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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근혜 9년… ‘잘못된 정훈교육’ 전 국민에게

근현대사 전쟁’은 보수정권 9년 동안에만 일어난 일은 아니었다. 권위주의 정부 시절에도 ‘반공이념’과 ‘정권 찬양’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역사’에 대항해 진실을 밝히려는 노력이 있었다. 민주화 이후 과거사 진상규명작업이 이뤄질 때마다 과거의 일들이 정당했다는 반박과 재반박이 뒤따랐다.
 2000년대 중반부터는 ‘민중사관’을 비판하는 학술적 담론도 좌우 양쪽에서 체계화됐다. 그러나 과거사를 둘러싼 논쟁은 2008년 이후 질적으로 달라졌다. 학계와 시민들의 판에 국가권력이 직접 뛰어들었다. 안보 혹은 경제를 위한 국가의 일은 무엇이든 정당하다는 결론이 강제됐다. 다음은 그 사례들이다.

제주 4·3사건

제주 4·3사건은 1948년 5월 10일 남한만의 단독국가 구성을 위한 선거에 반대하는 시위대에게 경찰이 총을 쏘면서 시작됐다. 군은 제주도민들을 남로당의 동조자로 간주하고 무차별 소탕작전을 펼쳤다. 1952년 한국전쟁이 끝날 때까지 계속됐다. 2000년 제정된 ‘제주4·3특별법’에 의한 조사 결과 신고된 민간인 사망자만 1만4032명(진압군에 의한 희생자 1만955명, 무장대에 의한 희생자 1764명 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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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가지난 1월 31일 중고등학교 국정 역사교과서 최종본을 공개했다. 세종특별자치시 교육부 대변인실에서 관계자가 언론에 배포할 국정교과서를 정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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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제작 보급한 만화책 <6·25 전쟁>에서 제주 4·3사건을 기술한 부분, 2016년 3월 촬영 / 경향신문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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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사건으로 희생된 가족의 시신앞에서 울고 있는 여인 / 경향신문 자료사진



국방부는 참여정부 때에도 사건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보수정부로 바뀌자 본격적 행동에 나섰다. 이명박 정부 첫 해인 2008년 초 “4·3사건에 대한 평가가 좌익 성향 위주로 돼 있다”며 국무총리 소속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에 객관적인 평가를 바란다는 취지의 공문을 발송했다. 좌익 무장세력의 폭동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민간인들의 희생은 불가피한 조치였다는 내용이다. 노무현 정부 마지막 국방장관이었던 김장수 대사2008년 총선 한나라당 비례대표로 당선돼 군의 입장을 대변했다. 박근혜 정부 시절 국가안보실장(2013~2014년)을 거쳐 현재 주중대사를 맡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국정교과서 발행을 강행했을 때 근·현대사 학자들이 가장 우려했던 내용도 4·3사건에 관한 대목이었다.
군은 2008년부터 2015년까지 각 출판사에 근·현대사 교과서 수정을 요구했다. 지난해 11월 공개한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에 4·3사건은 “제주도에서는 1947년 3·1절 기념대회에서 경찰의 발포로 사상자가 발생하였고, 1948년 4월 3일에는 5·10 총선거를 반대하는 남로당 제주도당의 무장봉기가 일어났다. 1954년 9월까지 지속된 군경과 무장대 간의 무력충돌과 진압과정에서 많은 무고한 제주도 주민들까지 희생되었다. 이로 인해 제주도에서는 총선거가 제대로 실시되지 못하였다”라고만 적혀 있다. 기존 교과서들에는 당시 미군정의 실책과 함께 서북청년단 제주도민에게 자행한 가혹한 폭력, 경찰의 고문치사 사례 등도 포함돼 있다.


6·25전쟁과 베트남 전쟁

박근혜 정부 기간 동안 ‘전쟁의 이미지’를 바꾸는 작업이 진행됐다. 박근혜 정부 들어 <연평해전>(2015년), <인천상륙작전>(2016년) 등 대형 제작비를 들여 북한과의 전쟁을 다룬 영화들이 잇달아 상영됐다. 6·25전쟁은 한국영화계의 단골 소재이니 이 자체가 독특한 일은 아니다. 박근혜 정부 시기 전쟁영화는 딱 10년 전에 만들어진 영화와 비교하면 주제의식에 큰 차이가 난다.

