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진심으로 어떻게든 해 주고 싶다는 기분이 그리스도 의식

우리들은 지금 그리스도 의식을 관리하고 있는 존재로서 여러분 앞에 나타났습니다. 먼저 우리의 역할에 대해 설명 드리겠습니다. 방금 전, 그리스도 의식의 관리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이것은 정확하게 표현하면, '어떻게 지구 인류에게 그리스도 의식을 흘려, 사람들이 진화해 나갈 수 있도록 이끌어 갈 것인가'라는 책임을 맡고 있는 존재라고 이해해 두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 의식, 아마 여러분에게는 별로 의미가 와닿지 않을 것이고, 또 어떻게 이 에너지를 받아들여 자신의 것으로 할 수 있는지 이해하기 어려울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 의식이라는 것은 인류의 진화를 위해 준비된 우주 의식의 하나이며, 또한 고도의 인간으로 진화해 나가는 경우에 반드시 몸에 습득하지 않으면 안 되는 파동이기도 합니다.


인류는 지금까지 자신의 즐거움만을 추구해, 다만 자신이 성장해 가는 것을 생각해 왔습니다. 자신만이 즐겁게 성장하고, 자신 이외의 기타 인간은 모두 자신을 위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지금까지 지구 인류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생각이 서로 분쟁을 일으켜 쟁탈전을 초래하였고, 지구에는 언제까지라도 진실한 사랑의 구조가 형성되지 않는 상황을 연출해 왔습니다


이런 경험을 몇번이나 몇번이나 거듭하면, 어느 시점에 "이제 이런 일은 멈추기로 하자. 이제 서로 다투거나, 서로 비난하는 것은 그만두기로 하자." 라고 마음 깊이 이해할 때가 옵니다. 자신의 성장만을 생각하고 있었던 사람은, 다른 사람도 함께 성장하지 않으면 자신도 기쁨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차츰 이해하게 됩니다. 부를 추구하는 사람도 자신만이 풍족한 것이 아니라, 다른 많은 사람도 풍족하지 않으면 자신도 진심으로 기쁘지는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런 상황이 되었을 때, 진정한 의식의 변혁이 찾아옵니다. 지금까지 자신의 삶의 방식은 무엇이었는지를 되돌아보게 됩니다. 타인을 이용하여, 자신만이 행복하게 되는 것을 생각하고, 그것을 기쁨으로 여기며 보내온 인생! 이것은 자신의 진정한 기쁨과는 조금도 연결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자신의 삶의 방식을 매우 후회하게 되고,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미안함을 느끼며, 우주라는 존재에 대해서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게 되는 시기가 찾아 옵니다.

그 때, 그리스도 의식은 나타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의식은 그 사람을 진심으로 이해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당신이 지금 느끼는 자신을 꾸짖는 기분은 당신 자신의 잘못은 아닙니다. 지금부터 커다란 사랑을 기르기 위해서, 당신 스스로가 만들어낸 경험이고, 어떤 의미로는 자신의 성장을 위해서 스스로 계획한 경험이기도 합니다. 그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거나 죄와 같이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당신은 잘못해 왔던 것도 아니고, 죄를 지은 인간도 아닙니다. 무엇하나 우주에 대해서 실수를 저질렀던 것도 아닙니다. 다만 이제 스스로 어떻게든 해주고 싶다는 기분이 있다면, 그 진심을 지금부터 다른 생명 있는 것들에 바쳐 주십시오."

그리고 우리들이 활동하기 시작합니다. "자신의 마음을 순수하게 다른 생명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바치고자 하는 사람은 우리가 그것을 받아, 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의식을 바꾸어 주자. '나는 생명을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다.' 그와 같은 의식으로 그 사람을 바꾸어 주자...."

지금까지 자신을 꾸짖어 온 사람, 타인에게 어떤 도움도 되지 않았다고 후회하고 있는 사람, 지금부터 그 기분을 다른 생명 있는 존재들에게 바치는 시기가 옵니다. 한사람 한사람의 마음 속에 있는 상냥함을 우리는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한사람 한사람의 마음 속에 있는 강인함, 다른 사람을 위해 애쓰는 기분, 자신을 바라보는 진지함을 우리는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영혼은 그 때를 위해 여러분에게 많은 시련과 경험을 주며, 여러분이 스스로 눈치채는 것을 다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여러분은 스스로 그것을 눈치채는 곳까지 성장해 오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언젠가 우리들의 동료가 됩니다. 이 우주 안에서, 가능한 모든 힘을 쏟아 생명을 위해 자신을 바치는 시기가 찾아 옵니다. 거기에는 괴로움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미혹도 없습니다. 있는 것은 오직 기쁨 뿐입니다. 생명을 양육하는 즐거움이 진심으로 느껴져 옵니다.

