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의 불가사의한 관념

사람들이 만년설(萬年雪)을 이루고 있는 대알프스의 연봉을 한 눈에 바라보거나 아프리카의 대사막이라든가 대삼림 속에 서 있거나 또는 끝없는 바다물만이 이어지는 대양(大洋)의 한 가운데에 있을 때에는 평소와는 전혀 다른 세계에 자기가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틀림없는 일이다.

과연 이와 같은 경관(景觀)은 어는 것을 막론하고 정말 장대하다. 그러나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것은 이러한 경치만은 아니다. 물론 눈으로 본 장대함이라든가 익숙함도 있겠으나 사람들의 마음속에 새겨져서 사라지지 않는 것은 그 이상으로 이것을 전부가 영원한 태고로부터 존재하고 또 미래의 영겁에 걸쳐 그 존재를 계속할 것이라는 마음에 느끼는 영원한 시간에 대한 인식 때문이리라.

내가 지금 여기에 든 경관은 전부가 누구의 눈에도 영원한 상(相)으로 비친다. 그리고 사람들은 또 자기도 영원한 태고로부터 이 세상에 살고 있으며, 미래도 영원히 바다 속에 있다고 하는 감회에 잠기게 된다. 영원한 상(相), 그런데 바꾸어 말한다면 시간이라고 하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다. 시간은 모조리 죽어 없어지고, 완전히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고 사람들이 느낄 때에 그 눈에 보이게 되는 것이 바로 “상”이다.

나는 시간에 대해서 영들과 토론한 일이 있다. 나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인간 세상에는 시간이라고 하는 것이 존재한다. 인간 세계에서의 태양이란 영계의 태양과는 달라 회전이라고 하는 운동을 한다. 인간은 이 회전의 결과로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고 하는 계절의 변화를 경험한다. 봄에는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이 새로운 생명의 싹을 돋우고, 여름에는 그 생명이 더욱더 왕성해지고, 가을에는 생명이 열매를 맺으며, 겨울에는 잠든다. 그리고 그 흐름은 항상 같은 차례로 흐르며, 역전하는 일이란 절대로 있을 수 없다.

또 태양은 동쪽 하늘로부터 떠오르고 서쪽 하늘로 지는 것을 하루로 치고, 하루를 태양의 움직임에 맞추어 아침, 낯, 저녁, 밤으로 세분해서 이것을 시간이라고 하고 있다. 인간 세계의 귀중한 척도의 하나가 바로 이 시간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영들은 때로는 고개를 끄덕여 이해한 표정을 지었지만, 때로는 “별 이상한 소리를 다 듣는군, 참으로 기묘한 세계도 있군! 그런게 정말 존재할까.” 이런 표정을 짓거나 두통이라도 나는지 이마를 짚기도 했다. 어떤 영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당신이 말하는 그런 일은 지금까지 한번도 들은 적이 없소. 당신 정신에 이상이 생긴 게 아니요? 도대체 인간계의 태양이란 무엇이요? 만약 태양이라면 움직일 리가 없을 텐데, 나로서는 당신의 말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소. 다만 당신 말 중에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변화가 있고 그 변화에 따라 생명의 상태에도 변화가 있다는 말은 이해가 될 듯 하오. 그렇지만 내가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그뿐이오. 내가 느낀 대로 말하자면 당신은 반쯤은 정상이고 반은 미치광이오. 나는 당신이 하는 말을 듣고 내 눈앞이 캄캄해진 듯한 생각마저 듭니다.”  

앞에서 인간계에도 영원의 상(相)을 사람들에게 느끼게 하는 사물이 있다고 말했다. 사람들도 이 사실은 쉽게 인정하리라. 이와는 달리 영계의 사물은 모든 것이 영원한 삶을 나타내며 존재하고 있다. 인간계에서 영원한 상을 나타내고 있는 것은 알프스산맥이나 대양(大洋), 대사막 등 특수한 것뿐인데 영계에서는 모든 것이 영원한 상속에 있다.

한 포기의 작은 꽃, 한 개의 작은 돌이라도 그것은 태고로부터 영원한 미래를 향해 부동 불변의 것으로 존재하고, 엄연히 영원한 모습을 그 작은 모습 안에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영계가 시간이라는 기준을 초월한 시간이 없는 세계이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영들에게는 공간이라는 관념이 그들에게는 없는 것과 같이 시간이라고 하는 관념도 없다.

나의 말에 대해서 영이 “그런 말은 들은 적이라곤 없소. 내 눈앞이 캄캄해진 것 같소.”하고 말한 것은 그들에게는 “시간”이라고 하는 것은 생각하지도, 아니 상상조차 할 수도 없는 일이므로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들은 인간이 시간적인 관념으로 생각하는 것은 기껏해야 상태의 변화라고 생각할 수 있는 정도이다. 이 점도 앞에서 말한 영의 이야기 가운데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변화가 있고 그 변화에 따라 생명의 상태에도 변화가 있다는 말은 이해가 될 듯 하오.”라고 한 말로도 알 수가 있다. 상태의 변화라고 하는 넓은 바다 안에서 조수의 간만(干滿)에 따라 상하로 흔들리며 살아가는 영들에게는 이 조수의 간만만이 그들이 살고 있는 표적이므로 “시간”이 생길 수가 없다고도 할 수 있겠다.

또 영들에게 시간관념이 없는 것은 영의 생명이 영원하기 때문이라는 것과 함께 다음과 같은 타당한 이유가 있다. 즉 영계의 태양은 전혀 움직이지 않고 항상 천공의 한쪽에 조용히 그리고 영원히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한 가지는 뒤에 공간의 항에서 말하겠지만  영들은 아무리 먼 곳이라도 멀다는 관념이 생길 리가 없고 따라서 시간의 관념도 생길 여지가 없음을 누구나 다 알고 있을 것이다. 영들의 시간의 관념에 관련해서 나는 한 가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보기로 한다.

