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covery 샤우드 3장 (하)

| 발견(Discovery) 시리즈
 

다행스럽게도 사실 여러분은 단서를 찾지 못하게 돼있습니다. 깨달음이 뭔지 알 필요가 없습니다. 엉망진창이라 해도 말이죠. (청중 동의한다.) 네, 좋아요. 됐습니다. 한 모금 들이켜 보세요. 아하, 보세요. 이러면 긴장이 좀 누그러지죠. 긴장이 좀 풀릴 겁니다.

 

그래서, 일면 자신에 대해 좀 낫다고 느끼는 샴브라들도 있지만 샴브라의 성생활은… 노골적으로 얘기하자면, 그리 좋지 못합니다. 그닥 좋지 않아요. (누군가 “엉망진창이군!” 하고 말하자 큰 웃음) 저 사람이 말했어요. 한 잔 드세요. 엉망이군요! 모두에게 해당되는 건 아니지만 섹스는 보통 죄짓는 것처럼 느껴져서 여러분 내면에선 다시 이러한 모순이 일어나게 되죠.

 

샴브라는 가끔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몸을 입은 마스터로 살아가고 있어요. 우리는 물리적 현실 속에 머물고 있어요. 과거의 상승 마스터들은 몸을 떠났지만 우린 이렇게 몸에 남아 있어요.” 하지만 자기 몸을 만져주지도 않고–카메라 앞에서는 하지 않을게요.- 다른 사람을 만져주지도 않으며, 게이라든가 레즈비언이라든가 이성애라든가 그룹이든 뭐든 온갖 종류의 선입견을 갖고 있죠. 온갖 엉뚱하고 희한한 판단들, 정신적인 생각과 섹스에 관한 잡념들을 말이죠. 섹스는 아주 대단한 것입니다. 불행히도 세월이 지나면서 왜곡돼 온 거죠. 그러나 벗들이여, 섹스는 아주 훌륭한 것이랍니다.

 

여러분 속엔 이런 불협화음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그런 일상을 견뎌낼 수 있다는 사실이 저로서는 놀랍습니다. 여러분은 소울메이트를 죄다 저 밖에서 찾고 있습니다. 전부는 아니지만 많은 이들이 밖에서 소울메이트를 찾고 있죠. 하지만 그럴수록 그 일은 불가능해질 뿐입니다. 심술에 차서 소울메이트에게 바라는 기나긴 희망사항을 작성하는 것뿐이죠. 그리고 소울메이트가 뭐랍니까? 그건 여러분 자신이에요. 다른 누군가가 아닙니다.

 

관계를 맺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많은 샴브라들은 지금 관계를 밀어내버리고 있습니다. 소원 목록 10위 안에 “나는 연애를 원해.”라고 적어놓고도 말이죠. 그러면 저는 그걸 보고 이렇게 말합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사람들을 죄다 밀쳐내고 있잖아요. 자기 자신을 비롯해서!” 엉망진창이군! (사람들이 그 말을 따라하자 아다무스 껄껄댄다.)
 
온라인으로 시청하고 있는 분들과 새로 오신 분들을 위해서 이곳은 좀 독특한 모임이라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모든 것이 풍요에 관한 이슈입니다. 여러분이 그토록 풍요로워지길 원하고, 주머니에 돈이 좀 있기를 바란다는 사실은 정말 슬픈 일입니다. 왜 그렇지 못한가요? 두 가지 이유가 있죠. -아, 이건 여러분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험담하고 있는 사람들 이야깁니다.- 첫째, 여러분 중 상당수가 아직도 이 행성에 머물고 싶은지 확신을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살고 싶은지 확신하지 못합니다. 아직도 누군가나 무언가가 와서 “이게 답이야. 니가 살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거야.”하고 말해주길 기다립니다. 그게 없다면 숱한 질문이 남게 되죠. 흥미롭게도 드림워커 라이프나 몸을 입은 마스터들에 관해 멋들어진 이야기를 나누는 만큼이나 자주 샴브라들은 “내가 정말 여기 머물고 싶은지 잘 모르겠어.”하고 말합니다. 흠, 그러면 단언컨대 여러분은 풍요로워질 수 없습니다. 에너지, 물리학의 기본 법칙 때문에, 여러분이 에너지를 끌어당기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모든 대단한 느낌과 생각과 (노래하듯이) “우리는 깨달음으로 가는 길에 있어.”하는 느낌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흥미로운 역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내게 돈이 있다면 나는 전에 했던 똑같은 바보짓을 하게 될 거야. 나에게 돈이 있다면 전보다 더 큰 문제가 생기게 될 거야.”하는 생각도 있죠. 그래서 여러분은 재정적인 다이어트를 계속합니다. 과거에 돈이 있었을 때 여러분은 그걸 힘과 속임수에 써버렸으니까요. 마약을 하고 술을 마시고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는 데 썼죠. 그래서 여러분 내면의 무언가가 이러한 빈곤의 다이어트를 계속해온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더욱 편안... (카메라에 대고) 바로 당신, (청중들에게) 여러분이 아니라 저 밖에 있는 분들 얘깁니다. 샴브라는 풍요로워지는 것보다 가난에 더 편안함을 느끼게 됩니다. 이건 분명한 사실인데, 왜냐하면 누군가에겐 –에헴!- 당장 돈이 생길 수 있어요. 그러나 여러분은 두려워합니다. “내게 돈이 있다면 전에 그랬던 것처럼 나쁜놈이 되고 말 거야.”