우리들, 그리스도 의식은 여러분과 하나가 되는 것을 지금 바라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바라고 있는 경우, 우리는 곧바로 그곳에 나아가, 전력을 다하여 여러분과 하나가 되려 합니다. 하지만 여러분의 마음은 지금의 단계에서는 아직도 연약합니다. 곧바로 괴로워하고 혼란과 불안에 빠져버립니다. 지금 여러분에게 주어지는 과제가 그곳에 있습니다. 우리와 일체가 된 후에도, 아무런 불안을 가지는 일 없이, 혼란을 부르는 일 없이, 자신의 사랑을 생명 있는 존재들에게 바칠 수 있을 것인지....생명 있는 존재들을 자신의 사랑의 힘으로 길러낸다는 것! 그 기쁨을 정말로 여러분의 것으로 하시기를 바랍니다.

2. 사랑을 몸에 익혀도 실천하지 않으면 빛나지 않는다

나는 사난다입니다. 그런데 내가 최근에 왜 여러분에게 이야기할 수 없게 되었는지를 조금 설명합니다. 지금 지구에는 마이뜨레야의 파동이 무성하게 쏟아지고 있습니다. 마이뜨레야의 파동은 한사람 한사람이 마음 속으로부터 눈을 뜨게 하고, 진실에 눈을 돌리게 하여, 스스로를 해방시킬 수 있도록 각자에게 가장 적절한 파동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파동은 아직 이 지구 인류에게는 좀처럼 뿌리내리지 않고 있고, 여러모로 준비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역주: 이 메시지는 1997년 12월에 전해진 것입니다)  

지금 나는 ‘이 마이뜨레야의 파동을 어떻게 이 지구 인류에게 정착시킬 것인가’에 관한 준비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나를 예수로서 인식하고 있는 사람 앞에 내가 나타나면, 혼란을 불러 일으켜 버립니다. 마이뜨레야는 그리스도이지만, 예수는 아닙니다. 그 부분에 매우 혼란이 일어나 버립니다. 그 때문에, 나는 나를 예수로서 인식하고 있는 사람 앞에는 나타나지 않기로 했습니다.

여러분은 이미 나와 예수가 같지 않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지금 이렇게 나타날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나와 예수가 전혀 관련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다지 생각하지 않는 편이 좋을 것입니다. 불필요한 혼란을 부르기 때문입니다.

마이뜨레야의 파동은 지금부터 지구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행하게 됩니다. 이 파동은 한사람 한사람이 진정한 인간이 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파동입니다. ‘자신의 본질은 무엇인가?’ ‘자신은 지금 인간으로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에 대한 진실을 분명히 깨닫게 해 줍니다. 자신은 왜 여러 가지 것에 흥미를 가지고, 사랑하는 것을 배우며, 의식을 확대시켜 가고 있는 것인가?

이미 여러분은 사람을 사랑하기에 충분한 자질을 갖추고 있습니다. 이 우주 안에서 활약할 수 있는 커다란 의식을 지니고 있으며, 또 이 지구에서 역할을 행할 수 있는 육체를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마음 속에 있는 성실한 마음, 다른 사람에 대해 생각하는 상냥한 마음, 사람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마음, 우리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직 행동을 통하여 발휘되고 있지 않습니다. 이대로 그것을 끝내 버리기에는 너무 아깝습니다. 그 마음을 왜 일상 생활에서 좀 더 사용하지 않는 것인가요? 그 상냥함을 왜 좀 더 구현해 나가지 않는 것인가요? 모처럼 몸에 익힌 포옹력, 왜 그것을 좀더 몸으로 나타내지 않는 것인가요?

모처럼 몸에 익힌 그러한 에너지가 자신만의 것으로 머물러 있습니다. 그것을 조금이라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여러분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주어지는 솔직한 마음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순수한 마음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도 많이 사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자신의 훌륭한 마음을 스스로 인정하기 바랍니다. 그리고 조금씩 그것을 구현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셨으면 합니다.

