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covery 샤우드 4장(하) | 발견(Discovery) 시리즈
0 / 2013.12.16 09:15

큰 질문

 

여러분은 내면에서 뛰어다니는 이러한 질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든 단계에서 말이죠. 그것은 여러분의 아주 현실적인 인간 단계에 있는 질문입니다. 그리고 난해하고, 영적이며, 마스터 단계에서 말이죠. 여러분이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 그리고 린다, 칠판에 좀 써주세요. 처음에는 아마도 좀 혼란스러울 것인데요, 그리고 나중에 이곳을 걸어 나가서는 말하죠, “아다무스가 오늘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모르겠어. 이건 예수 게임이었고, 좀 재미있긴했지. 그는 내가 이 질문을 생각하며 걷게 될 거라고 말했지만, 난 그러지 않을 거야.”

 

그러고 나서 지금부터 며칠 뒤, 여러분은 여러분이 하고 있는 것을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이 어떻게 됐지? 그것이 오늘의 질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예수 게임을 했던 이유입니다. 마지막은 어떻게 끝났을까? 큰 질문입니다. 그것은 다음 해에 있을 큰 질문이 될 것입니다. 마지막은 어떻게 끝이 났을까?

 

이것은 여러분 모두가 아주 실질적인 단계에서 가지고 있는 질문입니다. “마지막은 어떻게 될까? 내가 65세, 85세나 되었을까? 내가 그 깨달음을 얻을까? 내가 깨달음을 얻고 이 행성을 떠나게 될까? 깨들음을 얻고 나서 갑자기 어떤 그룹들이 내게 오게 될까?” - 그에 대해서는 어떤 것도 말하고 싶지 않군요 - “어떤 종교적 그룹들이 나를 쫓아와서, 나를 죽이게 될까? 순교자가 될까? 내가 달라져서 사람들이 내게 와서 나를 숭배하여 내가 혼자서 마스터가 될 수 있도록 내버려두지 않으면 이 행성을 떠나가야 할까?

질문 - 이번 샤우드의 진짜 제목은 - 마지막은 어떻게 끝이 날까?

 

저는 그 질문에 답을 하진 않겠습니다. 그 질문은 실제로 여러분의 배와 가슴, 마음속에서 지금부터 다음 모임까지 뛰어다닐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다음 모임을 저의 독백이 끝난 후에 갖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질문에 대해 다시 이야기하면서 다음 모임을 시작할 것입니다. 마지막이 어떻게 끝날까요? 그것은 여러분에게 무슨 의미인가요?

 

여러분은 그에 대해서 무엇을 투사했고, 생각했고, 가정을 해왔나요? 제가 여러분에게 작은 단서를 주겠습니다. 마지막이 어떻게 될까요, 그에 대해 여러분은 무엇을 숙고해왔나요? 여러분은 어떻게 죽을 것인가요? 마지막은 어떻게 끝이 날까요? 그것은 여러분이 생각했던 것과는 다를 것입니다. 전혀요. 그렇게 우리는 우리의 다음 샤우드로 들어갈 것입니다. 다음 샤우드의 기대치를 좀 높혀 보죠. 저는 다른 상승 마스터들을 비교해볼 것이며, 거기에 큰 번호를 달아둘 것입니다.(일부 웃음) 마지막이 어떻게 될까요? 여러분은 그에 대해 무슨 생각을 해왔고, 어떻게 느껴왔나요? 마지막이 어떻게 끝날까요?

 

그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예수 게임을 한 이유입니다. 그것은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에 대한 사전 준비였지요, 그러면 여러분의 마지막은 어떻게 될까요? 여러분이 언제든 죽어서 건너갔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아! 대단한 샤우드가 되겠군요.

