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살풀이(하)

-恨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말자-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 간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은 새야

녹두꽃이 떨어지면 부지깽이 매 맞는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은 새야

아버지의 넋새보오 엄마 죽은 넋이외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 너는 어이 널라왔니

솔잎댓잎 푸릇푸릇 봄철인가 널라왔지

 

'새야 새야 파랑새야'는 동학농민군의 아내들이 전사한 남편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울부짖으며 불렀던 만가였는데, 이후 동요로 전해지며 전 국민이 가슴으로 불렀던 노래다.

 

120년 전, 1894 갑오년, 공주 우금치에서는 탐관오리들의 학정과 부패에 항거하여 새 세상을 건설하고자 들고 일어선 동학농민군과, 이를 진압하기 위해 연합한 정부와 일본 합동군간에 치열한 전투가 있었다. 5일간 50여차례나 계속된 이 전투에서, 죽창과 농기구, 구식 화승총으로 무장한 농민군은, 신식 무기로 무장한 정부.일본 합동군에 대항하여 처절한 저항 끝에 2만에서 10만에 이르는 대부분의 병력이 궤멸당하였다. 시체가 쌓여 산을 이루고 흐르는 피가 내를 이루었다고 한다.

 

황토현전투로부터 시작한 이 운동은 이후 2년여에 걸쳐 고부.정읍.부안.순창.남원.순천.장성.전주를 비롯한 대부분의 전라도지역과, 충청도의 태안.서산.홍성.당진.예산.청주.충주.논산.옥천.공주와 수원, 황해도의 해주, 강원도의 영월.평창.정선.홍천.강릉, 경북의 김천.상주.예천.안동, 경남의 진주.산청.하동, 그리고 평안도지역에 이르기까지 전국적으로 전개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최대 40만 가량의 인명이 학살 당했다. 당시 한양의 인구가 20~30만 정도였으니 참으로 엄청난 희생이었다. 혁명은 실패하고 지도자였던 해월 최시형선생, 전봉준장군 등은 처형 당했지만, 손병희선생은 살아남아 훗날 3.1 운동과 이후의 항일독립운동으로 그 정신은 계속 이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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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 말기, 당시 자주독립과 근대화의 시기를 놓쳐버리고, 지도층은 각자의 기득권 유지를 위해 사분오열되어 주도권 다툼에 혈안이 되어 있었는데, 대표적으로 흥선대원군과 명성왕후 간의 세력다툼은 나라의 분열을 초래한 큰 원인이었다. 탐관오리들은 전국적으로 발호하여 위로는 연줄과 뇌물로, 아래로는 백성들에 대한 가혹한 수탈과 폭정을 일삼고 있었다. 밖으로는 청군과 일본군이 명성왕후 등의 요청에 의해 국내에 들어와 있었는데, 임오군란, 동학농민운동 등 국내에서 일어난 반란 혹은 혁명운동을 진압하기 위헤 외국군대를 불러들인 것이니 이 얼마나 통탄스런 일인가?

 

갑오년 동학농민운동을 진압하기 위해 청군을 불러들이고, 뒤이어 일본군도 자국민보호를 이유로 들어왔는데, 주로 정부군과 일본군이 연합하여, 새 세상의 건설을 요구하며 일어선 자국의 백성들을 무참하게 학살한 120년 전 그해의 일은 참으로 부끄러운 역사의 한 페이지가 아닐 수 없다. 썩어빠진 봉건왕조의 무너져가는 기득권 유지를 위해, 외국군대를 불러들여 자기나라 백성들을 수십만씩이나... 하늘이 노하고 신명이 저주를 내릴 일이었으니...

 

 

 

120년 전 그해, 청군과 일본군은 그대로 조선에 눌러앉아 '청일전쟁'까지 일으키게 된다. 외국군대들의 진주와 그들간의 패권전쟁은, 그로부터 조선왕조의 몰락과, 이후 일제 36년의 질곡 및  남북 분단과 6.25 전쟁을 초래한 첫 단추가 되었다.