 

엉망진창이군! (청중들이 아다무스를 따라한다.) 말도 안 돼. 믿을 수 없네요. 여러분이 안고 있는 모순들이 어떤지 한번 보세요. 대체 어떻게 이런 삶을 버텨내는지 저는 정말 이해가 안 됩니다.

 

하지만 저는 여러분이 어떤 식으로 일상을 견뎌내는지도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영적인 헛소리를 더 많이 받아들입니다. 영적인 정보를 조금 더 듣고선 조금 더 버틸 힘을 얻죠. 그럴싸한 문구를 얻어 들으면 문득 정말 잠깐은 나아진 것 같기도 합니다. 그건 영적인 사탕발림이에요. 뭔가 살짝 멋진 걸 확인하고는 생각합니다. “흠, 내일은 더 나아질 거야. 내일이 더 나아지리라는 걸 알겠어.” 그렇지 않아요. 안 그렇습니다. 내일은 오늘과 같을 거예요. 그러면 오늘은 어떠냐고요? 엉망진창이지! (청중들 웃으면서 아다무스를 따라한다.)

 

조앤: 저는 초콜릿을 먹으면서 버틴다고 생각했는데요.

 

아다무스: 초콜릿도 먹고 다른 온갖 것도 하죠.

 

오늘 그 불협화음을, 인간적 자아와 영적인 자아 안에서 일어나는 총체적 갈등을 한 번 들여다보시길 청합니다. 여러분에겐 영적인 가면이 있어요. 깨달음의 길을 가는 영적인 사람이라는 가면. 그걸 여기다 세워놓고는 “바로 이게 나를 구해줄 거야. 이건 정말 위대한 존재거든.”하고 떠넘깁니다. 그리곤 쓰레기 더미를 모아들이죠. 사탕발림, 마쿄 덩어리, 그 다음엔 그런 사람들을 끌어들이게 되죠. 늘 그런 건 아니지만 현실은 때로 아주 잔인하고, 돈도 모자라고, 멋들어진 연애도 없고, 자신을 거의 사랑하지도 않으며, 몸도 아픕니다. 보통 그렇죠.

 

여러분이 깨어나지 못한 보통 사람이라면, 아직 잠들어 있는 사람이라면 그것도 나쁘진 않아요. 날마다 그냥 잘 견디면 되니까요. 돈이 없으면 남자를 탓하면 되고 섹스를 못할 때는 여자를 탓하면 되니까요. 뭔가 없으면… (웃음과 동시에 린다가 “오오!”하고 말한다.) 뭔가 잘 풀리지 않으면, 그냥 여러분은 깨어나지 못했으니까 “원래 그런 거야. 다들 그런 거라고.” 하면 그뿐입니다.

 

죽음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내면에서는 언젠가 죽음이 오리라는 것을 압니다. 그간 다른 사람들이 몸을 떠나는 걸 봐왔으니까요. 하지만 그건 일종의 잠든 상태 같은 겁니다. 신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아요. 신에 대해 생각하는 건 여러분이 할 일이 아니니까요. 그런 건 사제나 성직자나 다른 부류들이 하는 일이죠. 그런 사람들이나 신에 대해 생각합니다. 신에 대한 답은 대개 보통 사람들이 감당하기엔 너무 벅차거든요. “오, 이건 내 알바가 아냐. 나는 그냥 살면서 착한 일이나 하면 되는 거야.”하고 말하죠. 대부분 이렇게 삽니다.

 

여러분은 다릅니다. 여러분은 깨어나는 중이거든요. 여러분은 자각합니다. 여러분에겐 아직 이슈가 좀 있기에 자각은 정말 힘든 일이죠. 샴브라 여러분에겐 이슈가 좀 있지만 이제 여러분은 문득 자각하게 되었습니다. 그건 마치 다른 사람들의 총이 장전되지 않은 것과는 달리 여러분에겐 이미 장전된 총이 생긴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에겐 빈총이 있을 뿐이죠.

 

이제 여러분에겐 장전된 총이 생겼고 그러한 자각이 생겼습니다. 그러나 매일 이 엄청난 격돌이 벌어지는 와중에 여러분은 그에 대해 변명을 하고 있습니다. 그럴 듯하게 꾸며대죠. 새로운 표어나 문구를 내걸고 새로운 수업을 찾아갑니다. 온갖 걸 다 하고 있지만 정작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실제로 맞닥뜨리게 되는 것은 거대한 ‘엉망진창’에 불과합니다. 그게 시작된 곳은 훨씬 더 엉망진창이고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한 잔 마셔요! 술을 마십니다. 네. (아다무스 껄껄댄다.) 그 얘기는 하지 않겠습니다. 그 얘길 계속하진 않을게요. 한 잔 들이켜 보세요.

 

그래서 깨달음을 기다립니다. '깨달음을 기다린다.' 이건 제게도 가장 커다란 이슈 중 하나입니다. 바로 여러분의 이슈니까요. '깨달음이 뭔지 정말 모르겠다.' 여러분은 무얼 기다리고 있습니까? 깨달음이 뭔지 이해하기를?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기대를 저버려 죄송하지만 여러분은 깨달음이 뭔지 결코 이해할 수 없을 거예요.