여기에 두 사람의 영이 있다고 하자. 인간계적(人間界的)으로 말하면 한 사람이 20세를 조금지난 청년의 얼굴 모습이고 또 한 사람은 60세를 지난 노인의 얼굴 모습을 하고 있다. 당신이라면 어느 쪽의 영이 늙었다고 생각할 것인가? 이 세상의 표현 방법으로 말하자면 청년은 젊고 노인은 나이를 먹었다고 하겠지만 청년 쪽이 노인 보다 수천 년이나 먼저 죽어서 영계에 들어와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청년 쪽이 나이가 더 많지 않느냐고 생각한다면 그것 역시 잘못된 생각이다. 영계에서는 시간이 없고 따라서 연령도 없기 때문이다. 다만 그들은 인간으로서 죽은 얼굴 모습을 그대로 지니고 있음에 지나지 않는다. 그 광경은 참으로 으스스한 기분 나쁜 광경이었다.

몇 십만, 몇 백만이라고 하는 영들은 일단이 되어 뒤에 뒤를 이어 어떤 방향으로 전진해간다. 만약 이들 영들에게 인간과 같은 육체가 있었다면 이 행진하는 발자국 소리는 기괴한 소리로 울려 퍼져서 공포를 일으켰을 것이다. 아직도 계속 영들은 꼬리를 이어 전진해 갔다. 그리고 목적지를 삼고 나가는 방향에는 하늘 꼭대기라도 닿을 듯한 높은 산이 서 있었다. 영들의 선두는 이제 그 높은 산의 중턱에 닿으려 하고 있다....... . 그러자 기묘한 일이 일어났다. 선두의 영들, 즉 높은 산 중턱에 이른 영들의 모습이 갑자기 씻은 듯이 없어지는 것이었다. 그것은 누구나 다 자기 눈을 의심하고 한 번쯤은 눈을 비비고 다시 보지 않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아직 시초에 지나지 않았다.

높은 산의 중턱에 이른 영들은 그 앞에 가던 자들과 똑같이 산중턱에 닿기만 하면 잇달아 그 모습이 사라지고 말았다. 물론 이 산에 영들을 집어 삼킬만한 큰 동굴이 그 입구를 벌리고 기다리고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이 영들의 집단 행진은 어떤 영의 단체가 영계의 다른 지역으로 자기들 단체의 거주 장소를 옮기고 있었던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렇다 하더라도 산 중턱에 닿기만 하면 사라지는 영들은 어떻게 된 영문이란 말인가?

이 이야기의 결론은 보류하고 다른 이야기를 좀 하기로 한다.

어떤 영이 강폭이 무한히 넓은 강가에 앉아서 강의 수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강은 영원한 태고 때부터 지녀온 모양 그대로 조용히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강 저쪽 기슭은 너무 멀어 그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중 그는 이런 생각이 퍼뜩 떠올랐다.

----- 이 강의 서쪽 기슭은 도대체 어디쯤에 있을까? 그 곳엔 무엇이 있을까? 그런 일들을 생각하며 수면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 때 그는 그 자신 속에서 무슨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는 알지 못하고 있었다.

----- 안개가 걷혔는가?

그는 잠깐 그렇게 생각했다. 그가 바라보고 있었던 수면은 조금씩 멀리까지 보이게 되고, 아득한 곳의 물이 흐르는 모양까지도 보이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침내 저편 건너 기슭도 보이고 다시 그 앞에 성곽 같은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성곽 앞에는 한 사람의 노인인 듯한 영---그 영은 땅에 닿을 정도의 긴 흰 수염을 기르고 있었다.---이 서서히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 얼굴은 윤곽만이 보일 뿐, 눈과 코도 없고 물론 표정 같은 것은 알 길이 없었다.

그는 생각했다. ---- 저 영은 누굴까? 만나보고 싶은데!

다음순간 그는 무한한 강폭이라고 생각했던 이 강을 건너 그 노인인 듯한 영의 눈앞에 서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했다.

영계는 광대무변하다. 이 세상에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몇 백만 년 동안이나 육체를 지닌 인간으로 죽어서 영계로 돌아온 영이 얼마나 많을까를 생각해 보면 가히 그 넓이를 짐작하고도 남을 것이다. 그러면 이 광대무변한 세계에서 살고 있는 영들이 그 공간에 대하여 어떠한 관념을 갖고 있는가 하는 불가사의한 일에 대해서 말해 보기로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들은 그토록 광대무변한 공간에 살고 있으면서도 공간이라는 관념을 전혀 갖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 인간 세계에서는 누구나 이상하게 생각하겠지만, 한편 곰곰이 생각해보면 실은 불가사의한 것이 아니라 영계에 사는 영의 입장으로서는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그들은 마음속으로 생각만 해도 어디에나 순식간에 자기가 마음먹은 곳으로 이동할 수가 있다. 이점은 강가에 서 있었던 영의 경우로 미루어 보더라도 충분히 이해가 가리라고 믿는다. 그가 노인의 영 앞에 서 있었던 것은 그의 마음이 노인을 만나고 싶어했기 때문이다. 다만 그렇게 생각했다는 것만으로도 그는 단숨에 무한한 거리를 날아 노인 앞에 나타날 수 있었던 것이다.

또 하나는 그들은 스스로가 희망하기만 한다면 견고한 바위이건 산이건 또는 벽이건 수목이건 무엇이고 간에 자유자재로 통과, 즉 투과(透過)할 수 있는 점이다. 또한 영계의 결혼에 관해 말했던 것처럼 남녀의 영이 한 몸이 되는 것을 보아도 알지만 그 속으로 들어가 있을 수도 있다.

주로 이 두 가지 이유로 해서 그들은 공간의 관념을 가질 필요가 없고 또한 가질 수도 없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역시 같은 이유로 해서 그들은 거리에 대한 관념도 없다. 왜냐하면 그들이 거리를 느끼는 일이 만약에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마음속에 생각하는 대상물에 대한 욕망이 적을 경우이다.

