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一장 해방 이후 한민족 정치지도자들의          섭리적 운명과 숙명 고찰



 
    종교섭리와 정치섭리는 내외적인 관계로서 병행하여 왔는데 특히 666의 섭리 즉 6000년 역사를 해방 이후 한민족사 60년(1948∼2007)과 제6공화국(노태우∼노무현)으로써 상극투쟁의 세상은 막을 내리기 시작하기 때문에 해방 이후 한민족사 60년 기간에는 인류역사 출발 이후 근세에 이르기까지 세계 각국에서 이땅을 거쳐간 내외적인 사명자들이 윤회환생(輪廻還生)을 하여 전생(前生)의 각본사명(脚本使命)을 재연반복하면서 역사를 엮어 나오고 있기 때문에 전생을 알지 못하고는 납득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이다.
   차제에 우리 인간의 운명(運命)과 숙명(宿命)에 대하여 정의를 내린다면, 운명의 본원(本源)은 우리 인간의 겉사람(육신)을 위주로 하여 육신(肉身)이 이땅에 태어나는 년‧월‧일‧시가 적용되는 사주(四柱)에서부터 관상‧수상‧골상 등을 근거로 하여 길‧흉‧화‧복을 감정하는 운명철학으로서 인간의 부단한 노력으로 어느 정도는 개척할 수도 있지만, 숙명의 본원(本源)은 우리 인간의 속사람(정신)을 위주로 하는데 창조주이신 하늘부모님(天父‧天母)께서 인간의 속사람(精神) 즉 영혼(靈魂)을 창조하시면서 부여한 각본사명(脚本使命)이기 때문에 인간의 힘으로는 개척할 수도 없고 피해갈 수도 없는 일이다.
   다시 말해서, 운명(運命)은 운수 운(運) 자와 명령할 명(命) 자에 잘 드러나 있듯이 인간의 겉사람(肉身)에게 주어진 운수가 알게 모르게 명령하여 이끌어가기 때문에 외적으로 존재하는 물질적인 힘이 크게 작용하게 되므로 주로 육신쓴 인간세상과 유착관계가 이루어지면서 변화난측(變化難測)한 일이 일어나지만, 숙명(宿命)은 잘 숙(宿) 자와 명령할 명(命) 자에 잘 드러나 있듯이 인간의 속사람(精神)에게 주어진 운수가 본인은 알 수 없는 즉 잠자고 있을 때 명령하여 이끌어가게 되므로 주로 내적으로 존재하는 영적세계(하나님‧천사‧조상영)와 유착관계가 이루어지면서 변화불측(變化不測)한 일이 일어나기 때문에 유한된 인간의 힘이나 지략으로는 어찌할 방도가 없다는 것이다.

 

 
    인류역사를 출발시킨 아담(환웅천왕)가정 이후 오늘까지의 6000년 역사를 해방 이후 한민족사 60년으로 수리적인 축소재연(縮小再演)을 하게 되면서 상극투쟁의 시대는 막을 내리게 되는 666의 섭리(계 13/18) 즉 인류역사 6000년을 한민족사 60년(1948∼2007)과 제6공화국(노태우∼노무현)으로써 매듭짓게 되므로 일제압박 40년의 민족적 탕감시대를 거친 이후 새롭게 엮어지는 60년 기간에는 이땅을 거쳐간 내외적인 사명자들이 시대와 민족과 국경을 초월해서 한반도로 윤회환생(輪廻還生)하게 되면서 내적 사명자들의 예언이나 약속의 말씀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해방 이후 한민족사 60년은 성약섭리사(成約攝理史)이기도 하다.
   좀 더 구체적으로 알아본다면, 이땅을 거쳐간 내적인 사명자들의 예언은 물론이고 주류섭리사(柱流攝理史)를 이끌어오면서 하늘이 인간들에게 약속했던 구약(舊約)과 신약(新約)의 말씀이 해방 이후 한민족사 60년 기간에 확연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성약섭리사(成約攝理史)를 한반도에서 살고 있는 남‧북한의 한민족이 알지 못하고 있으니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신약성서(베후 3/8)에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고 당부하신 말씀이 바로 인류역사 6000년을 해방 이후 한민족사 60년으로 축소재연(縮小再演)하게 되는 전무후무한 시대를 가리킨 것이다.
   지금부터는 원래부터 한민족 가운데 태어났던 선조(先祖)들로서 못다 한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서 다시 윤회환생하였던 외적인 사명자들과, 시대와 민족과 국경을 초월해서 윤회환생하게 된 정치지도자들을 중심삼고 엮어지게 된 해방 이후 한민족사 60년(1948∼2007)을 섭리적 차원에서 재조명하기로 한다.

 

 
    '일생일사(一生一死)'의 천칙(天則)을 벗어날 수 없는 인간세상에서 윤회환생(輪廻還生)이 차지하는 비중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인생철학의 열쇠이기도 하기 때문에 인생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자기의 현생(現生)과 결부되는 전생(前生)을 알아야 하고 전생(前生)과 결부되는 현생(現生)을 알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윤회환생(輪廻還生)에 대한 올바른 지식이 필요하다.
   지금부터 2500년 전에 이땅에 오셨던 석가세존께서 밝혀놓은 윤회환생(輪廻還生)은 바퀴 륜(輪), 돌아올 회(廻), 돌려보낼 환(還), 날 생(生) 자의 한문자가 그 의미를 내포하고 있듯이 '인류역사의 수레바퀴가 한 바퀴 돌아서 그 자리에 올 때 다시 나서 보낸다'는 뜻으로서, 이땅에 인류가 염원하는 지상천국(극락정토)이 이루어지게 되면 윤회환생이 필요 없겠지만 선천시대(先天時代) 6000년 동안은 계속적으로 시행된 인생법칙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서, 인류역사의 수레바퀴가 한 바퀴를 돌아서 다시 그 자리에 오게 되었을 때 우리 인간의 속사람이 육신을 쓰고 다시 태어나서 전시대에 못다 한 사명을 또다시 수행하게 되는 것을 윤회환생이라 하며, 오늘까지 인류역사의 수레바퀴가 세계적으로는 한 시대를 2000년으로 하여 3바퀴를 돌았기 때문에 6000년의 역사를 장식하게 된 것이며, 한 시대를 2000년으로 하는 윤회환생섭리를 종적윤회환생(縱的輪廻還生)이라고 하는데 특수한 경우에는 4000년이나 6000년만에 이루어지기도 한다.
   이와는 다르게 국가나 민족적으로 특수하게 이루어지는 윤회환생의 경우로서 한 시대를 30년, 40년, 60년, 600년 등으로써 시대적 섭리의 상황에 따라 이루어지는 윤회환생섭리를 횡적윤회환생(橫的輪廻還生)이라고 하며, 전생(前生)과 현생(現生)은 일치하기 때문에 현생을 보아서 전생을 알 수도 있는데 가장 큰 문제점은 윤회환생에 대한 개념부터가 크게 잘못 되어 있다는 것이다.
   섭리에 의해 돌아가는 인류역사의 수레바퀴가 작게는 30년이나 40년이나 600년만에 한 바퀴 돌아오는 경우도 있고 크게는 2000년만에 한 바퀴를 돌아서 본래의 자리로 오게 되는 경우도 있는데, 하늘부모님(天父‧天母)으로부터 창조를 받게 되는 우리 인간의 속사람이라고 하는 정신(精神) 즉 영혼(靈魂)이 하늘부모님으로부터 전시대에 못다 한 사명을 다시 부여받아 육신의 부모님(父‧母)으로부터 창조를 받은 겉사람 즉 육신(肉身)이라는 체를 쓰고 이땅에 탄생하여 육신쓴 인간으로서 전시대 사명자가 못다 한 사명을 다시 수행하게 되는 인생섭리(人生攝理)가 석가세존께서 밝혀놓은 윤회환생(輪廻還生) 진리의 올바른 지식이다.
   그런데 윤회환생(輪廻還生)의 본 뜻과는 너무도 다르게 '사람이 죽은 다음에 다시 환생하게 될 때는 미물이나 짐승으로 올 수도 있다'고 믿고 있는 허황되고 그릇된 지식 때문에 석가세존께서 오랜 각고 끝에 고유사명(固有使命)으로 찾아 세운 윤회환생섭리를 놓고 문제는 불교인들부터 크게 잘못 알고 있는 왜곡된 지식으로 인하여 수많은 종교인들이나 지성인들로부터 인생철학(人生哲學)의 근본열쇠가 되어야 할 윤회환생(輪廻還生)섭리가 외면 내지는 부정당하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또한 만물지영장(萬物之靈長)으로 자처하는 우리 인간은 누구를 막론하고 겉사람(육신)과 속사람(정신)이라고 하는 유형(有形)과 무형(無形)으로써 이중구조로 창조되어 있으며 육신(肉身)은 육신의 부모로부터 기인되고 속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정신(精神) 즉 영혼(靈魂)은 하늘부모님으로부터 기인되는데, 불교인들은 정신(영혼)이 육신(겉사람)을 터로 해서 자생(自生)한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윤회환생(輪廻還生)에 대한 근본 뜻을 다르게 해석하고 있으니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늘로부터 속사람이라고 하는 정신(精神) 즉 영혼(靈魂)을 부여받은 인간들이 분명하게 알고 가야 할 내용이 있다면 영혼을 부여받지 못한 짐승들과는 근본이 다르기 때문에 만물지영장(萬物之靈長)으로 창조를 받은 인간세상의 윤회환생(輪廻還生)은 열백번을 하여도 만물지영장으로 다시 환생하게 되는 것은 확고부동한 창조진리(創造眞理)로서 만고의 진리이기도 하다.
   다만 미완성한 인간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죄악성(시기‧질투‧교만‧혈기)이라고 하는 수성(獸性)을 지니고 있는데, 이땅에서 악독한 생활을 하게 된 사람은 짐승에 못지 않을 정도로 강한 수성(시기‧질투‧교만‧혈기)을 유전인자를 통해서 후손들에게 계승시키기 때문에 짐승 같기도 한 수성(獸性)을 가지고 태어날 수는 있지만 영혼(靈魂)을 소유하지 못한 짐승으로 태어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리고 이땅을 거쳐간 조상영(祖上靈)들이 육신쓰고 있는 후손들의 배후에서 협조하며 함께 하는 경우는 윤회환생(輪廻還生)과는 본질이 다른 '재림부활(再臨復活)'로서 여러 가지의 형태로 분류되며 윤회환생이나 재림부활과는 또 다른 '사자회생(死者廻生)'섭리가 있는데, 오늘까지는 주로 윤회환생이나 재림부활섭리였다면 앞으로 인간재창조(人間再創造) 섭리시대에는 조상영계의 협조로 이루어지는 사자회생(死者廻生)섭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데 이 문제는 다음에 언급하기로 한다.
   결론적으로 볼 때, 물질을 위주로 하는 과학문명이 20세기를 주도하다 보니 과학적인 지식을 앞세운 유물론(唯物論)적인 사고방식 때문에 자연스럽게 형성된 무신론(無神論)주의자들에게는 우습게 여겨질지 모르겠지만, 인류역사 6000년을 해방 이후 한민족사 60년으로 종결짓게 되는 섭리에 의해 이땅을 거쳐간 내외적인 사명자들이 국가와 민족과 시대를 초월해서 한반도로 윤회환생(輪廻還生)하여 사명완수를 함에 따라 인류가 염원하는 이상세계가 꿈 아닌 현실로 우리 앞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유념해 두어야 할 것이다.

 

 
김구 선생  
   구약시대에 주류섭리사(柱流攝理史)를 장식했던 유대민족사에서 애굽고역시대 400년에 해당되는 한민족의 일제압박 40년시대에 외적인 지도자로서 이 민족을 이끌어갔던 김구 선생(1876∼1949)의 전생(前生)은 외적(정치적)인 모세이다.
  지금부터 약 3600년 전에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출애굽노정을 출발했던 모세시대에는 내적인 종교사명이나 외적인 정치사명을 모세 한 사람이 수행하였지만, 김구 선생이 한민족을 이끌고 일제압박시대를 벗어나기 위해서 출발했던 출일본노정(出日本路程)의 시대부터는 민족과 국가를 넘어선 세계적인 시대가 도래했기 때문에 모세의 사명도 내적(종교적)인 사명자와 외적(정치적)인 사명자로 분류하게 되는데, 김구 선생은 외적인 모세로서 전생(前生)의 모세가 걸었던 외적인 노정을 다시 재연(再演)하게 된 것이다.
 구약성서』에 의하면 애굽인들이 이스라엘 민족을 심하게 학대하는 것을 목격한 모세가 울분을 참지 못하고 애굽인을 살해한 것이 탄로 나자 자기를 죽이려는 바로를 피하여 광야생활을 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당시에 이스라엘 민족의 내(종교)‧외(정치)적인 지도자로서 가나안까지 이끌어 왔지만 그렇게도 소망했던 가나안 땅을 바라보면서도 결국 입성하지 못했고 시체마저 행방불명이 되었던 비참한 말로를 맞이하게 되었던 것이다.
   전생(前生)이 외적 모세로서 이를 재연(再演)했던 김구 선생도 한 때는 동학혁명에 가담했던 민족주의자로서 21세 때 ‘명성황후(민비)의 원수를 갚는다’는 분통한 심정으로 일본군 중위를 살해하고 감옥살이를 하다가 탈옥하여 전라도 일대를 방황하기도 했으며 중국 상해로 망명하여 임시정부 주석으로 활약하는 등 민족을 위해 일생을 바쳤지만 통일정부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동족의 총탄에 쓰러지는 비참한 말로를 맞이했던 것이다.
   그러나 역사의 상황적 섭리로 본다면, 해방 직후 남한이 미국의 주관권에 있을 때 미국에 망명해 있던 이승만 박사를 내세우게 되면서 민족주의자였던 김구 선생이 제거됨으로써 결국 남한은 미국의 문화적 속국이 되어 버렸고, 북한도 소련의 주관권에 있을 때 일찍부터 소련에 기대어 있던 김일성 장군을 내세우게 되면서 민족주의자였던 조만식 선생을 비롯한 정치지도자들이 제거됨으로써 결국 북한은 소련의 사상적 속국이 되고 말았는데 이 또한 유대민족사와 결부된 섭리역사의 일면이다.

