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rt of Benching 샤우드2 _ 텍스트(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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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 대(對) 생각

자, 다음 주제입니다. 지금 커다란 질문이 하나 있죠. “의식과 생각의 차이가 무엇인가?” 우리는 이걸 여기 빌라 암요에서 열린 최근 워크숍에서 어느 정도 다뤘는데요. 의식과 생각의 차이가 무엇이냐? 까다로운 주제입니다. 린다, 종이에 좀 써주실래요? 맨 위에 헤드라인처럼 써주세요. “의식 대(對) 생각.”

린다: 알았어요.

아다무스: 좀 어려운 주제이긴 합니다. 그 둘은 밀접하게 연관돼 있거든요. 하지만 그래도 아주, 아주 다르지요. 제가 이제 여기서 여러분이 그 차이점을 이해하도록 도와드려보겠습니다.

아주 자주, 그 두 가지는 서로 엮이고요. 그러면 여러분은 모든 걸 생각으로 분류하고는, 의식에 반응할 때와는 다르게 반응하죠.

자, 의식과 생각의 차이가 무엇이냐? 저는 이렇게 요약하겠습니다—아주, 아주 간단하고, 기억하기 쉽게요. 전 기억하기 쉬운 게 좋아요. 기억나죠, 린다, 우리 최근 워크숍에서 기억하기 쉬운 거 했었잖아요. 말을 사용하는 게 늘 좋지만은 않지요. 말은 너무나 제한적일 수 있잖아요. 우리는 지금 에너지적으로 소통하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이런 멋들어진 표현을 만들어냈습니다. 기억하기도 아주, 아주 쉬운 것이죠. 모든 걸 다 말로 정의할 필요가 없도록이요. 그 표현이—뭐였는지 기억나요?

네, 기억을 하는데, 말하고 싶어하지 않는군요. ‘말은 똥이 될 수 있다(Words can be turds.).’였죠.

린다: 전 정말 그 말 하고 싶지 않았어요(아다무스 키득).

아다무스: 정말로 간단하죠.

린다: 저 그 말 정말 하고 싶지 않았어요.

아다무스: ‘말은 똥이 될 수 있다.’ 뭐냐면…

린다: 전 그 말 정말 하고 싶지 않았어요.

아다무스: 제가 설명을 했지요. ‘똥’이란 고대 그리스어로, 엉망이라는 뜻이며… 네? 왜요?

린다: 그거 당신이 지어낸 말이죠.

아다무스: 제가 지어냈습니다. 완전 제가 지어낸 거죠. 하지만 제가 워크숍 참가자들에게 말했듯이, 절대로 안 잊어버릴 걸요. 여러분 이러죠. “오, 에너지 소통(energy communication)을 하고 있을 때 말을 쓰지 않기는 너무 어려워요. 마음이 자동적으로 말을 만들어내고, 그럼 나도 말을 하게 된다고요.” 네, 그래서 제가 그러잖아요. 여러분은 사실 말이 꼭 필요 없다고요. 말은 똥이 될 수 있어요. 자연스러운 열린 표현을 가로막을 수 있다고요. 그러나 그게 지금 제가 여기서 짚고 싶었던 요점은 아니고요.

의식과 생각을 구분하는 법. 그건 사실 굉장히 간단합니다—말줄임표, 혹은 말줄임표들이죠. 말줄임표들. 점 네 개요—하나, 둘, 셋, 넷. 종이에 커다란 점 네 개만 그려주세요. 점 네 개요.

자, 보통 말줄임표는—린다가 조금 있다가 적을 건데요—보통 말줄임표는 점을 세 개 찍죠. 그러나 우리는 점 네 개를 찍을 겁니다. 일종의 상징으로요. 보통 쓰는 말줄임표랑 구분하려고요. 자, 점, 점, 점. “말줄임표들”이라고 복수형으로 적어주실래요?

린다: 말줄임표들, 알았어요.

아다무스: 아니면 둘 다 써주시든지요—“말줄임표”…

린다: 바로 밑에요?

아다무스: 네, 말줄임표(ellipsis)와 말줄임표들(ellipses). 문구의 맨 끝에 찍는 영어 표기죠. 점, 점, 점, 점. 그게 바로 의식과 생각을 구분하는 방법입니다(린다가 철자를 맞게 쓰려고 애쓰며 한숨 쉼). 괜찮아요. 철자가 어려운 단어죠. l이 두 개예요. 말줄임표와 말줄임표들. 린다가 다 쓰고 나면 이제 이야기해볼 건데요.

린다: “ses”예요, “sis”예요?

아다무스: S-e-s요. 일종의, 우리들만 아는 농담이군요. 말줄임표들(ellipses). 말줄임표는 대개 점을 세 개 찍어요. 우리는 네 개를 찍을 거고요. 말줄임표들. 자, 다음 장으로 넘겨주세요.

자, 의식과 생각의 차이를 한번 설명해볼게요. 자, 여기 의식이 있습니다. “나는 나다(I Am that I Am)‥‥” 종이에 “아이 엠 댓 아이 엠”이라고 써 주세요. 점 네 개 찍어주시고요. 그게 의식입니다. 물론, 저것도 말로 표현된 거지만, 그러나 그렇게 많이 규정된 건 아니죠. 맨 끝의 점 네 개는 이제 경험 속으로 들어간다는 의미입니다. 한정돼 있지 않아요. 끝이 열려 있습니다. 그건 느낌이고, 이제 무엇으로든 들어가서 경험을 할 수 있는 것이죠. 생각 속으로 들어갈 수도 있고요. “나는 나다” 그러고서 점 네 개입니다.

