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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부자와 나사로 ( 16:19-31 )

탕자의 비유가 우리 앞에 복음의 은혜로 보여 주려고 하였다면 이 비유는 우리에게 장차 올 진노를 나타내어 우리를 일깨우고자 의도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우리로 가난과 고난을 감내하게 하고, 세상과 호색에 빠질 유혹에 대항하여 우리를 무장시키고자 하는 두 가지 목적이 있다. 지금 이 비유는 이 두 가지 큰 목적은 매우 잘 달성하고 있다.

이 비유는 씨 뿌리는 자의 비유나 겨자 씨 비유에서 처럼 영적인 일을 세상적인 사물에서 빌어와 그 유사성을 설명하는 그리스도의 다른 비유들과는 같지 않다. 


그러나 본문의 영적인 일 그 자체는 현세와 내세에 있어서 선악의 다른 상태에 대한 서술이나 묘사 가운데 나타나고 있다.


가난하고 경건한 사람은 불행에서 벗어나 죽어서 하늘의 행복과 기쁨을 누린다. 호화롭게 살면서도 가난한 자에게 냉혹과 부유한 향락주의자들은 죽어 견디기 어려운 고통의 상태로 들어간다고 하는 것은 사실상 언제나 진리인 것이다. 


이것은 하나의 비유인가? 그러면 여기에 있는 비유의 내용은 무엇인가? 우리 구세주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내세를 알게 하기 위해서 오셨는데, 그는 본문에서 그 일을 하고 계시다.

1. 서로 다른 두 신분(19-21)

이 세상에는 악한 부자와 경건한 빈자라는 서로 다른 두 신분이 있다. 옛날 유대인들은 번영하는 것은 선한 사람이라는 표시 가운데 하나라고 여길 정도이었으므로, 가난한 자에게 어떤 호의를 베푸는 일은 거의 있을 수 없었다. 그리스도께서는 본문에 충분히 묘사되어 있는 것처럼 모든 경우에 있어서 이러한 잘못을 시정해 주시고자 노력하신다.

(1) 악한 인간, 즉 행복의 절정에서 영원히 불행에 있을 사람(19절) :

한 부자가 있어. 라틴어에서는 흔히 어떤 부자라고 부른다. 그러나 부자는 가난한 자의 이름이 주어진 것처럼 나타나 있지 않다. 이제 이 부자에 대하여 살펴 보자.

1) 그는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었는데, 그것이 그가 다닐 때의 행장이었다. 그는 쾌락을 위하여 고운 베옷을 입었으며, 매일 세탁하였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또한 밤에 입는 옷과 낮에 입는 옷이 있었으며, 신분을 나타내는 자색 옷이 있었다. 그는 밖에 나갈 때는 반드시 매우 화려하게 차려입었다.

2) 그는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하였다'.

그의 식탁에는 자연과 인력이 제공할 수 있는 각종 진귀한 음식들로 가득 차려졌으며, 보조 식탁에는 요리 접시로 가득 쌓여 있고, 비싼 정복을 입은 종들은 식탁에서 시중을 들었다. 그리고 식탁에는 손님을 초대하였는데, 그는 그것이 그 자리를 빛내리라고 생각하였던 것이 틀림없다. 

그런데 이 모든 것에 무슨 악한 것이 있는가? 비록 어떤 사람이 재산이 넉넉하여 부유하고,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으며, 또한 풍성한 식탁을 먹게 된다고 해도 아무런 죄가 아니다.

또한 그는 자기 재산을 사기, 압제, 또는 착취로 모았다는 말도 없다. 그리고 그가 술 취했다거나 다른 사람을 술 취하게 했다는 말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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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그리스도께서는 이 말씀을 하심으로 사람이 많은 부를 누릴 수 있으나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 아래 영원히 놓여 멸망할 것이라는 사실을 나타내시려고 했을 것이다. 


우리는 사람들이 잘사는 형편을 통해 하나님께서 물질을 주시는 것만큼 그들을 사랑하시는 것인지, 아니면 그들에게 하나님이 물질을 주시므로 그들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인지 추리할 수 없다.



② 풍요와 쾌락은 매우 위험스럽다. 차라리 이 사람은 많은 재산과 즐거움이 없었더라면 행복하였을 것이다.

③ 육체의 방종, 그리고 육체의 안락과 쾌락은 많은 사람을 파멸시킨다. 좋은 고기를 먹고 좋은 의복을 입는 것이 좋은 것이긴 하다.

그러나 그것들은 종종 교만과 사치의 재료와 연료가 되어 우리에게 죄를 범하게 한다


④우리 자신과 친구들을 위해 잔치를 베풀면서 동시에 가난한 자의 슬픔과 고통을 잊어 버린다면 하나님께 매우 진노를 살 것이며, 그 영혼에게 저주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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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말은 '영원한 행복'으로, 복(福)과 장수(長壽)를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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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여기에 불행과 고난 가운데서도 경건한 한 사람이 있다(20절).

나사로라 이름한 한 거지가. 이 가난한 사람은 이 세상에서 있을 수 있는 한에 있어서는 최악의 궁지에 몰려 있었다.

1) 그의 몸은 욥처럼 '헌데' 투성이었다.

몸이 병들고 쇠약한 것도 큰 고통이지만 헌데는 환자에게 훨씬 더 큰 고통을 줍며, 그의 주위 사람들에게 훨씬 더 혐오감을 준다.

2) 그는 먹고 살기 위해 구걸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스스로 나다닐 수 없을 정도로 헌데 투성이요 절름발이였지만 몇몇 동정어린 손길과 다른 이들의 도움을 받아서 부자의 문간에 놓여졌다. 


돈으로 가난한 자들을 도울 수 없는 자들은 수고로 그들을 도와야 한다. 돈 한푼을 그들에게 빌려줄 수 없는 자들은 수고로 그들을 도와야 한다. 돈 한 푼을 그들에게 빌려줄 수 없는 자들은 한 손이라도 빌려주어야 한다. 고난 중에 처한 나사로는 스스로 생계를 이어갈 만한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었다.

① 그는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것에 기대를 걸었다.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21절). 그는 마땅히 부자의 식탁에서 한 그릇의 음식이라도 대접받을 수 있었으나 그것을 바라지 않았다.


다만 그는 그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로, 아니 부자의 개가 먹고 남긴 것들일지라도 고마워했던 것이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설명한다.

첫째, 가난한 나사로의 곤경과 성품이 어떠한가를 보여 준다. 그는 가난하였지만 마음이 가난하였다. 그는 안빈낙도하는 자였다. 