 

 
이승만 대통령(上), 김성수 부통령(下)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초대 대통령으로 등장하게 되는 이승만 박사(1875∼1965)의 전생(前生)은 유대교 왕국시대에 초대 왕으로 등장했던 사울왕으로서 사울왕‧다윗왕‧솔로몬왕까지의 3대 120년을 이승만 대통령 3대 12년으로 수리적인 축소재연(縮小再演)을 하게 되는 정치적 각본사명(脚本使命)을 숙명적으로 수행하게 되었는데, 이러한 섭리를 알 길이 없었던 정치지도자들이 신익희 선생은 1956년에, 조병옥 박사는 1960년에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이 확실시되었지만 한 분은 호남선 열차에서 급서하고 한 분은 미국에서 병사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나 전생(前生)이 사울왕으로서 피할 수 없는 섭리적 숙명으로는 전생의 사울왕 시대에도 블레셋 족속들이 갑옷과 투구를 쓴 기골이 장대한 골리앗을 앞세우고 갑자기 쳐들어오자 병사들이 싸워보지도 못한 채 법궤까지 빼앗기고 혼비백산하여 도망가고 말았듯이, 이를 재연하게 된 이승만 초대 대통령시대에도 1950년 북한군이 탱크를 앞세우고 갑작스럽게 침범하자 크게 싸워보지도 못한 채 수도 서울을 빼앗기고 혼비백산하여 정부는 부산까지 피난을 가야했던 비극의 역사를 장식하기도 했는데, 이는 전생(前生)이 사울왕이었던 이승만 대통령의 숙명이요 한민족의 섭리적 숙명이기도 하다.
   아울러서 6‧25사변 이후 한국전쟁에 참여하여 인천상륙작전 당시 함포사격으로 전세를 역전시킨 맥아더 장군의 전생(前生)은 왕위에 오르기 전에 돌팔매로 골리앗을 물리친 다윗이지만 맥아더 장군(다윗)의 힘을 입어 다시 남한을 통치하게 된 다윗왕의 직분은 이승만 대통령이 수행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지금부터는 이승만 대통령시대에 정치적으로 크게 부각되었던 분들의 전생(前生)에 대하여 잠깐 알아보기로 한다.
   국회에서 제2대 부통령으로 선출되었으나 1년만에 사임한 김성수 선생의 전생(前生)은 부귀영화를 누렸던 솔로몬왕이요, 이기붕 선생의 전생은 솔로몬왕의 아들이었던 르호보암이며, 신익희 선생의 전생은 솔로몬왕의 신복이었던 느밧으로서 김성수 선생(전생:솔로몬왕)이 1955년 2월에 별세하였기에 1956년 대통령선거에 출마했던 것이다.
   또한 조병옥 박사의 전생은 느밧(전생:신익희)의 아들로서 르호보암(전생:이기붕)의 행위에 반기를 들어 왕권에 도전했던 여로보암으로서, 이 시대에도 대통령이나 부통령에 출마했던 분들은 얽히고 설킨 전생의 인연으로 현생(現生)에 다시 만나서 정치를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해방 이후 남한에서 초대 대통령으로 등장했던 이승만 박사께서는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한 '건국의 아버지'로서 국가적으로 어려운 시대에 망명정치지도자로 활약하다보니 가정은 희생시킬 수밖에 없었던 가슴아픈 사연들이 있다.
   이승만 박사가 16세 때인 1890년 아버지(이경선)가 정해준 경기도 양주 출신으로 2년 연상의 부인 박승선(朴承善)씨와 결혼하여 1892년 아들 봉수(鳳秀 또는 泰山이라고 함)를 낳았지만 1906년 외아들인 봉수는 망명해 있던 아버지를 만나러 미국에 건너갔다가 장티푸스에 걸려 어린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고, 박씨 부인이 홀로 모시고 살던 시아버지(이경선)마저 1912년 별세하게 되자 이승만 박사와 첫 부인이었던 박씨와의 관계는 그때부터 거의 두절되다시피 했다고 하는데, 그 이후의 사연들은 더욱 가슴아픈 사연들만 전해지고 있다.
   혹자들은 1934년 뉴욕에서 60세의 이승만 박사가 본처는 뒤로 한 채 35세의 오스트리아 출신 프란체스카 여사를 후처로 맞이하게 된 점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는데, 프란체스카 여사의 전생(前生)은 원래 우리아의 아내였으나 후일 다윗왕의 후처가 된 밧세바로서, 맥아더 장군과 더불어 다윗왕의 직분을 수행하게 되었던 이승만 박사로서는 전생의 밧세바(프란체스카)를 후처로 맞이하게 된 것도 피할 수 없는 섭리적 숙명이라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볼 때, 이승만 박사는 1894년 배재학당에 입학하여 신학문을 공부하고 이듬해 배재학당의 영어교사가 되었다가 서재필 선생께서 독립협회를 조직하여 독립신문을 발간하게 되자 여기에 가담하여 독립사상 고취와 민중계몽에 투신하였다가 황국협회의 모함으로 결국 7년 동안이나 아까운 청춘을 감옥에서 보내야 했으니 이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 한민족을 대신한 옥고이기도 하다.
   1904년 출옥 후 고종의 밀서를 가지고 미국에 건너가게 되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자 그대로 미국에 머물러 워싱턴 대학에서 공부하게 되었고, 1910년 한일합방이 되자 귀국하여 후진양성에 전력하다가 1912년 다시 도미한 이후 30여 년간 고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미대륙과 하와이‧상해 등지를 돌아다니며 독립운동에 헌신하였을 뿐 아니라 상해에 임시정부가 생기면서 초대 대통령에 취임하였으며, 1948년 8월 15일 초대 대통령에 취임한 건국대통령으로서 '대한민국'이라는 새로운 나라를 건국하는 데 책임과 사명을 다한 건국의 국부(國父)로 재평가되어야 한다는 것이 섭리적 판단이다.

 

 
김일성 주석  
   남한의 정부수립과 함께 1948년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를 수립한 김일성 주석(1912∼1994)의 전생(前生)은 인류역사를 출발시킨 첫 조상가정의 장남으로 등장하는 민족적 '가인'으로서, 정치적 각본사명(脚本使命)은 구약시대에 야곱을 죽이려고 칼을 갈았던 '에서'의 노정을 답습하게 되는데 이는 정치적 숙명노정이기도 하다.
  부언한다면, 김일성 주석의 전생(前生)은 성서(聖書)에 인류역사를 출발시킨 첫 조상(아담)가정의 장남으로 등장하는 가인이며, 부자세습으로 북한정권을 계승한 김정일 위원장의 전생은 이삭의 축복을 받아 피신하였던 야곱을 죽이려고 칼을 갈았던 에서로서, 동생인 아벨을 살해한 가인과 동생인 야곱을 죽이려고 칼을 갈았던 에서와는 일맥상통한 점이 있지만 김일성 주석이 서거한 이후부터 북한의 정치적 각본은 '에서노정'이라는 것을 인지해야 할 것이다.
  일차적으로 수행한 정치적 각본은 형이었던 '가인'이 어린 동생인 아벨을 살해한 원초적 각본을 재연(再演)한 1950년의 6‧25전쟁으로서, 한민족이 1945년에 해방은 되었지만 강대국들(미‧소)의 통치에 있었고 1948년 정부는 수립되었으나 미처 국방력도 갖추지 못한 남한을 한 피를 이어받은 단일민족으로서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갑작스럽게 침범하여 피흘리는 민족적 비극을 초래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동족상쟁의 피비린내 나는 1950년의 6‧25전쟁을 놓고 북한에서는 '일시라도 민족적 염원이었던 조국통일을 이룩하신 위대한 어버이 수령의 업적이었는데 미제국주의가 개입하여 통일조국이 무산되었다'는 역사적 평가를 하고 있는 반면에, 남한에서는 김일성 주석을 민족상잔의 전범(戰犯)으로 규정하고 있을 뿐 아니라 미국이 우방으로서 국토를 다시 찾는 데 크게 공헌한 국가로 인정하고 있으므로 1950년의 6‧25전쟁을 놓고 남한과 북한은 상반된 역사관을 수립하고 있는 실정으로서 인간들의 지식적 판단으로는 쉽사리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인간은 누구라도 피해갈 수 없는 숙명(宿命)으로 주어진 김일성 주석의 전생(前生)을 섭리적 차원에서 본다면 6‧25전쟁의 비극은 첫 조상가정에서 형이었던 가인이 어린 동생인 아벨을 보호하지 못하고 살해했던 골육살인의 비극을 처음과 끝으로 매듭짓게 된 섭리적 각본으로서 작은 나라에서 일어난 동족상쟁의 비극인데 세계가 참전하여 치르고 넘을 수밖에 없는 제3차세계대전을 한반도에서 한민족을 중심삼고 매듭짓게 되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인류가 피흘리는 전쟁역사의 시원점(始原點)은 인류역사를 출발시킨 첫 조상가정에서 가인이 아벨을 살해하면서부터 시작되어 종족·민족·국가·세계로 이어지면서 그칠 날이 없었고, 그 여파는 지금부터 2000년 전 이땅에 오셨던 예수님이 세계인류를 구원하여 지상천국을 건설하려 했는데 유대민족의 불신으로 십자가 형틀에 매달려 피흘리며 돌아가시게 한 죄값을 1차적으로 이스라엘 민족부터 600만이 아이히만에게 학살당하는 비극과 2000년 동안 나라 없는 민족으로 유리애곡했던 탕감이 시작되어 세계가 치르게 된 비극이 세계대전이기 때문에 3차에 걸친 세계대전은 피할 수 없는 섭리적 숙명인데, 이러한 제3차세계대전을 1950년부터 1953년까지 한반도에서 치러놓고도 이를 결부시키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역사적으로 고찰하여 볼 때, 제1차세계대전(1914∼1918)은 동맹국(오스트리아‧독일‧투르크‧불가리아)과 협상국(러시아‧프랑스‧영국‧이탈리아‧미국)으로 나뉘어 치르게 되었고, 제2차세계대전(1939∼1945)은 연합국(영국‧프랑스‧미국‧중국‧소련)과 동맹국(독일‧이탈리아‧일본)으로 나뉘어 치르게 되었으며, 제3차세계대전(1950∼1953)은 공산진영(북한‧중공‧소련)과 민주진영(남한‧16개국의 유엔군)으로 나뉘어 한반도에서 치르게 되면서 매듭짓게 되었으니, 북한의 김일성 주석이 수행한 각본 자체는 악역(惡役)이지만 인류역사를 출발시킨 첫 조상가정의 실수를 처음과 끝으로 한반도에서 종결지을 수밖에 없는 민족적 숙명이었다는 것이 섭리적 심판이다.
   또한 북한정부를 출범시킨 김일성 주석의 전생(前生)은 인류역사를 출발시킨 첫 조상가정의 장남인 '가인'이기 때문에 예로부터 장남은 부모 대신의 위치를 차지하게 되듯이 북한의 동포들로부터는 '어버이 수령'으로 모심을 받으면서 반세기 동안 북한을 통치한 정치지도자로서, 또 하나의 섭리적 각본으로는 다음 장에서 소상하게 밝히겠지만 구약시대에 역사상 처음으로 천사를 주관했던 야곱을 죽이려고 칼을 갈았던 정치적 '에서'의 각본을 수행하다보니 조국통일의 꿈을 이루기 위한 목적으로 가공할 전쟁무기 생산에 박차를 가했던 것이다.
   그러나 달도 차면 기우는 법, '에서노정'의 정치적 각본을 다하였기에 1994년 7월에 세상을 떠나게 됨으로써 제1세시대(부모시대)의 정치적 에서노정은 막을 내리고 북한의 정치적 '에서노정'은 제2세시대(자녀시대)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부자세습으로 계승하게 되었는데 지금은 제3세시대(손자시대)의 에서노정을 준비하고 있는 실정이다.

 

 
윤보선 대통령(上), 장면 총리(中), 장도영 총장(下)  
   제1공화국을 출범시킨 이승만 정권이 1960년 4‧19유혈학생혁명으로 막을 내리고 허정 과도내각에 이어 내각책임제 개헌으로 1960년 8월에 민주당 정권이 국회에서 윤보선 대통령을 선출함으로써 명실공히 제2공화국이 출범하게 되지만, 제2공화국은 창업 때부터 갈등을 빚었던 신·구파의 알력이 결국 분당사태를 몰고 왔고 국민들은 데모로 날이 새고 날이 지는 혼란상태에 빠진 시국상황에서 1961년 5‧16군사혁명이 일어나게 되는데, 이 또한 윤보선 대통령의 전생(前生)과 무관치 않다는 것이다.
  제2공화국을 출범시킨 윤보선 대통령의 전생(前生)은 신라시대의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敬順王)으로서, 경순왕도 '왕건과 싸워 보았자 승산도 없을 뿐 아니라 무고한 백성들이 피만 흘리게 된다'는 판단에서 왕건에게 나라를 내주고 함께 하면서 태자 위에 가는 벼슬(정승)을 받았듯이, 윤보선 전 대통령께서도 5‧16군사혁명이 일어나자 '올 것이 왔다'고 하면서 받아들였고 실권은 없었지만 혁명정부에서 인정해주는 대통령의 직분도 어느 기간 동안은 유지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신라의 경순왕시대에도 부자일체였던 마의태자는 승복하지 않고 잃어버린 나라를 찾으려고 나름대로는 노력해 보았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말았듯이, 윤보선 전 대통령도 대통령직에서 물러나와 부자관계인 마의태자 노정으로서 민정회복(民政回復)을 하기 위해 대통령 선거에 두 번씩이나 출마를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말았으니 이 또한 우연일 수는 없다.
   역사를 들추어보면, 같은 나라는 아니지만 신라 제52대 효공왕(孝恭王)시대부터 등장하게 되는 궁예와 왕건의 묘한 관계는 역사의 수수께끼로서, 결국 왕건으로 하여금 경순왕시대에 신라까지 통합시키는 대업을 성취하는 데 있어서 궁예는 왕건이 궁지에 몰리게 될 때마다 구해주었을 뿐 아니라 왕건이 고려를 건국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주고 당시 태봉국의 장군들이었던 신숭겸‧홍유‧복지겸‧배현경 등이 의거하여 왕건(王建)을 임금으로 추대하자 궁예는 도망하다가 평강에서 피살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역사섭리노정을 그대로 재연한 것이 5‧16군사혁명을 일으킨 군부의 상황으로서, 장도영 육군참모총장의 전생(前生)은 궁예요 장면 국무총리의 전생(前生)은 후백제를 세운 견훤이며, 박정희 전 대통령의 전생은 왕건은 아니지만 왕건노정을 재연(再演)하게 되었는데, 신라의 경순왕도 견훤이 밀어주어서 임금이 될 수 있었듯이 윤보선씨가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것도 당시 민주당 신파의 좌장이었던 장면 총리(전생:견훤)가 밀어주었기 때문으로서 세 사람의 인연은 이때부터 전생과 직관되는 숙명노정(宿命路程)으로 이어지게 되며, 특히 장도영 참모총장과 박정희 소장은 군생활 내내 기묘한 인연의 끈으로 맺어져 오면서 여러 차례 위기에서 구해주게 된다.
   좀 더 구체적으로 알아본다면, 각본섭리(脚本攝理)를 알지 못하고는 납득할 수 없는 일이 당시 육군참모총장으로서 병권을 한 손에 쥐고 있던 장도영 총장은 박정희 소장으로부터 혁명계획을 얼마 전에 들었기 때문에 알고 있었지만 적극 가담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반대도 하지 않는 즉 용인(容認)하는 입장이었으며, 거사에 참여하고 있던 이종태 대령이 거사계획을 육군참모부의 장세현 중령에게 누설하였으므로 마음만 먹으면 박정희 소장 일파를 잡아들이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는데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고, 장면 총리가 쿠데타 설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자 장도영 총장은 '염려할 것 없다'고 큰 소리만 쳤다는 것이다.
   그런데 거사를 불과 몇 시간 앞두고는 비밀이 누설되자 반란주동자 체포 및 반란군의 진입저지를 명령하기도 했으나 5‧16군사혁명이 성공하자 얼굴마담 역할로서 국가재건최고회의의장직과 내각수반 겸 국방장관직까지 겸임하여 혁명내각을 발족시킴으로써 명실상부한 군사정권이 출범하지만, 20여 일만에 육군참모총장직분에서부터 계엄사령관‧국가재건최고회의의장‧내각수반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었을 뿐 아니라 1961년 7월 9일에는 장도영을 위시한 44명의 군간부가 '반혁명행위 및 박정희‧김종필 암살모의혐의'로 체포‧투옥되고 말았으며, 이때부터 박정희 소장을 중심한 육사 8기 출신의 김종필 세력이 혁명정부 주류로 등장하게 된다.이러한 정치적 우여곡절은 숙명으로 주어진 윤보선 대통령의 전생(前生)과 장도영 육군참모총장의 전생과 박정희 소장의 정치적 왕건노정이 서로 맞아떨어진 섭리적 숙명이기 때문에 인간의 힘이나 지략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해방 이후 한민족의 섭리적 숙명이었다는 것을 인지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제2공화국을 출범시킨 윤보선 대통령시대에 일어난 5‧16군사혁명이 자칫 잘못하였다면 아군끼리 피흘리는 유혈비극은 말할 것도 없고 호시탐탐 무력통일의 기회를 엿보던 북한까지 넘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만들어 민족적 유혈비극을 초래할 수도 있었는데, 전생(前生)의 인연으로 다시 만나게 된 윤보선 대통령과 장면 총리와 장도영 육군참모총장이 자기 일신상의 영달보다는 국가와 민족을 염려하는 우국충정(憂國忠政)으로 이루어진 무혈구국(無血救國)이었다는 것이 섭리적 심판이다.