 

동학농민운동 또는 동학혁명으로도 불리는 당시의 사태는, 한민족역사, 나아가 세계사적으로도 전무후무한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회운동 내지 혁명은 구습을 타파하고 새로운 세상의 건설이란 기치를 내걸고 시작한다. 프랑스대혁명, 볼세비키혁명... 등등 대개가 국가사회의 개조를 위해, 기껏해야 철학 관념이나 이데올로기 정도를 그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한민족의 동학혁명은 시작부터가 전혀 차원이 다르다.

 

동학운동은 기본적으로 '영성운동'이었다. '영성'이란 말이 제도로서의 종교를 넘어, 참 영성, 참 신성을 추구한다고 할 때 쓰는 바로 그 용어일진대, 오늘날 명상, 뉴에이지 등에서 추구하는 가치를 한국에서는 이미 120년도 더 거슬러 올라간 시기에 본격적인 대중운동, 사회운동으로 선언하고 전개까지 시도했던 것이다. 비록 아직은 시대적 여건이 많이 부족한 시점이어서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그해 조선에서 일어난 일은 분명히 '세계최초의 영성혁명운동'이었다.

 

동학의 중요한 선언들을 오늘날의 명상, 뉴에이지 등 영성계 언어로 풀어 보자.

 

시천주조화정(侍天主造化定)

모든 사람이 한울님(신.하나님.하느님.한얼님.부처님)을 모시고 있으니, 우주의 창조와 변화의 이치가 내 안에 자리한다. 나와 신이 따로 있지 않다는 일원성을 말한다.

 

사인여천(事人如天)

사람은 신성을 품은 존귀한 존재이니, 사람을 대함에 하늘처럼  섬긴다.

 

물물천 사사천(物物天 事事天)

산천초목 모든 사물들도 한울님의 표현이요, 모든 세상사 역시 한울님의 움직임이다.

 

삼경(三敬)

경천(敬天)·경인(敬人)·경물(敬物), 우주 만물이 다 한울님이니 하늘에도 경배하고, 사람에게도 경배하고, 산과 강 꽃과 나무... 모든 사물들에게까지 경배한다.

 

인내천(人乃天)

사람은 곧 신이다. 신과 사람이 따로가 아니다.

 

동귀일체(同歸一體)

모든 것은 '하나'에서 나오고 '하나'로 돌아간다. 일체만물이 근본에서 '하나'이니, 사랑과 평등으로 복본하자.

 

광제창생(廣濟蒼生)

널리 만인을 도와서 모두가 행복한 길로 가자. 홍익인간과 같은 말이다.

 

후천개벽(後天開闢)

우주는 생장염장, 성주괴공하며 주기에 따라 순환한다. 이제 새 진동수, 새 주파수, 새 율려의 신문명시대로 넘어가니, 우리도 이에 맞추어 영성을 개벽하고, 세상도 개벽하자.

 

 

참으로 놀라운 선언이다. 신과 사람, 신과 사물이 따로가 아니고, 속세가 곧 신의 나라이니, 만민이 평등하고 일체만물이 신으로서 존귀하다. 사람이 곧 신이니, 사람의 일은 곧 신의 일이라, 정치가 곧 종교이고, 사회혁명이 곧 영성혁명이다. 일상의 모든 일이 그대로 신의 흐름이고, 사람은 일상의 삶 속에서 신성, 영성을 구현하고 앙양하는 것이다.

 

관념과 제도로 박제화되고, 사람과 신성, 만물과 신성을 분리시켜버린 기존 종교들의 한계를 넘어, 스스로의 내면에 원래부터 있는 주체적인 신성을 회복하자는 동학의 선언은, 그보다 100여년이 훨씬 지나 유행하기 시작한 오늘날의 명상, 뉴에이지 등의 사상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이는 한민족에게 원래부터 내재해 있던 영성이 오랜 세월 지하수맥처럼 흐르고 있다가, 우주의 주기가 달라지는 새 시대의 전환기를 맞아, 자연스럽게 터져나오는 현상이다. 진리는 아무리 오랜 세월이 흐른다고 해서 달라지는게 아니다. 세상 처음부터 세상 끝까지 하나의 맥으로 흐른다.

 

 

수천수만 년 전 이 땅에는 이미 만고불변의 진리가 선포되었었다.

 

 

'천부경(天符經)'을 보자. 

 

一始無始一.......

