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교령술(交靈術)    

여기서 사람들의 관심사인 교령술의 비법과 나 자신이 사람들의 요청으로 실시한 교령술중에서 몇 가지를 예로 들어보기로 한다. 먼저 교령술이란 무엇인가 그 비밀의 눈을 열어 보기로 한다.

교령술이란 말할 나위도 없이 사자(死者)의 영과 교신함으로써 사자만이 알고 있는 사실을 받아 듣고 이것을 세상 사람들에게 전해주는 술법을 말하며, 이것을 행하는 영매(靈媒)라고 일컫는 사람들(극히 적은 수이지만)은 다 같이 내가 말하는 “죽음의 기술”을 지닌 사람들이다.

한마디로 교령술이라고 하지만 이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그 하나는 영이 영매로 신(神)지펴서 이루어진다고 하는 것, 또 하나는 영매의 영이 사자의 영과 교류하여 알게 된 사항을 영매가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다.

전자의 경우, 교령술을 실시하는 영매는 죽음의 상태에서 자신의 영을 육체로부터 벗어나게 하여 교신의 상대방 영을 지가의 육체로 불러들인다. 이렇게 함으로써 사자의 영은 영매의 육체를 빌리는 형식으로 그의 입을 통하여 이야기하거나, 손을 빌어 글을 쓰거나(<역자 주> 자동필기 현상이라고 부른다.)하여 사람들과 통신을 하게 된다. 이 경우에 영매는 그 얼굴 모양이나 목소리나 말투까지도 사자의 영의 생전의 모습과 같은 특징을 띠게 된다.

이것이 사람들이 말하는 소위 “신 지핀(빙의: 憑依)”것으로 강렬한 인상을 주며, 경우에 따라서는 어떤 공포감을 갖게 하기도 한다. 이 방법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생생한 교령 현상을 눈앞에 펼쳐 보여 영이나 영계를 직접 목격하는 실감을 주기 때문에 매우 강렬한 인상을 던져 주지만, 반대로 영매로서는 매우 위험천만인 방법이기도 하다.

영매에겐 신 지핀 영이 교령 술이 끝남 뒤에도 그 육체에서 물러갈 생각을 않을 때는 여기에 비로소 영매의 영과의 사이에는 맹렬한 투쟁이 벌어진다. 영매의 영을 대신하여 교령술 대상이 되었던 영이 그 육체에 눌러 앉기라도 한다면 영매는 인간으로서는 죽어버리고 그 육체는 다른 인격을 지닌 채 살아가는 것이다. 또 그렇게까지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두 영 사이에 벌어지는 사투로 말미암아 영매는 그로부터 정신 착란증을 일으키거나 얼빠진 바보처럼 폐인이 되는 일도 많다.

내가 보여 준 교령술은 이 방법이 아니라 제2의 방법이었다. 이 방법도 역시 죽음의 상태로 자신을 빠져들게 함으로써 이루어진다는 점에선 같으나, 다른 점은 이 방법에서는 자신의 육체를 이탈한 영으로 하여금 상대방 영과 교신하여 그 결과를 영매 자신의 영과 육체에 의해서 사람들에게 전달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상대방의 영에게 영매가 육체를 빌려주는 것이 아니니까 위험할 것은 없다.    

그러면 내 자신이 실시한 교령술로서 비교적 세상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진 것을 소개하고, 그것을 실제에 있어 어떻게 실시했는가를 기술하기로 한다.

그 하나는 나의 모국인 스웨덴의 여왕의 요청을 받아 여왕을 비롯하여 쟁쟁한 신하들이 성황을 이룬 가운데 실시되었다. 여왕께서는 그때까지 나에 관한 소문을 듣고 계셨지만, 여왕 어전에서 교령술을 직접 실현하기 전까지는 사실 교령술에 대해 회의를 느끼고 계셨던 모양이다. 그래서 여왕께서는 반쯤은 교령 술을 시험해 보겠다는 생각과 반은 이 교령술의 대상이 된 고인의 알려지지 않는 덕을 신하들 앞에 영매인 나의 입을 빌려 발표해 보려는 의도에서 교령 술을 행하도록 명령했다는 것을 나는 나중에서야 알았다.

