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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 사


한민족 축제와 종교의 원형-삼한이즘

일제와 기독교가 성황당을 미신화한 이유는 무엇인가?
    
  
한민족 공동체의 제천의식과 축제, 고등종교의 원형-샤만(삼한)이즘과 굿


▲  몽골의 당골래(샤먼=제사장=치유 상담사)-신을 불러오기 위해 북을 치면서 굿을 시작한다

유라시아 대륙과 아메리카 대륙에 분산되어 있는 한민족을 하나로 융합할 수 있는 공통적 요소로써 무당(샤먼.당골래=제사장=단군=성인)이 인간의 길흉화복을 신에게 기원할 목적으로 제물을 바치고 가무와 의식절차를 통해 행하는 제의(祭儀).
굿은 하늘과 인간과 땅이 유기체적으로 하나라는 신인합일 의식에서 기원한다.
그리고 본래 신성(본성)으로 회복시키는 차원이다.
그러한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샤먼(단군=당굴래=제사장=성인)이다.



고대에 샤먼은 단순히 지금의 일반 무당이 아니라, 국가적 차원의 하늘과 통하는 영적 지도자로 인식되였다.
그래서 신인본주의적인 의식에서 인간의 탐욕과 권력욕이라는 인본주의적 요소가 개입되면서 제사(종교)와 정치가 분리되기 전까지만 해도 고대에는 제정일치 시대였다.
이러한 샤먼을 중심으로 굿은 모든 지역의 한민족을 [무아]의 상태로 하나로 연결시켜주는 매개고리였다.



따라서 외세의 입장에서 보면 이러한 한민족의 정신적 합일과 단결을 차단하기위해서는 이러한 굿을 폐지하거나, 개념을 왜곡시켜야 했다.
그러나, 사대주의에 의한 왜곡과 탄압에도 불구하고 굿은 민중과 함께 오랜 민족의 시련과 함께 하며 명맥을 유지해 왔다.









일반적으로 한국의 무당들이 불교문화가 가미된 굿을 할 때 주로 사용하는 방울과 칼,삼지창과 바라





불교문화가 가미된 한국의 무당과 의상-한국민중들은 민족적 시련과 함께 민족의 전통을 지켜왔다





그리고 현실을 무시한 내세지향주의적인 종교행태처럼 상업주의와 결합한 지극히 지금의 개인위주의 무당의 굿판은 본래의 민족굿의 전통과 개념과는 거리가 먼 왜곡된 굿이라 할 것이다. 즉, 개인주의적이고 이기주의적인 제사행위(예배)나 굿판이 본래 한민족 전통의 굿판이라 볼 수 없고, 민족적이고 국가적 차원의 공동체 개념이라 할 수 있다.




▲  단군왕검 영정-단군은 하느님께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이면서 국가의 통치자였다

예컨대, 단군조선은 하느님(하늘)을 대리한 제사장인 단군을 중심으로 모든 지역을 대표한 제사장을 중심으로 각 동네의 성황당으로 이어지는 민족공동체 차원이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굿판은 춤과 노래를 통하여 모든 사람속의 스트레스를 말끔히 씻고 맑은 거울과 물과 같은 무아(하느님) 상태로 회복하는 기능을 하였고, 외침에 있어서는 단결의 기능까지 했던 것이다.



그래서 각 동네의 '성황당'은 침범할 수 없고 빼앗겨서는 안되는 성역이였던 것이다. 일본 침략주의가 그래서 성황당을 두려워 했으며, 미신으로 세뇌주입시킨 것이였으며,
침략주의적인 기독교가 한민족의 전통이자 기독교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성황당이나 굿을 미신취급한 불경을 저지른 것이다.
기독교의 하나님 사상은 본래 한민족의 제천의식에서 유래한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무(韓國巫)의 역사는 농경시대였던 당시 제사장(샤먼.당굴래)이신 단군께서 추수 후에 하늘에 제사를 지내신 후에 3-4일을 모든 백성들이 술과 노래와 춤으로 굿판을 벌인데서 유래한 단군조선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문헌으로 전하는 가장 오래된 종교적 제의로는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전하는 부여의 영고(迎鼓), 고구려의 동맹(東盟), 예의 무천(舞天) 등과 같은 고대 부족국가의 제천의식이 있으나, 그러한 굿은 단군시대 이전부터 동이족의 신앙의식이요 전통풍습이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늘날의 무당굿과는 차이가 있는 것으로 여겨지지만 이러한 고대 부족국가의 제천의식에서 무(巫)의 유래를 찾을 수 있다.
제천의식을 행하였던 무속신앙은 이후 삼국시대까지 그대로 전승되어 여러 제의가 행해졌는데, 이들 제례의식은 성격상 시조제·농신제로 분류된다.
무속신앙은 삼국시대 초기를 지나면서 유교·도교·불교 등 여러 새로운 종교의 도입으로 적잖은 영향을 받지만 한국무의 기본구조를 바꾸어놓을 만큼 강하지는 못했다.




▲   한국의 성황당-하느님을 모시고 제사드렸던 지성소. 중요한 문제해결을 위한 공동체의 회의장소와 전쟁발발시에는 결사항전의 장소이기도 했다.

