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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 사
역사인식 없는 정부의 문화재청장 인사

대한민국에 필요한 것은 불도저가 아니라, 뇌수술하는 외과의사이다.

아래에 파이넨셜 타임즈 (Financial Times) 기사의 마지막 부분을 인용한다.
For a new broom, he seems redolent of Korea's past. While drive beats drift any day, what Seoul needs is a brain surgeon, not a bulldozer.

(신임 대통령으로서 이명박은 한국의 과거를 상기시킨다. 한국에 필요한 것은 불도저가 아니라 뇌수술 의사다.)

  
성훈 칼럼니스트  
  
국보 1호 숭례문 화제의 책임을 지고 물러난 유홍준 문화재청장의 후임으로 정부는 3월초 이건무씨를 임명했다.

신임 이건무청장의 약력을 보면 서울대학교를 졸업했고, 주요 경력으로는 국립광주박물관장, 국립중앙박물관장, 용인대 문화재보존학과 교수, 한국고고학회장 등으로 문화재와 아주 관련이 많아 보여 얼듯 보면 최적임자를 임명한 것과 같아 보인다.  


▲   국민들의 역사의식이 부족해 발생한 숭례문 화재는 이건무에게 천우신조의 기회를 준다. 이건무는 자기 조부 이병도가 말살한 역사(민족정신)를 회복해 올바른 역사의식을 국민들에게 심어줄 생각은 안하고 경비원을 동원해 철통같이 지키겠다고 한다.

이병도나 이건무나 둘다 천운을 타고난 것 같다.


그러나 이번 인사를 단행한 새 정부는 스스로 역사인식이 없다는 것을 만천하에 공표한 인사시스템의 부재라 아니할 수 없다.

이건무씨가 과연 누구인지 알고나 한 인사란 말인가!!!

이건무 신임 문화재청장은 이장무 현 서울대총장과는 친형제지간이고, 친일사학자 이병도의 친손자이다.

그리고 민족반역자 이병도는 매국노 이완용의 질손(姪孫)이다.

참여정부에 이어 실용정부 역시 역사의식이 없는 정부라는 것이 이번 인사로 확인되었다고 하겠다.

인터넷 카페에서 한 뜻있는 네티즌은 “대한민국 완전히 미쳤다.”라는 글로 분노를 표시하기도 했다.

매국노/민족반역자의 후손인 이장무 서울대총장과 이건무 문화재청장이 참여정부에 이어 실용정부에서도 정부 요직에 기용됨으로서 아직도 이 나라는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한심한 나라라는 것이 입증되었다.  

선조의 매국과 민족반역 친일행위
이완용은 국민들에게 친일매국노로 잘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친미파-->친러파-->친일파로 변신하며, 을사늑약과 경술국치를 성사시킨 공로로 일제로부터 후작이라는 작위까지 받고 수많은 재산을 모은 매국노의 대명사이다.

죽어서도 관 뚜껑의 명정에 대한제국의 총리대신이라는 직함 대신  "조선총독부 중추원부의장 정이위대훈위 우봉이공지구(朝鮮總督府 中樞院副議長 正二位大勳位 侯爵牛峯李公之柩)"라고 쓴 철저한 친일파였다.    

이병도는 친일사학자라는 젊잖은 표현보다는 민족반역자란 수식어를 붙여야 할 정도로 우리의 민족정신인 역사를 도륙(屠戮)한 인물이다.

이병도는 일본 와세다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일제가 일왕 특명으로 조선인의 민족정기 말살을 위해 설립한 <조선사편수회>에서 16년간 이마니시 류(今西龍)의 충견(忠犬)으로 일했다.

<반도조선사 35권>을 완간한 공로를 인정받아, 일왕으로부터 ‘일본의 제1등 공신’이라는 명예(?)와 함께 거액의 포상금과 금시계를 받을 정도로 민족의 역사를 조작 왜곡하는데 가장 앞장선 인물이다.


▲  일본의 지방정권(?)인 대한민국 정부로 부터 이병도는 민족정기를 잘 말살했다는 공로로 충무무공훈장을 받았다.  

해방 후에는 반민특위를 공격하고 오히려 친일파를 중용한 이승만 정권의 비호로 서울대학교에서 교수와 대학원장을 지내고, 문교부장관과 대한민국 학술원원장을 지냈다.

일제 때 독립운동가를 사냥하듯이 잡아들인 악질 친일경찰 출신 김창용 특무대장의 추도비문을 쓰기도 했다.

이승만과 박정희 정권은 이병도에게 일제 때 우리의 민족정기를 아주 자~알 말살했다는 공로(?)로 충무무공훈장, 국민훈장 무궁화장, 학술원공로상, 서울시문화상, 문화훈장, 인촌문화상, 5·16민족상 등을 수여해 마치 국가의 영웅(?)으로 추대한 것 같아 보인다.

과연 당시 정권들이 일제의 지방정부인지 대한민국의 중앙정부인지 모를 정도였다.

이병도는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발표한 1차 친일파 명단에 이완용을 비롯한 을사5적 과 송병준(일진회 창단) 등 나라를 파는 데 앞장선 매국노들과 함께 포함되었다.

1차 친일파 명단에는 일제의 국권침탈에 적극 협력하고 그 대가로 작위와 은사금을 받은 자나 일정 지위의 관직에 있던 자들이 망라되었다.

이완용/송병준이 팔아먹은 나라는 36년 만에 되찾을 수 있었지만, 이병도가 팔아먹은 민족의 혼인 역사는 해방 62년이 넘었건만 아직도 되찾지 못하고 있다.

즉 일제의 충견 이병도는 조상님들을 욕보이고 민족의 정신을 썩고 병들게 만들었기 때문에 매국노 이완용보다 더 나쁜 민족반역자로 불러야 마땅한 것이다.  


▲  왼쪽부터 매국노 이완용, 민족반역자 이병도, 이장무 서울대총장, 이건무 문화재청장. 이완용과 이총장이 많이 닮았고, 이병도와 이건무청장이 닮아 보인다.

친일하면 3대가 아니라 4대가흥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가계이다.  


물론 현대사회에서는 선조의 잘못을 후손에게 연좌시킬 수는 없다. 그러나 그런 더러운 피를 물려받은 인물에게 국가가 고위공직을 맡기며, 특히 할아버지(이병도)가 도륙낸 역사와 관련된 문화재청장에 임명한 것에 대해서는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정말로 대한민국 정부의 인사시스템과 정신상태에 큰 문제가 있다 하겠다.

얼마나 역사인식이 없으면 그런 인사를 함부로 할 수 있단 말인가! 이건 정부 스스로 “우리는 참 역사가 뭔지도 모르오.”라는 표현과 같은 것이다. 정부의 이러한 얼빠진 인사는 민족반역자 이병도 에게 면죄부를 주는 행위와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고 하겠다.

