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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존재할까요? 이 의문은 사람들이 아주 오래전부터 궁금해하고 있는 주제입니다. 일부의 사람들은 하나님이 특정한 형태로 존재하신다는 증거를 찾았다고 주장하는 반면, 또 일부의 사람들은 결정적인 증거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또 다른 일부의 사람들은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증거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논란으로 인해,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존재한다는 확실한 증거를 보여주지 않는 것일까?"라는 의문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더 나아가기 전에, 우리는 이러한 궁금증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그러한 증거를 하나님께서 어떠한 방법으로 주실 수 있는지부터 살펴보기로 합시다. 논란의 소지가 없는 확실한 증거라는 것이 어떤 것일까요?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인간의 의심을 불식시킬 증거나 사실이 과연 존재할 수가 있을까요? 지구에서 찾아볼 수 있는 많은 개념들과 믿음체계들을 살펴보면, 그러한 개념 혹은 믿음들 속에는 당초의 개념을 무의미하게 만들거나, 적어도 원래의 개념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하는 반대되는 개념이 존재한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에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명백하게 알고 있습니다. 지금은 이것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지만, 불과 몇 세기 전까지만 해도, 많은 사람들이 논쟁을 벌였던 주제였습니다.

 

논리적인 면에서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두 개의 반대되는 것, 즉 진실과 거짓, 작용과 반작용, 흑과 백의 상호 작용에 따른 지배를 받게 되는 의식 상태에 놓여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이러한 두 개의 반대되는 것은 서로 배타적이거나, 배타적인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어떠한 진술이 참이면서, 동시에 거짓이 될 수는 없으며, 인간의 마음도 또한 그렇습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상반되는 두 개 관점들 가운데 어느 하나를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것을 받아들이든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받아들이든지 해야 하며, 어떤 경우든, 사람들은 자신들이 믿고 있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증거를 인용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증거는 논쟁이 될 수가 있으며, 결정적인 증거를 찾아내지 못한다면, 끝없는 논쟁으로 이어질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존재 여부에 대한 결정적인 답을 찾아내려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은 계속해서 증거에 대한 논쟁을 벌이게 되며, 자신들이 가진 증거가 결정적이고, 절대적이며, 오류가 없는 증거라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확신시키려고 애를 쓰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존재 여부에 대한 다른 접근 방법은 없을까요? 논쟁에서 한걸음 뒤로 물러나 봅시다.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하나님 혹은 실체에 대해 마음속에 지니고 있는 특정한 모습에 기초하여, 그런한 논쟁을 벌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를 들면, 유물론자들은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오늘날에 이 행성에서 찾아볼 수 있는 많은 종들이 출현하게 된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 진화론적인 메커니즘을 자연 속에서 찾아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모든 것들이 무작위적인 과정으로부터 생겨날 수 있다면, 지성을 가진 창조주가 필요치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이론은 어떠한 가정들에 기초하고 있으며, 이러한 가정은 특정한 세계관에 토대를 두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가정들 가운데 하나는 매우 체계적이고, 질서 정연한 우주가 - 보다 더 복잡하고, 질서 정연한 여러 층들을 계속 발견해가고 있으며 - 완전히 무작위적인 과정으로부터 생겨날 수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달리 표현하면, 무질서가 - 우연히 - 질서를 만들어낼 수 있으며, 이 질서가 - 무작위적으로 - 덜 복잡한 것으로부터 인간과 같은 더 복잡한 형태의 생명으로 이어지는 - 수십억 년에 걸쳐 - 질서 정연한 진화의 과정을 유지시킬 수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명백한 것은 궁극적으로는 이것을 증명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무작위적이라면, 어떻게 질서 정연한 과정을 입증할 수가 있겠습니까?) 