그는 불평하고 울부짖으면서 부자의 문에 누워있었던 것이 아니라 조용히 그리고 온순하게 부스러기로 배불리려 하였다. 


본문에서 진노의 자녀이며 지옥의 상속자 된 자는 집 안에 앉아서 호화로이 지내고 있다. 반면에 사랑의 자녀이며 천국의 상속자 된 자는 문가에 누어서 굶주림 때문에 죽어가고 있다. 사람들의 영적인 상태가 그때의 외적인 조건에 의해서 판단되어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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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나사로에 대한 부자의 태도가 어떠했는가를 보여 준다. 우리는 부자가 나사로를 학대하였다는 소리를 듣지는 못했지만 본문에서 그를 무시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본문은 그가 참으로 자비를 베풀어야 할 대상이며, 매우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 자체로 말해 주고 있었다. 


사소한 일이라도 나사에게는 큰 친절이 될 수 있었으나 그는 나사로에게 아무런 관심도 두지 않았고 거기에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 


가난한 자를 압제하거나 유린하지 않는 것으로 충분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가난한 자들을 돕고 위로하지 않는다면 우리 주님의 소유에 대하여 불충실한 청지기로 밝혀질 것이다. 


가장 무서운 운명에 놓이게 되는 이유는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라는 사실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알고 믿는다고 말하는 부자들이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의 궁핍과 불행에 어떻게 그렇게 무관심할 수 있을까 놀라운 일이다.



② 그가 개로부터 받은 대우 :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21절). 그 부자는 한 떼의 사냥개, 아니면 다른 종류의 개들을 기르고 있었다. 그리고 이 개들은 충분히 배부르도록 먹을 수 있었다. 그때 가난한 나사로는 연명할 수 있을 만큼도 먹을 수 없었다. 그들의 개는 먹이고 가난한 자는 소홀히 한 사람들은 내세에 답변해야 할 것이 많을 것이다.

그들의 개와 말을 배불리 먹이면서 가난한 이웃 가족들을 굶주리게 하는 자들은 하나님께 죄를 범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인륜을 모욕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개들이 와서 불쌍한 나사로의 헌데를 핥았다


그것은 다음과 같이 이해할 수 있다. 첫째, 그의 불행을 악화시킨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의 헌데는 피투성이였다. 그것이 개로 하여금 그 헌데를 핥도록 유혹했다. 그 개들은 주인처럼 인간의 피덩이를 즐겨 먹으면서 호화롭게 먹은 것으로 생각했다.


또한, 둘째로 얼마는 그의 불행에 대해서 그를 위로해 준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주인은 그에게 냉담하였지만 개들은 와서 그의 헌데를 핥았다. 그것은 그의 상처를 아물게 하고 고통을 덜어 주었다. 개들은 그 주인보다 훨씬 그에게 친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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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의 전령사'로 불리는 복수초가 황금빛 꽃망울을 터뜨리고 피어 나 끈질긴 생명력을 보여주고 있다.



2. 서로 다른 두 상태(22-23)

죽음에 임해서와 그 후의 생에 있어서 이 경건한 빈자와 악한 부자의 서로 다른 상태를 살펴 보자.

(1) 그들은 모두 죽었다(22절).

그 거지가 죽어…부자도 죽어. 부자와 가난한 자, 경건한 자와 불경건한 자에게 죽음은 공통의 운명이다.


거기서 그들은 함께 만난다. 성도들은 죽어서 그들의 슬픔이 끝나게 되고 기쁨에 들어갈 것이다. 죄인들은 죽어서 그들의 책임에 대해 답변하러 갈 것이다.


죽음을 준비하는 일은 부자와 가난한 자 모두에게 관계된 것이다. 이는 그것이 그들 모두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2) 거지가 먼저 죽었다.

하나님께서는 악한 자는 여전히 번창하게 내버려두시면서 경건한 자를 세상에서 데려가실 때가 종종 있다 그는 다른 아무 피난처나 쉴 곳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에 무덤 속에 숨은 것이다.

(3) 부자도 죽어 장사되었다.

가난한 자의 매장에 대해서는 아무 언급도 없다. 사람들은 아무 곳에나 구덩이를 파고 그의 시신을 묻었다. 그러나 부자는 화려한 장례식을 가졌다. 부자가 지닌 관대한 인생 그리고 그가 베푼 좋은 식탁에 대하여 찬양하는 장례식사가 있었을 것인데, 그것은 연회에 참석했던 자들이 맡았을 것이다.

장례식은 그 사람의 행복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4) 거지는 죽어서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갔다.'

천사에게 받들려 안식에 들어간 그의 영혼에게 주어진 영예는 얼마나 큰 것이며, 매우 거창하게 부자의 시신을 무덤으로 옮긴 영예보다 얼마나 월등한 것인가!

1) 그의 영혼은 육체와는 분리된 상태에 존재했다

죽지는 않았으며 육체와 함께 잠들어 있다.


2) 그의 영혼은 다른 세계로 옮기웠다. 즉 그 영혼을 주신 하나님께 그 본래의 고향으로 돌아간 것이다. 인간의 영혼은 위로 올라간다.


3) 천사들이 그 영혼을 돌본다. 그것은 천사들에 의해서 옮겨졌다. 천사들은 구원의 후사들에게 봉사하는 영들인데, 그들이 살아있을 동안뿐 아니라 죽었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인간의 영혼은 성화되지 못한 영혼처럼 이 땅에 얽매이거나 방해받지만 않는다면 그 자체에 탄성을 가지고 있어 육체를 멀리하자마자 그것에 의하여 위로 올라간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택하신 자들이 그렇게 되는 것을 바라지 않으시며, 따라서 자신에게 그들을 데리고 올 특별한 사신을 보내시는 것이다. 성도들은 안전할 뿐만 아니라 영광스럽게 집에 인도될 것이다. 부자의 장례식에 있었던 상여군들은 아마도 일류급 인사들이었겠지만 어떻게 나사로의 상여군과 비교될 수 있을 것인가?



4)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아브라함은 신실한 자의 조상이다. 신실한 자의 영혼은 그에게로만 모이게 되어 있다. 나사로는 아브라함의 품에, 즉 그와 함께 잔치를 갖게 되었다. 하늘에 있는 성도들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앉는다. 


