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신지학(神智學)에서는 죽은 다음 다시 태어나기 까지에는 50년내지 10,000년이 걸린다고 말하고 있습니다.왜 그렇습니까?>


어떤 의식 상태를 측정하는 기준과 다른 의식 상태를 측정하는 기준 사이에는 아무런 연관도 없다.따라서 그러한 측정의 척도는 절대적이지 않다.다시 태어나는 데에 걸리는 시간이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은 진실이다.

그러나 분명히 이해해야 될 것은 태어났다 죽었다 하는 개체적 영혼이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각자의 생각하는 마음이 그런 것처럼 보이도록 만든다는 사실이다.마음은 어떠한 상태,어떠한 차원에 있든 거기에 맞는 체(體,body)를 스스로 만들어낸다.

즉,물질 세계에서는 물질적 육체를,꿈의 세계에서는 꿈의 체를 만들어내는데,이 꿈 속에서의 체는 꿈 속에서 비가 오면 젖고 꿈 속에서 병이 들면 아파한다.물질의 육체가 죽으면 마음은 일정 기간 동안 마치 꿈 없는 수면 상태에서처럼 정지하는데,그때에는 물질 세계도 없고 육체도 없다.그러나 곧 다시 새로운 세계에서 새로운 체(아스트랄 세계에서의 아스트랄 체)를 받아 활동하게 되며,그러다가 다시 물질적 육체를 받아 재생한다.

그러나 이미 마음이 사라져 버린 깨달은 사람은 죽음에 의해서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는다.깨달은 사람의 마음은 완전히 사라져 버리기 때문에,다시 생겨나서 탄생과 죽음을 일으키지 않는다.그에게 있어서는 환상의 고리가 영원히 풀어져 버린다.

진정한 의미에서는 탄생도 죽음도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탄생과 죽음이 실재한다는 환상을 만들어내고 계속 유지하는 것은 바로 마음이며,이는 깨달음에 의해서 완전히 사라진다.



2.나무의 가지를 잘라도 다시 가지가 자라나는 것을 보아라.뿌리가 다치지 않고 남아 있는 한,나무는 계속 자란다.마찬가지로 죽음을 맞아 일시적으로 가슴 속에 가라앉은 업은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적당한 때가 오면 다시 재생을 일으킨다.그와같이 하여 인간은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3.<눈 앞에 보이는 수많은 영혼들과 이 드넓은 우주가 어떻게 가슴 속에 가라앉은 그 미세한 업으로부터 생겨날 수 있습니까?>


거대한 보리수가 아주 작은 씨앗에서 생겨나듯이,이 수많은 영혼들과,온갖 이름과 모습으로 가득찬 이 드넓은 우주도 미세한 업으로부터 생겨난다.



4.그대가 이번에 탄생한 사람이 과연 누구인지를 계속 파고들어가다 보면 그대는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며,그 진리가 그대의 모든 업을 태워 버려 그대를 탄생으로부터 벗어나게 할 것이다.산더미처럼 쌓인 화약도 성냥불 하나로 순식간에 다 타버리듯이 무수한 생에 걸쳐 쌓아온 과거의 업도 아주 작은 깨달음의 불꽃에 의해 타버린다는 사실이 경전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이 거대한 현상계와 이 거대한 현상계를 연구하는 그 방대한 학문의 지식은 모두 에고에서 기인한다.자아 탐구에 의해서 에고가 사라지면 이 모든 것들은 순식간에 무너지고 진아만이 남는다.



5.<그렇다면 인간의 자유란 무엇이며 자신의 행위에 대해서 책임을 진다는 것은 또 무엇입니까?>


인간이 가지고 있는 유일한 자유는,깨달음을 추구하고 깨달음을 얻어서 육체와 자기 자신을 동일시하지 않을 수 있는 자유뿐이다.육체는 프라라브다 카르마(현생에서 받아야 하는 과거생에 의해 축적된 카르마들의 일부.운명으로 인식되기도 한다.)에 의해 이미 결정된 행위들을 필연적으로 하게 된다.

이때 육체와 자신을 동일시하여 그 육체의 행위에서 파생되는 열매에 집착할 것인지,아니면 동일시로부터 벗어나서 단순히 그 육체의 행위들을 지켜보는 자로 남을 것인지,그 선택에 있어서 인간은 자유롭다.



6.<이 세상의 고통의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그리고 그 고통을 벗어나도록 도움을 줄 수 있는 개인 또는 집단으로서의 방법은 무엇입니까?>


진아를 깨달아라.그것이 필요한 전부이다.



7.<수많은 제약으로 가득찬 이 삶 속에서 제가 진아의 지복을 깨달을 수 있을까요?>


진아의 지복은 언제나 그대와 함께 있다.그리고 그대가 그것을 진정으로 찾고자 노력한다면,그대의 힘으로 그것을 찾을 수 있다.그대의 불행의 원인은 그대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대 내면,즉 에고에 있다.그대는 스스로 자신에게 한계를 지어 놓고 다시 그것들을 넘어서려고 애쓰고 있다.

모든 불행은 에고 때문이며,에고와 함께 모든 문제가 생긴다.불행의 원인이 그대의 내면에 있기 때문에 세상탓을 해보았자 아무 소용이 없다.그대의 바깥에 있는 것들로부터 무슨 행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며,설사 얻는다 하더라도 그것이 얼마나 지속되겠는가?