그 소망이 강력한 것이라면 그들은 순식간에 그 대상물과 같은 위치에 서게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일 영계에 거리라는 개념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영 스스로가 생각하고 있는 대상에 대한 열의의 다소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조금 전에 말하던 집단 행진을 하는 영의 단체는 이미 그 높은 산의 중턱을 뚫고 지나서 산너머에 나갔을 것이다.

               영계의 언어와 문자

“나는 일찍이 그토록 놀란 적이 없었다. 영계에서는 어찌하여 이런 일이 일어난단 말인가?” 영계 들어 온지 얼마 안 되는 어느 영이 놀랍다는 말투로 영계의 기이한 언어에 대한 그의 경험을 나에게 이야기한 적이 있다. 나는 그의 말을 그대로 옮김으로써 영계의 언어가 어떤 것인가를 논하는 전제로 삼기로 한다.

그는 다른 영---물론 그 보다 영계의 경험이 풍부한 영이었다.---과 그들이 각기 자기 속해있는 단체와는 다른 단체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야기를 나눈다고는 하지마는 그는 다만 선배가 되는 영의 말을 듣고 있는 편이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내가 방문한 단체의 수는 무척 많다. 그 가운데서 가장 기이하다고 느낀 단체가 하나 있었는데, 지금 나는 그 단체에 대해서 이야기하겠다.........” 선배격인 영은 이렇게 서두를 꺼냈다. 그런데 그의 말을 들은 것뿐으로도 갑자기 격렬한 충격을 느꼈다.

“...........그 단체는 우리 단체가 있는 곳에서 남쪽에 위치해 있었고, 그 단체에 속해 있는 영의 수는 우리 단체보다는 몇 십 배나 더 많았다. 또 비교적 최근에 생긴 단체로서 십만 년 이내의 것이었으며, 이를 먼 곳에서 바라보면 마치 하늘에 있는 성운(星雲)처럼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 단체에 속해있는 대부분의 영은 북유럽에서 시베리아에 걸친, 말하자면 지구의 북반구 지역에서 살고 있던 사람들이었다......... ”

쇼크는 무어라 이유를 꼬집어 말할 수도 없으나, 이러한 얘기 내용이 그에게 즉각 확신을 안겨 준다는 데에 있었다. 선배격인 영은 아직 그 단체의 일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얘기한 적인 없고, 영계의 일에 경험이 없는 그에게는 그런 내용의 일을 상상조차도 할 까닭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이해했다고 여겨지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는 등골이 오싹 해지는 것을 느끼면서 저도 모르게 상대편 영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고 한다. 그러나 상대편 영은 그의 심정은 아랑곳없다는 듯이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가 말한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았다.        
      
분명히 그 단체는 그가 “이미 이해한” 것처럼 남쪽 방향에 있었고, 그가 “이해했다”고 생각한 것은 모두가 그대로였다. 그러나 그 영이 또다시 기이하게 생각한 것은 이런 것들이 아니었다. 그 단체의 영들은 누구나 얼음집에 살고 있었으며, 얼음집은 그 단체가 있는 곳 도처에, 즉 산기슭과 중턱에도 그리고 강가나 들판에도 즐비하게 들어서 있었다. 거리를 이루고 얼음집의 추녀가 반듯하게 잇달아 늘어선 곳도 있었다. 게다가 이상스럽게도 이 얼음집의 내부는 말할 것도 없이 산기슭이나 강변이나 들판이나 거리가 모조리 작열하는 열기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이 뜨거운 열기도 그 단체의 영들에게는 조금도 괴로움을 주지 않는 모양이어서 그들은 모두가 시원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따라서 뜨겁다는 것은 이 단체를 방문하는 외부의 영들에게만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또 이 단체의 집 주변에 있는 나무나 산과 들에 있는 나무들도 한결같이 하늘을 찌를 듯이 거대하였고, 게다가 기괴한 모양을 하고 있어 도저히 나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그 뿐이랴, 더욱 기묘한 느낌이 든 것은......... .

선배의 영이 이렇게 이야기 하자, 그는 또 한번 강한 쇼크를 받았다. 그의 눈앞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얇은 공기의 막(幕)과 같은 것이 나타나 거기에 여러 가지 광경이 비쳐졌기 때문이다. 그 막에는 얼음집이 늘어섰고 기괴한 모양의 나무---그것은 아무리 보아도 수목이라고 볼 수 없는 별세계의 이상한 생물을 연상케 했다---도 비치었다. 그런가 했더니 비쳐진 것은 이것만이 아니었다. 그 단체의 영들은 공중을 자유자제로 날아다니기도 하고 또 기괴한 나무에도 달라붙는가 하면, 이번에는 나무도 또 영들과 마치 친구라도 되듯이 기괴한 모양의 가지를 흡사 사람이 손 놀리 듯 흔들며 장난치고 있었다...... .

영들은 아득히 먼 저 건너로 날아갔다가는 다시 막에서 뛰쳐나와 이쪽에 있는 그를 향해 날아오듯이 넓은 공간을 이리저리 날아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더욱 이상야릇한 것은 이들 영들이 공간을 날아다니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공간은 흡사 그것을 비쳐주고 잇는 엷은 막 속에 갇혀 있는 것처럼 한 장의 투명한 막으로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그의 숨 막히는 감동과 두근거리는 가슴 그리고 현기증조차 느끼면서 이 광경을 응시하고 있었으나, 이 광경의 불가사의한 것만이 그를 놀라게 한 것은 아니었다.

가장 큰 이유는 선배의 영이 아직 얘기도 하기 전에 그 얘기의 내용을 이해하였을 뿐 아니라, 이번에는 눈에 비치는 형상으로도 나타내 보인다는 것은 믿을 수 없는 사실이었다.

