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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 사
글쓴이  :   윤복현 기자  (참고 : 원문에는 사진자료가 여러장 있었으나 퍼오기가 되지 않았음)


▲  일본군 장교시절의 박정희 사진


[대선칼럼]창조 한국당의 문국현 후보는 18일 대구 유세장에서 "박 전 대통령의 삶에서 부정과 부패가 있었느냐. 그는 깨끗하게 살았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깨끗합니다. 군대도 갔다 왔습니다. 하지만 이명박 후보는 부패하고 군대도 피했습니다.", "이 지역에서 배출한 박정희 전 대통령은 아무도 산업화에 신경쓰지 않을 때 산업화를 추진했다"며 표를 요구했다.

이에 대해 민주 노동당의 경우 즉각 반발하면서 "박근혜 전 대표 집 앞에 줄서는 사람이 허경영, 이회창, 문국현 후보 등 3명으로 늘어났다.",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에는 정수장학회 문제, 인권과 민주주의 후퇴 등의 많은 문제가 있었는데 아무 문제없는 것처럼 찬양한 것은 문제가 매우 많아 보인다.”, "문 후보는 역사의식도 없고 정치철학도 없는 잘못된 발언을 즉각 취소하고 국민들께 사과하라"고 주문했으며, 노희찬 의원의 경우도 "박정희의 비자금을 걷으러 다닌 이후락은 '떡을 만지다보면 떡고물이 묻는다'고 했는데, 그 떡을 직접 만지던 박정희는 어느 정도로 부패했겠느냐"면서 "이런 역사의식을 가진 대통령 후보가 있다는 것이 개탄스럽다"고 일갈했다.

문국현 후보는 평소 반 부패를 주창해온 후보이다. 그런데, 아무리 표를 원한다고 해서 시대정신과 역사의식이 결여된 발언들을 유세장에서 서슴치 않는 모습은 문국현의 반 부패주의가 얼마나 허구이고 모순인지를 드러내는 주장인지 잘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문국현 후보는 "박 전 대통령의 삶에서 부정과 부패가 있었느냐. 그는 깨끗하게 살았다"고 주장했는데, 과연 박정희 삶자체에 있어 부정과 부패가 없이 깨끗하게 살았다고 말할 수 있으며, 역사적으로 정당하게 평가할 수 있느냐이다! 문국현 후보는 과연 부정과 부패의 개념을 제대로 인식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부패는 ‘썩음’과 ‘타락’을 의미하고, 부정은 ‘옳지 않음’을 의미한다. 특히, 정치인들에게 있어 부정과 부패의 의미는 나라와 민족을 위해 아주 중요한 개념이 된다.

먼저 박정희의 부정에 대해서는 일제하 일본군 정교 박정희가 혈서로써 일제 천황에게 충성을 맹세하며 나라를 찾겠다고 독립운동을 했던 독립군들을 토벌했던 일본군 장교출신이라는 점에서 민족사적으로 정통성이 없는 부정한 인물이라는 사실이다. 예컨대, 박정희의 일제 시대하의 증언내용을 기술해 보면, “문경보통학교 교사로 있던 다카기 마사오(박정희)는 자진해서 만주군관학교 생도생으로 스스로 들어갔다. 만주군관학교 2기생으로 자원입학(1940년 4월 4일). 다카키 마사오(박정희) 나이 23세. 입교 동기생으로 240중 조선인 12명. 15등으로 입학하였다. 하지만 2기 졸업식에서는 240명중 당당히 1등으로 졸업하였다. 다카키 마사오(박정희)는 졸업식 날 다음과 같은 "선서"를 힘차게 낭독했다.

"대동아 공영권을 이룩하기 위한 성전(聖戰)에서 나는 목숨을 바쳐 사쿠라와 같이 훌륭하게 죽겠습니다." "盡忠報國 滅私奉公(진충보국 멸사봉공)" 이 글귀가 바로 다카키 마사오(박정희)가 손가락을 잘라서 쓴 "충성혈서"이다.



