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살아가면서, 여러분들은 어린 시절부터 판단(의사결정)을 해야 한다고 배우게 됩니다. 따라서 감정이 선과 악,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으로 나누어지게 됨으로써, 분노와 두려움 그리고 슬픔을 피할 수 없게 됩니다. 어린 아이는 이러한 감정들을 아주 자연스럽게 체험하게 되며, 따라서 자연스러운 리듬에 따라 이러한 감정들이 번갈아 일어나게 됩니다. 아이에게 감정을 자제하라고 하면, 감정의 자연스러운 흐름에 대한 그 아이의 시정(是正)은 겉으로만(피상적으로만) 이루어지게 되며, 아이의 감정은 “좋은 것”과 “나쁜 것”이라는 범주들로 부자연스럽게 나누어지게 됩니다.

아이는 자신의 “나쁜” 감정들을 더 이상 신뢰하지 않게 되며, 따라서 아이가 화를 내거나, 감정이 격해지면, 아이는 이러한 감정들을 억누르려고 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면, 어른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만약 아이가 심한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면, 아이는 두려움을 몰아내고, 침착함을 유지하려고 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아이가 지닌 감수성의 일부가 닫힌 문 뒤로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성장함에 따라, 아이는 자기 자신과 멀어지게 되고, 자신의 심리 속에 금기시되는 영역이 존재한다고 믿게 되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감정 속에 숨어 있는 독창성과 자연스러움 그리고 생명력은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으며, 그 사람은 감정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 있는 메시지를 대개는 인식하지 못하게 됩니다.      


감정은 여러분의 내면으로 들어가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말해주고 있으며, 그러한 감정들은 여러분이 치유되는데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중요한 실마리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한 가지 사례로서, 강한 분노가 내면에서 저절로 일어날 때, 이것은 뭔가가 여러분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며, 그러한 경우, 여러분이 보이는 반응, 즉 강한 분노는 그러한 분노를 일으키는 사건과는 대개 맞지(어울리지) 않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단지 약간 짜증을 낼 정도의 일에 여러분은 화가 날 수도 있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그러한 감정은 더 깊은 분노, 즉 외적인 자극과는 관계없는 분노가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해결되지 않은 고통, 즉 치유를 필요로 하는 고통이 내면에 존재하고 있다는 중요한 정보를 감정이 제공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이해해야만, 이와 관련된 뭔가를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분노나 큰 슬픔과 같은 어려운 감정들이 관련되어 있다 하더라도, 자신의 감정을 관찰하고, 그러한 감정들을 자신을 이해(self-knowledge)하기 위한 도구로 인식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되고, 의욕을 고취시킬 수가 있습니다. 그러한 감정에 휩싸이게 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될 때조차도,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것을 솔직하게 살펴보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여러분이 성숙해지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하지만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인간사회에서 종종 일어나고 있는 것은 감정들이 부끄럽거나, 심지어 혐오스러운 것으로 비칠 수가 있으므로, 그러한 감정들은 통제되거나, 억눌려져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됨으로써, 여러분은 자신의 아주 본질적이고 강력한 부분과 소통할 수 없게 되고, 편안함도 느낄 수 없게 됩니다. 깊은 감정들, 즉 여러분이 실제로 느끼는 것은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있는 행위들로 인해 대개는 가려(숨겨)지게 됩니다.

어떠한 위기상황이 발생하게 되면, 여러분이 지닌 모든 확신들과 방어기제(defense mechanisms)들이 떨어져나가게 됨으로써, 여러분은 폭력적인 감정들, 예를 들면 두려움, 놀람, 공황, 큰 슬픔, 분노, 저항감 혹은 절망감과 같은 감정들과 마주하게 됩니다. 이러한 부정적인 감정들에 대해, 여러분이 배웠던 반응은 “이것은 좋지 않아; 이것을 멈추지 않으면 안 돼; 이것은 용납되지 않아”라는 것이었습니다. 불행히도, 이러한 반응들은 자신의 고통을 더욱 심화시킬 뿐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 스스로가 감정과 함께 일할 수 있는 가능성을 부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강한 불안감과 슬픔 혹은 두려움은 “나쁜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느낌들은 여러분의 삶 속에서 현재 일어나고 있는 것에 대한 자연스러운 인간적인 반응들입니다. 만약 이러한 반응들을 자기 자신을 이해할 수 있는 표현으로 받아들인다면, 그 자체로 내적인 치유가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며, 여러분도 원래의 힘을 되찾게 될 것입니다. 감정이 상하고, 실망감을 느낄 때, 다시 말해 아주 슬프거나, 겁을 먹고 있을 때, 만약 자기 자신에 대해 느끼는 참된 느낌을 받아들인다면, 여러분은 자기 자신을 위해 거기에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그것이 자기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도망을 가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은 그 속에 머물러 있으면서, 두려운 느낌에게 다가서고 있는 것입니다.

