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을 통해 근원과 대화를 하든 상위영혼과 대화를 하든 스승들과 외계인과 대화를 하든 내부의 목소리 그것은 모두 교류-커뮤니게이션입니다. 외부로 만날수 있는 그 어떤 것을 내부의 통로를 통해 만난다는 점이 다를 뿐이지요. 내부를 통해 만나는 것은 외부를 통해서도 만날수 있습니다. 내면과 외부가 하나로 일치되는 날이 올것입니다.당신이 이제것 외부를 거부해야 했던 것은 어느 누구도 아닌 바로 당신이 빠진 곳이 어둠이고 당신을 지배하는 환경이 모두 어둠이었기 때문이지 그 때문에 다른 존재들과 우주를 전부 어둠으로 보고 모든 것들을 어둠이라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이 그렇다고 다른 존재들도 그렇습니까? 루시퍼가 지배하는 환경은 이 우주의 전부가 아니며 우주의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당신이 그곳에 빠져 있었으니 그것이 당신에겐 우주의 전부로 확대되어 보였던 것이지요.


이곳 세계가 아닌 내면을 통한 우주 소통과 연결만을 중시하였던 노자 조차도 책을 쓰고 남기길 요구한 문지기에 의해 외부일을 함으로서 그의 가르침을 오늘날 우리가 읽을수 있는 것입니다. 어둠을 향해 '행하지 말것을 행했습니다'. 그것은 이곳에서 적극적 창조행위입니다. 밀림속에서 늑대들에게 양육된 늑대 소년은 자신이 인간인줄 모르고 평생을 늑대로 지내며 살것입니다. 그가 어떻게 자신이 늑대가 아니라는 사실을 최초 발견할수 있을까요. 여러분에게 세상을 거부하고 내면으로 들어가라는 가르침 조차도 아이러니하게도 최초에는 외부로부터 문명으로부터 문화로부터 먼저간 부모들 오빠 형 언니와 같은 선배로부터 옵니다.  이제 내면을 통해 그를 만난다하더라도 내면으로 들어가라는 그소리도 예수도 붓다도 당신에게 처음 외부에서 왔습니다.외면이 내면이고 내면이 외면입니다.


수행자는 세상과 상관하지 않는 다가 아닙니다.수행자는 세상과 상관하지 않은 것은 어둠 경계하란 부득이한 특정 조건하에서 입니다.  수행자는 세상에 상관해야 하며 능동적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수행입니다. 삶 자체가 수행의 본류입니다. 세상과 상관하지 않을대는 세상 어둠에서 물러나 하루 몇분에서 몇시간동만 신과의 재 연결 할때입니다. 근원과을 연결을 지키기 위한 시간을  갖기 위함이지 삶자체를 인생을 그렇게 살라는게 아닙니다.  세상에 상관하지 않는 수행자는 존재할 가치조차 없으며 이미 없는 것입니다. 그 이기주의와 개인 수준은 국회의 정치판에서 이종격투기를 하는 정치꾼보다도 더 발 뒤꿈치 때 만큼도 못한 것입니다. 그것은 이유가 있어서이지 수행리란 그런것이니까가 아닙니다.그는 저 개인 하나 근원을 사랑했을지라도 근원이 낳은 자녀들은 근원이 하는 일은 이해하지도 사랑하지도 못했습니다. 그것은 아버지가 하는 일은 이해하고 않고 아버지의 팔뚝에만 매달리려는 아이처럼 미숙한 사랑입니다.
 

나 이외는 다른 이에는 고통에는 관심없음 더불어 사는 공동체 사회에는 무관심한 태도 외면하는 태도 이미 죽은 것입니다. 그러한 이기적임과  용기 없음을 수행이니 뭐니로 합리화 하지 마십시요. 자기 한테만 봉사적 수행은 결코 근원에 도달할수 없습니다. 명상할때는 명상이고 머리와 손발을 이용해 일을 할때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근원과의 만남을 잃지 않되 관심의 끊을 놓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덕목인 것입니다. 여러분더러 피켓을 들고 거리에 나가 뭘 하라는게 아닙니다.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연민을 갖는 것 그것만으로도 큰 일을 하는 것입니다.
인간에겐 인권이 없고 죄수라거나....겨우 자기 하나만 옹송그리고 자기 하나 편하고자 이런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하는 변호하고 자신의 결벽성을 합리화하는 말들을 하지 마십시요. 그것은 병입니다. 여러분의  두려움을 공명하고 먹고 사는 자들이 있습니다.


좀더 공부하고 좀더 정확하고 명확한 말을 하십시요. 말을 정확하게 하지 못하는 것이 죄입니다. 죄인이라는 말은 가치관에 따라 다르고 추상적이고 불필요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직 스스로도 모르고 지각없이 무지하게 내뱉는 말을 통해서 여러분의 에너지 위치를 읽을수 있습니다. 부정적 언어는 부정적 현실을 만듭니다.정말로 잘 되기를 바라는 사람은 부정적인 말을 전면에 내세우지는 않습니다.


언어는 멘탈계에서 물질을 이루는 바탕이며 에너지이며 파동입니다. 상위에선 언어자체가 현실입니다. 말이 씨가 된다고. 언어는 현실을 불러오는 힘이 있고 알게 모르게 당신과 당신의 현실에 영향을 줍니다. 어느 무엇도 아닌 당신 언어가 당신의 현실을 만드는 일종의 마법의 주문 주술적 힘이 있습니다. 당신의 생각이 당신의 현실을 만듭니다. 근원자 신들도 당신을 생각으로 에테르로 창조했습니다.


언어는 현실을 만듭니다.


당신이 스스로 죄인이라고 생각하고 죄수의 수행을 하는 것은 당신 자유입니다. 그러나 스스로 죄인이라고 말하는자가 과연 선행을 수월하게 할수 있을까요? 스스로 죄인이라고 생각하는 자가 선행을 말할수 있을 까요. 죄인은 죄를 짓는 자입니다.  선행을 하면서 스스로를 죄인이라고 보는 일이 가능할까요?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불필요한일이죠. 내가 죄를 지었기 때문에 나 하나 죄를 탕감하기 위해 선행을 해야한다면 그것은 선행이 아닙니다. 그것이 선행의 목적입니까? 그것은 선행이 아닙니다. 영적인 면에선 당신의 선행은 기록되지 않습니다.  자기 공포심 이기에 대한 봉사이죠. 선행은 이기적 목적이 아닌 순수 이타심입니다. 선행은 조건 없이 하는 것이며 선행 자체에 의미가 있는 것이며 선행은 내가 죄를 지었기 때문에 죄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런 조건으로  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선행은 나의 목적이 아닌 다른 사람에 진심으로 마음으로 관심을 두는 행위이며 그서이 이타심입니다.그 마음이 바로 신의 마음입니다.  그러한 신의 마음을 특정 조건이나 이기적 동기가 아닌 바로 내안에 품지 않고 어떻게 선행을 할수 있을까요. 뭣 뭣 때문이라는  그 조건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마음을 품는 것이 진정한 것입니다.


신의 마음을 품는 것이 영원히 죄인들인 그대들에게 불손한 일입니까? 전과자가 스스로나 사회가 다른 사람이 받아들여주지 못할때 좌절을 느끼고 스스로를 혹은 타인이 죄인이라고 스스로 규정하고 낙인을 찍는자 생각하는 자는 십중 팔구 다시 죄을 저지릅니다.  먼저 스스로를 인정하고 존중하고 사랑하는 선행하는 일이 빠졌기 때문이지요.죄인이라는 이름을 말하면서 스스로를 존중하는 일이 사랑하는 일이 가능할까요.자신을 내팽겨치고 영원한 체념으로 인해 어둠이 가실길이 없습니다. 수동성의 굴레에 노예처럼 갇힙니다. 어떤때 여러분은 좌절하고 방황하고 내면의 문제를 안습니까.  나는 안돼라는 부정성에 무능력함에 좌절할 때입니다. 진정한 해방감 상쾌함은 언제 찾아옵니까. 