반면에 생각은 여러 가지일 수 있지요. 가령 분류를 하려고 한다면 이런 식이죠—생각이 하나 있습니다. 이건 적을 필요 없어요(린다를 보며). 생각이 하나 있어요—“내가 누군지 모르겠어.” 그건 생각이죠, 혹은 “나는 쥬세피고, 조각가야.” 생각입니다. “난 예순여섯이고 기분이 좋아.” 이것도 생각이죠. 이런 것들은 생각이고, 끝에 마침표를 찍습니다. “나는 이 지구에 있는 인간이야.” 마침표. 좋습니다. 거기에 뭐 잘못된 거 없어요. 그러나 의식은 끝이 열려 있죠. 그건 “나는 나다(I Am that I Am)‥‥” 그러고서 말줄임표‘들’입니다. 말하자면 그게 의식이에요.

의식과 생각의 차이는 말줄임표들과 마침표의 차이입니다.

그밖에도 많죠. “나는 존재한다(I Exist)‥‥” 그것 좀 종이에 써주실래요. 점 네 개 찍고요. 그게 의식입니다. “나는 존재한다‥‥” 느낌이죠. 규정이나 정의가 별로 필요 없습니다.

린다: 말줄임표들이요?

아다무스: 네. 정의가 별로 필요 없습니다. 그건 의식이에요. “나는 존재한다‥‥” 그게 생각으로 간다면 이런 식이 될 수 있겠죠.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네?” 혹은 “내가 인간 몸속에 들어있다는 게 느껴져.” 혹은 “내가 얼마나 더 존재하게 될지 모르겠군?” 그런 게 생각입니다.

에너지적으로 이 차이점을 한번 느껴보세요. “나는 존재한다‥‥” 그건 의식이죠. 자각(awareness)입니다. “나는 존재한다‥‥” 그리고 이제 생각은 이런 식이죠. “나는 내가 몇 살에 죽을지 궁금해.” 그건 생각입니다. 그게 나쁘단 게 아니에요. 그게 뭐 어떻단 게 아닙니다. 다만 의식과 생각의 차이를 이해하는 건 곧, 마스터인 여러분 자신과 인간인 여러분 자신의 차이를 아는 거죠.

종이에 하나 더 써주실래요. “아름다운 날이다(It’s a beautiful day)‥‥ 아름다운 날이야‥‥” 그건 의식입니다. 말줄임표 점이 네 개 붙지요. “아름다운 날이야‥‥” 여러분 아침에 일어나서, 밖으로 나갑니다. 물론 진정 가장 높은 형태에서는, 그런 말들조차 필요가 없지요. 전 여기선 말을 사용하고 있지만요. 그냥 말줄임표 점만 네 개 찍을 수도 있어요. 그저 그날 하루를 깊이 들이마셔볼 수 있지요—말줄임표, 점, 점, 점, 점. 계속 이어짐. 더 올 게 있음. 계속 더 경험할 것임. “아름다운 날이야‥‥” 그게 의식입니다. 느낌이지요.

이제 생각이 있습니다. “아주 화창하네.” 생각이에요. “오늘 하루는 뭘 하면 좋을까.” 생각입니다. “음, 폭풍이 올지 궁금하군.” 생각입니다. “오, 오늘 날이 덥겠는데.” 그런 것들은 생각이고요, 다 좋습니다. “아름다운 날이야. 오늘 날 위해 뭔가를 해야겠어.”

자, “아름다운 날이야‥‥” 이건 의식이고요. “오늘 날 위해 뭔가를 해야겠어.” 생각이죠. 바로 그런 식입니다. 의식과 생각의 차이는 말줄임표의 차이입니다. 점, 점, 점, 점으로 끝이 열려 있느냐, 아니면 마침표로 문장이 끝나느냐.

생각은 구조화되어 있죠. 생각은 일시적입니다. 생각은 조각품, 조각상 같아요. 규정되어 있습니다. 끝에 마침표가 찍혀 있지요. 그게 그것의 끝입니다.

여러분 뇌 속에는 날마다 생각들이 많이 있습니다. 늘 생각들이 많아요. 생각들—심지어 우리가 이야기하고 있는 지금도요—생각들이 있습니다. “음, 이게 이해가 되나? 이해하고 싶긴 한가?” 생각들이죠. “오, 그거 괜찮은 생각인데요, 아다무스.” 그런 거 다 생각입니다.

결국, 의식은 사실—“아름다운 날이다‥‥”라는 말조차 사용하지 않습니다. 의식은 그저 ‘있는’(be) 것이죠. “그건(It is)‥‥” 점, 점, 점, 점. 이것도 종이에 써주세요. “그건‥‥” 여러분은 거기에 뭘 더 얹으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음, 아주 약간은 괜찮아요. “아름다운 날이야‥‥” 그건 좋습니다. 그건 의식이에요. 그러나 궁극적으로, 그건 그저 “그건(It is)‥‥ 그건‥‥”이지요. 그러고서 여러분은 그걸 느끼고, 경험합니다. 그 느낌을 경험해요. 그러고는 밖으로 나가 그걸 물리적, 정신적(mental) 형태로 경험하지요.