▲  일본 육군사관학교 시절의 박정희 사진 (맨 아랫줄 왼쪽에서 세번째가 박정희)


이 글귀를 풀이하자면 "충성을 다하여 나라에(일본) 보답하고, 나를(私) 죽여서 국가를(公) 받들겠습니다."라는 가미가제식 자폭성 혈서를 쓴 것이다. 이 충성혈서는 한 가지 기록을 갖게 된다. 일제강점기 36년 동안 혈서로 일본천황에 충성을 맹세한 조선 사람은 단 한명 다카키 마사오(박정희) 뿐이었다. 스스로 자진해서건 강제로건 혈서로 일제에 충성을 맹세한 사람은 다카키 마사오(박정희)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만주군관학교를 투철한 친일정신과 열성적 훈련으로 수석 졸업의 영광을 차지한다. 수석졸업의 영광으로 금시계를 선물로 받고 졸업생 대표로 천황찬양으로 가득한 답사를 읽었다. 당시 친일신문〈만주일보 1942. 3. 24〉기사 일부를 인용하면……[… 빛나는 우등생 오카이(日系), 고야마(日系), 다카키(鮮系-박정희) 등 5명에게 각각 은사상증의 전달이 잇고 폐식 하였다…….]

조선인 출신으로는 유일하게 일본 육군대신상을 수상하기도 한다. 이로써 박정희는 완전한 일본인(다카키 마사오)이 되었다. 대일본제국의 군인이 되었다. 당시 일본 육군 사관학교 교장 "나구모 쥬이치(南雲忠一)의 다카키 마사오(박정희)에 대한 평가를 들어보자. 『…다카키 생도는 태생은 조선일지 몰라도 천황페하에 바치는 충성심이라는 점에서 그는 보통의 일본인보다 훨씬 일본인다운 데가 있다…….』라고 평가하였다.



▲  만주 군관학교 졸업앨범 사진. (윗줄 맨 왼쪽이 박 정희)


또한 다카키 마사오(박정희)가 10.26으로 김재규 총에 맞아 죽었을 때 주한 일본대사관에서 한 일본 외교관은 이러한 말을 했다. "대일본제국 최후의 군인이 죽었다." 라고 하였다. 한마디로 다카키 마사오(박정희)는 JS(Japanese Standard)표 [일제인]이라는 말인 것이다. 소위 다카키 마사오(박정희)는 일본 본토의 마쓰야마 제 14연대에 처음 배속을 받았으나 진정한 일본군인을 참작하여 만주 제8연대의 소대장으로 임명되어 모란강 부근의 영안으로 전출되었다가 화북지방의 열하 보병 제8군단에 배속된다. 영안지방 →간도에서 활약한 한인 독립군부대가 북만주로 이동할 때와 노령에서 활동하던 독립 운동가들이 서쪽으로 진출할 때에 주둔하던 요충지였다. 열하지구 ⇒ 일본군에 대한 항일 투쟁이 끊이지 않았던 지역이다. 항일세력은 팔로군, 군부군, 광복군, 조선의용군, 소규모의 게릴라 (유격대) 등이었다. 다카기 마사오(박정희)는 이곳에 임관한지 1년 만에 중위로 진급한다. 군의 편제상 소대장은 최전선에 배치된다. 여기에서 다카키 마사오(박정희)는 열성적으로 항일부대를 토벌했던 공로로 승진이 빨랐던 것이다."

또한 8.15이후 친일파 아니 일본인 다카키 마사오(박정희)는 1945년 8월 15일 이후에는 어떤 행동을 하였을까? 일본의 지배는 영원 할 것이라고 생각한 박정희에게는 일본의 항복은 대단한 쇼크였을 것이다. 패잔병의 낭패감과 극한의 절망에 빠졌으리라. 하지만 다카키 마사오(박정희)가 누구인가 변신의 천재가 아닌가? 절망도 잠시였다. 다카키 마사오(박정희)는 곧바로 변신을 시도한다. 그토록 노력하고 공들여 입은 황군의 군복을 벗어 던지고 민간복으로 같아 입고 만주군의 부대를 탈영하여 피난민으로 가장하고 피난민 대열에 끼어들어 북경으로 들어가 광복군에 합류한다.