내가 말하지 않더라도 이 지구를 어둠으로 경영하는 자들은 이 지구의 그 모든 전쟁과 파괴행위들이 스스로 범죄인이라고 보는 의식에서 진정으로 신으로부터 사랑받은 체험 충만함이 없는 자들을 통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실수나 죄를 스스로 용서받을 자격이 없다는 생각(자책)하에 그 용서 로부터 계속해서 달아납니다.  더 큰 거짓말고 악행을 저지르는식으로 방어적이 되는데 그들의 죄와 실수를 누구보다도 옹호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겉으로 온갖 편의를 다 누리며 웃고 있지만 그들의 깊은 내면은 여러분처럼 절망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그렇게 그들과 콤플렉스를 공유 함으로서. 현재 아눈나키의 추종자들은 여러분의 거울이고 주인입니다.그들은 빛 앞에 나서는 것을 두려워 합니다. 어둠의 본질은 이렇듯 초라한 것이며 그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어리석은 저항이기에 켤코 그들은 결코 이 게임에서 승리할수가 없는 것입니다.


겉으로 화려하게 보이는 그들의 에고의 쾌락은 본질이 아닙니다.그들의 에고는 진정한 자기 사랑의 부재가 거꾸로 전도된것으로 마약과 같은 것이지요. 그들의 위선적인 사랑과 에고와 탐욕은 죄의식을 신으로부터 사랑받을수 없다는 의식을 자기 사랑의 부재를 자기 빈곤함을 거꾸로 뒤집어 놓은 것에 불과합니다.그것은 자기 기만이고 모순입니다.


구원의 길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은 스스로에게 죄인이라고 부름으로서(주문을 욈으로서) 죄를 양산하는 신의 사랑의 충만함이 없는 '부정적 생각이 부정적 현실을 낳고 부정적 현실이 부정적인 생각을 낳는' 그 악순환의 연결고리를 끊는 것입니다. 당신들이 스스로를 죄인이라고 바라보고 부를때(어둠의 주인들 세력들부터 배운 주문을 욀때) 정말로 신에게 한번도 용서받지 못할자라고 생각할때 그 말대로 이 지구상에는 악행이 끊이질 않을 것입니다.  적어도 당신이 수행이라는 이름으로 죄를 짓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것을 보면서도 체념자가 방관자가 됩니다. 그러는한  당신은 거기만큼은  책임이 있습니다.당신이 아무리 상관없다며 수행을 행하더라도 거기에 지구에 같이 살고  있는 자로서 공범자입니다.


아무도당신 어께에 멍에를 짊어주어지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당신 자신입니다. 당신이 스스로 자처하고 있다는 그것을 깨달을때가지 지겨워 질때까지 당신은 그일을 계속 할것입니다. 당신이 만든 환영에 당신이 스스로 갇힙니다. 그것이 당신이 스스로를 행동을 통해 스스로를 자각하기 위한 거울이라는 것이지요. 당신이 그것을 충분히 맛보고 있다면 당신은 아직도 그것에 대해 졸업을 하지 못한것이며 그것이 무엇인지 모른다는것이지요. 당신이 죄인이라는 악이라느 그 맛을 아직도 충분히 보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그것에 벗어나기 위해 책임을 자각하는 일이 필요하고 앎이 필요하며 앎에 거기에 따른 책임은 당신들에게 있지만 당신들에게 죄가 있다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을 모르지 모르는 바로 그것이 죄일뿐이지요. 그 모든 것은 여러분외에 많은 우주의 사건들과 존재들과 역학들이 작용하고 있어 그것을 망각하고 있는 여러분만의 잘못은 아닙니다.


신과 떨어져 있다는 추락했다는 공포와 죄의식이라는 착각 자체가 신과 분리를 조장합니다. 보이지 않는 세계 정신계를 활동하는 것들을 아는 사람일수록 보이는 것보다 그러한 생각의 동기가 가장 근원에서 큰 주범이고 고질적 원인라는것을 압니다. 그것은 당신과 같은 콤플렉스를 공유하는 어둠의 세력들로 부터 교육받은 겁니다. 당신과 신을 끝없이 분리해 놓기 위해서 말이죠.신은  지금 이곳에 있습니다.  내일 언제가 때가 아닌 당신이 지금 신을 당신에게 제일 가까운 당신 안에 품어야 합니다.


신을 믿는다고하는 자들은 무실론자보단 낫습니다. 그리고 신을 믿으면서도 신을 믿기에 신으로부터 사랑을 받기에 자신이 누군가의 노예가 아니며 스스로에게 자신에게 왕이라고 하는 자들은 더 백배진보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아직인데, 신앙은 신을 어디 먼데다 따로 세워놓고 멀리 바라보지 말고 신의 마음을 자기 안에 품음으로서 완성될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최종 경지 하나의 목적지를 향해 수련하는 수행자나 당신이 믿는 그 신은 당신과 상관이 있습니다.그리고 그 최종 경지나 신은 모두와 상관이 있습니다. 당연히 당신과 모두는 상관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당신은 신을 믿는 다면서 신이 나와는 상관없다고 듯 멀리 떨어쳐 놓고 있는 겁니다.


스스로를 죄인이라고 보는 당신이 죄인의 신분을 벗어날때는  언제입니까? 아무도 그것을 대신 인생을 살아주지않고 결정지어주지않습니다.그것은 당신이 지금 스스로에게 결정합니다. 그것은 단지 이 시점에서 지금껏 행행왔던 어둠의 세력들에 더 이상 수동적으로 끌려가지 않겠다는 노라는 선언하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그것은 당신만의 잘못만은 아니었습니다. 당신이 다 책임질수도 없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역략안에서 최선을 다할수 있을 뿐인 겁니다. 그것을 선택하는 것도 선택하지 않는 것도 당신 자유입니다.즉 당신은 너무 많은 것을 한꺼번에 이루어지길 원하고 있으며 거기에  좌절된 방식으로 당신의 나는 안돼 지구는 천국이 될수 없어 하는 부정성과 수동성을 고수하고 있으며 그것을 거꾸로 말하면 이 지구의 악행들은 당신이 원하고 있다는 말이 됩니다. 그런식으로 당신은 약탈당한 인질이면서도 스톡홀름 증후군(같은 건물안에 있는 인질이 자신을 감금한 인질범과 같은 죄의식을 공유하고 그의 범행을 도와주는 심리-그것이 불미스런 사건이 나 때문이라고 여겼을때 죄의식 수치심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강간범이나 인질범에게서 영원히 벗어날수 없다.)처럼 당신을 약탈하고 감금한 인질범을 옹호하고 있는 것입니다. 같은 죄의식을 공유함으로서 그의 죄를 더욱 도와주는 공범이 됩니다.적어도 체념한체 악에 대해 수동적 자세를을 취함으로서 그렇게 됩니다.당신이 차지도 덥지도 않고 미덥지근한것이 죄라면 죄입니다. 이 지구는 천국은 안돼다고 하는 만큼 정말로 안 돼는 일이 벌어집니다.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단순히 그런말로 부터 떠나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라도 긍정성을 갖고 행동 해야 함니다. 단순한 원리입니다.


그가 선행을 말한다면 죄인의 열로 부터 그는 이미 앞으로 나와 있는 것입니다. 더 이상 죄인이 아닙니다. 지나친 겸손은 오만을 거꾸로 한것이라는 것을 아십시요. 그것이 에고입니다. 그 어느 것도 진실로 자신이 되어 있지 않습니다.


