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이 살고 있는 사회에서는 자신의 몸과 친숙해진다는 것이 분명하지가 않습니다. 사랑하고 존중해줄 가치가 있는 존재처럼, 자신의 몸에게 말을 한다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몸이 어떻게 보여야 하며, 신체단련과 건강의 의미가 무엇인지, 그리고 무엇을 먹고 마셔야 하며, 무엇을 먹고 마시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해, 사회에서 말하는 많은 이상적인 이미지들을 여러분은 지니고 있습니다.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에 대해서도, 온갖 종류의 원칙들과 기준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이상적인 그림들은 영혼의 가야 하는 길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들입니다. 영혼의 길은 대단히 개인적인 것입니다. 따라서 몸으로 겪고 있는 질병, 질환 그리고 괴로움에 대한 진실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아주 친숙한 방법으로 자기 자신에게 파장을 맞추고, 이러한 일반적이고, 대개는 인위적인 모든 기준과 원칙들을 버릴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외적인 모든 기준을 버리고, 내면 깊숙이 존재하고 있는 자신의 진실을 찾으라고 요구받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여러분에게는 커다란 도전과제입니다. 왜냐하면 질병에 걸렸을 때, 여러분을 사로잡는 두려움과 공포로 인해, 외부에 존재하는 권위 있는 사람을 아주 신속하게 찾게 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외부의 권위 있는 사람에게 조언과 위안을 얻으려고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사람이 의사나 대체의학의 전문가가 될 수도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큰 차이는 없습니다. 문제는 여러분이 책임을 지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으로 인해 그러한 책임을 다른 누군가에게 부분적으로 떠넘기려고 하는 성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전문가의 조언을 듣는 것에 물론 잘못된 것은 없으며, 대개는 분별 있는 행위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지식을 언제나 자신의 내면에서 얻고, 그것을 자신의 가슴속에서 평가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조언이 자신의 마음에 와 닿는 것인지, 아닌지도 느껴보기 바랍니다. 오로지 여러분만이 자신의 삶을 창조하는 참된 창조자이며, 자기 몸의 주인입니다. 오로지 여러분만이 자신의 몸에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는 것입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여러분은 자기 몸의 창조자인 것입니다.


부분적으로, 질병은 여러분의 의식이 미치지 못하는 정체된 감정을 나타내는 것이므로, 질병이나 증상이 무엇을 표현하고 있는지를 알기가 항상 쉬운 것만은 아닙니다. 때로는 특정한 질병을 통해, 영혼이 여러분에게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가 대단히 어려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어떠한 종류의 에너지가 자기 자신을 질병으로 표현하고 있는지 그리고 여러분에게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를 점차적으로 알아가게 된다는 의미에서, 이 시점에서 내면으로 들어가, 자기 자신을 철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자신의 몸과 친근감을 되찾기 위해서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훈련은 분명하게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쉽게 포기하지는 마세요. 만성적인 질환들을 다룰 때, 그러한 질환들을 한 번 더 조사해보세요. 잠시 긴장을 풀고, 중립적인 의식으로, 질병으로 자기 자신을 표현하고 있는 부위로 가보세요. 고통과 질병에게,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살아 있는 존재의 모습을 취하라고 요청하세요. 질병에게 동물, 아이 혹은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라고 요청하세요. 아니면, 어떤 모습이든지, 가이드로 나타나달라고 요청해 보세요. 여러분이 지니고 있는 상상력을 이용하세요! 상상력은 가장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영혼의 움직임을 찾아낼 수 있는 소중한 도구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리고 몸이 이미지나 느낌으로 응답한다는 것을 알게 될 때, 기쁨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친근감을 되찾게 됨으로써, 행복감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몸이 여러분에게 말을 걸어옴으로써, 의사소통자로서의 역할을 되찾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획기적인 일입니다. 내면으로부터 몸을 알 수가 있으며, 자기 자신을 위해 여러분이 이러한 일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자마자, 여러분은 더 큰 자신감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자신감으로 인해, 질병이 여러분에 하고 싶어 하는 말을 보다 더 쉽게 느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내면의 자아로부터 받게 되는 해답들을 무시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해답들은 바깥세상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일반적인 개념들과는 맞지가 않기 때문입니다. 몸과의 친근감은 모든 상황에서 아주 소중한 것이지만, 몸이 아프고, 병이 들었을 때, 특히 대단히 소중하게 되는 것입니다.


