錢 의 전쟁 ‘0.1초의 승부사’


“지금 올라온 것 체결해 주세요. 네.8만 5500원이에요.14만주.”
지난 22일 오후 2시30분. 증시 장 마감을 30분 앞두고 수화기를 든 박재영(36) 팀장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서울 여의도 한국투신운용 15층 운용지원팀 트레이딩룸.5명이 일하는 이 곳의 분위기는 미국발(發) 경기침체의 여파로 주가가 온통 곤두박질쳐 ‘난리’가 난 바깥 분위기와는 대조적으로 한결 느긋해 보였다. 박 팀장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오늘처럼 장이 크게 빠지는 날에는 여유가 있는 편”이라면서 “주가가 오를 때 훨씬 바쁘다.”고 했다.  





● “펀드매니저는 작전부장, 트레이더는 보병”





그는 트레이더(trader)다. 국내에선 일반인들에게 아직 낯설다. 트레이더는 자산운용사에 소속돼 주식을 사고파는 주문행위를 하는 사람이다. 펀드매니저가 고객이 맡긴 돈을 어떻게 운용할까 중·장기적으로 전략을 짜고 매매 여부를 결정한다면, 트레이더는 증시 상황을 체크하면서 시시각각 매매 여부를 판단한다. 펀드매니저가 (주식 매매)‘전투 작전’을 짜는 작전부장이라면 트레이더는 실제 주식시장이라는 전장의 최전선에서 빗발치는 총알 속을 내달리는 보병이다. 큰 틀에서 매매를 결정하는 것은 펀드 매니저의 몫이지만 트레이더는 급변하는 증시 상황을 빠르게 판단, 매매의 방향과 규모 등에 영향을 미친다. 겉으로는 조용해 보이지만 컴퓨터 모니터 안에서는 초 단위의 시간 싸움을 벌여야 한다.

박 팀장의 임무는 주식과 채권의 매매 주문을 총괄하는 것. 이날 하루에만 900억원에 가까운 주식매매를 체결했다. 팀장인 그는 자신의 매매는 물론 팀원들의 중요한 매매도 꼼꼼히 챙겨야 한다. 박 팀장의 일 평균 매매 규모는 900억∼1000억원 수준이다. 그는 “시간과 가격, 거래량에 따른 다양한 기준에 따라 매매를 한다.”면서 “시장 상황을 실시간으로 체크하고, 중요한 매매는 펀드매니저와 상의해 매매 방향을 순간순간 조정한다.”고 설명했다.

● 장중엔 휴대전화 거둬 자물쇠 채운 사물함으로

정보와 돈을 다루는 업무 특성상 트레이더에 대한 사내 컴플라이언스(준법감시 시스템)는 엄격할 수 밖에 없다. 개인적인 주식 투자는 일절 금지돼 있다. 장중에는 휴대전화를 거둬 사물함에 넣고 자물쇠를 채워 둔다. 박 팀장은 “개인적으로는 펀드 등 간접투자만 한다.‘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말처럼 투자를 아주 잘 할 것 같아도 그렇지 못하다.”며 머쓱해 했다.

트레이더의 하루 일과는 정말 빡빡하다. 오전 6시에서 밤 11시까지 주식에서 시작해 주식으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점심 때는 자리를 비우기가 쉽지 않다. 바쁠 때는 주로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운다. 중요한 약속이 있을 때는 가끔 밖에서 먹기도 한다. 그러나 일이 터지면 밥 먹다가 숟가락을 내던지고 다시 들어와야 한다. 저녁 약속이 있어도 과음은 금물이다. 다음날 업무에 큰 차질을 빚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박 팀장은 “그래도 내가 생각했던 매매 전략과 시장의 움직임이 일치하면 큰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숨막히는 업무 특성에 따른 스트레스와 건강 관리는 이젠 습관이 됐다. 새내기 트레이더 시절 매일 점심을 햄버거와 자장면으로 해결했더니 몸무게가 금세 10㎏ 늘어나고 불면증에 시달리는 등 이상 신호가 나타났다. 이후부터는 아침은 꼭 챙겨 먹고, 주말마다 등산을 하고 있다. 매매가 잘 안될 때는 잠시라도 밖에 나가 찬 바람을 쐰다. 요즘에는 마라톤에 재미를 붙였다. 올해 목표는 하프 마라톤 완주다.