의도야 어쩌든 간에 여왕은 교령술을 행하기에 앞서 나에게 약 10년 전에 세상을 떠난 어떤 장군에 관한 일을 알고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런 장군의 있었는지조차도 몰랐으므로 모른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여왕께서는 그렇다면 아주 잘 됐다고 말씀하시며 장군의 이름만을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지시하셨다.

“나는 그 사람이 죽은 후 그가 나에게 남긴 유서를 받았소. 하지만 오늘날까지 공개하지 않았고 아무에게도 유서를 받았다는 사실조차 이야기를 하지 않았소. 왜냐하면 관계자들이 생존해 있었고 그도 또한 유서에서 공표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기 때문이요. 그러나 이제 그 관계자들이 한 사람도 남이 있지 않으니 공표해도 괜찮으리라 믿소. 그러므로 그대는 죽은 사람의 영을 만나서 그 유서의 내용을 들어 본 뒤 여기서 여러 대신들에게 발표하도록 하오”

나는 나 자신의 육체에 “죽음의 기술”을 베풀어 육체를 죽음의 상태로 몰아넣었다. 이윽고 영이 눈을 떴다. 나의 영은 이름밖에 모르는 장군을 허허 막막한 영계에서 찾아내기 위한 첫 수단을 강구코자 여왕의 육체 안에 있는 영을 불러 보았다. 물론 여왕은 이것을 알 까닭이 없었다. 만일 여왕이 교령 술에 대하여 깊은 이해가 있었다거나 보통사람보다 훨씬 민감한 사람이었다면 이 순간(그것은 극히 짧은 시간이었지만) 희미하나마 어떤 감촉을 느꼈을 것이다.

여왕의 영으로부터는 아무런 단서가 될 만한 것을 얻지 못했다. 다만 알아낸 것은 장군이 덕이 높은 사람이며, 용감한 군인이었다는 생전의 얼굴 모습이 희미하게 머리에 떠올랐을 뿐이었다.

나의 영은 이 얼마 안 되는 그리고 막연한 단서를 간직한 채 영계로 들어갔다. 그러나 있을까 말까한 사소한 지식만으로 광대무변한 영계에서 장군의 영을 찾기란 불가능한 일이라 생각되었다. 나의 어슴푸레한 의식은 나의 영이 어쩔 줄을 몰라 하고 이리 저리 궁리하고 있음을 느꼈다. 그러나 이윽고 나의 영은 영계의 어느 방향을 향해 이동하고 있음을 알아 차렸다. 그리하여 나의 영은 영계의 어떤 단체 안에서 나의 영 쪽으로 누구를 기다리는 듯한 얼굴로 목을 내밀고 있는 하나의 영을 발견했다.

나의 영은 그에게 물어 보았다. “당신은 이승에 있을 때 스웨덴이라는 나라의 장군이 아니었소?”

그의 표정에는 다소나마 반응이 있었다. “인간의 시절의 일은 자세히 기억 못하오. 다만 붉은 빛이 많은 곳(싸움터란 뜻)에 자주 드나든 기억이 약간 남아 있소.” 그 후 그는 조금씩 기억을 되살려 나의 물음에 대답해 주었다.

나는 무의식적인 죽음의 상태로부터 평상시로 돌아와 여왕에게 말했다. 유서의 내용은 이 장군이 출전한 어느 전쟁터에서 일어난 일에 관한 것이었다. 여왕은 나의 대답이 세밀한 곳까지 정확히 밝혀내는 것을 듣자 몹시 놀라며 압도당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참 이상한 사람도 다 보겠다는 듯이 묵묵히 나의 얼굴을 주시하고 계셨다. 잠시 후 여왕은 감탄조로 한 마디 말씀 하셨다. “이 일은 나와 죽은 장군 이외에는 아무도 몰랐던 사실이었는데.......... .”

또 하나의 예는, 의뢰해 온 사람이 네덜란드의 외교관 미망인이었으므로 나의 이름이 네덜란드에까지 알려지게 된 사건이었다. 특히 교령술에서 취급할만한 큰 사건은 아니었기 때문에 간단히 그 줄거리만 적기로 한다.