당신은 스스로 알고 선택하고 결정한것에만 책임이 있습니다. 책임을 자각할때 그것에 벗어나기도 쉽습니다. 당신 수준에서 당신에게 그것에 얽혀 작용하는 역학들을 대해 채무가 없습니다. 단지 알고 행하고 벗어나는 것일뿐입니다. 그렇기에 그것은 당신만의 문제는 아니어서 당신보다 너무나 우주적으로 거대해서 당신이 다 책임지려고 해도 당신에겐 그럴 능력도 주변도 아닌 것입니다. 당신이 이 수준에서 그럴수 있다고 믿는 것은 그것은 겸손이 아니라 오만입니다.당신이 감당할수 없는 악이란게 있따는 것을 아는 것 그것이야말로 크게 되는 것입니다. 당신은 종국에 절차와 단계를 거쳐 이 모든 것을 알아야 하고 거기에 책임 있는 자의 하나가 될수 있겠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 당신이 당신이 아는 만큼만,당신이 결정하고 행동한 것에만 책임을 질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언제든 당신의 복귀가 그 즉시 환영받을 것이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것을 아십시요. 아는 만큼은 할수 있는 만큼에서 최선을 다했기 때문입니다. 그간 루시퍼나 아누나키와 같이 당신에게 가짜로 하나님을 행세했던 자들처럼 하나님은 당신을 심판하는 자가 아니고 파괴와 공포의 신이 아니며 무한한 자비와 사랑이라는 것을 아십시요. 당신이 해야할일은 그저 빛 앞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이제 그렇게 해서 당신에게도 작용하면서도 당신이 알지 못하는 이면에서 벌어지는 우주 역사와 영적인 물리학들에 대해서도 사심없이 긍정적으로 적극적으로 배우기 시작하는 단계가 이루어질수 있는 것입니다.그랬을때 두려움없이 다가섬으로서 단지 시작함으로서 그것은 벌써 절반은 해결은 벌써 보장되어 있는 것입니다.


내가 이 생에서 강간이나 죽임을 당한것은 전생으로부터 남을 강간하거나 살해을 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여러분을 끊임없이 죄의식을 주입하고 가두고 제한하고 영혼을 위축시키고 경지시키며, 감각을 둔하게 하고 빛으로부터 단절시키고 감금시키고 정체시켰던 루시퍼의 카르마 강의는 이제 더 이상 작용하지 않습니다. 영계는 정리되었으며 오늘날 일어나는 사건들은 하나의 사고입니다. 루시퍼의 잉과 응보식 카르마 하에선 외부(자기 내면)와 단절된체 영혼이 수천번을 윤회해도 그것이 지옥인줄도 모르고 게속해서 뒹구는 짓을 반복할뿐 조금도 개선되고 나아지는게 없었습니다. 오물속에 뒹구는 돼지가 오물인지도 모르고 그것을 천국으로 여기는 것과 같죠. 그런데 그렇게 정체돼 신들이 보기에 어느 세월에 이 우주가 하나의 어엿한 우주로 완성되겠습니까. 당신 혼자만 이 우주에존재 하는게 아니며 당신은 우주를 생각해야 합니다. 근원 하나님은 영원히 기다려 줄수 있진만, 영원한 정체 문제입니다. 우주는 열매를 맺고 완성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빛을 주기 위해 예수가 오고 붓다가 온것입니다.우주에서 나온 모든 영혼은 하나도 빠짐없이 언젠간 근원에 다다릅니다. 낙오 되는 영혼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카르마는 유유상종의 거울 원리를 확대한 것에 지나지 않는데, 원래 카르마의 원리는 보복이 악순환이 아니었습니다. 상승의 카르마가 존재합니다. 자신이 완전히 자각하에 긍정적으로 사용하면 더 할나위 없는 것으로 그것을 효과적으로 다루고 그 실수를 통해  자신을  자각하고  책임을 배우고 그것을 통해 졸업하고 상승하는 일에 있습니다. 그러한 영혼과 생각과 현실의 순환의 창조 역학에 노예가 아닌 자각하고 주체적으로 다룰줄 아는 자를 스스로 주인이라고 마스터라고 하는것입니다. 이것은 생각이 현실을 만든다는 마법의 원리입니다. 이 마법을 신에게서 멀어져 잘못사용하면 흑마술이 되지만 신에 경외심을 잃지 않고 신에 봉사하고 옳게 사용하면 백마술이 됩니다 이 백마술의 달인이  바로 예수입니다. 그의 희생의 모범만으로 많은 영혼에 영향을 주어서 그동안 영혼들로부터 고수되어 오던 영계의 루시퍼이 카르마가 깨지기 시작한 겁니다. 예수는  미래 5차원으로 상승한 이 지구의 인류의 대표가 될것입니다.


진정한 어른으로 성장한 왕은 머리를 하늘에 두고 시야를 가릴것이 없기에 두눈으로 보고 겸손을 행할곳에 겸손을 행합니다. 타인과의 관계를 깨달아가며 자기 본위에서 벗어나 자기만이 유일하지 않다는 것을 아는게 어른입니다.무지한자가 교만을 떱니다. 겸손은 앎입니다.  겸손은 자기 위치에 대해 정직함 외에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전체 구조 그림과 자기 자신의 위치를 '앎'으로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앎이 커지는 만큼 앎에 따른 책임감도 커집니다.


놓아주는 일 용서야말로 강한자만이 할수 있고 큰 용기가 필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행한자는 그 만큼 홀가분하게 자유로와지고 비상감을 느끼고  충만해지며 동시에 한층 성숙해지고 강해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상승감입니다.

 

님들 각자가 세상과 상관하지 않고 이곳을 버리고 혼자서만 저곳 최종 목적지 천상으로 올라가는게 목적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 때까지 눈과 귀를 닫고? 당신은 근원자를 얼마나 사랑했는지는 모르지만 근원자가 낳은 자식들과 자기 자신은 사랑하지 못한 인간이었씁니다. 당신의 사랑은 이기적이고 미숙한 사랑이었습니다. 악을 물들지 않을 수도 있지만 모두 닫는 다면 그 때까지 갈 동안의 그 최종목적지에서 선사하는 다른 기쁨 실질적인 풍경들 선이 무엇인조차 알기회조차 놓칠것입니다, 당신이 근원을 만나도 그 부분만큼의 근원은 모르는 것이며 그 부분만큼의 근원을 알기 위해 님들은 다시 여기 와 있다는 것을 아십시요, 여러분들은 모두 먼저 이곳에서 여러분이 서 있는 위치에서 이웃과 스스로를 사랑을 배우기 보다는 하루 빨리 키큰 어른이 되기만을 바라는 어린애와 같습니다. 눈을 가린 말처럼 앞으로 달려가려고만 합니다. 나아가는 것은 좋지만 반드시 앞이 아닙니다. 그 과정들을 보십시요. 절차와 단계들을 하나 하나 밟으십시요 . 앎은 시야를 가리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가짜 어른드링 만든 입시지옥에서 친구들과 경쟁하고 스스로의 처지를 끊임없이 비하하며 엘리트가 되고자 커트라인을 향해 무조건 달려가고자하는 학생들이 아닙니다. 자존감은 자기 존재에 대한 행복감은 자기 사랑과 용서는 그렇게 해서 달성되는게 아닙니다. 서로 서열을 세우고 1등이 되려고 턱걸이하고 명문 대학가는데에 혹은 좋은 직장에 취업하고 출세하는데 방해되는 쓸데없는 친구들은 만나지 말고. 지금 여러분에겐 저 위에 있는 천상이 바로 이러한 대학이고 좋은 직장이고 출세입니다. 하지만 친구들을 만나고 교우를 이루는 것도 그 수준에서 배움입니다. 종교수행은 이렇듯 어렸을때부터 잘못된 부모들처럼 여러분들은 기계로만 자기 사랑을 가르치지 않았던 것입니다. 여러분을 짐승이라 가르치고 노예처럼 여겨왔던 것이지요. 그것은 부모들의 잘못만이 아닌데 여러분이 그렇게 스스를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함으로서 자처한 일이기도 한것입니다. 이제 이러한 국면이 바뀌게 된것이고 바뀔때가 된것입니다. 천국은 그곳에도 있지만 이곳에도 존재합니다. 현재 이순간 이곳에서 여러분 각자가 스스로 자신의 리더이고 왕임을 선언하십시요. 여러분은 대안학교에서 자연과 함께 하며 친구들과 어울리고 놀며 자신의 진정한 가치를 깨달으며 저마다 다른 여러분 자질을 발굴하고 여러분 스스로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학교에 와 있습니다. 자기를 배제한체 어느 하나의 목적지에 노예가 되거나 목숨걸지 마십시요. 가야할 목적지는 있지만 이곳 또한 존재합니다. 가야할곳으로 가지 않아도 문제지만 언제가는 그것을 충분히 맛본후에는 지겨워짐으로해서 스스로 가지말라고 해도 가게 될것이고 졸업하게 될것입니다. 이곳을 베제한 너무 높은 이상은 당신을 옭아맵니다. 그것은 일단들의 단계들을 거치고 절차들의 하나 하나 밟아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진정한 목적지는 그곳으로 가는 바로 이순간 과정속에 있습니다.