환국(한국) 무의 기본구조는 샤먼니즘이라 할 수 있다.
샤먼은 시베리아 퉁구스어가 러시아로 변형된 말이라고 하나, 아시아 동이족들이 하나의 언어와 풍습으로 하나의 민족으로 건국된 단군조선의 신앙과 풍습을 의미하는 '삼한'에서 유래된 말이 아닌가 싶다.
샤만의 몽골어는 '탱그리'고, 우리 한국어로는 '당골래'다.
그런데, 이 '당골래'는 본래 그저 단순한 존재가 아니라, 고대에는 전 국가적인 영적 지도자로 천계와 지상계를 이어주고 병을 고치고 악을 물리치는 역할을 했던 고급 사제였다.

이러한 '당골래(탱그리.샤먼)의 원형은 시베리아 북부지역에 가장 잘 남아 있다.
즉, 시베리아 북부지역의 에스키모인들의 샤먼은 가면을 쓰지 않고 푸닥(악을 물리침)거리를 하는데 비해 남하할 수록 가면을 사용하게 되는데,
이것은 아마도 신시배달국(청구국)의 천황으로 가면을 쓰고 치우천황에 반기를 들었던 황제헌원과 77번 싸워 77번 승리했다는 치우천황의 가면에서 기원하지 않았나 싶다.

가면을 사용하는 이유는 얼굴보호차원뿐만 아니라, 일단 자신의 얼굴을 드러내지 않아 신변을 보호함은 물론 심리적으로 두려움을 제거할 수 있으며, 가면의 형상에 따른 이미지에 따라 적에게 두려움을 줄 수 있는 차원에서 복합적인 이유가 있다 할 것이다.
아무튼 에스키모인들의 샤먼들을 제외하고 나머지 샤머니즘 지역에서는 가면을 사용한다는 점이다.
또한 샤먼들의 굿의 형태도 유라시아 초원길을 이용한 문화적 교류로 인해 다양한 형태를 뛴다는 점이다.




▲ 환국의 1대 안파견 환인 상상도-환인은 제사장이자 통치자였다


그러나 샤먼의 기원은 시베리아 지역으로 인류학자들은 보고 있는데, 이것은 역시 [한단고기]기록이 증명하듯이 하늘을 오르락 내리락했다는 12한국의 "안파견 한님은 천산에 계시면서 도를 깨우치셨으며 오래도록 수두의 제사를 주관하고 하늘의 이치대로 사람들을 교화하였다.“ 라는 기록이 역사적 사실임을 입증하는 풍습이라 할 것이다.
즉, 이러한 환인이 본래 '당골래'(샤먼,탱그리)으로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우주(하늘)의 이치대로 인간을 교화했다는 홍익인간 광명이세의 한민족 사상과 신앙을 그대로 실현했으며, 한국이후에도 이러한 환인의 '샤머니즘'은 환인의 후예인들인 9환인족들에게 그대로 전수되어 각 부족마다 '당골래'를 두고 계승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샤머니즘'의 특징은 먼저 나중 민중 무속신앙에서 옥황상제로 대변되는 천상의 절대자에 대한 숭배관념이 있다는 점에서 지금의 기독교 하나님 사상도 서진한 동방족인 슈메르인들을 통하여 샤머니즘이 전파되어 결국 체계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 우주 절대자 옥황상제 상상도-동방은 유형적인 존재로 서방의 기독교는 무형적인 존재로 인식되어졌다



유기체적인 세계관의 샤머니즘은 천상계와 지상계와 지하계(지구의 남극와 북극이 구멍이 뜷려 있고, 지하문명세계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미국 공군 1급 비밀 보고서-공군 비행사가 비행항로를 이탈하여 지하세계로 들어가 지하세계를 보고 보고한 내용-를 통하여 공개된 바 있다)가 모두 '홀(구멍)'을 전제로 하나로 연결되어 있으며, 오로지 '당골래(샤먼)'만이 천상과 지상과 지하를 오갈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슈메르인들의 지구라트 원형의식인 '수미산(슈메르산)'이라는 '우주산'을 중시하며, 이 우주산 안에는 영원히 죽지 않게 한다는 생명나무가 있다는 관념이 있다.
이러한 생명나무의 의미는 현대과학적으로 보면 줄기세포로대변되는 생명공학적 의미와도 동일하다고 보기에 우주문명과도 연결된다고 보여 진다.