 

누군가 와서 어떡하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지 말해주기를 기다립니까? 누구도 그렇게 해줄 수 없습니다. 구름과 행성과 먼지와 버니 래빗이나 다른 모든 게 다 제자리에 배열되고 나면 별안간 깨닫게 될 거라 기다리나요?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날마다 그저 겨우 버티면서, 이따금 밤에 곯아떨어지기 전에 하루를 어떻게 버텼는지 의아해합니다. 여러분은 직장에서 엄청나게 시달리고 왔으니까요. 깨달음의 길에 들어선 이후론 상황이 더 나빠집니다. 마쿄가 생겨나고 제한된 존재 혹은 제한된 의식이라는 속임수가 소위 영성이라는 것을 더 그럴싸하고 특별하게 느껴지도록 만드니까요. 일종의 마약 같은 거죠. 거대한 분산요소지만 샴브라는 그렇게 합니다. 샴브라는 쓰레기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잠자는 동안이 약간의 유예 기간이라 생각하며 하루를 마감할 겁니다.

 

하지만 처음 깨어나기 시작했을 때 어떤 일이 있었나요? 꿈자리가 전 같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은 꿈을 통해 갑자기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자각하게 됐죠. 사실 여러분이 새벽 두세 시에 잠에서 깨는 이유 중 하나는 꿈에서 벗어나 한숨 돌리기 위해서입니다. 그 꿈도 현실 세계에서 벗어나 한숨 돌리려던 거였지만요. (몇몇이 웃고 모두가 입을 모아 말한다.) 엉망진창이군! 엉망이야! 도대체 여러분은 하루를 어떻게 버티시나요?

 

친애하는 벗들이여, 바로 지금 이 모든 충돌이 벌어지는 중이고 특히 여러분이 깨달음 비스무레한 것을 시작했을 때는 뭔가가 훨씬 복잡해집니다. 마음은 전보다 훨씬 많이 작동하기 시작하고 아마도 벌써 발견하셨겠지만 이제는 영적인 마음 –저는 그렇게 부르겠습니다.- 영적인 마음도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아셨을 겁니다. 여러분에겐 인간적인 마음만 있었지만 이제는 영적인 마음도 생겼습니다. 그건 제한적이고 한정된 영성을 뜻하며 사실 전부 다 헛소리입니다. 사실이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이제 마음은 무수한 영적인 개념을 수용하고 소유하려 들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치유하세요. 나는 평화, 사랑, 기쁨 속에 있습니다. 나는 옴 찬팅과 명상을 할 것입니다.” 따위의 영적인 개념, 그게 실로 가장 커다란 헛소리입니다.

 

깨닫는다고 해도 여러분이 갑자기 평화로 가득차지는 않을 겁니다! 별안간 “옴∼” 따위의 소리를 내지 않을 거예요. 그게 아마도 제일 큰 망상일 겁니다. 그렇게 일어나지 않아요. 그렇지 않습니다. 사실 ‘평화’라는 단어는 깨달음 속에선 문 밖으로 나갑니다. 그건 더 이상 단어도 아니에요. 여러분의 어휘로는 표현도 되지 않을 겁니다.

 

아시다시피 평화란, 많은 사람들에게 평화가 의미하는 바는 “그냥 잠시 조용히 내려놓을 수 있도록 15분이나 30분쯤 시간을 주세요.”하는 말입니다. 그게 평화죠. “난 그냥 피하고 싶어. 나 자신으로부터 달아나야겠어.” 그거죠. 거기엔 평화가 없어요. 불협화음이 있죠. 모든 것엔 조화가 있습니다. 문득, 그 모든 걸 이해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문득, 갈등이 다 사라집니다. 문득 커다란 은총이, 자연스러운 은총이 일어나고 여러분은 그저 웃음을 터뜨립니다. 여러분은 그저 웃기 시작하죠, 왜냐하면…

 

패트리샤: 엉망진창이니까! (아다무스 껄껄댄다.)

 

아다무스: 네! 그래요! 바로 그거죠. 우리는 잠시 후에 거기 도달할 겁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엉망진창 속에 잠시 머물 거예요. (누군가 “엉망이군.”하고 말한다.) 엉망이군. 엉망이야. 엉망진창이군.

 

그럼 어떻게 할까요? 한 잔 들이키세요. 아주 엉망이군.

 

여러분은 충돌하는 욕망과 진실-여러분이 진실이라 믿는 것- 그리고 무언가에 관한 온갖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은 전부 충돌하죠. 그 모두가 충돌하고 있어요.

 

 

 

 

깨달음으로 가는 길 The Road to Enlightenment

 

그건 마치… 차에 탔다고 상상해보세요. 그 차는 깨달음으로 향하는 영적인 여정을 상징합니다. 하지만 어디로 가는지는 아무 단서도 없죠. 그저 올라타고…

 

이디쓰: 오늘 그렇게 여기 왔어요.

 

아다무스: (껄껄대며) 그렇게 여기 왔다! (누군가 껄껄댄다.) 네, 아시다시피 행동하는 겁니다. 어디로 가는지 아무런 생각도 없이 깨달음으로 가는 길에서 그냥 차에 올라타고 출발합니다. 흠, 맨 먼저 뭘 깨닫게 될까요? “내가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어.” 그러나 여러분은 자신을 타이릅니다. “글쎄, 길에서 뭔가 일어날 것 같아. 누군가 목적지에 도달하는 법을 알려줄 거야. 어쩌면 지도가 생겨서 어떻게 깨달음에 도달하는지 알게 될 지도 몰라.” 그런 식은 아닐 거예요. 유감이지만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여러분은 깨달음의 길을 따라 운전하고 있고 맑고 화창한 날씨에 창밖을 내다보고 있습니다. “오예, 이거 정말 좋아.”하고 말하지만 실은 그냥 하는 말이죠. “이게 좋았으면 좋겠어. 이게 좋다고 믿을 거야. ‘오, 아름다운 하늘과 새들 좀 봐!’하고 생각할래. 헉! 방금 사슴을 쳤네.” (웃음) 그런데, 그러나, 그러나… (아다무스 껄껄댄다.) 앞줄에서 웃네요. (더 큰 웃음) 엉망이군! 엉망이야. 네.

