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도의 여섯단계



제자도와 고통

보고 들으며 아는(앎을 아는, 알고 있는)

신의 아들은 의식 제한으로부터의 고통을 경험합니다.
의식존재 깊이의 가장 깊은 곳에서 그들 자유의 유산은 좀 먹듯이 잃어버립니다.

고통과 아픔, 가난과 손실과 같은것들이 그러한 손실이며 그것은

신으로부터 분리된 모든 자녀로부터 그러합니다 .

그는 일단 형상이 있는 죄수의 상태로 들어가기전에는 고통이 없었음을 스스로 알고 있었읍니다.
아픔과 사망, 타락과 질병과 같은것들은 그를 건드리지 못했으며
우주의 풍요가 그에게 있었으며 무엇인가 잃는다는것을 안다는것은 무가치 했읍니다.

고통과 손실, 빈곤을 모르던 신의 자녀들의 생명은 자아의식과
신의 모든 자녀들에 의해 형상에 내재하는 건설자인 데바 생명과 함께 형상의 안으로 들어갔읍니다.
형상은 쇠퇴하거나 사라져서 그들은 자양분이나

결핍으로부터 밖에서 자신을 유지하기 위한 강력한 것을 필요로 했읍니다.
그러나 결핍은 엮시 그들이 신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된것이 아님을 느끼고 악화될수 없음을 느끼기위한 계획된 의도였읍니다.

내가 비록 고통의 매체를 통하여
인간 하이어라키의 진화에 관하여 의사소통하는 자연에 관해 심오하게 모를지라도
고통의 힘이라는 말의 의미는 여기에 있읍니다.

데바들은 인간과 같은 그러한 고통을 체험하지 않읍니다.
그들의 리듬 안에서의 비율은 법칙 안에서의 범위라 할지라도 규칙적입니다.
그들은 건설작업을 돕거나 건축된것의 모습안에서 결합되는것을 통하여 학습하며
성취된 작업이나 지어진 형상들 안에서 기쁨과 감사를 통하여 성장합니다.

데바(요정)들은 건설하고 인류는 파괴합니다. 그리고 형상들의 파괴로부터 불만을 통하여 배웁니다.
그리하여 보다 큰 건설자들의 성취작업에서 묵인됩니다.

고통이란 진리의 발을 땅에 둔 인간이 물질(형상)을 통한 윗쪽으로의 투쟁입니다.


고통이란 엄청난 저항이 따르며 그리하여 산 정상에 도달하게 됩니다.


고통이란 물질의 세계에서 벗어나게 하고 내부의 불에 닿게 합니다.

고통은 고립을 불 필요하게 만들고 중앙태양의 따뜻함으로 인도해줍니다 .


고통은 마침내 생명수의 시원함을 알도록 하기 위한 용광로 안에서의 뜨거움입니다.

고통은 아버지의 집에서 환영(歡迎)의 결과를 가져오는 먼 나라로의 여행입니다.


고통은 아버지와 의절한것으로부터의 환영(幻影)입니다.
그것은 아낌없이 직통으로 아버지의 심장으로 몰아갑니다.

고통은 완전한 손실의 십자가입니다. 그것은 영원한 보상의 풍요를 후원해줍니다.


고통은 절대적으로 사원건축의 완전함을 가져오기 위해
투쟁하는 건설자로 몰아가는 채찍질입니다.

고통의 쓰임은 많읍니다.
그것들은 인간 영혼을 어둠 밖으로 끄집어내 빛으로 인도하도록 해줍니다.
노예의 상태로부터 자유로, 고통에서 벗어나 평화의 상태로 이끌어줍니다.
평화는 모든 인류 자녀들의 우주의 조화가 요구되는것 안에서 빛이며 자유입니다.

 

 

                                                  ㅡ 엘리스 베일리   새 시대의 제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