▲ 생명나무의 실체-DNA와 줄기세포-생명.유전공학
현재 세계 최초의 배아 줄기세포 원천기술 개발을 비롯하여 세계 최초의 한국형 태양(K-STAR)을 개발하여 미래 에너지를 개발하여 세계가 공동 협력하고 있으며, 무인 운전 자동차를 개발한 한국의 과학기술수준은 세계 7위를 유지하고 있다.
미국은 NIH를 통하여 세계의 유능한 과학자들과 영재들을 발굴영입하여 생명공학계를 주도하고 있는데, 국내의 황우석죽이기도 배아 줄기세포 원천기술을 독점함과 동시에 황우석 박사를 미국 생명공학발전을 위해 영입하고자 하는 전술차원이 아닌가 싶다.
대한민국 정부은 과학기술개발에 적극적인 투자를 하고 유능한 영재들과 인재들을 최대한 발굴하여 국익과 인류에 공헌하는 과학자들로 육성하고 에덴동산으로 대변되는 인류의 행복을 위한 세계 과학을 주도하는 민족이 되도록 해야 할 때다.
'황우석 사태'는 대한민국 국익문제로 인식하고 생명공학발전 차원에서 특허와 황우석 박사를 보호하고, 국책사업차원에서는 정보유출차단과 명확한 책임을 규명하기위해서도 정부차원에서 투명하고 공정하게 연구과정을 관리통제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난치병 치유를 위한 난자판매허용과 함께 동물실험을 전제로 환자의 서약서를 전제로 하는 임상실험이 가능해질 수 있도록 생명공학자들 뿐만 아니라,
모든 과학자들이 모든 과학분야에서 홍익인간이념실현을 전제로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는 법개정을 하는 길만이 자국의 과학발전과 자국의 과학자보호를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이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동방족의 불로불사 의식에서 발원한다고 볼 수 있는 이집트 피라미드속의 미라로 대변하는 영원한 생명의 상징으로써의 생명나무 관념은 바로 구약성서 창세기의 에덴동산이 바로 수미산이며, 에덴동산속의 생명나무의 원형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12환국의 발원지인 중앙 아시아 천산이 바로 수미산이며, 천산에 존재하는 큰 나무아래서 생명을 살리는 환인들의 말씀을 들었고, 병과 죽음에서 치유함을 받았다는 오래된 관념의식의 반영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생명나무는 단군신화에 나오는 신단수이며,
이 신단수는 성황당이 있는 마을어귀의 나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이 나무 아래서 서로 모여 대화를 나누어 마음을 치유하고 위로를 받기도 하는 것이다. 이러한 생명나무아래서 환인과 환웅과 단군은 백성들에게 가르침을 주고 훈시를 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관습은 석가모니가 보리수 나무아래서 해탈했다는 설화의 원형이 되었다고 볼 수 있고, 환인-한웅-단군의 가름침은 공자.노자.마호메트.예수 메세지로 계승되어 고등종교로 발전했다고 볼 수 있다.

지금 기독교는 '당골래'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는 목사들의 설교강단이 신단수가 된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이들 기독교의 메세지는 예수 메세지의 본질보다는 3위1체 교리작업에 의하여 샤먼니즘의 전통관념인 하느님(천상의 절대자) 자리에 예수를 앉혀 놓고 예수를 신격화함으로써 모든 종교와의 조화를 깨 버리고 우월주의적이고 집단이기주의적인 형태로 변질되어 버렸다는 점이다.
예수의 계명은 2가지였는데, 이것은 극히 환인-한웅-단군의 맥을 잇는 내용이며 전통적인 샤머니즘의 의식이라 할 수 있다.
즉, 첫째 계명은 뜻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 둘째 계명은 너희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였다. 예수자신을 하느님으로 우상숭배하라!는 계명은 없는 것이다.
그것은 기독교사적 배경을 전제로 기독교집단의 조직신학적 작업에서 나온 교리에 불과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환인과 한웅과 단군도 예수도 공자도 석가모니도 노자도 그 누구도 주인공이 아니고 오로지 하느님이 주인공이라는 사실이 샤머니즘의 전통적인 관념이라는 사실이며,

오늘날 종교다원주의적 신학의 주제이기도 하다. 불교에서도 광명의 빛(나무 아무타 불='나무'라는 단어가 나오는 것으로 보아서 본래 환인속에 임재한 우주 생명의 빛을 의미한다고 본다)이 부처의 본질이며, 유교도 "어지신 하느님(인과 천) 본질이며, 도교도 "물같은 도(하느님)"가 본질이며, 기독교도 본래 "태초의 빛"이 본질인 것이다.
그리고 동학의 최제우 선생은 '인내천'이라는 말로 "하느님의 본질은 바로 사람"라고 명쾌한 답을 주었다. 그래서 우리 민족은 환인부터 단군임금에 이르기까지 사람을 널리 이롭게 하라!고 했던 것이다. 사람속의 임하는 하느님을 기쁘시게 하는 신명이 바로 우리 동방족의 신앙의식의 본질인 이유다.


동방족의 북두칠성신앙이 불교문화로 투영된 칠성불

마지막으로 동방족의 샤머니즘은 7과 9라는 수를 중요시하며, 북두칠성을 중시하는 칠성의식이 강하며, 샤먼은 악과 치열하게 투쟁하는 전사와도 같은 존재라는 점이다.
그것은 사람속에 들어가 병과 죽음을 가져다 주는 모든 어둠과의 전쟁이다. 이것은 환인시대부터 대진국 시대까지 계승되어 단제와 황제들에 의해 백성들을 대상으로 가르침을 주었다는 '천부경'의 "본심즉 태양앙명"의 의미임을 증명하는 내용이다.
즉, "사람의 마음이란 본래 태양과 같으니 늘 태양을 바라보며, 그 본성을 잊지말고 태양과 같은 존재가 되라!"라는 의미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태양이란 모든 만물을 살리는 생명의 빛을 상징하지 그 생명의 빛을 의미하는 건 아니라는 점에서 우리 동방족은 태양을 마음의 표본으로 삼았지 숭배하지는 않았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따라서 고대 샤머니즘은 고등종교의 원형으로써 그 본질이 들어 있는 소중한 인류의식이라 할 수 있으며, 그러한 우주의식을 환인으로 대변되는 우리 동방족들이 가지고 있었고,
그러한 환한 우주의식을 기반으로 유라시아.아메리카 대륙에 홍익인간적 문명을 건설하고 전파한 주역이 되었다는 사실이다.[역사종교 연구가 윤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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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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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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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강래

2008.02.10
11:20:20
(*.208.31.196)
한반도 위상과 한민족 연방

동방족의 터전인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민족 연방시대 열어야..