몸이 말을 하도록 하는 방식은 사랑입니다. 치유의 확언들과 시각화를 열심히 되풀이함으로써 질병을 없애려고 한다면, 몸과의 의사소통은 촉진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여전히 투쟁하거나, 저항하는 형태입니다. 문제는 몸이 병이 들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를 이해하는데 있습니다. 그 원인을 이해하게 되면, 모든 것들이 변형될 것이며, 감정적인 장애들도 제거될 것입니다. 어떻게든 질병과 싸우지 않고, 질병을 올바른 방향을 가르쳐주는 친구로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치유의 과정이 작용하게 되는 것입니다. 질병은 여러분을 놀라게 하고, 고통스럽게 만들기 때문에, 이것을 이해하기 쉽지가 않은 것입니다. 하지만 질병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것이 참된 치유의 유일한 방법입니다. 질병은 집으로 여러분을 다시 데려다주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만성질환과 불치병


질병이 생기게 되는 이유는 여러분이 자기 자신을 더 잘 그리고 더 깊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이 점을 잘 이해하고, 내적인 치유 과정을 따라간다면, 그 결과로서 육체는 대개 회복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항상 이런 식으로 작용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떠한 질병들은 숨어 있는 감정적인 장애의 뿌리까지 여러분이 내려갔다고 여겨질 때까지도, 사라지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만성질환의 경우입니다. 


만성질환의 경우에는 육체적인 문제들이 계속해서 재발하게 됩니다. 특히, 자신의 내적인 자아와 거의 접촉할 수 없게 되는 취약한 시기에 증상이 재발하게 되며, 때로는 증상이 심해지기도 합니다. 이로 인해, 의기소침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넓은 시각에서 질병을 자세히 살펴보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은 아주 고된 일을 해야 합니다. 영혼의 차원에서, 이들은 질병과 관련하여 나타나는 두려움과 대면하고, 누군가는 삶에서 꼭 완수해야 하는 이상적인 그림과 대면하겠다고 동의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힘이 드는 과제를 받아들였다는 것은 커다란 용기를 지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대개 영혼은 특정한 주제를 집중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만성질환을 선택하게 됩니다. 질병으로 인해, 매번 특정한 감정의 상태로 되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질병에는 감정적인 패턴들이  수반됩니다.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이러한 감정들을 다루어야 하는 것은 대단히 힘이 드는 일이지만, 영혼은 많은 결실을 얻게 됩니다.


대개 이러한 삶 속에는 언제나 다른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대단히 심오하고, 내적인 풍요로움이 들어 있습니다. 따라서 질병을 지속적으로 호전시키려고 하거나, 희망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사실은 대개 질병은 나선형의 운동을 지속하게 되며, 육체적으로는 분명히 매번 동일한 증상이 재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적인 차원에서는 위를 향해 원을 그리면서 성장하도록 돕고 있는 것입니다. 영적인 차원에서 보면, 뒤로 물러나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 심지어 이전의 생들에서 여러분이 간과해왔던 감정들을 다루는데 있어, 이전보다 더 깊은 곳에 도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또한 유전적이고, 선천적인 신체의 결함에도 적용이 되는 것입니다. 이 점에 있어, 때때로 여러분은 카르마에 대해 언급하지만, 카르마를 범죄 및 처벌과 결부시키는 성향이 있기 때문에, 나는 이 카르마라는 개념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 조심스러워하고 있습니다. 카르마는 그런 식으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영혼은 자기 자신에 대해 최대한으로 알고자 하며, 자유로워지고 싶어 하는 진지한 열망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것이 영혼이 지니고 있는 가장 깊은 열망입니다. 이러한 진지한 소망으로부터 시작하여, 영혼은 그러한 소망을 이루는데 도움이 되는, 크고 작은 질병들 그리고 신체적인 결함들을 이따금씩 지니게 되는 것입니다.


확실하게 말해, 이것은 빚을 갚은 문제가 아닙니다. 자신의 신체 내에서 극도로 어려운 상황을 체험하는 것은 자유로워지고 싶어 하는 깊은 의지의 표현이며, 때로는 자유롭게 되는 최선의 방법이 되기도 합니다. 얼마나 기능을 잘 하고, 유용하며, 아름답고, 성공적인 것인가 하는 것에 있어, 특히 인간적이지 못한 이상적인 이미지들이 귀하게 여겨지는 사회에서, 이러한 의지를 지닌다는 것에 대해 우리는 커다란 존경심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비현실적인 이상적인 개념들로 인해, 핸디캡 지니고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 더 힘들어지게 되는 것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체험을 한다는 것은 의미 있는 것일 뿐만 아니라, 기쁜 일이라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치유가 불가능한 불치병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질병에서 살아남는다는 것이 분명히 불가능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질병에게 서서히 몸이 무릎을 꿇게 되는 것입니다. “세속적인 틀(몸)”은 계속 존속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마지막의 순간에, 몸속에서 영혼이 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이 무엇일까요? 질병에 계속 저항하는 한, 자신의 영혼 및 이제 작별을 고해야 할 때라는 것을 알려줄 내적인 앎과도 여러분은 접촉을 할 수 없게 됩니다. 때로는 떠나야 한다는 것을 미리 인지할 수도 있지만, 슬픔과 공포에 질려 계속 싸워야 한다는 생각이 엄습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또 다른 치료를 받거나, 새로 출시된 신약을 기다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충분히 이해할만하며, 이러한 태도에 대해 비난하고 싶지는 않지만, 여러분은 끔찍한 방법으로 자기 자신을 해치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모든 것을 내려놓고, 죽음이 가까이 다가올 수 있도록 허용한다면, 죽음이 적이 아니라 친구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죽음은 투쟁에서 해방시켜주는 것입니다.