 

 
박정희 대통령(上), 김종필 총리(下)  
   1961년 5‧16군사혁명으로 등장하게 되는 박정희 대통령의 전생(前生)과 육영수 여사의 전생은 고려 말기에 임금과 왕후로 등장했던 공민왕과 노국공주이다.
  고 박정희 대통령은 어려운 시대에 국가원수로 등장하여 민족적 숙원이었던 가난을 물리친 정치지도자로서 오랫동안 집권하면서 여러 가지의 정치적 각본을 수행하다보니 각본섭리(脚本攝理)를 알지 못하는 국민들로부터 '유신독재'라는 말을 듣기도 했지만, 神의 섭리를 알고 보면 인생은 운명과 숙명을 앞세운 연극이기 때문에 대통령이라고 하여 자기 뜻대로 살아갈 수 없는 일이다.
  한민족이 강대국(미국‧소련)들의 힘을 빌어 일본제국으로부터 해방은 되었지만 약소민족이 존재하기 위한 신사대주의(新事大主義)로써 북한은 소련의 사상적 속국이 되었고 남한은 미국의 문화적 속국으로 화해 버린 것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역사적으로 고찰하여 볼 때, 전생(前生)의 공민왕도 당시에 세력이 강했던 원나라의 그늘에서 살아야 하는 사대주의(事大主義)에서 벗어나기 위해 국가적으로 단행한 업적이 참으로 많듯이, 이를 직시한 현생(現生)의 박 대통령도 한민족의 정통성을 회복하기 위한 위인‧성현들의 추모사업으로서 충무공의 현충사, 최수운 대신사님의 유적, 윤봉길 의사의 충의사, 추사 김정희 선생의 고택, 곽재우 장군의 유적, 전국의 사찰‧서원‧향교의 보수 및 복원사업, 밀양아랑제, 신라고도의 정화사업 등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의 문화성업(文化聖業)을 수행했으며, 경제적으로는 민족적 숙원이었던 가난을 물리친 대통령이었지만 전생(前生)과 결부된 숙명(宿命)은 피할 수 없는 것이 인생이기도 하다.
   전생(前生)과 현생(現生)은 서로 뗄 수 없는 섭리적 숙명의 틀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전생의 공민왕과 현생의 박정희 대통령은 시대와 환경은 크게 달라졌지만 너무도 유사한 숙명의 인생열차를 타고 생을 마감했던 역사적 사실을 섭리적 차원에서 순차적으로 알아보기로 한다.
   첫째, 고려말기에 제31대 임금으로 등장하게 되었던 공민왕이 1351년 노국공주를 왕비로 맞이한 후 1365년까지 14년 기간에 도탄에 빠져 허덕이던 고려를 구하게 되지만 노국공주가 난산 끝에 피흘리며 세상을 떠난 후부터는 실정의 늪으로 빠지기 시작하다가 급기야는 가장 가까이서 왕을 모시던 환관 최만생에게 시해 당하게 된다.
   현생의 박정희 대통령도 선말후초(先末後初)시대에 국가원수로 등극하여 1961년부터 정권을 잡게 되면서 국모의 위치에 오른 육영수 여사의 보필을 받으며 1974년까지 14년 기간에 민족적 숙원이었던 가난을 물리치게 되었지만, 육영수 여사가 1974년 8‧15광복절의 저격사건으로 피흘리며 돌아가신 후 남모르는 고독의 늪으로 빠지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오른팔처럼 보필하던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에게 시해당하게 된다.
   둘째, 공민왕을 모시던 환관 최만생도 왕을 가까이 모시던 자제위 홍륜의 문제로 자기의 존립에 위협을 느끼게 되자 결국 자제위를 설득하여 술에 취해 자고 있는 공민왕을 시해하는 과정에서 확인사살까지 하여 놓고도 범행을 숨기려 했듯이, 전생(前生)이 최만생인 김재규 중앙정보부장도 박 대통령을 직접 보필하던 차지철 경호실장(전생:신돈)의 월권행위로 입지가 불안해지자 술자리에서 부하들을 설득하여 박 대통령을 시해하는 과정에서 확인사살까지 하여 놓고도 범행을 숨기려 했던 것이다.
   셋째, 공민왕 시대에도 노국공주가 세상을 떠난 직후부터 발탁되었던 신돈이 절대적인 신임을 받으며 6년 동안 국정을 전횡하였지만 결국은 참형당하는 비참한 말로를 맞이하였듯이, 박 대통령시대에도 육영수 여사가 별세한 직후부터 박종규 경호실장 후임으로 발탁된 차지철(전생:신돈)이 무조건적인 충성심으로 박 대통령의 신임을 받아 유신공화국의 '부통령'이라는 칭호를 받을 정도로 6년 동안 권세를 부렸지만 결국은 총탄에 쓰러지는 비참한 말로를 맞이했다.
   넷째, 공민왕시대에 국가적으로 크게 문제가 되었던 왕실반역사건으로서 충혜왕의 서출인 왕자 석기(釋器)가 원나라 황후의 힘을 등에 업고 이곳 저곳으로 도망다니면서 노골적인 왕실반역음모를 꾀하는 등 크게 문제가 되자 최영 장군이 자객을 보내서 처치해 버린 암살실종사건이 있었듯이, 박 대통령시대에도 크게 문제가 되었던 정부반역사건이 중앙정보부장을 6년이나 지낸 김형욱(전생:석기)이 박 대통령에 대한 역심을 품고 미국 등지로 도망다니며 반정부폭로를 하게 되므로 문제가 되자 중앙정보부장(김재규)이 정보원을 보내서 처치해버린 정치적 암살실종사건이 1979년 10월 7일 행방불명이 되어버린 김형욱 실종사건이다.
   다섯째, 전생의 시대에도 공민왕이 맞이했던 혜비 이씨가 속세를 떠났던 가슴 아픈 비구니 여생이 있었듯이, 현생의 시대에도 박 대통령 전처인 김호남 여인(전생:혜비 이씨)도 속세를 떠났던 가슴 아픈 보살 여생이 있었다.
   여섯째, 고려 말기에 풍문이 무성했던 공민왕과 신돈과 반야와의 관계에서 우왕의 혈통에 대한 열쇠를 가지고 있는 반야의 의문사와 유신말기에도 풍문으로 떠돌았던 박 대통령과 정일권 총리와 정인숙과의 관계에서 정성일 군의 혈통에 대한 열쇠를 가지고 있는 정인숙(전생:반야)이 한강변에서 총탄에 쓰러진 의문사는 본인이 아니고는 풀 수 없는 수수께끼로 남아져 있다.
   결론적으로 볼 때, 여말선초(麗末鮮初)시대에 임금과 왕후로 등장했던 공민왕과 노국공주의 정치적 비운노정을 선말후초(先末後初)시대에 국가원수로 등장한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가 재연하였기 때문에 전생(前生)을 알지 못하고는 함부로 말할 수 없는 일로서, 두 분의 예정된 비운노정은 지금부터 2000년 전에 하나님께서 후세인들에게 새롭게 약속하신 신약(新約)의 말씀(마 24/29)에도 비유와 상징으로 밝혀놓은 섭리적 숙명이라는 것이다.
   지금부터는 당시에 육군소장의 신분으로 5‧16군사혁명에 성공하여 대업을 성취하기까지는 김종필 전 총리가 절대적인 발판으로서 대들보 역할을 해주었기 때문인데 이에 대하여 잠깐 알아보기로 한다.
   고 박정희 대통령께서 1961년 5‧16군사혁명을 통해 국가원수로 등장하여 민족적 숙원이었던 가난을 물리쳤고 한민족이 강대국(미‧소)들의 힘을 빌려 일본제국주의로부터 해방은 되었지만 약소민족이 존재하기 위한 신사대주의(新事大主義)로써 북한은 구 소련의 사상적 속국이 되었고 남한은 미국의 문화적 속국으로 급속하게 변하는 상황에서 한민족의 정통성을 회복하기 위한 문화성업(文化聖業)을 수행하는 등 많은 업적을 남기게 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이렇게 고 박정희 대통령이 5‧16군사혁명에 성공함으로써 국가원수로 등극하여 한민족 역사상 어느 임금이나 대통령 못지 않게 큰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김종필 전 총리의 전생(前生)이 만고의 충신 계백장군으로서 국가와 민족 앞에 정치적 대들보 사명을 타고났기 때문에 고 박정희 대통령시대부터 제14대 대통령(김영삼)과 제15대 대통령(김대중)도 국가원수로 등극하고 정치적 안정을 찾기까지는 김종필 전 총리의 정치적 협조가 필요했던 것이다.
   아울러서 고 박정희 대통령께서 국가경제를 부흥시키는 데 크게 기여한 분이 박태준 전 포철회장인데 전생(前生)은 만고의 충신이었던 계백 장군과 동문수학했다고 알려진 흑치상지 장군으로서, 1961년 7월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박정희) 비서실장부터 시작하여 대한중석광업대표이사 사장, 포항종합제철대표이사 사장 등 국가발전에 중대한 업무를 수행하게 된 것은 박태준 전 포철회장이 세계적인 철강왕의 지상학적 운세를 타고났기 때문이다.

 

 

 
최규하 대통령  
   1960년도에 등장하여 겪었던 윤보선 대통령과도시대를 20년 후인 1980년도에 등장하는 최규하 대통령과도시대로 재연반복하게 되는데, 박정희 대통령시대에 국무총리였던 최규하 전 대통령의 전생(前生)은 고려의 공민왕시대에 반신(叛臣)이었던 기철(奇轍)을 없애고 1등 공신으로 부상하여 좌시중(左侍中)까지 지낸 경복흥(慶復興)이다.
   경복흥은 공민왕의 1등 공신으로 좌시중까지 지냈지만 강녕대군(우왕) 옹립에 반대했던 연유로 결국 청주에 유배되었다가 죽게 되었듯이 전생이 경복흥인 최규하씨도 전생이 공민왕인 박정희 대통령시대에 국무총리까지 지냈으며 서거하자 대통령까지 하게 되었지만, 전생이 우왕인 전두환 대통령시대부터 갈등이 시작되어 유배생활에 가까울 정도로 외출을 삼가했으며 때로는 정치꾼들이 당파싸움을 할 때마다 출두서를 보내고 서면질의를 하는 등 곤욕스럽게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끝까지 흔들리지 않고 전직 대통령으로서 품위와 소신을 지킨 정치지도자이며, 재임시에 일어난 1979년의 12‧12하극상거사를 군수뇌부들과 잘 처리하여 피흘리지 않고 국가와 민족을 구한 무혈구국(無血救國)의 정치업적을 남긴 과도시대의 대통령이다.
   결론적으로 볼 때, 해방 이후 한민족사 60년은 한 시대를 20년으로 하여 3차에 걸쳐서 재연반복(再演返復)하게 된 섭리사(攝理史)이기 때문에 제1세시대(1948∼1967)에도 군사정권의 등장으로 윤보선 과도대통령시대가 있었고, 제2세시대(1968∼1987)에도 군사정권의 등장으로 최규하 과도대통령시대가 있었으며, 제3세시대(1988∼2007)에는 1999년 7의 달에 '공포의 대왕' 강림에 의한 신군정(神軍政) 등장으로 김대중 과도대통령시대가 있었는데 영적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인간들이 알지 못하고 있을 뿐이지 영적인 섭리는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정치적 격변기의 1960년과 1980년의 군정등장 순차도표
 
1960년초 군정등장과 대통령 과도시대
1980년초 신군정등장과 대통령 과도시대
군정등장과 민주당정권 종막
신군정등장과 공화당정권 종막
윤보선 대통령 과도시대
최규하 대통령 과도시대
정치군인 노장파와 소장파의 세력다툼
(반혁명사건)
정치군인 노장파와 소장파의 세력다툼
(12‧12거사)
장도영 계엄사령관 조기민정이양 주장
정승화 계엄사령관 민간민선정치일정 지지
장도영 총장 하극상 사건으로 실추
정승화 총장 하극상 사건으로 실추
이한림 야전사령관 체포거세사건
이건영 3군사령관 체포거세사건
강영훈 육사교장 체포거세사건
장태완 수경사령관 체포거세사건