우리는 여기서 유리한 상황에만 빌붙는 기회주의자의 전형을 볼 수 있다. 이것뿐만 아니다. 후일 다카키 마사오(박정희)는 좌익 계열의 장교가 되지만, 여순 사건으로 불리해지자 천명이 넘는 동료들을 밀고하여 죽음으로 몰아넣고 자기만 살아 남는다.

박정희가 좌파가 되는 행동에 대하여 조갑제 등은 형(박상희)의 죽음과 연관 시킨다. 그 충격으로 좌파가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근거도 없고 설득력도 없는 주장이다. 박정희는 다만 유리한 상황에 편승한 것뿐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당시 한반도 상황은 미국 정보의 데이터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한반도는 온통 붉은색(좌파)으로 뒤덮고 있었다. 박정희는 그러한 권력의 흐름이 어디에 있는지 간파하고 그것에 편승했을 뿐이다. 하여간 다카키 마사오(박정희)는 자기 혼자 살아남자고 천명이 넘는 동지들을 저승길로 보내고 살아 남았다. 또한 이후에 다시 좌익장교에서 우익장교가 된다. 그리고 다시 반공주의자로 변신하여 보여줄 수 있는 것은 다 보여준다. 어쩌면 한반도 남쪽을 반공으로 도배하는 길만이 자기의 과거를(황군/좌익 등) 은폐하고 숨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을 것이다.

기회주의 속성을 가지고 태어난 다카키 마사오(박정희)는 기회주의란 무엇인가를 완벽하게 보여 준 전형적인 인물이다. 속성이 이런데 일본 패망 후 곧 바로 광복군으로 위장하여 합류하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었을 것이다. 독립 운동가들을 적극적으로 토벌하던 일본의 진짜군인 다카키 마사오(박정희)가 살아 남으려고 광복군 흉내를 낸 것이다. 정말 구토가 나는 다카키 마사오(박정희)의 행동이다.

박정희 정권에 대한 평가를 이렇게 해놓고 보면, 그때는 경제 건설과 절대 빈곤에서 당장 벗어나기 위해 그렇게 할 수밖에 없지 않았는가 하고 변명해 주고 싶은 마음이 생길 법하다. 그런 것을 역사 이해에서의 "상황주의"라 할 수 있는데, 역사적으로 부정적인 사실일지라도 그때의 상황으로서는 그럴 수 밖에 없었다고 해 버리면, 역사적 진실이니 가치니 하는 것이 인정되지 않게 된다. 역사적으로 옳고 그른 것의 구분이 없어지면, 이완용도 그때 상황으로서는 어쩔 수 없었고 이광수도 어쩔 수 없었다는 식의 역사 인식이 되고 말 것이며, 역사에서 배울 것이 없어지게 마련이다. 왜냐하면 역사는 귀걸이 코걸이가 되고 말 테니까!

국현씨는 대구 유세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이 “부정과 부패없이 깨끗하게 살았다.”고 발언했는데, 문국현 후보는 무슨 근거로 그렇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지 황당하고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예컨대, 1980년 6월 전두환의 신군부는 공화당의 실세였던 김종필과 이후락 등의 부정부패 혐의를 공개했습니다. 지금부터 25년전 이들의 부정부패 총액은 8백87억으로 신군부는 이들이 형사처벌을 면하는 대신 재산을 국가에 헌납한다고 발표했다. 이들은 떡을 오랜 동안 만지니 떡고물이 묻는 것 아니겠느냐 라고 말해 한동안 떡고물이라는 말이 유행하기도 했다.

