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러분의 누이인, 막달라 마리아입니다. 나는 여러분의 다정한 친구로서, 여러분들 바로 옆에 있습니다. 나는 여러분보다 높은 위치에 있지 않으며, 여러분이 내면에서 알고 있는 존재입니다. 잠시, 우리가 서로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느껴보세요. 우리는 하나이며, 한 집안의 일원입니다.


나 역시도 사랑하는 예수아의 친구이자, 연인으로서의 삶 속에서, 그리고 지구에서, 인간이 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속속들이 알고, 탐구해 왔으며, 나는 당시에 나를 사로잡고 있었으며, 오늘날까지도 나에게 영감을 불어넣어 주고 있는 밝은 빛(bright light)에 의해 감동을 받았습니다. 나는 지금까지도 빛과 어둠의 양극단에 대해 배우고 있습니다. 그러한 양극단들은 하나의 세트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말하자면, 빛과 어둠은 서로(상대방)를 밀어주는 추진력입니다.


☞ bright light(밝은 빛) : 죽음을 경험해 본 사람들이 봤다는 강렬하고 눈을 뗄 수 없는 불빛으로, 그 불빛을 보면 그쪽으로 향하게 된다고 함


비록 빛과 어둠이 서로 반대되는 느낌을 떠올리게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둘은 보이지 않게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 한 쪽이 없으면, 다른 한쪽은 기능을 제대로 발휘할 수가 없습니다. 빛의 부재(빛이 존재하지 않는 것)를 체험한 사람과 어둠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들만이 빛이 지닌 아름다움과 치유력을 음미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어둡고 추운 밤에서 빠져나올 때보다, 빛을 더 잘 느낄 수 있고, 원래의 상태로 회복시켜주는 것은 결코 존재하지 않습니다. 순수하고 신선한 아침의 햇살로 세상을 깨끗하게 씻어내는, 아침의 첫 햇빛(the first rays of the sun)보다 더 멋진 것은 없습니다. 뚜렷한 차이(contrast : 대비)가 역동성, 즉 움직임과 성장 그리고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네, 맞습니다, 어둠도 우리의 삶 속에서 하는 역할이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으로서, 여러분은 종종 어둠을 빛에 반대되는 것, 즉 변화와 성장을 촉진시키는 추진력이 아니라, 덫이나 구렁텅이로 느끼고 있습니다. 그러한 구덩이 속에 빠지는 것이 마치 빛과 단절되는 것처럼 보이게 됨으로써, 여러분은 절망하게 되고, 가망이 없다고 느끼게 됩니다.


여러분들 모두는 빛과 단절되어, 삶의 의미와 목적이 없어지는 느낌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잘 알고 있습니다. 만약 그러한 느낌이 지속되어, 희망과 방향감각을 완전히 상실하게 된다면, 그것이 여러분에게는 마치 죽는 것처럼 느껴질 수가 있습니다. 사실, 육체적인 죽음과 같은 것은 전혀 존재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은 몸이 죽자마자, 또 다른 몸으로 살아가게 되며, 변형이 일어나는 도중에도, 그리고 그 이후에도 여러분이 생생하게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육체적으로가 아니라, 감정적으로 꼼짝달싹하지 못하게 됨으로써, 숨이 막히는 것처럼 느껴질 때, 일종의 감정적인 죽음은 일어날 수가 있습니다.


느낌은 더 이상 자연스럽게 흐르지 못하게 되고, 마음은 부정적인 상태를 똑같이 반복적으로 나타내게 되며, 자기 자신으로부터 멀어지게 되고, 심한 피로감을 느끼게 됩니다. 우울증으로 인해 충격을 받게 될 때,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게 됩니다. 여러분은 본연의 자신인, 살아 있는 빛과 단절되고, 모든 내적인 움직임도 멈추게 됩니다. 따라서 내면적으로는 죽었다고 느끼게 되며, 살아 있지 않다"는 이러한 느낌이 바로 인간이 체험할 수 있는 가장 고통스러운 상태입니다.


잠시, 나와 함께 여행을 떠나 봅시다. 이제 나와 함께, 그러한 우울한 상태 속으로 내려가, 열린 마음으로 호기심을 가지고, 그러한 상태를 살펴보도록 합시다. 만약 누군가 모든 희망을 잃고, 움츠려들어, 내면에서 일어나는 어떠한 느낌에도 대항할 힘이 없다고 느낀다면, 어떻게 될까요? 일반적으로, 이러한 반응은 파괴적인 외적인 사건들로 인해 촉발됩니다, 다시 말해, 그러한 반응은 어느 개인이 자신의 준거의 틀(삶의 기준) 속에서 확인할 수 없고, 또한 개인의 삶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들이 불확실해지게 하는 사건들로 인해 생겨나게 됩니다. 그러한 사건은 누군가의 죽음이 목전에 있거나, 자기 자신이 병이 들거나, 직업을 잃게 되거나, 아니면 관계가 깨어지는 것과 같은 큰일이 될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사건들은 사람들에게 깊은 영향을 미치게 되고, 사람들은 심연(深淵 : 깊은 구덩이, 나락)의 가장자리로 데려갈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어둠은 이따금씩 외적인 뚜렷한 이유도 없이, 내면에서 나타날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예전에 영혼의 기억 속에 저장해놓았던 오래된 감정적인 짐(부담)들이 표면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전의 삶들에서 유래하는 고통스러운 체험들이 어쩌면 여러분의 내면 깊숙한 곳에서 생겨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어두운 느낌들과 두려움 그리고 의심들을, 여러분은 반드시 처리해야 합니다. 결핍과 외로움 그리고 패배했다는 뿌리 깊은 체험이 여러분의 심리 속으로 아무런 이유도 없이 들어올 수가 있습니다. 그러한 체험들은 여러분에게 일어나는 외적인 사건만큼, 여러분이 발을 헛디디도록(실족하게) 만들 수가 있습니다.