나는 이 영의 이야기에 속으로 미소를 금할 길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영계에 와서 아직 경력이 적은 그가 놀란 것은 당연한 일이긴 하지만, 실은 이러한 일들은 영계에서는 극히 예사로운 일이기 때문이었다. 얼굴을 마주보고 대하는 것만으로도 영과 영 사이에는 상년의 교류가 이루어진다는 것은 벌써 여러 번 말한 바 있다. 이런 것으로 미루어 생각하면, 인간들에게도 영이 말을 하는 경우에는 보다 더 쉽사리 상념의 교류가 잘 이루어지리라는 것은 짐작이 갈 것이다.

영계의 말에는 이승에서의 말과 다른 특이한 특징이 얼마든지 있으나, 그 중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무어라 해도 이승 사람들이 수천 마디를 떠벌이지 않으면 말할 수 없는 것을 영들은 겨우 몇 마디 아니면 몇 십 마디로 통화가 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매우 적은 말에 어마어마하게 많은 뜻을 내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같은 말을 쓰는 경우일지라도 그 음절(音節)을 어떻게 구분하느냐에 따라서 그 말의 몇 배나 되는 많은 뜻을 표현 할 수가 있고, 또한 자기의 마음에 있는 상념을 음절의 구분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따라서 표현에 나타나는 말 이상으로 몇 백배 아니 몇 천 배의 뜻을 담을 수가 있는 것이다.  

방금 얘기한 영의 경우도 실은 이런 사연을 아직 잘 몰랐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말하자면 선배의 영이 마음에 품고 있으면서 이제부터 얘기해 주려고 생각한 상념이 음절의 구분을 통해 나타났고, 그는 이것을 처음에는 내적인 시각으로 알았고 나중에는 외적인 시각으로 보았던 것이다. 영계의 언어에는 이 외에도 말 그 자체가 엷은 기체의 흔들림처럼 눈에 보이고, 또 그 “보이는 언어” 속에 이야기의 내용이 비치어 영상처럼 두둥실 떠서 보이기도 한다.

그 뿐 아니라 이 밖에 영계의 언어에 대해서 말해둘 특징은 다음과 같다.

그 하나는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대화를 할 수 있는 반면에 마음에 없으면 귓전에서 얘기를 해도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영계의 말은 인간의 말과 같아서 공기(단, 영계의 공기)를 타고 전달되어 상대방의 귀에 이르게 된다는 점이다. 이것은 영이 인간과 똑같이 귀와 입과 혀를 갖고 있는 이상 당연한 것이라 하겠다.

젊은 영이 늙은 영에게 아득한 저쪽에 있다고 하는 영계의 황금빛 연못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 연못은 너무 먼 곳에 있어서 그 곳을 찾아간 영들 중 돌아온 자는 아직 한 사란도 없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돌아온 길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혹은 그 연못이 다른 세계로 가는 통로라고 하니까요........ .”

이 금빛의 연못이란 영계에서는 널리 알려진 유명한 연못인데, 실제는 반 전설적인 것이다. 이 연못(해안의 높은 암벽으로 둘러싸인 곳에 있다.)은 황금빛 물결이 밀려왔다 밀려가는 매우 아름다운 곳이지만 자칫 한번 휩쓸려 들어가면 절대로 빠져 나올 수 없는 소용돌이가 굽이치고 있으며, 그 연못 주변에는 영들 스스로도 모르게 소용돌이 속으로 끌어 들이는 유혹의 바람이 괴상하게 불어온다고 한다.

젊은 영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연못을 다녀온 유일한 영이 꼭 한 분 있는데, 그 영은 여기에서 수천 억 킬로나 떨어진 단체에 있으며, 나는 일찌기 그를 찾아가 금빛 연못에 얘기를 들은바 있습니다......... .”

늙은 영---늙었다고는 하지만 실은 젊은 영보다 영계의 경험이 적으며, 불과 수 일전에 영계로 갓 들어온 영이므로 수백 년 전에 영계로 들어온 젊은 영 보다도 영계의 경험으로 말하면 젊은 편이다.---은 처음으로 듣는 연못 얘기를 열심히 귀담아 듣고 있었다. 그러나 얼마 안가서 이 늙은 영은 어쩐지 자기의 주의가 이야기 줄거리와는 다른 그 무엇인가에 쏠리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기 시작하였다. 그 다른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도 차차 알게 되었다.  
그것은 이야기 줄거리와는 관계없이 일어난 현상이었으나 젊은 영이 이야기하는 동안에 일어나는 현상으로, 그 말투 가운데에 일종의 리듬이라고나 할까 끊임없이 미묘한 변화와 억양을 반복하면서 이어가고 있는 점이었다. 그는 여기에 신경이 쏠리자 그때부터는 선배의 영(영계에서는 수백 년이나 먼저 영계에 들어온 젊은 영이 선배가 된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귓등으로 흘리고 그 리듬에만 정신을 쏟고 있었다. 말 속에는 흐르는 리듬이 높아졌다 낮아지고, 그런가 하면 강해졌다가 약해지기도 했으나 그 고저 강약의 폭에는 다양한 변화가 있을 뿐 아니라 이에 호응하는 것처럼 음색도 달라지는 것 같았다.    

그러는 사이에 늙은 영은 또 하나의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언어의 운율 속에 나타나는 미미한 리듬의 변화와는 별도로 말의 배열과 음절을 이어가는 격식에 무엇인가 나타나고 있다고 느낀 것이다. 그리고 음절에 있어서도 우, 오 등의 자주 뒤 딸아 나올 때와 이, 아 등이 나오는 두 가지 경우로 들리는 것 같았다. 늙은 영은 이 두 가지의 느낌, 즉 말의 리듬과 배열, 음정의 연결법에 마음이 쏠려 젊은 영이 이야기 하고 있는 내용에 대해선 반은 흘리고 들었다.

틀림없이 이 속에는 어떤 뜻이 숨겨져 있다! 늙은 영에게는 그러한 느낌이 점점 굳어져 가고 있었는데 급기야 다음 순간에 일어난 사태는 그의 이러한 공상을 단번에 날려 버리는 놀라움을 던져 주었다.

