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아트 오브 벤칭 시리즈 

The Art of Benching 샤우드7 _ 텍스트(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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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RIMSON CIRCLE MATERIALS

The Art of Benching

SHOUD 7

Presented to the Crimson Circle on April 2, 2022

Recorded at the Shaumbra Pavilion in Kailua-Kona, Hawaii USA

Featuring

Adamus® channeled through Geoffrey Hoppe

assisted by Linda Hoppe

크림슨서클 자료

벤칭의 예술 시리즈 샤우드 7

크림슨서클 주최

2022년 4월 2일 미국 하와이 카일루아-코나 샴브라 파빌리온에서 녹화

아다무스® 채널링

채널러: 제프리 하피, 진행: 린다 하피

* 이 문서를 배포하고자 할 경우, 이 문구를 포함해 전문(全文) 형태, 비상업적 용도, 무료로 자유롭게 배포할 수 있습니다. 그 밖의 용도 일체에 관해서는 제프리 하피(콜로라도 골든 거주)의 서면 승인을 받아야 합니다.

연락처 정보는 아래 웹사이트 참조. www.crimsoncircle.com

© Copyright 2022 Crimson Circle IP, Inc.

이 샤우드를 음성 파일로 듣거나 영상으로 보려면 다음 링크(https://www.crimsoncircle.com/Library/LibrarySeries)를 참고하세요.

IMPORTANT NOTE: This information is probably not for you unless you take full responsibility for your life and creations.

주의: 자신의 삶과 창조에 온전히 책임지지 않는 사람에게는 부적절한 정보일 수 있음.

* * *

린다: 자, 저희는 여기 ‘벤칭의 예술’ 일곱 번째 샤우드를 하려고 여기 있습니다.

저희는 준비가 되었고요. 제프리 하피가 여기 앉아서 아다무스를 불러들이고 있네요.

아다무스가 이제 우리와 함께할 겁니다. 그는 사실 매순간 우리와 함께 있죠.

이제 잠시 멈추고, 진정으로 깊이 호흡하는 시간을 가져봅시다.

자각(awareness)의 호흡, 의식의 호흡입니다.

이 에너지와, 이 공기와 함께 흘러보세요. 숨 쉬고, 허용하면서요.

깊이 숨 쉽니다. 느껴봅니다.

여기 아름다운 자연의 소리가 들리실 거예요. 새들이 지저귀고 있지요. 그걸 한번 느껴보세요. 들이마셔 보십시오.

깊이 호흡합니다. 깊이 숨 쉽니다.

아다무스를 호흡해 들여 보세요. 그는 여기 있지요. 우리의 모든 호흡마다, 모든 걸음마다요.

숨 쉽니다. 숨 쉽니다.

이제 음악이 나올 건데요, 그것도 한번 호흡해 들여 보세요. 느껴보십시오.

아다무스: 아이 엠 댓 아이 엠, 아다무스 세인트 저메인입니다.

우리가 여기 하와이 코나의 빌라 암요, 샴브라 파빌리온에 있군요. 월례 샤우드를 하려고 또 한 번 우리가 모였습니다. 얼마나 오랜 세월 이걸 해왔나요. 정말로, 정말로 아름다운 시간들이었죠. 그리고 이제 우리의 빛을 비출 수 있는 지점에 다다랐군요. 온갖 문제들을 겪었고, 숱하게 눈물도 흘리고서, 이제 진정 우리가 여기 온 이유인 그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네요, 우리의 빛을 비추는 거요. 그리 어렵지 않죠, 돈도 한 푼 안 들고요. 뭐 엄청 가르침을 받아야 하는 것도 아니고요. 오늘 제가 좀 가르치긴 할 거지만요. 그냥 빛을 비추기만 하면 되는 겁니다. 우린 여기 샴브라 파빌리온에서 그저 빛을 내뿜고 있죠.

그렇게 할 때, 세상으로 빛을 비출 때요. 우리는 거의 그래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끼고 있어요, 열망을 느낍니다. 거의 필사적으로 말이죠. 빛을 비추면서 여러분은 또한 본인 삶에서도 어떤 일이 벌어진다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가령 의심 같은 것들이 사라지기 시작하지요. 여러분이 그 빛을 꼭 막고 있을 때, 내면의 전쟁과 싸움에 말려들어 있을 때, 스스로에게 저항하고 있을 때는 의심이 정말 많죠. 하지만 일단 “난 그거 넘어섰어. 그거 넘어섰다고. 계속 그러고 있어야 할 이유가 없어.”라고 말하며 그런 걸 넘어서고 나면, 의심이 사라지기 시작하지요. 여러분은 자신의 에너지 흐름으로 돌아오기 시작합니다. 일어나지도 않을 일들 가지고 걱정하는 거 더는 하지 않게 돼요. “나는 존재한다(I Exist).”의 의미가 진정 이해되기 시작합니다. 자각(awareness)이 뭔지가 이해되지요.

여러분이 빛을 비추기 시작하면서 갑자기 온갖 그런 것들이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음, 여러분이 여러분의 빛을 비추고 있으니까요. 여러분 본연의 모습에 활짝 열려 있으니까요. 더 이상 정체성이란 걸 만들어내려 애쓰지 않으니까요. 그건 숱한 인간 생들에서 참으로 재밌는 게임이었지요, 정체성을 만들어내려는 거요. “난 누구지?” “이런 건, 혹은 저런 건 어떤지 한번 볼까.” 이제는 마침내 그 모든 게 연기였다는 걸 깨닫는 지점에 다다랐습니다. 의식의 연기(act of consciousness)지만, 아무튼 다 연기죠. 여러분은 이제 더는 그런 걸 만들어낼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닫는 지점에 왔어요. 그저 “아이 엠 댓 아이 엠.”이죠. 그러고서 이제 그저 빛을 비추는 겁니다. 지금 우리가 여기 빌라 암요에서 하고 있는 것처럼요. 아무런 의도(agenda) 없이요. 우리의 빛을 비추는 거죠. 이걸 받는 사람이 있든지 없든지요. 그런 건 상관없죠. 그저 빛을 비출 뿐입니다. 우린 여러분 그 누구에게도 영향을 주려 하지 않아요. 그저 여러분과 함께 나눌 뿐이죠.