 

그런 다음 여러분은 깨닫습니다. “어, 차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네. 세상에, 이 소음을 그냥 무시해야겠어.” 그런 적 없으셨습니까? “그냥 저 소리를 무시할 거야. 들리지만 어쩔 수 없잖아. 왜냐하면 이 차는 깨달음으로 가는 차니까. 그러니 나는 저 소리를 무시할 거야.” 그러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2마일 더 가선 푸직! 음향효과를 좀 내주실래요, 모포?

 

마티: 푸지직!

 

아다무스: 아, 여기 마이크 좀 갖다 주실래요, 린다? 그럼 적당한 음향 효과를 들을 수 있을 거예요. 깨달음으로 가는 길 위에서 덜거덕 덜거덕 소음이 들립니다. 여러분은 깨달음으로 가는 길이라 그 소리를 무시하죠. 다 잘 될 거야, 그런데 갑자기!

 

마티: 퍽, 뿌직, 푸지직... 뿌웅~. (방귀소리: 큰 웃음) 괜찮았어요?

 

아다무스: 네 좋아요. 그리고 차는 주저앉죠. 그럼 어떻게 하죠?

 

이디쓰: 엉망진창이군.

 

아다무스: 네, 네! (웃음) 또 다시 엉망이죠. 이놈의 ‘엉망진창’ 때문에 우리 오늘 다섯 병은 마셔야겠군요.

 

차가 퍼집니다. 많은 일이 벌어지죠. “나는 깨달음으로 가는 길 위에 있어야 해. 근데 차가 퍼졌어. 아마도 영이 내게 뭔가를 말하려는 걸 거야.” 또 다시 이렇게 불협화음이 시작됩니다. 천만에요. 그건 여러분이 여행을 떠나기 전에 자동차 점검하는 걸 잊었기 때문일 겁니다. 연료가 부족했는데 그걸 미처 확인 못했거나 라디에이터를 확인하지 않았기 때문일 겁니다. 영은 그 염병할 일에 대해 말해주지 않아요. 영은 이미 깨달았고, 아시다시피 여러분의 여행이 어떻든 아무래도 상관하지 않아요. (한 여성이 웃는다.)
 
재밌죠, 안 그런가요? 네. (그녀 혼자서 또다시 웃는다.) 웃으셨으니 아다무스 상을 드려야겠군요. 부탁해요, 린다. (누군가 “한 잔 갖다 주세요.”하고 말한다.) 네, 한잔 더 드려야겠군요! 네, 좋아요. 근데 아다무스 상이 어디 있죠? 린다? 근데 린다는 또 어디 있죠? 웃은 분께 아다무스 상을 드립니다.

 

린다: 오늘은 안 갖고 왔어요. 요즘 상 준 적이 없잖아요. 내가 잊어버릴 때만 너무 뭐라 그래요.

 

아다무스: 엉∼망이군! 하루 그랬잖아요. 그럼 돈을 전부… 이 안에 뭐가 있는지 모르겠군요. (그가 콜드레의 주머니에서 지폐를 꺼내어 준다.)

 

마티: 오오! 2달러씩이나! (큰 웃음)

 

아다무스: 그래서 어디까지 했죠? 오, 여러분은 여행중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갑자기 적금을 다 털어 깨달음의 자동차를 수리하는데 써야 하고 어딘지도 모르는 곳으로 향하던 그 길을 되짚어 와야 합니다. 그리고 다시 여러분은 깨달음의 길을 떠나죠. 여러 생애에 걸친 이 길고 길고 길고 길고 긴 여행에서, 가능한 한 빠르게 달려오면서 여러분이 지금껏 해온 일이란 아무데도 아닌 곳에 더 빨리 도착하는 것뿐입니다. (누군가 웃는다.) 그러면 그 다음날 영적인 마음은 “아, 나는 속도를 좀 늦추고 마스터들이 했던 것처럼 장미꽃향기도 좀 맡아야 해.”하고 말합니다. “그들은 깨달음의 길을 아주 천천히 갔고 그 길을 가는 동안 모든 것을 관찰하면서 호흡했어.” 그래서 여러분도 아주 천천히 나아갑니다. 그렇게 여러분은 이 깨달음의 여정에서 아주 빨리 또 아주 천천히 나아가기를 반복합니다. 속도를 높였다가 브레이크를 밟았다가, 속도를 높였다가 브레이크를 밟았다가. 여기서 생겨나는 충돌이 뭔지 아시겠습니까?