굉장한 진동과 함께 그가 서있는 지면이 두 쪽으로 갈라졌다. 그리고 그 갈라진 틈으로 그의 눈은 볼 수 있는 한계를 넘어 영계의 끝까지 삽시간에 뻗어 나갔다. 그 틈바구니에는 깊이를 전혀 알 수 없는 암흑의 심연이 깔려 있었다.

그는 기절할 정도로 놀랐으나 그의 놀라움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갈라진 틈에서 한 권의 두루마리 비슷한 것이 나타나 그의 발아래에 와서 멈추더니 스스로소리도 없이 풀리어 슬슬 펼쳐지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은 이처럼 큰 이변이 생겼는데도 불구하고 젊은 영은 전혀 모르고 있는 듯 여전히 아까부터 하던 이야기를 계속하고 있는 게 아닌가?  

그리고 그 두루마리에는 그 젊은 영이 인간계에 있었을 때의 일상의 기록과 이제까지 지내온 영계에서의 기록, 그리고 이제부터 그가 영계에 보낼 영원한 미래의 삶에 대한 기록 까지도 적혀 있었다.

인간의 감각은 영의 그것에 비하면 수천 배 아니 그 보다도 훨씬 더 둔하다. 그러므로 인간이 만약 영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인간에게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러나 영들 사이에서는 상대편의 말 속에 담겨 있는 말하는 사람의 의사, 감정, 지성의 전부가 뚜렷하게 눈에 보이듯이 비친다.

의지와 감정은 그 말의 미비한 리듬의 변화 속에, 지성은 말과 음절의 무의식적인 배열 속에 나타난다. 이것은 1만 킬로나 떨어진 곳에서 바늘 떨어지는 소리를 듣는 것처럼 희미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이지만 영은 그 소리를 들을 수가 있는 것이다.

또 영은 그 말을 자기 마음의 상태 그대로, 스스로는 의식하지 않더라도 소리 내어 이야기  한다. 거기에는 인간과 같이 여러 가지 번잡한 조심성이라든가 판단에 구애받을 것이 하나도 없다. 이러한 사실로도 대개 짐작이 가겠지만 영의 말은 전부 수백의 눈처럼 그의 본심 그대로이다. 그리고 그 본심 속의 어떠한 미세하며 미묘하고 희미한 것일지라도 그는 표현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능력과 인간으로서는 생각할 수 없는 영의 민감한 감수성으로 말미암아 듣는 이는 말하는 영의 전부를 알 수가 있다.

의지와 감성과 지성은 영의 경우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마음의 본성을 결정하는 전부이며, 마음의 본성이 결국은 그 인간이나 일생을 결정한다는 것에 생각이 미친다면 아까의 두루마리가 늙은 영 앞에 나타난 이유를 짐작하리라 믿는다. 그렇다. 늙은 영은 젊은 영이 이야기할 때, 이야기 내용을 듣는 것과는 다른 그의 마음 전부를 음성에서의 리듬의 변화와 음색 그리고 음절 및 말의 배열 속에서 느낄 수가 있었고, 다시 이것이 표상으로서 두루마리를 통해 젊은 영의 생애가 펼쳐진 것을 보았음에 지나지 않는다.

영계에 언어가 있다는 것으로 미루어 생각할 수 있듯이 문자도 또한 존재한다. 그러나 영계의 문자는 그 모양이나 사용하는 방법 등 여러 면에서 인간계의 문자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그 가장 큰 차이점은 영계의 문자에는 곡선이 많고 문장을 통한 전체적인 인상 또한 그렇다. 또 하나는 여러 가지 의미를 포함한 상징으로서의 숫자가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며, 역시 영계의 언어가 그러한 것처럼 영계의 문자도 인간계의 문자에 비하면 적은 수의 문자 속에 어마어마한 뜻이 담겨질 수 있다는 점이다.

영계의 글자는 복잡, 미묘, 정묘해서 지금 인간계로 돌아와 지금 이 수기를 쓰고 있는 나로서는 정확히 그 전부를 기억해 낼 수는 없으나, 그 글자가 품고 있는 의미라든가 사용 방법에 대한 예를 들어서 인간의 글자로 고쳐 본다면 다음과 같이 표현 된다.

영계의 상례로 처음에는 숫자가 적히고 다음에 문장이 씌어진다. 수자가 품고 있는 뜻은 퍽 넓으며, 수많은 복잡한 표시, 예를 들면 12, 25, ...... 104 등과 같은 것인데, 이 숫자가 문장 전체의 취지와 쓴 자가 누구인가, 언제 무엇 때문에 썼는가...... 등을 빠짐없이 나타낸다. 우리들은 여기에 적힌 11이라는 수자가 어는 정도의 많은 뜻을 내포하고 있는지 또는 얼마나 많은 뜻을 간직하고 있으랴 하고 생각하지만, 영계에서는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이 다음 항에 가서 설명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문장에 대한 것을 먼저 설명하기로 한다.

이 문장은 “마음의 상태(영의 상태를 말한다)가 양호할 때에 영과 상념의 교류를 한다. 이에 참가할 뜻이 있는가...... .” 라고 말하는 것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실은 이 문장 속에는 우리의 글자로 바꾼다면, 아마 한 권의 책이 될 정도로 많은 뜻이 포함되어 있으며, 이 문장을 읽은 영에게는 그것이 이해되는 것이다.

그 이유는 앞서 숫자 속에 많은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고 한거나 마찬가지여서 그 선의 굽은 각도, 씌어 있는 위치, 앞 글자와 다음 글자와의 간격, 글자의 크기와 경사(傾斜), 같은 글자라도 그 모양의 사소한 차이 등을 이용해서 영들은 많은 뜻을 담아 상대편에게 이를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에서 든 예문을 보더라도 어느 단체에 있는 어느 영이 어느 단체의 어느 영에게 보낸 문장인가, 또 상념의 교류를 하고 있는 영은 어디에 사는 어느 영인가, 그것은 언제 하는가, 상대편 영은 어떤 성격을 가진 영인가, 왜 글을 보내는가 등 당면한 용건이 모조리 담겨있다. 그러나 그것만이 아니라 문장을 쓴 영의 단체는 어디에 있고 얼마나 많은 영들이 있으며 또한 어떤 상태에 있는가, 그 단체에 속해있는 영의 개개의 성격은 어떠한가에 대해서 낱낱이 적혀 있는 셈이다.