 

자 잠시, 그에 대해서 이야기해봅시다... 음, 잠깐 한 가지 해보죠. 예수아가 팔레스타인으로 갔다고 이야기했었죠 - 에, 정치적으로 정확하진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이스라엘 말이죠. 그의 많은 시간, 몇 년에 걸친 여행 끝에 그는 이스라엘로 돌아왔습니다. 그가 약 14세에서 33세 나이 사이에 성경에는 긴 공백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왜 사람들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라고 말하지 않는 걸까요? 그가 의자나 책상 그리고 큰 십자가를 만들고 있지는 않았지요.(몇몇 웃음) 우리는 이제 그에 대해서 웃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섹스도 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죠. (웃음) 자 그럼 이 잃어버린 기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왜 그 기간에 대한 기록은 없을까요? 그럴싸하게 포장되어있다고 볼 수 있죠. 자, 네, 아시다시피, 그는 12세 때 사원에서 탁상을 뒤집어엎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여러분은 그가 30세 때까지 이야기는 듣지 못했죠. 상당히 긴 공백 기간입니다. 네.

 

네. 질문이나 의견 있으신 분.

 

샴브라 8(남자): 의견인데요, 이런 건 전도를 하기 위한 계획에는 적합하지 않군요.

 

아다무스: 정확합니다. 맞아요. 그것은 전도하기에는 좋은 내용이 아니죠.

 

왜 인간들은 그렇게 잠들어 있을까요 - 당신 말고요, 일반적인 사람들이요 - 왜 그들은 그렇게 깊이 잠들어 있으며, 이렇게 말하는 “나는 예수가 14세에서 30세까지 무엇을 했는지 알기 전까진 교회에 가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고해성사도 하지 않을 거예요. 절대로... 내게 그 이야기를 해주세요.”라고 말하는 사람이 없는 걸까요? (누군가, “그들도 몰라요.”)

 

자, 그들은 그것을 모릅니다. 그것이 정말 맞는 말이죠. 하지만 그들은 목수 스토리 같은 내용을 꾸며내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잠시 자비로운 일을 위해 그가 떠났다는 스토리도 만들어 내지 않습니다.(아다무스 웃음) 아무것도요. 아무것도. 그들은 그저 - 숨차군요! -“그에 대해서 논의하지 맙시다.”라고 하죠. 그것은 좀 괴상한 부분이며, 앞으로는 그렇게 할 수 없고, 그렇지 못할 것입니다. 그럴 수 없죠. 네.

 

저는 다른 훌륭한 인간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오, 좋습니다. 흠, 네, 기록이 없는 거군요.” 이러한 유형들에 대한, 그러한 자각은 지금 상당히 높은 상황입니다. 이러한 방식은 앞으로 나아갈 수 없죠. 사람들은 지금 바로 그 질문을 묻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대담해질 것입니다. 그들은 앞으로 나와서 말할 것입니다, “노, 노, 노, 노, 아니죠. 그건 말이 안 됩니다. 남자 없이 처녀가 애를 가지다니요. 다른 쪽에서 들은 이야기로는 간음을 했다고도 하던데요. 지금은 그것이 괜찮은 답이에요. 그것이, 네, 바로 맞는 이야기죠.” 그건 일부 사람들의 눈총을 받을 것입니다. 괜찮은 헐리우드 영화를 만들겠지요. (일부 웃음) 천국이 여러분 안에 있습니다. 그러니...(계속 웃음) 이중적인 의미가 있죠, 신사 숙녀 여러분.(아다무스 웃음)

 

2014

 

자 해보고 싶은 것이 있군요. 우리.... 제가 주문을 받아보겠습니다. 2014년에 대한 것을 시작해보죠.

 

우리는 우리의 다가오는 샤우드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 것입니다.(ProGnost에 대한 이벤트를 언급한다.) 제가 우리의 지난 모임에서 이야기했듯, 다음 해는 힘든 사랑의 해입니다. 또한 내년은 여러분 자신 안에 있는 선물들을 발견하는 해가 될 것입니다. 힘든 사랑. 자신 안의 선물들.

 

여러분 내면이 이미 존재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창조해 놓은 것들이죠. 여러분이 그것을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 씨앗의 에너지의 일부분이며, 그들은 - 크리스탈, 흠, 여러분 안의 크리스탈과 같습니다. 그들은 단지 여러분이 가닿을 필요가 없는 많은 이유들 때문에 끄집어 내지 않았었지요. 하지만 그 선물들과 재능들은 여러분의 것입니다.