여러분은 이미 머리로 공부하고, 충분히 이해하여, 솔직한 심정이 되어 있습니다. 그렇지만 행동이 수반되지 않고 있습니다. 모처럼 사랑하는 것의 중요함을 몸에 익혀, 충분히 사랑하는 것이 가능한 파동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별로 사람과의 교류를 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너무 아깝습니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몸에 가져온 사랑이었는지요? 단지 사랑을 자신의 그릇 안에 담아 두고 있는 것만으로, 만족하고 있는 것인가요?

사랑은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줄 때, 처음으로 그 빛을 발합니다. 여러분 모두 가슴을 크게 벌리고, 자신의 사랑을 자꾸자꾸 넓혀 가시기 바랍니다. 친구나 가족, 직장의 동료들에게 자신의 사랑을 자꾸자꾸 넓혀 가시기 바랍니다. 즐겁게 느껴지지 않습니까? 자꾸자꾸 기분이 좋게 되어 갑니다. 사랑은 그것을 사용할 때, 처음으로 빛나게 됩니다. 다만 사랑이 있다고 생각하며, 마음 속에만 간직하고 있는 것은 진정한 사랑은 아닙니다. 현실 속에서 그것을 정말로 사용해 간다는 것, 여러분은 그것을 지금부터 실천해 주십시오.

3. 적을 사랑하는 것의 중요성

앞서 조금 설명이 있었습니다만, 그리스도 의식은 여러분에게 새로운 의식의 각성을 가져오기 위해서 계속 파동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지금 새로운 의식의 변혁이 필요한 시기에 들어 서고 있습니다. 오로지 자신만을 이야기하는 의식 수준에서 모두가 같은 인류이고, 우주의 생명체이며, 또한 신으로부터 갈라져 나온 의식이라는 것을 눈치채는 시기로 들어 서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각자 개성이 있습니다. 각각 다른 빛이 갖춰지고 있습니다. 모두 자신과는 다른 훌륭한 빛을 지니고 있습니다. 한사람 한사람이 모두 다른 파동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본질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지금까지는 자신의 것만을 생각하고, 다른 사람의 것을 생각하지 않아도, 그 나름대로 생활 할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지금부터는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항상 ‘전체 안의 자신’이라는 의식이 없는 한, 자신은 올바르게 행동할 수 없게 됩니다.

자신만의 것을 생각하고, 다른 것을 무시하고 있으면, 자신의 활동 그것이 성립될 수 없게 됩니다. 항상 ‘전체 안의 자신, 전체로서의 자신, 신으로서의 자신’을 의식하는 것이 필요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의식은 어떻게 몸에 익혀 지는 것일까요? 다만 머리로 이해하려고 해도, 몸에 익혀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생각해서 아는 것은 아니며, 좀더 깊은 속마음으로부터 납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것을 몸에 익힐 수 있을까요? 그것은 사랑하는 것에 따라 몸에 익혀지게 됩니다. 적을 사랑하는 사람, 그 사람에게는 상대방과 자신의 공통점이나 역할의 차이, 서로에게 필요한 것 등이 이해됩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수가 증가할수록, 여러 사람과 자신과의 관련이 이해되게 됩니다. 따라서 전혀 사람을 사랑하지 않은 사람이 갑자기 전체로서의 자신에 눈을 뜨려고 해도, 그것은 무리입니다. 사랑하는 것에 의해 그것은 몸에 익혀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앞으로 여러분에게 커다란 의식의 변혁이 방문한다고 하더라도, 그때까지 자신이 얼마나 많은 인간을 사랑하고, 진심으로 이해를 표현했는지, 이것이 상당한 열쇠를 쥐게 되는 것입니다. ‘새로운 의식이 되고 나면, 그때 사랑하겠다’ 고 생각해도 그것은 무리입니다. 먼저 사랑하고, 다양한 생명과의 관련을 배워 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왜 지금까지 우리는 여러분에게 사랑을 몇 번이나 강조해 왔을까요? 사랑은 전체로서의 자신에 눈을 뜨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경험이기 때문입니다.