오직하면 외국 언론에서 “한국에서 지금 필요한 것은 불도저가 아니라, 뇌수술을 할 외과의사이다.”라고 혹평을 했겠는가!

국립중앙박물관장 시절의 이건무

친일 역사청산이라는 취지로 용산으로 이전한 국립중앙박물관장에 참여정부 시절 이건무씨가 관장으로 임명되어 큰 논란을 빚은 적이 있다.

게다가 친형제인 이장무씨가 서울대학교 총장으로 임명되어 참여정부의 친일청산이 말로만 한 '무늬만 청산'이라는 비난을 받은 적이 있다.

당시 이 관장이 친일파의 후손이라는 것은 크게 두 가지 면에서 논란이 되었었다.

하나는 친일청산이라는 구호를 외쳐 관련 특위를 2개나 만들어 놓고는, 자신의 손으로 정부 주요 요직에 친일파의 후손을 임명한 노무현 대통령의 자기 모순적 친일청산이었다.

진짜 국가정의 실현을 위해 친일청산을 한 건지, 아니면 자신의 지지율 높이려고 말로만 외친 친일청산인지,,,,

다른 하나는 국립중앙박물관의 역사 왜곡 사례들이 이 관장의 선조들이 보여준 친일적 역사관과 연관이 있었다는 지적이다.

그리고 사학계 일부에서 주장하는 "이 관장의 개인적 역사관이 조부인 이병도의 영향을 받지 않았나?"하는 의혹도 있었다.  

당시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역사적 사실과 다른 역사를 그대로 전시한 경우가 많이 있었고, 친일적 뉘앙스의 역사 왜곡 사례도 있었다고 지적되었다. 대표적인 것으로 고조선 역사의 누락을 들 수 있다.

박물관 고고사관 입구에 설치된 대형 고고학 연표에 고조선의 역사를 누락한 채 구석기시대-->신석기시대-->청동기시대-->초기 철기시대-->원 삼국시대-->삼국시대의 순으로 우리 역사의 시대를 구분해 놓은 것이다.

이는 일제와 이병도가 조작한 단군 신화와 고조선 말살과도 연관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연표에 나타난 '삼국시대' 부분에서 “고구려가 서기 100년부터 676년까지 지속됐다는 내용에 대해 "동북공정이나 임나일본부설을 긍정하는 듯한 인상을 줄 수 있는 오류"라고 역사단체들에 의해 지적되었고 박물관 측에 시정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 외에도 친일적 뉘앙스의 왜곡은 또 있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불교 문화재로 꼽히는 금동반가사유상(국보 83호)에 대한 외국어 설명에 일본의 국보인 목조반가사유상과 상당히 흡사하다는 점을 강조해 놓은 것이다.

한 관람객은 "일본의 목조반가사유상과 닮았다고만 설명함으로써 한국문화가 일본에 영향을 줬다는 사실이 오도될 소지가 보인다."며 "한국보다는 일본에 친숙한 외국인들에게는 금동반가사유상이 일본에서 건너왔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조부인 이병도를 친일파로 분류한 것에 대해, 이 관장은 "가족들에게 창씨개명도 안 시켰으니 친일은 아니다"라는 괴변을 강력히 주장했다.

일제는 일부러 고위 관리 중 일부는 창씨개명을 안 시켰다. 그 이유는 창씨개명이 조선총독부의 강압에 의한 것이 아니라 조선인들의 자발적 참여에 의한 것이라는 점을 알리기 위함이었다.

이러한 논란이 계속되자 사학계 일부와 시민·네티즌들은 이건무 관장의 가족사를 문제 삼기 시작했고, 이 관장 개인과 조부(이병도)의 역사관이 반영돼 역사왜곡 사례들을 그대로 둔 게 아니냐고 지적했다.

결국 이건무관장은 스스로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여하튼 선대의 잘못을 후손에게 처벌하는 연좌제를 물을 수는 없지만, "왜 하필 국립중앙박물관장에 친일 민족반역자의 후손이…"라는 물음표(?)가 끊임없이 제기되기도 했다.

문화재청장이 되기 전.후의 이건무

이건무씨는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사임하고 용인대교수와 한국고고학회장을 역임하고 있던 중, 지난 1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박물관장을 차관급에서 1급으로 낮추고 그 업무를 문화재청으로 이관한다.”고 발표하자, 현재와 미래의 자기 밥그릇 크기가 줄어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인지 이를 공개적으로 반대하는 성명서를 내기도 했다.

금년 2월 14일에는 한국고고학회의 전.현직 회장 명의로 성명서를 발표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정부의 대운하 계획에 대해 “문화재 파괴를 조장하는 문화재 지표조사 완화방침을 즉각 철회하라.

대운하 공기 단축을 위해 문화재 지표조사 면적을 완화하려는 것은 개발을 위해서라면 문화재의 희생을 감수해도 좋다는 논리이고, 미개국에서나 있을법한 수치스러운 발상이다.”라고 원색적인 발언을 해대며 실질적인 대운하 반대 성명을 냈다.


▲  역사의식 없는 이명박대통령으로부터 문화재청장으로 임명된 이건무 전 국립중앙박물관장


3월 초 문화재청장 취임 인터뷰에서는 “문화재청과 박물관의 가장 바람직한 관계설정 방안은 장기적으로는 문화유산부 같은 장관급 기관을 만들어 합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고 말해, 숭례문 화재 이후 정부에서 새로운 부처를 만들어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며 은연중에 문화유산부 장관까지 욕심을 낸 것으로 보인다.  

문화재청을 곤혹스럽게 만든 숭례문 화재와 관련해서는  "지방자치단체에 관리가 이관된 현행 문화재 관리 체계 또한 문제가 있다고 누구나 인정하므로, 이를 타개하기 위한 예산이나 조직 확보 등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숭례문 화재를 계기로 큰 조직을 거느리고 예산을 많이 확보해 떡고물을 많이 만지자는 의도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순수한(?) 업무의욕인지는 모르겠다.  

대운하를 지지하고 나서는 이건무
3월 19일 서울 세종로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 청장은 학계에 대운하건설에 대한 협조를 요청할 것이라고 밝히면서 "한반도 대운하 건설은 대통령의 공약 사항입니다.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나온 게 없지만 국책사업으로 확정되면 문화재 훼손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며 대운하 건설에 대한 찬성 입장을 밝혔다.

불과 한 달 전에 인수위 계획에 반대하는 성명을 냈었는데, 한달 후 막상 문화재청장이 되자 자신의 말을 손바닥 뒤집듯 반대로 말했다.

양면인간 이건무씨는 2006년 용인대 교수와 한국고고학회장으로 재직할 때 한반도 대운하 건설을 반대한 것에 대해서는 "나는 대운하 사업 자체를 반대한 적은 한 번도 없고, 다만 그에 따른 문화재 조사가 철저히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으며, 청장이 된 지금도 그런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   국가의 대재앙을 불러올 대운하 노선계획도와 로드맵.