따라서 유물론적인 과학이 바라보는 세계관은 어떠한 가정에 근거를 두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떠한 가정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실체에 대한 정신적인 이미지로, 비록 그러한 이미지가 옳은 것이라고 증명할 수 있는 직접적인 체험이나 증거는 없지만, 그러한 이미지를 만들어내기로 선택한 것입니다. 여러분도 자신이 지닌 이미지가 진실하다고 가정하고 있는 것이며, 따라서 그러한 가정은 필요에 의하거나, 오류가 전혀 없어서가 아니라, 선택에 의해 가지게 되는 정신적인 이미지인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그러한 가정을 증명하려는 강한 욕구를 지니고 있다면, 그러한 가정을 뒷받침해주는 증거만을 보게 될 것이며, 그러한 가정으로부터 벗어나는 증거는 못 본 척하게 될 것입니다. 다시 말해, 보고자 하는 것만 보게 된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만든 가정을 활용하여, 정신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이제는 이러한 이미지를 현실 속에 투사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대다수의 종교들이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논쟁을 벌이고 있지만, 사실 이러한 종교들은 하나님이라는 보편적이고, 초월적인 개념이 옳은 것이어서, 논쟁을 벌이는 것이 아닙니다. 이들 종교들은 자신들의 신성한 경전과 그러한 경전에 대한 현재의 해석 그리고 그들이 선호하는 교리에 따라 정의해놓고 있는 하나님에 대한 특정한 개념이나 이미지에 대해 논쟁을 벌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하나님이 존재하며, 그 하나님만이 유일한 참된 하나님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주류 기독교회는 하나님께서는 전능하시므로, 불완전한 것을 창조하셨을 리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누구나 볼 수 있듯이, 지구의 상황들은 완전하지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이러한 상황들로 인해, 많은 고통이 뒤따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고통을 받도록 인간을 창조하셨거나, 아니면 어떤 이유로 인해, 하나님의 당초 의도가 이 행성에서 실현될 수가 없었어야 하는 것입니다. 어느 쪽이든, 하나님께서 전능하시다는 증거는 존재하지 않으며, 따라서 이것 역시도 유일한 가정은 아니지만, 선택된 가정의 또 다른 사례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궁극적인 방식으로 증명하고자 한다면, 어떠한 가정들, 즉 사람들이 지닌“현실”관에 따라 논쟁을 벌일 수 있는 가정들에 기초한 이론으로부터 벗어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다른 사람들에 의해 달리 해석될 수 있는 말로 표현된 이론으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마음, 즉 두 개의 상반되는 것에 의해 지배되는 의식 단계를 뛰어넘는 어떠한 방법을 찾아내야만 합니다. 모든 것을 반대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이원성적인 마음의 영향을 받지 않고, 또한 시행착오를 겪지 않는 어떠한 방법들을 찾아내야만 합니다. 따라서 결정적인 증거를 찾아내기 위해, 체험으로 눈을 돌려야 하지만, 이것은 단순하고, 평범한 체험이 아닙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원자가 존재한다는 것을 믿고 있으며, 또한 사과가 존재한다는 것도 믿고 있습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원자를 본 적이 없으므로, 이들이 원자가 존재한다고 믿는 것은 직접적인 체험에 근거한 것이 아닙니다. 그 대신, 전적으로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어떠한 과정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며, 이 과정으로 인해, 대다수의 사람들은 소형 태양광 발전시스템처럼, 보이는 모든 것들은 보이지 않는 건축용 블록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실제로 원자를 보지 못했으므로, 원자에 대한 믿음은 마음속에 지닌 정신적인 이미지에 의존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정신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낸 후, 마음이 지닌 추론의 능력을 활용하여, 사람들은 이러한 이미지가 정확한 것이며, 따라서 원자가 틀림없이 존재한다고 믿게 되는 것입니다. 내 말의 요지는 사람들이 원자의 존재를 받아들이는데, 정신적인 이미지라는 중간단계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사과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믿음은 어떠한 추론의 과정에 기초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과가 존재한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위해, 추론을 할 필요가 없으며, 단지 체험을 이용하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사과를 보아 왔으며, 매끄러운 껍질도 느껴 보았고, 손가락으로 껍질을 문지를 때 나는 소리도 들어 보았고, 향도 느꼈으며, 달콤한 즙도 맛보고, 체험했습니다. 