아브라함은 위대하고 부자이었으나 하늘에서 그의 품에 가난한 나사로를 안기를 꺼리지 않았다. 부한 성도들과 가난한 성도들이 하늘에서는 다 같이 만난다. 그는 아브라함의 품에 안기었다. 대식가인 부자는 그를 개의 무리와 함께 두기도 싫어하였던 것이다.

(5) 부자에 대해 들은 다음의 소식은 '저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었다'는 것이다(23절).

1) 그의 처지가 매우 비참하다.

그는 지옥, 저 음부, 즉 분리된 영혼의 상태에 있다. 거기서 그는 불행의 극한에서 극도의 고통 중에 있었다. 


신실한 자의 영혼들이 육체의 짐에서 벗어나자마자 즉시 기쁨과 행복에 들어가는 것처럼 악하고 성화되지 못한 영혼들은 죽음에 의해 육체의 쾌락에서 끌려나오자마자 끝 없고 무익한 치료 불가능한 고통과 불행에 머무르게 된다. 


[ 이 부자는 전적으로 감각 세계의 쾌락에 몰두하였으므로 영혼의 세계의 기쁨에 대하여는 전혀 적합치 않았다.]

부자의 마음 같은 속세적인 마음에 영혼 세계의 기쁨 같은 것은 진실로 아무런 기쁨이 될 수 없었을 것이며, 또한 그는 것들을 대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2) 그의 처지가 비참하게 된 것은 나사로가 행복한 것을 그가 알게 됨으로써 더욱 악화되었다.

저가…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23절). 그는 그때 나사로가 어떻게 된 것인가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는 자기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지 못한다. 아니, 그는 자신이 아브라함의 품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을 분명히 알았다.

① 그는 멀리 아브라함을 보았다. 아브라함을 쳐다본다는 것은 즐거운 일임에 틀림없지만 멀리서 본다는 것은 고통스러운 모습이다.

② 그는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았다. 나사로를 보자 자신이 그에게 잔인하고 야만스럽게 행하였던 것이 생각났다. 그리고 행복에 젖어있는 그를 보자 자신의 불행이 훨씬 고통스러워졌다.

3. 부자와 아브라함의 대화(24-31)

(1) 부자가 아브라함에게 그의 현재의 불행을 경감해달라는 요청(24절).

멀리 있는 아브라함을 보자 부자는 그에게 울부짖었다. 큰 소리로 명령하던 그는 이제 큰 소리로 애걸한다. 술 마시고 떠들며 흥얼거리던 노래가 탄식으로 완전히 바뀌어졌다. 여기서 다음 내용을 살펴 보자.

1) 그가 아브라함에게 붙인 칭호 :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지옥에는 아버지 아브라함이라고 부를 수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육체적인 환락에 젖어 있을 때 이 부자는 오늘날 종교를 경멸하는 자들이 하듯이 아브라함과 그 이야기를 비웃었었다.


그런데 지금 그는 아브라함에게 존경의 칭호인 '아버지 아브라함이여'라고 부르는 것이다. 지금은 악한 자들이 의인들을 업신여기지만 의인들에게 억지로 가까워지려 하고 그들과 혈연 관계가 있는 양 주장할 날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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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는 현재의 비참한 처지를 아브라함에게 표현한다.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24절). 그가 하소연하고 있는 것은 그의 영혼의 고통이다. 따라서 그것은 영혼에게 고통을 줄 수 있는 그러한 불꽃인데, 죄를 범한 양심에 임한 하나님의 진노의 불꽃 즉 스스로를 고소하고 정죄하는 마음의 무서운 불꽃이다.

3) 이러한 불행을 생각하고 아브라함에게 간청함 :

나를 긍휼히 여기사. 하나님의 자비를 업신여기던 자들이 그것을 간절히 구할 날이 이를 것이다. 나사로에게 아무런 동정도 베풀지 않았던 그는 이제 나사로가 그에게 자비를 베풀어 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


이는 나사로가 일찍이 자기보다는 훨씬 좋은 성품을 지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가 간청한 특별한 은총은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라는 것이었다.

① 여기서 그는 특히 그의 혀의 고통을 하소연했다. 그 혀는 말하는 기관 중의 하나이며, 그 고통에 의해서 그는 하나님과 사람을 거스려 말했던 모든 악한 말, 즉 모든 완악하고 불결한 말들을 기억한다. 


그가 말들에 의해 정죄받았으므로 혀에 고통을 당하는 것이다. 혀는 또한 맛보는 기관 중의 하나이다. 따라서 그 고통은 그가 감각의 즐거움을 지나치게 추구했다는 것을 생각나게 할 것이다.

② 그는 자기 혀를 시원하게 할 한 방울의 물을 원한다. 그는 구할 수 있는 하나의 작은 것으로서 한 순간 그의 혀를 시원하게 할 한 방울의 물을 요청한다. 


③그는 나사로가 그 물을 가져오기를 바란다. 부자는 나사로의 이름을 불렀다. 왜냐하면 그는 나사로를 알고 있고, 나사로는 옛날에 알고 지내던 자를 위하여 이 선한 일을 자기에게 해 주는 데 마다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제 하나님의 백성을 미워하고 경멸하던 자들이 하나님의 사람들에게서 기꺼이 친절을 얻고자 할 날이 이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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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 요청에 대한 아브라함의 응답.

그는 그 요구를 허락하지 않았다. 이 부자가 얼마나 정확하게 보응을 받고 있는가를 보라. 빵 한조각을 거절하였던 그는 한 방울의 물을 거절당한다. 


그것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생각나게 한다. 그것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생각나게 한다. '구하라 주실 것이요'. 그러나 만일 우리가 늦게 구한다면 받지 못할 것이다.

1) 아브라함은 부자로 하여금 생전에 나사로의 사정과 그의 사정이 어떠했었는가를 생각하게 한다.

얘…기억하라. 이것은 날카로운 말이다. 그때 죄인들은 기억할 것을 요청받는다. 그러나 그들은 기억하지 않고 기억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아들아, 너의 창조주, 구세주를 기억하라. 너의 최후를 생각하라." 그러나 그들은 이 지난 일을 상기시키는 말에 귀를 막고 기억할 수 있는 말도 잊어버리려 한다. 

"아들아, 너에게 주어진 많은 경고를 기억하라, 영원한 생명과 영광을 얻도록 좋은 기회를 주었으나 너는 그것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그런데 부자가 여기서 생각해야 할 것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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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너는 살았을 때에 네 좋은 것을 받았고. 아브라함은 부자가 그것을 오용했다고 말하지 않고 받았다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네게 얼마나 풍성한 은혜를 주셨는가를 기억하라. 따라서 너는 하나님께서 빚진 것이 있다고 할 수 없다. 너는 그가 너에게 주신 것을 받았고, 그것이 전부였다. 너는 하나님의 축복을 묻어버리는 무덤이었고, 씨를 뿌려도 수확이 없는 밭이었다. 