하지만 이렇게 할 때, 여러분은 먼저 여러분 자신에게 이렇게 하고 있는 것이죠. 가장 눈부신 빛이 여러분 자신에게로 갑니다. 그러면 이제 인간은 과거가 얼마나 얼토당토하지 않았는지 깨닫기 시작합니다. 스스로에 대해 알아내고, 스스로를 완벽하게 만들고, 깨달을 자격이 있게 만들려고 했던 그 온갖 것들이요.

있잖아요, 깨달음이요, 깨달음에 다다를 자격이란 거. 깨닫기 위해 치러야 할 테스트 같은 건 없습니다. 시험 없어요. 천상에서 번개가 내리치는 것도 아니고요, 대개는 어마어마한 사건 같은 것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깨달음으로 들어가는 과정에서 여러분은 넘어지고 구르고 할 겁니다, 그건 맞아요. 프로그램이 그리 짜여 있는 듯하죠, 적어도 지금은요. 말 그대로 넘어지고 구르고 할 겁니다. 통상적으로 말해서요, 좀 넘어지고 구르고 할 거예요. 때로 범프 앤 필(bump and fill)도 일어나고요. 여러분 그렇게 너무나도 열심히 노력을 하다가, 넘어져요. 그렇게 한참을 넘어지다가 마침내 이러지요. “더 이상 애쓰지 않을 거야. 그냥 존재(be)할래. 그냥 존재할 거라고.” 그게 바로 커다란 차이점이죠. 여러분이 그간 공들여 만들려고 했던 인간 정체성은 비명을 지를지도 모릅니다. “안 돼! 안 돼! 우린 할 일이 더 있다고. 우리는 불완전해. 이것도 해야 하고, 저것도 해야 하고. 우린 깨달음에 꼭 다다라야 한다고.” 그러나 여러분은 그 모든 게 거짓이란 걸 깨닫지요. 그저 여러분의 빛을 비추는 일일 뿐이란 걸요. 그토록 간단합니다.

여러분 자신의 빛을 내뿜을 때 여러분은, 혹시 아직 모르고 있다면 말이죠, 여러분이 이미 깨달았다는 걸 깨달을 겁니다. 여러분의 깨달음은 애초부터 거기 있었단 걸 알게 돼요. 근데 여러분은 그걸 외면하려고, 혹은 본인이 직접 하려고, 혹은 다른 사람들이 했던 대로 해보려고 갖은 애를 다 쓰고 있었죠. 소용없어요. 그저 갑자기 깨닫는 겁니다. “나는 나구나(I Am.). 나는 깨달았구나(I am realized.).” 번갯불이 번쩍번쩍 내리치고, 갑자기 10년은 젊어 보이고 그렇진 않을지 몰라요.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닙니다. 중요한 건, 여러분 자신이 깨달았단 걸 허용하는 것이죠.

정말 많은 샴브라들이 지금 그러고 있어요. 정말로요. 그리고 그들은 이건 힘(power) 과시가 아니란 걸 깨닫지요. 오, 아니죠, 깨달음은—음음—힘의 과시가 전혀 아닙니다. 삶에서 갑자기 더 힘이 있어지고, 자기 자신에게, 심지어 남들에게도 힘이 있어지고 그런 게 아니에요. 갑자기 뭐든 다 갖게 되고, 뭐든 다 할 수 있게 되고, 그런 게 아니라고요. 그건 정말이지 틀린 얘기란 걸 여러분은 깨닫습니다. 여러분 본인의 인간 마음에나 있는 거짓된 이야기죠. 인간은 그걸 원할지 모르나, 깨달음은 그저 이겁니다. “나는 나다(I Am that I Am.). 나는 깨달았다.”

그리고 여러분 그걸 깨달으면, 그걸 내면에서 진정으로 느끼는 지점에 다다르면, 모든 에너지가 거기 맞춰 바뀌고 아주 동시성적으로, 개인 맞춤형으로 흐릅니다. 더 이상 애쓸 일이 없습니다. 깨달음이 어떤 찬란하고 영광스런 일일 거란 기대가 없어져요. 샴브라 여러분들에게 깨달음이란 그저 자신이 깨달았단 걸 깨닫는 거죠. 엄청 뭐 영광스러워지는 게 아닙니다. 힘이 아니에요. 에너지가 더 생기고 그런 게 아니라고요. 그런 게 전혀 아닙니다. 그저 진정 자신이 누구인지를 깨닫는 것일 뿐이죠. 그냥 인간이기만 한 게 아니란 걸요. 인간은 밖으로 나가서 발견하고 놀고 하기엔 훌륭한 측면, 혹은 단면(facet)이죠. 그러나 여러분은 갑자기 깨닫습니다. “아이 엠 댓 아이 엠.” 아마 그걸 말로 설명할 순 없을 거예요. 정의를 내릴 순 없을 겁니다. 이제 막 깨달은 이들에게 전 그걸 규정하려고 아예 시도도 하지 말라고 종종 알려주곤 합니다. 그저 그것이 되고 그것을 살라고 말하죠. 나중에는 그걸 정의할 수도 있고 더 잘 소통할 수 있게 될 겁니다만, 지금은요, 그저 깊이 숨 쉬며 깨닫는 겁니다. “나는 깨달았다.”

자, 우리는 여기 빌라 암요에서 세상을 향해 우리의 빛을 비추고 있습니다. 아무런 속셈 없이요. 이 웹캐스트를 통해 여러분 한 분, 한 분 모두에게로요. 우리는 빛을 비추고 있고, 특별히 여러분들에게 비추고 있지요. 여러분은 그걸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자격이 있다마다요. 여러분이 겪어온 그 모든 걸 생각해보세요.

자, 이 점을 깊이 호흡해보죠. 우리가 여기 있는 이유를요.

우리는 지금 샴브라들의 새 시대에 들어와 있습니다. 린다, 그거 알고 있었나요? 우린 샴브라들의 완전히 새로운 시대에 들어와 있어요.

린다: 그런 것 같아요.

아다무스: 당신은 늘 샴브라들과 함께하잖아요.

린다: 느껴져요. 정말로 느껴지죠.

아다무스: 네.

린다: 특히 얼마 전에 여기서 워크숍들 했을 때도 그랬고요. 당신도 느꼈죠.

