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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왕과 기사이야기...3527...2차대전의 진실
kimi 추천 4 조회 916 20.07.28 07:15 댓글 23

게시글 본문내용
     

2차대전은 히틀러와 처칠이 작당하여 시작된 전쟁이다.


그 당시 영국은 독일의 비행기들의 부속품을 만들어 

수출하고 있었는데 그 당시 독일 히틀러는 처칠과 짜고 

영국을 침략하여 폭격하기 시작하여 영국을 도우려는 

미국을 전쟁에 참가토록 작전을 짠것이라 한다.


그리고 이 모든사실을 알게된 패튼장군을 

아이젠하워가 명령하고 살해한 것이라 한다.


이처럼 전쟁은 글로벌리스트에 의해 자신들 돈벌기 

위한 목적으로 지금껏 만들어 왔었단 사실을 

우리인류는 꼭 알고있어야 할것이다.


트럼프가 백악관에 들고난 후부터 기사님이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미리막은 경우만도 

벌써 3차례라 한다.

그리고 지금 4번째 막고 있는 중이라 한다.

그만큼 이놈들은 전쟁을 일삼는 놈들이란 

사실을 알아야 할것이다.


그리고 누구보다 중공놈들은 인류역사가 

시작되었을때부터 인류를 괴롭히는 원흉

이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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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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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릭

2020.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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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S. 패튼

미국의 장군


조지 스미스 패튼(영어George Smith Patton Jr.1885년 11월 11일 ~ 1945년 12월 21일)은 제2차 세계 대전 중인 1943년 ~ 1945년, 북아프리카, 시실리, 프랑스, 독일에서의 전투를 지휘한 미국의 육군 대장이다. 노르망디 상륙 작전에서 큰 활약을 하였다. 프랑스 북부에서 하루에 110km를 진격하기도 하였다. 프랑스와 나치 독일에 걸친 야전군인 제7군을 지휘하였다. 1945년 12월 9일 자동차 사고로 독일 하이델베르크 병원에서 사망하였다. 본래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보다 일찍 부임하였으나 진급심사에서 그에게 밀렸고 또한 유럽 전선에서는 아이젠하워의 지휘를 받게 되었다. 저돌적인 작전과 욕설을 잘 쓰는 것으로 유명하였다.

Picto infobox military.png
조지 S. 패튼
George S. Patton
General George S. Patton wearing his 4-star service cap.jpg
생애1885년 11월 11일 ~ 1945년 12월 21일 (60세)
출생지미국 캘리포니아주 샌게이브리얼
사망지연합군 점령하 독일 하이델베르크
자녀조지 패튼 4세 (아들)
존 K. 워터스 (사위)
복무미국 미국 육군
복무 기간1909-1945
최종 계급Army-USA-OF-09.svg 대장(General)
근무제15기병연대
제8기병연대
제13기병연대
지휘제304전차여단
제5기병연대
제2기갑사단
제2기갑여단
제1기갑군단
제2군단
제7군
제3군
제15군
주요 참전멕시코 혁명
제1차 세계 대전
제2차 세계 대전
서훈 내역수훈 십자장
은성훈장
퍼플 하트
훈공장
레지옹 도뇌르 훈장
George S Patton Signature.svg

생애편집

유년기와 청년기편집

1885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레이크 비니어드'에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스코틀랜드계열로 대대로 군인 집안이었다. 그의 할아버지 '스미스 패튼'은 남북 전쟁 당시 남군 기병대의 대령으로 활약했던 인물이었다. 조지 패튼은 어린 시절부터 할아버지의 영향을 많이받아 성장하였고, 유복하게 지냈다고 한다.

12살 나이에 패튼은 학교에 들어갔다. 학창시절 패튼은 수학을 제외한 나머지 학업 성적은 항상 상위 클래스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가 가장 취약했던 과목인 수학때문에 훗날 웨스트포인트 사관학교 입학시험에서 한번 낙방하게 된다.

웨스트포인트(미국 육군사관학교) 1909년 졸업생이며 동기생으로 제이콥 데버스로버트 에이첼버거윌리엄 후드 심슨존 클리포드 하지스 리델로스 에몬스와 비록 중퇴하기는 했지만 코트니 하지스 등이 있는데 모두 제2차 세계대전 시기에 상급부대 지휘관으로서 활약한 인물들이다.