또 국립박물관의 문화재청 통합을 반대한 것에 대해서는 "문화재청과 박물관이 건전한 협력 경쟁관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박물관과의) 껄끄러운 관계를 개선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직답을 안하고 둘러댔다. 막상 청장이 되고 보니 이제는 문화유산부를 만들어 장관까지 되고 싶었나보다.

즉 자신의 소신을 정권과 코드를 맞추기 위해 말을 완전히 바꾼 것이다. 이를 보고 있자니 일제사학자 이마니시 류의 충견(忠犬)이 되어 먹이를 얻기 위해 주인이 시키는 대로 민족의 역사를 도륙낸 이청장의 조부 민족반역자 이병도를 보는 것과 똑같다. 그 할아버지에 그 손자 아닌가!  


▲  주인에게 안아달라 밥달라며 앞발들고 꼬리치는 개

그러면서  "대통령이 대운하를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된 만큼 추진 여부는 전적으로 대통령의 의지에 달린 문제입니다. 최종안이 정해지면 학계에 정식으로 도움을 요청해 국책사업이 잘 진행될 수 있도록 해야겠지요."라며 2MB에게 충성을 다하는 발언을 하며 지난날의 발언에 대한 화살을 피해갔고, 한달 전 “지표조사 완화는 미개국에서나 있을법한 수치스러운 발상”이라고 원색적인 발언으로 질타했던 그가 스스로 지표조사 완화를 위해 나서겠다는 양면성을 보인 표리부동한 인물이 이건무청장인 것이다.  

문화재 보호 대책과 관련, 이 청장은 지방청 신설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현재의 조직으로는 지방문화재들을 제대로 관리 감독할 수 없습니다.

청 단위 정부기관 중 문화재청만 유일하게 지방 조직이 없어요.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취지에는 공감합니다만 문화재청의 확장 문제는 검토해볼 여지가 있습니다."며 조직 확대를 요구했다.

잘난 이청장 덕분에 퇴출 대상 무능 공무원들이 발붙일 곳이 생겨 오히려 철밥통 숫자가 늘어날 것 같아 보인다. 국민들의 구직난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이다.  

숭례문 화재 이후 문화재청은 전국 144개 중요목재문화재에 상주감시 인력을 배치했고,  특히 문화재 보존 제도 및 정책을 합리화하겠다고 강조했다.

문화재 발굴 과정에서의 불필요한 마찰을 최대한 줄이겠다는 것으로 이른바 2MB가 좋아하는 영어로 '비즈니스 프렌들리(Business Friendly)'를 강조했다.

마치 주인(今西龍)의 의도를 잘 파악하는 충견 이병도를 보는 듯 하다. 목에 딸랑딸랑 방울을 달고 개꼬리 흔드는 모양하고는....


▲  유인촌장관과 숭례문 현장을 둘러보는 이건무 신임 문화재청장. 숭례문화재 이후 완전 이건무의 세상이 된 것으로 보인다. 문화재청장의 말을 안 들을 사람은 대한민국에 없다. 숭례문 화재를 일으키게 한 장본인인 2MB도 꼼짝못한다.  

이 청장은 내년까지 국보/보물급 목조문화재 123개소와 궁능 21개소 등 전국 144개 문화유산에 대한 방재시설 설치를 마치겠다고 밝혔다. 2008년 주요업무계획을 설명하면서 "올해 196억원을 투입해 경보장치와 수동 소화설비를 완비하고,

내년에는 594억원을 들여 자동 진화장비까지 설치를 마치겠다."고 말했다. 숭례문 화재가 결국은 이건무청장에게는 하늘이 내린 천우신조의 기회가 된 것으로 보인다.

마치 6.25 전쟁이 민족반역자 이병도를 구해주었듯이.... 아마 2MB는 숭례문 화재의 책임이 자신에게도 있기 때문에 이 예산을 거부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이 청장은 또 중요 목조문화재에는 2인1조 3교대, 궁능에는 야간에 3인1조 2교대로 운영하는 상주감시 인력을 배치하고, 이를 위한 인력 482명과 비용(57억원)를 올해 예산에 반영했다고 밝혔다.

그렇게 돈과 인력을 퍼부어 문화재를 경비원으로 철통같이 지키는 대책은 초등학생 데려다 놓아도 누구나 발상할 수 있는 대책이다.

이건무 신임 문화재청장은 취임한 지 이제 10일도 안 됐었는데 그 사이 어느새 ‘왕의 남자’가 되었다. 주인 2MB가 부르자 꼬리를 흔들며 달려가더니 한달 전에 비판했던 말을 홀까닥 손바닥 뒤집듯이 바꾸었다..... 어쩌면 그렇게도 주인 이마니시 류(今西龍)의 충견(忠犬)이었던 조부 이병도와 똑 같은지... 멍 멍 멍

친일파들은 태양을 따라 움직이는 해바라기의 기질이 있고, 권력자의 의중을 아주 잘 파악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자신에게 먹이를 주고 이뻐해 주면 꼬리를 흔들고 앞발을 꺽고 홀랑 뒤집어지는 애완견의 특성이 있다. 이완용, 이병도, 이건무청장과 이장무총장은 다 그런 부류의 인간들이라는 것을 역사 인식이 없는 정부가 알 턱이 없지 않은가!!!

해방 이후 아직까지 이 땅에는 국민들로부터 존경을 받은 정부가 나온 적이 단 한번도 없다. 그 이유는 역사인식(민족정신)이 있는 정부가 출범한 적이 단 한번도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대한민국의 큰 비극이며 슬픔인 것이다. 모두들 독립운동하면 3대가 망하고, 친일하면 3대가 흥한다는 만고의 진리만 국민들에게 보여주고 말았다.

진정으로 국가와 국민을 위해 목숨을 바친 단재 신채호선생을 비롯한 홍범도 김규식선생 등 이백명이 넘는 독립운동가들이 아직도 무국적자로 되어 있어 그 후손들의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닌데,

이완용-->이병도-->이장무와 이건무로 이어지는 친일 민족반역자 후손들은 해방 62년이 지난 현 정부에서도 아직도 고위직에 임용되고 있다. 친일파의 부와 권력은 계속 세습되는 것인가!


▲  뒤통수에 뇌수술 흔적이 잇는 5천년전의 신석기시대인의 유골. 당시 이 사람은 대한민국 정부와 같은 뇌구조를 가지고 있었나 보다.

이러고도 과연 대한민국 정부가 제 정신이 있는 정부라고 할 수 있는가!!!! 민족정신을 함양하는 참 역사 교육에 대해서는 입도 뻥끗 안하면서,

영어로 전 과목을 수업하는 몰입교육을 하겠다고 한다. 민족정신을 함양하는데는 아무런 계획을 세우지 않으면서, 국가의 대재앙을 가져올 대운하 건설은 거국적으로 추진한다고 한다.  