아다무스: 당신은 맨 앞줄에 있잖아요. 당신은 아주 개인적이고 내밀하게 샴브라들과 함께하지요, 차이점이 보일 거예요. 가령 15년, 20년 전에 워크숍이나 모임을 했을 때랑 비교해서요. 그러니까, 물론 그때는 그때대로 훌륭했지만, 지금은 정말이지 다르죠.

린다: 제프, 심지어 불과 몇 년 전… 오, 아다무스.

아다무스: 전 아다무스인데요(아다무스 키득.).

린다: 미안해요. 음, 제 입장에선 약간 헷갈릴 수 있잖아요. (아다무스 계속 키득.) 암튼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아다무스: 밤에 같이 자는 건 누굽니까?

린다: 저는 제프랑 자려고 노력을 하는데, 당신이 많이 끼어들죠.

아다무스: 제가 끼어드는 거 아닙니다. 난 그저 콜드레와 그때 잡힌 회의를 하고 있을 뿐이라고요…

린다: 우리 침대에서 말이죠.

아다무스: 그는 침대에 없어요. 어디 다른 데 가 있죠. 그의 몸은 침대에 있지만, 의식은 다른 데 있습니다.

린다: 정리해줘서 고맙네요.

아다무스: 네. 당신은 제프의 몸을 가질 수 있고, 전 그의 의식을 가질 수 있죠. 그래요. (린다가 헉 하는 표정 짓자 아다무스 키득) 좋아요. 좋아요. 네, 맞습니다. 아주 뚜렷한 차이가 있지요. 우리는 새 시대로 들어섰습니다. 정말이지…

린다: 근데요, 심지어 10년 전에도 안 이랬어요. 불과 지난 몇 년 새 이렇게 된 거예요.

아다무스: 지난 이삼 년간이죠, 맞아요. 제가 볼 때 가장 큰 전환점은—전환점들이 많았지만요—샴브라들에게 가장 큰 분기점(Point of Separation)은 2020년 여름이었습니다.

린다: 동의해요.

아다무스: 코로나와 세트로 왔었죠. 전 세계 정말로 수많은 샴브라들이 그저 깊이 숨 쉬며 자신의 깨달음을 인정했고요. 그저 “나 깨달았구나.” 그겁니다. 필요한 건 그뿐이에요. 어떤 일이 벌어질 거라는 아무런 기대 없이요. 그런 건 그 다음에 일어나죠. 에너지가 재균형을 찾고, 조정되고, 다르게 작용하지요. 하지만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에 대한 인식이 바뀝니다.

린다: 완전 맞아요.

아다무스: 깨달으려고 애쓰고 깨달음을 막고 있다고 생각되는 것들에 맞서 싸우려고 하는 대신, 이제는 그냥 깨닫는 겁니다. 그냥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시듯이요—아아!— 그게 코로나 한가운데서 왔었죠. 그때부터 쭉 우리는 우리가 여기 온 이유인 바로 그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십 몇 년 동안 준비를 한 끝에 이제 우리는 여기 온 이유인 바로 그 일을 하고 있지요. 빛을 비추는 것 말이에요. “음, 그건 뭐 쉽잖아. 왜 20년이나 걸린 거야?”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본인에게 물어보십시오. 왜 20년이나 걸렸는지. 암튼 우리는 지금 여기서 그 일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그걸 하고 있어요.

린다: 진화였죠. 그러니까, 그게 너무나 잘 보이잖아요.

아다무스: 네, 진화다마다요. 그리고 전체적으로 봤을 때 지금 샴브라 에너지는 매우 부드러워졌습니다. 성숙해졌어요. 마구 흥분상태에 있고, 겁에 질려 있고, 절망하고 그러지 않아요. 아직도 많은 일들을 겪고 있는 샴브라들도 좀 있지만요, 하지만 우리가 그들 엉덩이를 걷어차줄 겁니다. 그럴 필요 없단 걸 알 수 있도록이요.(린다 웃음) 음, 가끔은 그런 게 필요하다고요. 아님 명상을 좀 할 수도 있겠죠. 그러면 그들은 상태가 더 안 좋아질 테지만요.

린다: 명상은 당신 취향 아니잖아요.

아다무스: 내 취향 아니죠. 내 취향 아니에요. 물론 명상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사람들이 명상을 하는 방식이 문제지. 그것만 아니라면 명상은 훌륭한 도구예요(아다무스 키득). 자, 시작해보죠. 오늘 우리는 다룰 게 많습니다. 먼저 저는 소통에 대해 얘기하고 싶군요.

소통(Communications)

소통은 모든 것의 핵심에 있습니다. 말 그대로 모든 것에요. 우리 많이 이야기해서 이제 아시잖아요, 에너지는 소통이란 거요. 더 이상 e=mc²이 아닙니다. e=c예요. “c”는 의사소통(communications)이죠. 결국 같은 겁니다. 에너지와 소통이란.

얼마 전에 여기 샴브라 파빌리온에서 멋진 모임들을 했는데요. 그 중 하나가 〈소통하는 마스터들Masters in Communications〉이지요. 샴브라들이 말이나 그림 없이도 대상을 인식하고 알아차리는 법을 익히는 워크숍입니다. 처음엔 굉장히 어려워 보입니다. 마음은 대상을 어떤 언어적, 시각적인 기존 틀에 넣으려고 하니까요. 그러나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그저 알게 되지요. “제한된 인간의 정의가 없이도 대상을 느낄 수 있구나.”

참석자들은 자신의 그런 천사적 감각들을 열 수 있다는 걸 깨닫기 시작합니다. 이런 자리가 아니었다면 압도되어 버렸을 수도 있죠. 그러나 이제 그들은 그런 천사적 감각들을 활짝 열어서 그 모든 아름다움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2십만 개 정도의 천사적 감각이 있는데요, 이제 그런 감각들을 가지고 정의내리지 않고도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것이죠.

사랑을 느껴보기도 하고요—그건 천사적 감각이 되었죠—구시대적 용어들로 표현할 필요 없이, 진짜 사랑을 느껴보는 거죠. 그런 온갖 것들이 열리고 있지요. 이제 우린 소통이 뭔지 아주 멋지게 새롭게 이해하고 있으니까요.