 
전두환 대통령(上), 권정달 의원(下)  
   제5공화국을 출범시킨 전두환 전 대통령의 전생(前生)은 고려 말기에 제32대 왕으로 등극했던 우왕이며, 전생관계로 본다면 고 박정희 대통령(공민왕)과 전두환 전 대통령(우왕)과는 부자(父子)의 관계로서 전생노정(前生路程)은 곧 숙명노정(宿命路程)이기 때문에 인간의 힘으로는 비껴갈 수 없다는 것을 서로 비교하여 가면서 순차적으로 알아보기로 한다.
  첫째, 공민왕도 세자인 우(禑)를 궁중으로 불러들여 기르게 하면서 강녕대군으로 봉하는 등 배려를 하였기 때문에 공민왕의 시해사건으로 왕권세습의 위기 상황에서 제32대 우왕(1374∼1388)으로 등극할 수 있었듯이, 박 대통령시대에도 양아들로까지 알려진 전두환 소장을 비롯한 육사 11기 출신들에게 크게 기대를 걸고 청와대 가까운 곳으로 불러들여서 경호실‧보안사‧수경사‧특전단 등 수도권의 요직에 배치하여 놓았기 때문에 10‧26사태로 전개된 일련의 정치적 상황에서 육군소장의 신분으로 급기야는 대통령까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둘째, 고려 말기에도 공민왕의 갑작스런 승하로 서자 출신의 강녕대군(우)이 9세의 어린 나이로 국정수행에 대한 준비도 없이 32대 왕으로 등극한다는 것은 사실상 어려운 일이었는데 이인임‧임견미‧염흥방 등의 강력한 주장으로 왕위에 오르게 되었듯이, 유신 말기에도 박 대통령이 갑작스럽게 승하함에 따라 정치적으로는 서자 입장이기도 한 육군소장 출신으로 국정수행의 준비도 없이 대통령으로 등극한다는 것은 사실상 어려운 일이었는데 전생이 3인방(이인임‧임견미‧염흥방)으로서 보안사의 직속이었던 권정달‧허삼수‧허화평 등의 절대적인 지지로 등극할 수 있었다.
   셋째, 우왕도 친원파들의 강력한 주장으로 등극은 하였지만 친명파들이 왕권세습의 혈통자체를 인정하지 아니하였듯이, 전두환 대통령도 지지세력을 앞세워 두 차례에 걸친 체육관 선거(11대‧12대)로 제5공화국을 출범시켰기 때문에 야권인사들과 민주화를 열망하는 국민들로부터는 정통성 시비가 그칠 날이 없었다.
   넷째, 우왕을 옹립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었던 이인임‧임견미‧염흥방 등이 우왕으로부터 우대를 받으며 권세를 잡고 한 때 조정을 좌지우지하였듯이, 전두환 대통령시대에도 '12‧12거사' 때부터 제5공화국 출범까지 전생의 3인방(이인임‧임견미‧염흥방)으로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었던 권정달‧허삼수‧허화평 등이 전 대통령의 신임을 받으며 한 때 국정을 좌지우지할 정도로 영향력을 행사했던 것이다.
   다섯째, 우왕시대에도 최영 장군이 문하시중으로서 실권을 잡고 정사를 좌지우지하면서도 우왕에 대한 군신지간의 충정을 다했으며 우왕이 위기에 처하자 목숨까지 당당하게 바쳤듯이, 전두환 대통령시대에도 장세동 안기부장(전생:최영 장군)이 한 때 실세로 부상하여 국정수행에 영향력을 행사하면서도 전 대통령에 대한 군신지간의 충정을 다했으며 5공청산문제로 형무소를 가면서도 당당하게 갔던 것이다.
   여섯째, 우왕이 폐출되고 아들인 창왕이 왕위에 오르게 되었지만 친명파가 득세한 조정공론 때문에 우왕은 강화도‧여주‧강릉 등지로 유배를 갈 수밖에 없었고 유배생활은 최영 장군의 딸인 영비 최씨와 함께 하였듯이, 전두환 대통령도 임기 후 정치적 적자라고 할 수 있는 노태우 대통령이 등극하게 되었지만 여소야대의 정국상황에서 국회와 국민들의 여론에 밀려 강원도 백담사로 유배를 갈 수밖에 없었고 유배생활은 이규동 장군의 딸인 이순자 여사(전생:영비)와 함께 했던 것이다.
   일곱째, 우왕이 강릉 유배지에서 처형당하게 될 때 지신사(도승지)가 우왕에게 '신우(辛禑)는 왕족이 아니고 신돈의 자식으로서 많은 사람을 죽였으므로 처형한다'고 왕명을 내리자 용비늘의 증표까지 보이며 신돈의 혈통을 강력히 부인하며 지신사를 통해서 내려지는 죄명을 수용하지 아니했지만 결국 처형당했듯이, 전두환 전 대통령도 2년의 유배생활을 마치고 온 후 또다시 1995년 말에 내란목적과 살인죄 등 여러 가지의 죄목으로 안양구치소에 수감시키려 하자 이에 불복하여 골목성명을 발표했을 뿐 아니라 수감된 후에도 28일 동안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하면서 5공화국을 이끌어온 대통령으로서의 당위성을 주장했던 것이다.
   이렇게 해방 이후 한민족사 60년(1948∼2007)은 이미 짜여진 각본섭리사(脚本攝理史)로서 이 시대를 이끌어갔던 정치지도자들은 전생(前生)의 인연으로 다시 만나서 연기(演技)를 하게 된 배우(俳優)에 불과하기 때문에 ‘인생은 연극’이라고 한 것이다.

 

 
노태우 대통령(上), 정호용 의원(下)  
    제6공화국을 출범시킨 노태우 전 대통령의 전생(前生)은 고려 말기에 제33대 임금으로 등극했던 창왕이다.
  윤회환생(輪廻還生)으로 이어지는 전생노정(前生路程)은 곧 숙명노정(宿命路程)으로서, 인간의 힘으로는 비껴갈 수 없기 때문에 창왕의 정치노정을 노태우 대통령이 그대로 재연(再演)하게 되었던 두 시대를 서로 비교하여 보면서 순차적으로 알아보기로 한다.
  첫째, 고려말기의 창왕도 왕권계승은 우왕의 모든 기반을 그대로 물려받게 되는 부자세습으로 이루어졌을 뿐 아니라 두 사람 다 '9세'라고 하는 같은 나이에 32대와 33대의 임금이 되는 동세등극(同歲登極)하였듯이, 5공말기의 노태우씨도 전두환 전 대통령의 정치기반을 그대로 물려받게 되는 부자세습처럼 이루어졌을 뿐 아니라 두 사람 다 육사 11기의 동기생으로서 한 사람은 제5공화국 대통령으로, 한 사람은 제6공화국 대통령으로 등극하는 동기등극(同期登極)을 하게 된 것이다.
   둘째, 창왕이 친명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우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장군 출신의 조민수가 창왕 옹립을 강력하게 주장했을 뿐 아니라 당대의 유학자였던 이색까지 동조했기 때문에 이루어졌듯이, 노태우씨가 5공말기에 급부상한 장세동 안기부장과 노신영 총리를 물리치고 전 대통령의 후계자로 발탁될 수 있었던 것은 장군 출신의 정호용 내무부장관(전생:조민수)이 박종철 군 고문치사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날 때 소위 '물귀신작전'으로 장세동 안기부장과 노신영 총리와 함께 퇴진하면서 노태우씨를 강력하게 지지했을 뿐 아니라 언론인 출신의 김윤환씨(전생:이색)의 절대적인 동조가 있었기 때문이다.
   셋째, 고려말기의 창왕도 근비 이씨 사이에서 태어난 정통적인 왕자인데도 친명파에서는 우왕부터 왕씨가 아닌 신씨라는 이유로 정통성 시비가 계속되었을 뿐 아니라 친명파 세력 때문에 어린 창왕으로서는 자기 뜻대로 정사를 펴나갈 수 없었듯이, 6공화국을 출범시킨 노태우 대통령도 직선제로 당선된 엄연한 민선대통령이지만 야권 인사들과 운동권 학생들이 5공과 6공을 한데 묶어서 정통성시비는 계속되었으며 여소야대의 정국 때문에 자기 뜻대로 정사를 펴나갈 수 없었다.
   넷째, 여말선초시대에도 부자세습으로 어린 창왕에게 왕권은 넘어갔지만 우왕이 내심으로는 어느 한 날 이성계를 물리친 다음을 구상했던 친정(親政) 가까운 상왕구상 즉 옥상옥(屋上屋)의 구상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듯이, 제6공화국시대에도 전생관계로 본다면 부자세습으로 노태우 대통령을 등극시켰기 때문에 퇴임 후 상왕의 입장에서 국가자문위원장‧민정당명예총재‧일해연구소 등으로써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던 전두환 전 대통령의 '옥상옥' 구상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다섯째, 창왕 등극시에 반대세력을 물리치고 창왕 옹립에 결정적인 공헌을 하였던 장군 출신의 조민수가 창왕시대부터 반대세력에 밀리기 시작하여 두 번씩이나 유배를 가게 되었을 뿐 아니라 결국은 유배지에서 사망하고 말았듯이, 노태우 대통령 등극시에 장군 출신의 정호용씨(전생:조민수)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지만 노 대통령 집권시부터 밀리기 시작하다가 1차적으로는 국회의원 사퇴를 하였고 2차적으로는 재출마과정에서 후보사퇴 6일만에 2년여의 외유노정(유배생활)을 떠나게 되었을 뿐 아니라 결국은 형무소까지 가게 되었던 것이다.
   여섯째, 고려 말기의 우왕과 창왕시대에도 친원파의 마지막 보루인 최영 장군이 실각하고 이성계의 독주를 견제하던 권문세족의 마지막 보루인 조민수마저 대사헌 조준의 탄핵을 받아 실각하였으며 창왕 옹립에 크게 기여했던 이색까지 물러나게 됨으로써 공민왕부터 시작하여 우왕‧창왕까지 이어졌던 3대에 걸친 왕권계승은 사실상 막을 내리게 되었듯이, 전생노정으로서 이를 재연(再演)하게 되었던 5공과 6공도 노 대통령시대에 '5공청산'의 탄핵으로 장세동 안기부장(최영 장군)이 구속되고 정호용 의원(조민수 장군)이 의원직을 사퇴하였으며 김윤환 의원(이색)까지 대세론을 주장하면서 3당합당 때 합류하게 된 김영삼씨를 지지하게 됨으로써 박 대통령(공민왕)부터 시작된 군정맥락 3대는 사실상 이때부터 막을 내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일곱째, 고려말기의 창왕시대에도 창왕을 보필하고 있던 친명파 세력들이 우왕시대에 조정에서 왕을 보필하고 있던 충직스러운 신하들을 우왕과 함께 무더기로 숙청시킴으로써 창왕까지도 서야할 땅을 잃어버리게 되었듯이, 이를 재연(再演)했던 제6공화국시대에도 노 대통령이 6공실세들의 권유를 받아들여 '5공정권과는 차별화한다'는 명분으로 국회의원 공천에서 권정달‧권익현‧정석모‧이상희‧김숙현‧김종기‧윤길중‧봉두완‧이재형‧김상구‧나석호 등 5공 핵심의원 28명을 무더기로 탈락시킴으로써 소위 '금요일의 대학살'이라는 신조어가 나오게 되었는데, 그 결과 '여소야대'의 정국을 초래하게 되면서 노태우 대통령이 서야할 정치기반까지 상실하고 말았던 것이다.
   여덟째, 고려말기의 왕권계승도 공민왕이 제31대 임금으로 등장하여 우왕·창왕까지 3대는 같은 혈통으로 왕권계승이 이루어졌지만 공양왕부터는 혈통이 다른 왕씨로 왕권계승이 이루어지게 되었듯이, 이를 재연(再演)하게 되었던 제6공화국시대의 대권계승도 박정희‧전두환‧노태우 대통령까지 3대는 군인맥락으로 계승되었지만 김영삼 정권부터는 대통령의 맥락이 다른 문민정권으로 대권이 계승되었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섭리적 차원에서 볼 때, 제6공화국의 결실은 제5공화국부터 준비해온 '88올림픽'으로서, 1980년의 제22회 모스크바올림픽이나 1984년 23회 미국의 L‧A올림픽은 공산진영과 민주진영만 참석하는 반쪽대회로 끝났지만 제24회 서울올림픽은 공산진영과 민주진영 거의가 참석한 세계대회였으며, '88올림픽'이 섭리적으로는 이땅에 새시대 즉 하나님 나라를 열 수 있는 '아마겟돈전쟁'이기도 했다는 것이다.