상징적으로 말하자면, 한쪽 팔로 자기 자신을 감싸는 것이며, 이런 식으로 자기 자신에게 “나는 네가 어떻게 느끼는지를 그리고 네가 이런 식으로 반응하는 이유를 아주 잘 이해하고 있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자신의 감정들에게 사랑스럽게 다가가는 것이 마음을 가라앉히고, 불안감을 해소해주는 것이며, 이렇게 함으로써 여러분은 내면 깊숙한 곳에 어떠한 힘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며, 부모가 아이에게 하듯이, 자신의 강한 감정들을 받아들여, 이러한 감정들을 내면의 존재하는 힘과 결부시킬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은 많은 부모들이 이러한 접근방식을 받아들이고 있지만, 이것이 여러분이 어렸을 때 배웠던 방식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감정을 억누르거나, 그러한 감정들을 무시하려고 할 때, 여러분은 자기 자신을 포기하고 있는 것이며, 이로 인해, 자기 자신이 속수무책으로 부정적인 소용돌이(vortex) 속으로 휘말리고 있다고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대다수가 젊은 시절에 배웠던 것들은 영혼의 어두운 밤을 통과해 가는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여기에 변화를 가져올 수가 있습니다.


감정적으로, 여러분이 뭔가에 의해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때, 자신의 감정에 대해, 여러분이 두려움과 망설임 혹은 판단을 가지고 반응하는 것이 아닌지 관찰하고, 살펴보기 바랍니다. 그 뭔가가 여러분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숨기거나, 변명하려고 하나요? 감정은 여러분에게 전해주고 싶은 뭔가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깨닫기 바랍니다. 자신의 감정을 즉시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성향은 여러분이 지금까지 배웠던 방식이며, 그렇게 하는 것은 본래의 자기 본성과도 맞지 않는 거라는 사실을 인정하기를 바랍니다. 감정이 최대로 표현될 수 있도록 놓아주고, 사고(思考)에는 감정이 수반되며, 감정은 신체의 특정한 부위들에 긴장감을 끌어올리며, 또한 여러분의 에너지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인식하기 바랍니다.

거대한 파도가 해변으로 밀려오듯이, 그러한 감정이 펼쳐지도록 하세요. 그리고 연민어린 냉철한 눈으로, 감정의 움직임에 따르세요. 감정에 저항하지 말고, 감정이 여러분의 의식 속에 나타날 수 있게 하고, 그러한 감정을 충분히 관찰하세요. 그러면, 어떠한 변화가 내면에서 일어나는 것을 감지하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제는 여러분이 관찰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영혼의 관점에서 보면, 감정이 여러분에게 충분히 드러날 때, 비로소 여러분의 내면에서 뭔가가 깨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영혼은 감정을 살펴보고, 그 감정을 이해로 감싸게 됩니다. 다시 말해, 영혼은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언제나 허용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영혼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될 때, 여러분의 고통도 줄어들게 됩니다. 두려움과 슬픔 혹은 절망감이 연민의 장(場)으로 둘러싸이게 되는 것입니다. 영혼은 여러분의 삶에서 어떠한 시험(challenge : 도전)이 일어나는 이유를 알 수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여러분이 마음으로는 이해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영혼은 여러분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줄 수가 있습니다. 이와 같은 기본적인 자신감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다시 말해, 더 큰 관점, 즉 여러분이 직면하고 있는 시험의 배경을 마음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대개는 시기상조입니다.