윤복현 기자

[역사논단]한반도 '경성(서울)'을 중심으로 고대 우리 동방족(동이)들의 활동 영역이였던 쥐나대륙의 '북경',일본열도의 '동경',동남아 지역의 '남경',티벳지역의 '서경'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언어사적으로나 고고학적으로도 바로 동방족의 터전인 한반도가 인류문명을 태동시킨 어머니 땅이며, 한반도에서 발원한 동방족(동이)이 만주를 중심으로 유라시아와 아메리카 대륙으로 분산되어 위대한 한민족의 문명을 개척하고 전파하였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제 다시 유라시아 대륙과 아메리카 대륙에 분산되어 있는 우리 동방족들이 한반도를 무역과 정보의 중심지로 삼고 역사인식에 대한 공유를 전제로 문화적 교류와 경제협력 등으로 하나되어 위대한 한민족 연방시대를 열어 나갈 때입니다. 그것이 바로 자주성과 주체성과 창조성과 개방성이 강했던 우리 한민족의 시대적 비젼이기도 합니다.



▲ 인류문명이 태동한 동방족의 터전 한반도-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유적지들과 유물들의 분포 지역





▲ 이집트 티우왕조의 제기용 그릇문양(왼쪽). 한국의 일목삼신어 부적문양(가운데) 서로 동일한 문양구조임을 알 수 있다. 오른쪽 하단 사진은 티벳지역의 피라미드 모습




[관련자료]천지인 합일 사상으로 흰옷입고 고산지대에서 살아가는 인디언들




한반도가 우리 동방족(한반도 사람들)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일본의 침략주의와 미국과 소련(러시아) 등 서양 제국주의의 무력에 의하여 남북으로 분단된 지 반세기가 지나 지금은 어쩔 수 없이 과거처럼 조선(朝鮮)과 한(韓)의 두 나라가 되었지만 조상 대대로 원래는 만주를 포함하여 남북이 하나로 뭉쳐진 단일민족입니다. 즉 '동이'(東夷)라고 불리워졌던 우리 동방족(한반도 사람들)이 그 근원인데, 동이는 쥐나대륙의 중원에서 보아 해뜨는 동쪽 민족, 즉 과거의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을 비롯하여 만주와 연해주에 근간을 두었던 대진국(밝해) 지역까지 포함한 민족을 통칭하는 말로, 지금의 한반도와 북경 동쪽의 요서, 요동, 만주 그리고 러시아 동단의 연해주를 포함한 지역입니다.

그리고 구이(九夷)는 동이와 동등시했거나 또는 동이에서 파생된 민족을 일컫는데, 그 근간을 구환(九桓)의 후예로 보는 것이 타당하리라 여겨집니다. 그러니까 복희와 치우가 만주에서 산동으로 진출한 이후 산동과 안휘 등의 회대(淮岱) 지역이 동이족이 되어 이들 대부분 복희와 치우의 후손으로 자랑하게 된 것으로, 즉 단군조선 당시 하(夏)의 우왕(禹王)이 나온 이후에 한반도를 포함한 요녕성, 산동성, 안휘성, 절강성 등의 황해 연안 지역이 모두 동이 또는 구이의 영역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묘족의 소모리 전통의상





소머리 치우천황 - 소머리강은 북만주 송화강을 의미하는데, 치우천황 세력의 발원지도 송화강 지역으로 추정할 수 있다.



동이의 여러 문헌을 살펴보면 단군조선 이전에는 신시(神市) 청구국(靑丘國)이 있었고, 그 이전에 환국(桓國)이 있었다고 하는데, 환국 당시에도 구환(九桓)이 있어 지금의 강남(江南) 묘족(苗族)이 구환 가운데 하나인 묘환(苗桓)에 해당합니다. 이 묘족은 지금의 쥐나를 교조주의와 모택동 패거리주의을 청산하고 개방개혁으로 시장경제를 수용하여 쥐나를 경제대국으로 발전시킨 등소평을 배출하기도 했는데, 자신들을 치우천황의 후손들이라며 거대한 치우천황상을 세우고 제사를 드리고 있고, 현재 쥐나의 경제권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역사학계와 고대사 교류를 맺고 있기도 합니다. 이렇듯이 구이의 근간인 구환의 자취를 살펴보면 한반도를 중심으로 남으로는 일본 구주, 쥐나대륙의 절강성, 화북성, 사천성, 서장의 티벳, 부탄, 인도 북방의 앗삼, 간다라 지방으로 이어지면서 한반도의 상고문화 흔적이 남아 있으며, 북으로는 러시아 동단의 하바롭스크, 몽골 북방, 바이칼 호수, 알타이 고원으로 이어져 그 서쪽 끝이 지금의 이란 고원과 터어키 고원 지대에서 합류하게 됩니다. 즉 태초에는 해뜨는 동쪽 끝이 두만강 유역이었고, 해지는 서쪽 끝이 사천성과 이란 지역에 해당합니다.