문자(texting)로 끊임없이 조잘거리는 것만 소통이 아닙니다—어떤 이들에게는 섹스팅(sexting)이겠고요—혹은 뭐 인터넷으로, 그런 온갖 것들로 말이죠. 그런 것도 소통의 한 형태죠. 그러나 우리는 핵심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천사적 감각들을 통해 인식하는 능력, 그런 다음 뿜어내고 발하는 능력으로요. 그건 훨씬 더 쉽고, 훨씬 더 빠르고, 훨씬 더 풍부하고 값집니다. 그리고 그건 에너지와도 훨씬 더 잘 어울리지요. 왜냐면 에너지란 게 바로 그거니까요.

제가 말했잖아요. 곧 세상이 에너지란 다름 아닌 소통이란 걸 이해하기 시작할 거라고요. 그리고 지금이 딱 바로 그 타이밍입니다. 왜냐면 지금 에너지는 힘(power)과 결부돼 있으니까요.

린다: 맞아요.

아다무스: 힘과요.

린다: 맞아요.

아다무스: 사람들은 에너지 하면 힘의 맥락에서 생각합니다. 에너지를, 혹은 힘을 충분히 갖지 못했다는 맥락에서 생각하고는 그걸 얻으려고 애쓰죠. 우린 그걸 뒤바꾸고 있습니다. 우리의 빛을 내뿜고 있고, 에너지란 다름 아니라 소통이라는 의식을 가져오고 있습니다. 그건 말하지 않습니다. 조잘거리지 않아요. 여러분에게 뭘 어떻게 하라 말하지도 않습니다. 정말로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간단히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나는 존재한다(I Exist.). 나는 존재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에너지는 오로지 여러분 자신의 것이죠.

여러분은 지금 바로 이 아주 흥미로운 시기에 살고 있고요, 전 여러분이 이걸 한번 느껴봤으면 합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정말이지 멋들어진 때입니다. 시련들이 있단 거 알아요—부정 못하죠, 어려움들이 있습니다—그러나 지금 여러분은 가장 멋진, 가장 대단한 때에 지금 여기 지구에 있습니다.

그걸 한번 느껴보세요. 여러분은 그저 또 한 번 생애를 살려고 여기 있는 게 아닙니다. A지점에서 B로, C로 옮겨가지만 아무런 의미도 없는 그런 선형적인 선로 위에 있는 게 아니에요. 여러분은 우선, 여러분 자신의 깨달음을 위해 여기 있고요, 여러분이 깨달았단 걸 깨달으려고요. 그 다음은, 이 변화의 때에 여기에 있으려고 여기 있는 겁니다. 세상에 그게 정말 필요하거든요. 그걸 촉진하고 또한 그 경험의 일부가 되려고 여기 있는 거죠. 그 경험의 일부가 되려고요. 그러나 다른 인간들이 경험하는 방식과는 다르지요. 사람들은 그걸 고난의 관점에서 경험할 수 있습니다. 혹은 세상이 무너지려 한다고 느낄 수도 있고요. 혹은 그저 외면하려고 할 수도 있고요. 그러나 여러분은 여러분의 빛을 내뿜는다는, 아주 의식적으로 깨어 있는 관점에서 그걸 경험하려고 여기 있습니다. 여러분 자신에게든, 세상에게든, 여기 이 지구에 있기에 지금보다 적합한 때는 고를 수 없었을 겁니다.

자, 그걸 잠시 느껴보세요. 모든 게 수렴되고, 하나로 모아지고 있는 것을요. 딱 맞는 때, 맞는 곳에 있습니다. 실수는 없어요.

(침묵)

지금 지구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나요. 모든 부분에서요—시스템, 테크놀로지, 에너지— 모든 부분에서요. 제가 이야기했던 것들 있죠. 지금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추동력은 주권성, 혹은 자유입니다. 인간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자유를 갈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이지 그게 뭔지를 모르죠. 그걸 열망하고 있습니다만, 어떻게 그걸 얻는지,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를 모릅니다.

그들은 또한 진실을 찾고 있지요. 그 누가 알까요, 요즘 시대에 어디서 진실을 찾을 수 있습니까? 진실을 어디서 볼 수 있어요?

린다: 정말 어렵죠.

아다무스: 뉴스 미디어, 인터넷, 친구들, 동네 음모론 모임, 뭐가 됐든지요. 진실을 어디서 찾을 수 있나요? 딱 한 군데죠. 바로 자기 자신 안에서입니다. 여러분이 자신의 빛을 비추고 있다면 여러분은 또한 자기 자신과 교감하고 있는 것이고, 또한 직관적으로 진실을 알지요. 여러분은 주변에 떠다니는 온갖 쓰레기들에 사로잡히지 않을 겁니다.

린다: 그거 정말로 힘이 되네요. 정말로 멋지게 요약해줬어요. 우와!

아다무스: 고맙습니다. 고마워요.

린다: 정말 값져요.

아다무스: 네, 전 마스터인걸요. 자, 사람들은 진실을 찾고 있고요. 언제든 그런 느낌으로 가셔도 됩니다(린다를 보며). 칭찬 말이에요. 농담이긴 한데, 근데 정말 많은 분들이—스스로에게서도, 남들에게서도 칭찬을 좀 받아들이세요! 여러분 그런다고 무슨 고약한 이기주의자 되지 않습니다. 그냥 여러분의 본모습인 마스터를 인정하는 것일 뿐이에요. 그러니 부끄러운 척 놀이, “난 그만한 자격 없어” 놀이는 그만 두십시오. 칭찬 더 있어요?

린다: 물론이죠. 당신은 정말 대단해요.

아다무스: 음, 고맙습니다.

린다: 세상에, 당신은 우리가 이걸 통과해 갈 수 있게 도와주고 있는걸요.

아다무스: 물론이죠, 고맙습니다. (아다무스 키득)

린다: 그 의미는 거의 상상초월이죠.

아다무스: 칭찬을 받아들이세요. 좋습니다.

자, 주권성이 있고요. 진실이 있고요. 지구상의 대표적인 추동력인 에너지가 있지요. 제가 이런 거 모두 지난달에 언급했습니다만, 뭐, 샴브라들은 곧잘 잊곤 하죠.

린다: 있죠, 그거 유익해요. 전 벌써 약간 도움이 될 만한 단어까지 만들었다니까요. STEP이라고.

