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지복에 찬 경우에만 가능하다

 

지복에서 장미들, 가슴의 장미들이 자란다.

그리고 그 장미로부터 사랑의 향기가 발산된다.
 
그대는, 그대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줄 수 없다.
그대가 가지고 있는 것만을 줄 수 있다.
 
내면의 장미가 피어나지 않는다면, 그대의 모든 사랑은 말에 지나지 않는다.
내면의 장미가 피어날 때 말할 필요가 없어진다. 어떤 말도 필요하지 않다.
향기 그 자체만으로 충분히 메시지가 전달된다.
 
그대가 어디에 있든지, 누구와 있든지, 사랑은 계속 빛을 발하고, 계속 고동친다.
사랑은 그대 주위에서 끊임없이 춤추는 에너지가 된다.
 
그러나 먼저 가슴의 장미가 피어난다.
장미는 지복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욕구가 충족될 때 피어날 수 있다.
 
사람들은 절망 때문에 사랑한다. 그런데 그것은 가장 불가능한 일이다.
존재의 본질상 그런 사랑은 일어날 수가 없다. 불가능한 일이다.
사람들은 슬프기 때문에 사랑한다. 그들은 외로움 때문에 다른 사람을 찾는다.
 
그러나 사랑은 그대가 지복에 잠겨 있을 때만이 가능하다.
외로움을 느끼지 않으면서 홀로 일 때만이 사랑이 가능하다.
 
그대 자신에게 싫증이 나서가 아니라 그대 자신에게 매혹되고 황홀해질 때, 사랑이 가능하다.
명상은 그대가 지복에 차도록 도와주고… 그 지복은 사슬처럼 끝없이 이어진다.
명상은 그대를 지복에 차도록 만들고, 지복은 가슴의 장미가 피어나는 것을 도와준다.
그리고나면 사랑이 저절로 다가온다. 장미꽃에서 향기가 풍겨 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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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지복에 찬 사람만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
오직 지복만이 그대를 동정을 가진 사람으로 만들 수 있다.
오로지 지복만이 그대의 삶에서 다른 사람을 도와주고 봉사할 수 있는
아름다운 에너지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지복에 차 있지 않다면 그대는 누구에게도 봉사할 수 없다.
봉사하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그대는 단지 해를 끼치고 있을 뿐이다.
불행한 사람은 사람들에게 오직 불행만을 줄 수 있다.
우리는 단지 우리가 가진 것을 줄 수 있을 뿐이다.
 
선한 의도를 가지고 있느냐 아니냐는 문제가 아니다.
그대가 도와주고 싶어도, 그대 내부에 흘러넘치는 지복의 에너지가 없다면
그대는 반드시 해를 끼치게 된다.
나는 이것을 근본적으로 구별하고 싶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종교의 이름으로 많은 사람들이 인류에게 봉사를 해왔다.
 
그들은 그들 스스로 비참하지만, 인류에게는 위대한 봉사자가 된다.
그들은 가난한 사람들, 장애자들, 환자들에게 봉사한다.
그들은 병원을 열고 학교를 세우고 할 수있는 온갖 종류의 일들을 다 한다.
그러나 그들은 누구에게도 전혀 도움이 안 된다.
 
그들의 모든 여행은 에고의 놀음일 뿐이다. 부모들은 자신들이 아이들을 도와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은 아이들을 파괴하고 있을 뿐이다. 부모들이 도와주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다.
도와주고 싶어 하지만 그럴 능력이 없다.
그들의 부모는 그들을 파괴했고 지금은 그들이 자신들의 아이들을 파괴하고 있다.
 
그리하여 불행은 계속 이어지고 쌓이고, 점점 더 커져만 간다.
그러므로 나는 나의 산야신들에게 인류에게 봉사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나는 명상가가 되고, 춤추는 자가 되라고... 기뻐하라고 말한다. 그때 봉사가 찾아올 것이다.
봉사에 대하여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 봉사는 그림자처럼 저절로 따라 온다.
그대가 봉사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봉사가 그대를 따라 오는 것이다.
그리고 그때 봉사는 하나의 축복이다.
-오쇼-

 

영성시, 영성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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