“그건(It is)‥‥” 그러나 지금으로서는, 여러분에겐 거기에 단어가 몇 개 붙을 수 있습니다. “아름다운 날이야(It’s a beautiful day)‥‥” 여러분은 깊이 숨 쉬며 그것을 느낍니다. 그것이 의식입니다. 그것이 자각이에요.

제가 이 이야길 꺼낸 건요, 뭐가 의식이고 뭐가 생각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경우가 너무 많기 때문이에요. “나의 어떤 부분이 의식이지? 의식은 그저 대뇌피질을 거쳐서, 거기서 방출되어 나의 다른 부분들과 연결되고 소통하는 무엇이 아닌가?” 아뇨. 그건 생각이죠—허!— 아니에요, 의식은 대뇌피질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그건 의식을 가져다가—빵!—납작하게 만들어버리는 뇌의 일부분이죠. 생각과 말로 표현함으로써요.

의식은 어디에 있을까요? 어디에나요. 여러분이 있는 곳 어디에나 있습니다. 그래야만 하죠. 그게 아니고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을 겁니다. 여러분이 여기 없다면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을 거예요. 그래서, 의식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그건 뇌에만, 혹은 몸에만 있지 않아요. 그런 것들 속에도 있지만, 어디에나 있지요. 의식은 공간을 차지하지 않고요, 어떤 형태의 시간에도 맞물려 있지 않지요. 그저 존재하고 있을 뿐입니다. 의식은요. “그건(It is)‥‥ 나는(I Am)‥‥”

반면 생각은 규정되어 있지요. 판단적인 경우가 많고요. 말로 표현됩니다. 이른바 더 효율적으로 소통될 수 있도록이요. 정체성을 형성하는 게 바로 생각이죠. 그건 다른 종이에 따로 적어주실래요. “정체성을 형성하는 게 바로 생각이다.” 의식은 정체성을 만들지 않습니다. 그러나 생각은 정체성을 만들고는 여러분을 어떠어떠한 것으로 만들지요. 여러분을 아주 독특한 개인으로, 이 지구상의 아주 복잡한 형태의 존재로 만듭니다.

그러나 그건 전부 생각이에요—“나는 몇 살이야.”라는 생각, “오, 오늘은 기분이 안 좋아.”라는 생각, “나 할 일이 너무 많아.”라는 생각, “다음 샤우드가 너무 기다려져.”라는 생각—그런 건 전부 생각입니다. 좋은 것도 있고, 별로인 것들도 있지요. 여러분은 그런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지껄이는 것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그러곤 그걸 의식이라 생각하죠. 여러분은 그게 여러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니에요. 그것들은 그저 생각일 뿐입니다. 그것들은 그저 생각이고, 지금 여러분 뇌 속에서는 너무나 많은 생각들이 돌아다니고 있지요.

여러분은 의식입니다. 여러분은 의식이에요. “나는 나다(I Am that I Am)‥‥ 아름다운 날이야‥‥ 식사가 정말 마음에 들어‥‥” 그건 의식입니다. 자각이에요. 그러고는 곧잘 이렇게 되지요. “이 토마토는 정말로 신선하네. 생선이 양념이 아주 잘 돼 있어. 케이크가 정말로 달콤하고 맛있다.”

그런 건 생각이고, 의식은 “정말 좋다, 난 오늘 식사의 에너지에 정말로 잘 연결돼 있어‥‥” 그게 의식이지요. 뒤에 점이 네 개 붙는 거요.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제가 말했듯이, 그저 ‘있는’ 것이죠. “나는(I Am)‥‥ 그건(It is)‥‥” 그게 의식입니다. 그러나, 에, 인간들은 말이 더 있기를 원하죠.

지금 여러분의 의식을 느껴봅시다. 그건 특정 장소에 있지 않습니다. 여러분 뇌에서 나오지 않아요. 생각들이 아닙니다. 그건 그저, “그건(It is)‥‥ 나는(I Am)‥‥ 그건(It is)‥‥”입니다. 자각이지요.

의식은, 그 자체로는 정체성을 절대로 형성하지 않습니다. 정체성을 만들지 않아요. 그건 아주 유동적이고, 열려 있고, 흐르지요. 그것은 문장 끝의 점, 점, 점, 점입니다. 계속해서 이어집니다. 멈추지 않아요. 흐르지요. 말하자면 하나의 의식 감각에서 다른 감각으로, 하나의 자각에서 다른 자각으로 흐릅니다. 그건 아주, 아주 열려있지요. 여러분은 의식입니다.

그리고 의식은 여러분에게 뭘 어떻게 해라 결코 말하지 않아요. 의식은 그저 여러분이 하고 있는 일을 자각하고 있을 뿐입니다. 의식은 정체성을 만들어내지 않습니다.

의식이 진정한 여러분입니다. 그것은 생각하지 않아요.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나는 나다‥‥”입니다. 의식은 여러분 내면의 진짜 답들입니다. 여러분 뇌 속을 돌아다니는 생각들은, 특히 뭔가를 알아내려고 할 때, 그러고는 상충되는 생각들에 사로잡힐 때는요, 그것은 그저 생각들일 뿐입니다.