따라서 사과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논쟁을 벌일 사람들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요점은 사람들이 사과에 대한 이미지를 마음속에 지니고 있지만, 사과가 존재한다는 것을 받아들이는데, 이러한 이미지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과라는 과일을 직접 체험해 보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정신적인 이미지라는 중간단계를 거치지 않고, 이러한 체험에 기초하여, 사과의 존재를 받아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 사람들은 이러한 믿음에 대해 체험적인 증거는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체험하기는 불가능하며 - 이는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것을 체험하지 못할 때에만 가능한 것입니다. 어떤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논리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것처럼, 어떤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체험할 수는 없습니다. 사과를 체험할 수는 있지만, 사과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체험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현재의 시점에서 사과를 체험하지 못했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이것이 앞으로도 이러한 체험을 절대 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모든 사람들이 각자 하나님의 존재를 체험하지 못했다고 말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체험을 미래에도 할 수 없을 거라고 결코 단정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 사람들은 마음속에 지닌 어떠한 정신적인 이미지에 기초하여 믿지 않고 있는 것이며, 그러한 이미지는 하나님이 필요치 않은 세상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내 말의 요지는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않는 것은 직접적인 체험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중간단계의 정신적인 이미지를 필요로 한다는 것입니다.


대다수의 종교인들은 하나님의 현존을 체험하지 못 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것은 전적으로 특정한 종교에서 말하는 어떠한 정신적인 이미지에 의존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지는 하나님을 믿든, 믿지 않든, 그들의 믿음이 직접적인 체험에 의한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이미지에 토대를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현존을 직접 체험했다면,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관점은 더 이상 믿음에 기초하지 않게 될 것이며, 또한 정신적인 이미지를 받아들이느냐, 받아들이지 않느냐 하는 것에 토대를 두지 않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이라는 존재가 사과가 존재한다는 것보다 더 신비롭지도 않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떤 것을 믿을 때, 여러분의 믿음은 어떠한 정신적인 이미지에 토대를 두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정신적인 이미지는 믿음 혹은 비-믿음(non-belief)의 지배를 받게 되므로, 이러한 정신적인 이미지는 최종적인 답을 찾아내지도 못한 채, 이원성적인 마음으로 인해, 끝없는 논쟁만 불러오게 될 것입니다. 어떤 것을 체험하게 되면, 정신적인 이미지를 뛰어넘어, 직접적인 인식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경험이라고 해도 절대적인 것은 아닙니다. 마치 색안경을 쓰고 세상을 보는 것처럼, 체험도 정신적인 이미지에 의해 채색될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체험도 옥석을 가려야 할 필요가 있지만, 아무튼 직접적인 체험을 추구하는 것이 정신적인 이미지에 집착하는 것보다는 더 낫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직접적인 체험을 하려는 사람들만이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의문에 답을 해줄 가능성이 있는 것입니다. 정신적인 이미지로는 결코 어떤 것을 증명하거나, 반박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현존을 직접 체험할 수가 있을까요? 영적인 혹은 신비로운 체험을 한 사람들이 - 종교인들뿐만 아니라 심지어 비종교인들까지 - 많이 있습니다. 