외국 언론에서 “한국에서 지금 필요한 것은 불도저가 아니라, 뇌수술을 할 외과의사가 필요하다”는 혹평이 이해가 되고도 남음이 있다 하겠다. 아! 불쌍한 건 대한민국 국민들 뿐이다.

아래에 파이넨셜 타임즈 (Financial Times) 기사의 마지막 부분을 인용한다. For a new broom, he seems redolent of Korea's past. While drive beats drift any day, what Seoul needs is a brain surgeon, not a bulldozer. (신임 대통령으로서 이명박은 한국의 과거를 상기시킨다. 한국에 필요한 것은 불도저가 아니라 뇌수술 의사다.)


▲  대운하를 공약으로 내세우고 불도저처럼 추진하려는 이명박대통령. 대운하대신  바닷길를 이용하면 될 일을 가지고, 굳이 운하를 파려고 해 국가에 대재앙을 일으키려고 하고 있다. 원래 치수에 실패하면 민란이 일어나고 결국 나라가 망한 예가 역사에 많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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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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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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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강래

2008.03.24
08:34:46
(*.205.15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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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력문제]용비어천가 명비어천가


민족과 국민적 차원에서 본 8.15이후 남북한 정치권력에 대한 문제

김상일 교수

용비어천가와 명비어천가

“용이 하늘에서 내리샤”가 용비어천가의 첫 구절인 것은 누구나 다 안다.

‘용비어천가’는 할아버지 이성계의 건국을 하늘에서 용이 내린 것에 비유하여 나라의 정통성을 확고히 굳히기 위하여 세종대에 쓰인 것이다.

그래도 3대나 지나서 나온 글이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은 당선과 동시에 ‘명비어천가’란 신조어가 나돌았다.

‘좌파 정권 청산’ 그리고 ‘잃어버린 10년’을 다시 찾은 기분이었으니 가히 당선과 동시에 용비어천가를 쓰는 기분이었을 것은 짐작하고 남음이 있다.

남한의 역대 대통령들은 이명박뿐만 아니라, 당선이 되기가 바쁘게 자기 자신으로부터 나라가 새로 건국되는 듯이 용비어천가를 쓰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용비어천가를 쓰네’라는 유행어까지 나돌 정도이다.

우에서 좌로 바뀔 때 김대중 대통령은 ‘제 2의 건국’이라고까지 했으니 말이다.


▲ 대선당시 이명박 한나라당 경선후보(가운데)가 5·18묘지 유영봉안소에서 크게 웃는 사진 / 광주드림


이를 두고 강준만 교수(전북대 신문방송학)는 ‘원조 경쟁’ 이라 하면서 “한국사회의 독특한 풍경이라 할 치열한 ‘원조(元祖)’ 경쟁은 비단 음식점들 사이에서만 벌어지는 건 아니다.

지도자들 사이에서도 벌어진다. 자신이 새 시대를 여는 원조로 기록되고 싶어 하는 지도자들의 야망 경쟁은 한국정치의 익숙한 모습이다.

‘문민정부’, ‘국민의정부’, ‘참여정부’, ‘이명박정부’ 라는 딱지가 바로 그런 야망을 웅변해 준다.”(한국일보 2008년 2월 20일자) (밑줄은 필자)

이어지는 글에서 강 교수는 지도자의 이런 심리 상태를 ‘원조 콤플렉스’라 한다.

“우리 지도자들의 ‘원조 콤플렉스’는 과거와 단절의 자세를 취함으로써 이전 정부들의 경험에서 아무것도 배우려 하지 않으면서 모든 걸 ‘정치화’하려는 특성이 있다. 바로 이게 성공을 어렵게 만드는 주요 이유다.

뭐든지 새롭게 시작하겠다는 의욕은 과거를 부정하면서 기존 질서를 때려 부수는 걸로 시작한다.”(같은 글)

‘원조 콤플렉스’ 란 외래어를 쓸 필요 없이 ‘원조병 元祖病’ 혹은 ‘원조 걸신병 乞神病’이라고 하면 된다.

그러고 보면 원조병은 보수뿐만 아니라 진보에도 다 걸린 병이다. 진보와 보수 간 정권이 바뀌는 것을 한 나라 안의 정권 차원의 변화가 아니고 나라 정체성이 완전히 바뀌는 정도라고까지 생각하는 것 같다. 누군가 권력만 잡으면 스스로 단군이나 되는 것처럼 자처해 건국의 아버지가 되려 한다.

진보든 보수든 이런 증상을 비슷하게 보인다는 것은 어딘가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그런데 강 교수의 글은 이 근본적인 원인을 진단해 내는 데는 실패했다고 본다.

즉, 강 교수는 “어떤 정부가 들어서느냐에 따라 자신의 인생과 가문의 영광이 좌우되는, 수천에서 수만에 이르는 엘리트가 사는 나라”가 대한민국이고 이런 나라이고 보면 서로 자기가 원조라고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강 교수는 원조병을 지도자의 권력 야망에 돌리기까지 한다. 즉 “‘원조 콤플렉스’가 나쁜 건 아니다. 야망이 없었다면 어찌 지도자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겠는가. 중요한 것은 야망을 옳은 방향으로 발휘하는 지혜이지 야망 자체는 탓할 게 못 된다.”

그러나 한국의 원조병은 지도자 개인의 권력욕이나 인생과 나아가 가문의 영광 이상의 심각한 문제가 있으며 이는 나라가 성립하는 건국의 단서와도 관계가 있는,

그래서 이 원조병의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이에 대한 논리적인 분석이 불가피하다고 본다.

다시 말해 원조병은 ‘콤플렉스’ 라는 한갓 개인적 심리증상 이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원조병의 원인이 건국이라는 논리에 있다는 데서 다음과 같이 진단해 보려 한다.



▲ 조선의 대학자 다산 정약용

다산의 ‘원정’과 알랭 바디우의 집합론

정다산은 ‘원정 原政’에서 조선조 말 같은 삼정의 문란, 관료들의 가렴주구 등 같은 현상을 바로 보고 한 나라가 어쩌면 이렇게 될 수도 있을까 회의하면서 도대체 나라가 어떻게 밑바닥에서 성립하는가를 보기 위해 ‘원정’을 썼다.

지금 읽어도 왕조 시대에 어떻게 이런 글을 쓸 수 있었는지 실로 대담한 글이라 아니 할 수 없다.

다산에 의하면 자고로 한 나라란 임금부터 있고 나라부터 있어 생긴 것이 아니고, 인간들이 흩어져 살다 모여 촌락을 만들고 촌락을 운영하는 데 불편한 것이 생기니 촌장을 뽑고,

범죄자가 생기니 그 촌장이 나서서 시비를 가리다 보니 법이 생겨 이렇게 연장되어 나라가 되었다는 것이다. 원정의 기본 정신은 백성으로부터 백성이 주인이 되어 백성에 의한 것이 나라가 세워지는 이유라는 데 있다.