一妙衍萬往萬來用變不動

本心本太陽昻明人中天

一終無終一

 

[시작도 없는 '하나'로부터 일체만물이 무궁무진하게 펼쳐져 나오니, 모든 것은 근본에 있어 변함 없는 '하나'다. 본성은 언제나 태양같은 광명이고, 사람과 우주가 하나로서 존귀하다. 만물은 끝도 없는 '하나'로 돌아가며 '영원한 순환'을 이어간다.]

 

'삼일신고(三一神誥)'를 보자.

 

聲氣願禱하면 絶親見이니 自性求子하라 降在爾腦시니라(2장 神 訓 중 한 귀절)

 

[온 몸과 마음을 다하여 기도하면 창조주께서는 반드시 응답하여 주신다. 구하는 자는 자신의 마음의 본바탕에서 창조주의 존재를 인식하도록 노력하여라. 창조주께서는 '구하는 자의 마음과 머리 속에' 이미 내려와 계신다.]

 

'천부경'과 '삼일신고'는 일만여 년이나 오래 된 한민족의 고전인데, 그때 이미, 지금의 영성인들이 추구하고 있는 진리의 원형이 제시되었다.  동학의 진리나 지금의 영성인들이 추구하고 있는 진리가 일만년 전 고대 한민족의 가르침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그래서 신비학자 슈타이너는 한민족을 일컬어 후천시대의 '성배민족'이라고 하는 것이다.

 

오늘날 동학은 여느 종교와 마찬가지로, 천도교라는 제도화된 모양새로 굳어지면서, 초기의 감동과 열정을 잃어버렸지만, 120년 전에는 진리를 위해서라면 목숨도 아낌 없이 던질 정도로 그 영성이 펄펄 살아 있었다. 36년간의 일제강점기를 거치는 동안에도, 여타 민족단체들과 함께 민족 본래의 '얼' 만큼은 지켜내었다. 일본이 나라, 역사, 문화, 인명, 자연까지 다 빼앗아 갔지만, 마지막까지 가져가지 못한 것이 천부경의 가르침, 동학의 사상, 바로 한민족 고유의 '영성'이다.

 

120년 전 공주 우금치에서는 농기구와 구식무기로 무장한 동학농민군이, 미제 기관총 등 신식무기로 무장한 일본군과 정부군에 대항하여 처절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들의 가슴과 등에는 '궁을(弓乙)'이라는 부적을 붙이고 있었고, 전투에서는 '시천주조화정(侍天主造化定)'이란 구호를 외치며 장렬히 산화해갔다. '궁을'이란 천지음양이 하나된 '십승 하나님'을 의미하고, '시천주조화정'은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하나님의 진리와 함께'라는 뜻이다.

 

생각해 보라! 이런 군대가 세상 어디에 또 있었겠는가? 과거 중세 기독교의 십자군전쟁이 죽은 교리를 전파하고 교권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면, 조선 말 동학운동은 영성을 삶 속에서 체화시켜, 전쟁과 죽음까지도 살아 있는 영성을 현실 속에서 구현하는 장으로 삼았던 것이다.

 

삶의 한가운데서 폭발하듯 분출하던 그 치열한 정신은 어디로 갔는가?

 

그 정신은 살아 있다. 비록 제도화된 종교 속에서는 사라졌지만, 수천수만 년 지하의 수맥처럼 보이지 않는 차원에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소리 없이 도도히 흐르고 있다. 그 흐름의 일부가 노래로, 드라마로, 스포츠로 흘러나와 '한류'라는 이름으로 온 세상을 적시고 있다. 이것은 예고편이다. 곧 이어 그 옛날 시원문명시대를 열었던 한민족의 '뿌리역사', '뿌리정신'이 시퍼렇게 살아서 온 세상으로 흘러갈 것이다.

 

대한민국은 지금 홍역을 치루고 있다. 한민족의 역사에서 어디 홍역 아니었던 때, 시련과 고난 아니었던  때가 있었겠냐만, 그래도 지금같은 어려움은 다시 없었을 것이다.

 

남북은 분단된 채 갑자의 세월을 넘기고 있고, 서로를 향한 적대와 비난은 갈수록 도를 더해만 가고 있다.