군생활편집

멕시코 내전과 제1차 세계 대전 활약편집

소위 임관 직후 터진 멕시코 내전에서 토벌군 사령관 존 퍼싱의 부관으로 참전, 판초 비야의 반란군 지휘소를 기습하여 장군 하나를 권총으로 사살한 뒤 자동차 본네트에 매달고 개선하는 기행활약을 벌여 일약 유명해졌다. 그가 말하길 처음으로 실전을 봤을때에 긴장과 겁에 질려 몸이 얼어붙어서 죽기 일보직전이였는데, 갑자기 하늘에 그를 데리러온 기라성같은 조상님들이 노려보는 것을 보고 죽어서 그들을 대하는게 더 무서워져서 용기를 내어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고 한다. 그리고 1917년 제1차 세계대전에 미군 참전이 결정되자 역시 원정군 사령관이 된 퍼싱 장군의 발탁으로 미군 최초의 기갑부대 지휘관이 된다. 이후 그는 철저한 기동전의 신봉자가 된다.

제2차 세계 대전편집

기동전의 신봉자로 알려져있으며 동시대에 활약했던 영국군의 버나드 몽고메리와의 의견 다툼은 늘 말썽거리였다. 둘의 지휘성향은 확연히 달랐는데, 연설에 욕설을 즐겨 쓰며, 불같은 정열을 드러내는 패튼과 달리 몽고메리는 외양에서 두드러지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또한 전투계획자로 불리는 신중한 타입의 몽고메리에 비해서 패튼의 지휘관은 적의 약점을 즉시 공략하여 신속한 기동으로 적을 제압하는 방식이었다. 이 둘은 네덜란드와 벨기에를 진격하여 독일로 진입하려는 시도에서 자주 부딪혔으며, 아이젠하워는 이 둘의 중재자로서 최대한 공평한 기회를 주고자 노력했다. 결국 어느 누구도 소련보다 베를린에 먼저 갈 수 없었다.

아프리카 전선 활약편집

횃불 작전에서 패튼은 프레덴덜 장군과 함께 참전했지만 튀니지에서 시디 부지드 카세린에서 롬멜에 의해 패배를 당해 조롱 받게 되자 3월 6일 로이드 프레덴덜을 2군단장직에서 경질 시키고 패튼은 중장으로 진급과 동시에 2군단장으로 임명되었다. 패튼 장군은 아프리카 전투 직전, 이기지 못하면 한 사람이라도 돌아오지도 말라고 부하들에게 말했고 엘 게타르 전투에서 첫 승리를 거뒀다. 그러나 패튼이 원하던 롬멜과의 대결은 병으로 인해 본국에 가 있었기 때문에 대결이 무산되어 아쉬워 했다. 북아프리카 작전(1942 ~ 1943)을 마친 뒤 시칠리아에 주둔하고 있는 제7군을 지휘했으며, 휘하의 기갑부대를 신속하게 움직여 팔레르모를 점령했다(1943).

제2차 세계 대전편집

1944년 여름 그는 대담한 발상과 거침없는 전진, 그리고 통상적인 군대의 규칙을 무시한 작전을 벌여 휘하의 제3군을 이끌고 북부 프랑스 지역을 순식간에 점령함으로써 군대에 몸담은 이래 최고의 순간을 맞이했다. 8월 1일부터 작전에 들어간 패튼의 기갑부대는 그달말에 마옌·라발·르망·랭스·샬롱을 함락시키고 12월에는 대규모로 벌어진 벌지 전투에서 바스토뉴를 방어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45년 1월말 패튼의 부대는 독일 국경선에 이르렀고 3월 1일 트리어를 점령했다. 그 뒤 10여 일 동안 모젤 강 북쪽 지역을 완전히 연합군의 수중에 넣고 수천 명의 독일군을 포로로 잡았다. 또한 패튼의 군대는 제7군과 합류해 독일군 10만 명을 포로로 잡으며 자르와 팔츠 지방을 점령했다. 이러한 군사적인 성공으로 인해 군당국은 민간인들이 패튼의 행동에 대한 강력한 비판을 제기했음에도 이를 무마하고 넘겨버렸다. 예를 들어 그는 1943년 8월 전투신경증에 걸려 병원으로 후송되어가던 병사를 때린 일이 있었다. 뒤에 그가 공식적으로 사과를 했지만 이 일은 널리 보도되었다. 전후 패튼은 연합국들이 독일에서 벌인 탈나치화 정책에 공공연히 반대하다가 1945년 10월 제3군 사령관직에서 해임되었다.

사망편집

꽤나 세인의 입에 오르내렸던 그는 아우토반을 달리다 만하임 근처에서 자동차 사고를 당했다. 이후 하이델베르크의 병원에서 사망했다.


