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쇼 라즈니쉬의 비파싸나 명상법 관련 강의들 중에서 일부를 발췌해서 올려 드립니다.
원래의 가르침들을 가급적 순서대로 옮기려 했으나 분량이 너무 길어지는 관계로 일부 가르침은 중간중간 여기에 싣지 않은점 양해 바랍니다.

이 강의의 원본은 도서출판 황금꽃( www.goldenflower.co.kr )에서 나온 <오쇼 비파싸나 명상법> Tape 에 수록된 내용들 입니다.현재 절판된 걸로 알고 있읍니다만 비파싸나에 대한 오쇼의 가르침들이 대단히 명료하고 알기 쉽게 되어있어 여러분들에게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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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는 명상에 대한 완전히 새로운 시각을 가져왔다.붓다 이전에 명상은 하루 한번  혹은 두번, 아침에 한시간  저녁에 한시간을 해야 하는 어떤 것이었다.그것이 전부였다.

붓다는 명상의 모든 과정에 있어 완전히 새로운 해석을 주었다.붓다의 말은 아침에 한시간  저녁에 한시간을 행하는, 하루에 다섯번 혹은 네번을 하게 되는 그런 종류의 명상은 그다지 가치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명상은 단지 한시간 동안 혹은 15분 동안 생활과 분리되어 따로 할수있는 어떤 것이 아니다.명상은 그대의 삶과 같은 의미를 가진 그 어떤것이 되어야 한다.그것은 호흡과 같은 것이어야 한다. 그대는 아침에 한시간  저녁에 한시간만 호흡을 할수는 없다.그렇게 한다면 저녁은 결코 오지 않을 것이다.

명상은 호흡과 같은 것이어야 한다.그대가 잠자고 있을때 조차 호흡은 계속 된다.그대가 혼수상태에 빠진다 해도 호흡은 계속 된다.붓다는 명상이 이와 같이 지속적인 현상이 되어야 하며 그때에만 그대를 변형시킬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명상의 새로운 테크닉을 발전시켰다.세상에 대한 그의 가장 위대한 공헌중의 하나는 비파싸나이다.다른 어떤 스승도 세상에 그처럼 커다란 선물을 준 사람은 없다.

예수는 아름답다.마하비라도 아름답다.노자도 아름답다.짜라투스트라도 아름답다.그러나 그들의 공헌은 붓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비록 그들 모두를 합친다 해도 붓다의 공헌에 미치지 못한다.왜냐하면 그는 너무나 과학적인 방편을 주었기 때문이다.

단순하지만 너무나 깊이 스며들기 때문에 일단 그대가 그것과 조율이 되고 나면 그것은 그대의 삶의 지속적인 요소가 된다.그러면 그대는 그것을 할 필요가 없다.단지 처음에만 그것을 하면 된다.일단 그 요령을 터득한다면 그것은 항상 그대와 함께 남아 있다.그대는 그것을 할 필요가 없다.그때에는 그대가 무엇을 하고 있든 그것은 거기에 있다.그것은 그대의 삶의 배경이 된다.

그대가 걷고 있으나 명상적으로 걷는다.그대가 먹고 있으나 명상적으로 먹는다.그대가 자고 있으나 명상적으로 잔다.기억하라.명상가는 잠의 질에서 조차 명상하지 않는 사람의 그것과는 완전히 다르다.모든것이 달라진다.왜냐하면 모든 인식구조를 변화시키는 새로운 요인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비파싸나는 단순히 그대의 호흡을 보는것  지켜보는 것을 의미한다.그것은 요가의 호흡법 프라나야마와 같은것이 아니다.그것은 그대의 호흡을 깊은 호흡 또는 빠른 호흡과 같이 어떤 리듬으로 바꾸는 것이 아니다.전혀 그대의 호흡을 바꾸는 것이 아니다.호흡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단지 호흡이 그대안의 지속적인 현상이기 때문에 지켜보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는 것 뿐이다.

그대는 단지 지켜볼수 있을 뿐이다.그리고 그것은 가장 미묘한 현상이다.만약 그대가 호흡을 지켜볼수 있다면 그대의 사념들을 지켜보는 것이 쉬워질 것이다.


너무나도 위대한 붓다의 공헌의 하나는 호흡과 생각 사이의 관계를 발견한 것이었다.그는 호흡과 생각이 깊이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밝힌 인류역사상 첫번째 사람이었다.호흡은 생각의 육체적인 부분이며 생각은 호흡의 심리적인 부분이다.이들은 분리되어 있지 않다.같은 동전의 양면이다.

