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삼매(Samadhi 三昧) - 실체에 대해 각성하고 있는 상태가 삼매다.


(1)본연적 무상(無相) 삼매 - 이는 완전하게 자신의 에고를 제거한,깨달은 사람의 상태다.인위적인 노력은 전혀 없는,원천적이고,순수하며,자연스러운 상태이다.이 상태에 도달한 사람은 보통사람들과 어울려 세상에서 자연스럽게 살아나갈 수 있다.자신이 진아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이 삼매를 얻은 사람은 자신과 타인,그리고 자신과 세상 사이에 어떠한 차별도 두지 않는다.이 사람에게 있어서는 진아 아닌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

(2)일시적 무상 삼매 - 이는 깨달음 이전의 단계다. 이 단계에서는 일시적이긴 하지만 인위적인 노력 없이도 진아를 각성하는 상태가 있다.그러나 아직 에고가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다.이 단계의 특징은 육체에 대한 의식이 없다는 점이다.비록 진아를 일시적으로 각성하기는 하지만,감각을 느낄 수도 없고 제대로 생활해 나갈 수도 없다.육체에 대한 의식이 되돌아 오면 에고가 다시 나타난다.실체에 몰입되어서,현상계를 의식하지 못하는 상태이다.

(3)유상(有相) 삼매 - 이 단계에서는 인위적인 노력을 통해서만 진아에 대한 각성 상태가 유지된다.이 삼매가 얼마나 유지될 수 잇느냐 하는 것은 전적으로 얼마나 노력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진아에 대한 주시가 흔들리면 진아에 대한 각성 상태가 흐려진다.



2.<언제부터 본연적 무상 삼매를 위해 수행해야 합니까?>


처음부터 해야한다.일시적 무상 삼매는 설사 수십 년 동안 계속된다 하더라도 바사나(마음의 경향성)가 뿌리뽑히지 않는 한,결코 자유를 주지 못한다.



3.자아 탐구를 통해서 깨달음에 이를 수 있으며,진아를 깨닫게 되면 모든 세계가 다 진아 안에 있음을 볼 수 있다.만물의 근원은 진아이며 진아를 깨달으면 진아와 다른 것은 아무것도 볼 수 없다.



4.<때때로 저는 내면에서 나는 소리를 듣습니다.이런 일이 일어날 때 어떻게 해야 됩니까?>


무슨 소리가 들리더라도 <이 소리를 듣는 자가 누구인가>라는 식으로 자아 탐구를 계속해야 한다.그러면 결국 실체에 이를 것이다.



5.<저는 수행 도중 무념(無念)의 상태에 이르면 상당한 즐거움을 만끽합니다.그러나 때로는 설명할 수 없는 막연한 두려움에 휩싸이기도 합니다.>


어떠한 체험을 하더라도 그것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즐거움을 느끼든,두려움을 느끼든 그것들을 느끼는 자가 누구인지를 물으면서 수행을 계속해 나아가,즐거움과 두려움 등을 모두 초월한 경지,즉 모든 이원성이 사라지고 실체만이 남은 경지에 도달해야 한다.

그런 일이 일어나거나 또는 그런 체험을 하는 데에 잘못된 것은 하나도 없다.그러나 거기에 멈추어서는 안 된다.예컨대 생각이 가라앉을 때에 경험하는 라야(laya)의 즐거움에 만족해서는 안 되며,모든 이원성이 사라질 때까지 계속 탐구해 나가야 한다.



6.수행의 마지막 장애가 황홀경이다.사람들은 그 상태에서 커다란 행복을 느끼고 그 상태에 머무르려 한다.그러나 거기에 머무르지 말고 고요함이 충만한 다음 단계로 가야 한다.그 고요함은 황홀경보다 더 높은 차원이며 삼매 속으로 흡수된다.