우리는 일제에 의하여 이런 ‘조선’이라는 나라가 완전히 없어지고 그것을 다시 찾아 건국을 하려고 했을 때는 사실상 다산의 이러한 원정의 정신에 의하여 밑바닥에서부터 다시 나라다운 나라를 세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을 것이다.

대승적으로 보았을 때 이를 두고 위기는 곧 기회라 하는 것이다. 봉건 잔재를 청산하고, 수천년 때묻은 계급을 타파하고, 외세의 간섭 없이 우리 힘으로 자주적인 나라를 세웠더라면 이것이 진정한 건국이지 않았을까 한다.


▲ 조선 백성들를 위한 다산 정약용의 우국충정의 문구들

우리 한번 다산의 이러한 국가관을 현대 프랑스 정치 철학자 알랭 바디우(1938- )의 수학적 존재론에 입각하여 재검토해 보자.

알랭 바디우는 수학의 집합론을 이용하여 백성들을 구성 요원 혹은 ‘요소 element’ 로 보았을 때에 이런 구성 요소들은 집합에 ‘귀속 belonging’ 한다고 했다.

그리고 이러한 1차적인 요소들의 귀속에 의하여 만들어진 것을 ‘상황 situation’ 이라고 한다. 학생이라는 구성 요소들은 ‘학급’을 만들고 이때에 학급은 요소가 아니고 ‘부분 part’ 이라고 한다. 그런데 부분은 학교라는 집합에 귀속한다고 하지 않고 ‘포함 inclusion’ 된다고 한다.

그리고 이들 부분들이 포함되는 것은 상황에 대해 ‘상황의 상태 state of situation’라고 한다. 이런 몇 가지 중학생 정도의 집합론적 용어만으로도 우리는 그의 정치관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결론으로부터 먼저 말해두면 현대의 국가는 상황이 아니고 상황의 상태라는 것이다. 국가의 지도자는 상황의 구성 요원들 즉 국민들에 의해 선출 되지만 국가가 경영하는 것은 부분들이지 요소가 아니다.

아니 국가는 자기를 선출해준 구성 요원들을 억압하고 구속하는 존재로 돌변한다. 여기에 상황과 상황의 상태 사이에 긴장 관계가 발생하고 상황의 요원들인 인민, 국민, 민중들이 볼 때 국가는 더 이상 친근한 존재가 아니다.

요소들로부터 권력이 나오는데 요소들이 오히려 착취와 억압을 당하는 이러한 ‘국가’와 개인의 관계는? 그것은 모두 집합론 상의 논리적 구조에서 불가피하다는 것이 바디우의 주장이다.

그래서 지금부터 요소와 부분 그리고 귀속과 포함을 구분하는 것, 그리고 나아가 그들 간의 관계를 파악하는 것은 너무도 중요하고 국가라는 개념을 만드는데 신기원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구분을 하는 데서 바디우의 정치 철학이 각광을 받고 주목을 받는 이유가 있다.

아직 살아있는 프랑스 철학자 알랭 바디우는 금년 한국에서 열리는 세계 철학자 대회(7월 30일-8월 5일)에 주제 강연자로 한국에 온다.

그는 지금 탈현대 이후 서양 철학의 대안으로 떠오르는 인물이다. 그가 영미분석 철학과 현상학 그리고 탈현대의 제 철학을 모두 종합할 수 있는 대안의 철학자로 부상하는 이유는 그가 단단한 수학적 기반 위에 그의 철학을 전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한 때 마오이스트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그도 초기 사상에서는 상황의 상태를 억압 구조로 보고 이를 제거의 대상으로 겨냥 마오이스트가 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그러면 왜? 원정에서 보는 바와 같이 상황으로 되돌아가 건국을 하려는 이 정치적 본능,

이것이 마르크스의 국가관이었으나 바디우는 상황과 상황의 상태는 불가분리적이며 그래서 긴장 관계라 보고 마르크스 같이 상황에서 상황의 상태를 분리시키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가 마르크스주의와 결별하는 이유이다.

일반 선거와 당원 선거를 분리하는 이유

우선 해방 이후 ‘건국’이라는 화두에 이 집합론의 간단한 개념들을 적용해 보고 원조 걸신병의 원인을 진단해 내자. 서양에서 ‘국가 nation’ 혹은 ‘state’ 라는 것이 처음 생긴 것은 프랑스 혁명 이후부터라는 데는 그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럼 왜 하필이면 프랑스 혁명 부터인가?

이것은 수학적인 질문이다. 다시 말해 집합론적 질문이다.

그 이유는 프랑스 혁명 이후에 처음으로 시민 사회가 생겼고 이 시민 사회란 혁명 이전에는 구성 요소로 있던 개인들이 하나의 집합을 만들어 시민 단체가 생겨났고 이것이 발전하여 정당이 된다.

이는 집합론적으로 보아 요소가 모여 부분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국가는 다름 아닌 이런 ‘부분들의 집합 set of parts’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현대의 국가는 정당을 전제하고 정당의 대표에 의한 의회 정치를 전제한다. 이런 국가관이 지금까지 유효한 것이다.

다시 정리하면 봉건시대의 개인이란 구성 요소가 집합을 만들었으며 이는 곧 더 이상 요소가 아니고 ‘부분’이다. 정당이다 단체다 하는 것이 바로 이런 부분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이념 Idea’이라는 것이 부분을 만드는 데 중심 역학을 한다.

다시 말해 혈연 그리고 지연에 의한 봉건시대의 집합은 이념에 의해 모인 집합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혈연, 지연에 의한 부분들의 집합을 두고 ‘국가’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공동체와 사회를 구분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다시 말해서 이념에 의하여 개인이 재구성되어 부분이 만들어 지면 이 부분의 집합이 바로 ‘국가’ 라는 것이다. 프랑스 혁명 이후에 비로소 이념에 의한 부분이 만들어 졌다는 것이다.

집에서 개인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 처음으로 학급에 편승되었을 때 그리도 교복을 입었을 때의 기분 같은 것을 프랑스인들은 혁명 이후 경험할 수 있었다. 몇 학년 몇 반의 구성 요원들이 교복이란 유니폼을 입고 부분으로서 학교에 포함되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것과도 같은 의식 변화 말이다.

개인이 요소에서 부분이 된다는 것은 엄청난 의식의 변화이다. 귀속하는 존재가 아니고 포함되는 존재라는 것을 의식하는 순간 그 개인은 국가를 위해 죽을 수도 있다는 각오까지 하게 된다. 자기의 주검이 있는 관위에 국기가 덮이고 애국가가 연주되는 순간 ‘조국을 위해서’란 명예를 자랑스러워한다.