2인자들의 부정부패가 이러한데, 조선시대 왕보다도 더 큰 권력을 휘둘렀던 박정희의 부정부패는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80년 신군부가 쿠테타에 성공하고 민정당을 창당하기 위하여 박정희의 큰 딸 박근혜를 데리고 스위스 비밀금고의 박정희의 엄청난 규모의 숨겨놓은 돈을 찾아 와 민정당 창당자금으로 사용했다고 한다(문명자 회고록).

또한, 유신말기 미국의회에 로비자금으로만 수 천 만불 이상을 뿌린 것으로 밝혀져 미국정계가 발칵 뒤집혀진 일이 있었다. 이 사건은 코리아게이트로 불리며 당시 중앙정부에서 미국 상, 하원 의원들에게 유신을 지지하는 발언을 속기록에 기록하는 대신 수 백 만 불 씩의 정치자금을 주었습니다. 이들 의원들은 물론 손가락질을 당하며 의원직에서 물러나야만 했다.

박정희 정권 당시 공직에서 물러나는 관리들에게는 의례적으로 대통령의 금일봉이 지급됐는데, 그 액수는 서울시내 단독주택 한 채의 액수였다고 합니다. 이 돈이 다 기업들에게 특혜를 배푸는 대신 거둬들인 부정한 돈이 아니었겠는가!

또한 박정희가는 정수 장학회(516 장학회), 박근영 이사장의 운영문제와 관련하여 서울 성동 교육청이 제기한 소송에서 서울 지방 행정법원으로부터 취임승인 취소처분을 받아 결국 이사장 직위가 박탈된 육영재단, 학교법인 영남학원(영남대학교)을 실질적으로 소유하고 있다. 특히 정수 장학회는 현재까지도 부산일보의 주식 100%와 MBC문화방송의 주식 30%을 소유하고 있고 육영재단은 능동의 어린이 회관 등의 현재시가 1,000억 원이 넘는 재산을 보유중이다.



▲  5.16쿠테타에 성공한 박정희 군부세력 사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삶이 부정과 부패없이 깨끗하다는 문국현 후보의 발언이 얼마나 허구인지를 입증해 보면, 독재를 장기간 하면 신화가 생긴다? 독재자를 중심으로 잘못은 은폐하고 없는 장점도 조작해내는 작업을 줄기차게 해내기 때문이다. 사실이 아닌 것을 지어내기도 하고 과장하여 선전한 결과로 신화가 생기는 것이다.

사실, 박정희는 늘 막걸리를 마시는 서민 대통령이라고 선전을 했다. 그러나 밤에 여자들과 양주를 마시는 것으로 드러났고, 또한 박정희는 한 여름에도 사무실에서 선풍기를 틀지 않은 절약정신이 넘치는 대통령으로 선전을 했다. 그러나 수도꼭지까지 금으로 된 비밀의 집(안가)을 여러 채 만들어 여자들과 죽을 때까지 흥청거리며 방종한 생활을 했고,  박정희를 청렴결백한 대통령으로 선전을 해 놓았으나, 그는 갖가지 뇌물을 받고 심지어는 야당에까지 뇌물을 뿌리는 대통령이었다. 1960년대에는 일본으로부터 그 당시의 돈으로 천문학적인 6600만 불의 정치자금(뇌물)을 받고, 1971년에는 4. 27대선자금으로 국가예산의 10%가 넘는 600-700억 원이란 어마어마한 뇌물 또는 정치자금을 거두어들인 대통령이기도 하다.