 

다른 누군가가 그것을 여러분에게 준 것이 아닙니다. 그것들은 여러분을 놀랍게 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가지고 있었다고 알지 못했던 것들 - 이해, 재능, 창조성 - 그러한 것들을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 그것을 불러내 봅시다. 앞으로 나오도록 해봅시다. 그것들이 나오게 될 것입니다. 그 시간들은 힘이 들 것이며, 이것은 여러분의 내면에서 아름다운 것들을 유발할 것이고, 결국에는 그것들이 발현될 것입니다. 팔꿈치로 찌르는 듯한 작은 느낌들이 그러한 것들을 데려나올 것입니다.

 

자 - 제가 여기를 뛰어다니는 건 이유가 있어서 입니다 - 창조성에 대해서 제가 한 마디 해보겠습니다. 왜냐하면 창조성은 여러분이 발견하게 될 것 중 것들과 함께 묶여있기 때문이지요. 그것은 언제나 여러분을 놀라게 할 것이며, 항상 가지고 있었던 선물입니다. 그 후 그것은 왜 여러분이 그것들을 빨리 가져오지 못했나 하며 놀라게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이해들과 능력들 그리고 재능들은 어떤 이유로 인해 동면중이지요. 그러한 것들이 잠에서 깨어날 것입니다.

 

창조성

 

창조성에 대해서 한 가지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창조성은 시도와 실수에 관한 것입니다. 그것은 한 번에 성공하는 것이 아니죠. 창조성은 시도와 실수에 대한 것입니다. 신성 또한 비슷하죠, 그 둘은 함께 묶여있습니다. 사람들 중에는 매번 모든 것을 한 번에 딱 완성하려고 하는 사람들도 있고, 그것이 아니면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사람도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성공이 확실히 보장되는 일을 한다는 것이죠. 진정으로 눈부신 창조성을 가진 존재는 기꺼이 실수를 만들 수 있는 존재들입니다. 테슬라는 굉장히 많은 실수를 했죠. 여러분이 알고 있는 다른 유명한 발명가들, 과학자들, 진보주의자들 중 많은 이들이 많은 실수를 했습니다.

 

우리는 상승 마스터 클럽에 앉아서 그에 대한 농담을 하지요. “진정 성공한 인간은 18퍼센트 확률로 성공한 사람이야.” 얼만 큼의 비율이 되어야 제대로 되지 않은 것일까요? 빨리 계산해보세요. 많죠. 많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거기에 갇혀 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아마도 제대로 된 비율로 그것을 해낼 것입니다. 아마도 70퍼센트 정도로요.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창조성은 시도와 실수의 문제입니다. 창조주는 그것을 무엇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인간, 정신을 가진 존재만이 일을 제대로 하려고 하지요. 창조주는 단순히 창조를 합니다. 그건 문제되지 않지요. 여러분은 어떤 점에서 거기에 판단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결과에 대하여 크게 매달리죠. “나는 창조해 - 오, 정말 대단하군. 나는 창조를 해 -퇫! 와우! 내가 바라왔던 것들은 구현되지 않았어.”

 

여기서 재밌는 일은 깨달은 창조주들은 어디에서든 그것들이 구현되었다는 것을 이해한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다른 차원들에서 완벽하게 말이죠. 그것은 바로 여기로 오지 않았던 것입니다. 왜일까요? 왜냐하면 그러한 에너지들은 도전적이며, 어렵고, 두텁고, 추잡하고, 사악하고 다른 모든 사람들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때로 그것들은 바로 여기에서 갑자기 휙 하고 사라지지도 않습니다. 그것이 여러분이 그것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저 그것이 일어날 시간 보다 앞서 있었거나, 어쩌면 다른 영역들에서 그것을 창조하고 싶어 했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거기에 필요한 성분들이 좀 부족해서였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진정한 창조주들은 또 다시 창조를 하며, 또한 경험을 통한 즐거움을 위해 그렇게 합니다. 그것이 옳고 그른지에 대한 걱정 없이 말이죠.