아다무스: STEP, 좋습니다. 네. 주권성(Sovereignty). 진실(Truth). 에너지(Energy). 오, 지금 지구의 에너지는요, 비록 지금 온갖 갈등들이 일어나고 있긴 하지만, 그것들 상당 부분의 추동력은 바로 에너지죠. 그러니까, 그게 바로 전쟁 도구의 하나입니다. 이른바 경제 전쟁에서요. 그러면 마지막 “P”는 뭐죠?

린다: 열정(Passion)?

아다무스: 아뇨.

(잠시 침묵)

파워.

린다: 아!

아다무스: 파워!

린다: 그거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았어요!

아다무스: 파워. 제가 그거 전에 언급했잖아요.

린다: 알아요.

아다무스: 파워입니다. 그건 강력한 요소들 중 하나죠. 사람들은 파워를 그러쥐려고 합니다. 마지막 희망처럼요. 이 점은 조금 있다 다룰 건데요.

아무튼 의사소통은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이 일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에너지가 뭔지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요. 또한 저는 이게 곧 대중에게도 퍼지기 직전이라고 말했는데요. 얼마 전에 제가 그 첫걸음 비슷한 것을 봤어요. 그걸 좀 읽어주시겠어요? 린다.

린다: 알겠어요.

아다무스: 논란이 되는 물리학자가 한 말입니다. 하지만 훌륭한 물리학자들이란 언제나 논란이 있죠. 낡은 패러다임을 깨뜨리니까요.

린다: 맞아요.

아다무스: 물리학은 결국, 음, 모든 게 어떻게 작용하느냐 하는 문제인데요. 낡은 틀에서 좀 벗어날 필요가 있습니다—실은 틀에서 많이 벗어나야 하죠—이 물리적 차원만 연구하는 게 아니고요. 훨씬 더 많은 것들이 있거든요.

그래서 최근에 그가 발언을 했는데 말이죠…

린다: 음, 사람들은 그 말이 틀렸다는 걸 증명하려고 하다가 많이들 배우는 것 같아요.

아다무스: 바로 그겁니다.

린다: 그러니까요.

아다무스: 자, 누가 한 말이라고요?

린다: 자. 나심 하라메인(Nassim Haramein)의 말입니다.

아다무스: 나심 하라메인, 네.

린다: 물리학자죠.

아다무스: 네, 네, 좋습니다. 그는 그의 방법론 때문에 논란이 되고 있죠. 그러나 그의 방법론은 그런 식이어야만 합니다. 그는 기존의 낡은 시스템에 빠져 있길 원하지 않으니까요.

린다: 어디 사람이죠? 어느 나라 사람인지 알 수가 없더라고요.

아다무스: 어서 해봅시다.

린다: 알았어요. “이 지능적이고 질서정연한 우주(cosmos)의 존재는 창조의 구조가 복잡하며 모든 층위(scale)에서 소통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아다무스: 그래요. 모든 층위에서 소통한다. 그 구조, 시스템, 이 우주는 모든 층위에서 소통하고 있죠. 좋습니다.

린다: 네. “이 소통 때문에 정보 교환 역학—피드포워드(feedforward), 피드백(feedback), 혹은 정보 피드백 루프(information feedback loop)—이 가능하며, 그리하여 시스템은 자기 자신에 대해 배우고 진화하며 자기를 인식(self-aware)할 수 있게 된다.”

아다무스: 자기를 인식하게 된다. 한 마디로, 나심의 말은, 아주 거대한 의사소통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겁니다. 이건 죽은 공간이 아닙니다. 아무 생각 없는 멍청한 입자들이 아니에요. 모든 건 소통하고 있습니다. 지금 아직 그가 모르는 건, 우리가 그를 도와줄 거지만요, 그건 바로 애초부터 모든 게 여러분 자신의 에너지라는 것이죠. 이건 거대한 발견이 될 겁니다. 아무튼 그의 말은, 모든 건 소통 속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단 거예요.

자, 그의 다음 단계 작업물이 올해 안으로 나올 겁니다. 에너지는 소통이다, 혹은 그 역도 마찬가지, 소통은 에너지다라는 이론이 나올 거예요. 이건 우리가 오랫동안 이야기해온 것들의 바로 첫걸음일 겁니다—나심의 발언을 다시 볼 수 있을까요—‘모든 건 모든 층위에서 소통하고 있다’. 여러분 몸 속의 모든 것, 여러분 현실 속의 모든 건 소통하고 있습니다. 모든 건 바로 ‘여러분’ 안에서, ‘여러분’의 하나됨(oneness) 속에서 서로 연결돼 있어요. 이건 굉장한 거죠. 그리고 그 소통이 이 정보 교환을 일으키고, 그리하여 시스템이 저 스스로에 대해 알게 되고 진화하고 자기 자각적이 되게 합니다. 음, 아다무스의 책에서 곧바로 튀어나온 것 같은 말이군요. 뭐 사실 그랬을 수도 있고요.

여기서 요점, 핵심은 특히 샴브라들에게요, 바로 소통이 다음 단계라는 겁니다. 말이나 그림들 없이, 여러분 자신의 자연스런 상태로 돌아가 소통하는 법을 아는 거요. 결국엔 그런 것들도 사용할 수 있게 되겠지만, 지금은 그렇게 하는 법을 먼저 이해할 때죠. 그리고 바로 지금도 여러분의 몸 전체가 모든 뉴런과 세포, 분자들과 소통하고 있다는 걸 깨닫는 겁니다. 그것들 모두가 소통하고 있어요. 여러분 현실 안의 모든 것이요. 바로 여기의 이 공기도 소통하고 있지요. 소통하는 데 꼭 어떤 입자가 있을 필욘 없습니다. 꼭 말로 하거나 노래를 하거나 글자로 쓰거나 그런 식일 필요가 없어요. 그러나 바로 지금 모든 게 소통하고 있고, 그건 전부 여러분 자신의 것이죠. 여러분은 바로 그 한복판에 있는 겁니다.

그건 굉장히 중요한 요점입니다. 여러분의 소통을 느껴본다는 건요. 그러나 말을 기대하지는 마십시오. 전혀요. 여러분은 천사적 감각으로 그걸 느낍니다. 그런 감각들을 정의할 필요조차 없어요. 그저 그것들이 이미 거기 있음을 알기만 하면 됩니다. 그건 감각적(sensual)이 되고, 많은, 아주, 아주, 아주 많은 층위들을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이지요. 그리하여 여러분은 비단 여러분이 존재하고 있는 이 물리적 현실만이 아니라, 그 주변의 모든 차원들, 모든 현실들 또한 볼 수 있게 될 겁니다. 자, 소통은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이것의 가장 핵심에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소통이 뭔지를 이해한다면 에너지도 이해하게 될 겁니다. 그 역도 마찬가지고요.