 

이러한 깨달음의 여정을 이어오면서 이제는 좌절과 불안의 수위로 인해 내 몸을 떠날 지경까지 되고 맙니다. 저는 여러분이 겪고 있는 일을 감당할 수 없었을 겁니다. 여러분은 지금 그렇게 나아가고 있어요. 수년 째 이 여행길을 달려왔습니다. 같은 길에 같은 문제가 놓여 있죠. 매일 밤 길가엔 똑같은 싸구려 호텔이 늘어서 있고 똑같은 사람들이 당신에게 사기를 치려 듭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단단히 결심했기 때문에 계속 나아갑니다. 그런 건 이 길의 속성이라 여기면서요. 긍정적인 구절 같은 것도 떠올립니다. “나는 단호하게 정했어. 나에겐 강한 의지가 있어. 제기랄, 무슨 일이 있어도 깨달음이 일어나리라는 걸 알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거야.” 여러분이 그렇게 말할 때면 저는 생각합니다. “세상에나, 정말 누가 와서 나 좀 도와주면 좋겠어. 이건 너무 어려우니까!” (누군가 웃는다.) 여러분이 “나는 절대 포기하지 않겠어. 이게 바로 내가 할 일이야!”하는 말을 들으면 저는 생각합니다. “여기 정말로 문제가 생겼다, 휴스턴! 그들이 아무데도 안 가기로 단단히 결심했기 때문이다!” 상승 마스터라도 거기서 뭘 할 수 있을까요?
 
여러분은 완고해집니다. 아무데도 아닌 그리로 가는 길 위에서 난폭하고 무자비하게 고집스러워집니다. 그러나 젠장, 계속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기로 맹세했으니까요.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이 작은 깨달음의 여정을 떠났다는 걸 알고 그것을 비웃었던 친구와 가족들 앞에서 정말 당황스러울 테니까요. (웃음) 여러분이 돌아와서 “차가 고장나버려서 그 길을 포기했어. 배도 고프고 이젠 빈털터리가 됐어. 다 끝나버렸어.”하고 말한다면 사람들이 비웃을 테니까요.

 

깨달음에 대한 이런 식의 자존심이 있습니다. 이 여정을 더 잘 완수해내리라는, 안 그러면 바보처럼 보일 거라는 영적인 마음의 자존심이 있어요.

 

자신이 대단한 멍청이처럼 보일 지도 모른다는 것, 아마도 다른 사람들 앞에서 바보 같다고 느껴지는 것보다 더 나쁘거나 최악인 건 없을 겁니다. 여러분은 내면으로부터 깨달음의 여정을 승인받았고 그게 답니다. 그게 전부예요. 그게 소용없다면, 이 마법이 현실이 아니고 과거의 자신으로 돌아가야만 한다면… (누군가 “엉망이군!”하고 말한다. 아다무스 웃는다.) 엉망이죠!

 

흥미롭게도 여러분은 사실 되돌아갈 수가 없습니다. 웃긴 건 여러분이 나아갈 수도 없다는 거죠. 더 웃긴 건 사실 달리 갈 데도 없다는 겁니다. 그게 정말 엉망인 거죠. 완전 엉망진창. 술이 좀 남아 있나요, 수지? (몇 사람이 “네”하고 답한다.) 네, 그래요, 좋습니다. 엉망진창.

 

지금까지 이 모든 것 속의 갈등과 불협화음을 이해하게 되셨길 바랍니다. 또 이 과정에서 일어나는 어마어마한 열차 사고를 이해하게 되셨길 바라요.

 

여러분은 깨달음의 길로 달리고 있으며 그 여행은 계속 계속 계속될 것이며 내일도 오늘과 똑같겠지만 여러분에겐 아직 깨달음이라는 희망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아직도 제가 별안간 여러분을 깨닫게 해주길 바랍니다. 제가 그렇게 못해드리면 여러분은 저를 떠나 또 다른 곳에서 깨달음을 얻게 되길 바랄 겁니다. 거기엔 뭔가가 있기를 바라면서요.

 

이디쓰: 열차가 사고 나지 못하게 하는 법을 만들어요.

 

아다무스: (껄껄대며) 여러분은 뭔가 다른 것으로 주의를 분산시키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저는 고향에 도착할 때까지 달릴 겁니다. 거기엔 혼돈이 있어요. 진정한 혼돈이죠. 깨달음의 혼돈.

 

그러나 사실은 어디에도 없는 데로 가는 이 길에서 여러분은 정확히 있어야 할 그곳에 있다는 겁니다. 그건… (들리지 않게 말한다.) 아뇨! 안돼요. 그러면 제가 다시 말할게요.

 

어디에도 없는 곳으로 가는 길에서, 깨달음으로 가는 길에서, 온갖 갈등과 불협화음에도 불구하고, 여러분은 바로 정확히 있어야 할 그곳에 있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아다무스가 칠판에 쓴다.)

 

엉망? 진창? 아뇨!

 

한 잔 들이키셔도 좋습니다. 네. 사실, 그건 완벽합니다. 완벽해요. 그리고 지금까지 말한 전부 다… 여기 음료수가 좀 더 있어야겠네요. 레모네이드나 뭐든 마실 것들이요.

 

엉망진창이라고요? 그렇지 않아요. 아주 완벽합니다.

 

 

 

 

앎 Knowingness

 

여러분이 한 시간 전보다 훨씬 더 이완된 지금, 하고 싶은 것이 있어요. 잠시 깨달음에 관한 이 모든 것을 기억해보세요. 이건 생각으로 시작된 일이 아닙니다. 어느 날 갑자기 낡은 삶이 지겨워서 깨달음을 얻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 아닙니다. 어떤 수업에 참석하거나 어떤 책을 읽었다고 시작된 것도 아닙니다. 아뇨, 벗들이여. 그렇지 않아요. 그것은 깊은 앎에서, 아주 근원적이고 깊은 앎에서 시작됐습니다. 생각이 아니었어요. 행동이 아니었습니다. 여행이 아니었어요. 그것은 여러분의 내면 아주 깊은 곳에서 퍼져 나온 앎이었습니다.

