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바지--섹스와 결혼에 관해

섹스와 그에 따른 쾌락에 대한 인간의 집착은 워낙 강해서, 그것을 통제하
기란 대단히 어렵다. 때문에 바바지는 이 문제에 대해서 추종자들에게 많은
가르침을 폈다.--- 말로서보다는 그런 체험을 갖게 함으로써, 바바지는 섹
스와 관련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칼리 유가(암흑의 시대)에는, 금욕주의를 지탱할 만큼 강인한 사람이
거의 없다. 독신이 최상의 상태지만, 무절제한 관계보다는 결혼이 낫다.
사랑하는 남녀의 결합은 평온을 가져올 수 있으며, 영적 수행에도 도움이 된다"

비슈누 두트 샤스트리지는 하이다칸에서 거행된 결혼식에서 바바지 대신 참석하여 이렇게 말했다. "결혼은 인생에서 대단히 중요합니다. 이 관계는 앞으로 몇 세기 동안 유지될 것입니다. 서로 다른 곳에서 온 두 영혼이 내적 영감을 통해 결합하는 것. 이것이 결혼입니다.

결혼은 바바지가 가르친 인도주의 핵심요소인 합일과 조화, 의무감과 봉사심을 발전시킬 수 있는 기회다. 부부는 서로 성적욕망을 채우고, 자녀를 낳아 기르며, 함께 살면서 서로를 보살피고 친구가 되어주기에, 저열한 인간 속성에서 벗어나 창조성과 영성을 키우도록 서로를 도울 수 있다.

그러나 결혼은 성욕과 집착에 깊숙이 빠져드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바바지가 신을 추구하는 열렬한 추종자에게는 결혼보다 독신이 더 낫다고 가르친 이유가 여기에 있다. 1861년. 바바지는 스리 리하리 마하샤야를 크리야 요가에 입문시킨 뒤부터 이번의 마지막 현신에 이르기까지 '재가자(在家者)", 즉 가족과 직업을 가진 기혼자들을 집중적으로 가르쳤다. 리히리 마하사야는 자녀가 여럿 있는 아버지였지만 영적 권능이 높은 위대한 성자가 되었다. 그러나 입문 후에는 결혼 생활을 하면서도 금욕을 실천하는 법을 배웠다.

고대의 가르침 및 전통과도 잘 이루었던 바바지는, 사람들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며 가족을 부양하는 것을 격려했다. 그러면서도 이 과정에서 성욕에 대한 집착을 버리는 법을 익히게 하여, 최고의 신성 체험에 이르기 위한 선결 조건인 모든 욕망을 통제하고 초월하는 법을 배우는 하나의 수단으로 삼았다.  

사나타나 다르마의 전통속에는 재가(在家)의 길을 걸으면서도 신성 실현을 이룬 성자나 깨달은 이들이 있다. 이들은 일상적 삶의 모든 욕망을 극복함으로서, '세속"에서 멀리 떨어진 히말라야 동굴로 들어가 삶의 욕망과 쾌락에 대한 집착을 끊고자 했던 "출가자" 보다 더 많은 것을 이루었다. 고대의 리쉬(위대한 스승들)들 역시 한사람 이상의 아내와 자녀들을 둔 경우가 많았다. 두 가지 방식 모두 사람을 깨달음으로 이끌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두 가지 길 다 강한 내적 수련을 요구했기에, 그 길을 꿋꿋이 가는 건 아주 어려운 일이었다.

언젠가 가우라 데비가 바바지에게 섹스에 관한 가르침과 수행에 대해 물은 적이 있었다. 경전들은 적어도 이론상으로는 성적 쾌락에 초연해지기 위해서 섹스를 이용하라고 가르친다. 바바지는 이 질문에 대해 이런 성적 수련은 진리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거치는 저차원의 유혹일 뿐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즉, 성에대한 집착은 어떤 명분이 붙든, 깨달음의 도정에서는 주요한 장애라는 것이다. 성적 행위나 환상에 사로잡혀 있는 한, 신성에 집중하기는 쉽지 않다.

