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의 우상 : 하나님이 여러분보다 더 권위 있는 인물이라는 우상

 

첫 번째의 거짓된 신은 하나님 자체이며, 하나님을 창조의 주(主)요, 마스터로 여기는 것입니다. 이러한 형태의 하나님은 하나님을 인간적으로 해석하는 것으로, 여러분의 문화에 깊은 영향을 끼쳐온 하나님에 대한 이미지입니다.


여러분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한 이러한 전통적인 이미지를 버렸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학교의 선생님처럼 높은 곳에 서서, 성공과 실패에 대해 모든 것을 기록하며, 심판하고 벌하는 하나님을 여러분은 더 이상 믿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여러분을 용서하고, 소중히 여기며, 용기를 북돋아주는 사랑의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대개 여러분은 경직되고 사랑하지 않는 방식으로 자기 자신을 대하고 있으며, 또한 이런 하나님에 대한 오래된 이미지도 여전히 생생하게 살아 있습니다!

관계 분야에서든, 직장 속에서든, 아니면 영적인 분야에서든, 자신이 실패했다고, 자신이 옳지 않다고, 그리고 더 잘했어야 했다고 스스로에게 자주 말하지 마세요. 다음과 같은 생각으로 인해, 여러분은 스스로 괴로워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기대에 따라 살지 못하고 있으며, 내 영적인 가이드나, 상위자아를 실망시키고 있어.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사명도 이루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세상에 의미 있는 기여도 하지 못하고 있어.”


여러분들 중에는, 말하자면, 따라야 하거나, 복종해야 하는 상위의 지시가 존재한다고 은연중에 믿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을 위해 계획되어 있는 것이 “영혼의 사명”이든, 아니면 “삶의 길”이든, 여러분에게 줄 과제를 가지고 있는 영적인 하이에라키 혹은 해야 할 일과 가야 할 곳 등을 여러분에게 이야기해주는 영적인 가이드 등등, 여러분은 이러한 것들 속에서 상위의 권위 있는 인물, 즉 자신보다 높으며, 여러분이 귀를 기울여야 하는 영적인 단계가 존재한다고 믿고 있는 것입니다.

삶에서 해야 할 일에 대해 지침을 제공해줄 수 있는 권위 있는 인물이 외부에 존재한다고 믿는 순간, 여러분은 전통적인 하나님에게로 돌아가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개념에 따르면, 진리의 단계에서는 모든 것들이 고정되어 있으며, 결정되어 있으므로, 여러분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거기에 맞춰 살아가느냐, 아니냐 하는 것뿐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잘못된 관념입니다. 


확실한 것은 여러분이 태어날 때, 앞으로의 생에 대해 여러 가지 의도들을 영혼 속에 지니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이번의 생에서 여러분이 지니게 되는 고차원적인 목적이라고 부를 수도 있지만, 이러한 목적이 외부의 어떤 것에 의해 정해지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러한 목적을 선택하는 존재는 바로 여러분이며, 그러한 목적은 여러분이 지니고 있는 욕구 및 소망으로부터 생겨나는 것입니다. 삶에서 “예정되어 있는” 것들은, - 어떤 것도 사전에 완벽하게 정해지는 것은 아니며, 단지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에서 - 여러분이 창조하고, 선택한 것들입니다.

자신의 느낌, 즉 가슴의 소리에 귀를 기울임으로써, 그리고 가장 깊은 곳에 지니고 있는 열망에 귀를 기울임으로써, 여러분은 언제든지 자신의 삶의 목적 혹은 고차원적인 영감(靈感)과 교감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삶을 살아야 한다는 영적인 교리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지 않기를 바랍니다. 특히 여러분의 하위 부분이라 일컫는 것, 즉 일상의 생활 속에서 나타내는 강력한 감정들에 귀를 기울이기 바랍니다. 영혼은 이러한 감정들을 통해 여러분에게 다가가려고 하며, 뭔가를 말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만약 영혼이 지금 여러분에게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것을 알고자 한다면, 삶에서 자주 반복해서 일어나며, 여러분의 관심을 가장 많이 끌어당기는 감정들을 살펴보세요. 사랑스럽지만 솔직한 방법으로, 그러한 감정들을 살펴보세요. 자신의 감정들에 대해, 다른 누군가를 원망해서는 안 되며, 외부의 원인에 관심을 기울여서도 안 됩니다. 여러분이 선택한 결과로 인해, 그러한 감정들이 일어났다고 여기기 바랍니다.