궁극적으로, 모든 건 한 가지 아주 핵심적인 것으로 귀결됩니다. 한 가지 핵심이요—바로, 자각(awareness)이죠. 자각. 자각은 여러분이 갖게 될 가장 멋진 선물입니다. 자각은 가장 멋진 선물이에요. 그리고 그 시작은 “나는 존재한다(I Exist). 나는 자각하고 있다(I am aware). 나는 존재한다.”죠. 존재하지 않았다면 여러분은 여러분이 존재한다는 걸 자각하지 못했을 겁니다. 그래서 그게 아주 기본, 아주 핵심이죠—“나는 존재한다”. 그 다음이 “나는 나다(I Am that I Am).”입니다. 그건 한 마디로, 여러분은 여러분이 해온, 생각해온 모든 것, 될 수 있는 모든 것, 될 모든 것이라는 말이죠. 그러나 그건 전부 ‘지금’ 순간(the Now moment)에 있습니다. 자각, 여러분이 갖게 되는 최고의 선물이죠.

지금 더 많이 소통하고, 여러분 자신의 에너지와 교감하는 법을 익혀감에 따라 무슨 일이 벌어지냐 하면, 여러분의 자각이 열리고 있습니다. 때로는 인간 마음이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는 층위에서도 열리고요. 그러나 또한 여러분의 자연적 소통을 허용하고 오픈해야만 하는 층위에서도 열립니다. 인식하는 능력, 자각하는 능력, 그 모든 소통들을 감각하는 능력을요. 그리고 그건 압도적이지 않지요.

여러분은 생각해요. “오, 모든 원자들이 소통하고 있구나.” 그건 압도적이지 않습니다. 그건 여러분에게 뭘 어떻게 하라고 말하려 들지 않습니다. 그런 건 집어치우세요. 그것들은 ‘절대로’ 그런 말을 하지 않습니다. 선택하는 건 여러분 자신이죠. 심지어 아이 엠, 혹은 영혼조차 여러분에게 뭘 어떻게 하라고 말하지 않아요. 그러나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Self)과 다시 연결될 수 있고, 영혼과의 재연결을 허용함으로써 균형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왜냐면 그건 바로 여러분 자신이니까요. 그건 모든 것입니다. 그게 여러분의 지혜고, 여러분의 에너지예요. 그러나 그런 것 어느 하나 여러분에게 뭘 어떻게 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저 그런 이야긴 더는 듣고 싶지 않아요. 우리 그런 무슨 영적인 가이드니 그런 건 다 지나왔잖아요. 그런데 이제 와서 여러분이 “음, 내 영혼이 이렇게 하라고, 저렇게 하라고 나한테 말했어.”라고 한다면, 그렇지 않죠. 영혼은 끊임없는 빛으로서, 안심시켜주면서, 여러분 모든 에너지와 지혜와 잠재성들의 저장고로서 거기 있는 겁니다. “이걸 하라”, “저걸 하라” 말하지 않아요. 그건 여러분에게 달린 문제죠. 결정은 여러분이 합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지혜를 가져와서 그런 결정을 내릴 때 도움을 받을 순 있지만, 궁극적으로 결정은 여러분이 합니다.

자, 모든 소통의 가장 기본, 모든 것의 가장 기본은 바로 “나는 자각한다(I am aware). 나는 존재한다(I Exist). 나는 나다(I Am that I Am).”입니다. 그게 언제나 항상 일어나고 있는 의사소통이에요. 여러분은 전적으로 조용한 환경에 있을 수도 있습니다. 최근에 저희 워크숍들에서 체험해봤듯이요. 완전히 고요한 환경에 있어도, 그래도 여전히 그 소통은 있지요. 그건 날카로운 소음도 아니고요, 머릿속에서 울리는 부모님의 목소리 그런 것도 아닙니다. 그저 “아이 엠 댓 아이 엠. 나는 존재한다.”죠. 그것이 언제나 일어나고 있는 의사소통입니다.

그걸 한번 느껴보세요.

(침묵)

처음엔 어렵죠. 말을 넘어간다는 거요. 그러나 곧 여러분은 여러분의 자연적인 상태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실은 가장 어려운 부분이 말을 사용하는 거였단 걸 갑자기 깨닫죠. 언어를 익혀야 하고 언어에, 혹은 시각적인 것에 자신을 제한해야 하는 게요.

여기서 그 다음으로 중요한 요점은요—우리 지금 소통 이야기를 하고 있잖아요. 자각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죠—바로 자각일 겁니다.

지금(Now) 속에서 알아차리기

있죠, 정말 많은 샴브라들이—보통 사람들도 그렇고요—일반적인 사람들부터 먼저 이야기해보죠. 정말 많은 사람들은, 음, 자각하고 있지 못합니다. 그들은 자신의 현실 안에서 아주, 아주 제한된 것들만 알아차립니다. 그들은 아마 자기 식구들, 자기 일, 밖이 춥다, 그런 것들을 자각할 겁니다. 그러나 그런 자각은 아주 제한적이죠. 음, 애석할 일까진 아니지만, 유감스럽긴 하죠. 자각할 것들은 너무나 많으니까요.

대부분 사람들은 자기들 몸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자기 몸에, 심지어 마음에조차 잘 그라운딩 되어 있지 않아요. 그들은 더 높은 의식 상태라든가 그런 데 가 있진 않아요. 말하자면 무(no-thing) 지대에 있습니다. 그들은 그 자리에 있지를 않습니다. 거기 없는 거죠. 하루를 그냥 통과해 지나쳐버립니다. 왜냐면 몸 안에 완전히 그라운딩되어 있으면 고통이 너무 크거든요. 고통이 너무 많습니다. 그러나 그게 바로 고통이 존재하는 이유 중 하나죠. 여러분의 몸은 “여기로 돌아오라고.”라고 말해주려는 겁니다. 사람들은 감정적 고통 속에 있지요. 그래서 현존해 있길 원하지 않습니다. 여기 말고 어디 다른 데 가 있길 원하죠. 그저 겨우 살아갈 만큼만 알아차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감정적 고통은 감당불가할 정도지요. 그래서 말하자면, 떠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감정적 고통은 더욱더 악을 씁니다. 돌아오라면서 말이죠. 그건 여러분이 돌아오길 원해요. 그래야 여러분이 그 고통을 놓아버릴 수 있으니까요. 그래야 고통을 놓아줄 수 있고, 여러분의 빛을 비출 수 있으니까요. 애초부터 그것이야말로 고통을 놓아주는 가장 훌륭한 방법이지요.