당신이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한다면 천국에 갖다 놔도 당신은 영원히 신의 사랑을 못 느낄것입니다.


이 정과 동의 균형을 잘 잡으십시요. 창조주와 창조물, 근원의 샘물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먹여살리는 주의 풍경 동식물 똑 같이 소중합니다.


신은 어느 하나이기도 하지만 모든 것이기도 하고 모든 것이기도 하지만 어느 하나이기도 한것입니다. 둘다 똑 같이 중요합니다. 어느 하나와 모든 것 이 양자의 균형을 잡는게 바로 당신들이 바라는 신이고 최종 목표 경지라 할만한 것입니다. 이 양자와 최종목표 삼자가 합한 것이 근원 하나님입니다. (이것이 성 삼위일체이죠.)


님들이 여기에 온 목적은 여러분이 여러분 이곳의 자신을 버리고 사랑하지 못핫고 저곳으로 가버리는것이 아닙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곳에 온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그곳으로 가기 위해서라도 그 전제 조건이 된다는 것 입니다. 당신은 그것을 배우기 위해 상대적으로 당신이 거짓 현실이라 부르는 이곳에 와 있습니다. 이것은 어둠속에서 빛이 대비를 통해 더 선명해지는 원리입니다. 당신의 목적은 겨우 자기 앞에 놓인  거짓현실에 빠진 자기 신세에 대한 한탄이 아니라 그 빛이고 사랑입니다. 내가 왜 이렇게 됬었을까 내가 왜 지경이되었을 까. 그러한 느낌들은 배움을 위한 자각의 시작이지만 그것에서 나오는 것은 자기 스케일의 그릇에서 벗어나는 일에 있습니다. 이곳에서의 자타의 사랑 그것이 더 높게 상승하는데 튼튼한 발판이 되고 최초의 포석이고 수월한 밑천이 되어 줍니다. 신으로 가는데 저쪽의 신과 이 쪽의 개체에 다리를 놓는데 이쪽의 접속장치를 먼저 놓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것이 자기 사랑입니다. 딛고 올라설 발판이 없다면 여러분들이 올라가고자 하는 노력들은 허상으로 변질될것이며 여러분의 옆에서 여러분을 낚아채가는 아눈나키와 같은 어둠의 자들에 포섭될것이고(그것이 여러분의 빌미가 되어, 그들은 여러분이 원하는 것을 '쉽게' 주겠다고 유혹할것이며 여러분이 스스로 정직한 자기 자신, 영혼의 길을 따르지 않는 이상 영혼을 보지 않는 이상 그것에 유혹되기도 쉬울것입니다)  여러분의 노력들은 좌절될것입니다.여러분은 모두 두려워서 옹송그리고 부모님이 집에 오실때까지 겨우 기다리는 어린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해결책은 여러분 자신이 지금 이곳에서 어른이 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것은 어른의 품성을 신의 품성을 지금 이순간 당신이 서 있는 자리를 향해 품는 것이지요.


신은 평소에는 멀리 있다가 주일날에만 교회나 절에 가서 돌상을 보고 예배하는 당신과 상관없는 존재가 아닙니다.신을 멀리 떨어친체 이거 한방이면돼 하며 복권 바라보듯이 바라만 보지말고 그 무엇보다도 가까이 당신 내면안에 품으십시요. 신은 당신을 포함한 모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게 진정한 신앙입니다. 당신 스스로 해야 합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을 돕습니다.  이곳이 아니면 당신이 생각하는 것과 같은 식으로 가야할 곳은 어디에 도 없습니다.천국은 저곳에도 존재하지만 그곳이 지금 이곳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지금 하지 않으면 내일도 천국에 가서도 못 합니다.


누가 어른입니까. 나이가 많아서 어른입니까. 남의 자리를 공짜로 탐하지 않고 자기 위치를 사랑하고 그곳에서 직분을 사랑하고 그 직분에 맞게 행동하면 그것이 어른입니다. 그런자만이 아이러니하게 다음 위치로 올라설 자격이 주어지고 벗어나기도 쉽습니다. 근원은 당신의 자리에도 숨쉬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레벨 그 위치는 저마다 서로 다르다는 것도 알게 될것입니다. 자기 위치를 사랑하는 자는 다른 자의 위치또한 존중할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에 있는 자기 위치를 먼저 버리고 다른 자의 위치를 서둘러 탐하는 방식만으로 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은 절차와 단계와 과정이 있는 것입니다. 당신이 스스로 당신을 배제한체 이것 하나면 돼 한방에 이런 것은 없습니다. 한꺼번에 해결하려고 하지 마십시요. 그것은 정직하지 못한 것이고 그것은 편의주의며 정당한 노고 없이 편의만을 찾는 것에는 제 한몸을 위해 봉사할뿐 사랑이 없습니다. 자기 하나만 생각하고 그것은 모든 것을 귀찮아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이곳에서 먼저 이 곳에서 단원 만큼은 자신이 주권의 왕임을 마스터임을 선언하십시요. 당신이 왕이라는 것은 그 부분 만큼은 마스터이기를 선언하는 겁니다.나 현존 '스스로' 셀프라는것이고 것은 주의의 어느 인위적 관념이니 시스템에도 종속되지 않는 다는 뜻입니다. 그것이 마음비우기의 실제입니다. 마음 비웃기는 오로히 자기가 되기 어느 것에도 유혹되지 않는 의식 줏대의식이라는 것을 알것입니다. 그것은 자주적이고 주체적인 것입니다. 그것은 자기 몫에 대한 자부심입니다.그런 힘을 완성시킨자만이 다른 사람도 위치도 존중하고 포용할수 있게 될것입니다. 머리를 하늘에 두고 시야를 가릴것이 없기 때문이죠.마음비우기는 나와 타인에 대한 무시와 파괴가 아닙니다. 일반적인 아닌 세세한 것에 대한  희생과 헌신과 봉사는 여러분이 근원으로 가기 위해 평가받아야할 가장 큰 수련 과목입니다. 근원은 저기에만 있는 것이 아니며 이 곳에도 존재합니다.그먼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그것이 근원과의 연결를 놓기 위해 자신에게 접속장치를 튼튼히 하는 일입니다. 높은 곳으로만 서둘럭 가고 높게 되려고만 하지 마십시요. 그런자가 가장 낮게 될것입니다.