즉, 박정희의 모든 것이 엄청나게 포장이 되어있다는 말이다. 사람들이 알고 있는 박정희는 포장된 박정희이다. 사람들은 지금까지 박정희가 친일반민족행위자인줄도 몰랐고, 박정희가 한 때 남로당 군사총책인 줄도 모르고 지금도 문국현 후보처럼 박정희가 부정과 부패없이 청렴결백한 인물이라고 주장하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또한 박정희가 이루었다는 한강의 기적의 배경이 되는 ‘경제개발 계획’ 이라는 것도 실은 장면 정부시절 박정희의 독재정부와 싸웠던 장준하 선생이 기획한 계획서를 군인정신으로 밀어 붙인 것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박정희는 무수한 허물이 있는 사람이다. 단 하나 경제를 세웠다고 찬양(?)을 받는다. 허물이 수 없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경제하나 때문에 찬양하는 것도 우스운 꼴이지만, 그 경제라는 것도 엄청 왜곡. 과장이 되어 있다는 말이다. 이에 대해 경제학자 최용식은 "박정희 때문에 한국경제가 발전한 것이 아니라 박정희에도 불구하고 한국경제가 발전한 것이다" 고 평가했고,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이필상은 “가시적인 실적 위주의 박정희 개발 독재야말로 시장 경제를 병들게 한 암세포였다. 나아가 그것은 IMF 금융위기의 뿌리였다” 고 평가했으며, 역사학자 최상천은 "박정희 경제는 부패, 탈세, 부실, 특혜를 싣고 무한정 달리다가, 경쟁원칙은 파괴되고 합리성은 사망했다. 이것이 바로 한국경제 위기의 핵심이다. 경제위기의 근본책임은 독재정권과 재벌에 있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박정희 정권이전의 민주당의 장면 정부는 경제개발계획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장준하 선생을 중심으로 농촌개발 등 경제개발을 추진 중이였다. 부패한 경제인들과도 타협하지 않고 투명하고 부패하지 않는 경제성장을 실현하는 게 장면정부의 목표였으나, 이러한 경제개발을 강력하게 추진할 주체세력이 미진하였고, 당시 4.19이후 자유당을 대신하여 권력을 장악한 민주당이 구파와 신파로 분열하여 치고 박는 정치적 상황악화로 결국 물거품으로 끝나게 되었던 것이다.


▲  장면 내각  퇴진


이러한 혼란한 정치상황을 이용하여 군사 쿠테타로 권력을 장악한 박정희는 이러한 윤보선과 장면정부의 경제 개발계획을 군인정신으로 강력하게 추진한 것에 불과하고, 부패한 경제인들과는 타협을 해서라도 특혜를 줌으로써 경제개발계획에 참여시켜 이후 한국경제의 부정부패비리와 정경유착의 배경이 되는 것이다. 문국현 후보는 이러한 근현대사에 대한 개념이나 인식이나 그런 소리를 했는지 묻고 싶다. 평소에 문국현 후보가 강조하는 학습이 이명박 후보를 가짜라며 황우석 박사에 비유한 이후 자기자신에게 다시 한 번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  문국현 후보



사람중심! 진짜경제! 는 문국현 후보의 평소 주장처럼 부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주체가 되어 부패청산을 전제로 가능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부정부패가 만연했던 독재 권력의 정점에 있었던 박정희가 마치 아무런 문제가 없는 청렴한 인물인양 아부와 찬양에 가까운 발언들을 서슴치 않는 건 대구지역의 의식 있는 유권자들이 듣기에도 민망하지만, 문국현 후보 자신이 생각해도 표를 구걸하기위한 구차한 발언들이라 인식할 것이며, 정말 의도성이 없는 개인적인 생각이라면 한국 근현대사와 박정희에 대해 깊이 학습하기를 권하고 싶다. 정말 대선 막판에서 문국현 후보의 박정희 찬양발언소식을 들으니 대선 상황에서 정치에 민감한 인간의 뇌는 감정적 뇌라고 한다지만, 도대체 “대통령과 표가 무엇이길래 사람을 저렇게 까지 만드나?” 하는 서글픈 생각까지 들면서 그 동안의 문국현 후보에 대한 지지도와 표심을 오히려 저하시키는 대구 유세발언이 아니었나 하는 안타까운 생각마저 들면서 우리 국민들 뿐만 아니라, 정치인들의 역사의식과 시대정신의 중요성을 깊이 절감하며,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의 부정부패로 인해 정신과 물질적으로 엄청난 고통을 당한 사람들과 독재에 맞서 저항한 민주주의 세력에게 사죄해야 할 것이다.