그것은 1761년의 일이다. 그녀는 당시 스웨덴의 수도에 주재하고 있던 네덜란드 대사의 미망인이었다. 그녀는 남편이 죽은 뒤 귀금속 세공인으로부터 대사가 생전에 만들게 했던 값진 황금 그릇의 대금 지불을 요구받았다. 그녀는 남편이 그 돈을 지불했으리라 믿고 있었지만 영수증을 찾을 수 없어 난처하게 되었다.

영계의 남편과 교신하여 지불 여부와 지불했다면 영수증을 어디에 간직해 두었는지 알려 달라는 것이 의뢰의 요지였다.

나는 영계에 잇는 그녀의 남편과 교신한 결과 그 대금은 7개월 전에 치러졌으며, 영수증은 옷장서랍에 간직했다는 것을 알아내었다. 나는 곧 그녀에게 알려주었다. 그러나 그녀는 옷장은 이미 샅샅이 뒤졌으나 영수증은 찾지 못했다고 하는 것이었다. 나는 옷장에는 서랍 뒤켠에 비밀 장치가 붙어있어 그 곳에는 특히 중요한 편지 등이 들어 있으며, 바로 그 안에 영수증도 들어 있다고 가르쳐 주었다. 그녀는 옷장을 다시 찾아본 결과 비밀 장치를 발견했으며, 7개월 전의 영수증을 찾아낼 수가 있었다.

               고텐버어그에서 본 스톡홀름의 화재

나는 그 날 영국으로부터 고텐버어그(스웨덴 서부에 있는 도시)로 왔다. 왜냐하면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서였으나 그 날 밤은 친구 집에서 쉬고 이튿날 그의 친구와 함께 회의에 참석하기로 되여 있었다.

친구와 점심 식사를 들고 있을 때, 나는 의식적으로 가끔 행하는 “죽음의 상태“로 빠져들 때와 비슷한 느낌이 나도 모르게 일어나는 듯해서 놀랐다. 나의 모습이 친구에게도 이상스럽게 보였던 모양인지 친구는 의아스런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어찌된 일이지? 갑자기 기분이 언짢은가?” 나는 내 자신이 무어라고 대답했는지 기억이 흐리다. 아마 대답을 할 상태가 아니었을 것이다.

나중에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내가 “........ 음.........불이 났군........ . 불이 보인다....... .” 라고 중얼거리고 다시 이어서 “스톡홀름에, 스톡홀름에........ .”라고 말한 뒤 정신을 잃었으며,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조차도 알 수 없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나는 흐려진 의식 속에서 한 엷은 막을 통해서 그 건너편에 무엇인가 빨간 것이 보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내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태에 있었다. 마치 마법에 걸려 빗자루라도 타고 하늘을 날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는데, 다음 순간에 나는 파도에 일렁이는 바다 위를 작은 배에 타고 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나 자신이 어디에 있으며, 무엇을 하고 있는지 또 주변에 무엇이 있는가를 확인해 보고 싶은 생각으로 악몽 속을 헤매고 있었다.

하지만 나의 의식은 점점 깊은 심연 속으로 빠져 들어갈 뿐이어서 마음은 공포에 사로 잡혔다. 소리를 질러 도움을 청하려고 했으나 나의 목소리는 이미 몇 만 년 전에 말라서 아무리 소리를 지르려 해도 소용없다고 누군가가 말해 주는 것 같았다. 나는 이 으스스한 의식 속에서 마침내 절망 속에 빠져 들어가는 내 몸을 어찌할 수 없다고 단념했다.

그러나 절망 속에 몸을 던지자마자 어찌된 영문이지 오히려 마음의 평정을 되찾은 나를 발견했다. 그리고 나의 고향인 스톡홀름의 거리가 눈앞에 보였다. 거리는 붉은 빛으로 뒤덮여 있었다. 화재가 난 것이었다. 불은 거리의 서쪽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때마침 불어온 강풍을 타고 불길은 차츰 시의 동쪽으로 번져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사람들이 갈팡질팡 허둥대는 광경도 보였다.

