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아함경강좌] 정신과 육체, 의식의 삼각관계

글쓴이 :  관리자

정신과 육체. 의식의 삼각관계 부처님이 라자가하 죽림정사에 계실때의 일이다. 그 무렵 사 리풋타와 마히코히티카는 그리드라쿠타산에서 수행하고 있었 다. 어느날 해질 무렵 마하코티카는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 어서 사리풋타에게 물었다. "존자께서 늙음과 죽음을 누가 만들었다고 생각합니까? 자기 가 만든 것입니까, 남이 만든 것입니까? 아니면 아무 원인도 없이 만들어진 것입니까?" "내가 생각하기에 늙음과 죽음은 누가 만든 것이 아닙니다. 또 원인 없이 만들어진 것도 아닙니다. 다만 태어남을 인연하 기 때문에 늙음과 죽음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늙음과 죽음이 일어나는 정신과 육체는 누가 만든 것입니까? 자기가 만든 것입니까. 남이 만든 것입니까? 아니 면 아무 원인 없이 만들어진 것입니까?" "정신(名)과 육체(色)도 누가 만든 것이 아닙니다. 다만 그것 은 의식(識)을 인연하여 생긴 것입니다." "그러면 의식은 누가 만든 것입니까? 내가 만든 것입니까, 남 이 만든 것입니까? 아니면 아무 원인 없이 만들어진 것입니 까?" "그것은 정신과 육체를 인연하여 생기는 것입니다." "사리풋타님, 조금전에 정신과 육체는 의식을 인연하여 생긴 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다시 이번에는 의식이 정신과 육체를 인연하여 생긴다니 이는 무슨 뜻입니까?" "비유로 말씀드리지요. 여기 세 개의 갈대가 있다고 합시다. 이 갈대가 땅에 서려고 하면 서로서로 의지해야 합니다. 만일 하나가 없어도 둘은 서지 못하고, 둘이 없어서도 하나는 서지 못합니다. 의식이 정신과 육체를 의지하는 것이나, 정신과 육 체가 의식을 의지하는 것도 이와 같습니다." "좋습니다. 참으로 훌륭한 설명입니다. 이제는 더 이상 의심하 거나 번뇌를 일으키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잡아함 12권 288경 ≪노경(蘆經)≫ 사람들은 곧잘 인간의 궁극적 실재는 무엇일까에 대해 입에 침을 튀겨가며 논쟁을 한다. 유물론자는 '육체가 없으면 정신 도 없다.' 그것은 마치 항아리가 없으면 물도 있을 곳이 없다' 면서 인간의 궁극적 실재는 결국 육체를 구성하는 물질이라고 주장한다. 이에반해 유심론자는 육체란 인간의 영혼을 담는 그룻에 불과하고 육체는 소멸돼도 영혼은 물멸하고 영생하기 때문에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인도의 윤회론도 사실 은 이 영혼불멸론에 근거를 둔 생각이다. 그러면 불교는 이 같은 주장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가. 일반적으로는 불교도 영혼불멸론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생각한는 사람이 많다. 또 불교를 조금 공부한 사람은 무아를 주장한다는 점에서 유물론에 가깝다고 이해하는 사람도 없지 않다. 그러니 이는 둘다 오해다. 이 경전의 대화에서 보듯이 불교의 입장은 육체와 정신과 의식이 한다발로 인연하여 모인 것이 인간이라고 본다. 따라서 근원적 자아라는 발상 자체가 잘못됐다는 것이다. 사리풋타가 '갈대의 비유'를 들어 설명하 고 있는 것은 육체와 정신과 의식이 모이면 존재가 구성되고 흩어지면 존재도 흩어진다는 것이다. 이 비유가 설명하고자 하는 것은 고정불변하는 실재적 자아란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 윤회니 해탈이니 하는 것은 도대체 무슨 말인가. 실체 가 없는 것이 무아(無我)라면 윤회하는 것은 무엇이고, 해탈하 는 것은 누구인가. 그것은 바로 업식이 생겨나게 되는데, 이의 식이 갖가지 업(業, karma)이라는 것이다. 인간의 육체와 정신 은 업에 의해 결합하면서 거기서 의식이 생겨나게 되는데, 이 의식이 갖가지 업을 만들어 간다. 육체와 정신과 의식이 흩어 진 뒤에도 이 업은 계속 남아 윤회를 하게 된다. 이것이 계속 적으로 반복되는 것을 윤회라고 한다. 해탈은 이 윤회의 사슬에서 벗어나 다시는 재생(再生)하지 않 는 것을 말한다. 윤회가 계속되는 한 생로병사의 고통이 반복 되지만 여기서 벗어나면 이 고통은 더 이상 반복되지 않는다. 불교는 이 윤회고에서 벗어나는 것을 종교의 최후 목표로 삼 고 있다. 이것이 열반의 성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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