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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인해전술’의 진실
[한국전쟁의 재구성](04) 미국, 일본 연구자들도 거의 쓰지 않는 '인해전술론'
중국시민
기사입력: 2011/11/25 [09:48]  최종편집: ⓒ 자주민보
 
[편집자 주: 이 글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에 대한 가치판단과 본지의 편집방향은 무관합니다. 다만 필자가 소개하는 한국전쟁에 대한 정보를 통해 남북이 서로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소개합니다.]

 
한국인들이 중국인민지원군(한국의 표현대로는 “의용군”)을 거들 때 가장 많이 쓰는 말이 “인해전술”이다. 냉전시대에는 중국의 자료를 잘 몰라서 그랬다 치더라도, 한중수교 후 20년이 가까워오는 지금도 걸핏하면 “인해전술”을 들먹이면서 중국이 막대한 인수우세로 밀어붙였다는 식으로 풀이하는 건 우스운 일이다. 사람숫자가 승부에 큰 영향을 끼친다면 1930년대 초에 일제의 2만 명 관동군이 20~30만 동북군을 밀어내어 동북(한국인들에게는 “만주”라는 말이 더 익숙하겠지만)을 점령한 사실은 어떻게 해석하겠는가?
 
또 1946년에 국공내전이 시작될 때 400만을 넘던 국민당군대가 100만을 윗도는 공산당군대를 삼키지 못하고 오히려 몇 해 후 망하고 만 사실은 어떻게 풀이하겠는가? 그리고 세계 최강의 화력을 가졌던 “유엔군”이 그래 대량살상을 차마 하지 못해서 거듭 밀려났던가? 중국어로 번역된 미국 군인들이나 연구자들의 자료를 보면 미국인들은 “인해전술”이라는 말을 별로 쓰지 않으면서 중국 군인들의 전투능력과 정신을 높이 평했다. 그리고 일본의 자위대나 연구자들도 중국인민지원군의 전략전술과 전투기술을 깊이 있게 연구했다. 한국에서만 “인해전술”타령으로 1950년 10~12월의 압록강- 38선행을 해석하는 게 이상하다.
 
1950년 10월 25일 중국인민지원군이 압록강에서 멀지 않은 운산에서 첫 전투를 벌려서부터 12월 24일 양양을 제외한 38선이북의 모든 지역에서 “유엔군”과 국군이 사라지기까지 벌어진 싸움들을 중국에서는 제1차전역과 제2차전역이라고 부른다.
 
10월에 출국한 지원군 부대는 13병단의 보병 4개 군단과 독립포병사단 3개 로서 병력은 20만 명 가량이었는데, 제1차전역에는 일부가 참가했다. 중국에서는 당시 38선 이북에 “유엔군”이 13만 명 가량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교전에서 손해를 보고 주춤했던 맥아더가 지원군의 목적과 병력(고작 6, 7만정도로)을 오판하고 다시 북상할 때의 병력을 중국에서는5개 군단의 13개 사단, 3개 여단 그밖의 공수부대 1개 연대를 합쳐 22만 을 윗돈다고 계산한다. 당시 지원군은 9개 군단의 30개 사단으로서 38만 여명이었다. 동서 2대 전장에서 다 인수우세를 차지했지만 결코 큰 우세는 아니었다. 무기장비의 절대적인 차이를 감안하면 2: 1 미만의 인수우세는 별거 아니다.
 
물론 “유엔군”의 원거리 패퇴가 모두 중국인민지원군 때문은 아니다. 인민군도 참전했고 특히 제2전선을 이뤘던 인민군 적후부대와 유격대들의 역할도 크다. 그러나 주역은 중국인민지원군이었고 그 인수는 결코 놀라울 정도가 아니다. 승전은 전략과 전술의 고명함 덕분이었다. 그때 지원군의 중대급 지휘관들은 거의 다 해방전쟁을 거쳐 몇 년 전투경험을 가졌고 연대급 지휘관들은 거의 다 항일전쟁을 거쳐 10여 년 전투경험을 가졌으며 사단, 군단급 지휘관들은 대체로 홍군시기부터 싸워 20년 가량 지어 더 오랜 전투경력을 가져 전쟁에는 귀신이 다 된 사람들이었다. 그런 지휘관들이 부하들을 그저 죽으라고 사지로 내몰 리 없다.
 
그런데 왜 참전자들은 중국인들이 무지 많다는 인상을 받았고 결국 중국인민지원군이 “인해전술”에 매달린다는 해괴한 해석을 낳았을까? 중국공산당 군대의 전법을 너무나도 몰라서이다. 창건초기부터 절대우세를 차지하는 적들과 싸워온 중국공산당의 군대는 전반적인 열세에서 국부적인 우세를 만들어내는 전통을 만들어냈고, 열 손가락에 상처를 입히기보다는 한 손가락을 끊어버리는 게 낫다면서 적군의 어느 한 부대를 섬멸함으로써 다른 부대들의 싸울 의지를 앗아버린다는 전법을 많이 썼다. 1947년 12월에 이르러 20년 전투경험을 총화한 마오쩌둥 주석이 “10대군사원칙”을 내놓았으니 그중에서 중국인민지원군의 싸움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들만 몇 조목 옮긴다.
 