허지만 바바지는 여전히 성적 욕망에 사로잡혀 금욕을 행할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그 욕망을 충족시킬 상황으로 이끌었다. 내(저자:라데샴)가 아는 한에서는 바바지가 입 밖에 낸 적이 없지만, 사람들이 욕망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기 전에, 그들의 주된 욕망들을 완전히 성취하라고 재촉했던(어떤 경우에는 요구했던)건 확실하다. 사실 욕망에 충족해본 경험을 갖지 않고서는 그 욕망에서 초연해질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한번은 누군가가 바바지에게 "어떻게 하면 여자친구에 대한 사랑과 신에 대한 사랑을 함께 할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바바지는 "먼저 그 여자에게  사랑을 집중해라. 거기에서 만족을 느끼고 나면, 그때 신에게 와라"라고 답했다.      

고대인도 경전에서는 남녀차별을 주장하지 않는다. 거기에는 절대존재를 형상 없고 성(性)이 없는 존재로 묘사된다. 실제로 경전에 묘사된 "육체적" 현현들을 보면 여성 형상도 남성 형상 못지 않게 중요하다. 사실, 인도 경전에 나오는 여성적 측면은 활동적이고 창조적인 힘이다. 그것 없이는 "남성적" 측면 역시 무력해지고 쓸모 없어진다. 이 때문에 인도 경전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여성은 결코 남성보다 열등한 피조물이 아니었다.

하지만 "해방된" 서양 여자들이  아쉬람에 와서, 우타트 프라데쉬 지방 여자들이 받는 대우를 보면 대개가 충격을 받았다. 또 여자는 사리(잘 입으면 정말 아름다운 의상이다)를 입어야 한다는 아쉬람의 요구나, 월경 기간에는 부엌과 사원과 성스러운 남자(바바지를 포함하여)에게 접근하면 안 된다는 전통적인 요구는, 대부분의 서양 여자들에게는 여성에 대한 불필요한 차별 대우로 비쳤다. 그래서 이런 요구 이면에 숨어 있는 현명한 문화적 이유(열심히 일하는 여자에게는 한달에 3, 4일간의 휴식을 주는 것과 같은)를 모르는 일부 서양여자들은 처음에는 아쉬람을 남녀차별이 심한 남성 우월 주의 공동체로 여기곤 했다.

한번은 한 젊은 미국의 여성이 남자와 여자의 차이가 무엇이냐고 묻자, 바바지는, "아무 차이도 없다!" 라고 답했다. 그는 남녀 어느 쪽이나 남성"에너지"와 여성"에너지"를 함께 지니고 있다고 하면서, 단지 외형적인 차이만 있을 뿐, 한 쪽이 다른 쪽보다 우월하다거나 열등  하다고 할 만한 유전적 차이는 없다고 설명했다. 결국 그들 모두가 같은 "실체"인 신의 에너지로 창조되었으며, 양쪽 모두에게 신과 하나인 영혼이 거하고 있어서, 각자가 사회와 문명과 생명의 존속 자체를 위해 필요 불가결한 역할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바바지는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는 있었지만, 그는 마음을 조종하지는 않았다. 때때로 그는 사람들을 특정 상황으로 이끌곤 했지만, 그 체험에서 교훈을 얻고 못 얻고는 전적으로 그 체험자의 몫이었다. 그래서 아쉬람의 규칙이 금욕생활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바바지는 많은 사람들에게 그들이 바라는(혹은 필요로 하는) 성 경험을 갖게 하여, 그런 체험을 통해 그들 스스로 성적 체험과 쾌락이 부질없고, 일시적인 것이며, 집착하거나 탐닉할 가치가 없는 것임을 깨닫길 바랐다. 이 때문에 바바지와의 성적 릴라와 관련된 경험을 했던 사람들은, 그 체험이 성욕을 초월하도록 주어진 바바지의 가르침이었다는 결론을 내리곤 했다.

한번은 바바지가 금욕 생활을 할 준비가 되지 않는 한 청년을 사업차 방콕으로 보냈다. 태국에서 돌아온 그는 마침 축제에 참석하려고 브란다반에 와 있는 바바지를 만날 수 있었다. 그런데 축제가 끝난 뒤, 바바지가 그 청년에게 함께 하이다칸으로 돌아가자고 하자, 청년은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방콕에서"성병"이 걸렸기 때문에 먼저 델리로 가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바바지는 웃음을 터트리며 "나는 너의 그런 문제점이 마음에 든다! 델리로 가지말고 나와 함께 하이다칸으로 가자. 너는 괜찮아질 게다"라고 말했다. 청년은 좀 걱정스럽긴 했지만 바바지 일행과 함께 곧장 하이다칸으로 돌아왔고, 그 증상은 며칠 내로 없어 졌다. 바바지는 그에게 그가 원하던 경험을 하게 했고, 그것은 예측했던 문제를 일으켰다. 그리고 그는 그 경험에서 뭔가를 배웠다. 말하자면 그는 경험을 통해 한 걸음 한 걸음 배우고 성장해갔던 것이다.