너는 좋은 것들을 받았다. 그것은 네 눈으로 보아 네 몫으로 삼아 스스로 즐기기에 가장 좋은 것으로서, 네가 선택한 것들이었다. 너는 살았을 때에 이 좋은 것을 받았고 내세에서 더 좋은 날은 다 지나가 버렸으며, 그것은 지난 과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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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나사로가 받은 고난 : 그가 생전에 받은 불행과 비참이 얼마나 컸었는가를 생각해 보라. 너는 네 악에 비해 지나칠 정도로 좋은 것을 많이 가졌고, 나사로는 그의 선에 비해 지나치게 나쁜 것을 받았다. 


그는 나쁜 것을 받았다. 그는 그것들을 영혼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주어진 약으로 받아 들였으며, 그 약은 결과가 나타났다. 

악한 사람들은 이 세사에서만 좋은 것을 가지는 것처럼, 경건한 사람들도 이 세상에서만 나쁜 것을 가진다.


이제 아브라함은 그의 양심을 일깨워 그가 나사로에게 어떻게 대했었는가를 상기시킨다. 그 때 나사로를 도와주지 않았는데, 지금 나사로가 어떻게 자기를 도와주기를 바라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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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아브라함은 부자에게 나사로의 현재의 축복과 그의 비참함을 상기시킨다.

이제 저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민을 받느니라. 천국은 위로요, 지옥은 고통이다. 천국은 기쁨이고, 지옥은 통곡이요, 아픔이다.


이 세상에서 많고 큰 재앙을 거쳐가는 사람에게 천국은 진정한 천국이 될 것이다. 고생한 사람들이 그리스도 안에 잠들면 그들은 위로를 받고 그들의 모든 눈물은 씻기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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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에서는 영원한 위로가 있다. 반면에 지옥은 세상의 열락과 쾌락을 즐기다가 가는 사람에게 진정으로 지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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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아브라함은 부자에게, 나사로의 도움을 입어 어떤 구조를 바라는 것은 헛된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 준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이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이 끼어 있어(26절). 천국에서는 가장 친절한 성도라고 할지라도 한 때 그들의 친구였던 사람을 위로하고 구원하기 위해 죽어 저주 받은 무리를 방문할 수 없다.


여기서 너희에게로 건너가고자 하되 할 수 없고. 지옥에서 가장 용감한 죄인이라 할지라도 그 지옥을 힘으로 벗어날 수 없다.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이 세상에서는 하나님의 은총으로 자연과 은총의 상태에 고정된 아무런 구렁이 없다. 우리는 전자에서 후자로 즉 죄에서 하나님에게로 나아갈 수 있다. 그것은 시간에 제한을 받았지만 이제는 영원히 나아갈 수 없게 되었다. 하나의 돌이 구렁의 문에 굴려졌는데, 그것은 다시는 굴려낼 수 없는 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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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부자가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행한 더 큰 요청 :

아브라함에게 말할 기회를 얻자 그는 뒤에 남겨 둔 자기 친척들을 위해 간청하려 한다.

1) 그는 나사로를 자기 아버지 집에 보내달라고 간청한다.

그러면 구하노니 아버지여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27절). 그는 다시 아브라함을 불러 요청한다. "당신이 이것만은 다시 거절하지 않을 정도로 동정심이 많으신 줄 확신합니다. 그를 나의 아버지 집에 돌려 보내소서. 그는 거기에 여러 번 드나들었기 때문에 그 집이 어디에 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나사로를 알아 볼 것이며, 그가 말하는 것을 존중할 것입니다. 나사로가 그들에게 증가하게 하소서. 내가 어떤 처지에 있다는 것을 그들에게 말하게 하소서. 그들이 내 전철을 밟지 않고, 이 고통의 장소에 오지 않도록 그들에게 경고하게 하소서"(28절).


그는 "내가 그들에게 증거하도록 나를 그들에게 보내 주소서"라고 말하지 않는다. 만약에 그가 나갈 수만 있다면 형제들이 정신을 잃고 놀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나사로를 보내소서. 그의 설명은 약간 무서울 것이나 충분히 그들을 죄에서 놀라 돌이키게 할 것입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가 지금 그들의 파멸을 막고자 하는 것은 한편으로는 자연적인 애정을 가지고 있는 그들에 대한 배려였다.

2) 아브라함은 이 간청도 거절한다.

지옥에서는 어떤 요청도 수락되지 않는다. 아브라함은 그것들을 모세와 예언자들의 증언에 맡겼다. 여기에 그들의 특권이 있다. 저희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29절).

이것이 그들의 의무이다 그들을 믿으면 이 고통의 장소에 빠지지 않게 막는 데 충분할 것이다.

3) 그는 가시 한 번 간절히 강청한다(30절).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저희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즉 이 말은 "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이 그들을 존중한다면 그럴 수 있겠으나 죽은 자가 살아 그들에게 간다면 훨씬 분명한 확신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모세와 선지자들을 익히 알고 있지만, 이것은 새로운 일이요, 놀라운 일이기에 분명히 그들을 회개시킬 것입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하나님이 선택하시고 정하신 것보다 다른 방법을 확신하는 경향이 있다.

4) 아브라함은 그것을 계속하여 부정한다(31절).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쓰여진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확신을 부수고 타락하게 만드는 힘은 죽은 자로부터 들은 증거의 힘을 능가하는 것이 분명하다.


성경은 하나님이 그의 뜻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이므로,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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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메튜헨리 주석


본 글의 출처 :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lim9217&logNo=221219856568&proxyRefer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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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news.v.daum.net/v/2022022417200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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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후보 보기 위해 몰린 시민들로 발 디딜 틈이 없어'

24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의 집중유세가 진행된 수원 팔달문 앞 거리에 인파가 몰려 인산인해를 이뤘다.   사진=임형택 기자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의 ‘본진’ 수원을 찾았다. 수원 시민들은 뜨거운 환호로 윤 후보를 맞이했다. 