 

창조주의식은 시도와 실수의 문제입니다. 진정한 창조주는 그 둘로부터 즐거움만을 취하며, 그들이 실제로 그것을 이뤘을 때 황홀해 합니다. 그들이 느끼는 것, 그들이 옳다고 말하는 것들에 대해서 그러하며, 그것이 그들이 원하는 이러한 현실에서 구현되는 것이죠. 18%의 비율로 말이죠. 꽤 높은 수치입니다. 어쩌면 여러분은 그것을 더 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새해가 오고 있군요. 그리고 이러한 것들은 함께 묶여 있을 것입니다. 지금 그것은 납득하기 힘들겠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여러분은 알게 될 것입니다, “오! 이제 이해했어.” 다가오는 새해는 힘든 사랑의 해가 될 것이며, 여러분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재능들과 선물들을 발견하는 해가 될 것입니다. - 여러분이 그것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이번 샤우드에 대한 비용을 돌려드린다는 보증서를 써드리겠습니다. 그러한 것들은 여러분을 날려 버릴 것입니다. 내년엔 말 그대로 그러한 것들이 여러분을 날려 버릴 것입니다. 여러분 안에 잠재되어 있던 것들로부터 말이죠.

 

신뢰

 

다음 해에 대한 또 다른 한 가지. 그것은 오래된 주제이죠.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또 다시 발견해야만 합니다. 아마도 이러한 것들 뒤에 오는 것은 신뢰입니다. 다음 해에, 특히, - 이것은 걱정하는 것에 대한 것이 아니며, 자각에 대한 것입니다. 내년에 여러분을 물러서게 할 한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여러분입니다. 그것은 여러분이지요. 그것은 신뢰를 요구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여러분 자신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린다면, 그것이 바로 여러분을 물러서게 할 유일한 것이 될 것입니다. 그것은 길고도 긴 내리막길이 되겠죠. 여러분이 자신을 신뢰하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자, 신뢰는 힘든 것입니다. 여러분 중 많은 분들이 말하죠, “오, 나는 나 자신을 신뢰해.” 실제로는 그렇지 않죠. 아닙니다. 여러분은 그렇게 말을 하지만, 진정으로 그렇지는 않습니다. 여러분은 저를 믿지 않나요? 여러분의 행동과 반응들을 살펴보세요. 신뢰는 일종의 항복입니다. 하지만 신뢰는... 신뢰는, 일부 마스터들에게는, “내게는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어.”라고 말하는 것이지요.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습니다. 그것이 내가 가진 전부이지요. 저는 그것을 가지고 노력을 할 수도 없습니다. 저 스스로가 믿도록 할 수도 없죠. 하지만 그것이 바로 내가 가진 전부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들이 떠나버렸거든요.”

 

내년에는 스스로를 신뢰하게 될 것입니다.

 

저는 이를 말할 수 있으며, 여러분이 꼭 그것을 믿을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냥 그것을 해보세요. 그냥 여러분 자신을 신뢰하세요. 심지어 여러분이 그것을 잘못된 것이라 생각할지라도, 그것은 여전히 옳습니다. 심지어 여러분이 “오, 난 잘못된 길로 갔어. 잘못된 일을 했어.”라고 생각할지라도 말이죠. 예수아를 보세요. 그는 한 예입니다. 별 하늘 아래에서 그는 하룻밤 로맨스를 가졌습니다. 그는 약간 들떴으며, 그것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일부 웃음) 갑자기, 그것은 야하드에서의 교사로서의 명성을 날려버렸습니다. 그것은 그의 명성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렸지요. 오, 그가 그에 대해서 나쁘게 느꼈을까요. “ 오, 지~! 에! 이런 일이 왜 일어날까, 정말 싫어! 봐, 그게 나를 문제에 빠뜨렸어.” 그것은 실제로 신성이 그렇게 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가 그 그룹으로부터 나오도록 만들었으며, 공동체로부터 나오게 만들었게 때문이지요. 오 마이 갓. 거기서는 너무 지루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그의 첫 번째 와이프가 죽었을 때, 그의 하나 뿐인 와이프가 죽었을 때, 그때에 죄책감이 들었습니다. “그녀를 낫게 했어야했어. 제대로 된 약초와 기도문을 알고 있어야 했어.” 혹은 아시다시피, “신이시여, 왜 내 말을 듣지 않나요. 나는 죄인임에 틀림없군요.(“and God, didn’t listen to me, so I must be a sinner.”)라고 이야기를 했지요. 얼마나 그것이 그에게 힘든 일이었을까요. 하지만 그럼에도 그것은 신성이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그를 그 집단에서 나오도록 만들었습니다. 그것이 그를 배움으로부터 나오게 만들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여러분이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 씨앗이 작동했던 것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예수가 자신을 신뢰하기 쉬웠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오 네, 그렇죠, 그것이 바로 내가 계획했던 것이야. 어 어우, 어 어우 예”라고 말할 것이라 생각하면서요.(일부 웃음) “예, 그곳에 나를 내팽겨 쳐서, 내 와이프는 죽었고, 내 삶은 파괴되었어. 하지만, 오 그래. 그것이 나야. 나는 창조주야.” 하지만 실제로 그는 그러했습니다. 실제로 그러했지요.