그렇다. 국가란 상황이 아니고 상황의 상태이다. 이것이 현대의 국가 개념이다. 그런데 문제는 요소가 부분을 만들고 그 부분이 전체 집합에 포함이 된다면 이를 바디우는 ‘정상 normal’ 이라고 한다. 그런데 귀속은 되나 포함이 안 되는 경우나, 포함은 되나 귀속을 안 하는 경우가 생긴다. 여기서 부분과 전체의 관계가 복잡해지고 국가와 개인 간의 조화도 갈등도 함께 증폭된다.

현대 국가에서 상황과 상황의 상태 간의 긴장 관계는 지난 번 대통령 선거에서 후보를 경선 하는 과정에서 여실히 나타났다. 여당과 야당이 모두 당원 대의원 투표와 일반 국민투표를 동시에 하였다. 박근혜 같은 경우 당원 대의원 선거에서는 이기고 일반 선거에선 패배했다.

손학규는 그 반대였다. 그럼 왜 이 두 가지 방법을 같이 병행해야 하는가 이다. 그 이유는 현대 국가란 상황과 상황의 상태란 이중 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국가의 지도자가 상황의 요소들로부터(일반 선거)와 상황의 상태(정당 대의원)의 두 곳에서 동시에 표를 얻어야 진정한 대표성을 갖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경선 과정의 선거제도가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상황과 상황의 상태의 긴장 관계가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지금 미국 대통령 예비 선거에서도 당원 대의원 선거와 일반 선거를 동시에 치루고 있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리고 본선에서도 직접 선거와 선거인단 선거를 병행한다. 현대 국가 개념에선 불가피한 현상이다. 상황과 상황의 상태의 관계를 한 눈에 일별해 이해하기 위해 예를 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정치 공부하기 앞서 논리학과 수학을 공부해야 할 이유가 있다. 한국에 온 빌 게이츠가 미국의 미래는 수학과 과학 교육에 달려 있다는 말에 귀 기울여 들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국가는 상황의 상태의 부분들을 포함하기 때문에 상황 속에 있는 개인 하나 하나에 대하여 공권력의 이름으로 억압을 하고 통제 수단으로 만 생각한다. 그러나 개인들은 자기들의 국가의 권력은 자기들로부터 나온다고 한다.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국가에 대하여 주장하려 한다.

영국의 경험주의 철학자 대비드 흄은 “힘은 언제나 피지배자인 민중에게 있지만 민중은 지배자에 종속한다”고 했다. 민중들이 투표를 해 지도자를 선출하지만 지도자는 언제나 민중을 탄압한다.

이에 대하여 촘스키는 “지배받기를 거부하고 정의롭지 못한 행위를 비난하는 민중과 그들을 부당하게 지배하려는 세력 간의 갈등이 인류의 역사이다”라고 했다.(촘스키. 129) 마르크스가 그렇게 국가를 타도의 대상으로 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촘스키도 마르크스도 수학에 무지했다.

레닌과 모택동도 임종 순간까지 국가가 사라지지 않는 데 대하여 그 비밀을 알지 못하고 궁금해 하였다. 공산주의와 아나키스트가 다른 점은 후자는 상황의 상태를 전적으로 부정하는 데 있다면 전자는 국가 대신에 당으로 이를 대치하려는 데 있다. 부분이 당이며 그 이상은 구차한 혹 같은 돌출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혹 떼려다 혹 붙인다. 그 이유는 상황의 상태는 제거의 대상이 아닌 불가피한 것이라는 것이 바디우의 답이다. 그럼 해방 후 우리나라의 건국은 ‘정상적’으로 되었는가?

원조병의 원조는 이승만이다

이런 이론적 배경은 남북의 건국 과정과 왜 남한에서 원조 걸신병이 생기는지 그 이유를 잘 설명해 낼 수 있다. 답은 간단하다. 남한은 상황 없이 상황의 상태로만 나라를 세웠다. 이 말은 인민이든, 국민이든, 백성이든 개개 구성원들의 의지도 힘도 반영 안 된 이승만이 미국에 앉아 사귄 친구들과의 외교적 활동을 통해 끌어들인 유엔, 궁극적으로는 미국의 힘으로 상황의 상태에서부터 건국을 한 것이 ‘대한민국(Republic of Korea)’이라는 것이다.

나라의 구성 조건의 두 가지, 즉 상황과 상황의 상태 가운데 전자가 전적으로 결여된 건국을 하였다는 것이다. 바디우는 이런 상황이 없는 상황의 상태를 ‘돌출 excrescence’ 이라고 했다.


▲ 하지·맥아더·이승만(왼쪽부터)


물론 정당도 있었고 단체도 있었고 선거도 있었고 그것이 지금도 있다. 그렇지만 이것은 모두 상황에 귀속한 것으로 된 부분으로 된 것이 아니고, 아니 이것이 전적으로 배제된 상황의 상태에서 나라가 세워졌다는 것이다. 건물로 말하면 기초가 없는 기둥과 지붕으로 만 집이 만들어진 격이다.

그래서 남한은 폴 틸리히란 신학자의 말 대로 ‘흔들리는 터전 shaking foundation’이다. 이승만의 방식은 일본에 의하여 잘 교육받은 인재들을 정치, 경제, 문화, 교육 전 분야에서 풀가동하였고 이들 관료들의 공급을 받아 건국하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상황의 상태의 전문 ‘정객들 statesman’이 세운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이들 ‘정객들’은 말 그대로 상황의 인간들이 아니고 상황의 상태의 인간들이란 뜻이다. 이런 정객들은 최고 통치자가 되는 순간 결여돼 있는 상황으로 가 나라를 세우려는 콤플렉스에 걸리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콤플렉스로 끝나고 만다. 그렇게 하기에는 이미 외세와 기득권자들의 장벽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혹 같은 돌출이 이젠 몸의 한 부분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이것이 원조병의 원인이고 그 원조병의 원조는 결국 이승만이다.

그러나 우리도 프랑스 같이 상황의 요원들에 의해 부분이 만들어 지고 상황의 상태에 의한 나라를 세울 수 있었던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 기회가 바로 동학농민혁명이었다.

이 혁명은 전국에 포접을 만들고 집강소를 두어 당이나 시민 단체 형태의 부분을 만들어 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해방 이후 한국 정치인들이 걸린 원조병은 다름 아닌 동학 혁명이 놓친 상황으로 되돌아가 나라를 세우려는 무의식의 발로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전봉준 같이 피를 흘려야 하고 정치 지도자 자신이 그 변혁의 한 가운데 서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그렇게 할 만한 용기도 의지도 없다. 원정을 동경은 하면서도 실현할 만한 능력은 없었다.