정말 많은 샴브라들이 아직도 정말이지 여기 있길 원하지 않아요. 몸의 통증이 있을 수도 있고요. 정신적 문제, 정신적 아픔이 있을 수도 있고요. 그래서 어디 다른 데로 가버립니다. 음, 그런 상태에 있을 때 여러분은 여기 있지 않은 겁니다. 정말이지 완전하게 알아차리고 있지 않은 거예요. 여러분은 여기 있으면서 기쁨, 행복, 건강, 풍요 같은, 여기 있는 모든 선물들을 받고 있지 않은 겁니다.

궁극적으로 그것은 전부 제가 현재, 혹은 ‘지금’ 순간이라고 하는 것으로 귀결됩니다. 그들은 ‘지금’ 속에 있지 않아요. 현존해 있지 않습니다. 무슨 일인가가 일어날 수 있는 유일한 장소는 바로 ‘지금’이에요. 지금 순간 밖에서 일어나는 소통은 없습니다. 과거에 대한 기억들이 있을 뿐이죠. 미래가 어떨까 하는 궁금증 혹은 인식이 있을 뿐이고요. 그러나 소통은 거기 없습니다. 모든 건 ‘지금’ 순간 속에서 소통하고 있어요. 여러분 소통을 원합니까? 그럼 현재 속에 있으십시오.

현재는 모든 것이 있는 곳입니다. 여러분의 과거 생들을 포함해서요. 전생들은 사실 과거에 있지 않아요. 현재 속에는 모든 풍요도 들어 있지요. 그건 미래에 있지 않습니다. 그건 미래에 있지 않아요. 현재 속에는 여러분의 건강이 있습니다. 혹시 여러분에게 건강 문제가 있다면요. 건강은 여러분 더 젊었을 적인 과거에 있지 않아요. 기적적인 치료가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미래에 있지도 않고요. 여러분 기적적인 치료를 원합니까? 현재 속에 있으십시오. 그게 모든 자각, 모든 소통, 모든 선물들이 있는 곳이니까요. 바로 여기가요.

여러분의 과거 생들은 현재 속에 있습니다. 여러분이 그걸 모른다 할지라도요. 여러분은 일종의 눈가리개를 하고 있죠. 미래 잠재성들은 사실 미래에 있지 않습니다. 그건 바로 지금 여기에 있죠. 그저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지금 순간이 거대하고 광활한 현실 풍경(reality landscape)인 겁니다.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는 아름다운 현실 풍경이요. 그래서 모든 게 바로 지금 여기에 있는 겁니다.

시간이란 없어요. 물론, 시계를 차고 있다면 시간이 존재하겠죠. 그러나 진짜 시간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대개 무한, 혹은 영원을 생각할 때—여러분도 과거에는 그렇게 생각했죠—그게 아주, 아주, 아주 긴 시간이라고 생각하지요. 영원이란 걸 생각할 때요. 어느 누군가와 영원히 결혼 생활하는 것이 상상이 되나요? 그러니까, 그거 긴 시간이잖아요.

린다: 긴 시간이죠.

아다무스: 긴 시간이죠, 절대로 끝도 안 나고요. 그리고 그걸 실천하는 종교들도 있습니다. 아주 긴 시간에 걸친 엄청난 서약이죠.

여러분이 영원이란 것에 대해 생각할 때요, 마음은 그걸 못합니다. 마음에게 그건 그저 계속되는 반복일 뿐이죠. 그러나 여러분은 모든 게 바로 지금 이 순간 속에서 일어난다는 걸 깨닫습니다. 그게 바로 지금 일어나고 있다는 걸 깨달아요.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영원은 전혀 길지 않습니다. 모든 게 바로 여기 있어요. 영원은 어떤 광대한 외부 우주로 끊임없이 뻗어나가는 게 아닙니다. 영원은 바로 여기 있어요. 그래서 바로 제가 여러분은 태어난 적 없다고 말하는 거예요. 여러분은 천사적 영적 출생을 경험한 적이 없습니다. 인간으로서는 그렇게 했지만, 여러분은 어떤 신의 손짓 한 번으로 갑자기 존재하게 된 게 아니었습니다. 여러분은 존재하지 않았던 적이 없어요. 왜냐면 모든 건 바로 여기 있으니까요. 모든 게 바로 여기 있는데 어떻게 과거나 미래를 가질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이 여러분 자신에게 주는 모든 선물, 여러분 영혼이 여러분에게 주는 모든 선물은 바로 지금, 바로 여기 있습니다. 자—이건 미랍은 아니고요, 그저 잠시 이 점을 느껴보는 시간을 갖죠—음악을 좀 틀고 느껴보겠습니다. 지금 이건 정말로 아름다울 만치 간단하고 정말로 핵심적인 것이지요.

(음악 시작)

모든 게 바로 여기, 현재 순간 속에 있습니다. 모든 게요. 현재의 바깥에서 일어나는 소통이란 건 없어요. 현재 바깥에서 일어나는 치유란 건 없습니다. 여기 바깥의 풍요란 없습니다. 바로 그거예요.

그래서 바로 지금 현재 순간 속에서 알아차리고 있는 것이 너무나도 필요한 것입니다.

바로 지금 현재 순간 속에서 소통하며 현재 속에서 여러분 빛을 비추는 것이 너무나도 필요한 것입니다.

전 과거나 미래, 선형적 현실이란 덫에 사로잡히기가 아주 쉽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러나 전혀 그렇지가 않지요. 현실은 원형적입니다. 모든 건 현재 속에 있어요. 여러분의 모든 과거 생들도요.