○●□■◇

베릭

2020.07.28
20:4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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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차 세계 대전

london15.jpg
     독일의 공습으로 폭격된 집앞에 앉은 아이들(영국)

1. 전쟁 준비

히틀러와 무솔리니가 함께
카 퍼레이드를 하는 모습
이념상으로 가까울 뿐 아니라 에디오피아 문제와 스페인 내란 등에 있어 서로 접근하게 된 독일과 이탈리아는 1936년 10월에 협정을 맺고 베를른-로마 추축을 형성하였다. 뒤이어 아시아의 파시스트 국가인 일본은 독일과 방공 협정을 맺고, 다음 해에 이탈리아가 여기에 참가함으로써 추축국의 결합이 이루어졌다.
히틀러와 무솔리니를
한 우표에 담은 모습
독일과 소련 사이에 이루어진
독소 불가침 조약 모습
1939년 8월 23일 '히틀러-스탈린 조약'이라고도 하는 불가침 조약이 체결되었다. 이 조약은 상호 불가침 뿐 아니라 조약국이 제 2국과 전쟁을 하는 경우 다른 조약국은 중립을 지킨다는 내용과 폴란드에서의 양국의 세력권에 관한 것을 담고 있었다. 

 

2. 전쟁의 진행

1) 유럽 대륙을 점령한 독일군

독일군인 바르샤바 시내를
행진하는 모습
히틀러는 부가침 조약 체결 후 1주일 만인 1939년 8월 31일 폴란드에 최후통첩을 보내고, 9월 1일 새벽을 기하여 독일군에게 폴란드 진격을 명령하였다.
9월 3일, 영국과 프랑스는 독일에 대하여 선전포고를 했고, 이로서 제 2차 세계 대전이 시작되었다.
에펠탑 앞에 선 히틀러우세한 공군과 기계화부대를 앞세운 독일은 유럽 대륙에서 승승장구하여1940년 6월에는 프랑스의 2/3가 독일군의 점령 아래 들어갔다.
파리에서 행진하는 독일인을 보며
눈물을 흘리는 프랑스인

2) 영국에 대한 공습

철조망 사이로 본 영국 시계탑1940년 여름, 유럽에서 독일에 저항하는 세력은 영국 뿐이었다. 독일은 영국의 전력을 약화시키기 위하여  그 해 가을에 매일같이 공습을 강행하였으나, 영국 국민은 계속 저항하면서, 군수생산을 증가시켰고, 영국 공군은 독일 공군에 적지 않은 피해를 입혔다.
폭격으로 파괴된 기차역
폭격된 집 앞에 앉은 아이들

3) 아프리카에서의 전쟁

'사막의 여우'라는 별칭을 가진
Erwin Rommel이 이끄는
독일 부대
히틀러는 이탈리아를 돕기 위해 롬멜 휘하의 기계화 정예 부대를 아프리카에 파견하고, 유고슬라비아와 그리스를 공격하여 발칸을 지배하게 되었다. 그래서 1941년 전반기에 히틀러는 소련을 제외한 유럽 대륙의 지배자가 되었다.

4) 독일군의 소련 공격

소련을 공격하는 독일군(1941.6.22)히틀러는 1941년 6월에 소련에 대해 공격을 시작했다. 전쟁이 장기화되고 전선이 크게 확대되면서 독인은 소련 내의 물자, 특히 우크라이나의 식량과 코카서스의 유전 등을 확보하고 싶었다.
리투아니아 지역에서 유대인을 처형하는 모습
우크라이나에서 유대인 처형 모습
라트비아에서 처형되고 있는 소련 민간인

5) 미국의 참전

처칠과 루스벨트가 
대서양 회담을 위해 만난 모습
1941년 8월 루스벨트는 처칠과 대서양상의 영국 전함에서 회합을 갖고 전후의 평화수립의 원칙을 밝힌 대서양 헌장을 발표하였다.
일본의 하와이 진주만 공격으로
미국 해군 전함이 폭파된 모습
일본은 1941년 12월 7일(미국 시간) 하와이의 진주만을 기습공격했다. 이는 미국을 제 2차 대전에 참전시키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미국은 일본과 전쟁ㅇ르 선언했고, 3국동맹에 기초해 독일과 이탈리아가 미국에 선전포고를 함으로써 전쟁은 문자 그대로 세계대전이 되었다.
루즈벨트가 일본과의 전쟁선언에
서명하고 있다.
미국 공군기가 독일군을
공격하는 모습(1942년 8월)

6) 연합군의 반격

영국의몽고메리 장군이 북아프리카에서 탱크로 군사적전을 지휘하는 모습(1942년 11월)1942년 초여름부터 전세는 전환기를 맞이하였다. 아프리카전선에서는 몽고메리 장국이 지휘하는 부대가 롬멜의 전차부대에 큰 손상을 입혔고, 마침내 43년 5월 롬멜 부대의 항복을 받았다. 이어 연합군은 시실리섬에 상륙하여 9월에는 이탈리아 본토로 진입하였다. 이에 이탈리아의 고급장성과 왕의 측근이 제휴하여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정권을 무너뜨렸다. 
영국 탱크부대원들이 트리폴리를 점령한 뒤 해안에 있는 모습
시실리섬에 착륙한 연합군(1943년 7월)
이탈리아를 공격하는 미국 육군(1944년 1월)
제 2차대전 연합군 진군을 표시한 지도