그래서 ‘원조병’이란 다산이 말하는 ‘원정 허증세 原政 虛症勢’라고 할 수 있다. 상황의 받침이 없는 그래서 항상 그것에로 재귀하려는, 그러나 그렇게 할 능력이 없는 정치인들이 걸리는 전형적인 병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정치적 원조병은 일종의 성병과 같은 ‘발기부전증impotence’에 해당하는 심각한 병증세이다. 이런 병증상의 원조가 바로 이승만이다. 원조병의 원조 자체가 이승만이란 뜻이다. 이런 원조병은 우리 정치 현실에 하나의 원죄와 같이 대를 이어 유전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상황의 요원 격들인 인민대중 혹은 민중들은 자기들로부터 유리된 상황의 상태에 저항하고 청산의 대상으로 삼는다.

여기게 근본적인 남한 사회의 갈등의 구조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승만 이후 그것이 좌파든 우파든 자기가 상황에서부터 시작한 원조라고 자처하려 한다.

결국 이승만이 끼운 첫 단추에서부터 원조 콤플렉스가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어떤 대통령도 자기들 자신들이 민중 속에 인민 속에 들어 와 있지 않기 때문에 콤플렉스는 콤플렉스로 끝나고 만다.

근본적인 원인을 모르기 때문에 좌파는 우파에 우파는 좌파에 실패의 원인을 책임 전가한다.

문민, 참여, 이명박 등 아무리 이름을 붙인다고 하더라도 이름은 이름일 뿐이다.

이름은 상황에 가 닿을 때에 그 진정성을 갖는데 이를 바디우는 ‘충실성 fidelity’라고 한다. 상황과 상황의 상태의 연계성은 충실성으로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지역감정과 철새가 생기는 이유

이렇게 ‘원정 허증’으로서의 원조병의 후유증은 심각하다. 서구식 민주주의를 도입한 지도 반세기를 넘는다. 그러나 정당 정치도 의회 정치도 제대로 안 되고 있다. 지역 감정만 독 버섯 같이 번지고 정치인들은 이 정당에서 저 정당으로 오락가락하는 철새 정치인들만 양산 되고 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상황에서 이념을 같이 하는 인간들이 모여 정당이란 부분들 만들어야 하는 데 그것이 안 되기 때문이다. 안 되는 이유는 바로 그 이념이란 것으로 상황의 구성원들을 법적으로 구속해 놓고 있기 때문이다.

즉, ‘반공’이란 틀을 전제해 놓고 그 속에, 그리고 그 한계 내에서는 진정한 의미의 이념이 생길 수 없기 때문에 정당도 있을 수 없다. 정당이 없는 곳에 지역감정에 의한 사이비 집단이 부분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이렇게 변태적이고 비정상적인 부분들이 자생적으로 생길 수밖에 없다. 소위 의회 민주주의 그리고 자유 민주주의란 이름으로 반세기 이상 지나오고 있지만 한 걸음도 정치가 발전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정당이 성립하지 않으니 정치인들이 있을 수 없고 나라는 자기 생존을 위해 철따라 날아다니는 철새의 서식처가 되어 버렸다.

이러한 분석과 함께 원조병의 기원과 이유와 유래는 분명해 졌다. 바로 상황이 결여된 ‘대한민국’에서는 누구든지 대통령이 되는 순간 자기들의 무의식 속에 이승만이 생략한 상황에 구성요원들이 귀속되는, 그리고 자기가 거기에 귀속하는 그러한 나라를 세우고 싶어 한다.

한 마디로 말해서 인민과 대중의 지지를 받는 지도자가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확신을 갖고 싶어 한다. 바로 이것이 원조병의 기원이라는 것이다.



▲ 남북협상, 방북하는 김구 일행

그럼 김구였다면?

그럼 이승만이 아닌 김구가 건국을 했더라면 하고 가정을 세워 보자. 정도의 차이는 있을망정 사정은 별 차이가 없었을 것이다.

이승만이 미국에 앉아서 상황의 상태에서부터 나라 구상을 했다면 김구는 상해에서 독립군을 양성하고 무장 소조를 통해 이봉창, 강우규 등 열사들을 통해 요인 암살 같은 무장 소조의 방법으로 투쟁하였다.

그러나 그는 인민 대중들을 묶어 내어 현대 국가의 전제가 되는 부분들을 조직화 하지는 못했다. 그리고 그의 독립군들은 일제 말기가 가까워 오자 대중적 기반이 없어서 존속 기반마저 어렵게 되었다.

식량과 무기가 거의 바닥이 날 지경이었다. 그의 무장투쟁은 한 번 국내에 총성을 울리지 못하였다.

그는 국민들의 추앙은 받았지만 인민대중 속에 깊은 뿌리를 내리지는 못하였다. 그렇다고 그는 이승만 같이 전승국인 미국과의 외교적 연줄도 맺지 못하였다.

즉, 그는 상황도 상황의 상태도 갖추기 어려웠다.

그러나 그가 지금 화폐의 인물 도안으로 추천받을 만큼 온 국민의 숭앙을 한 몸에 안고 있는 것은 무시할 수 없다.

그는 상황의 유리한 고지를 가지고 있었지만 상황의 상태를 장악하고 있는 이승만에게 그것은 차단될 수밖에 없었다.

즉, 그의 대중적 기반은 그 강한 의지와 열정에도 불구하고 조직화 되어 정당으로 발전하여 힘을 발휘하기 어려웠다. 그래도 김구가 나라를 세웠더라면 지금과 같은 원조병이 심각하지는 않았을 것은 분명하다.


▲ 1948년 9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성립 후 정부 각료들의 사진이다. 앞줄 오른쪽 세번째가 홍명희, 네번째가 김일성 수상, 다음이 박헌영(부수상겸 외상)이다.

김일성 바로 뒤쪽 왼쪽부터 주영하 장시우 최창익의 얼굴이 보인다. 몇명을 빼고 모두 젊은 사람들 모습임을 알 수 있다.


김일성과 그가 세운 나라 DPRK는?

이렇게 건국의 논리적 배경을 말하고 나면 답은 간단하다.

다시 말해서 ‘나라를 어떻게 상황과 상황의 상태가 하나로 일관성 있게 연관이 되는 방법으로 건국할 수 있겠느냐’이다. 우리는 이러한 논리적 배경과 함께 회고록 전권을 통해 상황과 상황의 상태라는 상관 관계적 입장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DPRK)’이 어떻게 건국되는지 고찰해 보는 것은 여러 가지로 남과 비교가 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혈연과 지연에 의한 공동체라는 부류를 타승하고 새로운 이념(설령 그것이 사회주의 이념이라도)에 의한 부분 집합이 만들어져 가는 과정을 상세하게 회고록을 통해 볼 것이다.

1917년 김형직에 의한 ‘조선국민회’-1926년의 ‘ㅌ.ㄷ 제국주의 동맹’-1927년 ‘공청’-1932년 ‘항일 무장 유격대 창건’-1936년 ‘조국광복회’ 창건-1946년 8월 20일 ‘조선 로동당 창설’-드디어 1948년 9월 9일 ‘DPRK' 창건 혹은 건국.