여러분의 의식으로 돌아오십시오, “나는 나다‥‥” 점, 점, 점, 점. 그건 곧 “나는 나다‥‥ 이제 그 안으로 뛰어들어 경험을 해보자.”란 뜻이죠. 그러나 쥬세피처럼 거기 갇히지는 맙시다. 생각들 속으로 첨벙 뛰어드세요. 경험 속으로 첨벙 뛰어드십시오. 경험의 기쁨 속으로 첨벙 뛰어드세요. 혹은 원하신다면, 그것의 고통 속으로 뛰어드시고요. 어떻든 상관없습니다. 그저 그 안으로 뛰어드세요. 다만 말줄임표들입니다. 계속됨이에요.

네, 생각들도 늘 계속된다고 반론할 수도 있겠죠. 그러나 그건 생각들의 연속일 뿐입니다. 끝에 마침표가 찍힌 문장들의 연속이요. 규정되고, 짜여 있어요. 마음(mind)처럼요.

마음은 생각들을 만들어냅니다. 그것은 의식을, 말하자면 인식합니다. 아주 제한된 방식으로요. 그러고는 생각들을 만들어내죠. 그게 여러분의 정체성을 형성하고요. 그건 어느 정도까진 괜찮습니다만, 여러분이 그 안에 갇혀버리면 그때부턴 아니죠.

마음속의 생각들은—마음이 흥미로운 점은요, 우리가 앞으로 가는 길에 이 점이 매우 중요한데요—제가 이런 이야기들을 꺼내는 이유는, 여러분 마음이 바뀌고 있어서예요. 여러분은 멘탈적으로 짜인 생각 기반의 현실에서 점점 벗어나서 의식 지향적인 현실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의식으로 돌아오고 있어요. 여러분 자신을 여러분 ‘온 존재(All That You Are)’와 동일시하는 정체성으로 돌아오고 있어요. 작디작은 여러분이 아니라요.

마음은 아주 꽉 짜여 있습니다. 마음은 주조된 청동상과 같죠. 스스로를 특정 표현으로 주조하고는 움직이지 않지요. 마음은 그런 식이에요. 그러나 마음의 특징 한 가지는, 특히 바로 지금이요, 순종적이라는 겁니다. 린다, 그것도 밑에 좀 써주실래요. 이거 아주 날카로운 지적이죠. 마음은 순종적입니다.

린다: (작은 소리로) 알았어요.

아다무스: 마음은 시키는 대로 합니다—생각을 가지라고 하면 그렇게, 현실을 형성하라고 하면 그렇게, 하나의 정체성 안에 머물라고 하면 그렇게 합니다. 여러분의 일부분이 마음에게 그렇게 하라고 말을 했고, 마음은 아주, 아주 말을 잘 듣지요. 마음은 하라는 것을 합니다. 그리고 그걸 아주 극단적으로까지 하지요.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요.

린다: 마침표예요, 아님 말줄임표?

아다무스: 아무것도 필요 없어요. 아무것도요.

마음은 아주 순종적입니다. 그리고 지금 마음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냐면요, 여러분의 의식이 점점 더 자각 속으로 들어가고 있기 때문에, 마음은 순순히 따르기 시작합니다. “이제 우리가 생각들과 이 현실을 대하는 방식을 완전히 바꿀 때구나. 의식이 들어올 때야. 의식은 커다란 빛이고 커다란 전체 그림이지.” 생각들이 끼어들어서 그 현실을 형성하는 데 일조하지만, 과도하게 규정하면서 그렇게 하지는 않지요. 마음은 지금 아주 순종적입니다. 비록 저항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그것은 이렇게 말하고 있어요. “난 변화할 준비가 됐어.”

이걸 잠시 한번 느껴보실래요? 여러분 자신의 뇌 속에서, 마음속에서요. 지금 여러분의 수천억 개의 뉴런들이 점화되고 있어요. 사실 너무 굉장해서 상상하기도 어려울 정도죠. 그러나 마음은 그저 반응 메커니즘입니다. 그저 컴퓨터예요. 여러분이 프로그램해 놓은 것을 하려고 있는 거죠. 그리고 이 경우, 앞으로 벌어질 중요한 일은 이런 겁니다. “나는 이게 전부 내 에너지라는 걸, 그리고 나를 섬기려고 있는 거란 걸 깨달았어.” 그러고는 그렇게 되도록 허용하는 거죠. 과거에는 이랬거든요. “에너지는 전부 다른 누군가의 것이고, 나는 내 분량의 에너지를 얻어 와야 해.”

이제는 다릅니다. 그리고 마음은 지금 그것에 적응하고 있어요. 마음은 당신의 소리를 들었습니다. 당신이 이렇게 말하는 걸요. “그래, 좋아. 난 에너지의 봉사를 받을 준비가 됐어.” 마음은—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적응하기 시작할 겁니다. 순종적이 되어서 말하죠. “우리는 이제 별로 익숙하지 않은 개념들을 받아들여야겠다. 그러나 우리는 받아들일 거고 적응할 거야. 이 에너지가 사실 우리 것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거야.” 그리고 이제 마음은 그것에 맞춰 적응합니다. 마음은 말해요. “나는 내 단일한 정체성을 고수할 필요가 없어. 나는 내 온 존재야(I Am all that I Am.).”

마음은, 에, 약간 구조적으로 짜여 있긴 하지만요. 그러나 말을 잘 듣습니다. 그래서 이러죠. “좋아, 우리는 이제 정체성 필요 없어. 네가 전에는 우리에게 정체성이 필요하다고 말해서 내가 만들었던 거잖아. 그런데 이제는 정체성이 필요 없다고 말하고 있구나. 좋아, 우린 아주 유동적이 되겠어. 아주 열려있고 유연해질 거야.”

