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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한 선(纯善)

 

 

/ 귀진(歸真)

 

[정견망] 순수한 선(纯善), 그는 관념을 지니지 않은 자연의 표출이며 본성의 표현이다. 순수한 선(纯善)은 아름답지도 부드럽지도 않고, 진력을 다하는 것이 아니고 틀이 없고 고려가 없다. 순수한 선(纯善)은 물질과 정신의 화목한 통일이다. 순수한 선(纯善)은 포용과 이해의 일체이며 만사만물에 대한 소통이다. 지순(至純), 지선(至善) 그것이 바로 반본귀진의 과정이다

 

그러나 부동한 물질, 부동한 생명에는 부동한 표준이 존재한다. 마치 강철은 도자기가 녹이 쓸지 않음을 이해하지 못하듯이, 도자기 또한 강철의 단단함을 영원히 체험할 수 없다. 그것은 물질의 구성 본신이 다르기 때문이다. 만약 한 사람이 자신의 관념을 지니고 다른 사람을 가늠한다면 영원히 관용할 수 없고 영원히 자신의 관념에 의해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눈에 거슬리고 마음에 거슬리게 느껴져 상대방을 이해할 수 없게 된다. 그것은 두개의 서로 다른 생명이고 다른 사람이기 때문이다.


어떠한 시기이든지를 막론하고 마땅히 다른 사람을 존중해야 하는데 표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야만이 비로소 바다의 용량이 있게 되며 비로소 다른 사람의 우점을 받아들일 수 있다. (), (), ()는 자연법칙이고 우주의 원용한 기제(機制)를 믿어야 비로소 차분하게 일체를 마주할 수 있다.똑같이 어떠한 시기이든지를 막론하고 자신의 표준으로 다른 사람에게 요구하지 말아야 하는바 그렇게 하면 진실을 잃어 영원할 수 없는데 그것은 생명에는 자신의 특색이 있기 때문이다

 

()이 선할 수 있음은 선()을 행하는 사람이 자신이 선()을 행하고 있음을 의식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을 위하여 선할 때 본신에는 공리색채(功利色彩)와 목적성을 지니고 있어 순수하지 못하다. 때문에 진실한 선(眞善)이라고 부를 수 없다. 선하기 위하여 선할 때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못할뿐만 아니라 어떤 때는 심지어 다른 사람을 해치게 된다. 고대글자 중의 선()은 한마리의 양()과 풀()한포기였다. 양에게 푸른 풀을 주는 것이 비로소 선을 위한 것인바 자신의 표준으로 가늠하고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것을 양에게 주는 것이 아니다. 상대방의 특점과 접수능력을 충분하게 고려하고 선을 행하여야 비로소 선과(善果)를 맺을 수 있다

 

생명이 진, , 인에 동화하면 저도 모르게 지선지순(至善至纯)에 도달할 수 있다

 

2003-12-12 

원문위치 : http://www.zhengjian.org/zj/articles/2003/12/12/24883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