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에 대하여 (2)

사랑하는 여러분!

지난번 이야기에 이어 오늘은 대인수행의 요체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자기수행의 요체가 "무자기(無自欺)"라면 대인수행의 요체는 언덕(言德)과 해원(解寃)이니, 모든 이에 대하여 언덕을 잘 가져야 하며, 존재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척(慽)을 짓지 말아야합니다.

어떤 사람을 대하더라도 언덕(言德)을 잘 가져야 합니다. 말은 마음의 소리요, 덕은 도심의 자취(言者 心之聲, 德者 道心之跡)니, 언덕은 말에 덕을 붙여서, 나의 말이 그 사람에게 덕이 되게 하라는 뜻입니다. 말은 만질 수도 볼 수도 없고 단지 귀에 들리는 파동에 지나지 않아 공(空)한 것이지만 한번 울려나온 말은 공간에 새겨져서 천지간에 그저 존재하게 됩니다. "말대로 된다"는 말이 있죠. 그것은 정말로 그러합니다.

말속에 道가 있습니다(言中有道). 말은 우주의 파동을 담는 그릇이니, 말은 현실 창조의 중요한 틀이 됩니다. 새로운 사회로 갈 때는 이 말씀을 명심하여야 합니다.

"천지(天地)의 조화권(造化權)이 설단(舌端)에 붙었나니, 범사에 말을 바르게 하라"

모든 일이 말대로 되는 법이니, 말을 함에 있어서는 신중을 기하여야합니다. 사람들은 말끝마다 "죽겠다"느니 "미치겠다"느니 "안 된다"는 등의 부정적인 말을 하는데 그것은 장차 자신이 그렇게 될 것임을 암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일상적인 습관을 개선하는 것 중에서 언습을 긍정적인 것으로 고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우리 조상들은 하늘이 하시는 일을 공경하는 마음으로 "비가 오신다" "눈이 오신다"라고 표현하고 당돌한 아이를 꾸짖을 때도 "이런 장군 될 놈 같으니.." "이런 크게 될 놈을 보았나!"하고 사람을 사귀다 절교할 때도 악한 소리를 내지 않았으니(古人絶交不出惡聲), 아무리 서운해도 "잘 먹고 잘 살아라!"라는 덕담과 함께 헤어집니다.

또 날씨와 기후를 가지고 탓하는 것도 옳지 않으니, 더우면 덥다고 하고 추우면 춥다고 하여 말썽을 부리면(말로 성질을 내면), 이 또한 역천(逆天)이 됩니다.

언덕을 잘 가지는 것은 대인수행의 첫 번째 요체입니다. 나의 선악은 말에 의하여 남에게 표현되는 것이니, 남에게 말을 선하게 하면 그 사람이 잘되고 남은 복이 밀려서 내가 크게 잘되고 남에게 악담을 하면 그 사람이 잘못되고 그 남은 재앙이 조수같이 밀려와 내 몸에 이르게 됩니다. 인간사 화복(禍福)의 이치가 모두 言德에 달려있으니, 언덕을 특별히 삼가 하여야 합니다.

말에 감정을 싣지 말고 오직 사랑을 담으세요. 오직 道理를 담으세요. 감정이 실린 말은 찢어진 문창호와 같아서 바람을 막아주지 못하니 그 말에 직접 노출되면 상처를 입게 됩니다. 수많은 덕(德)중에도 언덕이 중요함을 수유(須臾)도 잊어서는 안됩니다.

힘들이지 않고 값없이 하는 말에 그다지도 척박할까요. 용기가 부족하고 힘이 부족하여 견디기는 견디지만 그 가슴이 오죽할까요. 그것이 척이 되어 갚는 날에는 백 배, 천 배로 보복하니, 그 원한의 마음에 악귀 잡귀 똘똘 뭉쳐 접사되는 까닭입니다. 친절한 말 한마디에 요순지풍(堯舜之風)이요, 척박한 말 한마디에 걸주풍파(桀紂風波)일어나니, 인간처세에 언덕을 수행의 모본(模本)이 되게 하여야 합니다.

하느님의 밝으심과 천지의 대신명(大神明, Archangel)들의 수찰(垂察)아래 부탁하고 또 부탁하는 것은 부디 언덕을 잘 가지라는 것입니다.

대인수행의 요체는 다음으로 "척(慽)을 짓지 말라"는 것입니다.

척이란 나의 언행으로 인하여 남이 나에게 품는 원한을 말합니다. 남이 나에 대해서 갖는 섭섭한 마음이 척이 됩니다. 척은 마음과 몸과 뜻으로부터 짓게 되는데, 남을 미워하거나, 언덕을 베풀지 않거나, 남을 억울하게 하거나, 남의 호의를 거스를 때, 그것은 다 척을 짓는 행위로 됩니다.