바로 지금, 여러분의 마음, 뇌는 적응하고 있고 조정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애쓸 것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밀어붙일 필요가 없어요. 여러분은 마음 훈련이니 뭐니 할 필요 없습니다. 마음이 적응하고 있어요. 바로 지금—마음은 언제나 그러하지만요—그건 지금 마스터, 바로 마스터인 여러분의 말을 따르고 있습니다.

이 점을 깊이 호흡해 들여봅시다.

이런 변화들이 바로 여러분이 겪고 있는 것들입니다—전 여러분이 겪고 있는 걸 그저 말해줄 뿐이에요. 그걸 하고 있는 건 여러분이에요, 제가 아니라요—여러분은 이런 변화를 겪고 있지요. 구조적으로 짜인, 혹은 주조된 정체성들이 더는 필요 없어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더 이상 조각상이 아니에요. 바로 지금, 의식과 생각의 차이를 이해하고 있으니까요. 그건 간단하죠. 의식은 사실 느낌입니다. 끝이 열려 있어요. 말줄임표들이죠. 점, 점, 점, 점. “나는 존재한다‥‥ 나는 존재한다‥‥ 아름다운 날이야‥‥ 이 기계들의 시대에 여기 있는 게 참 좋아‥‥” 여러분은 이럴 수도 있어요. “음, 이건 의식인가, 생각인가?” 그럼 그것마저 의식으로 가져오십시오. 그러면 그렇게 됩니다.

생각은 이런 겁니다. “나는 내가 여기 도달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어.” 생각이죠. “내가 예상했던 게 아냐.” 생각입니다. “기계들의 시대란 게 대체 뭐야?” 그러나 의식은 이럽니다. “나는 여기 있다(I Am Here)‥‥ 나는 여기 있다‥‥” 생각이 필요하지 않지요.

의식이 바로 진정한 여러분입니다. 생각은 그저 그것을 경험하고 행동에 옮기는 방식일 뿐이죠. 그것들을 청동상 안에 가두지 맙시다.

깊이 호흡해봅시다.

여러분의 마음이 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순수의식과 그것의 차이점을 이제 이해하기 시작했어요—그건 자각이죠—그 나머지는 다 생각이고요.

여러분 뭔가를 선택할 때 어디로 갑니까? 경험할 준비가 되어 있을 때 어디로 가요? 큰 변환을 할 준비가 되었을 때 어디로 가요? 바로 의식으로 가지요.

“나는 내 온 존재(all that I Am)를 선택한다‥‥ 나는 기쁨을 선택한다‥‥” 그게 바로 의식입니다. 여러분은 그게 생각이라고 반론할 수도 있겠지만, 한 마디로 하면 그것은 문장 끝의 점 네 개지요. “나는 기쁨을 선택한다‥‥” 그러면 그렇게 되고요. 혹은 “나는 기쁨을 선택한다.” 마침표. 끝에 찍는 마침표요. 그런 차이죠.

이 점을 깊이 호흡해봅시다. 이러한 전환을 위해서요. 여러분 의식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여러분이 이제 더는 정체성을 형성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위해서요. 여러분은 자유롭게 진정한 여러분 온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특정 조각상에 갇혀있지 않고요. 이 점을 잠시 느껴봅시다.

(침묵)

아! 아주 창의력을 발휘하는 분들도 있군요. 그래요, 점 네 개 목걸이, 다이아몬드를 일렬로 네 개 박는 거요. 오, 린다가 하고 있는 거군요(둘 키득). 그런 식으로 간단하게 한번 생각해보세요. “방금 그가 뭐라고 말했더라?”하면서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마시고요. 차이는 그저 말줄임표입니다. 점, 점, 점, 점. 그게 의식이에요. 반면 생각은 마침표로 끝나고요. 상당히 간단하죠.

우리의 빛을 비추기—미랍

좋아요. 넘어갑시다. 우리 할 일이 좀 있잖아요. 지금 우리가 이 지구에 있는 진짜 이유 말이에요. 같이 벤칭을 좀 해볼 겁니다. 에너지를 다 같이 좀 모아보죠. 음악을 좀 틀고요, 우리가 하려고 여기 온 바로 그것을 해봅시다.

물론 여러분은 언제든 원하는 때 혼자서 벤칭을 할 수도 있지요. 그렇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이게 훈련이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힘들게 할 필요도 없고요. 그저 여러분의 일상적인 하루에서 잠시 멈추는 시간이면 됩니다…

(음악 시작)

…그러고는 말하는 거죠. “이제 벤칭할 시간이구나. 그저 내 빛을 비출 시간이야. 그게 바로 내가 여기 있는 이유지. 나는 바로 이것을 하려고 이 놀라운 시대에 여기 이 지구에 왔어.”

그리고 벤칭의 아름다운 점은요, 여러분은 변화를 이끌어내려고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여러분은 세계 평화를 시각화하고 그럴 필요 없어요. 이럴 분도 있겠죠. “음, 하지만 그건 좋은 거 아닌가요?” 어느 정도까지는요, 그러나 전 그것보다 연민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겠습니다.

연민은 받아들임이죠. 모두들 자기만의 여정을 가고 있습니다. 네, 고통을 선택하는 이들도 있지요. 학대, 마약, 알코올 중독 같은 걸 선택하는 이들도 있어요. 그건 그들의 선택이에요. 준비가 되면 그들은 여러분에게 올 겁니다. 혹은 그들 자신에게로 가거나요. 여러분의 빛에 영향을 받을 겁니다. 그거 이외에는, 손 떼세요. 그들이 스스로 선택한 것들을 경험하게 두십시오. 그게 연민입니다.