러시아 남방의 바이칼 지역과 알타이 지역 모두 한대(漢代) 무렵에는 북이(北夷) 또는 북적(北狄)으로 불렀는데, 산해경에서 말하는 쥐나대륙 북서쪽의 숙신(肅愼)과 백민(白民), 그리고 정령국(釘靈國)이 아마도 이 일대에 해당할 것입니다. 한무제(漢武帝) 이전에는 사실 동아시아 여러 나라들이 거의 대부분 유목 민족으로서 수시로 나라를 이리저리 옮겨다녔기 때문에 두만강 유역에 근간을 두었던 숙신과 백민도 한대(漢代) 이전에 서쪽으로 이전하면서 서방에서 동진하던 백계 러시아(Belarus) 민족과 융합하여 알타이 일대에서 안드로노보(Andronovo)와 카라숙(Karasuk) 문화를 이룩하고, 그후 한대(漢代) 들어 현재의 바이칼 호반에 정령국이 자리 잡게 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 부산 기장군 지역의 선돌





한반도의 상징 고인돌




이러한 사실은 고고학적으로 알타이와 바이칼 일대에서 발견된 신석기와 청동기 유적과 유물에서 보다 분명하게 드러나는데, 특히 알타이를 비롯한 시베리아 전역에서 발견된 모든 석조물과 돌무덤들은 모조리 선돌(立石), 돌널무덤(石棺墓) 또는 그로부터 파생된 둘레돌(護石, 環狀列石) 양식을 보이고 있어 이들 유적 모두 만주와 한반도에서 성행하였던 고인돌(支石墓) 이후에 나타나는 유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즉, 고인돌은 한반도 황해도에 있었던 군자국에서 처음 만들기 시작하였습니다.



과거 북한학자들이 고인돌을 황해도 장산곶을 통하여 외지로부터 유입되었다고 말한 적이 있으나 이는 전적으로 유럽에서 공부하였던 도유호의 판단 오류입니다. 세계 고인돌의 70%에 해당하는 어마 어마한 무게의 한반도 고인돌들을 유입했다는건 말이 되지 않습니다. 또한 일본 학자는 구주에서 세계의 고인돌 양식이 비롯되었다고 말하여 이를 유럽 학자들이 받아들인 적이 있으나, 그의 주장은 자신들의 구주 고인돌만을 근거하여 아전인수격으로 말한 것으로, 지하의 남방식에서 지상의 북방식으로 발전되었다고 주장한 것인데, 구주 지역의 고인돌 분포가 한반도와 인접한 구주 북방에 한정되어 있다는 점에서 일고의 가치가 없는 주장으로 여기게 되었습다. 고인돌은 영국 .인도 등 유라시아 지역과 아메리카 인디언 유적지에서 발견되었다. 세계 70%가 분포된 한반도가 고인돌 문명의 중심지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있다면 정신이 나갔거나, 식민사관적 논리에 불과할 것입니다.



▲ 유라시아 대륙에 분포된 비파 청동검. 한반도에서 비파 청동검이 변형된 세형 청동검






단군족은 청동기 문명을 가지고 알타이 지역에서 만주지역으로 동진한 서이족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알타이 일대에서 발견되는 모든 청동기도 사실상 은대(殷代) 청동기 이전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이 없어 은대(殷代) 무렵에 요녕성의 동이와 섬서성, 감숙성의 서이의 영향으로 알타이 청동기가 형성되었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즉, 쥐나문헌들을 보면 요동과 요서지역에서 급성장한 청동기 문명의 주역을 부여와 고구려의 직계 조상이 되는 예맥족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이 예맥족의 실체는 당시 만주와 한반도 지역의 고인돌 문명의 주역들인 동이족과 융합하고 청동기 문명과 천제사상 등 고급문명으로 헤게모니를 장악하여 단군조선을 건국한 단군족은 알타이산맥을 넘어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하여 동진해온 서이족으로서 단군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단군족이 이후 동방문명을 주도해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단군족도 결국 조상의 뿌리는 동방족입니다. 그리고 고인돌 문명의 주역은 단군족이 만주로 유입되기 전까지 곰족 등 만주와 한반도의 동방족이지, 동진해온 단군족의 문명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단군족은 청동기 문명의 주역이였습니다. 이런 점을 쥐나의 사서와 각종 문헌에서도 누누이 말하여 왔는데, 즉 쥐나 화하족(華夏族)의 조상은 동이이며, 북이는 동이에서 파생되었고, 북방과 서방을 주름잡던 흉노족 또한 그 조상을 동이에 두고 있으며, 검(劍)은 만주 동이족인 치우에게서 비롯하였고, 그 후 칼(刀子)이 서이(西夷)의 수인씨(燧人氏)에게서 비롯하였다고 말입니다. 또 북이는 북호(北胡)와 북적(北狄), 즉 동호(東胡)의 후예를 뜻하는데, 동호는 한무제 당시 구려(句麗)에서 갈라져 나간 동이족을 말하며, 이런 과정이 여러번 거듭되면서 동호의 갈래인 돌궐(突厥)이 탄생하여 오늘날의 터어키가 세워지게 됩니다.