여러분이 느끼는 행복감(well-being) 및 영혼과 연결될 수 있는 능력에는 대단히 중요한 뭔가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위기의 상황은 대개 우연히 찾아오는 것처럼 보이게 됩니다. 여러분이 깨닫지 못하고 있는 부정적인 믿음이나, 느낌들이 존재하고 있으며, 이러한 믿음과 느낌들은 여러분과 영혼(태양) 사이에 먹구름을 만들어내게 됩니다. 이를테면, 위기상황이란 이와 같은 먹구름, 즉 사각지대(blind spot)를 돋보기로 들여다보도록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지금까지 자기 자신을 정말로 잘 돌보고, 자신에게 필요한 것들을 지키려고 한 적이 없었으며, 기본적인 자존감마저 사라지게 되었다고 합시다. 이제, 말은 친구라고 주장하지만, 결국에는 뻔뻔스럽게 여러분을 속이고 배신하는 어떤 사람과 여러분이 관계를 맺게 된다고 합시다. 여러분은 분노와 비통함 그리고 슬픔이 혼합된 무력감에 휩싸이게 됨으로써,  위기상황에 빠지게 되며, 이 시점에서 여러분에게는 두 가지의 가능성이 존재하게 됩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자신의 감정에 압도당하게 되든지, 아니면 위기상황을 이용하여, 우선 결여되었던 자존감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감정에 압도되어, “이런 일이 일어나서는 절대로 안 돼”라는 생각에 집착하게 되면, 여러분은 고통의 원인이 외부에서 오는 것이라고 여기게 됩니다. 다시 말해, 여러분의 친구가 가해자이며, 자신은 피해자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느 정도는 사실이지만, 오직 그러한 수준에서만 살아간다면, 여러분은 수렁에 빠져, 더욱 억울해 하며, 환멸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감정은 자기 자신을 이해하기 위한 도구가 전혀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방법만 알고 있었다면, 그러한 감정들은 제거하고 싶어 했을 부정적인 것들에 불과한 것입니다.



다른 옵션, 즉 용기와 결심을 필요로 하는 다른 옵션은 일어난 일을 받아들이고, 여러분이 무시당했으며, 상처 받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감정이 자신을 통해 흐르게 하고, 그러한 감정들을 직시할 때, 자신이 그러한 감정들 보다 더 큰 존재이며, 그러한 감정들과는 완전히 다른, 별개의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여러분은 그러한 감정들을 관찰하는 존재(관찰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 관찰자는 말이 없고, 중립적이며, 그러한 감정을 유발시켰던 타인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단지 자신에게만 관심을 집중하게 됩니다.


관찰자로서, 여러분은 남들이 자신을 충분히 존중하지 않았으며, 여러분이 그들과 함께 하면서, 자신의 의견이나 소망을 표현하는 것을 두려워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여러 신호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될 수도 있습니다. 또한 자기 자신의 욕구가 그들의 욕구보다 덜 중요했었다는 것도 깨닫게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자신의 내면 깊숙한 곳에 이미 존재하고 있던 무가치하다는 느낌이 타인의 행동으로 인해 백일하에(밖으로) 드러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여러분의 내면에 무가치하다는 느낌이 잠자고 있었기 때문에, 그 사람의 행동이 여러분에게 깊은 영향을 미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상황을 바라봄으로써, 배신당했던 외적인 사건을 자기 자신에게 의미 있는 메시지로 바꿀 수가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자신이 지니고 있던 어둠을 인정하고, 무가치하다는 생각을 버리며, 자기 자신을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위기의 상황으로 인해, 여러분은 자신과 관계되는 새로운 방식을 접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자기 스스로를 별 볼일 없고, 하찮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타인들과의 교우관계에서 여러분은 보다 더 자의식적(self-aware)이 되고, 보다 더 많은 존중심과 품위를 가지고 자기 자신을 대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 자기 자신에 대해 가지고 있는 존중심을 자신에게 되돌려주는 삶 속으로, 여러분은 사람들을 끌어당기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