자, 우리는 여기서 벤칭을 할 겁니다. 벤칭이요. 아! 커피 한 잔과 함께, 혹은 먹을 것도 좀 두고요.

벤칭은 명상이 아닙니다.

벤칭은 명상이 아니에요. 정말 많은 사람들이 마음(mind)을 가라앉힌다고 명상을 하는데요. 휴! 어우! 행운을 빕니다. 의식과 생각의 차이를 이해하기 전까진 어림없죠.

벤칭은 이거죠. “난 여기 도달했어. 나는 여기 있어(I Am Here). 나는 이 지구상의 마스터야. 난 에너지가 나를 섬기도록 허용하고 있어. 이제, 나는 그저 여기 앉아서 내 빛을 비출 거야. 잠깐 이런저런 온갖 활동들을 멈출 거야. 잠시 멈추고 그저 내 빛을 비출 거야.”

“먼저, 나 자신에게, 내 몸 위에 빛을 비출 거야.” 오, 몸이요, 오늘 우리는 그건 다루지도 않았죠. 이제 몸은요, 빛몸(light body)으로 들어갈 겁니다.

“나는 내 빛을 내 마음에도 비출 거야. 내 머리 제일 윗부분에 놓인 이 말 잘 듣는 물건은 내 말을 아주 오랫동안 잘 들었지. 그저 조각상이었어. 이제 나는 내 의식 속에서 아주 명료해지고 있어. 따라서 마음은 그것에도 순종해서, 활짝 열릴 거야.” 마음은 아주 순종적이고 아주 유연하지요. 가끔 이 두 가지는 잘 양립하지 않습니다만, 마음은 아주 유연합니다.

알아요, 여러분 이러네요. “아다무스, 당신은 지금까지 마음한테 상당히 박하게 굴었잖아요.” 그랬습니다. 아시잖아요, 가끔 샴브라들과 함께 작업하는 건요, 한 무더기 청동상에 대고 이야기하는 것 같다니까요. 여러분의 주의를 끌어야 했습니다. 여러분에게 불어 닥치는 토네이도 역할을 제가 좀 해야 했어요. 그러나 이제는 그 정체성이, 그 청동상이 부서지고 있고, 마음은 이제 풀려나 마스터인 여러분에 복종할 수 있게 되었죠.

마음은 이제 풀려나서 에너지를 다른 방식으로 끌어올 수 있습니다. 마음은 이제 자유로워져서 저 스스로 내부에서 다른 방식으로 의사소통하지요. 더 이상 뉴런에만 의존하지 않습니다.

마음은 이제 자유로워져서 앞으로 올 것에 적응하고 거기 맞춰 조정할 수 있습니다.

마음은 꼭 그 복잡한, 신경증적인 뉴런 활동의 소통 체계일 필요가 없어요. 그게 필요 없지요.

그래서 우선,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에게, 자신의 몸에 빛을 비춥니다. 변화를 만들어내려고 애쓰지 않습니다. 그저 자연스런 진화를 허용하는 거죠.

그 다음은, 여러분의 마음으로 빛을 비춥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주조해내려고 하지 않아요. 그것을 어떤 청동상 같은 걸로 만들어내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저 여러분의 빛을 내뿜으며 말하는 거죠. “마음아, 정말로 많은 잠재성들이 있어. 그걸 한번 선택해보자.”

여러분은 여러분의 빛을 여러분의 삶 전체로 비춥니다. 뭘 만들어내려고, 뭘 하려고 하지 않아요. 그저 빛을 비추는 겁니다.

결국 빛이 뭔가요? 빛은 의식이죠. 자각, 생각 이전에 있는 것, 말줄임표들입니다. 점, 점, 점, 점.

여러분은 이제 정말이지 여러분 자신의 빛을 통해 스스로를 자각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여러분의 온 존재를 자각하고 있어요. 여러분이 이 청동상이 아니란 걸 자각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그 빛을 이 세상으로, 지구로, 물리적인 행성, 가이아로 비춰봅시다—가이아는 지금 떠나는 중입니다만, 여전히 제 일을 하고 있지요—자연으로요. 정말로 아름답지요.

여러분은 새 지구(New Earths)에서 정원들을 볼 수 있는데요. 그건 이 행성의 자연을 바탕으로 창조된 것이죠. 이 행성을 떠나 새 지구로 간 정말 많은 분들이 자연의 아름다움을 가져가고 싶어했습니다. 정원들이 아주 멋지지요. 그들은 여기 이 지구의 자연의 핵심 개념들을 가져가서 새 지구에서 재현해냈습니다.

지금 여러분 전화기에 아름다운 자연 사진들 있다고 생각하시잖아요. 그러나 새 지구에 갈 때까지 기다려보시라니까요, 혹시 가게 되신다면 말이죠.

우리의 빛을 세상으로 비추면서, 사람들은 지금 그들이 선택한 것들을 하고 있다는 점을 깨달읍시다.