빙의에서 벗어나는 가장 확실한 치료제가 사랑입니다. 빙의된자는 자기가 없습니다. 여러분이 태어난 목적은 존재의 기쁨 삶의 기쁨을 통해 이 곳에 저곳의 천국을 입식시키고  이곳과 저곳을 다시 연결시키는 것이라는 것을 아십시요. 그랬을때 그 과제일을 얼마나 잘했나를 통해 여러분의 자질을 평가하여 여러분은 위치적으로 보다 근원에 실질적으로 가까운 위치로 승격할수 있게 되는 겁니다.많은 겸험과 배움과 지혜를 얻는 일이란 딱딱한 가죽을 연하게 하는 무두질과 갔습니다. 그것은 진동수가 보다 더 조밀해지고 밀도가 연해지는 것에 대한 실질적인 일입니다. 인간의 신체가 둔중한 육체로부터 서서히 영이 되어 연해지는 것 근원으로 더 가까워 지는 것 그것이 근원 천국으로 영혼 신체의 진화인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죄라고 부를만하다면 단지 분리가 죄입니다. 지구는 과거 근원과 연결된체 근원의 문명을 이곳에 식믹지 입식시키고 영광스런 낙원을 경영하던던때가 있었습니다. 그것이 어둠의 역활을 하는 자들의 공포의 개입과 인위적인 신체 조작에 의해 이곳과 저곳이 분리되었던 것이죠. 님들은 완전의식을 잃고 자신의 기원과 전생의 기억을 잃어버렸습니다. 어둠은 우리 우주가 창조될때의 설정된 이원성 분리의 게임을 위해 어둠의 그러한 역활을하는 것입니다. 어둠은 게임의 플레이어들인 여러분이 숭배해야할 대상이 아니라 더욱 빛으로 가기위해 여러분이 헤쳐가고 통과해야할 일종의 게임의 장치에 불과합니다. 왜 루시퍼의 어원이 빛이겠습니까. 왜 일류미타니카의 어원이 빛이겠습니까. 그것은 역설적으로 어둠을 통해 허상을 통해 빛을 더 명징하게 해주는 역활을 합니다.


부정적의미에서 부정적 에고를 행하는 어둠의 세력의 본질은 잘못이나 실수에 대한 공포에너지에 지나지 않으며, 공포는 근원과 창조자와 이웃과 여려분을 단절시킵니다.그들은 다른 사람들도 끊임없이 자기와 같이 만들려고 획책합니다. 신도들의 수를 모아둠으로서 자신의 공포를 권력으로 만회하려 합니다. 개인의 그릇 하나만을 생각하며 여러분을 옹송그리게 한고 여러분을 근원으로의 성장을 방해하며 영원히 자기 밑에 구속하고 소아로 노예로 만들지요. 공포는 극단적으로 자기 자신으로부터도 단절시키고 해체 분열시키지요. 충만함과 풍요로움으로 타인을 바라보고 치유받아야할 결벽증이 마치 무슨 위대한 힘이 되는양 추앙받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큰 자아는 나로서 존재하되 나 이외의 이웃 지역사회 민족 국가 인류 세계 태양계 은하 외부로 점차로 의식이 확장되어서 모두를 포함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으로서 오롯한 여러분 자신의 모습을 잊지 않되 어둠에 게의치 않되 보다 더 진급하려면 혼자이면서도 혼자만이 아닌 나 외의 존재들 외부세계와 협동하며 함께 가지 않을수가 없을 것입니다. 작가나 예술가와 같이 창조하는 자는 고독한 자입니다. 고독한자는 창조하는 자입니다. 봉사는 근원으로 가기 위한 가장 큰 수행과목이라는 것을 아십시요. 예수 붓다가 이 세계로 옴은 모두 그러한 봉사의 일환인것입니다.돈을 기부하고 이벤트를 벌이는게 봉사가 아닙니다. 그런것은 위선자들도 할수 있습니다. 오히려 이 세계를 경영하는 위선자들이 자선사업을 함으로서 그들은 더욱 부유해지고 결과적으로 다른 사람들은 그들의 의존적 영원히 노예가 된체 근본해결책을 보지 못한체 악순환을 반복을 통해 이 세계를 당신을 가두는 역활을 합니다. 자선사업은 자립하지 못한 여러분 병을 고치려 하지 않고 여러분에게 던져주는 마약과 같고 환각제와 같은 것입니다.
 

천상으로부터 다른 영혼의 성장을 돕는 창조에 대한 영혼의 참여가 봉사입니다.
그것은 이곳에 천국의 '문명'의 입식하고 건설하는 것과 같은 실질적인 일이기도 한것입니다.
저 하나만의 머리속의 것이 아닌 실질적인 것입니다. 그것이 형상화되고 표현된 구체적이고 실질적 세계가 있습니다. 신체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단순히 공상만이 아닌 표현화된 그 신체들의 조직이 있고 사회가 있고 문명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혼자서 외부와의 단절속에서 근원과 소통하는 일은 좋은 일이나 그것못지 않게 근원이 창조한 이웃들과 협동하는 일도 중요하다는 것을 아십시요. 당신 혼자서 근원 혼자서 우주를 꾸려갈수는 없습니다. 근원에 도달하는 일은 꾸려가는 일과 동시입니다. 근원을 사랑하는 일은 근원이 하는 일에 봉사하는 일이기도 한것입니다. 창조입니다. 일에는 분업과 협동이 효율적입니다. 각자의 자리외 위치가 저 마다 다르고 소중한 이유가 여기 에 있습니다. 중세시대에는 모두가 어둠 시스템이 거짓으로 창조한 환영에 홀로 산속에 들어가 수도하는 것이 하나의 방편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다릅니다. 아직도 어둠이 창궐하는 시대이지만 그것은 막바지에 이르고 있습니다. 당신은 빛으로 가득싸인 세상에서 안에서 나와서 밖으로 만나고 화합해야 합니다. 그곳에서는 문을 걸어 닫을 필요가 없습니다. 지구상 모든 곳에서 당신은 근원과 만나야 하는 것 입니다. 이것은 당신의 권리이자 지구의 권리입니다.당신은 홀로 도피가 아닌 밖에 나와 지구상 모든 곳곳에서 고요함과 평화를 누리며 근원과의 연결을 통한 명상을 할수 있습니다.그 어둠의 힘이 득세했을때처럼 당신이 도피하거나 숨을 필요가 없습니다. 숨어야 하는 것 어둠이지요. 지구는 지금은 어둠의 세력들의 유배행성으로 감옥행성으로 전용되고 있지만 원래는 우리 은한의 많은 창조물들이 저마다 다양성을 이루면서 하나로 화합하는 것을 보기 위해 우리 우주의 창조자가 직접 창조한 행성입니다. 그렇게 위대한 목적이었기에 지구는 그만한 시련이 주어진것이고 감옥행성 그것은 지구의 헌신이었던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에게 왜곡된 종교에너지와 같이 누구가 만들어놓은 룰에 예속되는 식으로 주체성 줏대 없음 내가 없음은 그것을 무색케하는 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신성으로 가다보면 당신과 같이 신성으로 가는 많은 무리를 만나고 교류하게 어울리게 될것입니다.그렇지 않은한, 나눔이 없는한 당신의 성장은 정체됩니다. 여러분이 경계해햐할것은 근원과의 단절일뿐입니다. 당신과 마찬기지로 근원으로분터 사랑받은 자식들인 근원의 다른 사랑스런 생명들을 왜 멀리 합니까. 그들도 근원의 다른 사랑스런 자식들입니다.그것은 당신을 자신을 멀리하고 불신하는 것처럼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나님 보기에 좋은 합당한 원상적인것은 멀리 할필요가 엇습니다. 근원을 사랑하는 것과 함께 근원이 창조한 세계를 사랑하고 누리는 것  이 두가지 모두 중요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서 근원을 이해하는 것입니다.당신은 호랑이들과 사슴과 양이 함께 뛰어 놓은 초원에서 갖가지 꽃과 영롱한 빛들이 낙원에서 그 순수를 노닐어야 합니다.
근원자로의 사랑과 함께 빛의 도시에 있는 승격스승들 또한 그것을 부정하지 않는 다는 것을 아십시요.