여러분의 과거 생들은 지금 아주, 아주 흥미로운 경험을 하고 있지요. 여러분 전생들은 깨달음을 겪고 있습니다. 그건 과거일지 모르나, 적어도 여러분이 생각하기엔 과거지요, 그러나 그 일은 바로 지금 일어나고 있습니다. 누군가 이렇게 반박할 수도 있겠죠. “음, 그들에겐 그들만의 역사가 있어. 그들은 어떤 어떤 것들을 했고, 그런 다음 죽었다고.” 오, 아뇨, 그렇지 않죠. 바로 지금 모든 게 바뀌고 있습니다. 왜냐면 그건 현재 속에 있으니까요.

여러분은 시간을 되짚어간다고 해서 과거로 갈 수 없습니다. 그저 그 온갖 다른 표현들을 감각할 수 있을 뿐이죠. 현재 속에서 그것들과 소통할 수 있을 뿐이죠. 그건 전부 바로 여기 있습니다.

여러분의 모든 풍요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아직도 찾고 계신 분들 있죠. “풍요가 어딨지? 어딨어? 찾을 수가 없네.” 그건 여러분이 저 바깥에서 그걸 찾고 있기 때문이죠.

모든 건 현재에 있습니다. 모든 창조 속에 그것 말고는 무엇도 없습니다. 무엇도 없어요. 오직 현재뿐입니다.

저 먼 행성에서 뻗어 나오는 빛이 2백만 광년 떨어진 곳에서 오는 게 아니에요. 여러분이 오직 선형적 현실만 인식하고 있는 게 아니라면요. 아니죠, 그 빛은 바로 지금 빛나고 있습니다.

별이나 태양계 같은 게 2백만 광년 떨어져 있다고 하지만, 그건 사실 저 밖에 있지 않습니다. 오, 물론, 인간이 사용한 측정 도구들에 따르면 그렇지 않다고 반박하겠죠. 그러나 아니에요. 사실은 전부 다 바로 여기 있습니다. 저 멀리 떨어진 행성은 사실 바로 여기 있어요.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현재 순간 밖에는 아무것도 없어요. 기억들, 혹은 희망 빼고는요. 과거에 대한 기억, 앞으로 올 것에 대한 희망, 그러나 여러분은 모든 희망들, 여러분이 선택할 모든 것들이 바로 여기 현재 속에 있음을 알게 됩니다.

과거에서 소통하고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모든 게 바로 여기 있지요. 원형적 현실입니다.

여러분의 깨달음은 미래 어딘가에 있는 게 아니었어요. 오래 전—음, '오래' 전에요—몇 년 전, 제가 샴브라들에게 말했죠. 전 여러분이 언제 깨달을지를 1주일 오차 범위 이내로 알고 있다고요. 그건 제가 미래를 내다보고 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전 여러분의 현재를 보고 있었죠.

모든 게 여기 있습니다. 때론 그저 깊이 숨 쉬고, 편안히 이완하면서, 알아차리는 문제, 그것과 소통하는 문제죠. 뭔가를 요구하는 게 아닙니다. 뭘 원한다고 그것에게 말하는 게 아니에요. 그저 여러분 자기 자신(Self)에—여러분의 에너지, 지혜, 잠재성들, 여러분의 영혼에— 연결되어 보고 그걸 느껴보는 거죠. 모든 게 바로 여기 있습니다.

여러분의 죽음도 바로 여기 지금 순간 속에 있습니다.

모든 게 바로 여기 있어요. 답들도, 모든 게요. 그리고 여러분이 빛을 비추고 있는 지금 이게 정말로 중요하죠. 그 빛은 여러분에게 먼저 뻗어나갑니다. 빛을 비추면서 여러분은 여러분의 온 존재와, 여러분 자신의 모든 부분과, 알지 못했고 접해보지 못했던 부분과 교감합니다. 그러나 그건 전부 바로 여기 있지요. 그것들은 어디 다른 데 있는 게 아닙니다.

알아차리고 있는 것. 여러분은 오직 지금 순간만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오직 순간만을 알아차릴 수 있어요. 어떻게 미래를 알아차리겠습니까? 과거 또한 알아차릴 수 없습니다. 그건 낡은 기억들일 뿐이에요. 그건 멘탈적인 것입니다. 그저 멘탈적인 것일 뿐이에요. 그건 오로지 그런 겁니다.

지금 순간 속에서 존재하기, 있기, 그 속에서 교감하기를 깊이 호흡해보죠. 모든 게 여기 있습니다. 그뿐입니다.

바로 그 장대하고 단순한 깨달음으로, 갑자기 여러분은 선형적 현실이라는 낡은 선로에서 벗어납니다. 갑자기 여러분은 실은 기차가 움직이고 있지 않다는 걸 깨달아요. 움직일 필요가 없지요. 모든 건 바로 여기 있으니까요.

따라야만 할 선로 같은 건 없습니다. 어디론가 가서 쟁취해 와야 하는 에너지 같은 건 없어요. 그러니까, 여기 있지 않은 에너지란 애당초 존재하지 않는단 겁니다.

여러분의 현실 바깥엔, ‘지금 순간’ 현실 바깥엔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무것도요. 모든 건 바로 여기 있습니다.

그리고 이거 애쓰지 마세요. 이걸 멘탈적인 걸로 갖고 가서 애쓰지 마십시오. “현재 순간, 현재…” 생각하려 애쓰지 마세요. 아니죠, 그저 깊이 숨 쉬면서 현재 속으로 편안히 이완해 들어가는 겁니다. 필요한 건 그뿐이에요.

네, 여러분 선형적 현실로 다시 잡아당겨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깊은 호흡을 한 번 더 하세요. 그러고서 여러분의 자연적 존재상태로 돌아오십시오. 모든 게 현존합니다.

모든 게 현존합니다. 전부 다 바로 여기 있어요. 말 그대로 ‘모든 게’요, 모든 게, 여러분이 이번 생에서 원하고 필요로 할 수 있는 모든 게요. 다 바로 여기 있습니다.

자, 이 점을 깊이 호흡해봅시다. 현재 순간으로부터 그 빛이 뻗어나가게 해봅시다.

간혹 이걸 어디 듣도 보도 못한 데서—과거, 미래, 어디 무슨 좀비 차원 같은 데서— 하는 분도 봤는데요. 아니죠, 모든 건 바로 여기서부터 나옵니다.

이 점을 깊이 호흡해봅시다.

크게 심호흡하며, 다음 주제로 넘어가보죠.

(음악 끝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