네, 많은 분들이 말하죠. 사람들이 당혹스러워하고 있다고, 아파하고 있다고요. 그러나 그들을 구해주려고 하는 대신, 우리는 그저 이렇게 말합니다. “음, 여기 또 다른 잠재성이 있어요. 당신이 할 수 있는 다른 것이 있어요. 꼭 길을 잃고 헤매야 할 필요가 없어요. 아파해야 할 필요가 없어요. 에너지 뱀파이어가 돼야 할 필요가 없어요. 권력에 눈 먼 자가 될 필요가 없어요. 여기 빛이 있어요. 그게 다른 선택지를 보여줄 거예요.”

우리의 빛을 지금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에게로 비춥시다. 그들에게 그 무엇도 강요하지 않습니다. 아무런 속셈도 갖지 않아요. 그저 빛을 비출 따름입니다.

이건 구조 작업이 아닙니다. 판단이 아니에요. 그저 말하는 거죠. “빛이 있게 하자. 당신이 보기로 선택한다면 볼 수 있도록.”

(침묵)

그래서 우리는 여기 샴브라들의 집에 모여 있습니다—물론 형체는 없죠—우리의 빛을 인류에 비추면서요.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이것보다 더 큰 봉사가 어디 있을까요. 이보다 더 훌륭한 봉사가 어디 있을까요?

(침묵)

여러분이 전에 했던 에너지 작업들을 이어받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구상의 에너지 유지자들(energy holders), 대의명분을 위한 일꾼들이요. 그들은 가난하고 궁핍한 자들을 돌보는 이들입니다. 네, 그런 일을 할 이들이 필요하죠.

여러분이 에너지 유지자로 했던 작업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있어요. 이 영역과 다른 영역들, 인간과 신성 간의 아주 중요한 연결을 이어가는 사람들이요. 그들은 아주, 아주 오랫동안 여기 있었습니다. 대개는 외딴 곳에서 따로 지내는 경우가 많죠. 어딘가에서 이 연결을 유지하고 이어가면서요.

여러분 상당수가 과거에, 과거 생애들에서 이런 에너지 유지자, 대의명분 활동가의 역할을 맡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지금 여러분은 그 먼 과거부터 계획했던 것을 하려고 이번 생애에 와 있죠. 마스터가 되려고, 빛을 비추는 마스터가 되려고요.

우리는 지금 온 자연으로, 온 하늘로, 온 지구로 우리의 빛을 비추고 있습니다.

진정, 지구에 이보다 더 큰 선물은 없지요. 인류에게 이보다 더 큰 선물은 없습니다.

우리는 선교사도, 사절단도 아닙니다. 음, 선교사들은, 참으로 흥미롭죠. 자기가 하는 일이 너무나 옳다고 생각해요. 하느님과 예수님의 말씀을 모두에게 전파하려 했죠. 심지어 원하지도 않은 사람들한테요. 선교 활동엔 커다란 정당성 의식이 있었습니다. “자, 이 책을 읽으십시오.”

선교사들이 사람들에게 가서 이렇게 말했다면 좀 달랐을 거예요. “있잖아요, 혹시 변화를 찾고 있거든, 변화는 이미 여기 와 있답니다.” 그러나 그 대신 그들은 책들과 규칙들과 규제들을, 수많은 폭력을 들여왔죠.

아뇨, 우리는 선교사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사절단이 아니에요. 우리는 그저 공원 벤치에 앉아서 우리의 빛을 내뿜는 마스터들이죠. 그리하여 다른 이들이 지금, 혹은 나중에 자기 자신의 장대한 잠재성들을 볼 수 있게 말이에요.

전 이 작업이 정말 좋습니다. 우리가 바로 지금 하고 있는 이거요, 정말 좋아요. 지난 숱한 세월 해왔던 그 온갖 논의와 강의들 그런 것들보다 약간은 더 쉽잖아요. 전 이게 정말로 좋습니다. 여러분과 그저 공원 벤치에 같이 앉아 있는 거요.

있죠, 여러분의 빛을 비추는 건 별로 어렵지 않습니다. 특히 그 빛이 뭔지를 여러분이 알고 있다면요. 그건 여러분의 의식이지요. 여러분이 여러분의 빛과 생각의 차이를 알 때, 의식과 뇌 활동의 차이를 알 때 이건 훨씬 더 쉬워집니다.

다음에는 카푸치노 한 잔 있음 좋겠군요. 크림만 넣은 커피 말고요. 크루아상도 하나 있고 말이죠. 하지만 전 여전히 여기 있을 겁니다. 여러분과 함께 이걸 하면서, 우리의 빛을 비추면서요.

있죠, 진정으로 아주 안전하게 느끼면서 활짝 열고 빛을 비추는 건 참 기분 좋지요. 뭔가가 침범해 들어오지 않을까 걱정도 하지 않아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니까요. 왜냐고요? 여러분은 무엇도 바꾸려고 하지 않으니까요. 여러분은 그저 빛을 비추고 있을 뿐입니다.

여러분의 빛을 세상에 비춘 것에 반응이라는 게 있을 수 있다면, 그건 아마 세상이 그 빛을 여러분에게 되비춰주는 것일 겁니다. 그건 여러분이 뭔가를 바꾸려고 하는 거랑은 달라요. 그러면 에너지도 자연히 여러분을 바꾸려 할 거거든요.

“이거 상당히 쉬운 거네.” 여러분 생각하죠. “그냥 공원 벤치에 앉아 있는 거잖아.” 그러나 여기 다다르기까지 일어났던 그 모든 일들을 생각해보세요. 온갖 시행착오, 시련들, 경험들, 잘못된 길이라 여겨졌던 그 선택들, 잘못된 사람들과의 잘못된 그 선택들. 여기 다다르기까지 한참이 걸렸잖아요.