명상은 생활이 아닙니다. 명상은 내면을 통한 상위 우주와의 소통이고 교통의 시간입니다. 그 상위차원에 근원 하나님이 있습니다. 생활만 하고 살수도 없습니다. 신체로 나온 존재는 명상만 하고 살수도 없습니다. 둘다 입니다. 명상에 관계 일을 개인이 모여 무리를 이루고 조직을 이루고 사회를 이루는 실질적인 일로 확장하여 그 것들을 지워버리려 하지 마십시요. 명상할때는 명상할때고 생활할때는 생활할때입니다. 그것이 점 점 합치될때가 올것입니다. 당신은 하늘의 뜻에 맞게 마을을 짓고 밭을 갈고 일을 해야 합니다. 당신은 가만히 앉아있을수없으며 행동을 해야합니다. 당신들에게 필요한것은 행동입니다. 명상과 함께하며 무리를 이루고 사는 일 직업이고 분업화된 협동하는 사회입니다. 지구 대진동후에 당신들은 일을 해야 합니다. 신의 합당한 문명을 건설하기 위해 본래의 지구를 재건하기 위해 거기에 신체와 지혜와 의지와 기술이 필요한 것입니다. 사랑의 마인드는 가장 중요한 하나님이나 실질적 차원에선는 마인드로만으로는 되지 않습니다. 사랑은 멸망을 기뻐하지 않으며 생명에 기뻐합니다. 누군가 사랑하는자가 있다면 그가  자기 뜻을 실현하기 위해서라도 그 지혜와 의지의 여신에게 자문을 구하게 될것입니다. 그래서 사랑으로부터 지혜와 의지가 분업화 된것이지요. 정신 지성 감성 또한 그러한 분업의 일환이고 그것들은 모두 제자리에서 하나로 협동합니다. 지혜 의지 그리고 그것을 모두 포함한 사랑 이것이 삼위일체입니다.


중용과 균형을 잃은 극단적 금욕은 어리석음입니다.


신에 반역한 무리들 어둠의 군주가 다스리는 지금 물질산업문명의 이 문명은 신의 뜻에 창조의 법도에 맞지 않습니다. 신의 뜻에 맞는 문명건설, 그렇다고 해서 거리로 나가 피켓을 들고 시위하고 운동하라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나비가 허물을 벗고 고치를 깨고 탈피를 하는데 진동이 필요하듯 현 지구가 요동치고 낡은 세계가 파괴되는 것은 예정된 수순입니다.어둠과도 싸울 필요가 없습니다.고대 힌두의 데브구루, 큰스승, 성자의 환생이이라던 간디 실험처럼  당신은 이곳에 와 앞에 나와 당신의 갈길을 가면 됩니다. 그것으로 모범이 되는 것만으로도 어둠이 어찌할수 없는 범접할수 없는 힘이 됩니다.


여러분은 모두 겨우 여러분 하나를 위해 지구에 와서 각자의 저마다 개인의 일상사와 문제에만 얽매여 있고 겨우 저 하나 수행을 통한 천국으로 가 것 개인만의 성장과 구원, 진화만을 바라지만, 당신은 단지 당신 목적을 위해 지구를 도구로 이용하고 버리는 방관자가 아닙니다. 지구는 무기질이 무생명체가 아니며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의식이 있는 생명체이며 지구가 당신을 받아주지 않았다면 당신은 지구에 올수 없었습니다. 당신은 당시 죄의 수행의 도구로 지구를 이용할뿐 아무런 감사도 경의도 표하지 않죠. 당신이 하도 많은 행성을 두고 하필 지구에 온 것은 이유가 있습니다. 중요한것은 지구의 진화이고 그것과 맞물려 있는 당신과 우주의 진화입니다..모든 영혼의 생의 체험과 진화는 이것과 맞물려 있습니다. 지구는 상승할 것입니다.


망각속에서 우리는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는가를 잃어버렸는데,  모든 진실이 감추어져 있는 저 이면의 세계와 만나야 합니다. 지구는 소위 지역 우주의 가짜 창조자 행세를 한 반역자에 불과한 그 단절을 언제까지 바라보고 만 잇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우주내의 피가 돌지 않는것 신경이 돌지 안는 것고 같습니다.


그 와중에 떨어져 나가는 사람있을겁니다. 상승을 선택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상승하는 것은 지구이기도 하기에 상승를 바라는 당신이 지구와 같이 가지 않는다면 당신은 수행은 공염불이 될뿐입니다. 떨어져 나가는 사람들은 자연사한후 상승한 지구에 다시 태어나지 않는 사람들인데 다른 3차원 행성에서 배움을 계속해야 합니다. 당신이 진정한 수행하는 자라면 같이 상승하는 지구와 필연적으로 만날것입니다. 개인적인 문제는 그것도 그 수준에 있는자에겐 필연적일수 있는 하나의 배움이지만 개인적인 문제에만 집중했을 때입니다. 개인적인 문제에서 벗어나 시야를 넓게하고 그릇을 크게 했을때 개인에 국한된 잔걱정이 사라집니다. 그것이 무아입니다. 그것이 오히려 개인적인 문제들을 해결해주는 것입니다. 남을 돕는 것이 결국 자기를 문제를 돕고 함께 동반 성장하는 것이죠.  
 

진정으로 성숙한자들에겐 높이 된자들에겐 개인 혼자서 이곳을 버리고 근원에 도달하는 개인의 영적 진화 보다 더 중요한게 있다는 것도 깨닫게 됩니다. 우주전체 문명자체의 진화는 높이 된 스승들에게도 더 큰 명제라는 것을 아십시요. 당신들이 이곳에 와서 각 개인의 겸험을 쌓는 것도 당신 자신은 반드시 전체와는 상관없지만 전체적인 그림으로 보면 거기에 봉사하는 큰 그림이 있으며 당신이 영혼을 통해 온것도 그러한 이유입니다.
어느 누구도 창조에 봉사함 없이 저혼자서 잘랐다고 근원에 고속으로 근원에 도달 할수 없습니다. 이것 하나면 돼 낙하산 인사 고속승진 그런것은 없습니다. 영혼엔 공짜가 없다는 것을 아십시요. 그런자는 보지도 듣지도 못했습니다. 함께 가는 것입니다.

 

당신들을 천상에 갖다 놔도 혹은 낙원에 갖다 놔도 정작 여러분 자신이 여러분 자신을 사랑하지 않은면 무슨 소용입니까. 당신이 당신 자신을 먼저 사랑하지 않으면 당신주의에서 당신에게 무언의 메시지를 보내는 그곳의 풍요로움을 아름다움을 영원히 느낄수 없을 것입니다.  즉 자기 사랑이 신이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느낌이 그렇게 여여한 자들이 천국의 주민으로 입성하는 조건이 될수 있다는 것입니다.
 