 

그가 있던 지루한 집단 안에는 그런 케이스에 대한 충분한 치료법들이 있었습니다. 심지어그러한 걱정들이 그로 하여금 탐색을 시작하도록 유발하긴 했어도, 거기에는 충분한 치료법들이 있었습니다. 그때 했던 것들 중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때로는... 제가 너무 많은 것을 말하고 있나요?(일부 “아니요”라고 말함) 아니죠. 좋습니다. 왜냐하면 좀 더 이야기를 할 거 거든요.(아다무스 웃음)

 

심지어 그의 아내의 죽음이 힘들었을 지라도, 그것은 우연히 일어난 사고가 아니었습니다. 말하자면, 만약 그가 그 자신을 신뢰했더라면, 그는 그러한 지혜를 이해했을 것입니다. 그가 그 자신을 신뢰했더라면, 그의 아내는 절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실제로요. 그렇게 일어날 필요가 없는 많은 일들이 일어납니다.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만약 충분한 사람들이 그들 자신을 신뢰했더라면 말이죠. 그것은 그런 식으로 일어날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스스로를 신뢰한다면, 여러분의 삶에서 일어날 필요가 없는 많은 일들이 발생하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절대적으로, 단호히 “내 삶에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어.” 라고 말하며, 자신을 신뢰한다면 말이죠. 그것은 경험을 변화시킬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물, 그 마지막 결과는 - 깨달음 여전히 같을 것입니다. 여러분 대부분이 그러한 약속을 했다고 말할 수 있죠, 여러분은 이번 생애에서 꽤 좋은 솜씨를 발휘했죠. 상당히 좋은 찬스를 가졌었습니다. 이번 생애에서 최소한 3퍼센트 정도의 찬스는 더 가졌었죠.(웃음과 탄성) 농담입니다. 여러분은 100퍼센트의 찬스를 가졌습니다. 예, 예, 예. 그렇게 큰 잠재성이 있습니다.

 

여러분들 대부분은 그러한 실현에 대한 정말로 훌륭하고, 훌륭하고, 훌륭한 잠재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깨달음이라고 부르고 싶지 않습니다. 실현이죠. 이번 생애에서 여러분이 자신을 신뢰한다면 말입니다. 제가 신뢰를 가르치기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렇게 하기란 거의 불가능하죠. 저는 말을 할 수는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신뢰의 머랍을 할 수 있으며, 그러한 모든 것들을 해볼 수 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스스로를 신뢰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자신을 신뢰하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러한 길에 있을 때, 여러분이 여러분의 깨달음에 다가가고, 자신을 신뢰하지 못할 때, 모든 것들이 찢겨져 나갈 것이며, 그때 여러분에게 남아 있는 전부는 여러분 자신뿐입니다.

 

그것은 그리 나쁜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것은 그런 식으로 일어날 필요가 없는 것이죠. 그것은 일어날 필요가 없는 일입니다. 여러분은 실제로 자신을 신뢰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과거의 여러분 자신이 아닌, 황금빛 천사를 신뢰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바로 지금 얼굴에 미소를 띠우고 있는 여러분 자신을 신뢰하는 것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 자신을 신뢰하는 것이요.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이 자신을 신뢰하는 것, 언제나 젊어 보이는 이 놀랍고 아름다운 존재를 말이죠. 이 말을 꼭해야 했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하고 있는 것을 모릅니다, 하지만 저를 데려와 주세요!