이런 일은 인간계에서는 도저히 생각지도 못할 일이지만, 이 많은 뜻이 먼저 말한 글자의 곡선이 굽은 모양이라든가 글자의 배치 등으로 틀림없이 표현되어 있다. 물론 이 글자를 읽은 영은 이 글을 쓴 영의 얼굴 모습이 떠오를 뿐 아니라, 적혀 있는 글에 따라서는 이미지  조차도 그의 시계 속에 표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영계의 글자에는 곡선이 많다고 말한바 있지만, 내가 영계에서 최초로 본 글자는 어딘지 모르게 이집트의 신성(神聖) 문자라든가 그리이스 문자를 닮은 것 같았고, 아니면 어린아이가 아무 뜻도 모르고 그린 장난이 아닌가 하는 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글자와 글자 사이가 영결되어 있기도 하고 혹은 일정치 않는 제멋대로의 간격으로 띄어 썼거나, 곡선이 큰가하면 작기도 하고, 또 동일한 문자이면서도 왼쪽으로 뚝 튀어 나왔는가하면 반대로 오른쪽이 불룩한 것 같이 보였다. 또 곡선의 굽어진 품은 하나도 같은 것이 없어서 이것 역시 그 속에 많은 뜻이 내포되어 있다는 것을 몰랐던 나로서는 그저 걸맞지 않는 인상만을 받았다고 기억한다.

또한 영계의 문자가 이집트의 신성 문자와 그리이스의 문자와 유사하다는 인상을 풍기는 이유는 아주 먼 태고적, 아직 인류가 문자를 갖지 않았던 옛날에 그들이 영계의 문자를 빌려 썼다고 하니까, 그 흔적이 신성 문자와 같은 고대문자에 남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영계의 글자가 영계의 말과 같이 많은 뜻을 담을 수 있는 방법은 역시 언어의 경우와 비슷하다. 그리고 또 표현상의 뜻으로부터 더욱 깊은 곳까지 이르는 영의 감정이나 의지나 지성까지도 표현하기 위한 것임은 말의 경우와 같은 것이다. 즉 곡선이나 글자의 모양, 배치로써 글자의 표현에 나타난 뜻 이상으로 뜻을 표현함과 동시에 문장 속에 포함되어 있는 리듬의 흐름(영계의 글자에서는 음악의 리듬처럼 음으로써 귀에 들리는 경우도 있다. 즉 글자가 소리를 낸다)이나 글자의 선택 방법에서 틀림없이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기 마련인 것이다.

나는 영계에 갓 들어와 아직 경력이 많지 않는 영을 상대로 다른 영이 글자에 대해서 설명하는 광경을 본 적이 있다.

“이 글자를 읽어 보라” 이렇게 말하면서 그 영은 새로 온 영에게 작은 종이쪽지를 주는 것이었다. 새로운 영은 영계의 글자는 물론 인간 세계에 있었을 시절에도 글자를 읽지 못하는 문맹이라고 변명하였다. 그런데 그는 받은 종이쪽지를 들여다보고는 눈이 휘둥그렇게 떴다.

“내가 글을 읽다니, 이것이 도대체 어찌 된 영문인가?” 그러자 고참격인 영은 그 종이쪽지를 일단 도로 거두어 앞에 놓고는 그 위에 자기의 손을 얹은 다음 다시 그 종이를 새로 온 영에게 주었다.

----- 그래서 이제는 영의 글자도 쓸 수가 있다.-----
아닌게 아니라 새로 온 영은 종이쪽지에 씌어진 것을 이렇게 읽을 수가 있었다. 다음엔 자기도 똑같이 종이쪽지 위에 손을 얹었다. 그러자 손은 자유자제로 종이쪽지 위에서 움직였다. 물론 그의 경우에도 글자는 씌어져 있었다.

영계의 글자는 굳이 배우지 않아도 자유롭게 읽을 수 있고 자유롭게 쓸 수 있다. 글자를 쓰는 경우 영들은 손을 종이 위 공간에 가져가 자유자제로 그리고 무의식중에 움직인다. 그러면 종이에 그들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 거침없이 술술 적히는 것이다. 그 글자에는 그들의 생각은 말할 것도 없고 감정의 작은 움직임까지도 글씨체나 곡선의 변화를 타고 그대로 표현된다.

마지막으로 덧붙여 말해 두지 않으면 안 될 것은 인간계에서 쓰고 있는 말과 글자가 영계에도 있다는 것이다. 이 인간계의 말과 글자 외에도 몇 백만이라고 하는 말과 글자가 있으니, 이것은 인간계의 말이나 글자로는 표현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영계에서는 인간계에 없는 사물이나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복잡하고 미묘한 영들의 감각이나 마음의 움직임에 있어서 인간계의 말과 글자로는 마땅한 표현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언어와 문자만을 보더라도 인간계는 영계를 도저히 따를 수 없는 저급한 세계라고 할 수밖에 없다.

                 영계에서 만난 역사상의 인물

나는 영계에서 많은 역사상의 인물과, 세상에 있을 때에는 알지도 못했던 이방인들, 즉 아시아 사람들과 만날 기회가 많았다. 그리고 그들과 자유롭게 담화를 할 수가 있었다. 인간 세계에서는 서로 말이 달라서 이야기를 나눌 수가 없었던 사람들과도 영계에서는 거리낌 없이 마음대로 이야기 할 수 있다.

그 중에는 몇 시간에서 며칠에 걸쳐 이야기한 것 등 여러 가지가 있는데, 특히 나에게 강렬한 인상을 준 몇 가지를 소개하기로 한다.