염세적인것이 필요 했던 것은 어둠의 지배하에 있었을때입니다. 정상적인 수행은 진화와 함께 갑니다.
금욕적 독실한 수행이 아니라 모두를 돌아보지 않는 자기 하나만 아는 모두 상처받고 무딘데에 따른 불감증에 외상후 스트레스증후군 환자와도 같습니다. 간디처럼 천진하게 아이들과 웃으십시요. 그것까지 금하려 들지 마십시요. 공포와 죄의식은 영혼을 경직과 위축을 불러오며 스스로 한계에 갇히게 만듭니다. 감각이 제대로 발달하지 못하는데 우주로부터의 안테나가 무디어지는 겁니다. 감정은 저급한것이라며 아름다움을 보고도 어린아이처럼 감동할줄 모른는 것은 세상 풍파에 떼가 묻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만 하는 것은 저만 아는 것이고 편의적인것입니다.거기엔 사랑이 없습니다.상위 차원 극락에 가면 감정이 없을까요. 오히려 더 풍부합니다. 많이 감격하고 많이 웃고 많이 울고 하는것, 타인과 한몸처럼 공감하는 능력을 발달시키며, 영혼의 다양한 체험이고 겸험이며 그러한 다양성은 일종의 무두질로서 경직된 영혼의 신체를 연하게 하여 종국적으로 영으로 진화하게 하는데 배움을 보장해줍니다.
한편으로 이러한 특성을 가진것이 영혼인데, 영혼이 없으면 당신들은 창조자와 근원과의 연결를 생명으로 이룰수 없고, 진화 할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죄인이 아닙니다. 그러한 뉘앙스로는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을 사랑할수 없으며 영원히 두려움과 집착에서 벗어날수 없습니다. 이것도 이 즈음 수정되어야 하고 또 되고 있는 것 입니다. 당신이 속한 지역 우주의 가짜 창조자 루시퍼 에너지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으며 루시퍼의 시절은 과거였지 앞으로 다가오는 시대가 아닙니다. 근원자 부처 하나님으로 가는 길은 하나가 아니라 여러갈래가 있으며 각자 독자적으로 루트 개발된 수행법은 기본적으로 존중하지만 전통수행종교 가르침은 루시퍼의 체제 시대하에서 나왔기에 루시퍼가 사라지면 같이 사라질 쌍둥이 그림자의 운명인 것입니다. 불교전통수행은 루시퍼의 쌍둥이 그림자로 임시 방편의 약에 불과했습니다. 비록 정수는 옳을지라도 많은 부분이 완전하게 전달되지 않았고 그것은 절대적인것이 아니며 전체적이고도 세부적인 그림이 아닙니다.


태초에 우주가 탄생할때 상위차원 근원에서의   영혼들이 나와 우주 전역으로 퍼져가는 것 하나님의 뜻을 이곳에 우주 전역에 실현시키기 위해 대로 씨를 뿌리고 묘종하는 것 하강하는 것 창조를 돕는 것 자체는 추락이나 죄가 아닙니다.여러분은 이곳에서 어떻게든 이 지옥을 벗어나 천상으로 올라가려고 앞만 보고 하나만 보고 아득바득 애쓰지만(정말 그 무대에 오른다면 주변을 돌아보야 할때가 올것입니다) 그것은 우주 전반이 아니라 단순히 여러분이 속한 지역에서만 상황하에서 였습니다. 태초에 인간이 지구에 출현할때(그것은 천국을 넓히는 정사적인 과정입니다) 영혼들이 인간이 되려고 여러분이 올라가려고 할때와 마찬가지로 하강하려고 애썼던때가 있었다는 것을 아십시요. 여러분이 추락이나 타락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 상태에서 어둠의 계획이 극단까지 나간것으로서 근원과의 연결이 단절되고 끊어졌을때만을 말합니다.


아담과 이브의 낙원에서의 추방은 여러분의 최종 목적지 천상이 아니라 명백히 지구에서 두발로 걷던 육체들에서 일어났습니다. 천상의 법도를 입식한 에덴은 지구에 존재했습니다. 아담과 이브의 추락은 지구에서 신체를 가지고 살되 육체에만 갇혀 상위 12가닥 디엔에이 다차원 영혼을 통한 상위 근원과 연결과 교류를 잃어버린 것을 말합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스스로에 대한 기억을 잃고 이 지상에서 여러분이 진정으로 추락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지요. 전통수행종교의 가르침들은 어떻게해서 어둠의 장치와 에너지에 시스템 포섭되었으며 근원과의 연결을 잃어버렸는지 왜 그런 말이 나왔는지 그 근본 이유를 모른체 에서 부분에만 원죄이니 중생이니 하는 말로 도그마적으로 치중해서 많이 왜곡되었다는 것을 아십시요. 에덴은 천상에 있지 않습니다.천상은 천상의 낙원이 잇지요. 에덴은 그 천상의 낙원을 이곳에 입식하여 식민지화한 것입니다.


원죄이니 중생이니...비록 인간이 반짐승 전락했지만 그것은 일종의 사고입니다.
 여러분은 우주가 처음 창조될때 천상에서 영혼이 각 지역에 퍼져가는것 하강하는 것 자체를 추락이라고 이곳에 떨어진 것 자체를 잘못된것으로 죄로서 생각하는경향이 있습니다. 문제는 그 상태에서 본의 아니게 변질된 오염 부분이 있어서인데 그것 전부 자체를 그렇게 바라보는 태도는 결코 스스로 사랑할수도 근원으로 성장할수도 없다는 것을 아십시요. 거기엔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당신 말대로 이곳에 떨어진 이유는 그 사랑을 배워가기 위함입니다. 그것이 근원으로 실질적 신체로가는 열쇠입니다.  (영계에 갇혀 윤회하지않고.신체의 실질적 위치로 영계를 극복하지 않으면 죽으면 천상이고 무이고 뭐고 모든게 끝난다)


천국은 오직 천상을 말하며 이곳에 천국이 있어선 안되며 지상에서는 천국이 있을수 없다는 것이지요. 하나님만이 사는 궁궐 천상만이 오직  중요하며 이곳은 쳐다보지도 않고 백안시하는곳, 없었던곳, 있어서는 안되는곳, 우주 전체는 영혼을 잡아먹는 짐승들이 가득한곳 바라볼곳없는 나락이며 떨어진 하층민들이 사는 돌무더기 조금 정로라고 생각하죠. 그 열정은 좋습니다. 비록 인간들이 반짐승상태에 놓여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은 명백히 수정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당신들이 속한 우주의 지역이 그런것이며 그길로 가는 우주 전체가 그런것이 아닙니다.


어찌 근원 하나님이 창조하고 근원 하나님이 거기에 깃드는 우주 전체 면적을 그렇게 모두 공포의 색깔로 바라봅니까. 어떻게 그럴수가 있나요? 단지 병들었을 뿐인데 왜 저기 수도권에 있는 한곳의 궁궐만이 존재하는 모든 것이라고 생각하나요? 왜 스스로의 입지를 좁힙니까?나라를 말할때 수도 서울과 지방 중소도시 모두 소중하지 않을수 없듯이 우주도 그러합니다. 왕족과 귀족들만 사는 궁궐만이 나라가 아닙니다.


여러분이 여러분이 나락이라고 부른 이곳에 떨어진 이후가 바로 그것입니다. 여러분은 항상 궁궐의 근원의 품에 안겨 있기에 아무것도 모르고 철부지 귀염만 받고 자린 도련님 아가씨들이라 정작 근원이 뭔지 몰랐던 것입니다. 근원이 너무 가까이 있어 몰랐던 것이죠.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이유 따분하고 권태로웠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위해 효과를 극대화 하기 위한 일환으로 루시퍼라는 무서운 삼촌에 맞겨진것이지요! 당신이 여기에 옴은 근원을 실질적으로 알아가는 과정입니다.


태초에 내가 궁권 천상의 왕자이고 공주이였는데 이 신세라니! 바깥세상에 나가 세상을 좀 배워보라는 아버지가 원했던 감사함은 저만치 물건너 갑니다.