 

그건 남용돼왔어요. 왜곡돼왔죠. 오랫동안 몹시 희미해졌습니다. 그러나 이 앎은 언제나 거기 있었어요. 여러분은 깨달음이 뭔지도 모르고, 몰라야 합니다. 제한된 마음으로는 이해할 방법이 없으니까요. 그런 척 애써보고 상상해보려 할 것입니다. 부유해지고 유명해지고 섹시해져서 온갖 종류의 연애를 하고 대단한 구루나 마스터가 된다는 아주 유치한 상상이라고 해도요. 마음이 하는 일이란 그런 거죠. 그건 분산입니다. 실제가 아닙니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릅니다. 사실 아무 상관도 없어요. 정말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잠시 앎으로 돌아가, 그 앎이 생각이 아니었던 때로 돌아가 보시기를 청합니다. 차 같은 건 없었어요. 여행도 없었습니다. 완전한 인간이 되려는 게 절대 아니었습니다. 여러분 자신에게로 돌아가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어요. 마쿄가 아니었어요. 글귀나 말들이 아니었어요. 여기 샴브라 객석에 앉아있는 것도 아니고 애쓰는 것도 아니었어요. 힘이 생기거나 지혜가 생기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뭔가가 생기는 게 아니었어요.

 

그건 앎, 깊은 사랑의 앎이었어요. 천사나 상승마스터가 올 거라는 앎이 아니라, 누가 갖다 주는 앎이 아니라, 누가 일러주거나 다른 사람의 행동으로 생겨나는 것도 아니었어요. 그건 여러분에게서 나왔습니다.

 

황금 천사니 더 높은 자아니 다른 말로 표현된 그 무엇도 아니었습니다. 그건 여러분이었어요. 그건 전부 여러분이었습니다. 그저 인간이 아니라, 신성이라 불리는 무언가도 아니라 아이엠, 진실한 아이엠, 인간인 그대로 이곳에 현존하는 아이엠이었어요. 바로 여기에 있는 그것.

 

 

 

 

앎을 느끼는 것 Feeling the Knowingness

 

그래서 저는 느껴보고 싶은데 –미랍이라 부르고 싶지도 않군요. 그저 느낌입니다.- 그 앎으로 돌아가는 겁니다. 조명을 좀 낮춰주세요.

 

이 모든 진창과 혼돈과 혼란 끝에, 여러분 내면의 이 모든 불확실성 끝에 –그간 저는 여러분이 이게 정말 큰 실수는 아니었을까 갸웃하는 모습을 보고 들었거든요. 여러분은 영적인 여정이 그저 망상은 아니었을까 갸웃합니다. 음, 그랬죠. 그러나 그것은 더 순수하고 실제적이고 아주 깊은 무언가로 시작됐습니다.

 

이제... 조용한 음악을 좀 틀어주세요.

 

(음악이 시작된다. Bernward Koch의 “Day of Life” 앨범에서 “The Enchanted Path”)

 

이 앎이 어디서 왔는지를 돌이켜 생각해보시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어요. 특정한 날짜도 아닙니다. 어떤 행동 때문도 아니에요. 인간관계도 아닙니다. 아시다시피 영적인 여정 속에서 일어나는 문제는 마음이 아직도 모든 것을 다른 무엇과 연관 지으려 애쓴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영적인’ 혹은 ‘깨달음’이라는 단어를 뭔가와 연관 지으려 합니다. 그것은 유사한 특성이 있는 무엇이든 잡아채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에게 있는 앎, 그 깊은 앎은 무엇과도 연관 지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압니다. 그냥 존재해요.

 

마음은 깨달음의 길을 파악하려고 애씁니다. 그저 여러분에게 봉사하려는 거죠. 여러분을 위해서 그렇게 하려고 하겠지만 마음은 알 수가 없습니다. 마음은 뭔가와 연관 지으려 할 겁니다. 자동차가 고속도로를 달리다 고장 나는 모습을 시각적으로 창조해낼 겁니다. 깨달음에 대한 여러분의 결단과 고집을 시각적으로 창조해내려 할 겁니다. 그러나 사실 자동차 같은 건 없습니다. 목적지도 없고, 해야 할 일도 없어요. 정말로 아무것도 고쳐야 할 것이 없습니다. 분명히요. 깨달음이 일어나려면 그 전에 뭔가 고쳐야 한다는 건 깨달음에 관한 속임수나 착각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아무것도 잘못된 게 없습니다. 단 하나도 고쳐야 할 게 없어요. 단 하나라도요. 여러분이 알콜 중독자든 멍청이든 상관없습니다. 고칠 필요가 없어요. 어떤 분들은 해당되시죠, 안 그런가요? (몇 명이 킥킥댄다.) 아무것도 고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니 여러분께 깊이 호흡하면서 이 순간 몸 안에 머무시길 청합니다. 앎으로 돌아오세요. 여러분이 창조했습니다. 어떤 위대한 금빛 천사나 더 높은 자아 따위가 아니에요. 그것은 여러분, 아이엠의 앎이었습니다.

 

(침묵)

 

깨어남과 깨달음에 관한 생각과 꿈과 상상이 이 앎을 뒤따라왔습니다.

 

이 앎을 따라서 여러분 삶에, 관계에, 자신과 다른 이들에 반응하는 방식에 에너지 역동의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이 무엇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떤 것도요. 이것들이 깨달음을 불러오는 것이 아닙니다.

