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세계
신앙...
참 묘한 말입니다.
Limit --> zero에 육박하는... 뾰족하기 이를데 없는 칼날위와 견줄만한...
그 날카로운 경계면위에 무난히 안착할 만한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런지...
道를 이룸에 신앙에 견줄만한 유용한 도구가 또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참신앙의 좌우 양쪽은 천길 낭떨어지 처럼 위태한 위험이.. 위험천만입니다.
그 한쪽은 참나(眞如)를 버리고 神에 무조건 의존함으로써 발생하는 기복신앙, 구복신앙화입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종교가 이처럼 나를 버림으로써 껍데가 나인 좀비인생화 되었습니다.
또 다른 신앙의 한쪽은 사칭해 들어오는 神을 분별치 못함으로서 생기는 사단입니다.
지금/여기의 단단한 현실기반으로의 출발이 생략되면.... 반듯이 이런 폐단이 발생합니다.
‘지금/여기’란 시간상/공간상/의식의 기준으로 ‘현재’를 말합니다. 의식 또한 매우 많은 ‘나’를 가지고 있습니다. 현재의 지금의식으로 출발치 아니하면... 현재의식이 튼튼한 마음의 중심이 되지 아니하면... 마장의 침범은 매우 용이해 집니다.
끊임없이 내/외부의 신적 존재들은 ‘나’를 시험해 들어오며, 근원의 존재를 '사칭‘합니다.
여러분은 이를 무슨 기준을 통해 ‘분별’할 것입니까?
이것이 확실하면...
신앙생활은 매우 간단하고 직접적인 교통수단을 제공합니다.
신앙의 어감은 이러한 많은 어려움을 내포하고 있기에... 현실생활과 일부 동떨어진 느낌을 줍니다.
‘섬김’은 무엇일까요?
이치와 도리와 질서를 강조합니다.
부모와 자식된 도리... 천지와 나와의 상관관계와 그 발생/운행의 이치... 우주만물의 자연스런 질서...
신앙은 종교와 현실생활이 다소 우리되어 있는 이중적 생활을 만들어 냅니다.
섬김은 이것이 하나로 융합된채 생활이 곧 신앙으로 연결케 합니다.
하느님을 신앙할 것인가? 섬길 것인가!
섬김의 울타리 안에는... 형제자매와 부모와 사회-나라-민족과 하늘의 신이 자연스런 질서내에 모두가 한울로 담깁니다. 경배의 특별한 장소와 시간이 분리되지 않은채... 생활속에서 완전한 뒤섞임을 통해 함께 구현됩니다.
이는 우리 한민족 조상님들이 생활을 통해 견지해온 ‘공부’의 방편이요, 道요, 종교요, 생활이었습니다.
기억을 되새겨 보십시오! 우리의 조상님들의 고결한 일상생활을...
그들은 가부좌를 틀고 일상속에서 조식호흡을 늘 생활화 했고, 글공부는 道에 대한 공부가 주류였으며, 문화/예술/학문/정치/경체 또한 이를 어찌 구현할 것인가에 대한 나눔과 펼침의 학문, 문화예술 이었습니다. 춤은 율려의 율동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음악 또한 오늘날 우리가 듣는 명상음악이 주류입니다. 무술은 술이 아닌 무도로 인체의 모든 경락에 충만히 쌓인 기운을 운기하는 동작들입니다. 먹는 음식은 모두 약재들에 버금가는 ‘선식’이었습니다.
정신생활의 기본은 ‘섬김’의 문화로 요약됩니다. 종교가 일상생활과 특별히 분리되어 따로 존재치 아니하였던 시기입니다.
‘섬김’의 문화는 오늘날 이 종말지향적 문화를 조화와 상생의 문화로 변모시킬 유일한 대안입니다.
참 묘한 말입니다.
Limit --> zero에 육박하는... 뾰족하기 이를데 없는 칼날위와 견줄만한...
그 날카로운 경계면위에 무난히 안착할 만한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런지...
道를 이룸에 신앙에 견줄만한 유용한 도구가 또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참신앙의 좌우 양쪽은 천길 낭떨어지 처럼 위태한 위험이.. 위험천만입니다.
그 한쪽은 참나(眞如)를 버리고 神에 무조건 의존함으로써 발생하는 기복신앙, 구복신앙화입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종교가 이처럼 나를 버림으로써 껍데가 나인 좀비인생화 되었습니다.
또 다른 신앙의 한쪽은 사칭해 들어오는 神을 분별치 못함으로서 생기는 사단입니다.
지금/여기의 단단한 현실기반으로의 출발이 생략되면.... 반듯이 이런 폐단이 발생합니다.
‘지금/여기’란 시간상/공간상/의식의 기준으로 ‘현재’를 말합니다. 의식 또한 매우 많은 ‘나’를 가지고 있습니다. 현재의 지금의식으로 출발치 아니하면... 현재의식이 튼튼한 마음의 중심이 되지 아니하면... 마장의 침범은 매우 용이해 집니다.
끊임없이 내/외부의 신적 존재들은 ‘나’를 시험해 들어오며, 근원의 존재를 '사칭‘합니다.
여러분은 이를 무슨 기준을 통해 ‘분별’할 것입니까?
이것이 확실하면...
신앙생활은 매우 간단하고 직접적인 교통수단을 제공합니다.
신앙의 어감은 이러한 많은 어려움을 내포하고 있기에... 현실생활과 일부 동떨어진 느낌을 줍니다.
‘섬김’은 무엇일까요?
이치와 도리와 질서를 강조합니다.
부모와 자식된 도리... 천지와 나와의 상관관계와 그 발생/운행의 이치... 우주만물의 자연스런 질서...
신앙은 종교와 현실생활이 다소 우리되어 있는 이중적 생활을 만들어 냅니다.
섬김은 이것이 하나로 융합된채 생활이 곧 신앙으로 연결케 합니다.
하느님을 신앙할 것인가? 섬길 것인가!
섬김의 울타리 안에는... 형제자매와 부모와 사회-나라-민족과 하늘의 신이 자연스런 질서내에 모두가 한울로 담깁니다. 경배의 특별한 장소와 시간이 분리되지 않은채... 생활속에서 완전한 뒤섞임을 통해 함께 구현됩니다.
이는 우리 한민족 조상님들이 생활을 통해 견지해온 ‘공부’의 방편이요, 道요, 종교요, 생활이었습니다.
기억을 되새겨 보십시오! 우리의 조상님들의 고결한 일상생활을...
그들은 가부좌를 틀고 일상속에서 조식호흡을 늘 생활화 했고, 글공부는 道에 대한 공부가 주류였으며, 문화/예술/학문/정치/경체 또한 이를 어찌 구현할 것인가에 대한 나눔과 펼침의 학문, 문화예술 이었습니다. 춤은 율려의 율동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음악 또한 오늘날 우리가 듣는 명상음악이 주류입니다. 무술은 술이 아닌 무도로 인체의 모든 경락에 충만히 쌓인 기운을 운기하는 동작들입니다. 먹는 음식은 모두 약재들에 버금가는 ‘선식’이었습니다.
정신생활의 기본은 ‘섬김’의 문화로 요약됩니다. 종교가 일상생활과 특별히 분리되어 따로 존재치 아니하였던 시기입니다.
‘섬김’의 문화는 오늘날 이 종말지향적 문화를 조화와 상생의 문화로 변모시킬 유일한 대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