 

 
김영삼 대통령(上), 박철언 의원(下)  
   김영삼 전 대통령의 전생(前生)은 기독교의 초석으로 알려진 바울 선생이다. 바울 선생은 율법학교에서 정상적인 과정을 마친 학구파로 초년입지는 좋은 편이었지만 종교를 기독교로 개종한 후부터는 파란만장하였듯이, 김영삼 전 대통령도 국가적으로 유명한 서울대 출신으로서 초년입지는 평탄했지만 정치를 여당(자유당)에서 야당(민주당)으로 옮긴 이후 야당정치인의 초석으로 정치적 파란을 겪다가 급기야는 군정맥락의 여당과 합류하여 문민정권을 창출시킨 정치지도자이다.
   야당정치의 초석으로 파란만장 끝에 제6공화국 1기를 출범시킨 김영삼 대통령에게 시대적으로 주어진 정치적 숙명노정은 노태우 전 대통령(전생:창왕)의 뒤를 이어 여말선초(麗末鮮初)시대의 마지막 임금인 공양왕의 정치노정과 일면으로는 공양왕시대부터 실권을 잡고 정치를 했던 이성계의 정치적 각본도 수행하면서, IMF로 막을 내렸던 정치적 숙명노정을 순차적으로 알아보기로 한다.
   첫째, 고려의 마지막 충신 정몽주가 고려의 운명을 구하기 위해 이성계 일파를 제거시키려 했으나 오히려 이성계 일파에게 거세당하고 말았듯이, 전생(前生)이 창왕으로서 제6공화국을 출범시킨 노태우 대통령시대에 여소야대의 정국상황에서 전생(前生)이 정몽주인 박철언 의원이 여당의 핵심세력으로 급부상하기 시작하여 3당합당의 실무를 맡아 크게 기여하면서 제6공화국 정부를 끝까지 지키기 위해 야당의 거두 김영삼 총재를 거대 여당의 용광로에서 무력화 내지는 고사시키려 했지만 오히려 이성계의 정치적 각본을 수행하던 김영삼 대통령시대에 거세당하여 철장신세를 지게 되었으니 인간의 지략으로 섭리를 거스를 수는 없는 일이다.
   둘째, 여말선초(麗末鮮初)시대에도 이성계 세력에 의해 고려의 제32대 우왕과 제33대 창왕이 제34대 임금인 공양왕시대에 처형당하는 국가적 비극을 초래하였듯이, 제6공화국 1기의 김영삼 대통령시대에도 공양왕과 이성계노정을 동시에 수행하다보니 제5공화국을 출범시킨 대통령(전두환)은 1995년 12월 3일 안양교도소에, 제6공화국을 출범시킨 대통령(노태우)은 1995년 11월 16일 서울구치소에 수감되는 국가적 비극을 초래하게 된 것이다.
   셋째, 여말선초의 공양왕시대에도 이성계 세력에 의해 관제개혁을 시발로 하여 사전전적을 불태워버리는 토지개혁 등 여러 가지의 개혁을 단행하였듯이, 선말후초(先末後初)의 김영삼 대통령시대에도 금융실명제‧부동산실명제‧공직자재산등록제 등 여러 가지의 개혁을 단행했던 것이다.
   넷째, 여말선초시대에도 이성계 일파가 구세력을 뿌리뽑기 위해 고려의 유신들 중에서 대표적인 문신(文臣) 72현과 무신(武臣) 48인을 불태워 죽이고 왕씨들은 배에 태워서 수장시키는 등 끔찍스러운 인재몰살(人災沒殺)사건이 연이어졌듯이, 여말선초시대를 재연했던 선말후초의 김영삼 대통령시대에도 1993년 10월 10일 서해 페리호침몰로 인한 292명 수장사망(왕씨 수장), 성수대교붕괴로 32명 사망, 대구지하철공사 가스폭발로 100명 사망, 5‧6공 고위인사로서 박준규‧김재순‧유학성‧박태준 등 문신대거숙청, 5‧6공 신군부세력과 연관된 하나회 출신 무신 30여 명 거세, 1995년 6월 29일 삼풍백화점 붕괴로 500명 몰살 등 끔찍스러운 인재몰살사건이 연이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다섯째, 고려말기의 공양왕 부자도 강원도로 귀양가던 중 사약이 내려지자 함께 자결하고 말았듯이, 제6공화국 1기를 출범시킨 김영삼 대통령부자도 내심으로는 차기를 생각하며 정치적 꿈을 키우던 아들(김현철)은 알선축재비리로 감옥을 가게 되었고 아버지(김영삼)는 대권계승자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자초한 당권문제로 타의에 의해 탈당까지 하게 되었으니 이는 정치적 몰락으로서 부자(김영삼‧김현철)가 함께 자초한 정치적 자결이기도 하다.
   여섯째, 여말선초시대의 공양왕도 국운이 다하였기에 결국 나라를 말아먹은 망국지주(亡國之主)로서 막을 내리고 말았듯이, 선말후초시대의 김영삼 대통령도 물질문명 위주의 20세기는 시운이 다하여 가기 때문에 경제적 국가부도로 1997년 12월 3일 국제통화기금에 구제금융을 신청하는 IMF로 국가경제를 말아먹은 망국지주(亡國之主)로 막을 내리게 되었던 것이다.
   일곱째, 여말선초시대에도 475년의 뿌리깊은 왕씨왕조가 막을 내리고 이씨왕조로 바뀌는 역성혁명(易姓革命)이 일어났듯이, 선말후초시대에도 1961년 5‧16군사혁명 이후 36년 동안 경상도를 뿌리로 했던 정권이 전라도를 뿌리로 한 김대중 대통령이 등장하게 되는 역지역혁명(易地域革命)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부언한다면, 동서양을 망라한 오늘까지의 인류역사 6000년을 선천시대(先天時代)라 하고 동서양을 망라한 서기 2000년 이후 영원히 이어지게 될 시대를 후천시대(後天時代)라고 하는데, 고려왕조시대는 끝이 나고 조선왕조시대가 시작되는 여말선초(麗末鮮初)시대는 고려왕조의 우왕시대부터 공양왕시대까지의 18년을 뜻하고, 해방 이후 한반도에서 한민족을 중심삼고 60년에 걸쳐서 인류역사 6000년을 결산하는 성약섭리사(成約攝理史)가 엮어지고 있는 현시대의 선말후초(先末後初)시대는 전두환 대통령시대부터 김영삼 대통령시대까지의 18년을 뜻한다.
   결론적으로 볼 때, 선천시대(先天時代) 6000년의 결실은 20세기를 주도한 물질문명이라면 서기 2000년 이후부터 영원히 이어지게 될 후천시대(後天時代)를 주도하게 될 문명은 정신문명이기 때문에 선말후초(先末後初)시대에 한 시대를 매듭짓게 되는 정치지도자로서, 앞으로 물질문명의 시대는 막을 내리고 21세기를 주도하게 될 정신문명의 시대가 도래하게 된다는 섭리적 징조가 1997년의 IMF인데, 내적인 무지로 神의 섭리를 알지 못하는 인간들로부터는 정치를 잘못한 IMF 대통령으로 인식되어 있는 실정이다.

 

 
김대중 대통령  
     제6공화국 1기의 문민정권을 창출했던 제14대 대통령에 이어 제6공화국 2기를 출범시킨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전생(前生)관계로 인하여 대선에서 세 번이나 낙선하고 네 번째에 당선될 수 있었고 IMF로 인하여 국가적으로 불안했던 상황이었지만 정국을 안정시킬 수 있었던 것은 3김(김영삼‧김대중‧김종필)시대에 전생(前生)이 만고충신이었던 계백 장군의 윤회환생(輪廻還生)으로 이땅에 오게 된 김종필 전 총리를 정치적 동반자로 맞이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치적 상황은 고 박정희 대통령은 말할 것도 없고 제14대 대통령도 마찬가지로서 전생(前生)이 만고의 충신이었던 계백 장군(김종필)을 정치적 동반자로 맞이한 덕분인데, 야속한 현실정치판에서 두 번씩이나 토사구팽(兎死狗烹)을 당하게 되면서 '충청도 핫바지'라는 유행어를 남기기도 했던 것이다.
   3전4기(三顚四起)로 등장한 제15대 대통령은 지금부터 2000년 전에 유대나라로 오셨던 예수님께서 내적으로 무지한 인간들의 불신으로 이땅에 지상천국(하나님 나라)을 건설하지 못하고 돌아가시면서 '땅에서 풀어야 하늘에서도 풀 수 있다'고 하시며 천국문 열쇠를 수제자였던 베드로에게 주시고 돌아가시게 되었는데, 6공화국 2기를 출범시킨 김대중 대통령의 전생(前生)이 바로 예수님으로부터 천국문 열쇠를 받은 베드로이다.
   인간세상에서 너무도 중요한 윤회환생(輪廻還生)의 근본진리를 정립하신 석가께서 밝혀놓은인과경(因果經)』에 의하면 '전생(前生)을 알고자 하면 현생(現生)에 받고 있는 그것을 보면 알 수 있다'고 하였으니 신앙적으로 파란만장했던 전생(前生)의 베드로와 정치적으로 파란만장했던 현생(現生)의 김대중 전 대통령이 걸었던 정치노정을 서로 비교해 가면서 알아보기로 한다.
   첫째, 전생(前生)의 베드로도 어부에서부터 출발하였으나 내적인 종교에 귀의하여 일생을 바치게 되었듯이, 현생(現生)의 김대중 전 대통령도 해운업(海運業)·조선업(造船業)에서부터 출발하였으나 외적 정치에 귀의하여 일생을 바치게 된 것이다.
   둘째, 전생(前生)의 베드로도 '산헤드린'이라고 하는 정부기관과 직관된 유대관원들로부터 모진 고난을 받다가 결국은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게 되는 형극의 길을 가게 되었듯이, 현생(現生)의 김대중씨도 정부기관인 정보요원들로부터 모진 고문을 받았을 뿐 아니라 급기야는 일본에서 납치되어 수장(水葬) 직전까지 갔으며, 제5공화국시대에는 반공법과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대법원에서 사형선고를 받는 등의 형극의 길을 가게 되었던 것이다.
   셋째, 전생(前生)의 베드로가 하나님의 실체로 등장하신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부인한 것은 곧 하늘을 세 번 배반한 결과로서, 현생의 김대중 전 대통령도 '민심(民心)은 곧 천심(天心)'이라고 하였는데 국회의원 선거는 뒤로하고라도 대통령선거에서 실체의 민심(천심)으로부터 세 번씩이나 배반당하고 네 번째에 당선되는 삼전사기(三顚四起)를 하게 된 것도 전생(前生)의 업보를 알지 못하고는 풀 길이 없는 일이다.
   넷째, 제15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후의 정치적 업적으로는 IMF를 극복했고 남북정상회담 성사와 한·일월드컵을 개최하여 4강신화를 이룩했으며 노벨평화상까지 받았지만 언론으로부터도 비판적이었으며 특히 야당 정치인들로부터는 비판의 대상이 되었던 것은 평생동안 야당정치를 하다보니 고 박정희 대통령시대부터 옳은 정책까지도 반대논리를 세워 정부여당을 비판만 했던 현생(現生)의 업보 때문이다.
   이러한 현생(現生)의 업보로 인하여 국가적으로 치르게 된 천재탕감(天災蕩減)도 적지 아니한데 이에 대하여 잠깐 언급한다면, 섭리적으로 큰 뜻이 있는 2002년 6월 한‧일월드컵을 성공리에 끝낸 후 국가를 책임진 대통령으로서 나라살림을 하기 위한 총리인준과정에서 1차의 장상(張裳)총리임명동의안과 2차의 장대환(張大煥)총리임명동의안을 부결시키는 야대여소의 정쟁(政爭)을 주로 경상도에 뿌리를 둔 한나라당이 당시 이회창 총재를 필두로 하여 감행하였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1차의 장상총리임명동의안을 2002년 7월 31일 야대여소의 정쟁(政爭)으로 부결시킨 3일만인 2002년 8월 4일의 집중호우로 인하여 4,000여 억의 재산피해를 냈고, 2차의 장대환총리임명동의안을 2002년 8월 28일 야대여소의 정쟁(政爭)으로 부결시킨 3일만인 2002년 8월 31일 하루 강우량 870.5mm가 내린 강릉시를 비롯해서 김해‧합천‧함안‧김천 등이 특별재해구역으로 선포되었으며 221명의 인명피해와 피해복구액이 5조원을 훨씬 넘는 건국이래 최악의 비폭탄 천재(天災)를 놓고 위정자들은 '까마귀 날자 배 떨어졌다'고 하겠지만, 섭리적으로 볼 때는 제15대 대통령(김대중)의 현생(現生)업보와 연관된 야대여소의 정쟁(政爭)이 몰고 온 박재(雹災)이기도 하지만 이면에는 선지자(두 증인)의 지상진리(地相眞理)를 외면함으로써 한민족주인사상(韓民族主人思想)을 국가적 차원에서 정립하지 못한 역천재앙(逆天災殃)이 더 크게 작용한 것이다.
   다섯째, 전생관계로 볼 때 제6공화국 1기와 2기를 출범시킨 제14대 대통령(김영삼)과 제15대 대통령(김대중)은 전생의 동지(바울·베드로)로서, 평생동안 정치적 경쟁상대이면서도 민주화 투쟁의 동지요 예수님을 중심한 신앙의 동지로서 선말후초(先末後初)시대에 정치지도자로 등장하여 한 분은 물질문명시대 종막의 징조로서 IMF를, 한 분은 정신문명시대 개막의 문을 2002년 한‧일월드컵을 통해서 열게 되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한다면, 2002년 6월의 한‧일월드컵이 국가적으로 볼 때는 4강신화를 이루게 된 축구혁명으로 인식되어 있지만, 섭리적으로 볼 때는 이땅에 지상천국(하나님 나라)의 관문을 열기 위해 시련과 은사의 사명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神적 존재 즉 적그리스도(요일 2/18)가 '붉은 악마'의 이름으로 한‧일월드컵을 통해 세계적으로 출정식을 하였기 때문에 김대중 전 대통령은 천국문 열쇠를 받은 베드로의 환생으로서 일단은 책임을 한 것인데, 이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의 김대중 대통령 업적 편에서 밝히기로 한다.