죽음이 여러분에게 말하고 싶어 하는 것을 따라간다면, 죽는 과정이 실제로 일어나기 전에, 여러분은 몇 개의 단계들을 거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단계들은 모든 세속적인 것들, 즉 사랑하는 사람들, 세속적인 환경들, 주위의 모든 것들을 살펴보고 있는 의식으로부터 점차적으로 해방되는 것과 관계가 있습니다. 이것은 아름답고, 자연스러운 과정입니다.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삶을 고수하려는 전투적인 마음자세로 인해, 이러한 과정이 빛을 잃게 되는 것은 안타깝기 그지없는 일입니다. 대개 그 무렵이 되면, 몸은 이미 다 망가져서, 더 이상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 무의미해지게 됩니다. 그냥 놔두세요. 죽음은 여러분을 돕기 위해 그곳에 존재하는 해방자입니다. 죽음은 여러분의 적이 아닙니다. 죽음이 여러분에게 새 생명을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불치의 병을 앓고 있는 누군가와 같이 있을 때, 그리고 그 사람이 자기 자신이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 때, 부드럽고, 조심스럽게 죽음에 대해 이야기해보세요. 숨이 넘어가고 있는 사람에게는 이것이 위안이 됩니다. 죽어가고 있는 사람을 위해 여러분이 할 수 있는 가장 사랑스럽고, 소중한 것은 그 사람들 옆에 앉아, 그들의 손을 잡아주는 것입니다. 죽어가는 사람과 함께 하면서, 여러분이 알아야 하거나, 할 수 있는 것은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여러분이 사는 사회에는 “임종의 간호(terminal care)”가 대단히 중요합니다. 여러분들 모두는 가족이나 친구 관계에서 이러한 임종과 언젠가는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그냥 죽어가는 사람과 함께 있으면서, 끝나가고 있는 여정을 느껴보세요. 영혼이 육체를 떠나, 다른 세계, 즉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는 위대하고도, 강렬한 순간을 느껴보세요. 


죽음으로 이어지는 질병을 결국에는 지게 되고 말 적이라고 여기지 마세요. 이것은 전투가 아닙니다. 흔히 죽음은 여러분을 더 심한 고통과 불행으로부터 벗어나도록 해주기 위해 찾아오게 됩니다. 여러분은 분명히 패자가 아닙니다. 여러분은 단지 또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길을 계속해서 가게 될 것입니다.  


이번의 삶을 살아가는 동안에, 때로는 겪어 보고 싶어 했거나, 극복하고 싶어 했지만, 끝마칠 수 없었던 특별한 주제들이 남아 있을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여러분뿐만 아니라, 남겨진 사람들에게 고통을 줄 수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러분이 평화롭게 떠나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더 심오한 지혜가 작용하고 있으므로, 이 지혜가 여러분을 인도하고, 여러분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새롭고, 더 좋은 환경으로 데려다줄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언젠가는 또다시 함께 하게 될 것이며, 삶을 축복하게 될 것입니다.  


질병과 관련하여, 오늘 가장 간청하고 싶은 것은 자신의 질병을 정말로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사랑과 자각으로 질병을 에워싸고, 질병이 여러분을 자신에 대한 더 깊은 이해로 인도하도록 하세요. 질병에게 자기 자신을 내맡기고, 자기 자신과 더 깊은 대화를 시도해보세요. 내맡긴다는 것이 수동적이거나, 자기의 질병에 대해 괴로워한다는 말이 아니라, 친구처럼, 적극적인 방식으로 질병과 서로 협력한다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나는 오늘 여러분 모두를 내 사랑으로 포옹하며, 부디 내 존재, 즉 그리스도 에너지의 현존을 느껴보기 바랍니다. 아플 때나, 건강할 때에도 여러분 모두가 이용할 수 있는 사랑을 느껴보세요. 여러분 주위의 모든 곳에 많은 사랑이 존재하며, 판단을 버리는 순간, 여러분은 그 사랑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해야 하는 것과 할 가치가 없다는 것에 대해, 그리고 옳은 일과 옳지 않은 일에 대해, 그리고 해야만 하고, 성취해야 하는 것에 대해, 여러분은 너무 많은 판단을 하고 있습니다. 그냥 내버려 두세요. 여러분들 모두를 위해 지금 여기에, 사랑이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출처] 질병과 건강 (2/2) |작성자 목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