나는 내가 사는 집도 타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고 걱정했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나로서는 다만 그것을 구경만 하는 수밖에는 다른 도리가 있을 리 없다는 것을 나 스스로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이 참을 수 없는 고통에 시달리면서 보고 있는 동안에도 불은 점점 번져갔다. 거리에는 갈팡질팡 사람들이 더 늘어나고, 그 표정도 한층 심각해짐을 알 수 있었다.

내가 이 화재 사건을 얼마 동안이나 보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불은 다행히도 나의 집에서 셋째 번 집까지 와서 멎었다.

내가 정신을 차려보니 친구 집 침대 위에 뉘어져 있었다. 그리고 몸이 싸늘하게 식어 있었으므로 깜짝 놀랐다. 눈을 뜨자 친구와 그의 가족들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의식을 되찾아 조금 전에 본 화재 광경을 친구에게 들려주었다. 보통 때라면 친구는 이상한 꿈을 꾸었으려니 하고 웃어 넘겼을 터이지만, 이 때의 친구의 얼굴에는 무언가 무서운 것을 대하는 듯한 표정이 서리어 있었으므로, 그 표정을 쳐다본 내가 오히려 놀래어 등골이 오싹 해지는 것을 느꼈다. 지금도 나는 그것을 기억하고 있다.

나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네. 불은 우리 집에서 세 채 떨어진 곳에서 꺼졌으니까”라고 말하고 억지로 웃음을 띠어 친구의 기분을 풀어주려고 했다. 하지만 내가 이렇게 이야기 한 이유를 그 친구가 알 턱이 없었다.

고텐버어그 시장이 스톡홀름으로 사람을 보내서 화재에 관한 소식을 들은 것은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나서였다. 그 보고서에 의하면 그 큰 화재 사건은 내가 바로 친구와 점심을 나누던 그 시각에, 내가 화재를 느꼈을 그 시각에 일어났다. 그리고 내가 본 것처럼 시의 서쪽에서 발화하여 내가 본 그대로 번져서 동쪽으로 퍼져갔다. 또한 내 집에서 세 집 건너에까지 불길이 번졌으나 다행히 불길이 가라앉아 피해를 면했다. 화재가 진화된 시간도 내가 본 시간과 일치했다.

나는 그럼 어떻게 해서 그처럼 자연스럽게 “죽음의 상태”가 일어났으며, 또한 어떻게 스톡홀름의 화재가 그토록 상세히 보였는지 당시로서는 알 수가 없었고 지금도 분명히 알았다고는 할 수 없는 형편이다. 단지 현재의 내가 알고 있는 영계의 지식으로 판단한다면, 나의 영은 고텐버어그에 두고 온 육체를 벗어나 스톡홀름까지 가서 그곳에서 불구경을 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러나 내가 경험한 바에 의하면 영에게는 그렇게 멀리 육체와 떨어진 상태로서는 자연계에 일어난 일을 영의 눈으로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의 영은 그때 스톡홀름의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어떤 인간의 육체 속으로 들어가 그 사람의 눈을 빌어 불을 보았다고 생각되지만, 그 진상은 지금 나로서는 더는 알 길이 없다.

<역자 주> 이 이야기는 당시의 온 유럽에 파다하게 알려진 유명한 이야기이며, 독일의 철학자 칸트(스웨덴보르그와 같은 시대의 사람)가 스웨덴보르그의 불가사의한 능력의 실례로서 들고 있다. 또한 칸트는 스웨덴보르그에 관해서 책을 낸바 있다(머리말 참조).

               영계와 이승은 한 세계 속의 두 부분

영에 관한 일이나 영계에 관한 것을, 나는 나 자신이 보고 온 영의 세계와 사후(死後)의 세계를 통해 거의 이 수기에 수록했다. 나는 이 수기를 끝맺는 단계에서 영계와 이승, 즉 자연계와 관계 그리고 영과 인간과의 관계가 어떻게 되어 있는 가에 대해서 적어 보기로 한다.

나 자신으로 본다면 이 수기 전부가 이 세상에 남기고 싶은 유서가 되겠지만, 그 중에서 각별히 중요한 대목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이제부터 내가 적어나갈 영 또는 영계와, 인간 또는 이승과의 관계에 대한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이제 저술한 것은 모두가 인류 역사상 아직까지 아무도 밝히지 못했던 것임을 밝혀둔다.