 

이건 단순한 앎입니다. 너무 단순해서 정의할 수도 없죠. 너무 단순해서 마음은 아무것도 그와 연관 지을 수가 없습니다. 너무 단순해서 여러분은 그걸 다시 창조할 수도 없어요. 재창조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벗들이여, 그건 아직 존재하고 있으니까요. 그 앎은 사라진 적이 없어요.

 

아이엠의 앎, 그건 결코 소멸된 적이 없습니다.

 

앎의 불꽃 앞에 여러분은 많은 것들 -깨어나기 위한 장대하고 흥미로운 경험- 을 내려놓았습니다. 그 불꽃은 항상 거기 있었죠. 때로 여러분은 그것을 재창조하려 해왔습니다. “그 느낌은 어디 갔지?” 그것은 여전히 거기 있어요. 실은 바로 그것이 여러분을 안내하고 있는 겁니다.
 
가끔 삶에서 어떤 일이 왜 일어나는지, 어째서 특정한 사건이나 상황이 발생하는지 궁금하다면 그것은 앎이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고집과 단호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진실을 압니다. 그것이 길이라는 것을 압니다. 그것이 깨어남이라는 걸 압니다. 벗들이여, 진실하게 남을 유일한 것이 있다면 바로 그겁니다.

 

샴브라들이 “어떤 일이 있어도 나는 계속 나아가겠어.”하는 말을 들으며 당혹스러울 때면 저는 진심으로 여러분이 그 자리에 멈추시길 바랍니다. 차를 없애버리세요. 여정을 없애버리세요. 그 모든 마쿄를 없애버리세요. 마쿄는 여행의 연료가 되니까요. 연료 탱크를 다시는 채우지 마세요. 이 모든 걸 다 없애버리세요. 그저 앎으로 돌아오세요. 그 밖엔 아무것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아요. 아무것도 깨달음의 자각을 불러오지 못합니다.

 

그 무엇도요.

 

앎은 아주 미묘합니다. 정의내릴 수조차 없죠. 마음에는 그 개념도 없습니다. 마음으론 그것과 연관 지을 방법도 없습니다.

 

깊이 호흡하시고 자신의 앎 속으로 빠져들어 보세요.

 

아름다운 앎의 품속에 머물러 보세요.
 
앎은 결코 직접적이지 않습니다. “너는 지금 깨어나야 해.”하고 직접적으로 말해주지 않습니다. 운명이나 때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어요. 여러분은 그것을 힐끗, 살짝 엿보았습니다. 잠시 경계를 내려놓고 아이엠에, 여러분 자신에 온전히 내맡겼을 때 그저 잠시 맛보았을 뿐이죠. 그 한 순간으로 숱한 마음의 생각과 숱한 마쿄와 숱한 결단이 생겨났습니다. 그러한 결단을 내린 샴브라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무엇을 향한 결단인가요?

 

이제 그 모든 싸움과 결단과 의지, 욕망, 강요, 억지, 힘, 그 모든 걸 내려놓아보세요. 놀랍게도, 여러분은 괜찮을 겁니다. 사실 전보다 훨씬 낫죠.

 

열심히 노력하길 관둬도 됩니다. 두려워하지 않아도 돼요. 제가 아니라 여러분 안에, 그 앎, 아이엠 안에 머물러도 괜찮습니다. 앎이 집으로 돌아올 때입니다. 고향으로, 아이엠으로, 자각으로 되돌아올 때예요. 통합할 때, 그저 집으로 돌아올 때입니다.

 

집으로, 아이엠으로 돌아올 때가 된 앎이 있는데도 여러분이 차에 올라타 긴 여행을 떠났다는 사실이 우습지 않은가요? 고향은 바로 여기, 정확히 이곳이었습니다. 제가 모든 것이 완벽했다고 말하는 이유가 그걸 겁니다. 여러분은 정확히 있어야 할 그곳에 있습니다.

 

여러분은 지쳐 나가떨어져 “오, 내가 여기 있네.”하고 말할 때까지 온갖 시련과 고생 따위를 경험해야 했습니다. 그러다 찾아다니는 일을 관두게 되죠. 영적 탐구를 막는 법안이 있어야 합니다. 율법을 금지하는 법이 있어야 해요. 그래야… (몇 명이 껄껄댄다.)

 

영적인 탐구는 아시다시피 산업입니다. 주의를 분산시키죠. 경험이 될 수는 있겠지요. 불만스럽게 느껴지겠지만 자신이 하고 있는 영적인 탐구가 탐구를 위한 탐구라는 사실만 자각한다면 괜찮습니다. 찾아다니는 일이 좀 슬프긴 하지만 여러분은 그게 현실적이라고 생각하고 실제로 어딘가로 데려다준다고 생각하고 있죠.

 

하지만 고향, 고향이 여러분을 부르고 있습니다. 고향은 내면에 있어요. 어디로 떠날 필요가 없어요. 숨겨야 하는 말도 없고 해야 할 일도 없으며 고쳐야 할 것도 없어요. 그저 집으로 돌아오는 겁니다.

 

하지만’ 없이, ‘하지만’ 없이 말이죠. “하지만 이 문을 열고나오려면 무얼 해야 하죠?” 아무 옘병할 것도 없어요. 원한다면 험담을 하고 술을 마시고 흥청망청 떠들고 찾아다니고 생각하고 싸우세요. 오늘 그 문을 걸어 나오면 여러분은 적어도 그렇게 해왔다는 것을 자각하게 될 것이고,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자각하게 될 것이며, 그 앎이 여러분을 불렀으며 아직도 부르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될 것입니다. 앎은 아직 존재하며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은 아무것도 없어요. 아무것도요.

