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처, 중국 것 베낀 것" 비난한 검사장, 알고 보니...

“공수처, 중국 것 베낀 것. 그쪽선 정적 제거에 활용.”


https://1boon.kakao.com/ziksir/5d0060a6ed94d20001d1bb22



윤웅걸 전주지방검찰청 검사장

출처ⓒ연합뉴스

6월 10일 중앙일보는 ‘단독’으로 ‘“공수처, 중국 것 베낀 것…그쪽선 정적 제거에 활용”’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습니다.



이 기사는 윤웅걸 전주지방검찰청 검사장(사법연수원 21기)이 검찰 내부망인 ‘이프로스’에 올린 ‘검찰개혁론2’라는 글을 토대로 작성됐습니다. 



윤 검사장은 이프로망에 “중국의 국가감찰위원회는 한국에서 추진하는 공수처(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와 닮았다”라며 “국가감찰위원회는 부패 척결을 명목으로 효율적으로 정적을 제거하는 등 통치권자인 주석의 권력 공고화와 장기집권에 기여하고 있다는 언론의 평가가 나온다”라고 썼습니다. 공수처 설치에 반대 입장을 의견을 피력한 것입니다.


중앙일보의 보도 이후 조선일보도 ‘현직 검사장 “수사권조정과 공수처도 중국 그대로 베끼나”’라는 제목으로 윤웅걸 검사장의 주장을 보도했습니다. 


이처럼 보수 성향의 언론들은 현직 검사장이 공수처를 비판했다는 사실을 들어 공수처 신설 반대의 근거로 삼는 모습을 보입니다. 하지만 윤웅걸 검사장이 어떤 인물인지에 대해서는 자세히 다루지 않았습니다.

출처ⓒ중앙일보·조선일보 캡처


‘용공 조작’과 흡사했던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서울시 공무원 간첩단 사건>


국정원(국가정보원)과 검찰은 2013년 2월 새터민이자 서울시청 복지정책과 생활보장팀 주무관으로 근무하던 유우성 씨가 북한 국가안전보위부 지령을 받고 자신이 관리하는 새터민 명단 등을 북한에 넘겼다며 간첩 혐의로 기소했다.

2013년 1월 현직 서울시 공무원이 새터민 명단을 북한에 넘긴 혐의(국가보안법)로 긴급 체포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큰 파문이 일었다. 하지만 국정원과 검찰이 간첩 활동이라며 제출한 증거들이 조작됐고, 유씨의 동생의 진술이 강요에 의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대법원은 유씨의 혐의에 대해 무죄를 확정했다.
 

당시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이 일어났을 때 가장 큰 쟁점은 간첩 혐의를 입증할 증거 유무였습니다. 유씨 변호인 측은 국정원과 검찰이 제출한 증거가 조작됐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검찰은 이를 부인했습니다.


브리핑 중인 윤웅걸 당시 차장검사

출처ⓒ한겨레


윤웅걸 당시 서울중앙지검 2차장검사는 이때 대중에게 이름을 알리게 됩니다. 유씨에 대한 증거조작 의혹이 제기되자 윤 차장검사는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증거 조작 의혹에 대한 브리핑’에 나섭니다.



그는 간첩조작 사건에 제출된 3개의 문서가 위조됐다고 주장하는 주한중국대사관이 보낸 답변 결과과 오히려 의심스럽다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중국 측도 단정적 위조라고 했는지 의문스럽다. (중략) 그래서 중국 대사관 위조라는 개념이 우리들이 통상적으로 얘기하는 위조와 똑같은 개념인지 사실 잘 모르겠다. 그래서 내용이 위조라는 건지 도장이 위조라는 건지 아니면 권한 없는 기관에서 발부했다는 건지 밑에서 결재 없이 해줬다는 건지 그런 것들이 확인되지 않는다.” (윤웅걸 서울중앙지검 2차장검사) 

출처ⓒ한국일보

검찰은 일관성 있게 증거가 조작되지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결국 2014년 3월 27일 법원에 제출한 문서 3건의 증거를 철회했습니다. 


윤웅걸 차장검사는 증거 철회 이유에 대해 “기록을 다시 검토한 결과 문건을 제외하고 기존 증거만으로도 유씨의 간첩 혐의는 인정된다고 판단했다”며 “문서 위조로 사건 본질이 흐려졌다”고 해명했습니다.


증거 조작 확인하지 않은 수사 검사도 문제


항소심에서 유씨의 간첩조작 혐의가 무죄 판결이 나자 윤 차장검사는 법원의 판결을 비판했습니다.