               영계와 이승과의 관계

영계와 이승, 즉 자연계와 사이에는 상응(相應)의 원리라는 것이 있어, 영계에는 이승에 있는 모든 것이 상대적으로 갖추어져 있다. 차이가 있다면 물질적인 형태를 지니지 않았다는 것뿐이다. 그라고 이승에는 없는 것도 영계에는 존재하고 있다. 영계와 이승의 공간 그리고 위치에 관한 상관관계에 대해서는 앞에서도 말한 바 있다. 나는 여기서 영계와 이승의 관계에 대해서 더욱 본질적으로 파고 들어가기로 한다.

영계와 이승은 별개의 세계이지만, 한 동전닢 표리(表裏)와도 같이 뗄레야 뗄 수가 없이 밀착해 있다는 것을 밝힌바 있다. 그러나 그 말을 좀더 정확히 말한다면 다음과 같이 된다.

영계와 이승과는 실은 별개의 세계가 아니라 하나의 세계이다. 그리고 영계와 이승은 이 두 개를 포함한 크나큰 하나의 세계의 두 다른 부분이다....... .

영계와 이승은 따로따로 떨어진 두 세계가 아니라 하나의 큰 세계 속에 있는 다른 부분이다.---이리하여 다른 부분에 불과한 양자 사이에는 여러 가지 면에서 전혀 별도의 세계라고 밖에는 생각되지 않는 차이가 있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끝내 하나의 세계의 두 부분에 지나지 않는 증거가 있다. 그것은 영계와 이승 사이에는 우리가 깨닫지 못할 따름이지, 실은 매우 긴밀한 관계가 있는 것이다. 이 관계를 몇 번이고 이야기한 동전의 표리의 비유를 들어 풀어 본다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영계와 이승은 한 닢의 동전의 앞뒤처럼 분리할 수 없을 정도로 붙어 있는 것이 아니라, 원래가 한 닢의 동전의 앞뒤인 것이다........... .

좀더 알기 쉽게 설명하기로 한다.
영계의 태양에서 흘러나오는 영류(靈流)가 영계의 생명의 근원이라는 것은 이미 말한 바 있다. 이 영류에는 영계의 상. 중. 하의 세계에 직접 태양으로부터 흘러 들어가는 것, 즉 간접영류의 두 가지가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기 바란다. 나는 이 영류에 관하여 설명을 할 때, 영류는 영계내의 하 세계에까지 밖에는 도달하지 못하는 것처럼 편의상 말해 두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영류가 하 세계에서 다시 인간 세계에 까지 뻗치는 것이라고 수정하겠다.

인간의 생명이 우주 공간에 홀로 떨어져서 존재하고 있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인간의 생명은 그 근원에 있어서 생명의 원천과 관계를 지니면서 생명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그 생명의 원천이란 무엇인가? “이것이 다름 아닌 영계의 태양인 것이다.” 자연계의 태양은 열이나 빛을 자연계에 부여함으로써 자연계의 생명을 길러주고 생명의 활동을 도와 줄 수는 있다. 하지만 생명의 원천 그 자체는 될 수가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연계의 태양은 영계의 태양의 이승에 있어서의 대응물(對應物), 이를테면 이승에 있어서의 대리인, 대용품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세상의 태양의 원천은 영계의 태양인 것이다.

여기에 사람들은 큰 의문을 품게 될 것이다. 인간은 어떻게 해서 영계의 태양으로부터 영류를 받고 있는 것일까? 첫째 영계의 존재가 아닌 인간이 어떻게 영계의 태양으로부터 흘러  나오는 영류를 받을 수 있는 것일까?

이러한 의문에 대해서 나는 다음과 같이 대답할 것이다. 인간의 생명의 근원은 본래가 영(靈)이다. 그리고 인간의 육체 안에 살고 있는 영이 영류를 자기 안에 흡수함으로써 인간은 생명을 이어 갈 수 있다. 그러나 아직 이러한 대답만으로는 충분히 이해가 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새로운 의문이 일어나겠지만 설명을 끝까지 읽으면 자연히 알게 되는 문제이다. 그리하여 나는 이 문제를 잠시 덮어두고 더 앞으로 나아가기로 한다.