‘적을 사랑한다.’ 그에 따라, 자신과 적이라고 생각했던 사람과의 관련이 이해됩니다. ‘적으로서의 자신’에게도 의식을 향할 수 있게 됩니다. 전체로서의 자신을 이해하는데, 이런 지름길은 없습니다. ‘사람을 사랑한다. 서로 인정한다. 서로 허락한다. 서로 존중한다.’ 이것은 전체로서의 의식을 몸에 익히는데 매우 필요한 것입니다.

사랑이 없기 때문에 사랑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전혀 진실과는 다릅니다. 사랑은 언제 어떠한 상태에 있더라도 행동으로 표현될 수 있습니다. 비록 자신이 괴롭고, 궁핍하고, 곤란한 상황에 빠져 있다 하더라도, 사랑을 주는 것은 가능합니다. ‘자신이 풍족할 때에만, 사랑을 줄 수가 있다.’ 이것은 아직 사랑을 물질적인 것으로 이해하고 있는데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사랑은 그러한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물질이 아닙니다. 아무리 사랑했다고 해서 줄어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여러분이 진실한 사랑을, 경험을 통해 몸에 익혀 주시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4. 자신의 사랑이 인정되지 않더라도 비난하지 않도록 (예수)

저는 여러분의 말로 예수로서 육체를 취한 근원으로부터 찾아왔습니다. 의식이라는 것은 이 우주의 근본으로부터 움직이기 시작하여, 여러 가지 현상을 만들고, 성장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이 하나의 근본의 의식으로부터 각각의 의식의 파동에 따라 개성화하여, 다양한 표현을 취하게 됩니다. 지금 여러분의 육체 하나 하나 속에 여러분의 의식이 싹트고 있습니다. 이 의식을 쭉 거슬러 올라가면, 마침내는 그 하나의 근원에 도착하게 됩니다.

오늘 우리는 여러분 한사람 한사람의 동료로서 마중 나왔습니다. 결코 높은 존재라든가 자신과는 격이 다른 존재와 같이 생각하지는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우리도 그 본질은 여러분의 의식의 근원과 동일한 곳으로부터 나왔습니다. 다만 여러분과는 다른 체험을 통해 여러분과는 다른 경험을 자신의 것으로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 본질은 여러분과 같고, 결코 나만이 뛰어나다든가, 빛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들도 결코 여러분을 바보라든가 미숙한 사람이라는 식으로는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육체를 취하고 있는 이 의식에 너무 제한되어 그 본질을 잃어버린 상태에 있다는 것은 우리도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나쁘다든가, 미숙하다고 말할 생각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단지 지금부터 지구의 위대한 진화를 향해, 여러분의 의식도 본질의 쪽으로 계속 향해 주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확실히 현실의 생활 속에서, 여러 가지 혼란이 있고, 고민도 있겠지요. 알아 주지 않는 사람, 이해해 주지 않는 사람이 있겠지요. 그렇지만 그곳에 의식을 향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한 사람은 그러한 배움을 필요로 하고 있는 것일 뿐입니다. 여러분은 이미 그러한 배움을 필요로 하고 있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의 본질은 우리와 같으며, 충분히 자신의 진실에 눈을 뜨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 자신은 육체적 인간은 아니다. 육체의 형태를 빌리고 있지만, 이것이 나 자신의 모두는 아니다. 나 자신의 본질은 위대한 대근원과 연결되고 있다.’

그것을 여러분은 이미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 예수, 여러분이 신과 같이 우러러보고 깨달은 마스터로서 파악하고 있는 저도 여러분과 똑같이 육체로서의 괴로움을 배우고 경험했습니다.

저도 여러분과 함께 이 지구의 새로운 시대를 위해, 저의 모든 것을 바치고 싶습니다. 저는 할 수만 있으면, 정말로 육체를 가진 채로 여러분의 눈 앞에 나타나 손을 마주 잡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제가 예수입니다”

그렇게 한사람 한사람과 얼싸안으며, 앞으로의 시대를 위해 함께 맹세하고 싶습니다. 다만 저는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어, 아직도 여러분의 눈앞에 나타나는 것은 허용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여러분 모두와 손을 마주 잡고, 기쁨을 함께 나누게 될 것을 약속 드립니다. 우리 모두가 이웃과 서로 사랑을 길러가면서, 함께 커다란 본질을 향한 배움의 과정을 계속해 가자는 것이 아닌가요!