윤 차장검사는 또 다른 간첩 혐의 관련 사건에 대해서도 법원이 무죄를 선고하자 기자 앞에서 “법원의 잇따른 무죄 판결을 인정할 수 없다. 사건에 대해 증거 여부만 따져 무죄를 선고하고 사건을 들여다보지 않은 것은 문제가 있다”고 강하게 불만을 드러냈습니다.

2019년 법무부 산하 검찰 과거사위원회는 유우성 간첩조작 사건에 대해 “극히 제한된 사진 정보만을 갖고 수사보고서가 작성된 점 등에 비춰봤을 때 당시 국정원 수사팀이 증거로 제출될 사진 등의 정보를 의도적으로 은폐했고 수사 검사 또한 이를 확인하지 않은 잘못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공소 유지는 검찰의 고유 권한인데도 국정원이 제출한 자료만 믿고 검사가 제대로 수사를 하지 않은 부분을 지적함으로 실제 수사 검사의 잘못이 드러난 셈입니다.


검찰 과거사위는 “잘못된 검찰권 행사로 억울하게 간첩 누명을 쓰고 장시간 고통을 겪은 피해자에게 검찰총장이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해야 한다”고 권고했습니다.


밀려난 공안 검사의 반격이 시작되나

윤웅걸 검사장은 수원지방검찰청 공안부장검사, 서울서부지방검찰청 차장검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2차장검사를 지낸 공안 검사입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설 당시 대검찰청 기획조정부장이었던 윤 검사장은 초임 검사장급이 주로 부임하는 제주지방검찰청 검사장으로 밀려났습니다. 


윤웅걸 검사장은 검찰 내부에서 공안통이었던 공상훈 인천지방검찰청 검사장과 이상호 법무연수원 기획부장이 사표를 내고 떠난 것과 다르게 끝까지 버티다가 2018년 검찰 인사에서 전주지검장으로 전보됐습니다. 


윤 검사장은 작년 6월 22일 전주지검장 취임식에서 “위기를 기회로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가 하나가 되어 무엇보다 땅에 떨어진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에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 시점에서 왜 윤웅걸 검사장은 검찰 내부망에 공수처 신설을 반대하는 글을 올렸을까요? 공안 검사가 반격에 나선 것으로 볼 수 있는 동시에 지금 진행하고 있는 검찰 개혁에 대한 내부 반론을 제기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2019년 6월 12일 14:30 수정 (윤웅걸 검사장 반론)


윤웅걸 검사장은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사건' 증거 조작 의혹이 나왔던 1심 재판에 참여하지 않았고, 증거 조작과는 무관하다고 반론을 제기했습니다. 실제로 2013년 유우성 씨를 간첩 혐의로 기소했던 1심 담당 검사와 지휘라인은 다음과 같습니다.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 


검사장 최교일 – 2차장 이금로 – 공안1부장 이상호 – 주임검사 한정화 


2013년 8월 22일 서울지방법원은 유씨의 간첩활동을 뒷받침할 핵심 증거인 여동생의 진술에 신빙성이 부족하다고 판단, 국가보안법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 합니다. 그러나 검찰의 항소로 2심 재판이 시작되고 공소유지 관련 담당 검사와 지휘라인은 다음과 같이 변경됐습니다. 


2013년 10월 항소: 검사장 조영곤 – 2차장 이진한 – 공안1부장 최성남 


2014년 1월 이후: 검사장 김수남 – 2차장 윤웅걸 – 공안1부장 이현철 


2015년 국정원 증거조작 사건 2심 선고 (상고심 2심 원심 확정) 


● 국정원 김보현 과장 : 징역 4년(허위공문서 작성 유죄, 모해증거위조 무죄 등) 


● 국정원 이재윤 대공수사처장 : 벌금 1,000만원 


● 국정원 권세영 과장 : 벌금 700만원 선고유예 


● 국정원 이인철 주 선양 총영사관 영사 : 벌금 700만원 선고유예 


● 국정원 협조자 김원하 씨 : 징역 2년 


● 국정원 협조자 김명석 씨 : 징역 1년 6개월 



윤웅걸 검사장의 반론처럼 직접적으로 국정원과 증거를 조작하거나 재판에 직접 참여했다고 볼 수는 없기에 일부 내용을 수정했습니다.


다만, 윤 검사장이 항소심 공소 유지 지휘 라인에 있었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다시는 검찰이 조작된 증거로 무고한 사람을 간첩 혐의로 기소하는 일은 없기를 바랍니다.



* 외부 필진 아이엠피터 님의 기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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