바바지는 사람들이 진리의 길을 따르도록 늘 그들의 주의를 환기시키고 강하게 밀어붙였다. 외국인 "요기들"("이번" 생에서 신성 실현을 추구하는 출가자들)은 성욕에서 벗어나기가 몹시 어렵다는 것을 알았다. 또 바바지의 지시에 따라 결혼했던 일부 요기들은 바바지의 금욕과 무집착을 계속 가르치는 바람에 결혼 생활에서 중압감을 느끼는 놀라운 경험을 했다. "재가자"들은 결혼을 해도 상관없지만, 요기들은 어떤 집착과 욕망을 포기할 수 있어야 하는 사람들이었다.

한번은 어떤 요기가 요기니(여자 요기)와 결혼을 했는데, 그들을 결혼시킨 지 겨우 한 달만에 바바지가 개인적으로 그들을 불러 부드럽게 꾸짖고는 이제부터는 함께 살지 말라고 했다. "내가 이 세상에 올 때는 언제나 신성한 감로수를 주려고 왔는데, 인간들은 항상 독을 택하는구나"라고 덧붙이면서, 당황한 신랑이 우리를 결혼시킨 건 바로 당신이 아니었느냐며 항의하자 "맞다! 그건 나의 시험이었다!"라고 대답했다.

바바지는 일찍이 "너희가 신을 원한다면, 신에게 모든 것을 헌신할 준비를 하라"라고 말한바 있다. 이것은 요기와 요기니가 지켜야할 규범이었다. 신과 하나됨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개인적이고 육체적인 이기심에서 비롯된 욕망은 모두 버리고, 모든 것을 신에게 바쳐야하며, 신의 창조물들에 봉사함으로서 신에게 봉사해야 한다. 부(富)와 섹스, 성공, 물질에 대한 욕망은 물론이고, 깨달음에 대한 욕망 까지도 신에게 집중하는 것을 방해한다. 어떤 것이든 욕망은 추종자와 신 사이에서 장애물이 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비슈누 두트 샤스트리지와 영적 대화를 나누다가 금욕에 관해 물었다. "시바신은 작은 일에도 기뻐하지만 또 매우 엄격한 신이기도 하다고 들었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러자 샤스트리지는 이렇게 대답했다. "시바신은 자신의 추종자들이 행한 작은 일에도 쉽게 기쁨을 느끼시는 분이지. 그러나 그분은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사도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을 포기하라고 요구하는 분이기도 하시네. 이것은 꼭 필요한 일이네. 왜냐하면 우리가 구루(영적 스승 또는 안내자)로 선택한 분과 같아져야 하거든. 모든 걸 포기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 이건 물질적인 포기만을 의미하지 않네. 실제 의미는,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이기심과 "자기"의식을 포기해야 한다는 뜻이라네"

어느 날 바바지는 자기 방 현관에서 가우라 데비에게 "언덕의 노래 hill song"를 불러주었다. 그 가사 내용은 이렇다. "나는 네게 최상의 길--요가의 길--을 주었다. 뒤돌아보지 마라. 한눈 팔지 마라. 남녀가 함께 하는 일에 눈길 주지 마라. 그것은 지옥으로 가는 길이니."

바바지는 섹스를 그 자체가 목적인 "오락"으로 여기고 사회적으로 과도한 욕망과 광기를 불러일으키는 이 시대를 매우 염려했다. 그는 병으로 고통받는 현신의 마지막 몇 주 동안에도, 서양은 무엇보다도 성욕과 그 충동을 억제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같은 시기에 가우라 데비에게 한말은 현대인들 일반에게 일침을 가한 따끔한 지적이었다."그들은 모두 간음자다! 그것 외에는 할 줄 아는 것이 아무 것도 없는 사람들이다"

옴 나마하 사바이 (진리와 함께하다)


                                        바바지/아름드리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