 

깊고 충분히 호흡하세요. 몸 안에 머물러 보세요.

 

그런 긴장을 좀 내려놓아보세요. 세상에, 깨어남과 깨달음에 관한 긴장. 스트레스. 그럴싸한 노래 하나 나오겠군요. ‘깨달음의 스트레스.’

 

제가 이미 말씀드렸듯이, 토바야스가 12년 전에 말씀드렸듯이, 여러분에겐 아무 할 일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여전히 밖에서 탐구해왔을 겁니다. 여전히 파산직전이고 건강 문제도 있고 온갖 잡다한 것투성이죠. 그래서 저는 바로 지금 여러분이 정확히 있어야 할 곳에 있다고 생각됩니다. 바로 여기죠.

 

고향은 언제나 여러분을 부르고 있습니다.

 

깊고 충분히 호흡하세요.

 

친애하는 벗들이여… 음악을 좀 줄여주세요. 우리는 잠시 이 온화하고 고요한 빛 속에 머무를 것입니다.

 

 

 

 

앞을 내다보기 Looking Forward

 

이것은 여러분의 앎이라는 것을 기억하세요. 인간적인 일상 속에서 난관에 봉착하게 된다면 오늘 이 자리에서 들은 몇 가지를 기억해보세요.

 

여러분이 경험해온 것을 보면 놀랍습니다. 너무 엉망이고, 불협화음이 정말 심했죠. 여러분은 그 불협화음을 고쳐보려 무던히도 애써왔습니다. 놀랍게도 그 때문에 더한 불협화음이 생겨났죠. 여러분은 절대 고칠 수 없는 것을 고치려 애써왔어요. 하지만 기분은 좋았을 겁니다. 최소한 뭔가를 고치고 있고 뭔가 노력하는 것 같았으니까요. 하지만 더 열심히 고치려 들수록 더 심하게 망가져갔죠.

 

그렇습니다. 단지 기억해내면 되는 것이었어요. 고향이 부르고 있습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그게 전부입니다. 여러분이 할 일은 그게 다예요.
 
이 말씀을 드리는 건 2014년이 전 세계적으로, 지구적으로 아주 흥미로운 해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구를 향한 ‘힘든 사랑의 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샴브라 여러분을 두고 하는 얘기는 아닙니다. 여러분은 그저 관찰자가 될 수 있으니까요. 여러분은 뒤로 물러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실로 이 행성이, 사람들이 겪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미 그걸 경험해 봤고 그러한 광기, 혼돈, 불협화음, 갈등을 이미 목격한 적이 있을 테니까요. 여러분은 그 모든 부조리를 목격한 적이 있을 겁니다.

 

여러분은 뒤로 물러나 몇 번 깊이 호흡한 다음 “아, 사람들이 자신만의 경험을 해나가고 있구나.”하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제도적으로나 국가적으로나 어떤 형태의 구조나 방법론, 완고한 것은 무엇이나 아주 혼돈스러워지는 해가 될 것입니다. 아주 힘든 사랑의 해가 될 거예요. 이런저런 기복이 심할 것입니다. 지금껏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한 에너지로 인해 여느 해보다 에너지적으로 더 힘든 해가 될 겁니다. 여러분의 의식이 상승해 더 많은 에너지를 지구로 불러들여오고 있기에 반체제적인 각성, 충돌이나 갈등도 더 많이 야기될 것입니다. “나는 절대 포기 안 해. 누구도 내 땅, 내 나라를 앗아가거나 내 관점을 바꾸진 못해.”하고 말하는 사람들과 조직들의 결의를 목격하게 될 것입니다. 고집과 단호한 결단을 숱하게 목격할 것입니다. 마음에서 비롯된 기상천외하고 정신 나간 짓들을 목격하게 될 것입니다. 날마다 그런 것들을 점점 더 많이 보게 될 거예요.

 

보충설명을 좀 덧붙이겠습니다. 정신요법이 더욱 성행할수록 정신 나간 짓이 더 많이 발생한다는 것을 보게 되실 겁니다. 여기다 하수구 뚜껑을 덮을 수는 있겠지만 그러면 저쪽으로 날려가기 때문이죠. 저쪽으로 날려갈 때는 그리 멋지지가 않을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은 점점 더 많은 불균형을 목격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 불균형을 받아들일 필요는 없어요. 단지 게임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기만 한다면 그런 일이 생긴다 해도 언제든 거기서 빠져나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힘들고 걷잡을 수 없는 한 해가 될 것입니다.

 

공황상태를 뜻하는 건 아니에요. 그냥 웃으시라는 겁니다. 움츠러들라는 게 아닙니다. 자신에게 더 많은 에너지를 가져오라는 거예요. 파산하게 되리라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훨씬 더 풍요로운 해가 될 수도 있어요. 전보다 훨씬 많은 에너지가 존재할 겁니다.

 

앞으로 진행될 샤우드에서 다 함께 더 자세히 이야기할 겁니다. 하지만 지금은 벗들이여, 정말로 깊이 호흡하면서 고향이 부르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할 때입니다. 고향은 여기, 늘 여기 있어요.

 

엉망진창이라고요? 아닙니다.

 

그러니 기억하세요.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창조된 모든 것은 괜찮고 좋습니다.

 

고맙습니다. 고마워요. (청중 박수)

 

훌륭한 험담이었습니다. 멋진 수다였어요. 감사합니다.

 

 

 

 

번역 소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