 

 
   제6공화국 1기를 출범시킨 김영삼 전 대통령의 전생(前生)은 사도 바울이었지만 정치적 숙명으로 주어진 공양왕의 노정을 가면서 일면으로는 조선왕조를 건국한 이성계의 정치적 각본도 수행하였듯이, 제6공화국 2기를 출범시킨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전생(前生)은 예수님으로부터 천국문 열쇠를 받은 베드로로서 전생으로 주어진 정치적 사명은 수행했지만, 조선왕조시대에 가장 큰 업적을 남긴 세종대왕의 성군정치(聖君政治) 업적으로 남아진 훈민정음보다 더한 한민족주인사상(韓民族主人思想)을 국가적 차원에서 확립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한민족주인사상(韓民族主人思想)'이란 북한에서 주장하는 주체사상(主體思想)과는 근본이 다른 내용으로서,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들이 몸담고 살아가는 지구를 오대양 육대주로 창조하시면서 세계는 무형(無形)으로 존재하는 삼천사세계(三天使世界)의 형상실체(形相實體)이자 짐승들의 모양으로 창조했고 한반도는 무형으로 존재하는 하나님의 형상실체(形相實體)이자 인간형상(人間形相)으로 창조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지상학적인 사실은 초등학교를 다니는 어린 학생 때부터 세계지도를 펴놓고 공부하게 되면 세계의 地相은 동물형상으로 창조되어 있고 한반도의 地相은 인간형상으로 창조되어 있다는 것이 한 눈에 들어오게 되어 있는데, 地相에 대한 지식이나 상식이 전무하다보니 연결을 못하고 있을 뿐이지 세계각국의 어느 나라 사람이 보아도 부정할 수 없는 지구창조의 기본법식(基本法式)으로서, 짐승들의 세계는 만물지영장으로 창조받은 우리 인간이 주인으로서 이끌어가게 되는 것도 너무나 당연한 기본 상식이다.
   다시 말해서, 세계지도를 펴놓고 보면 세계는 24동물형상으로 창조되어 있고 유일하게 한반도는 인간형상으로 창조되어 있기 때문에 인간형상으로 창조된 동양의 한반도에서 살고 있는 한민족이 주인의식을 가지고 서양에서 발동된 물질문명의 터 위에 정신문명을 발동시킴으로써 21세기를 이끌어가게 된다는 것이 한민족주인사상(韓民族主人思想)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인간형상의 한반도에서 살고 있는 한민족이 서양에서 발동된 물질문명을 앞세운 강대국(미국‧소련)들 때문에 일어난 조국분단 반세기만에 이질민족으로 변해버린 남한과 북한의 현재 상황은 민주와 공산이라는 체제도 다를 뿐 아니라 북한은 한민족의 뿌리로서 단군조상을 받드는 국가적 이념과 공산주의사상을 바탕으로 하여 정립한 주체사상(主體思想)을 국가적 사상으로 주장하고 있는 실정이다.
   반면에 남한은 종교의 자유천국으로서 세계의 모든 종교가 남한에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있기 때문에, 종교마다 각이한 종교사상의 난립과 서양의 물질문명 풍조에 젖어 황금만능주의를 구가(謳歌)하고 있는 남한과 북한은 어느 것 하나 공통분모를 찾을 수 없는 것이 부정할 수 없는 사실로서, 1999년 11월 9일부터 16일까지 평양을 방문하고 돌아온 당시 고려대학교의 김정배(金貞培) 총장이 기자회견을 통해 밝힌 바 있듯이, '현재로서는 단군 문제가 아니고는 남한과 북한의 공통분모를 찾을 길이 없다'고 했던 것이다.
   남북교류를 적극적으로 추진하려 했던 김대중 정권이 이를 받아들였기에 단군문제에 관한 학술적인 서적을 필요로 하는 정부기관과 자연스럽게 연결이 되었던 저희가 때를 맞추어 이러한 내용의 책자(『세계의 地相과 인간개벽』)를 2000년 4월에 발간하여 인편으로 청와대까지 전달되었고 청와대에서는 두 차례에 걸쳐 저자 확인까지 하였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까닭도 모르게 무위로 끝나고 말았으며, 훈민정음에 버금가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한 정치지도자의 업적사명은 세종대왕처럼 성군정치(聖君政治)를 하게 될 정치지도자의 몫으로 남아지게 된 것이다.
   차제에 국가와 민족을 이끌어가는 정치지도자들에게 하소연한다면, 필자로서는 참아내기 힘들었던 21년의 각고 끝에 중보자를 통해 거듭나게 되면서 천지이치를 깨닫게 되었고, 이때부터 신탁(神託)을 받고 계시로 찾아 세운 지상진리(地相眞理)가 바로 '한반도는 무형으로 존재하는 하나님의 형상실체이자 인간형상으로 창조되었고 세계는 무형으로 존재하는 삼천사세계의 형상실체이자 24동물형상으로 창조되었다'는 신비(神秘)로서,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알 수 있는 창조신학(創造神學)이기도 하기 때문에 선대로부터 분단된 조국강토를 유산으로 물려받은 우리에게는 조국통일의 관문을 여는 데 더 없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한반도는 무형으로 존재하는 하나님의 형상실체이자 인간형상으로 창조하였고 세계는 무형으로 존재하는 삼천사세계의 형상실체이자 24동물형상으로 창조되었다'는 지상진리(地相眞理)는신약성서』의 요한계시록(19/4)에 '또 이십사장로(24동물형상으로 창조된 세계의 지상)와 네 생물(인도네시아의 지상)이 엎드려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인간형상이자 하나님 형상실체로 창조된 한반도 지상)께 경배하여 가로되 아멘 할렐루야 하니'라고 분명하게 밝혀놓았다는 것이다.
   한 피를 이어받은 단일민족으로서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한민족이 조국분단 반세기만에 이질민족으로 변해버린 현 상황에서 조국통일의 공통분모를 찾을 수 있는 합당한 길이 있다면 다음의 네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남북한의 7000만 동포들이 거부감 없이 환영하며 받아들일 수 있는 지상학(地相學)을 바탕으로 한 한민족주인사상(韓民族主人思想)을 국가적 차원에서 정립하는 일이다.
   둘째, 고려시대에 일연스님을 통해서 계시적으로 내려진 단군시조원문(檀君始祖原文)을 선대들이 지식적으로 해설하다보니 단군신화(檀君神話)로 만들어버렸기 때문에 단군시조원문을 계시적으로 해설하여 세계인류가 공감할 수 있는 단군실화(檀君實話)로 재정립하여 한민족의 뿌리와 나아가서는 세계인류의 뿌리를 찾아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조국통일의 기본출발이 될 '통일수도부지'를 남한과 북한의 중앙에 위치한 천혜의 요지(강원도 철원군)에 정하는 일이다.
   넷째, 남한의 민주주의나 북한의 공산주의는 말할 것도 없고 세계적으로 분포된 각양각이한 종교사상까지도 다 포용할 수 있는 '모정주의사상'을 한반도에서 살고 있는 한민족부터 생활화할 수 있는 새시대를 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렇게 방대하고 신비(神秘)하면서도 현실성 있는 이상적인 새로운 사상은 종교를 바탕으로 한 내적인 사명자가 神의 계시로 정립은 하게 되었지만, 국가나 세계적으로 실현시키는 일은 정치를 바탕으로 한 외적인 사명자가 받아들여서 내외가 하나되는 제정일치(祭政一致)의 시대를 열지 않고는 실현할 수 없기 때문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노무현 정권 때도 나름대로는 무척 노력해 보았지만 무위로 끝나고 말았기에 세종대왕처럼 훌륭한 성군정치(聖君政治)를 할 수 있는 정치지도자가 등장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실정이다.
   한민족주인사상(韓民族主人思想)의 필요성에 대하여 부언한다면, 짐승들의 세계는 물질이나 무력적인 힘으로 이끌어갈 수 있고 통제할 수도 있지만 만물지영장으로 창조를 받은 우리 인간은 빵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고 꿈과 이상을 실현할 수 있는 사상도 물질 못지 않게 필요로 하고 있는데, 남한이 북한보다 더 잘 산다고 하여 경제정책 하나로 조국통일까지 바란다면 이는 인생을 알지 못한 소치에서 비롯된 판단이며 남한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경제정책만 가지고는 국민들을 이끌어갈 수 없는 것이 정치이기도 하다.
   결론적으로 볼 때, 조국분단 반세기만에 이질민족으로 화해버린 남북한의 7000만 동포들을 하나로 묶어서 조국통일의 대업을 성취하려면 경제정책과 병행하여 우리 인간들이 본심의 발로에 의하여 궁극적으로 찾고 있는 영원불변한 본연의 사상을 찾아 세워야 21세기의 정신문명시대를 맞이하여 통일된 조국과 나아가서는 세계를 이끌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영원불변한 본연의 사상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들의 가슴속 깊은 곳에 지금도 살아있는 모정(母情)으로서, 어머니의 희생적인 모정은 한 생명을 태생(胎生)시키는 복중에서부터 시작되는데 열 달 동안 당신의 뼈와 살을 앗아다가 길러주시며 사경을 헤매이는 해산의 고통도 자식을 위하고 아끼는 마음으로 이겨낼 뿐 아니라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자식을 길러내는 과정에서도 자식들이 잘 하는 일은 함께 기뻐하시며 칭찬을 아끼지 아니하시며 말썽을 부려도 미워하지 않고 철들 때까지 침묵으로 일관하실 뿐 아니라 자식으로 인한 아픈 상처는 가슴에 담고 무덤까지 가시는 불변의 희생적 사랑으로 자식들의 실수도 내 탓으로 돌리며 다 감싸주고 품어주시는 포용주의사상을 '모정주의사상(母情主義思想)'이라고 한다.
   요약한다면, 무슨 일이나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며 언짢은 일도 화내지 아니하며 참고 기다리는 침묵과, 희생적인 사랑과, 상대방의 허물도 감싸주는 포용주의사상(抱容主義思想)이 곧 어머니가 자식들을 아끼며 사랑하는 진정한 모정주의사상(母情主義思想)으로서, 천지도수(天地度數)가 상극투쟁의 시대에서 상생화합(相生和合)의 시대로 바뀌는 2008년부터는 모정주의사상이 아니고는 정치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유념해 두어야 할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上), 정동영 당의장(下)  
   제1공화국을 출범시킨 이승만 전 대통령의 전생(前生)도 유대교 왕국시대를 열었던 사울왕이었듯이, 제6공화국 3기를 출범시킨 노무현 대통령의 전생(前生)도 구약시대 이전의 한 시대를 마감했던 애굽의 왕으로 등장했던 바로왕이다.
  고졸 출신의 농부아들로 돈도 계보도 세력도 없이 대통령 직선제를 시행하는 민주주의국가에서 대선에 승리하여 청와대의 주인이 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로서 꿈속에서나 그려볼 수 있는 일인데, 전생(前生)이 바로왕으로서 상극투쟁으로 점철되어온 선천시대(先天時代)를 마감해야 하는 각본사명(脚本使命)이 속사람(정신)에게 숙명(宿命)으로 주어져 있기 때문에 제16대 대통령으로 등극하게 된 것이다.
  지금부터 4000년 전의 구약시대에 애굽의 왕으로 등장했던 바로왕의 정치적 노정은 재임시에 총리로 등장하는 요셉시대를 열기 위한 준비과정의 임금에 불과했지만 당시의 애굽으로서는 7년대풍년의 시대를 맞이하여 7년대기근의 시대를 미리 준비하여 국가적 대운세를 맞이하는 길잡이의 역할을 했던 왕이기도 하다.
   이러한 섭리적 시대의 흐름이 문왕팔괘도의 천칙(天則)에 입각한 상극투쟁의 시대가 2007년으로써 막을 내리기 시작하고 2008년부터는 정역팔괘도 천칙(天則)에 입각한 상생화합의 시대가 열리는 새로운 시대로 돌입하게 되는 한반도에서 재연(再演)되고 있다는 것이다.