태초에 영혼들이 지구에 왔을때 천국은 지상에 존재했으며 천상과 지상의 별반 구별이 없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사랑을 나약한 것으로 알고 있으며 생존을 위해 이기적인 것을 강한 것으로 압니다.
영적 세계는 이 세계에서 약한자가 가장 강한자가 되는 세계입니다.
사랑이야말로 자립한자가 강한자가 줄수 있으며 약한자는 사랑을 줄수도 받을수도 없습니다.
이기적인것은 아직 영적으로 덜 성숙한, 자리지 못한 어린애와 같습니다.


어떻게든 이곳을 버리고 다시 올라가야 한다고!올라가는게 아니라 이곳과 저곳을 연결시켜주고 이어주는 것이며 근원의 확장에 봉사하는 일입니다. 그것이 창조입니다. 올가는 일은 그 일을 다 마치는 일과 병해하면서 실질적 절차와 단계와 시험을 거쳐 이루어진다는 것을 아십시요. 죄의식을 심어주는 이러한 전통종교수행에너지는 실질에서 여러분을 멀어지게 하고 옭아매며 여러분을 겨우 개인 그릇 하나에만 두려워 옹송그리게 하고 머무르게 하고 소아 상태로 옹소그리게 하는 것, 남의 기쁨이나 고통에는 무관심하고 상관없는 수행은 이기주의로서 추악한것입니다.


자기 하나 처지만 생갃하는 것 (그것이 오히려 자기 하나 만의 처지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합니다.)자기 봉사로서 근원에 도달하는 자는 모두 추락합니다. 이타적 봉사가 되어야 하며 이타성은 근원의 가는 길과 필연적으로 합치하게 될 덕목이라는 것을 아십시요. 근원에 도달하는 일은 기쁨이고 즐거움이지 쓸데없는 자학이 아닙니다.


고대인은 설명해도 모르는 것이 많았기에 그렇게 말하고 그렇게 들릴수 밖고 그렇게라도 임시 병약을 쓸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못알아 듣기에 무조건 당신들을 강아지 마냥 목을 잡아 저만치 길게 늘일뺄수밖에 없었으며 당신들은 따라야 했으나 그 이유를 안다면 여러분은 스스로 주권을 찾고 융통성을 찾을수 있을 것입니다. 융통성을 부릴줄 아는자가 마스터입니다. 여러분은 스스로 생동하고 움직이는 마스터가 되지 않으면 안되는데 그게 각자 갖은 지분만큼 머리를 가지고 우주가  효율적으로 원활히 돌아가는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자기 스스로 자율적으로 생각하지 않는 이상 그 부분에 있어서 만큼은 피가 돌지 않고 신경이 마비된거싱며 우주가 효율적으로 돌아가지 않습니다.톱니바퀴가 윤활류가 없어 딱딱해지고 튄다는 것이죠.스스로 생동하고 움직이는게 아니라 무조건 시키는데로 만 하라고 신의 머리를 맞기고 움직일때 우주는 정체된다는 것을 아십시요. 누군가가 차려놓은 던져 주는 물고기를 바라기 보단 스스로 물고기를 잡는 법을 배우십시요.


여러분은 모두 우주 완성이라는 인간이 인지하지 못할만큼 거대한 창조에 봉사하기 위해 이곳에 와 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들의 꿈, 삶과 기쁨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여러분들은 그 목적을 위해 모두 신으로부터 방사된 인자들이며 모험가이며 도전자이고 여행자들입니다. 어린아이가 성장하듯이 잘못이나 실수에 포섭되었다고 해도 그것을 극복하느것은 하나의 배움이고 여정입니다. 각 개인의 그러한 체험들을 통해 배우고 버리고 더 큰 자아로 성장하는 모습들이 우주완성의 모습들입니다. 근원은 영혼을 통해 여러분과 연결되어 있으며, 여러분 모습으로도 숨쉬고 있습니다. 살이 있음을 느끼고 근원이 여러분 영혼의 여정을 통해 스스로를 근원 자신을 공부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심각하지만 단지 체험을 통해 공부하는 과정일뿐입니다. 지나고 보면 애쓴 보람을 느낄만한. 여러분이 여러 겸험을 통해 스스로에 대해서 실수를 통해 공부하는 것은 근원이 스스로에 대해 알고자 하는 욕구인 것입니다. 우주에 온통 자기 하나로만 있는 자는 ㅅ스로 자신을 볼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에겐 거울이 필요했습니다. 근원이 스스로를 보고자 가운데서 세포 분열한게 여러분입니다. 과정에서 본래의 자신을 망각한체 자신과 똑 같은 신의 분신들(거울)과 싸우며 시련을 받고 더러는 상처받고 고민하고  병들고 상처받은 세포도 있을수 있겠지요. 그 또한 질곡한 교훈과 배움의 가치가 있는 거울이며 환상이고 분리되지 않았으며 몸으로부터 새로운 치유의 에너지를 받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근원으로부터 영혼으로 나온 목적은 그런 방식으로 천국을 깨달은 여러분이 천국을 우주 각개 영역에 입식하여 식민지하고 하늘의 뜻에 맞게 천국의 문명을 하늘의 뜻을 펼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늘의 문명은 자신을 우주전역으로 확장하며 실질적 사회를 통해 번성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천국을 확장하는 정상적인 과정이며 그것은 추락이 아닙니다.


누가 죄를 구분합니까. 그것은 누가 정했습니까. 자기 자신을 용서하고 더 큰 자아로 비상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여러분 영혼과의 직접적인 문제입니다.그것이 배움이고 성장이고 개인의 내면적  체험이고 깨달음이며 그것을 통해 여러분은 더큰 근원의 자아를 향해 성숙합니다. 아무도 여러분을 심판하지 않습니다. 심판은 어디까지나 여러분이 여러분 자신과의 청산해야할 일의 문제라는 것을 아십시요. 용서와 자비 스스로에게 먼저 행하시요. 창조과정에서 일어나는 그러한 업들은 무엇보다도 냉정해야할 정직해야할 그래서 여러분이 직접 대면하고 풀어야할 결코 회피할수 없는 여러분 자신과 신과의 문제인것입니다.


그것은 여러분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극복하지 않고 여러분 자신을 대면하지 않고 여러분 자신을 용서하지 않고 스스로에게 정직하지 않고서 모두가 혹은 어떤 다른 누군가 주지한 합의한 스승을 찾고 선을 행한다고 해서, 그것이 대신해서 풀어주는 문제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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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겐 자유의지가 없으며 누군가에게 조종당하고 지배당하는 존재일뿐이라느니, 운에 맞기고 그런대로 산다든지 하는 것은 수동성 노예근성의 극치로서 정말로 우리가 경계해야할 죄악중의 최악입니다. 또한 어둠의 가짜 신이 만든 종교에너지이기도 하지요.


이것은 예전에 지구에 와서 님들의 영적 성장을 방해하고 노예로 만들고 폭정을 부리며 굶림하고 가짜 신 행세를 했던 루시퍼와 아눈나키 그의 외계 추종자들을 자신들의 신들로 착각하고 그안에 안주하며 아무런 문제 의식없이 받아들인다는 겁니다.


그것은 진짜 신이 아닙니다. 진정한 신은 당신의 주권과 독립을 존중하고 협동합니다.
진짜 신과 가짜 신도 구별못하는 촌극이지요


앎의 횃불을 드십시요. 지금 이시점에선 앎이 중요합니다.


거기에 안주하는 자가 만물은 공평하며 평등하다는 소릴 하고 있다면 그 얼마나 위선입니까.


몸은 영혼이 입는 옷에 불과합니다. 영혼에는 모든 고통을 이겨낼 힘이 있습니다.
몸이 불편해도 마음은 편안할수 있으며 몸이 편해도 마음은 편안하지 못함을 느끼는 겁니다.
편안한것은 찾되 편한 것만 찾지 마십시요. 이런 것은 영적 성장의 적입니다.


우연이나 운이라는 것은 이 우주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은 원인과 결과의 에너지로 빈틈없이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