많은 고통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원래 초식동물인 소에게 성장을 촉진시키기 위해 동물 사료를 주어 광우병이 생기게 하는가 하면, 송아지 고기맛을 좋게 하기 위해 움직일 수 없는 나무 우리에 송아지를 가두어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 속에 자라게 합니다. 비좁은 공장식 축사는 숱한 병의 위험을 안고 있으니 항생제 등이 항상 과다 사용되고 이는 결국 인간이 다 먹게 되는 것 입니다. 도축장으로 끌려가는 소들은 비좁은 트럭에 실려, 물조차 먹기 못하고 이동하는 동안 쓰러져 짓밟혀서 뼈가 부러지는 상처를 입거나 죽기도 합니다. 닭은 원래 부리로 모이를 쪼는 동물인데 좁은 양계장 안에서 모이를 쪼지 못하고 고통의 날들으 보냅니다. 이러한 이유로 닭들이 정신질환을 일으키면 모이 대신 이웃 친구 닭들을 쪼게 되는데, 이를 막기위해 부리를 잘라버리기까지 합니다.

   우리가 값싸게 먹는 고기, 햄버거 , 계란 등등은 이러한 동물들의 피맺힌 고통과 희생을 담보로 한 실로 가슴 아픈 인간의 동물 착취와 나온 것 입니다. 사람들이 동물들에게 가한 고통과 학대는 인간 광우병의 예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듰이, 다시 인간에게로 되돌아 옵니다.  
   온갖 항생제, 도축 시 몸에서 분비되는 독소, 고농도로 축적된 농약(곡물에 남은 농약이 먹이 단계의 상층인 동물에게서는 엄청난 비율로 축적됩니다.) 등으로 얼룩진 동물의 몸을 먹는 육식 식생활은, 이웃 생명인 동물에게 처참한 고통을 가하는 일일 뿐 아니라, 우리의 몸과 영혼을 핏빛으로 얼룩지게 하는 가슴 아픈 일이기도 합니다.

   6. 채식은 자연스러운 생태적인 식사

   '우리는 땅의 한 부분이고 땅은 우리의 한 부분이다. 향기로운 꽃은 우리의 자매이다. 사슴, 말, 큰 독수리, 이들은 우리의 형제들이다. 바위산 꼭대기, 풀의 수액, 조랑말과 인간의 체온 모두가 한 가족이다.'

   자연과 하나 되어 그 순수의 빛 속에서 살아왔던 아메리카 인디언의 자연과 샘명과 대지에 대한 위의 글은 많은 것을 새롭게 생각하게 해줍니다.

    우리가 이 시대에 진정 잃어버린 것은  바로, 우리는 자연 속의 존재이지 결코 자연을 정복하고 개발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 그리고 우리 인간의 행복은 자연과 함께 함에 있다는 것이 아닐까요?

   곡물이 가축 사료용으로 어마어마한 비율로 낭비되는 이 시대에, 가축 사육 없이도 지금의 곡물 생산으로 전 인류가 공존할 수 있는 이 시대에 이웃 생명들인 동물들을 우리와 합께 같은 생명으로 보고 그들에게 고통을 주지않고 그들을 죽이지 않는,  단순히 동물들을 우리에게 인간의 수단으로 여기지 않고, 우리와 마찬가지의 한 생명으로 바라보게 될 때, 우리는 우리가 자연의 일부분이고 또한 자연은 우리의 일부분이 됨을 더욱 더 깊이 자각할 것 입니다.

   그 때, 오랜 세월 동안 단순히 우리의 생황 수단으로 전락되어 질곡의 삶을 살아왔던, 그 생명있는 존재들의 아름다움과 선한과 함께 느끼는 행복에 대해 위는 자각하고 생명을 생명 그 자체로서 존중하는 것이야말로 우리로 하여금 멀어지게 된 자연으로 돌아가는 길임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 다음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