우리 대한민국은 온전히 나라와 민족의 독립과 발전을 위해 평생 헌신하고 아무 재산도 남기지 않고 민족정신의 상징으로 남은 베트남의 호치민같은 대통령을 맞이할 수 있을까? 참고로 베트남의 호치민은 다산 정약용 선생의 ‘목심심서’를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니면서 숙독했다고 하는데, 부정부패로 만연한 한국 정치인들에게는 매우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언제까지나 30개 선진국 가운데 25위, 세계 43위를 기록하고 있는 부정부패비리 천국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온전히 부정부패한 대한민국 현실을 투명함과 정당함과 당당함으로 극복하고 미래를 건설해 가려는 국민과 정치인 전체의 의식변화와 항상 깨어 있는 군인들과 같은 정신상태의 문제에 달려 있다고 할 것이다.
분류 :
한민족
조회 수 :
4211
등록일 :
2009.05.28
21:16:44 (*.229.1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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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영녀

2009.05.30
07:28:06
(*.211.74.45)
이 사람은 지난 과거사 헐뜯기 달인인가요.
장면 내각시절 정치상황이 원체 부패해서 5.16혁명을 불러낸 것 어닌가요.
박정의 대통령 덕분에 대한민국 정체성 국가관 확립하고 60년을 달려왔는데,
그싸이클이 다했는지, 현재 많은 분들이 지금이 그 시절과 정치적 부패지수가
흡싸하다고 하니 또 한번 큰 변화가 필요한 때가 아닌지.

아트만

2009.05.30
15:55:03
(*.229.113.25)
많은 분들이 윗글의 내용을 처음 보셨을 것입니다.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지난 과거사의 누락되고 숨겨졌던 진실들을 되짚어 보아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해방 이후 대한민국의 부패는 모든 사람이 부정하지 않는 사실이며
지금까지 우리의 눈으로 보아온 사실입니다.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언론이 계속적인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은
그들이 권력과 야합하여 진실을 숨기고, 여론을 오도해 왔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가 아직도 대다수의 일반 국민이 현실을 바로 보지 못하고 있는 이유입니다.

국민이 현실에 대하여 겉으로 나타나는 사실이 아니라 이면에서 진행되고 있는 진실을 바로 보게 될 때에라야 우리나라의 참된 민주화와 독립이 이루어 질 수 있습니다.


정치문제에 있어서는 감정을 내려놓을 필요가 있으며,..

그 이유는 우리나라 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가 아직까지 거의 같은 단계에 있고

너무나 많은 사실이 숨겨져 왔고,
그나마 인터넷의 생활화로 많은 정보가 일반에게 알려지고 있기에 우리 나라와 세계가 바로 설 수 있는 단계에 온 것입니다.

'피닉스저널'에 다루어지고 있는 국제적인 정보는 단지 미국을 중심으로만 발생하고 있는 일이 아니라..
이미 현대 산업사회로 진입하던 시기, 은행이 보편적인 통화수단으로 이용되기 시작하던 무렵부터 싹이 텃고,
미국은 이미 1919년경에 나라의 주권을 금융재벌에게 빼앗긴 상태입니다. (FRB가 그때부터 미국의 화폐발행권을 독점하기 시작했고, 그내용을 자세히 밝힌 '달러'라는 책이 미국에서 발행된 것을 금년 3월24일자'경향신문'에 책소개로 보도된 것을 우연히 확인했습니다.-- 이것은 다행히 언론도 변하기 시작했다는 희망적인 사실입니다)

민주주의 국가의 표본이라고 알고 있는 미국의 실정이 그러하다면, 일본이나 한국의 실정은 더 말할 나위 없는 것이며,
이와 관련돤 상세한 정보들은 이미 서점에도 많이 나와 있습니다.

이러한 , 요즘은 상식에 가까운 일들을 아직 알지 못하시는 분들은 지금이라도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아야 할 것이고, 사실 그러한 책임은 일차적으로 인류를 속여 온 전 세계적인 언론의 국제적이며 조직적 우민화 정책에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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