인간의 육체 안에 영이 깃들고 있는 비밀은, 전에 영계의 공간과 이승의 공간을 설명할 때 이야기한 것처럼 두 개의 각기 성질이 다른 공간적인 관계에 의한 것이라고 하겠다.

여기서 관점을 좀더 달리해서 살펴보기로 한다. 예컨대 우리가 누군가에게 축복의 말을 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자. 하지만 우리는 단지 마음속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만으로는 그 의사소통이 완결되었다고는 할 수 없다. 그것이 완성되려면 적어도 우리는 그것을 말이나 편지로 통해 표현할 수밖에 없다.

영계와 이승과의 관계도 실은 이와 마찬가지인 것이다. 물질계가 아닌 영계가 그 의도나 의사를 물질계에 전달하려면, 영에게 인간이라는 물질적 형태를 부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인간계는 영계의 종극점(終極點)이며, 영계의 생명의 근원인 영류도 그 종극적 수단인 인간의 육체 속에 영을 깃들게 함으로써 이 영으로 하여금 자기가 이루고자 하는 최종 목표를 달 설하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영계의 태양에서 발한 영류는 그 종극점인 인간의 육체에 이르러 최종적으로 흐름을 멈추는 셈이다.

이상의 설명으로 영계와 이 세상이 실은 하나의 세계의 다른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밝혔다. 이것은 영쪽, 즉 영계쪽에서 보면 아주 간단한 일이지만 이 두 가지 각기 다른 부분을 구별하는 것이 바로 하나의 경계선을 말하는 것이며, 이는 인간의 육체적 죽음이 바로 경계선을 이루는 것이다. 이 경계가 영과 영계를 인식 못하는 인간에게는 가장 중대한 문제라고 생각된다.

그 까닭은 인간에게는 사실상 영계에 관해서 알고 있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왜 인간이 영계를 모르도록 애당초 만들어 졌는가에 대해서는 뒤로 미루기로 한다.

다만 여기에서 한 가지 더 언급해 두어야 할 것은, 영계와 이승을 구분 짓는 육체의 죽음이라는 경계선 상에는 이승은 물론 영계에서도 참으로 여러 가지 사건이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이며, 인간이 영계의 존재를 희미하게나마 알 수 있는 것도 이 경계선 상에서 일어난 사건---죽음의 통지, 영의 통지, 유령 등---에 의해서이다.

어떤 물체가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을 때, 그 두 개의 부분은 서로 상대방에 대항하는 관계에 있거나 그렇지 않으면 반대로 상대방을 보완해 주는 역할을 한다. 영계와 이승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여서 서로 보완해 주는 “협력 관계”에 놓여 있다.

영계에서의 결혼을 설명할 때에 영계의 결혼은 자손의 번식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남녀 두 영이 영적인 결합으로 서로 영적인 행복과 영적인 이성 내지는 지혜의 증진을 목적으로 한다고 했다. 이와 반대로 이승에서의 결혼은 자손 번식을 목적으로 삼고 있다. 결혼이라는 한 가지 사실만 보아도 이만큼 영계와는 다른데, 이것은 영계와 이승이 서로 협력 관계에 있다는 것을 잘 나타내는 것이다.

즉 인간계는 영계에서 볼 때에 영계에서는 불가능한 “장래의 영”의 번식을 도모하는 세계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영계는 육체에 깃들어 있는 영에 의해서 영계의 태양의 영류를 인간에게 간접적으로 유입하여 인간의 생명의 지속을 꾀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과 영과의 관계

인간계가 영계의 종극점(終極點)인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은 영의 종극점인 것이다. 또 인간의 생명의 지속과 영의 번식이라는 양면에서 인간과 영의 협력 관계에 놓인 존재라는 것도 방금 살펴본 바와 같다. 그러므로 나는 여기에서 지금까지 설명해 온 것을 간추려 이 수기의 결론으로 삼으려 한다.