누군가가 우울증에 걸려, “영혼의 어두운 밤”을 보내게 될 때, 거기에는, 감정에 휩싸이게 됨으로써, 어떤 감정에도 대처할 수 없게 되는 체험이 언제나 따라다니게(수반) 됩니다. 고통스럽고 무거운 감정들을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아주 심하게 겪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감정들에 졌다거나, 아니면 패배했다고 느껴지게 됩니다. 따라서 깊은 무력감으로 인해, 마음의 문을 닫게 됩니다. 그러한 감정들과 대면하지 않고, 외면하게 될 때, 여러분은 갇히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한 감정들을 흐르고 싶어 합니다. 다시 말해, 큰 파도가 해변으로 밀려오는 것처럼, 감정은 본질적으로 앞을 향해 계속 나아가고자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으므로, 여러분은 그러한 움직임을 따라 함께 가려고 하지 않고, 밀려오는 이러한 감정들로부터 물러서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여러분은 댐, 즉 장애물을 쌓고 있으며, “나는 이것을 수습할 수 없어, 나는 이것을 원치 않아. 이것이 다 없어졌으면, 좋겠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대개는 순전한 무력감에서 오는 여러분의 반응이 우울증을 만들어내게 되며, 이러한 우울증은 일종의 마비(무감각한) 상태로, 삶으로부터 여러분을 차단시키게 됩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러한 상황은 견딜 수 없게 되며, 더 이상 살고 싶어 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세속적인 관점에서 보면, 삶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힘들기 때문에, 죽고 싶어 지게 되는 것입니다. 영혼의 관점에서 보면, 여러분은 이미 죽어 있는 것이며(철저하게 갇혀 있다는 의미에서), 이러한 상황을 끝낼 수만 있으면, 모든 것을 다하고 싶을 정도로, 그것은 참을 수가 없는 체험입니다. 죽고 싶어 하는 욕망은 본질적으로, 변화에 대한 열망, 즉 다시 살고자 하는 열망입니다. 자살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죽음이 아니라, 삶에 대한 깊은 열망을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내면적으로 죽어 있는 이러한 느낌이 사람들을 극단적인 절망감으로 내몰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살고자 하는 강한 욕구가 육체적인 삶을 끝내도록 이끌고 있는 것입니다.


우울증을 느끼게 될 때, 그 내면에는 깊은 저항감뿐만 아니라, 심각한 취약성이 혼재되어 있습니다. 우울증은 여러분을 집어삼킬 듯이 위협하는 엄청난 감정의 힘에 대항하여, 자기 자신을 지키려고 하는 수단입니다. 그러한 감정들이 자신을 죽일 거라고 생각하므로, 여러분은 무력감 속에서 자기 주위에 단단한 외피(껍질)을 만들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어떤 것도 원치 않거나, 어떤 것도 느낄 수 없는 고치(보호막) 속에 자기 자신을 에워싸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더 이상 여기에 있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이 아니며, 속담에 나오는 것처럼, 여러분은 마치 모래 속에 머리를 처박고 있는 타조와 같으며, 숨은 막히지만, 그것이 그러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출구인 것처럼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머리를 모래 밖으로 더 이상 빼낼 수가 없게 됩니다. 다시 말해, 우울증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삶으로부터, 그리고 모든 느낌들로부터 차단됨으로써, 여러분은 더 이상 상황을 호전시키고, 변화를 가져올 수 없게 됩니다. 다시 말해, 여러분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는 감정들에게 "좋아(yes)"라고 말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우울증이 극에 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두려움과 절망감, 슬픔 그리고 외로움이라는 감정들을 받아들일 수 없게 되거나, 그러한 것들을 타인들과 함께 나눌 수 없게 되며, 또 다른 한편으로는 감정을 느끼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이 괴로울 정도로 고통스럽다는 것을 알게 되고,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그것은 일종의 죽음이고, 살아 있는 자신의 본성을 철저하게 부정하는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또다시 느끼고 싶어 하게 됩니다. 느끼지 않는 고통이 감정을 느끼는 고통보다 더 커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그것이 구원이며, 전환점입니다. 느끼는 것을 거부하고, 계속해서 “아니야(No), 나는 느낄 수 없으며, 느끼고 싶지도 않아. 나는 죽고 싶어. 사라지고 싶어.”라고 말하는 것은 결국 내면을 텅 비게 하고, 공허하게 만듦으로써. 그러한 상태를 더 이상 유지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영혼의 관점에서 보면, 일어나는 현상은 삶이 이제 더 강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삶을 무한정 방해할(붙잡아둘)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생명력을 오랫동안 강하게 억누르게 되면, 그 생명력은 반대되는 힘을 만들어내게 되며, 그 힘은 언젠가는 분출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해변으로 밀려나가려는 조파(潮波 : 조수의 간만으로 일어나는 큰 파도)의 힘을 영원히 억누를 수는 없습니다. 어느 시점이 되면, 의식적으로 인식하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내면에서 “좋아(yes)”라고 말하게 되는 것입니다. 삶 속에는, 어떤 것도 멈춰 있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삶에 대한 열망은 막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최고조에 도달하게 될 때, 어떠한 변화, 즉 획기적인 도약을 만들어내는 사건들이 삶 속에서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