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과 관념, 그림자와 부호의 세계

 

 

우리 삶의 이중성, 세상의 모든 불합리함과 혼란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

 

그것은 단지 마음의 작용일 뿐 실재하는 것이 아님을 눈치 채게 되면, 실재하지 않는 것임을 확실히 알게 되면, 그 순간 모든 혼란은 사라진다.

 

우리의 신체는 삼차원 물질세계를 인지하기 위한 고도의 기능을 갖추고 있다. 사물들은 눈과 귀와 코와 입과 피부를 통해 비추어져 두뇌로 전달되고, 두뇌는 그것을 지각하고 반응하며 지시하고 기억을 한다. 이 모든 과정들은 사물의 실체가 아니라 감각에 의해 부호화된 정보를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가령 우리가 어떤 나무를 본다고 하자. 이때 우리 눈에 들어오는 것은 나무 자체가 아니다. 나무에 비친 빛의 반사광이 망막이라는 스크린에 맺히고, 두뇌는 단지 이 스크린의 상을 보는데 지나지 않는다. 소리 역시 마찬가지다. 바깥에서 울리는 공기의 파동이 귀의 고막을 때리면, 우리는 다만 고막이 진동하는 소리를 듣는 것으로, 우리가 듣는 소리들은 우리 몸 바깥의 어디에도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보고 듣고 있는 모든 것이 사실은 우리의 감각기관 속에서 일어나는 현상들로, 이는 사물의 실상과는 전혀 다른 것임을 의미한다.

 

이것은 보는 이의 감각에 의거하는 것이어서 감각기관의 성능 또는 사물을 대하는 장소와 상황에 따라 모두가 다르게 지각하게 된다. 어떤 사람의 눈에는 선명하게 보이지만, 또 다른 사람에게는 희미하게 보일 수도 있다. 크게 보일 수도 있고, 작게 보일 수도 있으며, 앞면을 볼 수도 있고, 뒷면을 볼 수도 있다. 사람들은 각자 자기가 본 대로 기억하겠지만, 어떤 것도 나무 본래의 모습이 아니다. 곤충이나 물고기 등 다른 생명체들은 그들의 감각기관의 구조에 따라 사람과는 전혀 다른 색깔과 모양으로 사물을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게다가 엄밀하게 따지면, 우리가 지각하는 모양이나 소리 등의 감각현상이 사실은 지금 이 순간의 것을 전해 주고 있는 것도 아니다. 감각기관에 도달하여 신경세포를 따라 머리로 전달되기까지의 시간만큼 그것은 이미 과거의 정보다. 극히 짧은 순간 이전에 나무나 소리는 이미 사라지고 거기 더 이상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는데, 이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시야를 넓혀 저 멀리 우주 공간에 떠 있는 별들을 바라보기로 하자. 우리 눈에 도달한 별빛은 몇 광년, 아니 몇 백 광년, 혹은 그 이상 먼 거리를 지나온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별들은 이미 몇 년이나 몇 백 년 전의 모습이므로, 지금 그것을 보고 있다는 것만으로는 별들이 계속 거기에 존재하고 있는지, 아니면 이미 사라졌거나 그 모양이 달라졌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즉 우리가 보는 것은 모조리 허상인 것이다.

 

이것이 감각의 한계이며, 이는 색깔이나 소리만이 아니라 냄새나 맛, 촉감, 두뇌의 인지작용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니 기껏해야 그림자의 전달에 지나지 않는 제한된 감각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우리의 사고 작용은 얼마나 헛된 것인가.

 

가령 꽃 한 송이를 본다 하더라도 그것은 꽃에 대해 진실로 아는 것이 아니다. 색깔이나 향기는 물론 그 꽃에 대해 연구해 놓은 모든 자세한 생물학적인 지식들까지도 꽃 그 자체가 아님은 분명하다. 아무리 많은 설명도 꽃에 대한 부호에 지나지 않는다.

 

감각을 바탕으로 하여 만들어지는 모든 생각들은 실상이 아니다. 허상의 움직임에 의하여 유추되는 삶과 죽음, 현실과 이상, 정의와 불의, 사랑, 진리, 신에 이르기까지 어떠한 관념도 다만 부호일 뿐, 결코 그것이 가리키고 있는 내용 그 자체가 될 수는 없다.

 

누군가가 사랑에 대해 ‘사랑학’이라는 이름으로 수백 권의 책을 썼다고 한들, 그것이 곧 ‘사랑’일 수는 없다. 어디까지나 사랑에 대한 생각과 언어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진리에 대한, 혹은 신에 대한 수천수만 권의 경전과 주해서가 있지만, 그 역시 진리 그 자체, 신 그 자체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여기서 큰 착각이 일어난다. 모든 감각과 관념은 사물의 실상이 아니라 그것을 표현하기 위한 그림자며 부호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니 처음엔 모든 사람들이 그 사실을 알아채지 못한다. 사물의 실상과 그것을 전달하는 도구, 즉 허상 사이에 구별이 없는 것이다. 감각과 관념에 의해 바라보는 것이 곧 이 세상과 우리 삶의 실상이라고 여기고 있지만, 이는 꿈속에서, 혹은 영화를 보는 중에 그것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가 않다.

 

실상의 차원에서는 모든 것이 한 덩어리를 이루고 있으며,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는 ‘흐름’ 그 자체이다. 어떠한 고정된 사물도 없고, 영적인 요소 외에는 ‘나’라고 내세울만한 아무 것도 없다.

 

하지만 우리의 제한된 감각은 거기까지 볼 수 있는 능력이 없다. 오로지 나와 너, 모든 사물들이 따로따로 분리되어 존재하는 것으로 보고, 온갖 분리와 대립, 욕망과 갈등, 무수한 사연들을 만들어 내기에 바쁘다. 존재의 참모습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캄캄한 어둠, 완전한 무지 속에 잠들어 있는 것이다.

 

출처: http://cafe.daum.net/sinmunmyung/hNoN/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