 

자기 자신을 신뢰하는 것은 놀라운 것입니다. 그것은 그렇게 경험들을 힘들게 만들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한 전체 시나리오들 속으로 들어갈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 일부는 자신이 이상한 결론으로 향하여 돌진해가는 소행성처럼 느껴질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제가 마지막이 어떻게 끝날까요 라고 묻는 이유입니다. 마지막이 어떻게 될까요? 그리고 여러분은 이처럼, “오, 날 어찌할 수가 없어. 벽을 행해서 나를 내던지고 있는 것 같아. 꽝!” 그것은 그런 식으로 일어날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 자신을 신뢰하세요 - 우쉬! - 그러면 그러한 모든 역학들이 변화됩니다. 저는 신뢰를 가르칠 수 없습니다. 저는 오직 여러분에게 그것을 내면에서 느껴보라고 말할 수 있을 뿐입니다.

 

자, 여러분 안에서 그것을 느껴보세요, 여러분은 말합니다, “좋아요, 나는 나를 신뢰할 거예요.” 그 후 두 가지 일이 일어납니다.

첫 째, 여러분은 말합니다, “흠, 과거에 내가 모든 것을 망쳐버렸어.” 아닙니다. 제가, 좀 전에 여러분에게 말했죠. 창조주의식은 시도와 실수에 대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망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경험이었습니다.

 

둘 째, 다른 경고음이 울립니다. 더 큰 경고음이 울리죠, “예, 나는 나 자신을 신뢰할 수 있어요. 하지만 그들은요? 나는 다른 사람들을 신뢰할 수 없어요, 왜냐하면 그들이 나를 망쳐버릴 것이기 때문이죠. 내가 내 방어를 내려놓는 동안, 그들이 들어오게 될 거예요. 그들은 내 집, 내 돈,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빼앗아 가버릴 거예요. 나를 조정하려 들 거예요. 나를 이용하려 들 거예요.” 아닙니다.

 

이것을 적어둘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자신을 신뢰할 때, 갑자기 여러분은 모든 사람들을 신뢰하게 됩니다. 갑자기, 여러분은 모든 사람들을 신뢰하게 됩니다. 실제로, 신뢰는 여러분이 자신을 신뢰한다고 할 때, 그 “신뢰”라는 단어는 사전적인 의미로 쓰입니다. 그것이 더 이상 주권의식, 깨달음을 의미하지는 않지요. 누군가가 여러분에게 와서 신뢰에 대해서 말한다면, 여러분은 그것을 그러한 것들과 연관을 짓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낡았고, 이질적인 것이죠. “신뢰, 오 정말 낡은 단어야.” 여러분은 심지어 다른 사람들을 신뢰하는 것에 대해서 생각할 필요도 없습니다. 신뢰는 절대적이죠. 그것은 이미 거기에 존재합니다.

 

그리고, 저는 알고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을 들을 수가 있죠. 특히 온라인에서 말이죠, 비명을 지르며, “난 예전에 신뢰하려 해봤어. 그리고 내가 내 보호막을 내려놓았을 때, 그들이 나를 이용했어요.”

 

자, (a) 여러분은 여러분의 방어막을 내려놓지 않았습니다.

(b) 여러분이 그러한 희생자 에너지 속에 있지 않는다면, 그들은 여러분을 이용할 수 없습니다. 그럴 수 없죠.

 

여러분이 자신을 신뢰할 때, 여러분은 다른 사람을 신뢰할 지, 그러지 못할 지에 대해서 걱정하는 상황에 절대 빠지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절대 그러한 상황에 빠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한 일은 일어나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여러분은 누군가가 여러분으로부터 무엇을 빼앗아 갈 것이라는 걱정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절대 그러한 상황에 빠지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다른 사람이 누구인지에 대한 스토리들을 듣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학대, 남용된, 이용당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듣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이와 같겠죠, “와우. 허, 그런 일은 내게 일어나지 않아, 왜 그럴까?” 그것은 여러분이 자신을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자신을 신뢰하기 때문이죠.

 

자, 시간이 가고 있습니다. 파티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댄스 타임이 있을 것이고, 재밌는 복장으로 말이죠. 약간의 와인과, 세인드 저메인 리큐어(술)도 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죠.

 

린다: 음.

 

아다무스: 아, 예.