인간은 물질계에 속하는 육체와 영계에 속하는 영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육체, 즉 물질계에 속하는 것은 육체 자체를 비롯하여 눈이나 귀. 코 등 육체적인 감각 따위가 있다고는 하지만, 이들의 활동을 가장 깊숙한 곳에서 지배하고 생명 그 자체를 육체에 부여해 주고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영계의 태양이 내 품는 영류를 받아들이고 있는 인간의 영인 것이다. 영의 활동이 인간에게 자극되는 일은 여간해서 없지만, 사람들에 입에 오르내리는 “불가사의한 영감”이라든가 “영적 지각”이라는 것들은 영의 활동과 비슷한 것이다.

              육체 안의 인간과 영은 어느 쪽이 본질인가

이 문제에 대한 대답은 이 수기를 읽어본 사람이라면 분명히 알고 있을 것이다. 육체적인 인간에게 생명 그 자체를 부여하고, 그것을 지배하고 있는 영이야말로 주인공 이라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러므로 나는 약간 각도를 달리해서 예를 들어 알기 쉽게 설명하기로 한다. 앞서도 말한 영계와 이승의 경계선 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예를 들어 본다.

당신이 만약 유령을 보았다고 하자. 또 친한 사람의 죽음의 소식을 기이한 꿈이나 한낱 환각을 통해 알았다고 하자. 이 순간 당신이 어디에 있었는가 하면 바로 생과 사의 경계선 상에 있었던 것이다. 당신은 유령이 “이 세상에 나타났다”고 생각할는지도 모른다. 또 죽음의 소식을 당신의 눈이나 귀라는 “육체적인 감각을 통해” 감지한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당신의 착각이다. 당신은 유령을 본 순간이나, 죽음의 소식을 받는 순간에는 “육체적으로는 이미 죽어서”순간적으로 영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자기의 영의 눈을 통해서 유령을 보았거나, 죽음의 통지를 받았던 것이다. 당신은 짧은 시간이나마 영의 세계로 들어간 셈이다.

그러면 이 경계선을 반대로 영쪽에서 본다면 어떻겠는가? 영계에서 물질계, 즉 인간계로 들어올 때 영도 인간처럼 그 경계선상에서 “영적으로 죽는” 것일까?  만약 영적으로 죽는다면 영은 물질계의 존재 그 자체로 변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일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영에게는 경계선도 없고 또한 물질계에 속하는 인간의 육체 안에 머물고 있다 하더라도 “그곳 역시 영계”인 것이다. 경계선은 단지 인간이 육체의 죽음이라는 측면 또는 마찬가지의 이야기가 되지만 육체의 삶이라는 세계에서 볼 때에 존재하는 것에 불과한 것이며, 영이나 영계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와 같은 것은 전혀 존재하지 않으며, 또 존재하는 것  조차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인간계에도 영이 그 본질적인 존재이며, 육체는 극히 예외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하다. 영계와 이승을 하나로 묶는 크나큰 하나의 세계 속에서는 이승은 하나의 예외이며, 영계와 한 변종(變種)에 불과하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어째서 인간은 영을 알 수 없는가

이 문제에 대해서는 이 수기를 통해 수시로, 인간은 물질계 속에 있어 그 생각하는 것부터 물질계적 이어서 영의 일을 알지 못한다고 했다. 이 말에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나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두 가지의 입장에서 설명하기로 한다.

아무리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새는 틀림없이 자기의 둥지로 찾아온다. 꽃은 계절만 되면 영락없이 꽃을 피우고 또한 열매를 맺는다. 또 지혜라고는 있을 것 같지 않는 별도 사람이 감히 따를 수 없는 정교한 집을 지어 규율이 있는 집단적 생활을 한다. 이러한 일을 생각한다면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여기에는 자연계의 지혜가 배후에서 작용하고 있음을 누구나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인간이 영계나 영의 일을 잘 모른다는 것도 실은 육체적인 존재로서의 인간이 자연계의 지혜에 의해 작용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인간이 영의 존재를, 그 영원성을 진실로 확신을 가지고 믿을 수 있게끔 모든 인간이 되어 있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아마도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 육체적. 자연적 생명을 다 함이 없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 영계로 들어 갈 것이 틀림없을 것이다. 자연계는 그 불가사의한 지혜에 의해서 인간에게 자연적 수명을 다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영과 영계의 존재를 그리고 그 영원성을 인간이 죽기 전까지는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 영의 일을 모르는 이유로는 또 한 가지가 있다. 또한 이 이유는 동시에 영이 인간의 존재를 모르고 있다는 것과 표리의 관계에 있다. 인간은 영과 육체의 두요소로 성립되어 있지만 만일에 인간이 항상 자기 육체 속에 깃든 영의 존재를 의식하고, 그 영의 지배를 받고 있는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자유를 무엇보다도 갈구하고 있는 인간은 반드시 자기를 지배하려고 하는 영과 대항하여 이 두 요소 가운데는 투쟁이 벌어질 것은 뻔 하다.