 

주변 강국들은 선천 수천년을 쌓아 온 분리와 대립의 에너지를 쏟아내며, 1, 2차 대전에 이어 마지막 최후의 한 판 패권을 겨룰 준비를 하고 있다. 시대는 이미 후천으로 넘어 왔으나, 해소되지 못한 지난 시대의 카르마는 어떤 식으로든 정리되어야 하기에...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 강국들은 그대로 전 세계를 대표하는 강국들이고, 한국은 그런 열강들의 한가운데서 그들의 싸움판으로 전락할지, 완충지대로 될지, 그들을 중재하여 새 시대 평화의 중심지가 될지, 한 치 앞도 내다보기 어려울 정도의 긴박한 상황으로 접어들고 있는 중이다.

 

내부적으로는 공동체의 행복이라는 지상과제를 망각하고, 지역과 지역, 정파와 정파, 계층과 계층이 분리되어, 오로지 자신들만의 이익에 매달려 세월을 보내고 있다. 국민통합도, 경제민주화도, 남북간의 협력도 팽개쳐 둔 채... 무능과 부패도 그대로 둔 채... 세월호를 비롯한 온갖 사고로 수백명, 수십명씩의 인명들이 한꺼번에 죽어나가고 있는데도...

 

120년 전, 대원군과 명성왕후, 보수파와 개화파, 부패한 기득권층과 도탄에 빠진 백성들까지, 국내적으로나 국외적으로나 어쩌면 오늘날의 상황과 이렇게 닮을 수가 있는가? 

 

백성의 마음을 하나로 모우지 못하고, 정의를 주장하는 무리의 외침을 적으로 돌리고, 외국 군대에 의존하여 백성을 탄압하며 권세를 유지하던 120 년 전의 그 모습이나, 국민과 소통.공감하지 못하고, 진정성 있는 혁신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주변 강대국들에 의존하며 남.북한 한민족 간에는 갈수록 반목과 대립만을 조장하고 있는 지금의 모습은 무서울 정도로 비슷하여 소름이 끼칠 정도이다.

 

120년 전, '동학혁명'이라는 일종의 '내전'을 지혜롭게 수습하지 못하고, 외국군대를 불러들여, 그로 인해 나라가 식민지로 전락하는 원인이 되었듯, 지금은 '남북대치'라는 일종의 '내전'상태를 강대국들의 파워게임장으로 내주고 있으니, 결국 또 그로 인해 나라가 박살나고 국토가 유린당하는 어리석은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달라져야 한다. 달라지지 않으면 또 망한다.

 

가장 먼저 대통령부터 달라져야 한다. 120년 전의 실권자 명성왕후는 구중궁궐 왕실권력의 정점에서 백성들과의 소통과 공감을 거부하고, 가까운 민씨 일족들로 중요한 자리를 채우고, 오직 자신의 권세 유지를 위해 정쟁에만 몰두하며 민생을 도탄에 빠뜨리고, 나아가 외국군대까지 불러들여, 바른 세상을 건설하겠다고 일어선 순박한 자국의 백성들을 죽음으로 몰아갔다. 그때의 일을 뼈저린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라면 당연히, 전체국민의 통합과 행복을 위해, 소통하고 공감하고 설득하고 이해를 구하며, 널리 좋은 인재를 구하고, 공동체의 살림살이를 내 살림이라 여기고, 나라의 선진화를 위해 끊임없이 모색하고 혁신하고, 결단을 내려야 할 때는 과감하게 실천하고, 그래야 하는 것이다.

 

슈퍼우먼이 되어도 모자랄 판에 대통령의 밤시간(저녁일정)이 없다는게 말이나 되는가? 오늘날처럼 복잡하고 다양한 시대에, 지도자로서 밤낮 없이 뛰어다니며 현장을 살피고,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다양한 의견들을 듣고 조율해야 하는 것이 그의 의무일진대, 왕조시대의 왕족처럼, 혹은 수녀나 비구니처럼 처신하는 것은 정말 잘못된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지금이 왕조시대가 아닌 한, 그리고 수천만 국민의 안위와 행복을 책임지겠노라고 나선 한, 그렇게 처신해선 아니될 것이다. 이 시대의 리더는 자신의 앞가림만 신경 쓰는 조신한 숙녀가 아니라, 상대가 누구든, 어떤 불편한 상황이든 내 일이고 내 탓이라 여기며, 희생하고 헌신하는 자세로 부딪히며 치고 나가는 걸걸한 여걸이어야 한다.