 

하지만 그 전에, 우리의 이번 세션을 끝내도록 합시다. 작은 경험을 끝으로 이번 세션을 마치도록 합시다. 음악을 좀 키워주세요. - 불빛은 깜박거리고, 머랍 스타일의 음악을 부탁합니다. 불을 좀 어둡게 해주세요. 아 네.

오늘 우리는 좋은 세션을 가졌습니다. 예수 게임, 예수 스토리였죠.

 

어떻게 끝날 것인가?

(음악이 시작됨 :Lonely Road from the album “Day of Life” by Bernward Koch)

 

우리는 어떻게 끝날 것인가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다음 세션을 위한 숙제라고 볼 수 있죠.

 

어떤 사람은 예수의 끝이 그리 좋은 것이 아니라고 논쟁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 위대한 예시는 아니지만, 우리가 지적했듯이, 그것은 아주 오래전 이었습니다. 의식이 지금과는 많이 달랐죠. 일들이 지금과는 다르게 끝났지요. 그러한 그리스도의 씨앗의 의식이 이 행성에 들여져 와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행성이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는 앎도 있었지요. 거기에는 실수가 없었으며, 2,000년이 걸릴 것이라는 불확실함이 존재했었습니다. 그것은 그때도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씨앗을 들여오는, 지구에 심는 것에 관한 것이었으며, 그렇게 새로운 이름을 가진 또 다른 육화를 통해서 다시 되돌아와 여러분이 들여온 그것들을 다시 모을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나머지 세상을 위해서 그것을 가져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그들이 그것으로 인해 도움을 받을 것이란 건 알고 있었지요. 여러분은 그것을 여러분 자신을 위해서 가져왔습니다. 여러분은 이번의 때가 마치 고속도로와 같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2,000년이라는 킬로미터, 마일이 흘러갔습니다. 여러분은 2,000년이 지나고 난 여기에 되돌아올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우주적 여행의 길에서 말이죠. 여러분은 2,000년 전에 그리스도의 씨앗을 심었으며, 그로 인해 지금 바로 여기에 존재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이 지점에 올 것이란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필요로 할 것이며, 원할 것이며, 그것이 바로 여기 잇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2,000년 전 싹을 틔우기 위해서 에너지적 균형들을 흩어 놓았습니다. 여러분의 복합적 예수아도 그것을 알았었지요. “아니요, 바로 지금 그 꽃을 피우도록 하세요. 그것을 바로 지금 가져나오세요. 우리가 그것을 여러분 안에서 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그것을 원해요.”라고 그에게 말하도록 밀치고 쿡쿡 찌르는 존재들이 있었을 때, 그러한 작은 욕심이 있었을 때, 예수아가 말했습니다. “아니요, 그것은 아직 준비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말했습니다, “네, 하지만 마스터, 마스터여, 언제 우리가 준비가 될까요? 지금으로부터 일 년 후인가요, 10년 후 인가요? 언제 준비가 될지 우리에게 말해줄 수 있나요?” 그리고 예수아가 말했습니다, “그럴 수 없어요, 단지 그들이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군요. 왜냐하면 여러분들이 아직 자신을 신뢰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죠. 여러분은 여전히 저를 여러분의 토대로 삼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여전히 제가 여러분을 보호해주기를, 기적을 행해주기를, 가르침을 주기를 바라고 있어요. 아닙니다. 여러분은 꽤 준비가 되지 않았어요.” 그렇게 어떤 점에서 보자면 예수아의 시대가 끝이 났습니다. 다른 방식으로 이어지고 있지요. 아시다시피 물론, 그 이야기들은 나누어졌죠. 성경의 예수의 이야기와 예수아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예수아의 스토리도 또한 살아있습니다. 그 에너지, 그리스도의 씨앗, 그 축복은 바로 지금 살아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의 일부분인 예수아가 다시 되돌아와 여러분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 씨앗이 꽃을 피우도록, 성장하도록 할 준비가 되었습니다.” 예전과 똑같은 복합적 예수아가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여러분은 자신을 신뢰할 준비가 되었나요?” 2,000년이 지나고 나서 그가 말합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되돌아 왔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깊이, 그리고, 절대적으로, 무조건적으로, 예외 없이, ‘그리고’나 ‘하지만’ 같은 핑계를 대지 않고 자신을 사랑할 준비가 되었나요?” 그가 돌아와서 말합니다, “여러분은 무슨 일이 일어나건 간에 여러분 자신만의 신성을 신뢰할 준비가 되었나요? 심지어 여러분이 실수를 했다고 생각할지라도, 그러한 생각들을 넘어가, 그러한 신뢰의 자리에 거할 수 있나요?