윤 후보는 24일 오후 경기 수원 팔달문 앞에서 ‘국민과 원팀’ 집중 유세를 진행했다. 수원은 이 후보가 직전까지 도지사로 근무한 경기도청이 자리한 곳이다. 유세가 진행된 팔달문 거리 일대는 윤 후보를 보기 위해 몰린 시민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윤 후보는 ‘이재명 무능·부패 프레임’을 거듭 강조하며 정권교체를 위한 지지를 수원시민과 경기도민에게 호소했다. 그는 “여당 대선후보가 도지사를 하던 곳이라 수원시민 여러분도 이재명의 민주당 정권이 어떤 것인지 제대로 겪어보지 않았는가”라며 “이런 정권이 연장되는 것을 도저히 볼 수 없어서 이 자리에 오신게 맞는가”라고 외쳤다. 

대장동 의혹도 겨눴다. 윤 후보는 “능력 없고 무능한 것은 둘째치고 깨끗했는가. 대장동이 여러분들 가까이 있으니까 다 알지 않는가. 김만배 일당이 3억5000만원 들고가서 8500억원을 받았다”며 “이렇게 부패하고 무능한 정권이 더 연장돼서 되겠는가”라고 의문을 표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24일 오후 경기 수원 팔달문 앞을 찾아 정권교체를 호소했다.   사진=임형택 기자

윤 후보는 “국민을 입으로만 위하는 척하면서 괴롭히고 끼리끼리 부패했다. 이유는 이 사람들이 40~50년 전 이미 한물 간 좌파 사회혁명 이론에서 벗어나지 못한 운동권 세력이기 때문”이라며 “사고방식이 반미, 친중, 친북에 빠져있다. 그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비위만 안 거스르고 마음에만 잘 들게하면 평화가 유지된다는 생각을 가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방역·부동산 정책도 질타했다. 윤 후보는 “과학적인 데이터를 하나도 준비하지 않고 맨날 주먹구구식으로 하다가 지금 일일 확진자수가 세계 1등”이라며 “집값은 어떤가. 수원도 많이 오르지 않았는가. 부동산 정책을 28번 바꿔가면서 이런 식으로 하는 무능한 정권에서 본 적이 있는가. 이게 정부고 나라인가. 어떻게 해야겠는가. 바꿔야하지 않겠는가”라고 강조했다. 

윤 후보는 ‘부정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하기도 했다. 그는 “정치를 이제 8개월 한 초심자다. 그러나 잘하는 게 하나 있다. 그동안 부정부패와 26년간 싸워온 사람이다. 국민을 괴롭히는 부정부패 범죄와 단호히 맞서 싸워왔다”며 “우리나라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기본으로 하는 헌법 훼손 세력에 대해선 타협없이 강력하게 맞설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헌법정신을 존중한다면 지역이나 계층, 직업군에 가릴 것 없이 어떤 진영과도 손을 잡고 협치·통합을 이뤄낼 것”이라며 “여러분들이 나와 국민의힘에게 차기정부를 맡겨주면 합리적으로 협치해서 국민 통합을 이루고 경제를 발전시키겠다”고 지지를 호소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24일 오후 경기 수원 팔달문 앞에서 열린 집중유세에서 어퍼컷 세레모니를 선보이고 있다.   사진=조현지 기자

윤 후보의 발언에 거리에 모인 시민들은 뜨거운 환호를 보냈다. 발언 중간 중간 “윤석열”, “대통령”, “정권교체” 등을 구호했고, “대한민국 개판오분전” 등 정부를 향한 날선 비판도 시민들의 입에서 이어졌다. 시민들의 지지에 윤 후보는 수차례의 ‘어퍼컷 세레모니’로 화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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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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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릭

2020.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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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NS 글 소개]


■  이런 사람이 행복합니다   ■
 
누가 나에게 섭섭하게 해도
그 동안 나에게 그가 베풀어 주었던
고마움을 생각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나의 행동이 다른 이에게
누를 끼치지 않는가를 미리 생각하며
행동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남이 잘 사는 것을
배아파 하지 않고 사촌이 땅을 사도
축하할 줄 아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자신의 직위가 낮아도
인격까지 낮은 것은 아니므로 기죽지 않고  
당당하게 처신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비가 오면 만물이 자라나서 좋고
날이 개면 쾌청해서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하루 세끼 먹을 수 있는
양식이 있다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비가 새도 바람을 막을 집에 살고 있다는 것을
감사하게 느끼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좋았던 추억을 되살리고
앞날을 희망차게 바라보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받을 것은 잊어버리고
줄 것을 잊지 않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행복은 돈으로는 살 수가 없는 것이다


♧☆♤


베릭

2020.12.18
12: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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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꽃이 장미보다 아름다운 이유 ...■
  
   이해인      
클라우디아 수녀


아름다운 장미는~
사람들이 꺾어가서
꽃병에 꽂아두고 혼자서 바라보다
시들면 쓰레기통에 
버려지는데~


아름답지 않은
들꽃이 많이 모여서
장관을 이루면~~


사람들은~
감탄을 하면서도
꺾어가지 않고 다 함께 바라보면서~
함께 관광 명소로 즐깁니다.


우리들 인생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만 잘났다고 뽐내거나
내가 가진 것 좀 있다고
없는 사람을 없신 여기거나


좀 배웠다고~~
너무 잘난 척하거나
권력 있고 힘 있다고 마구 날뛰는 사람들은~


언젠가는~~
장미꽃처럼 꺾여지고 
이용가치가 없으면 
배신당하고 버려지지만~


내가 남들보다 
조금 부족한 듯~
내가 남들보다
조금 못난 듯~
내가 남들보다 
조금 손해 본 듯~
내가 남들보다
조금 바보인 듯~
내가 남들보다 
조금 약한 듯하면~~


나를 사랑 해주고 찾아주고
좋은 친구들이 많이 생기니
이보다 더 좋은 행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오늘 힘들어하는 당신에게
마음 한 잔의 위로와
구름 한 조각의 희망과
슬픔과 외로움을~~
나눌 수 있는~


따뜻한 사랑의 메세지를
전하고 싶습니다!


살아가는 동안
좋은 날만,
좋은 일만 있다면~
삶이 왜 힘들다고
하겠는지요?


더러는 비에 젖고 
바람에 부대끼며~~
웃기도 울기도 하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지요?


내 마음 같지 않은 세상이라도
내 마음 몰라주는 사람들이라도
부디 원망의 불씨는 키우지 말고


그저 솔바람처럼 살다 보면
언젠가는 사철 푸른 
소나무를 닮아있겠지요!!


오늘 힘들어하는 당신
잘 사귀면 바람도
친구가 됩니다.
인내와 손을 잡으면 
고난도 연인이 됩니다.