저는 일부의 사람들로부터 신으로서 우러러 보여지거나 특별한 인간인 것 같이 생각되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여러분께 말씀 드리는 것처럼, 저 역시 인간적인 감정을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한사람 한사람의 고민이나 괴로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사랑하고 싶지만 좀처럼 행동으로 옮길 수 없다.’라는 그 기분도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저이기 위해서 타협하는 것은 기뻐하지 않습니다. 역시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을 정당화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저는 항상 사랑하고 싶습니다.

조금이라도 사랑을 몸에 익히고 싶다고 생각하는 분은 저도 전력을 다하여 지켜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사랑이 없는 사람에 의해 지상으로부터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아무것도 후회하고 있지 않습니다. 당시는 그렇게 되더라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의 없는 사람에 의해 괴로움과 아픔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2000년 전과 같습니다. 왜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이 없는 사람으로부터 비난 받는 것인가요? 왜 사랑이 정당하게 평가되지 않는 것인가요?

사랑이 없는 사람의 질투나 원망, 반감에 의해 모처럼 피어난 사랑이 사랑하고자 하는 사람을 괴로운 상황으로 몰아버리고 있습니다. 사랑이 있는 사람에게는 저는 그 이상의 사랑을 드리고 싶습니다. 사람을 사랑하고자 하는 분에게는 그 몇 십배로 사랑의 답례를 드리고 싶습니다.

인간은 누구든지 말합니다. '사랑하고 있는데, 알아 주지 않는다.’ 확실히 그러한 현실이 존재합니다. 물론 그러한 사랑에 에고나 오만함이 들어가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사람은 그 나름대로 열심히 상대를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오만하고, 제멋대로였을지도 모르지만, 자기 나름대로는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적어도 그 만큼은 왜 알아 주지 않는 것인가요? 그만큼이라도 받아 줄 수는 없는 것인가요? 불과 몇 푼 안 되는 사랑에 큰 오만함이 들어 있었다 하더라도, 불과 몇 푼 안 되는 그 사랑에 관심을 가지기를 바랍니다. 상대의 오만함에 필요 이상으로 관심을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사랑 받는 것만을 언제나 생각하고 있으면, 사랑해 주지 않을 때의 오만함만이 눈에 띄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어려운 것이라고 몇 번이나 많은 사람들로부터 말해져 왔습니다. 예수의 사랑은 엄격하다고 몇 번이나 말해져 왔습니다. 저의 사랑이 그렇게 어려웠던 것일까요? 단지 사람을 허락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것이었을까요? 저는 모두와 함께 정말로 사랑을 길러가고, 이 지구에서 인류의 사랑을 넓혀 가고 싶었습니다. 인간이 얼마나 훌륭한 사랑을 발휘할 수 있을까요? 인간이 정말로 진심으로 사랑을 발휘한다면, 얼마나 이 지구가 훌륭한 혹성으로 바뀔 수 있을까요? 저는 그것을 정말로 육체를 취한 여러분 모두에게 이해 받고 싶습니다.

사랑을 하고자 할 때, 타인의 사랑에 질투하며, 자신이 할 수 없는 사랑에만 관심을 가져 버립니다. 좀 더 자연스럽고 편하게, 사랑을 표현해 주시기 바랍니다. 생각하고 생각해, 작전을 짜내어, 상대에게 사랑을 주는 것이 아니라, 평상시 아무렇지도 않게 기쁨을 표현하고, 함께 있는 즐거움을 나타내 주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이 지구에 사랑이 정말로 뿌리내릴 때까지, 전력을 다하여 한사람 한사람에게 사랑을 호소해 갈 것입니다.

그렇지만 어렵게 생각하지는 말아 주셨으면 합니다. 뭔가 도달할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하지는 말아 주셨으면 합니다. 여러분의 본질은 우리와 같고, 같은 동료라는 것을 진심으로 느껴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여러분이 이곳에 오는 한, 여러분에게 힘껏 가르침을 드리고, 걸어갈 방향을 가르쳐 드릴 것입니다.

자신의 사랑이 정당하게 평가되지 않았다고 해서, 상대를 비난해서는 안됩니다. 비록 여러분의 사랑이 다른 사람으로부터 무시되었다 하더라도, 저는 그 10배로 여러분을 사랑해 드립니다. 그러므로 지금부터 상대에게 불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행동을 믿고 오로지 새로운 시대를 향해 진행되어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예수입니다. 저는 항상 여러분과 함께 있습니다. 결코 잊지 말아 주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