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감고 잠시 시간을 들여 각자가 실생활에서 창조해내고 싶은 물상을 속으로 지어내 보십시오. 아무리 세속적인 항목이라 하더라도 개의치 않겠습니다. 바퀴 네짝에 경적이 달린 자동차도 좋습니다. 그 물건이 무엇이든지 잠시 시간을 들여 그것을 정말로 손으로 만지듯이 하십시오.  

규칙 제 1 조 : 각자가 선정한 바를 창조해 낸다는 생각에 가슴 설레어 보지 못한다면, 그것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더러 창조가 일어나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진정한 열정이 결여되었기 때문입니다. 상당한 양의 열정 없이는 어느 것도 창조할 수 없는 법인데, 이는 창조가 바로 열정적인 상태이기 때문이지요. 그러면 여러분은 제게 이렇게 말하겠지요. '난 암을 창조하는데 열정적이지 않았소!' 허나 십중팔구 암을 초래할 제약적인 생각들을 지어내는데 매우 열정적이었을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들이 창조의 본질적인 소재입니다. 그러니 기억해 두십시오, 열정을! 그러면 보다 큰 열정을 어떻게 일으킵니까? 원하던 정황이 사실로 나타난다면 그것은 어떤 모습일까, 어떤 기분일까하고 눈으로 그려보고 느끼는 것이 그 방법입니다. 그것은 어떤 모습, 어떤 기분일까하고 날마다 형상화해 가야 합니다. 시공적인 제약 때문에 이런 일은 한번 해 가지고서 즉시 일어나길 기대할 수 없는 사항입니다. 연마하셔야 합니다.

입버릇처럼 내게는 그것이 없지 한다면 그 없는 상태를 창조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그렇게 말하는 대신 다음부터는 아래와 같이 말하십시오 : '몸이 완쾌되어 해변을 거닌다면 그 기분이 어떨까? 그 느낌에 젖어들어 보겠다.' 눈으로 그리고 알알이 느끼십시오!  이제 그 다음 부분을 이해하는 것이 요체입니다. 상이한 것을 창조하기 위해서는 상이한 에너지 영역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과거에 사랑이나 건강과 같은 것을 창조하려 했을 때, 여러분의 대다수는 양극적인 에너지라 불리는 데를 향해 간 것입니다. 사랑을 있다가도 없고, 사물은 창조하는데 시간을 요하며, 모든 육체는 나이를 먹을 수밖에 없고, 상실은 고통스러운 것이라고 보는 에너지 폭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이가 떠날 때나 돈을 창조하는데 어려움이 있을 때 또는 병에 걸릴 때 이상할 게 없습니다.

양극적인 것 (질병과 건강, 사랑과 이별) 보다 큰 어떤 것을 창조하길 원한다면, 보다 광대한 에너지가 가용될 수 있는 주파수에 자신을 맞추어야만 합니다. 그것이 그 창조에 사용할 수 있는 '질료'입니다. 수년간 저는 여러분에게 앉아 고요히 있으라고 말해 왔습니다.


육체와 정신과 감정 일체의 메커니즘을 잠잠하게 할 때

순수 지각인 이 별개의 창조적 에너지를 인지하게 됩니다.

그것은 세포와 정신과 감성 내부에 있어서 매순간 여러분과 함께 있습니다. 그것 없이는 어떤 것도 존재할 리 만무입니다. 이것이 바로 청컨대, 여러분이 떨어져 들어가야 할 다른 종류의 에너지입니다.



한 순간에 아무 생각 없이, 어떤 차별이나 형태 없이 순수지각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바로 이런 에너지 장(場)이 사랑과 건강에 관한 '새로운'느낌을 불러일으킬 것입니다.


어떻게 이 에너지 장에 접근합니까? 멈추고, 순수지각 속으로 떨어지고, 느껴야 합니다. 한 시간 동안에 할 수 있는 한 여러번 이 과정을 되풀이하십시오. 멈추고, 떨어지고, 느끼란 말입니다!



이 열망을 생의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지니고 산다면 하느님의 작고 고요한 목소리라는 것을 듣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 음성은 고요할 수 밖에 없겠지요.





- 바톨로뮤 메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