▲ 3조선으로 분할 통치되었던 단군조선의 광역도( 단군조선의 영역은 청동검 분포지역). 단군족이 신성시 했다는 '맥'(쥐나족이 청동기 문명의 주역인 단군족을 예맥족으로 기록한 배경이 된다고 보며, 우리 말의 힘이 빠진 상태를 '맥' 빠졌다고 표현한 배경도 된다 본다) - '맥'의 모습은 남아메리카의 신전에 가면 조형물를 볼 수 있음 (맥시코에서 맥이의 신전 멕시코 유카탄반도 카바. 마야 유적지) 참고로 백제의 본래 이름은 '맥제'다. 쥐나문헌에는 주로 백제를 '맥제'로 기록하고 있고, 광개토태왕비에도 백제를 비하한 표현으로 '백잔百殘'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고구려와 백제 모두 북방 유목민족이던 단군조선(단족=맥족)의 후손들임은 분명한 역사적 사실인 것이다. 따라서 고대 유라시아 .아메리카 대륙사에 있어 고인돌 문명시대를 마감시키고 청동기 문명시대의 주역으로서 한민족를 하나로 통합했던 단군족의 위상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고 볼 수 있다. 한국 사학계는 요녕성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청동기 문명의 주역과 한민족을 통합한 건국세력으로만 생각하고 있는 단군족과 고대 유라시아 대륙사의 관계성을 열린 마음으로 깊이 연구한다면 유라시아.아메리카 대륙의 한민족사를 재조명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우리의 남한은 선사 시대에 어떤 역사가 있었을까요. 여러 문헌을 종합하면 이렇습니다. 남한의 남해안은 쥐나대륙의 절강성과 가장 가까운 지역으로 원래 일본의 구주(九州) 섬 북방과 함께 남이족(南夷族)의 동쪽 끝 영역이었다가 한반도 남해안과 중국 절강성, 일본 구주가 분리하는 시기에 단군조선이 세워지면서 요동(遼東)에 근거하고 있었던 단군조선에서 강화도(江華島)의 남이를 정벌하고 마니산(摩尼山, 摩璃山)에 참성단(塹城壇)을 쌓게 되었습니다. 이를 기점으로 하여 한반도의 남북이 합쳐져 북쪽 지역은 청천강 이북까지 단군조선이 영역을 넓히고, 남쪽 내륙은 단군의 후예들이 배달(倍達)의 청구국(靑丘國)을 이어받아 남쪽의 청구국을 세우게 되어 단군조선이 세워지면서 한반도가 처음으로 통일을 이루게 됩니다. 이것이 나중에 삼조선(三朝鮮)으로 확충되면서 북쪽으로는 요동의 진조선(眞朝鮮), 서쪽으로는 산동의 번조선(番朝鮮), 남쪽으로는 막조선(莫朝鮮)이 됩니다.

그리고 산해경을 살펴보면 이때를 즈음하여 한반도 남쪽 해안에서는 환두국(驩頭國)과 대인국(大人國)이 세워진 것으로 나타나는데, 남해안 일대의 여러 풍물과 전설을 참고하면 요순시대(堯舜時代)에 남해안 일대에 대인국과 환두국이 존재하였음이 분명합니다. 이 환두국이 주도를 하여 남한 지역에는 막조선을 이어받아 마한(馬韓)이 세워지게 되는데, 환두는 곧 마한을 뜻하는 말입니다. 그 후 단군조선의 영역이 황해 연안 전체로 확장되었는데,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에 들어서 오월(吳越)이 등장하면서 쥐나가 흥하고 동이가 쇠약해져 은(殷)나라 주(紂)의 신하이었던 기자(箕子)가 동이로 망명하여 당시 북경 동쪽 요서(遼西)에 있었던 번조선(番朝鮮)을 맡아 다스리다가 드디어는 기자 후손이 만주의 진조선(眞朝鮮)까지 통치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연왕(燕王) 노관(盧관)이 흉노(匈奴)로 망명하자 그의 부하인 위만(衛滿)이 살금살금 조선의 왕권을 차지하게 되었는데, 당시 수유후(須臾侯)이자 조선의 왕이었던 기자 후손의 기준(箕準)은 조선의 왕위를 위만에게 던져주고 바다를 건너 마한으로 들어가 한왕(韓王)이 되었으며, 한(韓)의 왕 기준(箕準)이 죽은 다음 왕위는 다시 마한에게 넘어갔습니다.




▲ 대 부여의 시조 해모수의 영정-47대 단군 고열가가 정치에 뜻을 두지 않자, 권력을 잡고 국호를 부여로 바꾸었을 뿐 단군조선은 부여와 고구려를 통하여 지속되었다


물론 북쪽의 만주에서는 단군조선이 망해가자 단군 왕실의 후예인 해모수(解慕漱)가 기자 후손들과 약속하여 유민을 모아 부여(夫餘, 北夫餘)를 세우게 된 것이지요. 그래서 해모수를 단군이 아니라, 고조선 유민들의 의병장으로 설정한 mbc주몽은 고대사를 왜곡한 사극입니다.


그 후 서이족인 진시황(秦始皇)이 쥐나 내륙에서 동이를 몰아내고 강력한 통일정책을 펼치자 과거 중국으로 들어가 쥐나 각 지역에서 왕족과 귀족이 되었던 동이족들이 진시황의 압력에 견디지 못하고 다시 한반도로 이주하여 귀향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마한에서는 이주민들에게 마한 동쪽을 떼어주어 진한(辰韓)이라는 나라를 세우게 하였는데, 이 진한이 점차 성장하면서 마한에서 독립하여 신라(新羅)를 세우게 되었으며, 이들이 과거 대인국(大人國)의 후손이었던 변한(弁韓)과 가야(伽倻)를 흡수하게 됩니다. 그러자 신라의 김씨 왕조(김알지 왕조)에게 밀린 가야의 왕족과 귀족들이 바다를 건너 일본 열도에 들어가 세력을 확장하면서 구주(九州)의 왜국(倭國)을 대신하여 일본(日本)이란 나라를 세우게 됩니다.

본래 신라는 고조선 유민들이 세운 나라입니다. 그런데, 쥐나대륙에서 헤게모니 쟁탈전에서 밀려난 흉노족 왕족출신인 김알지 세력들이 들어 오게 됩니다. 이 김알지의 후손들이 당시 신라의 왕권을 가진 석씨 왕족을 쿠테타로 몰살시켜 일본 열도로 추방하다시피 합니다.