♧☆♤


베릭

2021.01.30
21:3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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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상처를 치료받으려면


히12:15-17 딤후4:9~18


히12:15~17


15 너희는 돌아보아 하나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있는가 두려워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고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러움을 입을까 두려워하고 16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식물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라 17 너희의 아는 바와 같이 저가 그 후에 축복을 기업으로 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



딤후4:9~18


9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10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11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저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12 두기고는 에베소로 보내었노라 13 네가 올 때에 내가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고 또 책은 특별히 가죽 종이에 쓴 것을 가져오라 14 구리 장색 알렉산더가 내게 해를 많이 보였으매 주께서 그 행한대로 저에게 갚으시리니 15 너도 저를 주의하라 저가 우리 말을 심히 대적하였느니라 16 내가 처음 변명할 때에 나와 함께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 저희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 17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를 강건케 하심은 나로 말미암아 전도의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이방인으로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지웠느니라 18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 무궁토록 있을찌어다 아멘




설교:


어느 목사님이 26층 아파트로 이사를 하셨습니다. 그 목사님은 높은 층을 좋아해서 26층에 사는 것을 하나님이 주신 혜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고층 아파트의 혜택 중에 가장 좋은 혜택은 좋은 전망과 시원한 바람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 목사님 집은 한 여름에도 창문을 열어놓지 못했답니다. 그 이유는 사모님 때문입니다. 그 사모님은 모든 창문을 다 닫고 걸어야만 주무십니다. 왜 그렇게 하냐면 도둑이 든다는 것입니다. 목사님이 “아니 26층에 어떻게 창문으로 도둑이 들어옵니까?”라고 하면 사모님은 “옥상에서 로프타고 들어온다.”고 닫으라고 한답니다.


그 사모님이 그렇게 생각하게 된 것은 사모님에게 있었던 아픈 기억들 때문입니다. 사모님은 결혼하기 전까지 도둑을 세 번이나 맞았다고 합니다. 특히 고 3때는 여름에 새벽까지 공부를 하는데 책상 앞에 열어놓은 창문에 도둑이 들어오는 것을 직접 보고 놀란 경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26층 아파트에서도 창문을 열어놓지 못하게 만드는 병적인 반응을 보이게 한 것입니다.



반면에 그 남편 목사님은 달랐습니다. 목사님은 살아오면서 한 번도 도둑을 맞은 적이 없답니다. 목사님의 가정은 항상 대식구였습니다. 식구가 많을 때는 16명이 한 집에서 살았답니다. 도둑이 들어오다가도 많은 신발을 보면 도망갔을 것입니다. 그 덕분엔지 목사님은 한 번도 도둑맞은 일도 없고 단독주택에 살았는데도 창문을 다 열어놓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한동안 상처받았다. 마음의 상처가 있다하는 말들을 많이 썼습니다. 그러나 저는 상처라는 말을 쓰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아픔이라고 쓰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그러나 분명 육체의 상처가 있듯이 마음의 상처도 있습니다. 그 상처 때문에 아픔이 있습니다.



문제는 그 상처가 쉽게 치유되면 다행인데 쉽게 치유가 안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상처를 안 받는 것이 성숙한 성도의 최상 책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누구나 다 완전치 못하기에 상처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상처를 어떻게 처리해야만 하느냐는 것입니다. 그 치유방법을 모르는 것이 문제입니다.


저는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통해 우리 성도가 마음의 상처를 치유 받으려면 어찌해야 할까를 생각해 보려 합니다. 

여러분 마음에 혹시 남들이 이해 못하는 마음의 상처가 있습니까?

아무도 해결해 주지 않는 아픔이 있습니까? 그 아픔 때문에 힘들고 어렵습니까?

오늘 설교를 들으시는 모든 분들의 마음속에 있는 상처가 주의 이름으로 처리되어지기를 바랍니다.



상처를 치유 받으려면 몇 가지를 알아야 합니다.


1. 사람은 누구든지 마음의 상처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가만히 살펴보면 성경에 나오는 위대한 인물들도 많은 상처가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아내 사라는 상처가 있을까요? 없을까요? 엄청난 상처가 있습니다. 남편이 애굽에서 자기 살자고 아내를 동생이라 했습니다. 아마도 사라는 일평생 그 아픈 상처가 있었을 것입니다.

야곱은 형 에서에게 교묘한 작전으로 장자 권을 빼앗고 아버지를 속이는 거짓말을 하면서 축복을 도적질을 했습니다. 그러기에 그 상처가 20년이 지나도 해결되지 않는 아픔이 따라 다녔습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버림받은 상처가 있었습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야곱의 부인 레아의 시력이 좋지 못하고 못 생긴 얼굴 때문에 야곱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아픔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식을 많이 낳는 것으로 보상하려는 상처, 그 동생 라헬도 남편의 사랑은 받으나 아기를 낳지 못하는 열등의식의 상처가 있었습니다. 이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이 크던 작던 상처를 갖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상처를 평생 갖고 산 것이 아니고 하나님 안에서 해결을 받고 치유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위대한 사도 바울도 마음의 상처를 많이 받았습니다.

고후11:23 이하를 보면 그는 복음 때문에 옥에 갇히기도 했고, 매도 수 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했습니다. 서른아홉 번씩 다섯 차례 매를 맞았습니다. 세 번 태장으로 맞았고, 한번 돌로 맞았고, 세 번 파선했습니다. 온갖 위험을 다 겪었고 헐벗고 굶주렸습니다.


오늘 본문 디모데후서4:10에 보면 바울은 사역을 하다가 동역 자들의 배신을 당하는 상처를 받습니다.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라고 말했습니다. 믿었던 사람들이 등을 돌리고 자기를 떠나는 배신을 겪을 때 바울은 엄청난 상처를 받았을 것입니다. 


이처럼 위대한 사도 바울도 상처를 받는데 하물며 우리들이 상처를 받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자신은 마음의 상처가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라고 한다면 아마도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상처를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마음의 상처는 주로 가까운 사람에게 받는다는 것입니다.

요셉에게 가장 큰 상처를 준 사람들은 형들이었습니다.

야곱에게 가장 상처를 준 사람은 형 에서와 외삼촌 라반이었습니다. 바울은 늘 함께 하던 동역 자들입니다.


여러분이 받는 상처도 대부분의 가까운 사람에게 받는 것이 가장 클 것입니다.


