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글은 무묘앙 에오의 저서 <반역의 우주>에 있는 내용중 일부입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무묘앙 에오를 깨달은 붓다로 생각하지만 사람마다 생각이 다 다를 것이므로 이 내용들을 받아들이고 안 받아들이고는 여러분 각자의 판단에 맡기겠읍니다.

여기서 나오는 <해탈해서 사라진다> 또는 <무(無)의 영역>은 어떤 의식도 없이 영원히 죽어버린다는 뜻이 아니고,우주를 초월해서 무한한 순수 의식으로 존재(존재 또는 비존재라는 언어로는 표현 할수 없는 상태) 한다는 뜻이라 합니다.오해 없으시기 바랍니다.

여기서 말하는 무(無)의 영역은 아무것도 없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무한하며 영원한 우리의 근본인 불성(佛性),본성(本性),도(道),... 를 말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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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존재 방법이 좋다 나쁘다고 시비하는 도덕은,그것이 어디서 주워들은 것이든 생물과 인간을 계속 움직이게 하기 위한 <구실>에 지나지 않는다.

또 우주가 결코 평화적인 곳이 아니라는 건 극히 당연한 상식이다.진화가 정체되면,일부러 전쟁을 기획하는 부분이 꼭 나타나기 마련이다.

그러나 전쟁을 나쁘게 말하는 곳은 지구같이 하급 두뇌를 가진 생물이 사는 별뿐이다.죽는 당사자가 피를 흘리고 가족이 흩어지고 아픔이 따르기 대문에 전쟁을 악이라고 정의하지만,우주에는 그런 고통없이 전쟁을 치르는 민족도 존재하며,어떤 경우에는 필요에 의해 살아 있는 것들을 대량으로 처분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경우도 있다.

우주에서 살상과 전쟁은 필연적이어서 작황이 안 좋은 곡식을 처분하듯,은하계 자체도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처분된다.이는 마치 인간의 산업과 아주 똑같다.피해 당사자가 느끼는 고통은 가해자(처리자)에게는 전혀 상관 없다.당신들 인간이 해충을 구제하려고 농약을 뿌릴때,피해자인 해충과 처리하는 입장인 당신들 간에 <서로의 입장과 감각이 전혀 다른 것>이 세상의 상식이듯 말이다.

상위의 차원자들은,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당신들 인간이 미생물을 죽이거나 또는 멋대로 조작하는 것과 마찬가지 방식으로 인간을 대한다.나아가 애초 인간의 존재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우리들을 처리하는 경우도 많다.마치 당신들이 육안으론 미생물을 보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처음부터 인간이라는 존재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인간의 혼을 짓밟는 일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좋고 나쁘고의 문제가 아니라 단순한 사고(事故)일 뿐이다.생명의 존엄 운운하며 인간이 멋대로 지어낸 환상은 차원의 단위가 조금만 빗나가도 우주에서는 통용되지 못한다.여기서의 논리가 상위 차원에서 통하지 않는 것이다.또한 상위 차원에서 당연시되는 원칙은 인간의 감정으로선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예를 들어 우주에는 <인간이 무슨 고통을 받든 군소리 말라>는 원칙이 있다.인간이 고통을 느끼거나,병이 나는 불가피한 이유는,인간은 원래 그렇게 설계된 존재이기 때문이다.이는 적당한 고통과 쾌락이 주어지지 않으면,인간의 의식이 계속 움직여주지 않기 때문이다.이를 <당근과 채찍 방식>이라 부른다.

게다가 이는 인간뿐만이 아니며,그 기본 구조는 <음식(飮食)의 구조>다.우리들은 항상 먹지 않으면 죽게끔 만들어졌다.우리들은 매일 연료가 되는 물질을 입으로 집어넣어 아래로 배설한다.이것조차 우리로선 그만둘 수 없게끔 되어 있다.가령 신선처럼 이슬을 먹고 산다 해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신선 역시 이슬을 먹지 않으면 살아가지 못하는 점에서 우리와 다를 바 없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도 살아가는 생명체는 무수히 많다.하지만 그런 그들 역시 파동이나 사고(思考)를 먹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이것이 <폐허의 붓다>에서 언급한 <차원 간의 먹이 사슬>이다.그러면 그것을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어떤 고차원의 생명체라 해도 결정핵과 같은 것을 갖고 있다.그 결정 축의 자장(磁場)은 에너지의 신진 대사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붕괴된다.자장의 에너지 공급원은 빛과 파동,정보 등인데,모든 생명체는 이렇게 차원의 높고 낮음에 상관없이 무언가를 계속 먹기 위한 움직임을 예외 없이 계속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떤 차원이라 해도 <음식의 필요성> 때문에 고(苦)가 발생된다.그 무엇도 자기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 계속 움직이지 않을 수 없는 고(苦)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중략)


해탈이란 모든 세계의 존재로부터 <빠져 나온 것이다>.

그것은 우주로부터의 <퇴학>이다.

궁극의 해탈,니르바나,사마디라는 그럴듯한 명칭 때문에 당신들은 그것이 마치 <대단한 것>처럼 생각하지만,에오이즘에선 그 동안의 책을 통해서 분명히 말했다.윤회를 빠져 나가는 것은 <위법 행위>라고.

위법 행위이기 때문에 어지간한 것으로는 안 된다.애당초 유기체는 해탈할 수 없게끔 만들어져 있으며,정신체를 만드는 파동 소재 또한 애초부터 그 어디에도 해탈의 명령은 프로그램되어 있지 않다.

또,석가는 최초로 해탈이란 아트만과는 다르다고 강조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아트만을 탐구하던 자들은 석가 이전에도 무수하게 있었다.석가가 말하는 해탈이란 진아 탐구의 문제가 아닌 것은 당연하다.적어도 석가가 말하는 해탈이란 진아의 실현을 뜻하지 않았다.석가가 진아를 부정하는 것은 이른바 원시 불교의 <탁상공론자들>이 지식으로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세간에서 말하는 명상은,진아를 목표로 하니 자기를 찾니 어쩌니 하지만 석가는 처음부터 <그런 진아는 없다>고 부정하고 있다.석가 이전의 종교는 절대 부동의 영원한 것을 인간의 내부에서 찾고자 했지만,석가는 한마디로 <그런 것은 없다>고 말했다.가령 그것이 있을 수 있다면,절대 무(無) = 비재(非在)라고 언급했을 뿐이다.

이것 = <비재성(非在性)의 영역>에 대해서는 인도의 라즈니쉬도 아주 드물게 말한 적이 있었다.그러나 제자들의 경지가 너무나 뒤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궁극적인 내용의 설법까지는 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드물게 그는 이 <비재성(非在性)>을 언급하곤 했다.

그는 말한다."제6신체에서 무언가가 계속해서 일어나는 한,그것은 존재다.하지만 제6신체에서 제7신체로 들어가는 것은 궁극적인 죽음이다.거기서는 더 이상 아무것도 말할 것이 없다."

........(중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