거액을 주무르지만 연봉은 일반인들의 생각처럼 대단하지는 않다. 그는 “개인적인 연봉은 회사 규정상 밝힐 수 없지만 국내 자산운용사 과장급에 준하는 연봉에 업무 성과에 따른 성과급을 따로 받는다.”고 귀띔했다.

● 전공제한 없고 자격증도 필요 없어

현재 국내 50개 자산운용사에 소속된 트레이더는 약 100여명에 이른다. 경영·경제학 전공자가 많지만 전공에 제한은 없다. 보통 자산운용사에 입사한 뒤 교육을 받고 트레이더로 활동하는 경우가 많다. 운용전문인력 자격증이 있어야 하는 펀드매니저와는 달리 자격증도 필요 없다. 박 팀장도 대학에서 산업공학을 전공한 공학도 출신이다. 모의투자라는 개념이 생소했던 1996년 ‘전국 대학생 모의투자게임’에서 은상을 받으면서 트레이더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아직 트레이더라는 개념 자체가 국내에선 정착되지 않은 걸음마 수준이다.8년 경력의 박 팀장이 1.5세대 정도다. 그만큼 가능성도 많다. 업무 특성상 펀드매니저나 증권사 브로커로 자리를 옮겨 활동 영역을 넓히는 트레이더들도 적지 않다. 그는 “앞으로 트레이더의 역할은 국내 주식 매매는 물론 세계 시장 매매를 동시에 수행하는 방향으로 확산될 것”이라면서 “전문성을 키울 만한 미개척 분야”라고 소개했다.

요즘처럼 증시가 요동칠 때 트레이더인 그의 생각은 어떨까. 박 팀장은 “매일 스트레스 받으면서 주식 투자에 매달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갈수록 복잡해지는 금융환경에서 개인이 기관보다 투자를 잘 하기는 어려운 만큼 멀리 내다보고 펀드 등 간접투자상품에 장기투자하는 것을 권하고 싶다.”고 충고했다.

김재천기자 patrick@seoul.co.kr


■ ‘수익률대회 1위’ 그들은 지금


증권사들의 실적 수익률 대회에 입상한 사람들은 누구이고 어디에 있을까. 대회 당시 직업은 다양하지만 그 이후 대부분 전업투자자의 길을 걷고 있다. 잠깐 증권사에 근무하기도 하지만 조직에 매이기보다는 자유로운 매매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입상한 수익률 대회를 개최한 증권사의 재테크 설명회에 강사로 등장, 투자기법을 소개하기도 한다. 때로는 수익률 대회 입상자끼리 투자자문사를 차리기도 한다.2006년 말 출범한 나눔투자자문이 대표적이다.2005년 한화증권 수익률 우승자인 박진섭 사장,2003년 동원증권(현 한국증권) 수익률 대회 출신의 유수민 이사,2002년 메리츠증권 수익률 대회 김동일 이사로 이뤄져 있다.

수익률 게임의 원조는 한화증권이다.1999년 1회 대회를 시작으로 1년에 두번씩 개최하기도 해 지난해 18회까지 대회를 치렀다.‘주식 살 때와 팔 때’라는 책을 쓴 최진식 마이다스 주식투자연구소장이 이 대회를 통해 유명해졌다. 최 소장은 1999년 열린 1회 한화증권 수익률 대회에서 두개의 계좌에서 두달 만에 각각 2850%와 1600%의 수익률을 냈다.2000년 열린 한화증권 수익률 대회에서도 1771% 수익률로 다시 1등을 거뒀다. 한 때 한화증권에 입사했으나 전업투자자의 길을 걷고 있다.

젊은 층 전용의 수익률 대회로는 2003년 12월에 시작된 동양종금증권의 영파워랠리가 있다. 이 대회 3위 입상자까지 특별채용된다.5회까지 대회가 치러졌고 지금까지 13명이 입사했다. 지난해 열린 영파워랠리에서 우승한 한승훈씨는 현재 신입사원 교육 중이다.