그는 하나의 단일체로서의 몸마음을 이야기한 첫번째 사람이었다.그는 처음으로 정신 신체적 현상으로서의 인간에 대해 말한다.그는 몸과 마음에 대해서 말하지 않고 몸마음에 대해 말한다.이들은 둘이 아니다.이들을 이어줄 접속사 '~과'는 필요가 없다.이들은 이미 하나이다.몸마음이다.아무 연결부호도 필요없다.몸마음은 하나의 현상이다.그리고 각 육체의 작용은 그대의 심리 안에서도 대응하는 부분이 있으며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그대는 그것을 지켜볼수 있다.하나의 실험을 해볼수 있다.잠시 그대의 호흡을 멈춰보라.그러면 놀랄것이다.그대의 호흡을 멈추는 순간 그대의 생각도 멈춘다.또는 그대는 또다른 것을 지켜볼수 있다.그대의 생각이 매우 빠르게 지나갈때 그대의 호흡도 변한다.예를 들어 만약 그대가 성적인 욕구로 가득차 생각이 너무 달아 오르면 호흡은 달라질 것이다.그대의 호흡은 규칙적이지 않고 그 리듬을 잃게 될 것이다.그것은 더욱 혼돈스럽고 불규칙해질 것이다. 화가 났을때 그대의 호흡은 변한다.그대의 생각이 변했기 때문이다.사랑하고 있을때 그대의 호흡이 변한다.그대의 생각이 변했기 때문이다.

그대가 평화롭고 편안하고 이완되어 있을때 그대의 호흡은 다르다.그대가 불안하고 걱정스럽고 혼란과 번민에 있을 때에도 그대의 호흡은 달라진다.단지 호흡을 지켜보는 것 만으로 그대의 마음이 어떤 상태에 있는지 알수 있다.



명상가들은 마음이 정말로 완전히 멈출때 호흡 또한 멈추는 지점에 도달하게 된다.그리고 그때 커다란 공포가 일어난다. 두려워 하지 말라.

많은 명상가들이 나에게 말한다. "우리들은 매우 무섭고 두렵습니다.왜냐하면 우리는 호흡이 멈췄다는 것을 갑자기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사람들은 호흡이 멈췄을때 죽음이 가깝다고 생각한다.호흡은 단지 그대가 죽을때 멈추기 때문이다.호흡은 죽음 속에서 멈추며 또한 깊은 명상 속에서도 멈춘다.따라서 깊은 명상과 죽음은 한가지 같은 점이 있다.양쪽 모두에서 호흡이 멈춘다.

그러므로 명상을 하는 사람은 죽음 또한 알게 된다.그것이 바로 명상가가 죽음의 공포로 부터 자유로와지는 이유이다.호흡은 멈춰질수 있으며 그래도 여전히 자신은 존재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호흡은 삶이 아니다.삶은 훠씬 더 커다란 현상이다.호흡은 단지 육체와의 연결점이다.연결은 끊어질수 있다.그러나 그 때문에 삶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삶은 여전히 거기에 있다.단지 호흡이 사라진다고 해서 삶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붓다는 말한다.그대의 호흡을 지켜보라.호흡을 있는 그대로 정상적으로 내버려 두고 조용히 앉아 그대의 호흡을 지켜보라.그대는 호흡을 깊게 할 필요가 없다.호흡을 바꿀 필요도 없다.있는 그대로 단지 바라보라.그러면 한가지 사실에 놀라게 될것이다.

그대가 바라보기 시작하는 순간 호흡은 변한다.바라본다는 사실이 이미 변화이기 때문이다.호흡은 더이상 같지 않다.그대 의식의 미세한 변화도 그대 호흡에 즉시 영향을 미친다.그대는 그것을 알수 있을 것이다.그대가 지켜볼 때면 언제나 그대의 호흡이 깊어진 것을 알게될 것이다.저절로 그렇게 된다면 그것은 좋다.그러나 의도적으로 그렇게 하지는 말라.


호흡을 지켜보면서 그대는 호흡이 고요해지고 잠잠해 짐에 따라 마음도 또한 고요해지고 잠잠해진다는 사실에 서서히 놀라게 될것이다.그리고 호흡을 지켜보는 것은 그대가 마음 또한 지켜볼수 있게 해줄 것이다.이것이 바로 시작이다.그것이 명상의 첫번째 부분이며 육체적인 부분이다.그리고 두번째 부분은 심리적인 부분이다.이제 그대는 마음속의 더 미묘한 것들을 지켜볼수 있을 것이다.사념들,욕망들,기억들을..

그리고 그대가 지켜봄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감에 따라 기적이 일어나기 시작한다.그대가 주의 깊어짐에 따라 마음은 점점 덜 혼잡해지며 더욱더 조용해지고 고요해진다. 더 많은 침묵의 공간과 더많은 틈과 간격들이 일어난다.그대가 단 하나의 사념도 만나지 못하는 순간들이 지나간다.서서히 그 순간은 몇분이 되고 몇시간이 되어간다.

그리고 거기에는 어떤 계산법이 있다.만약 그대가 48분간 절대적으로 비어있을수 있다면 바로 그날 그대는 깨달을 것이다.바로 그 순간 깨달을 것이다.그러나 이것은 노력의 문제가 아니다.그러니 자꾸 시계를 보지 말라.그대가 시계를 볼때마다 사념들이 들어오기 때문이다.그대는 다시 처음부터 시간을 재야할 것이다.원점으로 되돌아간 것이다.그대가 시계를 볼 필요는 없다.

그러나 이것은 동양의 모든 위대한 명상가들이 경험한 것이었다.그 48분은 궁극적인 시점인듯 하다.이만큼의 틈이 가능하다면 이 간격동안 생각이 멈추고 마음에 아무런 사념도 일어나지 않은 채 깨어있을수 있다면 그대는 신을 내면으로 받아들일수 있다.그대는 주인이 된다.그리고 손님은 즉시 찾아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