나는 어떤 영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그 내용은 현대의 종교 관계자들이 영에 대해서 너무나도 인식이 부족하다는 이야기였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렇군 이제 당신의 말을 듣고 보니 현대의 교회의 관계자들은 고대 교회에서 볼 수 있었던 탁 트인 마음으로 대오각성한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았소. 종교는 원래 아시아에서 일어나 점차 여러 나라로 전파되었으니 아시아에서는 아직도 깨달은 사람이 많을 것이오."

나도 영에 대한 것을 그에게 말해 주었다. 그는 내가 한 이야기를 듣자 매우 기뻐하면서 “당신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영적인 뜻이 담겨 있소. 어찌 현대의 종교 관계자들이 그 뜻을 알리요? 나에게는 석연치 않은 점이 많소.”하고 머리를 흔들어 가며 탄식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말을 이었다.

“영계와 영에 대한 일을 인간 세계에 알려야 되겠소. 이것 말고는 세상을 구할 길이 없소.” 이야기하는 도중에 다른 영들이 끼어 들어 엉뚱한 소리를 주장하기도 했으나 그는 일체 개의치 않고 이렇게 말을 이었다.

“엉뚱한 말을 하는 영도 많지만 별로 이상히 여길 건 없소. 이들은 육체적 생애를 보내고 있었을 때에 학자나 종교 관계자들로부터 잘못 배워 그릇된 생각에 젖은 사람들이오. 인간 세계에 퍼지고 있는 그릇된 생각을 일소하지 않고서는 그들로 하여금 진리를 깨닫게 하기는 어려우며, 모든 현대의 학자와 종교관계자들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또한 배움이 부족한 것이오.”

<역자 주> 스웨덴브로그는 그의 생전에 사람들에게 역사상의 어떤 인물과도 영계에서 자유롭게 교신할 수 있다고 공언(公言)했다. 그리고 또 요구하는 대로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실지로 해 보였기 때문에, 당시 온 유럽에서 불가사의한 인물이요, 영매로서 유명했다.

나는 그의 말에 일일이 맞장구를 쳤으나 이상하게 여긴 것은 그의 말투에서 어딘가 모르게 아름다운 라틴아가 섞여 있음을 느꼈던 것이다. 그 후의 대화에서도 로마의 시이져에 관한 일을 가끔 비쳤고 또 그는 자객 때문에 암살당했다고 밝혔다. 나는 그의 생김새, 언어, 이야기의 내용 및 태도로 보아 그가 키케로(Cicero. B.C 106-43. 로마의 웅변가, 정치가, 철학자)였으리라 생각했다.

나는 이 밖에도 고대 사람들과 이야기한 적이 있다. 내가 서 있는 곳에서 정면으로 멀리 떨어진 위치에 있었는데, 서로 얼굴을 마주 보는 것만으로도 서로의 생각을 전달할 수 있었다. 그들의 생각이 훌륭했던 것은 그들과 얼굴을 마주쳤을 때 그들의 머리 위에 나타난 아름다운 표상만으로도 짐작할 수 있었다. 이 표상들은 그들이 나에게 말하려는 뜻을 그들의 마음을 통해 시각으로 비치게 된 형태로 나타낸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또 성질은 비록 이성적이라고 할 수는 없으나 순진한 이방인(<역자 주> 중세기에 있어서는 유럽인은 두 인종 기독교와 그 밖의 이방인으로 나누어 생각했다.)도 만난 적이 있다. 기독교인은 아니지만 유럽의 신화에서 골라 슬픈 이야기를 들려주었더니 그는 비탄에 빠져 고통을 참을 길이 없는 표정으로 넋을 잃다시피 되었다. 그는 무지했지만 그 바탕은 순진했다.

나는 어느 날 멀리서 들려오는 합창 소리를 들었다. 그 소리에는 암양(牡羊), 기장떡, 흑단(黑檀)의 비수 등이 보였다. 물론 마음의 눈으로 본 것이다. 그와 비슷한 동시에 하늘에 떠있는 누각도 심안(心眼)을 통해 나타났다. 이러한 표상으로 보아 합창의 주인공은 중국인이라고 깨달았다.

이윽고 그들이 가까이 오자 짐작했던 대로 일단의 중국인 영이었다. 그들은 나를 보자 마음속에 약간 혐오감을 느낀 것 같았으며,, 나 자신도 그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 혐오감은 그들이 인간 세계에 있었을 당시 그리스도 교도란 그들보다 착하지 않는 생활을 한다고 들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들과 중국에 관한 일과 아시아 지역의 여러 나라에 관한 일을 이모저모로 이야기했지만 여기서는 생략하기로 한다.

이상으로 소개한 것 외에도 나는 영계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 중에는 역사상 유명했던 사람이며 그의 행적과 인격을 알고 있던 나로서는 곧 그가 누구인가를 알 수 있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또한 내가 인간계에서 교제를 하였거나 얼굴을 잘 아는 사람들로서 영계에서 만난 예는 수천 건에 달할 정도로 많았다. 그들은 영계에 와서 얼굴이 달라진 자도 많았고 또 반대로 인간계에 있을 당시와 별로 변하지 않은 사람도 많았다. 얼굴 모습이 변한 영들은 인간 세계에 있었을 때에 세상의 예의나 관습 혹은 이해타산이나 모략 따위로 자신의 이녁의 본심을 속이면서 거짓 탈을 쓰고 있었던 자들이다.