또한 인간 속에 깃든 영은 이런 일을 전혀 알지 못하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자연계의 존재인 인간의 육체는 보이질 않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 결과로 영은 인간 그 자체가 자신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것은 인간이 영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자기의 전체는 모두가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영은 인간 속에 있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모든 것이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인간의 육체에 생명을 부여하고 그 생각이나 느낌을 무의식중에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영계와 자연계의 두 세계를 하나로 합친 큰 세계의 지혜가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영의 무리들 중에는 흉령이라는 것이 있어, 이 영은 자기와 관계가 있는 자의 생명과 사고를 파괴로 몰아넣으려고 항상 노린다. 만약 이 영이 인간의 육체 속으로 들어가는 경우, 그 육체가 자기 것이 아니고 인간의 것이라는 것을 알기만 하면 당장 그 육체에 해를 끼치기 때문이다. 그러나 흉령이라 할지라도 인간을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한, 그것을 자신으로 알고 귀중히 여겨 이 육체에 생명을 불어 넣는 작용을 한다.

               나의 죽음을 예고한다.

끝으로 나는 죤. 웨슬리라는 어떤 교회의 목사에게 발송한 어떤 편지의 건을 말하기로 한다. 일삼아 이런 사사로운 편지를 공개하는 까닭은 이 안에 나의 최후의 교령술에 대한 결과를 적어 보냈기 때문이다. 그 결과란 엄격히 말해서 나의 사망 후가 아니면 그 정당성이 증명되지 않는 일이지만, 나는 내가 죽는 뒤 그것이 밝혀질 것이라 굳게 믿고 있다.

나는 웨슬리 목사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다. 물론 죤. 웨슬리는 한번도 만난 적이 없는 남이었지만, 나는 영을 통한 지각으로서 그에게 편지를 보내야만 될 사항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당신이 영계에서 나를 만나보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았소. 그리고 나는 1772년(이듬해) 3월 29일에 이 세상을 하직하고 참다운 영계의 영이 됩니다. 이 사실은 벌써부터 결정된 것이므로 아울러 알려 드립니다.”

그는 다음과 같은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는 답장을 보내왔다. “나는 유명한 영매로 이름난 당신의 이야기를 오래 전부터 듣고 있었습니다. 나는 당신이 주신 편지를 친구에게 공개 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영계에서 당신을 만나고 싶어 한 사실을 지금껏 만나 보지도 못한 당신이 어떻게 해서 알았는지 우리 일동은 다 같이 이상히 여기며 매우 놀랐습니다.”

나는 그의 영으로부터 교신에 의해서 그의 희망을 영적 감각으로 알게 되었으나, 이러한 일은 생자(生者)의 영과 교신한 것이어서 나로서는 드문 예인 것이다. 하여간 내가 생자의 영과 교령술에 의하여 교신한 것은 웨슬리로부터의 답장으로 그 정확성이 증명된 셈이다.

내가 이 세상에 남길 것이란, 이승에서의 용무를 끝마친 나의 육체 말고는 이 수기가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 책을 저술한 나로서는 이제 이승에 미련을 남길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 내가 웨슬리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밝힌 바와 같이 나의 임종일의 예언도 멀지 않아 내가 죽은 뒤에야 그 진실이 증명 될 것이다. (끝. 감사합니다.)

              四次元의 世界13.의 “영계의 手記” / 스웨덴보르그 저 / 청화 (1984)  

셀라맛 가준Selamat Gajun(시리우스 말로 하나가 되세요)! 셀라맛 카시자람Selamat Kasijaram(사랑과 기쁨 속에서 축복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