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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부인 호칭 논란...

당신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당신들의 태도이다-


오마이뉴스의 영부인 지칭 '김 씨'나, 이를 옹호해주고 있는 한국일보

이 이야기를 다시 꺼내긴 싫었는데. 

언론들이 서로 실드를 쳐주는 것도 한계가 있지. 영부인에 대한 호칭이 만일 권위주의 정권에서 이랬다면 그 언론사가 어떻게 됐을까를 생각해보니 오마이 뉴스가 그렇게 까이는 것도 이해가 됩니다만. 여기에 대해서 한국일보가 위의 기사를 들고 나왔더군요. 

여기에 대해 한 포털에 올라온 댓글. "미국처럼 미스터, 혹은 미세스로만 불러도 되지 않느냐"고 하는 것이었는데, 저는 여기에 대해서도 꼭 짚고 넘어가고 싶었습니다. 

한국어의 특징 중 하나는 경어와 겸양어, 존대와 하대가 뚜렷하다는 겁니다. 존대를 안 했다던지, 누군가에게 하대를 했다던지, 심하면 어떤 사람의 성씨, 예를 들어 김씨면 "김 형!"이라고 부른다던지 하는 이 모든 것들이 관계를 틀어지게 하고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요인이 됩니다. 

미국에서 27년간 살면서 느낀 것 중 하나는 사람간의 관계를 짓는 데 언어의 구조가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겁니다. 내가 60대 노인을 만나건, 아주 어린아이를 만나건, 인사는 "How are you?" 입니다. 나이에 상관없이, 지위에 상관없이 대화엔 주어와 서술어가 먼저 나오는 것이지요. 그 목적어의 대상이 무엇이든 대화는 주어, 서술어이고 그 주어를 특별히 올려 꾸민다던지 낮춘다던지 하지 않습니다. 그런 의미를 만들어주는 것은 아마 호칭 정도? 즉 주어를 변형시킴으로서 상대방의 격을 만드는 거지요. 좀 어렵게 들리겠지만 상대방을 부를 때 "서Sir" 라던지,  "미스터" 라던지, 혹은 상사에겐 "헤이, 보스"라던지, 이런 식으로 첫 머리에서 상대방을 규정해 놓은 후에 그것에 따라 동사가 변하진 않는다는 겁니다. 

이렇다보니 서로 상대방의 관계는 참 편안하게 만들어집니다. 내가 60대 노인과 친구가 될 수 있고, 아직 채 열 살이 되지 않은 아이도 나를 기꺼이 "프렌드"라고 부를 수 있는 겁니다. 그리고 이런 '수평적인 관계'속에서 사람들은 비교적 얕지만 넓은 관계를 유지하게 되지요. 물론 여기서도 더 깊은 관계들이 생겨나게 되지만. 

한국어의 경우 동사의 변화가 상대방을 어떻게 규정하는가가 그대로 드러납니다. 그리고 존칭어, 겸양어 같은 것들이 관계를 수직적으로 만들어 버리고 여기에 감정까지 실어낼 수 있도록 합니다. 말의 동사 변화가 사회 속에서 그 사람의 태도를 규정짓는다는 건 무서운 일이기까진 합니다. 그렇지만 이게 문화인지라 쉽게 바꿀 수도 없고,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규정짓는 척도가 되는 겁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오마이뉴스의 영부인 지칭 '김 씨'나, 이를 옹호해주고 있는 한국일보의 태도는 우리가 평소에 사용하고 있는 말의 사회적 용례를 전혀 무시하고, 이제 만만한 정부 나왔으니 흔들어도 된다는, 문재인 정부를 무시하는듯한 느낌을 지지자들에게 줄 수 밖에 없습니다.


박근혜한테는 그렇게 못 했지? 왜 이명박에게는 그렇게 못 했지? 왜 지금 와서 이러지? 라는 의문, 우리가 이런 의문을 갖는 게 비정상입니까? 

제발 당신들이 그래도 상식의 편에 섰다고 믿도록 해 주십시오. 당신들에겐 공정보도를 할 권리와 의무가 있지만, 우리에게도 당신들의 잘못된 '태도'를 지적할 수 있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만일 대통령과 영부인을 미스터와 미세스로 부르려면, 한국어엔 겸양어와 낮춤어 따위도 없어야 합니다. 그런 전제조건을 무시하고 언론끼리 서로 실드 드립 쳐주는 거, 별로 보기에 안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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