7) 카사블랑카 회담/ 테헤란 회담

카사블랑카회담에서 만난 루즈벨트와 처칠1943년 영국과 미국, 프랑스 수뇌들은 전쟁의 목적은 "독일, 이탈리아, 일본의 무조건적인 항복"이라는 점을 명확히 하였다.
카사블랑카회담에 참석한 프랑스의 Henri Giraud
장군, 루즈벨트, 드골 장군, 처칠이 포즈를 취했다.

이란의 테헤란에 모인 스탈린, 루즈벨트, 처칠

1943년 12월 미국, 영국, 소련의 수뇌가 테헤란에서 회담을 갖고 제 2전선의 형성과 전후의 국제안전보장에 관한 협의를 하였다.

8) 노르만디 상륙작전

아이젠하워가 영국에서 대원들에게 노르만디 상륙작전을
내리고 있다. 작전명은 "Full Victory-Nothing else"
연합군은 1944년 6월 6일 아이젠하워 장군을 총사령관으로 하여 역사상 최대 규모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감행하였다. 여기서 성공한 연합군은 계속 진군하여 파리를 회복하였다.
상륙작전을 감행하는 연합군 1
상륙작전을 감행하는 연합군 2
작전 과정에서 쓰러진 전후를 애도하는 라이플 총 십자

9) 독일의 패퇴

10) 얄타회담

얄타회담 모습

1945년 2월 루즈벨트, 처칠, 스탈린은 크리미아 반도의 얄타에서 회담을 갖고 독일의 모조건 항복을 확인하고 전후처리문제를 논의하였다.

11) 독일과 이탈리아의 항복

독일군 장성이던 Alfred Jodl이 무조건 항복 문서에 사인하는 모습(1945년 5월 7일)1945년 4월 하순, 무솔리니는 이탈리아 유격대에게 체포되어 살해되었다. 5월 1일 소련군이 베를린에 돌입하였고, 히틀러는 그 전날 자살하였다. 5월 7일 독일군 최고 사령부는 연합군에게 무조건 항복하고, 9일에는 소련군에게도 항복하면서 유럽에서의 전쟁은 끝났다.
런던에서 미국 병사들이 독일 항복을 기뻐하는 모습(1945년 5월 8일)
거리에 널려진 무솔리니와 무솔리니 처의 시신

12) 일본의 항복

3. 전쟁 이후

 

약탈과 학살의 현장

1)아이젠하워가 지하소금광산에 나찌들이 숨겨놓은 미술품들을 돌아보고 있다.
2)
지하소금광산에 숨겨 놓은 독일 재산: 나찌는 제국은행의 재산, 전쟁 약탈품, 베를린박물관 그림들을 베를린에서 Merkers에 있는 소금광산으로 옮겨 놓았다.
3)
부켄발트 수용소에 있던 시체들을 실은 트럭: 기아와 폭행으로 이 수용소에서만도 6천여명이 사망했다.
4)연합군이 부켄발트를 점령한 직후 강제수용소에 있던 사람들을 촬영한 모습
 (좀 더 자세한 내용은 파시즘 참조)
 

승 리의  기 쁨

5)뉴욕 타임스 광장에서 일본의 항복을 기념하며 키스를 나누는 모습
 

전 범  재 판

6)누렘베르그 전범 재판정에 선 히틀러 제3제국 고위 관리들

 4. 포스터(미국)

입대를 촉구하는 포스터

1)"미국 해군에 동참"
여성의 취업을 촉구하는 포스터
2)"승리가 당신의 손을 기다리고 있다." 로얄 타이프라이터 회사 제작
3)"그리워한다고 일찍 돌아오지 않는다. 직업을 갖자"
후방도 안전하지 않음을 경고하는 포스터
4)"전쟁이 이들(아이들)에게까지 닿지 않기를"
생산 장려를 위한 포스터
5)"중단없는 생산으로 추축국을 물리치자"
6)"좀 더 많은 생산을"
국민의 협력과 절약을 강조하는 포스터
7)"뭉치면 이긴다"
8)"혼자 타는 것은 히틀러와 함께 타는 것"
1941년 루즈벨트가 했던 전쟁의 이유에 대한 연설을 토대로 한 포스터
9)전쟁은 언론의 자유를 위한 것
10)전쟁은 종교의 자유를 위한 것
11)전쟁은 부족함이 없는 사회를 위한 것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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