그대가 에고를 부정하고 무시함으로써 에고를 없애면 그대는 자유를 얻을 수 있으나,에고를 받아들이면 그것은 그대를 제약하고 그대로 하여금 그 제약을 뛰어넘으려는 헛된 노력을 하도록 만들 것이다.

진정한 그대 자신인 진아를 깨닫는 것만이,항상 그대와 함께 있는 지복을 깨닫는 유일한 방법이다.



8.<진정한 의미에서 구속도 자유도 없다면 실제로 여러 가지 기쁨과 슬픔을 경험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인간이 자신의 진정한 본성으로부터 벗어나 있을 때에만 그것들이 실재하는 것처럼 보일 뿐,그것들은 실재하지 않는다.



9.<저희들은 이 세상 속에서 고통을 봅니다.어떤 사람이 굶주리고 있을 때,그 굶주림은 그 사람에게 있어서는 매우 실재적입니다.그런데 그것을 단순히 꿈이라고 하면서 그냥 보고만 있어야 합니까?>


깨달음,또는 실체의 관점에서 보면 그대가 말하는 그 고통은 분명히 하나의 꿈이다.꿈 속에서도 그대는 배고픔을 느끼며,다른 사람이 배고픔으로 고통당하는 것을 본다.또 그대는 자신의 배고픔을 채우기도 하고,다른 배고파하는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기도 한다.

꿈이 계속되는 동안에는 그 꿈 속의 배고픔이 마치 그대가 지금 이 세상에서 배고픔을 느끼듯이 실재하는 것처럼 보인다.그 꿈 속의 배고픔이 실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그대가 깨어난 다음이다.

배부르게 먹은 다음 잠자리에 들어가서는,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하루 종일 일을 열심히 해서 매우 피곤하고 또 배가 고파 잔뜩 먹고 싶어하는 꿈을 꿀 수도 있다.그러나 꿈을 깨어 보면 그대의 배는 불러 있고 그대는 침대에서 나오지조차 않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꿈을 꾸는 동안에 그 꿈 속에서 느끼는 고통이 실재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할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꿈 속에서 느끼는 배고픔은 꿈 속에서의 먹을 것으로 해소해야 하며,꿈 속에서 다른 사람들이 배고파하는 것을 보면 꿈 속에서의 먹을 것을 주어야 한다.꿈 꾸는 상태와 깨어 있는 상태를 섞어 놓을 수는 없다.

깨달음의 상태에 도달하여 이 환상에서 깨어나기 전까지는 고통을 당하는 사람을 볼 때마다 그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사회적 봉사를 해야 한다.그러나 그렇게 할 때에도 <내가 행위자>라는 느낌을 갖지 말고,<나는 신의 도구>라는 마음으로 해야 한다.

결코 자신에게 속아 이렇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나는 나보다 못한 사람을 도와 주고 있다.그는 도움을 필요로 하며 나는 도울 수 있는 위치에 있다.나는 우월하고 그는 열등하다.>

그대는 그 사람의 내면에 있는 신을 경배하는 수단으로 그 사람을 도와 주어야 한다.이런 모든 봉사도 결국 그대를 위한 것이지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다.그대는 다른 사람을 돕는 것이 아니라 그대 자신을 돕고 있을 뿐이다.



10.<결국 항상 내면만을 봐야 한다는 말씀이군요.>

그렇다.

<현상계는 절대로 보아서는 안 됩니까?>

현상계에 대해서 눈을 감아 버리라는 이야기는 아니다.단지 <먼저 그대 자신을 보고 그리고나서 현상계 전체가 진아임을 보라>는 의미다.그대가 자신을 육체와 동일시하고 있는 한은 현상계가 외면적인 것으로 보이지만,그대가 진아가 되면 현상계는 브라흐만으로 나타난다.



11.<자신이 그릇된 행위를 함으로써 다른 사람을 더 큰 악으로부터 구할 수 있다면, 그 행위를 해야 합니까,하지 말아야 합니까?>


무엇이 옳고,무엇이 그른가?옳고 그름을 가릴 수 있는 기준이란 없다.개개인의 기질에 따라,그리고 상황에 따라 의견들은 서로 달라진다.또한 그것들은 결국 생각일 뿐이다.옳고 그름에 대해서 신경쓰지 말고 대신 생각을 없애라.그대가 진정한 옳음에 안주할 때,그 옳음이 세상으로 퍼져 나간다.



12.<올바른 행위만으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까?>


구원을 바라는 자는 누구이며 구원을 얻는 자는 누구인가?또,올바른 행위란 무엇인가?아니,행위란 무엇이며 올바름이란 무엇인가?올바름과,그름을 판단하는 자는 또 누구인가?

인간들은 각자 자신의 카르마에 의해서 옳고 그름을 따지지만,실체를 알아야만 옳고 그름에 대한 진리도 알 수 있다.가장 좋은 방법은 구원을 바라는 자가 누구인지를 찾는 방법이다.누구에게나 공통적인 올바른 행위란 바로 이 <누구>,또는 에고의 근원을 추적하는 행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