   지상학(地相學)적으로 볼 때 세계는 24동물형상으로 창조되어 있고 한반도는 인간형상으로 창조되어 있는데, 짐승들의 세계는 물질이 우위를 차지하지만 인간들의 세계는 정신이 우위를 차지하게 되므로 지상학적 견지로는 서양에서 발동된 물질문명이 20세기를 이끌어왔으니 이제는 동양에서도 인간형상으로 창조된 한반도에서 발동되는 정신문명이 21세기를 이끌어가게 되는 것은 너무도 합당한 섭리적 기정사실이다.
   한반도에서 살고 있는 한민족이 이러한 천지운세를 맞이하려면 먼저 바로왕의 윤회환생(輪廻還生)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때가 이르렀기에 전생(前生)의 바로왕이 제6공화국 3기를 출범시킨 제16대 대통령으로 등장하게 되었던 것이다.
   지금부터는 제16대 대통령(노무현)에게 주어지게 되었던 정치적 각본사명과 아울러서 한 시대를 이끌어 가는 주연(대통령)과 조연(당의장)들이 함께 어우러져서 제6공화국 3기를 출범시키고 막을 내렸던 정치사를 섭리적 차원에서 재조명하여 보기로 한다.
   제6공화국을 출범시킨 노태우 대통령시대부터 정치에 뛰어든 노무현씨가 전생(前生)으로 볼 때는 왕권운세를 타고났지만 현생(現生)에 처해진 상황에서 국가원수로 등극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는데, 제16대 대통령으로 당선시킨 일등공신이 바로 새천년민주당에서 '국민경선제'를 관철시킨 정동영 의원이다.
    정동영 전 의원의 전생(前生)은 바로왕 시대에 시위대장(侍衛隊長)으로서 실권을 잡고 정사(政事)에 함께 했던 '보디발'이기 때문에 노무현 대통령(전생:바로왕)과 정동영 전 당의장(전생:보디발)은 전생의 인연으로 다시 만나서 제6공화국 3기(참여정부)를 이끌어갔던 주연과 조연으로서 정치적으로 대통령과 당의장, 대통령과 통일부장관이라는 막역한 관계가 유지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제16대 대통령(노무현)에게 주어진 정치적 각본은 전생(前生)이 바로왕이다 보니 의논이나 타협보다는 고집주장의 정치를 하기도 했지만 그 보다는 조선왕조시대의 마지막 임금인 순종의 각본과 아울러 문왕팔괘도의 천칙(天則)에 의한 상극투쟁의 시대를 2007년으로 마감하는 시대에 등장한 대통령으로서, 직무를 수행하기가 무섭게 2003년 2월 26일 '대북송금특검법'이 국회에서 통과되자 집권여당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동년 3월 14일 '대북송금특검법'을 수용한 결과 집권당이었던 새천년민주당의 신주류와 구주류의 상극투쟁은 이합집산을 거듭하다가 제17대 대통령선거를 통한 국민들의 심판으로 존폐위기의 상황에 처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다시 말한다면, 정치적 상극투쟁의 관문은 제16대 대통령이 대북송금특검을 수용하면서 노골화되기 시작한 새천년민주당내의 신주류와 구주류의 암투극부터 열리기 시작했고, 한나라당으로서는 기회를 놓칠세라 이 문제로 정쟁(政爭)의 활화산(活火山)을 만들었으며, 결국 신주류와 구주류의 분당정쟁(分黨政爭)이 야기되는 등으로써 정국(政局)은 바람잘 날이 없었던 것이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이와 때를 같이하여 정쟁의 활화산(2003. 2. 15) 3일만인 2003년 2월 18일 대구지하철화재(박재)로 200여 명의 시민참사와 1,400억원 이상의 국고손실을 초래했고, 새천년민주당 분당정쟁(2003. 9. 4) 7일만인 2003년 9월 12일(추석명절 다음 날) 태풍 '매미'의 박재(雹災)로 130명의 인명피해와 5조원에 달하는 국고손실을 초래하게 되었는데, 정쟁(政爭)을 무슨 벼슬로 여기는 위정자들과 천재(天災)와는 별개로 생각하고 있는 실정이다.
   모름지기 일국의 대통령과 영부인의 위치는 국부(國父)와 국모(國母)의 위치이기 때문에 자식들(국민들)의 싸움은 말리는 것이 도리일진대 오히려 싸움을 시키는 정치로서 5년 임기 동안에 대통령(국부)이 관장하는 청와대에서 언론사(국민)를 상대로 민사 19건과 형사 3건의 소송사건이 있었으며, 임기를 몇 달 앞두고도 한 번쯤은 국가적 경제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될 국민들의 허물을 감싸주려는 거부권 행사의 미덕을 보일 만도 한데 2007년 11월 27일에는 '삼성비자금특검법'을 수용함에 따라 국민들은 일면으로 불안해하고 있다.
   특히 神의 섭리적 운수로 볼 때, 2007년으로써 상극투쟁의 시대는 막을 내리고 2008년부터는 상생화합의 시대를 열어야 하기 때문에 '민심은 천심'으로서 검찰에서 판명난 BBK문제를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정동영 후보를 전반적으로 지지했던 통합신당과 전라남북도를 제외하고는 전국적인 지지를 얻어 530만 표차로 당선된 이명박 당선인에 대한 특검법은 국부(國父)의 위치에 있는 노무현 대통령 선에서 당연히 철회했어야 한다.
   그런데 2007년 12월 26일 노무현 대통령이 이를 수용한 것은 역대 대선에서 유례가 없는 530만 표차의 전국적인 지지라는 민심 즉 천심의 역행이요 2008년부터는 상생화합의 시대를 열어야 하는 시대적 섭리의 역천(逆天)으로서, 특히 '민심은 천심'으로 끝난 선거에 승복하지 못하는 정동영 후보를 중심한 호남 민심과 노무현 대통령까지 가세한 섭리역천(攝理逆天)의 결과로서 '이명박특검법' 수용(2007. 12. 26) 3일 후인 2007년 12월 29일부터 2008년 1월 2일까지 연말연시의 호남눈폭탄 박재(雹災)는 대통령의 '이명박특검법' 수용과 결코 무관치 않다는 것이 섭리적 판단이다.
   섭리역천(攝理逆天)에 대하여 부언한다면, 오늘까지의 인류역사 6000년을 해방 이후 한민족사 60년으로 축소재연(縮小再演)하게 되는 전무후무한 역사이기 때문에 제1공화국에서 제6공화국 3기까지의 60년 역사는 철저한 神의 섭리에 의해서 엮어지고 있는데, 국가와 민족을 이끌어가고 있는 정치지도자들이 시대적으로 등장하는 내적 사명자를 통해서 내려지는 섭리방향과 역행하는 경우를 '섭리역천(攝理逆天)'이라 한다.
   그런데 섭리역천(攝理逆天)보다 더한 경우가 '창조역천(創造逆天)'으로서, 우주만상의 창조작가이기도 하신 하나님(神)께서 우리 인간들이 자자손손 억천만대로 이어지면서 몸담고 살아갈 수 있는 지구를 창조하시면서 천태만상으로 창조된 물형(物形) 즉 지상(地相)에는 神의 창조목적이 비장되어 있을 뿐 아니라 천금만금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고유한 지운(地運)이 발복(發福)되고 있는데, 21세기의 정신문명시대는 내다보지 못하고 20세기의 물질문명이 전부인 줄 알고 함부로 절단하고 터널 공사 등으로 고유한 地相을 변형 내지는 파손시키는 행위로서 새만금간척사업‧천성산관통공사 등이 창조역천(創造逆天)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한다면, 국가를 이끌어가는 정치지도자들이 섭리역천(攝理逆天)을 하거나 창조역천(創造逆天)을 했을 때는 하늘 천 자와 천벌 재 자의 천재(天災)가 따르게 되는 것이며, 하늘에서 내리는 천벌 즉 천재(天災)를신약성서』의 계시록(16/21)에는 '박재(雹災)'로 명시하여 놓았는데, 우박 박(雹) 자와 천벌 재(災) 자에 잘 드러나 있듯이 비(雨)를 영하의 기온으로 싸서(包) 내리면 눈폭탄 천벌(災)이요, 비(雨)를 그대로 쏟아내리면 비폭탄 천벌(災)이 된다는 것이다.
   예컨대 제6공화국 3기의 노무현 정권시대에 2005년 12월 3일부터 23일까지 21일에 걸쳐서 호남지방에 내린 폭설박재(暴雪雹災)가 지면관계상 내용은 생략하겠지만 한반도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창조역천(創造逆天)에 의한 결과라면 2007년 말의 호남눈폭탄 박재(雹災)는 섭리역천(攝理逆天)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차제에 섭리역천(攝理逆天)에 의한 재앙(災殃)에 대하여 언급한다면, 가정에서도 부모의 그릇된 실수는 일차적으로 철 어린 자식들에게 우환이나 여타의 문제가 발생하듯이 국가를 다스리는 위정자들의 그릇된 실수는 일차적으로 무고한 백성들이 재앙(災殃)을 당하는 것이 천벌원칙(天罰原則)으로서, 12수는 부모를 뜻하는 수리인데 참여정부 초기에도 2003년 3월 14일 '대북송금특검'을 수용한 12일 만인 2003년 3월 26일 천안초등학교 축구부합숙소 화재로 8명의 꿈나무들이 희생의 제물이 되었고, 참여정부 말기에도 2007년 12월 26일 '이명박특검'을 수용한지 12일 만인 2008년 1월 7일 이천냉동물류창고 화재로 40명의 무고한 생명이 희생의 제물이 되고 말았는데, 이는 구 대통령의 특검수용에 대한 실수와 새로 탄생하는 이명박 정부의 대운하공약에 대한 섭리역천의 경고탄(警告彈)이기도 하지만 과학을 바탕으로 한 물질문명의 전성시대는 2007년으로써 마감하고 2008년부터는 정신문명시대로 돌입하게 되는 시점에서 과학을 뜻하기도 하는 이로울 이(利) 자의 이천 냉동물류창고 화재는 물질문명시대의 종말을 고하는 화형식이기도 하다.
   또한 전직 대통령(15대 대통령)도 임기가 끝나서 비록 대통령의 자리에서 물러나와 있지만 '전직 대통령'이라는 직함은 곧 어버이의 위치이기 때문에 자식들(국민들)의 선거싸움(정치싸움)에 끼어 들어서 관여하는 것은 도리가 아닌데, 섭리적 각본상 세종대왕의 업적사명은 성군정치(聖君政治)시대로 넘어가면서 제15대 대통령은 고종을, 제16대 대통령은 순종의 각본을 수행하다 보니 상극투쟁으로 일관되었던 한 시대는 막을 내리게 되면서 정치적으로는 '측근비리 얼룩'이라는 비판을 받으면서 수십 년 동안 정통야당으로 자리매김을 했었던 민주당도 사실상 막을 내리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한다면, 세종대왕시대의 훈민정음에 해당하는 '한민족주인사상(韓民族主人思想)'을 국가적 차원에서 정립함으로써 세세토록 칭송을 받게 될 정치적 업적은 성군정치(聖君政治)시대를 열게 될 제17대 대통령시대로 넘어가게 되면서, 비리와 정파싸움으로 얼룩진 조선왕조시대의 마지막 임금으로 등장한 두 임금(고종‧순종)이 인간으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섭리에 따라 '을사보호조약'과 '한일합방'으로 장장 500년의 이씨조선시대는 막을 내리고 너무도 판이한 일본제국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듯이, 시기와 비리와 정쟁으로 얼룩진 해방 이후 60년의 정치사(政治史)에 마지막 대통령으로 등장한 두 대통령(김대중‧노무현)도 섭리의 흐름에 따라 상극투쟁의 정쟁시대(政爭時代)는 2007년으로써 막을 내리고 2008년부터는 너무도 판이한 제정일치(祭政一致)의 제7공화국시대를 맞이하게 된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볼 때, 서양을 무대로 하여 주류섭리(柱流攝理)를 이끌어온구약성서』와 신약성서』에 의하면 상극투쟁으로 점철되어온 세상은 666의 섭리(계13/18) 즉 '오늘까지의 인류역사 6000년을 해방 이후 한민족사 60년(1948∼2007)과 제6공화국(노태우∼노무현)으로써 막을 내린다'고 명시하여 놓은 섭리적 시점과, 동양을 무대로 하여 지류섭리(枝流攝理)를 이끌어온 천지도수(天地度數)로서 상극투쟁의 문왕팔괘도 운수가 2007년으로 막을 내리는 섭리적 시점이 서로 맞아떨어지게 되는 시대에 등장하게 된 제16대 대통령(노무현)이 상극투쟁의 역사를 마지막으로 장식하게 되는 국가원수로 등장하여 2003년부터 2007년까지 5년간에 걸쳐서 상극투쟁의 섭리장단에 맞추어 정치를 하였으니 누구를 원망하고 탓할 수 없는 민족적 숙명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 섭리적 판단이다.