삼매에 들어가면 깨어 있으면서 잠자는 듯한 상태가 나타나며,그 상태에서 그대는 그대가 항상 의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의식은 그대의 본성이기 때문이다.실제로 인간은 항상 삼매 속에 있으나 그것을 모르고 있을 뿐이며,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장애물을 제거하기만 하면 된다.



7.<생각이나 욕망의 유혹을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또,생각을 조절하려면 어떻게 제 생활을 통제해 가야 합니까?>


그대가 진아에 고정되면 될수록 다른 생각은 저절로 사라져 간다.마음이란 생각의 다발일 뿐이며,<나라는 생각>이 모든 생각의 뿌리다.이 <나>가 누구인지를 알고 그것이 어디에서부터 나오는지를 발견하면, 모든 생각이 진아 속으로 녹아 들어가 버린다.

생활을 통제하는 것,즉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서 목욕하고 주문을 외우며 의식(儀式)을 집행하는 그런 것들은 자아 탐구의 방법을 택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나,택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 필요할 뿐이지,자아 탐구의 방법으로 수행할 수 있는 사람에게는 그런 규칙이나 훈련들은 다 필요가 없다.



8.<계속 노력을 하는 데에도 마음이 내면으로 향해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꾸준히 그리고 냉정하게 계속해 나가야 하며,그 효과는 점차적으로 나타난다.

자기가 들어가 있는 외양간에 풀이 잔뜩 쌓여 있음을 모르는 암소는 자꾸 외양간 밖으로만 나가려고 하는데,마음이 꼭 그와 같다.암소 주인이 아무리 달래고 끌어도 암소는 말을 듣지 않고 자꾸 밖으로만 나가려고 한다.어쩌다가 풀을 한입 먹게 되어도 지금까지 해오던 버릇이 있어서 자꾸 밖으로만 나가려 하지만 계속 주인이 달래면서 풀을 조금씩 자꾸 먹이다 보면 암소는 점차 풀맛에 익숙해지고 나중에는 억지로 붙잡지 않아도 외양간 밖으로 나가려 하지 않는다.

마음도 마찬가지다.일단 내면의 행복을 발견하면 결코 밖으로 헤매지 않는다.



9.<그렇다면 이 현상계는 꿈과 다를 바 없다는 말씀입니까?>


그대가 꿈을 꾸는 동안 느끼는 실체감에 잘못된 것이 있는가?그대는 완전히 불가능한 꿈,예컨대 죽은 사람과 행복하게 대화를 나누는 꿈을 꿀 수도 있다.꿈 속에서도 잠시 동안 <이 사람은 죽은 사람이 아니던가?>라고 의심할 수도 있으나 그대의 마음은 다시 꿈 속에 빠져 버리고 그 사람은 살아 있는 것과 똑같이 보인다.다시 말해서 꿈은 그대가 그 꿈의 실체를 의심하도록 그냥 놔두지 않는다.

깨어 있는 상태에서도 마찬가지다.깨어 있는 동안에는 또 그 세계의 실체를 의심할 수가 없다.그 세계를 만들어낸 바로 그 마음이 어떻게 그 세계를 실재하지 않는다고 부인할 수 있겠는가?

깨어 있는 상태에서의 세계와 꿈꿀 때의 세계를 비교하는 중요한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둘 다 마음이 만들어낸 것이며,마음이 어느 하나에 몰두해 있는 한,그것의 실재를 부정할 수는 없다.마음이 꿈꾸는 동안은 꿈 속 세계의 실재를 부정할 수 없으며 마음이 깨어있는 동안은 그 상태에서 나타나는 세계의 실재를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반대로 만약 그대가 그대의 마음을 외부 세계로부터 완전히 내면으로 돌려서 내면에 머무르게 한다면,다시 말해서 모든 것의 근원인 진아에 대해서 항상 주의를 놓치지 않는다면,그대는 지금 그대가 보고 있는 세계가 마치 그대가 꿈 속에서 보았던 세계처럼 실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