가족에게 받는 상처, 부모, 남편, 형제, 가까운 그들이 상처를 줄 가능성이 더 많습니다. 교회에서도 그렇습니다. 잘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상처를 받지 않습니다. 잘 아는 사람, 믿었던 사람, 그러다보니 본의 아니게 허물없이 대하다보니 상처를 입히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기에 상대를 통해서 사랑을 받기를 원하지만 원하는 만큼 사랑을 받지도 못하여 상처를 받습니다. 또는 기대하는 것과 달리 상대는 사랑하는 방법을 몰라서 나를 사랑해 주지 못하기에 그것이 상처가 되기도 합니다.



어느 기관에서 자녀들이 상처를 누구를 통하여 받는가. 조사했습니다. 결과를 보니 아버지에게서 40.7%, 어머니에게서 32.1% 라고 합니다. 상처 받는 내용은 ‘함부로 하는 말’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은근히 무시하는 말을 할 때 상처를 입게 됩니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자존심을 지켜주어야 합니다. 내 말 한마디가 칼보다 무섭고 총보다 무섭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2. 마음의 상처에는 엄청난 고통이 따른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읽은 본문 15절을 보세요.

15 너희는 돌아보아 하나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있는가 두려워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고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러움을 입을까 두려워하고

여기 보면 상처로 인하여 생긴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한다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닥치는 상처는 무서운 고통을 동반하는데 몇 가지만 살펴봅니다.



1)상처로 인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할 수 있습니다.

2)마음에 괴로움이 생깁니다. 

3)마음이 더럽게 됩니다.

증오와 분노, 복수와 원한으로 가득합니다.


4)세속적인 삶을 살게 됩니다. 

16절에 보면 ‘망령’ 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는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속된 더러운, 세속적인’이라는 뜻입니다.

5)영적인 것을 소홀히 합니다.

6)에서처럼 진정한 축복을 놓치게 됩니다. 

7)하나님께 버림받아 회개할 기회를 놓칠 수 있습니다.



내 안에 처리되지 못한 상처는 나 자신에게

더 큰 아픔과 또 다른 상처를 가져다줍니다.


한국에서 치유사역으로 가장 알려진 분이 정태기 목사님입니다.

정 목사님이 젊을 때 두 가지 별명이 있었답니다. ‘꿔다 놓은 보릿자루’와 ‘재봉틀’이었습니다. 


너무 자신감이 없어서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말도 못해서 붙여진 별명입니다. 이분이 미국에 유학 가서 공부하시다가 37세 되던 해에 치유그룹에 들어가 자신의 상처에 대한 원인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에 아버지와 어머니로부터 엄청난 상처를 받고 자랐습니다. 아버지보다 세 살 더 많은 친어머니가 계셨지만 제법 돈이 있었던 아버지는 열여섯 살이나 어린 젊은 여자를 작은 부인으로 맞았습니다. 그래서 본 부인에게서 4남매를 낳고, 작은 부인에게서 5남매를 낳았다고 합니다. 문제는 이런 아버지가 자식들에게 다정할 리가 없습니다. 언제나 자식들에게 폭군으로서 군림했습니다.

그래서 정 목사님은 어린 시절에 아버지가 집에 계시면 캄캄할 때까지 집밖에서 빙빙 돌았다고 합니다. 어머니 역시 아버지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하니까 일에만 파묻혀 자식을 제대로 돌보지 않았습니다. 

바로 이와 같이 어두운 가정에서 많은 상처를 받고 자라나다 보니까 대인관계가 원만하지 못하고 성격이 삐뚤어지게 되었습니다. 결국 그 상처의 분출구는 자기가 기르던 소와 자기 집 식모의 아들이었답니다.  우리 속담에 “종로에서 뺨맞고 한강에서 분풀이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자신의 상처로 인한 아픔이 해결되지 않으면 애꿎은 사람들이 상처의 희생물이 될 수가 있습니다.



야곱도 엄청난 상처를 통해 엄청난 고통을 겪습니다. 

부모를 속인 사건으로 평생 속임을 당하며 삽니다. 삼촌에게 속습니다. 자식들에게 속임을 당합니다. 요셉이 17살에게 형들에 의해 노예로 팔릴 때 형들은 아버지를 감쪽같이 22년을 속입니다. 사기꾼의 상처가 고통으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여러분 속에도 남들이 모르는 상처로 인한 고통이 있을 것입니다. 그 엄청난 고통을 그대로 방치하지 마시기를 축원합니다.



3. 모든 상처는 치유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희망을 주는 소식은 

어떤 상처도 치유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상처와 상처로 인한 고통을 회피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가지고 나가면 치유자이신 하나님은 우리를 치유해주십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치유를 받기 보다는 

회피하려고 하기 때문에 문제입니다.


가정에서 상처를 받은 사람들은 가정을 멀리합니다. 교회에서 상처를 받은 사람들은 교회를 멀리합니다. 이렇게 해서는 치유가 안 됩니다. 가정에서 상처를 받았다고 가정을 깨버리고, 교회에서 상처를 받았다고 교회를 옮기면 되겠습니까? 안보면 될 것 같지만 안 본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받는 상처를 통해서 우리를 훈련하시는데 우리가 그 훈련을 피한다고 훈련이 끝나겠습니까? 만약 우리에게 다가오는 훈련을 피해서 도망간다면 하나님은 그보다 강력한 훈련 프로그램을 적용하실 것입니다.



어느 목사님이 도시에서 목회를 하다가 늘 힘들게 하는 한 성도를 두들겨 패고 시골교회로 옮겼답니다. 그랬더니 그 시골에는 더 센 성도가 기다리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또 상대를 두들겨 패려고 했는데 상대가 태권도 5단이어서 두둘겨 팰수 없었답니다. 결국 또 다른 사역지로 옮겼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치유 받아야지 막나가거나 회피해서는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상처치유에 사람은 해결자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 문제의 해결자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그 아픈 상처를 치유하시는 분이시고 더 나아가 그 상처 때문에 더 큰 인물이 되도록 나를 만들어 가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능숙한 치유자이십니다. 우리들의 상처가 전능하신 하나님이 앞에 나와서 치유를 받으면 우리는 이전 보다 더 아름다운 인생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마음의 상처를 치유 받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치료자이신 하나님 앞에 가지고 나와야 합니다.