사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의 “모양대로” 창조되었다는 (창세기 1:26) 구약의 문구는 인간이 하나님의 현존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도록 창조되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는 이러한 능력은 육체적인 감각에 기초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이유로, 대다수의 사람들이 사과는 체험하지만, 하나님은 체험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육체적인 감각을 뛰어넘을 때에만, 그리고 심지어 실체에 대해 정신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의식 전체, 다시 말해 두 개의 상반되는 것들로 인해 작용하는 의식을 뛰어넘을 때에만, 하나님을 체험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실, 육체적인 감각으로는 하나님의 현존을 감지할 수가 없습니다. 일부의 사람들은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추론하는데, 이러한 사실을 악용하고 있으며, 육체적인 감각은 보이는 것에 의해 쉽게 속아넘어갈 수가 있다는 것을 대다수의 사람들은 알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착시현상을 보아왔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눈에는 위에 있는 선이 아래에 있는 선보다 더 길어 보이지만, 사실 두 선의 길이는 같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잘 알려진 이러한 사례를 이용하여, 육체적인 감각은 신뢰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전적으로 참된 것만도 아니라고 추론하고 있습니다. 눈은 하나의 선이 다른 선보다 더 길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눈은 단지 나열된 빛의 파장을 통과시킬 뿐입니다. 이러한 빛의 파동을 정신적인 이미지로 바꾸는 것은 여러분의 마음입니다. 여러 개의 선들과 같은 이러한 이미지에 이름을 붙이고, 길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내고, 한 선이 다른 선보다 더 길어 보인다고 추론하는 것도 또한 마음입니다. 눈은 선이라는 개념을 지니고 작용하지 않으므로, 한 선이 다른 선보다 더 길어 보일 수 있다는 것을 알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오로지 마음만이 이러한 정신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이러한 이미지를 눈으로 감지할 수 있는 빛의 파동에 적용시키게 되는 것입니다. 요점은 정말로 믿을 수 없는 것은  감각이 아니라,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감각은 단지 원래하도록 되어 있는 것, 즉 물질 우주를 구성하는 에너지파를 감지할 뿐입니다. 감각은 자신이 감지할 수 있는 것을 벗어나서, 어떤 것이 존재하는지에 대해서는 어떠한 판단도 하지 않으며, 오직 마음만이 그렇게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마음을 믿을 수 없게 만드는 것은 감각으로 감지하는 어떠한 느낌에 정신적인 이미지들을 적용하려고 하는 성향 때문입니다. 만약 이러한 정신적인 이미지가 실체와 동떨어진 것이라면, 마음은 자신의 현실관과 세계관을 어떠한 환상에 근거들 두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명백한 것은 감각에는 어떠한 제약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눈은 어떤 주파수의 범위 내에 있는 빛의 파동만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과학은 이러한 주파수보다 더 높은 혹은 더 아래의 주파수에서 진동하는 빛의 파동들이 많이 존재한다는 것을 밝혀냈습니다. 하지만 육체적인 감각의 범위를 확장하기 위해, 이러한 발견은 과학적인 도구들에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감각적으로는 직접 체험할 수 없는 어떤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입증할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X레이의 이미지를 보아왔으므로, 그러한 광선이 존재한다는 것을 직접적인 체험을 통한 증거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유물론적인 과학은 육체적인 감각의 범위를 크게 확장시켰습니다. 하지만 과학이 물질세계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육체적인 감각을 뛰어넘어, 심지어 추론하는 마음, 즉 정신세계의 이미지를 창조해내는 마음을 뛰어넘어, 인간은 체험을 확장시킬 수가 있습니다. 사실, 모든 인간의 의식 속에 내재된 재능들을 체계적으로 활용하는, 영적인 과학을 창조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재능들로 인해, 사람들은 물질 우주를 벗어난 실체를 직접적으로 체험할 수가 있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신비적인 체험은 더 이상 신비로운 것이 아니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자연스러운 체험으로, 내재된 능력을 사용하면, 육체적인 감각을 뛰어넘는, 심지어 물질 우주의 진동 범위를 뛰어넘는 것에 도달할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재능을 활용하면, 물질 우주를 벗어난 실체를 직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을 것이며, 이러한 재능들을 잘 연마하면, 하나님의 현존, 즉 하나님의 존재를 직접 체험할 수도 있게 될 것입니다. 그 시점에 이르게 되면, 하나님의 존재 여부에 대한 의문은 아무런 의미도 없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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