본격적 1000만 관객 시대를 연 상업영화인 <태극기 휘날리며>(2004년)는 선한 청년이 광기의 군인으로 변해가는 과정과 보도연맹 학살사건을 다뤘다.
 <웰컴 투 동막골>(2005년)은 전쟁에 휘말린 순박한 사람들과 남북화해의 가능성을 다뤘다.
<연평해전>과 <인천상륙작전>은 북한을 상대로 한 처절한 전투와 국군의 희생과 용기를 강조한다.
국정 한국사 교과서에는 국민보도연맹 사건,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사건 전혀 다루지 않는다. 이 공통점은 우연 혹은 시대정신의 산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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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인천상륙작전’ 관람을 위해 서울 시내 한 극장에 들어서며 일반 관람객과 인사하고 있다. 2016.8.20 /청와대 제공



< 연평해전>과 <인천상륙작전>은 군과 IBK기업은행, 모태펀드의 투자를 받았다.
영화산업 발전을 위한 기금인 모태펀드는 2016년 10월 말을 기준으로 2조4212억원이며, 민간자금이 결합된 자펀드는 14조5672억원에 이른다.
모태펀드를 운용하는 정부 쪽 주체는 중소기업청 산하의 공공기관인 ㈜한국벤처투자이다. 정부가 한국벤처투자 임원 교체를 통해 정권이 불편해하는 영화를 걸러냈다는 의심영화인들 사이에서 만연했다. 특히 <연평해전>, <인천상륙작전>, <사선에서>는 편당 평균적으로 5억에서 10억원의 투자가 이뤄진 보통 영화와 달리 30억에서 40억원 이상을 투자받았다. <인천상륙작전>의 제작사 대표의 아버지는 탄핵기각국민운동본부 공동대표이다. 군 비리를 조명한 <일급기밀>, 광주 민주화운동을 다룬 <택시운전사>는 투자를 받지 못했다.

대통령이 직접 전쟁을 언급한 사례도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해 1월과 6월 대국민 담화를 통해 “한국은 패망 직전의 월남 상황”이라고 밝혔다. 수교국인 베트남에 대한 외교 결례이자 베트남 전쟁 파병 양민학살의 책임 은폐한다비판을 받았다.


유신헌법과 박정희

박정희 정권에 대해서는 전반적인 미화작업이 진행됐다. 박근혜 정부가 박정희 전 대통령 관련 사업에 사용한 예산 총 3400억원이다. 대폭 수정되기 전 2017년 예산안(753억원)을 제외해도 4년간 사업비만 2600억원이다. 이명박 정부 4년 동안은 847억원이었다. 경북 울릉군은 박정희 대통령이 1박을 했다는 이유로 10억원을 들여 박정희 대통령 1박 기념관을, 강원도 철원군은 44억원을 들여 박정희 장군 전역 기념공원을 만들었다. 거의 ‘우상화’에 가까운 사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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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12일 박정희대통령 탄신 98주년 기념 북콘서트가 열린 서울 상암동 박정희대통령기념관에서 좌승희교수가 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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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대통령이 다녀간 흔적을 기념하는 기념비


국정 교과서에서는 박정희 시대의 그늘을 최대한 축소했다.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를 보면, 260쪽에서 269쪽까지 10쪽에 걸쳐 박정희 정권을 자세히 설명했다. “정부는 수출진흥 확대회의를 매달 개최하여 수출목표 달성 여부를 점검하는 등 수출 증대를 위해 노력하였다. 그 결과 제1·2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 기간에 수출은 연평균 36%로 급격히 늘어났다. 박정희 정부는 지속적인 산업화와 경제발전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과학기술 연구개발에 대한 중장기적인 투자와 지원이 중요하다고 판단하고, 다양한 과학기술 진흥정책을 수립하였다.” 5·16 쿠데타 세력이 내세운 “반공을 국시의 제일로 삼고…”로 시작되는 6개 항목의 ‘혁명공약’도 실었다. 반면, 유신체제에 대한 비판적인 부분은 짧게 서술했다. 고등학교 <한국사>에는 ‘유신체제의 등장과 중화학공업의 육성’이란 제목 아래에서 “유신헌법은 명목상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 및 노동 3권 등 사회적 기본권 조항들을 유지하고 있었으나, 이러한 기본권들은 대통령의 긴급조치에 의해 제한되었다”라고만 설명했다.

군은 더 적극적이다. 제주 4·3사건과 박정희 정권 시절 조작사건인민혁명당 재건위 사건,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모두 ‘종북세력’이 벌인 일이라는 내용을 육·해·공 일선 각급부대의 정신교육에 활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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