김일성은 마르크스같이 국가 없는 공산주의를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무정부주의자도 아니었다. 그는 바디우와 같이 상황의 상태는 불가피한 것으로 생각하였다. 개인이 평등한 세상과 개인은 사회화되어 집단적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여 위와 같이 끊임없이 조직을 만들어 나갔다.

그것은 현대 국가가 성립하기 위한 불가피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공산주의와 민족과 국가는 얼마든지 병행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이를 ‘신세대 공산주의자’라고 했다. 조국해방 10대 강령 속에는 바로 상황과 상황의 상태의 연계성을 지적해 놓고 있으며, 단위 국가는 국제관계도 잘 유지해야 한다고 했다.

항일유격대를 16년을 이끌어 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가 인민대중들 속에서 즉 상황 속에서 고난의 행군을 하였기 때문이다.

그가 해방과 함께 살아 같이 들어 온 유격대원은 남녀 133여명 정도였다. 이들이 노동당 요직과 인민회의 대표가 되어 상황의 상태를 만들었다.

상황에서 상황의 상태로 이어지는 바디우의 말을 빌리면 ‘자연적’이었다. 이것이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DPRK)의 논리적 구조이다.

주체 헌법 63조의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라고 할 때에 이 조항에는 분명히 집합론적 개념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

상황과 상황의 상태의 연관성은 건국을 위해 필요한 조건인 동시에 국가를 경영하는 기술이기도 하다. 이 말은 끊임없이 상황과 상황의 상태는 연결 고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충실성만이 그렇게 한다.

이를 회고록에서는 지도자와 인민들 사이에 반드시 있어야 할 ‘신뢰와 사랑’ 이라고 했다. 프랑스 혁명의 자유, 평등, 박애 같은 것도 혁명 이후 사건이 만들어져 가기 위한 충실성이다.

그러나 바디우는 경고한다. 하나와 전체 사이의 귀속과 포함의 문제, 그리고 요소와 부분의 관계성은 항상 우리를 비결정, 불완전, 무작위성으로 내몰고 있다고. ‘혁명은 한 번 하는 것 보다 그것을 계속 진행형으로 해 나가는 것이 더 어려운 이유는 바로 전체와 부분 사이에서 항상 이런 것들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그러나 ‘인민과 지도자 사이에 사랑과 신뢰가 있는 한 혁명은 영원할 것이다’라고.

결국 원조병이란 지도자와 인민대중 사이에 신뢰와 사랑의 고리가 없을 때에, 지도자는 항상 상황에서 원조를 확인하려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데서 생기는 발기부전증과 같은 병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치료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바로 주체를 세우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새 지도자가 이승만과 같이 ‘외교’ 로만 모든 것을 풀려고 하는 것은 상황의 상태에서 만 문제 해결을 하려고 하는 또 다른 분전증이라 할 수 밖에 없다.

* 글/김상일 (전 한신대 한국철학과 교수.클레어몬트 과정사상 연구소 한국부 담당)
*그림.사진/윤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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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강래

2008.03.24
22:05:34
(*.210.224.100)
.
비례대표상위 순번 이랍니다



1. 강명순 기독교.......목사

2. 임두성 기독교.......장로

3. 배은희 여성 ceo라고함..

4. 강석천 ....노조출신..

5. 이정선 내일을여는멋진여성고문

6. 김장수 꼿꼿??????

7. 김소남 고대 교우회장..

8. 정진석 국케의원몇번왔다 갔다 했지요...이당저당..

9. 이은재 교수

10.이달곤 기독교 ....교수 소망교회 다님

11.김금래 영부인 보좌하던 여자

12.나성린 기독교....... 뉴라이트 멤버

13.조윤선 나경원 대타,.,

14.조문환 기독교........ 고신대 교수

15.손숙미 카톨릭대 교수

16.원희목 약사협 회장 ..약사들로부터 정치약사로 이미 낙인.

17.이애주 서울대학교 병원 간호부장

18.이춘식 중학교후배 서울 정무 부시장

19.정옥임 친뉴라이트적 교수 선문대 교수
20.임동규 서울시 의회의장(3선)

21.김옥이 육군 제15대 여군단장

22.이정현 박그네..대변인..

23.이두아 기독교.......변호사..뉴라이트멤버.

24.김성동 기독교.......... 순복음 엘림복지회이사역임.

25.최경희 한나라당 합창단 단장 ㅠ.ㅠ

26.이상철 조선일보 이사지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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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지구 한민족의 맥에 올려지는 현실 정보에 대하여 아트만 2013-08-03 24141
81 한민족 민족의 3대 명절의 하나인 단오절은 일년 중 가장 양기가 센 날 [81] 조강래 2008-06-07 4591
80 한민족 삼일신고(三一神誥) 해설 조강래 2008-06-07 4890
79 한민족 삼국사기 “최치원전”의 비밀 조강래 2008-04-08 6013
78 한민족 진수의 삼국지와 나관중의 삼국지연의 조강래 2008-04-08 4354
77 한민족 (일본/가시마 노보루) 환단고기는 진실된 역사책이다. 조강래 2008-04-08 5216
76 한민족 단군께선 봉정에서 붕어하시니 유미 2008-04-07 3943
75 한민족 유럽의 불가리아는 부여족이 서진하여 건국 [56] 조강래 2008-04-06 5247
74 한민족 유럽.로마.중국의 공포대상 스키타이족 [1] [76] 조강래 2008-04-01 7838
» 한민족 대한민국에 필요한 것은 불도저가 아니라, 뇌수술하는 외과의사이다 [2] [60] 조강래 2008-03-24 5357
72 한민족 뉴라이트 [8] 조강래 2008-03-23 5368
71 한민족 티벳은 단군의 후손, 간도와 같은 운명 [3] [4] 조강래 2008-03-19 6140
70 한민족 한국고대사를 새로 쓰는 사람들의 주장 조강래 2008-03-18 6813
69 한민족 광개토태왕 비문의 위치와 비문 조작의 진실 [1] 조강래 2008-03-14 5708
68 한민족 "빛은 동방에서 !"-한민족의 뿌리 사상 조강래 2008-03-11 4409
67 한민족 아메리카와 일본에서 찾는 고대한국 조강래 2008-03-06 5692
66 한민족 우리 역사의 진실은 국사책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2] 조강래 2008-02-28 5099
65 한민족 세계최대 원구단.민족성전 세워야 한다 조강래 2008-02-25 4157
64 한민족 일제와 기독교가 성황당을 미신화한 이유는 무엇인가? [1] 조강래 2008-02-10 4834
63 한민족 신비의 대륙조선사 78가지 = 여러분도 곰곰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조선의 지리적위치와 실체성을!!! [1] [5] 조강래 2008-02-10 6439
62 한민족 콩. 쌀 . 한자 [3] [3] 조강래 2008-02-01 11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