당나라와 연합하여 고구려와 백제를 멸망시킨 김알지의 후손 태종 무열왕 김춘추(신라의 모든 관제를 당나라로 바꾸면서까지 친당 사대주의를 유지), 흉노의 전성기 광역도, 서방을 떨게 한 흉노(훈)족. 유라시아 대륙을 누비던 동방족의 배사법 [오른쪽부터]



그리고, 이러한 신라는 당나라와 연합하여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게 됩니다. 멸망한 백제왕족과 귀족들도 일본 열도로 이주하게 되고 이들 가야인들과 백제인들은 신라를 원수보듯하게 되고 일본의 한반도 침략의 빌미를 제공하게 되고 일본이 역사를 왜곡하게 되는 역사적 배경이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한일관계는 이러한 역사적 배경없이 한일 양국 모두 감정적으로 대응해서는 결코 근본적인 화해와 해결책이 나올 수 없습니다. 신라의 김알지 후손들은 백제계와 가야계인 일본 황실에 역사적 범죄행위에 대해 사죄하고 일본황실 또한 한반도 침략에 대해 사죄하고 일제하 피해보상을 해 주어야 진정한 동반자적 관계가 형성될 수 있습니다.




경주 금령총에서 출토된 기마 인물상 토기- 흉노족 석상


그런 역사적 배경에서 보면 소수로 신라건국에 참여한 흉노족 출신인 신라의 김알지 세력들은 피(유전자) 자체가 호전적이고 교활하다고 할 수 있으며, 이러한 유전자들이 아직도 그러한 자신들의 역사적 범죄행위에 대해 반성없이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훼손하고 민족발전을 가로 막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본래 흉노족이 단군을 호위하는 무사계층이라지만, 서진하였다가 동진해온 흉노족은 조금은 민족의 동질성과는 거리가 있어 보였는지 모릅니다. 그러기에 그러한 생존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사례:고구려의 남하에 대비하기위해 백제와 맺었던 100년간의 동맹도 먼저 파기하고 백제를 선제공격하여 신라와 백제가 나당연합군에 의해 멸망할 때 까지 결국 원수지간이 되어 버림)을 가리지 않는 반 민족성을 유지했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흉노족의 기원은 [한단고기]에 보면 단군에게 무례하게 반항하다 유배당한 '색정'이라는 신하인데, 그러한 기록만 보아도 상당히 '색정'이라는 사람은 호전적이고 무례한 기질의 소유자였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러한 색정이 서방을 두려움으로 내 몰았던 흉노족의 조상입니다. 그래서 예의없이 건방진 사람을 '삭정이 같은 넘'이라고 했는데, 여기서 '삭정이'는 흉노족의 조상인 '색정'을 의미합니다.




▲ 한반도에 국한시킨 식민사관의 대부 이병도


이런 역사적인 사실 때문에 과거 한국전쟁 당시에 남북 분리에 찬동하였던 일본 학자들이 여론을 주도하면서 남쪽은 한(韓), 북쪽은 조선(朝鮮)이라는 인식이 형성되어 결과적으로 지금과 같은 상황이 되었는데, 이 당시 대구를 중심으로 하는 영남학파 가운데 식민주의와 사대주의 성향의 일부 학자들은 이에 한발 더 나아가 진한(辰韓)과 신라(新羅)의 근본을 마한과는 근본이 전혀 다른 중국 바깥의 몽고, 알타이 또는 바이칼 인근으로부터 유입된 기마민족(騎馬民族)이라고 주장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북방의 기마민족 대부분은 북이의 동호(東胡)와 말갈(靺鞨) 특징을 공통적으로 갖고 있으며, 따라서 가야와 신라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기마 문화는 동호의 후예들이 남긴 흔적으로 볼 수 있는데, 흉노 등 동호는 원래 단군조선의 무사계층(武士階層), 즉 왕을 보좌하기 위하여 검을 받드는 귀족 출신이어서 그 후예들이 세운 가야와 신라는 무사 계층이 주도한 만큼 검과 더불어 기마족 특성을 나타낼 수밖에 없습니다. 이같은 특징이 알타이 지역과 더불어 과거 서이의 영역이었던 감숙성 일대의 월지(月氏,月支)와 월지의 후예이었던 천산산맥 서쪽의 카자흐스탄 이색(伊塞, 이씩)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동호의 근본이 구려이며, 구려는 다시 그 근본이 치우천황이 세운 신시 청구국에 있는지라, 이들 모두 그 뿌리가 동이족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즉, 쥐나 문헌에서 가끔 중원의 뿌리를 북방으로 말한 경우가 있는데, 이는 오로지 요서와 내몽고 지역의 요(堯)와 동호(東胡)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 밖의 경우는 아마도 기후 변화 때문이라 할 수 있는데, 즉 산해경에 나타나듯이 상고 시대에 쥐나 북방의 시베리아 지역에는 여러 나라들이 존재하고 있었으며, 어느 시기에 북방 기후가 급속도로 악화되면서 이들 대부분이 쥐나로 들어가거나 또는 유럽 등지의 사방으로 흩어져 결과적으로 지구상의 문화를 일시에 변화시킨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여서 이들 북방민족을 한반도 민족의 원류로 말한 문헌은 없으며, 더군다나 고구려 시조의 출신지로 일컫는 북이도 단지 만주 북방의 흑룡강 지역을 일컫는 말일 뿐입니다. 이같은 사실은 고인돌을 비롯한 돌무덤의 양식에서 너무도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즉, 쥐나 사서와 고대 문헌에서는 한반도의 동방족이 북이 또는 남이, 또는 기타 어디든지 외지로부터 유입된 민족이라는 말이 없었으며, 더구나 쥐나의 절대적인 영향 아래에 있었던 한사군(漢四郡) 시대에도 이와 비슷한 말은 한 마디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쥐나를 비롯한 아시아 민족 대부분이 만주와 한반도 동이족의 문화를 받아들여 동아시아의 여러 나라가 세워지게 되었다고 누누이 말해 왔으며, 이에 한발 더 나아가 규원사화와 환단고기를 비롯한 동이의 여러 문헌에서는 전 세계 여러 민족의 조상이 바로 동이(한반도 사람들)로부터 비롯되었다고 말해왔습니다. 물론 전 세계에 막강한 위력을 떨쳤던 징기스칸의 몽고제국 시대에도 한반도는 인류 기원의 무지개가 피어났던 무지개의 나라, '소롱고'로 부르면서 아시아 대륙 대부분을 병합하여 그들의 휘하에 두면서도 오로지 한반도 만큼은 고려(高麗)라는 독립국으로 존속하도록 하였습니다.