이제는 간단합니다. 네, 하지만, 오, 평균적인 인간들은요, 그들을 여기 공원 벤치로 데려다가 앉혀놓으면, 아마 이걸 다 망쳐버리고 어렵게 만들어놓을 길을 찾겠죠.

깊이 호흡합시다. 여러분은 빛을 내뿜고 있습니다.

있죠, 이렇게 빛을 내뿜을 때요, 여러분은 모든 것을 완전히 새롭게 보게 됩니다. 자연이나, 심지어 다른 사람들을 볼 때도 말이죠.

여러분 스스로에 대해서도 새로운 인상을 갖게 되지요.

마음이 온갖 것에 마침표를 찍으려고 하면서 정신없이 생각들을 쏟아내지 않으니까요.

그보다는, 열려있음입니다. 센슈얼리티(sensuality)죠. 이제 모든 게 의식에서 나오니까요—“나는 나다(I Am that I Am)‥‥”—여기엔 점이 네 개니까요. 마침표가 아니라요.

또한 관찰자가 되십시오. 관찰자가 되세요. 지금 당장이 아니라요, 앞으로 몇 주 동안이요. 지구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어떤 변환이요?

처음에 여러분은 이럴 겁니다. “음, 그건 우리랑은 아무 상관이 없겠지. 원래 일어날 일이었겠지.” 그러나 우리가 이걸 다 같이, 혹은 여러분 혼자서 충분히 자주 한다면, 여러분 이렇게 말하게 될 걸요. “뭔가가 정말 바뀌고 있구나.”

여러분 뉴스를 들으면 이러잖아요. “오늘 아주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일반적인 패턴을 따르지 않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난데없이 말이죠.” 그때 여러분은 미소 지을 수 있지요. “아마도 우리의 빛이 영향을 미쳤나보군. 어떤 변화들을 야기했나봐.”

새로운 과학적 발견에 대해서도 듣습니다. 사람들이 말하죠. “세상에,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거네요. 전혀 생각지도 못한 거예요. 완전히 예상 밖이군요. 기존의 사고를 완전히 거스르네요.”

“이건 너무나 새로워, 예상치 못한 거야.” 이런 식의 이야기들을 들을 때 여러분은 미소 지을 수 있을 겁니다. 스스로 어깨를 토닥이며 말할 수 있겠죠. “빛이 뻗어나갈 때, 빛이 비출 때 이런 일이 일어나는구나.” 답을 찾고 있던 과학자들에게 뻗어나가든, 낡은 사회 구조의 변화를 야기하든지요.

여러분은 “예상 밖”, “전례 없는”, “난데없는”, “전적으로 다른”, “비약적 변화” 같은 말들이 들려오기 시작하거든, 미소 지으시면 됩니다. 이런 벤칭을—휴!—이렇게 열심히 여기서 벤칭을 하는 게 지구에 무슨 일을 하는지 보십시오.

이게 바로 지금 여러분이 여기 와서 하려고 했던 일입니다.

이제 더는 여러분 자신을 고치려 애쓰는 문제가 아님을 여러분은 깨닫습니다. 필요가 없어요. 어찌됐든 그것도 고통이지요.

그건 마치 늘상 청동상을 작업하는 조각가와 같습니다. 그냥 손 놓으세요. 조각상 깨뜨려버리십시오. 여러분은 여기 마스터가 되려고 온 겁니다. 여러분의 에너지가 여러분을 섬기게 하려고, 여러분의 빛을 내뿜으려고요. 그토록 간단합니다.

음, 오늘 재미있었습니다. 전 이제 가야해요. 상승 마스터 클럽으로 올라가서 제 크리스털 볼을 들여다보고 싶네요. 우리가 오늘 한 일이, 우리 샴브라들의 집단 벤칭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보고 싶어요. 그 영향을 보고 싶습니다. 에너지가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를 보고 싶어요. 혹시 바뀐다면 말이죠. 빛이 진정으로 변화를 만들어내는 부분들을 보고 싶습니다.

여러분도 똑같이 하세요. 눈을 크게 뜨고 귀도 열어놓으십시오.

다 같이 깊이 호흡해봅시다. 모든 창조 속에서 모든 건 좋다는 걸 언제나 기억하시고요. 특히 여러분의 빛이 있을 땐 말이죠.

자, 그럼, 친구들, 저는 주권적 영역의 아다무스였습니다. 고맙습니다.

린다: 자, 그럼, 크게 심호흡하면서, 계속해서 이 아름다운 아다무스의 메시지를 느껴봅니다.

단순히 문장들을 넘어서 진실로 전체를 느껴봅니다.

깊이 호흡하며, 자신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무엇보다도요, 이 벤칭 시리즈에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과 함께 할 수 있어서 참 좋았고요,

아시겠듯이, 저희는 12월 샤우드로 돌아오겠습니다.

이 자리에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크림슨서클

전 세계 새 에너지 교사들 연합

www.crimsoncircle.com

※ 참고: 아다무스 채널링 전후의 린다 멘트는 영어 본문에 포함되어 있지 않으며, 번역자가 임의로 번역한 것.

※ 원문 링크: https://cdn.crimsoncircle.com/library/50/297/654/pdf/en-US/20211106_ArtofBenching_02_English_Letter.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