누가 나의 상처를 치료합니까? 출애굽기 15:26 을 보면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고 했고, 말라기 4:2를 보면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4:23을 보면 주님께서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가 좋은 사람을 만나도 치유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강도만난 사람이 선한 사마리아 사람을 만남으로 치유가 되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좋은 배우자, 좋은 친구, 좋은 상담자, 좋은 목사를 만나는 것은 축복입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나의 상처를 치유해 주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주님은 언제나 내 곁에서 나를 치유하기를 원하시고 내가 주님을 찾기를 기다리십니다.



시편기자는 그것을 알았기 때문에 시편121편에서“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 서로다”고 고백했던 것입니다.

저도 마찬가지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설픈 의사와 같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마음의 상처를 치료하기에는 너무나 부족한 돌팔이 의사와 같습니다.



어느 병원 환자가 수술실에서 도망을 나왔습니다. 온 병원에 비상벨이 울리고 직원들이 동원된 뒤 마침내 수위실에서 환자가 붙잡혔습니다.

수위 아저씨가 환자를 붙들고 물었습니다. “무슨 수술인데 그렇게 겁을 내요?”, “맹장 수술이요”, “그까짓 맹장 수술 가지고 그렇게 겁을 내면 어떡해요”,

그러자 환자 하는 말

“수술실에서도 간호사가 똑같은 얘기를 했어요. 그런데 문제는 간호사가 나한테 한 얘기가 아니라 수술하는 풋내기 의사한테 했단 말이오. 그래서 내가 도망 나온 거란 말이오.” 라고 하더랍니다. 

사람은 그 풋내기 의사처럼 어설픈 치료자입니다. 우리의 마음의 상처를 완벽하게 치료해주실 분은 우리의 구원자이신 주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자유를 잃고 상처를 인해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에게 

나무라지 않으시고 사랑과 긍휼로 치유하셨습니다.


수가성의 여인을 사람 상대하시며 치유하셨고 요한복음 8장에 나오는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인을 말씀과 인격적 예우로 치유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 주님만이 참된 치유를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그분께 아픔과 상처를 가지고 나가면 자유와 쉼을 주시고 용서를 통해 참 자유를 누리게 하십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상처를 주님에게 넘겨드릴 줄 아는 지혜가 있었습니다.

딤후 4장에 보면 자기를 괴롭히고 상처를 주었던 알렉산더에 대해 “주께서 갚으시리라”고 말하며 주님께 문제의 처리를 맡겼습니다. 그리고는 17절을 보면 ‘주님이 자기 곁에서 자신을 강건케 하셨다’고 말합니다. 또 18절에 보면 주님께서 자신을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신다고 말합니다.



마음의 상처가 있습니까? 사람 붙잡고 하소연 하지 마십시오. 

혹 치유 된 것 같은데 그것은 잠시 진통제 맞는 것과 같고

근본적인 치유가 되질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가셔서 속상한 것, 억울한 것, 아프고 괴로운 것 

다 말씀드리십시오. 그리고 주님의 치유를 기다리십시오. 

주의 치유의 역사가 여러분 모두에게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2)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용서해야 합니다.


상처가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줍니다. 

그러기에 내가 먼저 치유를 받아야 

남을 치유하는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내가 치유되지 못하고 어찌 남을 치유할 수 있겠습니까?


내가 상처를 받으면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마음속에 

복수심을 갖게 됩니다.

그런데 그 복수는 내 문제를 해결하는 비책이 아닙니다. 

그러면 무엇이 해결책일까요? 용서입니다.

용서는 능력입니다. 용서는 치유에 가장 기본입니다.

만약 용서하지 않으면 자신 속에 있는 복수심이

자신에게 더 깊은 상처를 주게 될 것입니다.

용서는 상대방보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 필요한 것입니다. 

용서를 통해 내가 나를 해방시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용서하는 것은 나를 상처 준 사람을 통해서

내게 들어오는 저주를 끊는 방법입니다.



우리는 심판과 정죄가 문제 해결책이라고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보세요.

수가성의 여인에게 한마디도 책망치 않습니다.

간음 중에 잡혀온 여인에게도 책망과 심판을 하지 않습니다.

다윗이 그 엄청난 죄를 범함에도 

하나님은 그에게 당연히 무서운 심판과 책망을 하셔야 함에도

그가 말 한마디로 회개할 때 용서를 선포하십니다.

주님용서의 클라이맥스는 요한복음 21장의 베드로입니다.

3번씩이나 모른다고 부인했던 그 베드로를

한마디도 책망을 하지 않습니다. 그냥 사랑하느냐고 묻습니다. 그것이 용서요. 그것이 문제 해결의 지름길입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베드로 된 것입니다.

그 치유가 여러분에게도 

이 시간 임하심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에게 고통을 준 사람, 

여러분에게 정말 감당키 힘든 아픔을 준 사람이 있습니까? 

주님의 이름으로 용서를 선포하세요. 

그리고 그 아픔이 주님의 손으로 치유되었음을 선포하세요. 

그러면 주님은 우리를 자유케 하십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3) 상처를 은혜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사람이 무엇이든지 긍정적인 시각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요셉은 형들 때문에 종살이에 옥살이라는 말로다 

할 수 없는 고통을 받았고 마음에 상처를 받았지만

그 상처를 하나님의 은혜로 해석했습니다.


요셉이 형들에게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라고 말합니다.



치유사역자는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육체의 질병치유사역자와 마음의 상처 치유자입니다.

그런데 유명한 치유 사역자들을 보면 자신들이 큰 상처를 받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상처를 주님의 은혜 속에서 치유 받고 그 은혜로 다른 사람들을 치유하는 치유사역자들이 되었던 것입니다.

내 과거가 상처로 얼룩져 있을 때 생각하면 아프고 쓰라립니다. 그래서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간들이 있지만 오히려 그것 때문에 하나님은 나를 더 크게 들어 쓰십니다.



어린아이들이 한번 아프고 나면 성숙합니다. 

마찬가지로 내가 한번 받은 상처가 나를 힘들고 

고통스럽게만 하는 상처로 영원히 남는 것이 아닙니다. 

그 상처로 인해 더 큰 은혜를 체험합니다. 

이전에 보지 못한 은혜를 맛보게 합니다. 

그래서 상처가 다 나쁜 것은 아닙니다.

상처를 상처로 안 받아 들이고 

그 아픔을 피할 수 있는 것은 최상입니다.


그러나 혹시 상처를 받았거든 

그 상처를 상처라고 떠벌리고 자랑하지 말고

속히  그 상처를 치유 받아 성숙한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주님의 치유의 역사가 오늘 말씀을 들은

모든 분들에게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충만한 교회  서울 성령 내적치유 센터) 강요셉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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