남을 미워하는 마음만 품어도 그 사람은 모르나 그의 신명(神明)은 먼저 알고 척이 되어 갚는 것이니, 설혹 좀 부족한 모습이 보일지라도 잘 용서하여 미워하는 마음을 두지 말고 마음으로부터 온화하게 사랑으로 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말은 마음의 소리이고 마음은 신명의 처소니, 말을 척박하게 하는 것은 상대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자기 자신의 마음이 먼저 상하게 되는 법입니다. 나를 해치고 남도 해치는 그런 행위를 굳이 할 필요가 있을까요. 값 안주는 그 언덕을 그다지도 험악할까요. 부디 언덕을 잘 가져 요순지풍의 화목한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데 기여하여야 합니다. 인간관계의 초입문은 마음을 속이지 않는데서 서로 신뢰할 것이고 언덕을 잘 가지는 데서 서로 화목할 것이니, 무자기(無自欺)와 언덕(言德)은 참된 인간의 옥조(玉條)입니다.

남을 미워하는 것이 나의 마음으로 척을 짓고 언덕을 베풀지 않는 것이 나의 말로써 척을 짓는 것이라면 남을 억울하게 하는 것은 나의 행위로써 척을 짓는 것입니다. 사람이 마음이 상할 뿐 아니라 몸마저 상하면 그 원한은 깊은 것이니, 폭언과 폭행으로 남을 억울하게 하지 말아야합니다.

또한 남이 좋은 뜻으로 준 음식을 먹고 혹시 배탈이 났다 하더라도 사색(死色)을 내지 말아야 합니다. 만약 호의를 거스르고 말썽을 부리면 이도 또한 오는 정이 막혀 척이 되는 것이니. 잘 받아들여서 그 마음의 뜻만은 감사하게 생각하면 서로간에 음식보다 더 고귀한 우애의 정(情)을 나눌 수 있습니다.

대인수행의 요체는 해원(解寃)이나, 해원 즉 맺힌 원(寃)과 한(恨)을 풀기에 앞서 매사에 척을 짓지 말아야합니다. "결원(結寃)이 곧 작죄(作罪)라" 인간세상에는 원을 맺는 것이 곧 죄를 짓는 것으로 됩니다.

"경인애물(敬人愛物)"이라는 격언이 있죠. 흔히 사람을 공경하고 물건을 아껴 쓰라는 말로 이해되고 있는데 그 의미는 보다 더 광대합니다. 예수는 "서로 사랑하라"하지만 우리는 "서로 존중하라"고 합니다. 서로 존중한다는 것은 상대방을 존경하여 소중히 여긴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경인(敬人)의 뜻이죠. 애물(愛物)은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한 사랑입니다. 만물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물이 존재하는 가치를 인정하고 그 사물의 존재목적을 펼쳐나가는 자기발전 과정을 허용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랑은 자비이며 자비는 허용이며 허용은 수용입니다.

산에 가서 나무를 해치면 나무와 척이 생기고 물가에 가서 물을 더럽히면 물과 척이 생기는 법입니다. 산에 가서 몸을 다치거나 물에 빠지는 것도 다 원척(寃慽)의 결과 생기는 것이죠. 이렇게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물 한 방울에도 척을 지어서는 안 되는 법이거늘 하물며 천지의 신명이나 만물의 영장인 사람에게 척을 짓는 행위는 다시 말하여 무엇할까요.

인종과 언어, 문화의 차이, 복귀빈천, 영웅호걸, 이 세상 그 누구를 만나더라도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천품지질(天稟之質)은 다같이 타고났고, 각자 잘난 맛은 똑같으니, 그 누구를 천케 볼 수 있겠습니까? 우월감은 환상입니다.

"경인애물(敬人愛物)" 사람을 존경하여 소중히 여기고 만물을 사랑하여, 범사에 척을 짓지 말아야합니다.

척을 짓지 않는데서 중요한 것은 또한 자기 자신이 그 무엇으로부터도 원하거나 바라는 바가 없어야합니다. 사람은 기대한 바가 있었으나 그것이 충족되지 않으면 서운해하는 법인데, 이 서운한 마음이 커지면 또한 척이 됩니다. 상대방이 아무리 잘해준다 하더라도 내 자신이 늘 부족을 느낀다면 스스로 척을 부르게 되는 것이니, 자기 자신을 완성하는 영적 수행을 생활화하고, 부족한 것이 없는 구족(具足)한 삶을 살며 범사에 늘 감사하는 마음을 기른다면 무척(無慽) 좋은 삶이 될 것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떻게 사는 것이 잘사는 것일까요?

명예? 영화? 재능? 소원성취?...

"무척 잘산다"는 말이 있죠.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무척(無慽)이라야 잘사는 것입니다. "무척 좋다", "무척 잘한다", "무척 잘산다"하듯이 척이 없어야 하는 일이 잘되고, 기분과 정신 건강에 좋으며, 근심 걱정이 없이 잘 살게 되는 것입니다.

우주적 변형의 이 시기에 여러분은 무자기로 정신을 개벽하고 언덕을 잘 가지며 척을 짓지 않는 생활을 실천함으로써 몸과 마음이 늘 맑고 밝고 깨끗한 무척(無慽) 잘 생긴 신선과 선녀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이 소중한 지구별에 지상천국을 건설하며 지상신선을 실현하는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맑고 밝고 청명한 세계로 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두 번째 덕목은 "언덕을 잘 가지라"입니다.

맑고 밝고 청명한 세계로 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세 번째 덕목은 "척을 짓지 말라"입니다.

다음은 대인수행의 지상과제입니다.

하나됨의 축복 속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