 

 
이명박 대통령(上), 박근혜 의원(下)  
   대통령 임기를 5년 단임제로 하여 노태우 대통령 시대부터 출발하였던 제6공화국 정부가 6공화국 1기의 김영삼 대통령, 6공화국 2기의 김대중 대통령, 6공화국 3기의 노무현 대통령 시대까지로 상극투쟁(相剋鬪爭)의 천칙(天則)이 작용했던 인생불행시대(人生不幸時代)는 종막을 고하고 제17대 대통령부터는 상생화합(相生和合)의 천칙(天則)이 적용되는 시대이기 때문에 이러한 시대에 부응하는 인생행복시대(人生幸福時代)를 열기 위해서는 제정일치(祭政一致)의 제7공화국 개국과 더불어 神경제시대를 열어야 하는 이명박(李明博) 대통령에게 부여된 사명은 참으로 막중하다.
  또한 神경제시대를 열기 위해서는 인류가 소망하는 정치‧경제‧종교의 삼대이상향(三大理想鄕)의 실현으로서 정치는 제정일치(祭政一致)의 시대를 열어야 하고 경제는 神경제시대를 열어야 하며 종교는 지상천국(地上天國)을 건설하는 일이다. 神경제시대를 여는 사명은 전생(前生)이 요셉인 이명박 대통령에게 주어졌지만 제정일치(祭政一致) 시대를 여는 외적인 사명은 전생(前生)이 노국공주인 박근혜 전 대표에게 주어져 있기 때문에 두 사명자는 정치적으로 상생화합(相生和合)하지 않고는 국가를 이끌어갈 수 없는데 이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 장에서 별도의 제목으로 소상하게 밝히기로 한다.
   시기와 정쟁(政爭)으로 얼룩진 해방 이후 헌정사 60년도 상극투쟁의 천지도수(문왕팔괘도)가 2007년으로 막을 내리게 되면서 함께 막을 내리게 됨으로써 2008년부터는 천지도수(정역팔괘도)가 상생화합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제17대 대통령으로 등극하게 된 이명박 대통령의 전생(前生)은 당시로는 대제국이었던 애굽의 경제를 살려 이웃나라 백성들까지도 대기근에서 구해낸 경제총리 요셉이다.
   전생(前生)이 경제총리 요셉으로서 숙명적으로 경제적 운수를 타고났기 때문에 1965년도에 현대건설 공채로 입사하여 29세에 이사로, 35세에 사장으로 승진하는가 하면 45세에는 회장의 자리에 오르는 등 초고속 승진을 하게 되면서 현대건설을 세계적인 기업으로 급부상시켰던 것이다.
   또한 정치적으로도 14대 전국구 국회의원부터 시작하여 15대는 서울의 정치 일번지로 알려진 종로에서 당선되는 등 만사형통의 운수가 작용되었지만, 전생(前生)이 경제적 요셉으로서 숙명노정은 2002년 7월부터 2006년 6월까지 서울특별시 민선3기의 시장시대부터 전생의 바로왕(노무현)과 전생의 보디발(정동영)과 전생의 요셉(이명박)이 정치적 관계로 서로 만나게 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는데, 지금부터는 이에 대하여 잠깐 알아보기로 한다.
   2003년부터 제6공화국 3기(참여정부)가 출발하게 되면서부터 전생(前生)의 인연으로 현생(現生)에 다시 만나서 숙명노정(宿命路程)이 시작되는데, 전생관계로 본다면 바로왕(노무현 대통령)시대부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시위대장(보디발:정동영 의장)과 요셉총리(이명박 서울시장)와 이와 때를 같이하여 2004년에 열린우리당 비례대표로 정치에 입문하는 박영선(朴映宣) 국회의원의 전생(前生)이 보디발 부인이다.
   이렇게 전생(前生)의 인연으로 다시 만나게 된 정치인들이 이미 짜여진 전생노정의 각본(脚本)대로 본격적인 재연(再演)을 하게 되면서 바로왕(노무현 대통령)시대에 당의장을 두 번씩이나 하고 대선의 밑거름이 되는 통일부장관을 하는 등 정치적 실권을 잡고 주름잡던 시위대장(보디발:정동영) 전성시대에 서울시의 살림을 맡았던 요셉(이명박 서울시장)과 2004년에 국회의원으로 등장하는 보디발 부인(박영선 의원)이 함께 어우러졌던 정치적 판세가 바로 제17대 대통령 선거이다.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 일찍부터 국민들로부터 지지도가 높았던 한나라당의 대선주자로 등장하는 전생(前生)의 경제총리 요셉(이명박)과 제6공화국 3기를 출범시킨 참여정부의 열린우리당이 이합집산으로 결성한 대통합민주신당의 대선주자로 등장한 보디발(정동영)과 대통합민주신당 대통령 후보의 대선기획단 지원실장으로 등장한 보디발 부인(박영선)과의 선거전에서 국민들의 마음을 아리송하게 만들었던 사건이 BBK문제인데, BBK가 바로 전생(前生)의 요셉이 위기를 탈출하면서 보디발 부인에게 증거품으로 남겨진 요셉의 옷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좀 더 구체적으로 알아본다면,구약성서창세기 39장 1절에서 20절까지의 말씀에 바로왕의 신하였던 시위대장 보디발에게 노예로 팔려온 요셉이 범사에 형통함을 알고 가정의 총무로 삼고 자기 소유를 다 요셉에게 위임하게 되었는데, 용모가 준수한 요셉에게 보디발 부인이 동침을 강하게 요구하면서 옷을 잡고 놓아주지를 아니하므로 옷을 버리고 도망나오게 되었고, 그 옷을 증거물로 삼아 보디발 부인이 남편에게 고하게 되고 남편(보디발)은 부인 말만 듣고 요셉을 감옥에 넣게 되며 요셉은 옷 때문에 억울한 누명을 쓸 수밖에 없었던 것이 주요 내용이다.
   이러한 전생노정(前生路程)을 재연(再演)하게 된 현생노정(現生路程)이 바로 17대 대선에서 크게 문제가 되었던 BBK인데, '특정경제가중처벌법상횡령‧증권거래법위반‧사문서위조 등으로 구속된 김경준 전 BBK대표와의 관계에서 BBK‧(주)다스 실소유 및 주가조작 등에 이명박 후보는 증거가 없다'고 검찰에서는 무혐의 처리를 했지만, 한 때 김경준씨와 이명박 후보가 BBK를 함께 했기 때문에 BBK가 바로 이명박 후보(요셉)가 누명을 쓸 수밖에 없는 옷이 되었고 정동영 후보(보디발)는 MBC아나운서 출신의 박영선 의원(보디발 부인)이 한 때 이를 취재했던 사실상의 근거를 믿고 BBK(요셉 옷)문제를 들고 나왔으나 이러한 의문은 검찰에서 발표한 무혐의 즉 누명을 벗는 것으로 끝나게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섭리적 판단이다.
   그러나 천만다행인 것은 전생노정(前生路程)은 곧 숙명노정(宿命路程)이기 때문에 요셉(이명박)이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가는 것은 피할 수 없는데, 대학시절에 한일외교반대시위를 이끌었던 학생회장 직무를 수행하다가 잡혀 들어가 6개월 동안 감옥생활을 했기 때문에 정부여당의 대선출마자가 강력히 몰아부치는 BBK문제(옷 누명)를 벗어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섭리를 알고 되돌아보면 제17대 대선에 출마하여 한판 승부를 했던 분들은 말할 것도 없고 김경준 전 BBK대표도 이 시대에 등장하여 한 각본을 수행한 젊은이로서, 알고 보면 '인생은 연극'이기 때문에 강증산 상제님의 말씀대로 죄 없이 무고한 만백성이 하나로 살게 되는 세상 즉 '무고인민만일생(無辜人民萬一生)'의 시대가 2008년부터 시작되므로 이 시대에 국가원수로 등장하게 된 이명박 대통령으로서는 만백성을 품을 수 있는 모정주의사상(母情主義思想)이 절실하게 필요한 때가 온 것이다.
   이렇게 상생화합(相生和合)의 시대를 맞이해서 인류의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외적인 사명을 타고난 요셉이 한반도로 윤회환생(輪廻還生)하기까지는 일차적으로 섭리적 환경이 가정에서부터 마련하게 되었는데,구약성서』에 내외적 사명자로 등장하는 요셉의 아버지였던 야곱이 고향을 떠나 하란 땅으로 가서 가축들을 기르는 머슴살이 목부(牧夫)에서부터 출발하였듯이, 전생(前生)이 요셉인 이명박 대통령의 부친도 고향집을 나와 떠돌이 생활을 할 때부터 남의 집 소·돼지를 기르는 머슴살이 목부(牧夫)에서부터 출발하게 되었는데 이에 대하여 잠깐 알아보기로 한다.
   목부인생(牧夫人生)으로 출발한 이명박 대통령의 부친 이충우(李忠雨)씨께서는 일찍부터 하란 땅에 해당하는 일본으로 들어가서도 오사카 근교 목장에 고용되어 목부(牧夫)생활을 하게 되고 잠시 고국으로 돌아와 채태원(蔡太元)여사와 결혼한 후 부부가 함께 일본으로 들어가서도 목부(牧夫)생활을 하시며 여섯 남매를 낳아서 길러냈으며 해방 이후 고국으로 돌아와서도 목부생활은 이어졌고 종당에는 경기도의 시골마을에 영일목장을 마련하시고 여생을 보내신 분으로서, 전생(前生)의 야곱노정 중에서 목부노정(牧夫路程)을 계승하였기 때문에 이를 뜻하는 호(號)가 바로 '목초(牧樵)'인 것이다.
   또한 어머니 채태원(蔡太元) 여사는 해방 이후 고국으로 돌아오게 되지만, 요셉이 형들로 인하여 은이십개(銀二十個)에 팔려가서 노예생활부터 시작하듯이 이 당선인(이명박)도 가뜩이나 어려운 가정형편에 형(이상득)의 대학공부까지 겹치다보니 가난 때문에 길거리로 나와 어머니와 함께 물질(돈)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었던 생활에서부터 출발하게 되었던 것이다.
   다시 말한다면, 전생(前生)의 요셉 어머니는 동생(베냐민)을 낳아 놓고 바로 돌아가셨기 때문에 요셉이 은이십개에 팔려가 노예생활부터 출발했었던 어려운 길을 함께 가지 못하고 몽시를 통한 협조로 길을 열어 주었지만, 이명박 대통령의 모친께서는 아들과 함께 어려운 길을 가면서 심어준 신앙심과 생활교육이 오늘날 한민족을 영도(領導)할 수 있는 외적인 지도자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지금부터는 전생(前生)에도 형제지간으로 태어나 상부상조를 했고 현생(現生)에도 형제지간으로 태어나 정치적으로 상부상조하게 되는 이상득 의원과 이명박 대통령과 정몽준 의원에 대하여 섭리적 차원에서 잠깐 언급하기로 한다.
   제17대 대통령은 전생(前生)이 구약시대에 대제국이었던 애굽의 내각제 총리로서 정치와 경제의 실권을 잡고 국가를 경영했던 요셉으로서, 서울시장부터 대권을 향한 본격적인 정치인생의 길을 출발하여 대통령으로 등극하기까지 전생(前生)이 유다인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의 정치적 협조가 있었던 것이다.
   또한 정몽준 의원의 전생(前生)은 일찍부터 어머니와 사별한 베냐민으로서, 2007년 12월 3일 한나라당에 입당한 뒤 이명박 후보에 대한 지지를 전격 선언함으로써 전생(前生)의 일체적 관계를 정치적으로 다시 복원함에 따라, 세 분께서는 전생(前生)과 현생이 결부된 일치적 관계이기 때문에 전생(前生)이 요셉인 이명박 대통령을 중심삼고 상부상조의 정치로써 제정일치(祭政一致)의 제7공화국(하나님 나라)을 출범시키는 대업성취(大業成就)에 크게 기여하게 되어 있다.
   부언한다면, 지금부터 4000년 전 애굽의 내각제 총리로 등장했던 요셉시대가 바로 제정일치(祭政一致)의 시대로서 당시에 바울왕은 하늘과 종적관계를 수립하여 만사에 형통(亨通)했던 요셉의 제의를 받아들여 정치를 하게 됨으로써 만민구제의 업적을 남기게 되었지만, 서양의 조상으로 등장하는 아브라함의 실수로 인하여 '애굽고역 400년'이라는 탕감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이땅에 하나님의 나라(지상천국)를 세우지 못했기에 전생(前生)의 요셉이 이땅에 다시 윤회환생(輪廻還生)하여 해야 할 사명이 바로 이땅에 실질적인 하나님의 나라로서 제7공화국을 출범시키는 일이다.
   그러나 지금부터 4000년 전의 애굽시대에는 국가를 위주로 하는 시대였지만 지금의 시대는 세계를 위주로 하는 시대이기 때문에 윤회환생으로 주어지는 사명도 종교를 바탕으로 한 내적인 사명과 정치·경제를 바탕으로 한 외적인 사명으로 분류되는데, 전생의 인연으로 다시 만나서 정치적 일치를 이룬 세 분(이명박‧이상득‧정몽준)은 외적인 정치섭리의 주연과 조연으로 등장했으며 이와 병행하는 내적인 종교섭리의 주연과 조연도 준비되어 있는데, 내외적인 사명이 하나 되지 않고는 이땅에 실질적인 하나님의 나라(제7공화국)는 출범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볼 때, 동물형상으로 창조된 서양에서 19세기경부터 본격적으로 발동되기 시작한 물질문명이 20세기를 이끌어왔으니 이제는 지상학적으로 보더라도 인간형상으로 창조된 한반도에서 물질문명의 터 위에 정신문명을 발동시키게 됨으로써 정신문명이 21세기를 영도하게 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이치이기 때문에 666의 섭리로 상극투쟁의 물질문명시대는 2007년으로써 막을 내리고 2008년부터는 상생화합의 시대로써 물질문명의 터 위에 정신문명을 발동시켜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내외적인 사명일치로 제17대 대통령시대에 섭리적으로 주어진 제정일치(祭政一致)의 제7공화국 개국과 아울러 神경제시대를 열어야 한다.

 

 
정주영 회장  
   인류역사 6000년을 해방 이후 한민족사 60년으로 축소재연(縮小再演)하면서 선지자들을 통한 예언서와 신약(新約)과 구약(舊約)의 말씀이 한반도에서 한민족을 중심삼고 이루어지고 있는 성약섭리(成約攝理)시대에 한반도로 윤회환생(輪廻還生)하여 오늘까지 한민족을 이끌어오고 있는 3대맥락으로서 정치‧경제‧종교지도자들을 섭리적 차원에서 정립한다면 다음과 같이 할 수 있다.
   그런데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필히 알고 가야 할 내용이 있다면 인류역사를 출발시킨 3가정으로서 아담‧노아‧아브라함 가정이 중심이 되었던 시대에는 하늘로부터 인간들에게 부여되는 사명이 내적(종교)인 사명과 외적(정치‧경제)인 사명으로 분류되지 않고 한 사람에게 부여되었지만, 지금의 시대는 인구가 종족과 민족의 시대를 넘어서 세계를 이루었기 때문에 인간들에게 주어지는 사명도 정치·경제·종교 등으로 분류해서 각기 사명수행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전생(前生)이 첫 조상가정의 장남인 가인으로서 북한의 정치지도자로 등장하면서부터 '에서'노정을 출발한 김일성 주석과, 전생(前生)이 야곱으로서 에서노정의 김일성 주석 치하를 벗어나서 남한으로 내려와 적수공권으로 세계적 거부가 되어 일천 마리의 소떼를 몰고 금의환향했던 정주영 회장님과, 전생(前生)은 아담으로서 에서노정의 김일성 주석 치하를 벗어나 남한으로 내려오면서부터 종교적 야곱노정을 출발하여 세계적인 종교지도자로 부상한 문선명 선생님이 제1세시대(부모시대)의 내외적인 사명자들로서 해방 이후 한민족사의 근간(根幹)을 이루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한다면, 전생(前生)은 가인으로서 북한의 정치지도자로 등장하면서부터 야곱을 죽이려 칼을 갈았던 제1세시대(부모시대)의 에서노정을 출발한 김일성 주석이 조국통일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1994년 7월에 서거하게 되면서 동일한 혈통의 부자세습으로 제2세시대(자녀시대)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계승되었고, 전생(前生)이 아담으로서 에서노정의 김일성 주석 치하를 벗어나서 월남하신 문선명 선생님께서 출발한 제1세시대(부모시대)의 종교적 야곱노정은 전생의 판밖 부자세습으로서 제2세시대(자녀시대)의 종교적 요셉노정을 출발한 '두 증인'에게 계승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전생(前生)이 야곱으로서 에서노정의 북한 치하를 일찍부터 피하여 월남하신 정주영 회장님께서 출발한 제1세시대(부모시대)의 경제적 야곱노정은 전생의 판밖 부자세습으로서 제2세시대(자녀시대)의 경제적 요셉노정을 출발한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에게 계승되었는데, 지금부터는 두 분(정주영‧이명박)의 전생관계를 알아보기로 한다.
   정주영 회장님의 전생(前生)은 고향을 떠나 타국에서 적수공권으로 거부가 되어 많은 재물과 양떼를 몰고 금의환향하였던 야곱으로서, 에서노정이 전개되는 북한을 일찍이 벗어나 남한으로 내려와서 적수공권으로 세계적인 거부가 되어 1998년 6월부터 2차에 걸쳐서 일천 마리의 소떼와 금강산 관광 등 많은 재물을 앞세우고 삼팔선을 넘어 금의환향(錦衣還鄕)했던 것이다.
 
정주영 회장님의 금의환향(錦衣還鄕)으로 인하여 북한은 부자세습으로 계승된 2세시대(자녀시대)의 에서노정을 가고 있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강팍한 마음이 풀리면서 김대중 대통령의 북한방문과 아울러서 꿈에도 그리던 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지게 되었으니 반세기 동안 굳게 닫혀있던 조국통일의 마음적 관문을 열기 시작한 한민족의 공로자이기도 하다.
   숙명노정이기도 한 정주영 회장님의 전생노정을 근거로 하여 좀 더 깊이 있게 알아본다면,구약성서』에 주연으로 등장하는 야곱이 부모형제를 이별하고 고향을 떠나와 거부가 된 다음에 공식적으로 밝혀진 부인은 4명이고 아들은 12명이나 되며 에서를 만나기 위해 금의환향할 때는 70명이나 되는 대가족을 이끌었듯이, 이를 답습했던 정주영 회장님 경우도 세인들이 궁금하게 생각하는 3대의문 즉 그 분의 재산은 얼마나 되고, 그 분의 부인은 몇 분이나 되며, 그 분의 자녀를 중심한 가족수는 어떻게 되는지를 모를 정도로 대가족을 거느린 세계적 거부로 등장한 정주영 회장님의 전생(前生)을 알지 못하고는 풀 길이 없는 일이다.
   더 나아가서 아브라함의 실수만 없었다면 바로왕의 자리는 역사상 처음으로 천사를 굴복시킨 전생(前生)의 야곱 몫이었기 때문에 이를 실현하기 위한 섭리적 각본으로서 '88올림픽'을 유치하는 데 큰공을 세운 정주영 회장님은 1992년 제14대 대통령에 출마했고, 전생(前生)이 베냐민으로서 2002년 한‧일월드컵 유치에 큰공을 세운 정몽준 의원은 2002년 제16대 대통령에 출마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지만, 전생(前生)이 경제적 요셉으로서 정주영 회장님과는 부자(父子)의 관계인 이명박씨가 제17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정주영 회장님과 이명박 대통령은 전생(前生)이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로서 전생에는 함께 살지 못하고 서로 헤어져 살았기 때문에 현생(現生)에서는 일찍부터 현대건설에 공채로 입사하여 이사‧사장‧회장까지 역임하게 되었지만 판밖으로 나와서 전생(前生)의 아버지인 정주영 회장님이 부모시대에 이루지 못했던 정치적 꿈까지 자녀시대에 이명박 대통령이 이루게 된 것이다.
   결론적으로 볼 때, 제1세시대(부모시대)에서 이어지는 북한의 정치적 에서노정 제2세시대(자녀시대)는 동일한 혈통의 부자세습으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계승되었고 제1세시대(부모시대)에서 이어지는 남한의 경제적 야곱노정 제2세시대(자녀시대)는 판밖의 전생부자세습으로서 이명박 대통령에게 경제적 요셉노정으로 계승되었으며, 제1세시대(부모시대)에서 이어지는 남한의 종교적 야곱노정 제2세시대(자녀시대)는 판밖의 전생부자세습으로서 '두 증인' 사명자에게 종교적 요셉노정으로 계승된 것이며, 남한에서 제정일치(祭政一致)시대를 열기 위한 정치적 사명은 박근혜 전 대표에게 계승되었는데 이에 대한 내용은 다음에서 밝히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