나는 영계에서 성운(星雲)의 단체라고 불리 우는 단체를 방문하여 태고적 사람의 영과 만난 적이 있다. 이 단체는 영계 안에서도 아주 멀리 떨어져 있었고 다른 단체와 현저하게 다른 특징을 지니고 있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이 단체의 영들은 인간이 인간으로 진화하는 중간 과정인 아득한 태고적 영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이 단체를 성운의 단체라고 부르는 이유는 영들의 영시력(靈視力)으로도 확실히 볼 수 없을 만큼 멀리 떨어진 곳에 있어서, 아무리 바라보아도 하나의 구름처럼 공중에 떠있는 희미한 덩어리밖에는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단체의 중심령은 태고의 영들 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영이며, 전 영계를 통해서 가장 오래된 영이기 때문에 영계에 관한 것이라면 모든 일에 통달해 있고, 특히 영계에서 일어난 과거의 일도 모조리 그의 기억 속에 새겨져 있는 것이다. 게다가 이 영의 영적 능력의 우수성은 영계 안에 있는 모든 영들을 상대로 그가 원하기만 한다면 일시에 상념의 교류를 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내가 방문했을 때 그는 성운의 단체에 있는 여러 영들과 담소하고 있었다. 내가 찾아가자 둘러싼 여러 영들을 물러서게 하고 나를 곁으로 가까이 불렀다. 그를 둘러싸고 있던 영들은 모두가 나를 환영하는 뜻으로 나에게 얼굴을 돌렸으나, 그 얼굴에는 한결같이 깨끗한 마음씨와 순박한 표정이 나타나 있었으며, 마치 동심이 그대로 얼굴이 되었을 것 같은 부드러움과 평화스러운 인상을 주었다.

“그대는 현대의 영이렸다. 그렇다면 내가 영계에서 경험한 옛일을 이야기 해주지.” 그는 내가 그에게 들어보고자 했던 일을 앞질러 짐작하고 말문을 열었다. 그가 영계에 들어온 후의 몇 백 만 년 전부터의 일을 여러 가지 들려주었는데 그 중에서 두세 가지만 골라 적어보기로 한다.

어느 때---그것은 몇 백 만년전의 일이었는지, 몇 십 만년전의 일이었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다고 했다.---그는 그림자처럼 영계를 방황하는 몇 사람의 영을 본적이 있었다. 이들의 몰골은 보통 영들과 달랐고. 그렇게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영이 몇 사람씩 무리를 지어 있다는 것이 그의 주의를 끌었다. 그래서 그는 이 영들을 눈여겨보고 있었다. 그러자 그에게는 이 영들이 일시적으로 육체를 이탈하여 인간계를 떠났고, 게다가 정령계에서도 얼마 있지 않고---아마도 전혀 있지 않았다 해도 좋을 것이다. 그저 정령계를 지나쳤을 뿐인 모습이었다고 그는 말했다.---불쑥 영계에 들어온 자들이라는 것을 알았다. 더구나 그들은 대홍수를 만나 죽을 영들임을 알았다.

과연 그의 눈은 정확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 몇 백만이라는 인간의 영이 한꺼번에 영계로 쏟아져 들어왔던 것이다. 그리고 이 영들 가운데에는 아직 인간계에 있었을 때의 일을 기억하고 있는 자가 있어 그에게 물어 보았다. 그리하여 그들이 이집트의 나일 강이 범람하여 밭과 집이 다 떠내려가 숨진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처음으로 영계에 무리지어 나타난 영들은 특히 영적인 눈이 빨리 열린 자들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홍수로 인한 죽음에 앞서 미리 이를 예감하고 그들은 육체를 이탈해서 영계로 나타난 자들이다.”

그는 다시 이야기를 계속해서 인간계와 영계의 관계를 과거에는 황금시대, 백은(白銀)시대, 청동시대가 있었다고 말하고 현재는 철시대(鐵時代)로 들어갔다고 했다. “그 이상한 무리 영들처럼 일어난 현상은 근래에 와서 자취를 감추었다. 이는 철시대이기 때문이다. 황금 시대에는 물론이거 과거의 백은 시대만 해도 가끔 일어났던 일이었다...,... .”

황금시대니 백은시대니 하는 말을 처음 듣는 나로서는 그 뜻을 전혀 알 수 없었으나, 그는 이렇게 설명해 주었다, 즉-----

과거 특히 태고의 인간이 아직 자연, 그대로인 마음의 소유자였을 때는 그들의 마음은 우주의 일을 한결같이 곧은 마음으로 순수하게 받아들이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태고의 인간들의 마음은 영계나 영의 일에 대해서 근래의 사람들 보다 훨씬 트여 있었다. 쉽게 말하자면 태고의 사람들은 영적인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시대가 흐름에 따라 사람들의 관심은 더욱 세속적인 일이나 물질적인 일, 그리고 외면적인 지식과 학문 따위, 즉 영들의 말을 빌리면 “정도가 낮은”일에 쏠리었고 그로 말미암아 영계의 일과는 점차 멀어지게 되었다.

영계와 인간계의 관계는 태고로 갈수록 긴밀한 것이었으나, 시대의 경과에 따라 소연해지고 현재에 이르러선 전혀 관계가 없는 양 따로따로 떨어져 버렸다. 그리고 인간들은 영이나 영계조차 깨닫지를 못하게 되었다. 이런 영유로 해서 태고시대를 황금시대 그 다음을 백은시대, 그리고 청동시대, 철시대라고 구분하여 부른다는 것이다. 이것은 영계에 새로 들어오는 영들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면 시대의 흐름에 따라 영적인 각성의 정도가 뒤떨어져 그들이 영적인 각성을 터득하는 데 필요 이상의 시간이 걸리는 것으로도 알 수가 있다.

나는 그의 설명과 내가 앞서 설명한 키케로의 이야기에는 서로 공통되는 그 무엇이 있음을 깨달았다. 그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그 무리지은 영들은 인간 시절에 이미 영적으로 상당한 경지에까지 눈떴던 자들이며, 따라서 그들 자신의 죽음을 미리 알았고 또한 죽기 전에 그 육체를 벗어나 영계로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이다. (계속, 다음은 지하의 영계는 지옥, 어떤 영계로 가는가. 입니다.)      
      

              四次元의 世界13.의 “영계의 手記” / 스웨덴보르그 저 / 청화 (1984)  

셀라맛 가준Selamat Gajun(시리우스 말로 하나가 되세요)! 셀라맛 카시자람Selamat Kasijaram(사랑과 기쁨 속에서 축복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