▲ '소롱고' 라며 한반도를 조상들의 땅으로 생각했던 징기즈칸과 터키(돌궐), 그리고 인도의 무굴제국 [오른쪽부터]



단군세기에서도 몽고(蒙古)의 조상('한단고기'-5대 단군의 동생이 몽고리 칸으로 임명)은 단군 초기에 동이로부터 갈라져 나갔다고 말하고 있어 이를 뒷받침하고 있으며, 고대 12한국영역을 복원하여 유라시아 대륙을 경영한 몽고리(몽골)의 징기즈칸도 한반도를 "무지개가 뜨는 나라"라는 의미의 '소롱고'라 하여 성스럽게 생각하여 징기즈칸 통치하에서는 한반도를 침범하지 않았고, 인도의 무굴 제국 또한 자신들의 문화 근원을 한반도로 말했었으며, 또한 아시아와 유럽을 함께 아우렀던 막강한 오스만 터어키 제국에서도 오로지 한반도 만큼은 자신들의 조상 나라로 확인하였던 적이 있었습니다. 참고로 단군조선에서 나온 몽골이 한반도를 일컬어 ‘소롱고’라고 했는데, 소롱고는 서리국, 시라국, 아라국과 통하여 본래는 오랑캐를 뜻합니다. 쥐나인들이 동이족을 일컬어 불렀던 오랑캐의 본래 의미는 오색 무지개 빛에 둘러싸여 태초 인류가 된 것에서 비롯하여 무지개가 피어나는 나라를 일컫는 말이 되었는데, 무지개는 곧 금 또는 구리 금속을 뜻하여 결국 금(구리)이 변하여 사람이 된 것을 말합니다.



▲ 무궁화의 원산지 한반도 - '시리아쿠스'라고 불리우는 무궁화의 원산지는 시리아가 아니라, 위 사진들이 증명하는 바와 같이 여러 종류의 야생 무궁화들이 자생하는 한반도다. 4천년 전부터 쓰여진 책이라는 고대 산해경(山海經)의 해외동경(海外東經)을 보면 한반도 중남부에 [군자국]이 있는데 그 나라의 특징 중의 하나가 무궁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즉, "君子國 在其北 衣冠帶劍 食獸 使二大虎 其人好讓不爭 有薰華草 朝生夕死 " 해석하면, " 군자(君子: 위대한 사람)들이 사는 나라가 있는데 '격식을 갖춘 옷'을 입고 '격식을 갖춘 모자'를 쓰고 '격식을 갖춘 허리띠'를 두르고, 칼을 차고 다니고, 짐승을 기르고, 큰 호랑이 두마리를 부리는데, 그 사람들은 양보하기를 좋아하고 싸우지 않는다. (好讓不爭) 무궁화(薰華草:훈화초)가 있는데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진다." 라는 내용입니다. 따라서 무궁화의 원산지는 한반도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오랑캐는 금성(金城) 또는 금국(金國)으로 바꿔 말할 수 있는데, 신라(新羅)라는 말도 금국, 즉 쇠나라에서 비롯한 말로, 이 말은 처음 만주 하얼빈에 근본을 둔 진한(辰韓, 眞朝鮮)에서 비롯한 말입니다. 진(眞)은 진(辰)과 통하여 신(新)이 됩니다.


▲ 머리에 무궁화관 목에는십자가-나중 불교에서 연꽃으로 바꿈(왜곡) 동이족 석가모니의 출신지가 어디인지을 무궁화꽃으로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 자는 본래 동방족의 상징이다. 서진한 동방족들에 의해 기독교 사상으로 발전하고 기독교의 전유물처럼 인식된 것이다.



상고 문헌에서 말하는 부상(扶桑)은 지금의 금강산(金剛山)의 모체(母體)를 이루었던 청색 용암 기둥을 일컫는 말인데, 인류문명을 태동시킨 꽃같은 무지개가 바로 이 부상에서 피어나는 무지개 꽃을 말함입니다. 즉 처음에는 황해도에 자리한 군자국(君子國)에서 동쪽의 부상(扶桑)에서 피어나는 무지개 꽃을 무궁화라 불렀으며, 이를 후세에는 연꽃으로 불러 불교에서 이를 받아 들여 처음에는 무궁화를 연꽃으로 사용하다가 나중에는 지금의 연꽃으로 바꾸어 사용하게 되었고, 만주에서는 무궁화를 모란꽃으로 부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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