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에 대하여 [1]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은 여러분에게 깨달음의 의미와 인간관계를 중심으로 한 수행의 몇 가지 규범에 대하여 이야기하고자합니다.

근일 지구의 대중적 의식수준은 매우 빠른 속도로 높아지고 있습니다. 요즘은 도를 닦고 수행을 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사람이 수도를 한다는 것은 무언가 알 수 없는 비의(秘意)가 그것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수도(修道)란 인륜(人倫)을 바로 행하고 도덕을 밝혀나가는 것입니다.

도를 닦는다고 하니까, 그러면 道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되네요. 이 문제는 방대하여 나중에 논의될 때가 있으려니와, 간단히 말해서 道란 곧 나입니다. 내가 곧 道입니다.

道卽我 我卽道 존재하는 모든 것이 나이고 내가 존재하는 모든 것입니다.

道(All That Is) 卽 我(I Am), 道를 깨닫는 것이 나를 깨닫는 것입니다. 그러니 "나는 누구인가?" 하는 질문이 곧 道가 무엇인가를 궁구하는 것이죠.

수도(修道)는 내 안에 있는 신성(神性)을 밝히는 것이죠. 道를 닦는다고 하여 어디 바깥으로 따로 닦을 것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내면에 본래부터 간직되어 있는 밝고 맑은 인성(人性)의 본질을 회복하여 각자의 표면의식으로까지 드러내는 것이 수도의 진의(眞意)입니다.

수도(修道)가 道의 德을 밝히는 것이라면 수행(修行)은 밝혀진 도리와 도덕에 맞게 올바르게 행동 처사하는 것을 말합니다. 수행이란 언어, 행동, 처사를 예법과 도리에 맞게 행하여 나가는 것을 말합니다.

수행에는 자기수행(自己修行)과 대인수행(對人修行)이 있습니다. 자기수행의 요체는 "무자기(無自欺)"이고 대인수행의 요체는 "언덕(言德)과 해원(解寃)"이며, 대인수행의 지상과제는 "보은(報恩)과 적덕(積德)"입니다.

자신의 마음을 닦아 가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무자기(無自欺)"로 자신이 자기의 마음을 속이지 않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정직하고 진실한 마음의 본래 성품을 가리는 사사로운 욕심에 의하여 심기(心氣)를 어지럽히고 의리(義理)를 세우지 못하며 삿된 언행을 일삼는 것이니, 자신의 양심을 속이지 않고 정직하게 말하고 진실하게 행동하는 것이 수행인의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됩니다.

시속에 "하루에도 마음이 12번 바뀐다"는 표현이 있죠. "작심 3일"이라는 말도 있구요. 이것은 그 당시 대중들의 마음상태를 반영한 말들입니다. 아직까지도 유효하다고 볼 수 있겠죠. 하루에 마음이 12번만 바뀌나요, 50번은 어떻구요. 일심(一心)의 경지는 어떤 걸까요. 새로운 시대는 一身 一心주의입니다. 한 몸에는 한 마음! 한 몸에 두 마음을 품으면 그 몸이 나뉘어집니다. 살기 힘들다는 말이죠.

마음을 내적으로 관조해 보면 크게 두 가지의 마음상태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양심(陽心)과 사심(私心)으로요, 양심은 진실하고 순결(純潔)한 본연(本然)의 마음이며, 사심은 물욕(物慾)에 의해서 일어나는 사사로운 욕심(慾心)을 의미합니다. 사람들은 양심을 저버리고 사심에 의하여 행동 처사함으로써 시비가 일어나고 불화가 싹트게 되니, 자신의 양심을 속이지 않는 "무자기(無自欺)"는 맑고 청명한 새로운 사회의 대강령(大綱領)입니다.

그러면 "무자기(無自欺)"를 생활 속에서 어떻게 실천할까요?

우선 모든 면에서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겁니다. 자기 자신에 대하여 또 대인관계에서 진실만을 말하도록 생활화합니다. 言者 心之聲(말은 마음의 외침)이니 자신의 신성을 속이지 않는 정직한 마음은 예법(禮法)과 도리(道理)에 합당한 言行으로 나타나게 마련입니다. 말하지 않으면 귀신도 모른다는 속담이 있듯이 사람의 내적 정직성은 그의 말과 행동, 처사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지금은 신명(神明)시대이니 말을 하지 않아도 압니다. 속일 수가 없어요.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은 神이 알고 있는 것이고 神은 우주지간에 무소부재(無所不在)하며 편만(遍滿)한 존재이기 때문에 모든 존재와 연결되어 있으니 모든 존재가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것으로 됩니다. 그러니 천지간에 속일 수 있는 곳이 어디에 있을까요.

"무자기(無自欺)"를 생활화하세요. 무자기는 자신의 내면의 신성과 하나 되는 길입니다.

"하나도 모른다"는 말이 있지요. 하나가 道예요. 서전 서문에 "이제삼왕 존차심자야(二帝三王 存此心者也) 하걸상수 망차심자야(夏桀商受 亡此心者也) 태갑성왕 곤이존차심자야(太甲成王 困而存此心者也)"에서 보듯이 그 하나를 얻어 넉넉히 지킨 분이 요, 순이고 그것을 간신히 간직한 사람이 태갑, 성왕이며 그것을 잃어버린 자가 걸, 주입니다. 그 하나, 진실하고 순결한 인성의 본질을 회복하여 잃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도리입니다.

서전 서문(書傳 序文)은 좋은 글입니다. 이것을 많이 읽으면 옛 성현의 心法을 얻을 수 있습니다.

생활 속에서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은 자기 수행에서 큰 효용이 있습니다. 자신으로부터 나간 말이 거짓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언행일치를 위하여 정성과 노력을 기울일 것이고 언행일치는 곧 심행일치(心行一致)가 되어 자신의 내면의 생각을 현실세계에 올바르게 현현시키는 모범적인 창조를 이룰 수 있습니다. 거짓과 기만으로 쌓은 탑은 사상 위에 누각을 세우는 것과 같아서 일시적인 성공이 보인다 할 지라도 무너질 때는 여지가 없습니다. 반면에 정직과 진실로 일을 꾸미면 천지가 부수려고 해도 무너지지 않는 법입니다.

매사에 "무자기(無自欺)"를 중심으로 언행을 삼가 나가면 대인관계에서도 허언(虛言)이 줄어들 것이며 인간 사회에 진실의 푯대를 세워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맑고 밝고 청명한 세계로 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첫 번째 덕목은 무자기, "마음을 속이지 말라."입니다.
  
자기 수행의 요체인 "무자기(無自欺)"가 대인 수행에서는 언덕과 해원, 보은과 적덕으로 그 결실을 맺게 됩니다.

다음은 대인 수행의 요체와 과제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