1. 먼저 분산되고 고립된 적을 치고 후에 집중하고 강대한 적을 친다(先打分散和孤立之敌,后打集中和强大之敌).

3. 적의 유생역량 소멸을 주요목표로 삼고, 도시와 지방을 지키거나 탈취하는 걸 주요목표로 삼지 않는다(以歼灭敌人有生力量为主要目标,不以保守或夺取城市和地方为主要目标).    

4. 싸움마다 절대우세병력(2배, 적군의 3배, 4배 때로는 심지어 5배나 6배 되는 병력)을 집중하여 사면으로 적을 포위하여 그물에서 새나가지 못하도록 한다. 특수상황에서는 적에게 섬멸적 타격을 주는 방법을 취하는 바, 즉 전력을 집중하여 적의 정면이나 그 일익 혹은 양익을 타격하여 그 일부를 섬멸하고 기타 일부를 격멸하는 목적을 이룸으로써 아군이 신속히 병력을 전이하여 기타 적군을 섬멸하기에 이롭도록 한다. 득이 실보다 많거나 득과 실이 비슷한 소모전은 극력 피해야 한다(每战集中绝对优势兵力(两倍、三倍、四倍、有时甚至是五倍或六倍于敌之兵力),四面包围敌人,力求全歼,不使漏网。在特殊情况下,则采用给敌以歼灭性打击的方法,即集中全力打敌正面及其一翼或两翼,求达歼灭其一部、击溃其另一部的目的,以便我军能够迅速转移兵力歼击他部敌军。力求避免打那种得不偿失的、或得失相当的消耗战).

5. 준비 없는 싸움, 파악 없는 싸움을 하지 않는 바, 싸움마다 극력 준비를 해야 하고 적아조건대비에서 극력 승리의 파악을 가져야 한다(不打无准备之仗,不打无把握之仗,每战都应力求有准备,力求在敌我条件对比下有胜利的把握).

6. 용감히 전투하고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피로를 두려워하지 않고 연속작전(즉 단기간 내에 휴식 하지 않고 연거푸 몇 차례 싸우는)하는 작풍을 발휘해야 한다(发扬勇敢战斗、不怕牺牲、不怕疲劳和连续作战(即在短期内不休息地接连打几仗)的作风).

 
이런 원칙들이 중국 군인들의 머릿 속에 깊이 배였기에 만만하고 홀딱 먹어버릴 자신이 있는 적군부대부터 골라서 집중공격을 들이댔고, “삽입(穿插), 우회(迂回)”전법을 많이 써서 쥐도 새로 모르게 적군의 배후로 들어가 조용히 있다가 총공격과 더불어 모습을 드러내곤 했으니, 사면포위를 당한 적군은 중국공산당의 부대가 무진장 많다는 인상을 받기 마련이었다. 적군을 좁고 긴 골짜기 따위 곳으로 유인해다가 토막쳐서 섬멸하는 “주머니전술(口袋战术)” 또한 중국공산당 군대의 사랑을 받았으니, 일단 매복습격을 당한 적군은 무지하게 많은 부대가 자기를 친다고 아우성치기 십상이었다.

그리고 일단 싸움이 벌어지면 손실이 크더라도 기어이 돌격하는 작품이 이뤄졌기에 무지하게 많은 중국군인들이 끝없이 돌격한다는 인상을 받은 적군들이 생겨났다.
 
1940년대 후반의 국내전쟁에서는 만 명을 단위로 하는 포위섬멸전이 흔히 벌어졌기에 중국인민지원군이 출국초기에는 사단 따위로 목표를 크게 잡았는데, 포위는 곧잘 했으나, 현대화무기를 지니고 공중지원을 받는 “유엔군”부대들을 섬멸하기는 어려웠다. 하여 밤에 포위했다가 미처 소멸하지 못하여 낮에 놓치는 경우들이 생겨났고, 차차 목표를 낮추어 중대, 대대를 겨냥했다.
 
또한 중국군인들의 전법에 어느 정도 적응한 “유엔군”이(정확히 말하면 릿치웨이가 사령관으로 된 다음) 지원군이 삽입할 틈을 적게 내면서 평평히 밀고나가는 방식을 골랐기에 1951년 여름부터는 전선이 상대적으로 고착되면서 진지전이 주요한 전투형식으로 변했던 것이다. 진지 특히 고지에서의 싸움에는 인력우세가 별 의의 없다. 그런데도 몇 해 전 큰 인기를 끌었던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주인공이 나중에 무지 많이 밀려오는 중국군인들을 기관총으로 몰살시킨다는 식의 설정을 하였기에 무척이나 우스웠었다.
 
한국의 어떤 사람들은 미국의 첨단무기를 한없이 미신하고 중국무기의 낙후함을 부풀리면서 이제는 중국의 “인해전술”이 먹혀들지 않는다는 식으로 떠들던데, “인해전술”이라는 망령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중국군대를 이해할 수 없다.(2011년 11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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