가족 전체가 전업투자자로 활동, 수익률 대회를 휩쓰는 경우도 있다. 광주광역시에서 전업투자자로 활동 중인 박현상씨와 처가 식구들은 ‘여수 고래 패밀리’라고 불린다. 그들 가족은 각종 대회 입상은 물론 우승도 휩쓸고 있다.

수익률 대회는 특정 기간에 최고의 수익률을 거두는 사람이 우승한다. 그러다 보니 참가자들은 장기투자보다는 단기투자에 집중하게 된다. 증권사가 매매수수료를 거두기 위해 수익률 대회를 연다는 비판도 있다. 수익률 대회 입상자는 “평소에는 장기투자를 하는데 대회에서는 입상해야겠다는 생각에 단타매매를 하게 된다.”고 털어 놓았다.

전경하기자 lark3@seoul.co.kr


■ “손실에도 인내는 필수 장기분산 투자가 최고”

예상과는 달리 연초부터 주가가 폭락하면서 증권포털 사이트인 ‘팍스넷’(paxnet.moneta.co.kr)에는 주식시장을 떠나는 개미 투자자들의 하소연이 잇따르고 있다.

36세의 결혼 5년차 학원강사라고 자신을 소개한 한 남자는 주식시장에서 자진퇴출을 선언하고 “두려움과 공황상태”라고 심경을 밝혔다.2006년 4월 들어와서 지금까지 날린 돈은 수천만원. 주변에서 ‘누가 돈 벌었다더라.’는 얘기에 현혹돼 3000만원을 들고 주식 투자에 ‘입문’했다. 그러나 기다리기 싫어하는 초조함이 투자를 실패로 이끌었다. 그는 “꿈에 거지꼴을 하고 있는 악몽을 자꾸 꾼다. 이젠 정말 떠나야 할 것 같다.”고 했다.

한 전업투자자는 “전업투자는 도박과 다름없는 짓”이라면서 “전업투자를 하는 동안 어딜 편히 가지도, 다른 것을 편히 해본 기억이 없다.”고 돌이켰다. 또 “1000만원 정도 잃고 나가는데 무엇보다 이 정도에서 정신차려서 이 바닥 뜨는 것이 다행이고 행복하다.”며 자신의 처지를 ‘성공담’으로 소개했다.

25살의 한 복학생은 지난해 9월에 주식을 시작, 다행히(?) 최근 1700∼1720선에서 보유 주식을 모두 팔았다. 그는 “이젠 주식에 매달리는 시간에 충분한 휴식과 운동도 하고 영어공부도 하고 싶다. 앞으로 어떤 곳에 투자하더라도 여유자금으로 냉정하게 하겠다.”며 증시에 작별을 고했다.

개미 투자자들의 위로와 충고도 이어졌다.7년 동안 주식 투자를 했다는 한 투자자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진정한 투자자라면 회사를 보고 장기적으로 투자하는 것이 정석이며, 그것이 자신에게도 수익을 안겨줄 수 있는 것임을 빨리 깨닫기 바란다.”면서 “좀 더디더라도 장기분산 투자가 최고”라고 조언했다. 또 다른 투자자도 “손실을 보았을 경우 초조함을 극복하지 못하면 이 바닥에서 승자의 편에 서기 힘들다.”면서 “적어도 눈 앞에 아른거리는 수익의 가능성을 포기하더라도 손해를 보지는 않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몇 년을 버텨내면 수익은 저절로 찾아온다.”며 인내를 당부했다.

김재천기자 patrick@seoul.co.kr



■ 트레이더란


자산운용사에 소속돼 주식을 사고파는 주문행위를 하는 사람이다. 펀드매니저가 고객이 맡긴 돈을 어떻게 운용할까 중·장기적으로 전략을 짜고 매매 여부를 결정한다면, 트레이더는 증시 상황을 체크하면서 시시각각 매매 여부를 판단한다.

기사일자 : 2008-0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