 

국민들 역시 작은 이기주의를 넘어 공동체의 대의를 먼저 생각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경제가 어렵고 현실의 벽이 높다고 좌절하여 집단우울증에 빠져 있어서도 안 될 것이다.

 

120년 전, 국운이 쇠하고 민생이 도탄에 처한 상황에서도, 한얼의 진리를 잃지 않고, 살아 있는 영성으로 일어나 세계최초의 영성사회혁명을 부르짖었던 동학의 정신을 되살려야 한다. 그때처럼 무기를 들고 세상을 뒤집어 엎으란 말이 아니라, 그때의 열망과 열정으로 각각의 삶을 혁명하자는 것이다. 각각의 삶, 각각의 의식이 바뀌어야 비로소 세상이 달라진다. 자신의 의식이 달라지지 않는 한, 그 어떤 제도의 개혁도, 시스템의 개조도 공염불에 지나지 않는다.

 

시대의 주파수는 이미 달라져 있다. 지금은 과거처럼 분리와 대립의 게임이 세상을 좌우하는 시대가 아니라, 조화와 통합, 사랑과 평화의 빛이 세상을 주도할 수 있는 시대이다. 과거의 영성은 패권시대 논리에 묻혀 恨(한)의 역사를 되풀이해 왔지만, 지금의 영성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있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가 아니라, "새야 새야 온갖 새야 모두 와서 배워가라!"로 노랫말이 달라질 것이다.

 

우리 민속 중에 '살풀이'란 춤이 있다. 그 해의 사건.사고와 액운을 풀어내기 위해 추는 춤이다. 하얀 치마저고리에 하얀 수건을 든 무당이 지극한 정성으로 기도하며 추는 춤인데, 한과 슬픔을 머금은 서러운 춤사위에 금방 눈물이 흐르게 된다. 살풀이는 영혼으로, 가슴으로 추는 춤으로, 아리랑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악이라고 찬사를 받고 있듯이, 이 역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춤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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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풀이는 무당들의 굿판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한과 슬픔이 있는 삶의 현장 어디에서건 그 아픔, 그 서러움을 풀어내려는 몸부림이 있다면, 그 역시 또 다른 살풀이에 다름 아니다.

 

'동학혁명'은 수백년 은둔해 온 한민족이 오랜 잠에서 깨어나 영성의 기지개를 켠, 근.현대사 최초의 '살풀이'였다. 40만명의 고귀한 생명을 제단에 바치며 춘 '천지살풀이굿'이었다.

 

그로부터, 자주독립을 외친 3.1운동살풀이, 부정.부패와 독재에 항거한 4.19살풀이, 5.18살풀이, 민주와 인권을 살려낸 6월항쟁살풀이, 온 국민을 하나로 만든 붉은악마살풀이, 그리고 분노와 슬픔이 일 때마다 하나되는 촛불살풀이, 촛불살풀이...

 

바야흐로 마지막 남은 한 판이 벌어질 때가 다가오고 있다. 전쟁으로 판가름할 것인가? 가이아의 자연정화로 판가름할 것인가? 영성과 평화의 잔치로 판가름할 것인가?

 

'마지막 판'에는 '마지막 살풀이'를 해야 한다. 120년의 한을 푸는 살풀이, 잃어버린 역사를 되찾는 살풀이, 지난 시대 이원적 종교들을 넘어 진리의 원형을 회복하는 살풀이, 그 옛날 지구의 시원문명을 열었던 한얼기상이 다시 살아나는 살풀이, 그 기세를 몰아 남북한 한민족이 하나 되는 살풀이, 기어이 세계만방에 영성의 빛을 드리우는 살풀이... 전쟁을 막고 평화의 시대를 여는 영성혁명의 살풀이...

 

그것이 '마지막 살풀이'다.

 

수천 년 고난의 역사를 겪으며, 구비구비 쓰라린 내상을 부여안고, 그래도 세상을 구하겠노라고 지금까지 버텨 온 '한민족의 마지막 살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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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cafe.daum.net/sinmunmyung/hNoN/229 (신문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