 

심지어 그것이 여러분을 두렵게 할지라도, 깊은 단계에서 여러분을 공포에 떨게 할지라도, 그것이 여러분의 모든 두려움들, 질병에 대한 두려움, 가난에 대한 두려움, 혼자 남는 것에 대한 두려움, 마지막이라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을 지라도, 여러분은 자신을 신뢰하는 상태에 거할 수 있나요?” 그리고 저는 그에 대해 사탕발림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오, 자신을 신뢰하세요. 그것은 아주 즐겁고, 재밌고, 행복하고, 따뜻한 햇살에 핀 무지개와 같을 거예요.” 아닙니다. 그것은 악마들, 그리고 용들과도 같습니다. 그것은 내면에서 여러분을 얼려버릴 두려움입니다. 여러분의 머리를 얼려버리고, 몸을 열려버릴 것입니다. 추위 속에서 얼어버리는 것과 같죠. 여러분 자신을 깊이 절대적으로 신뢰한다는 것은 여러분의 뱃속이 빙빙 돌게 만들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압도할 것입니다 - 그 많은 생각들과 많은 질문들을 말이죠.

 

여러분 일부에게 있어, 어떤 점에서 그것은 여러분에게 남아 있는 전부입니다. 여러분은 몇 벌의 옷을 가지고 있고, 냉장고에는 싸구려 와인이 있지요. 하지만 그것이 여러분이 가진 전부입니다. 여러분의 은행 계좌는 줄어들고 있지요. 자동차는 내년에는 재대로 쓰지도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이러한 신뢰를 얻었습니다. 우리는 이번에는 예수 게임을 하지 말도록 합시다. 우리 이번에는 그가 도달한 마지막으로 향하지 맙시다. 왜냐하면 바로 그 신뢰가 모든 것을 변화시킬 것이기 때문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여러분은 심지어 그에 대해서 생각할 필요도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 후의 일에 대해서 어떤 것도 계획할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그것들을 가지고 작업을 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한 신뢰의 단계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IRS와 같은 것들, 외계인들 그리고 그러한 음모들에 대해서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이 그러한 깊고, 단순한, 신뢰의 기본적 단계로 들어가게 되면, 다른 어떤 것들도 여러분을 건들지 않습니다. 여러분에게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자 바로 이것이 여러분에게 이번에, 적어도 다음 30일 간에 혹은 다음 샤우드 전에 여러분에게 다시 일어나게 될 일입니다. 그러한 질문, “마지막이 어떻게 끝이 날까요?” 그리고 그 질문은 “내가 나 자신에게 신뢰의 단계로 갈 수 있도록 허용할 수 있을까?”입니다.

 

그리고 그 질문에 답하기 전에, 만약 여러분이 예스라고 말한다면, 여러분은 여러분 내면에서 확인을 할 경험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그 신뢰가 단지 정신적인 것이 아닌지, 여러분의 앎 안에서 거하는 것인지를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여러분은 그 모든 것들 위로 날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깊은 숨을 쉽시다. 나의 친애하는 친구들이여.

 

이 축제의 계절을 환호하고, 우리가 함께 하고 있는 동료들과 오늘 있을 웃음을, 예수아와 예수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었음을, 불경스러워질 수 있음을 기뻐하세요. 정말 불경스러웠죠. 유투브에 무슨 글이 달릴지 기대되는 군요.(웃음) 자, 요점으로 돌아와서, 무엇이 진짜 문제일까요.

 

무엇이 진짜, 진짜 문제일까요.

 

우리 깊고 좋은 호흡을 합시다.

그리고 그러한 앎이 있습니다, 언제나 무엇이 되었든, 얼마나 어렵든, 얼마나 놀라운 것이든, 창조계의 모든 것이 괜찮습니다.

 

그리고 참으로 그러합니다.

 

나는 기쁨으로 여러분께 봉사하는 아다무스 입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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