예를 들어, 종종 화가 나고, 짜증이 난다면, 그러한 감정들이 어디에서 오는 걸까요? 여러분에게 부족한 것이 있나요? 화가 여러분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이 속에 숨겨져 있는 메시지가 무엇일까요? 그것이 타인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거나, 평가받지 못한다는 의미일까요? 타인들에게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보여주는 것, 즉 자신의 진실을 나타내는 것이 두려운가요? 종종 자신의 참된 느낌을 숨기고, 자신의 한계를 분명하게 말하기 어려운가요?

진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 즉 있는 그대로의 여러분이 되고, 영혼이 지니고 있는 최초의 에너지를 세상에 보여주고 싶어 하는 열망은 대개 화를 통해 여러분에게 외치게 되는 것입니다. 영혼이 지니고 있는 열망을 화를 통해 인식하게 된다면, 여러분은 내면의 아이를 통해 자신의 천사적인 자아가 반짝이있는 것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내면에 존재하는 천사는 상위의 자아로서, 물질세계와 연결되어, 화현하여, 자신이 지니고 있는 빛을 지구의 현실에 비추고 싶어 합니다. 이것은 앎의 부분(knowing part)입니다.

내면의 아이는 삶 자체에 대한 열정으로서, 열망이고, 감정이며, 창조력입니다. 이것은 체험의 부분(experiencing part)입니다. 내면의 아이는 여러분의 하위의 자아입니다.

만약 내면의 아이가 내면에 존재하는 천사와 조화를 이루어서 살아가게 된다면, 이 아이는 기쁨과 창조력의 근원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내면의 아이가 천상의 보살핌에서 벗어나, 떠돌게 된다면, 내면의 아이는 제멋대로 날뛰는 감정의 근원이 될 것입니다. 따라서 분노는 증오와 복수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두려움은 방어, 노이로제 그리고 좌절로 왜곡될 것입니다. 슬픔은 우울 및 비통함으로 더욱 악화될 것입니다. 최초의 감정들은 신호들(pointers)로서, 여러분의 체험의 부분에서 나오는 메시지들입니다.


이러한 감정을 통해, 내면의 천사에게 손길을 내미는 것은 바로 아이입니다. 감정들은 순수하고, 알지 못하는 체험을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감정들은 오해의 표현입니다. 감정이 천사와 연결될 때, 그 감정은 신호(pointer)로 여겨지고, 이해될 수 있습니다. 이것처럼, 감정은 변형과 탐구를 하기 위한 도구가 됩니다. 다시 말해, “하위의 자아”는 앎의 부분에게 느꼈던 내용을 제공해줌으로써, 상위 자아의 기능을 향상시키며, 상위 자아를 충족시켜주게 되는 것입니다.

내면에 존재하는 천사가 아이를 깨우치게 할 수 있다면, 천사는 활기를 띠게 되고, 깊은 희열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만약 상위 자아가 이런 식으로 빛을 비추게 된다면, 여러분의 감정체는 평정을 되찾고, 균형을 회복하게 될 것입니다. 천사와 아이가 함께 흐름으로써, 얻게 되는 결실(열매)는 직관, 즉 내적인 앎으로, 빛과 수월함으로 여러분의 삶을 가득 채우게 될 것입니다.


내면에 존재하는 상위 및 하위의 요소들, 즉 천사 및 아이가 유기적이고, 의미 있는 완전체가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상위”와 “하위”라는 개념은 정말로 옳지 않은 것입니다. 그것은 “앎”과 “체험”이 서로 흥겹게 어울리는 것과 관련된 것입니다. 이러한 상호작용을 통해, 참된 지혜가 구현되는(이론적인 것과는 반대로) 것입니다.


현시점에서, 자신의 삶에 대한 안내를 받기 위해, 최선을 다해 내면의 아이에게 말을 걸 수가 있습니다. 아이가 필요로 하는 관심을 기울임으로써, 여러분이 지니고 있는 높은 의식, 즉 천사의 손길을 내면의 아이에게 아낌없이 주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위에서 분노와 조급함에 대해 이야기했던 사례로 돌아가 봅시다. 여러분이 이러한 감정과 연결되고, 이러한 감정을 아이라고 인식하게 된다면, 아이가 여러분에게 다가오도록 유도할 수가 있습니다.

아이에게 무엇 때문에 화가 나 있는지, 그리고 치유하는데 무엇이 필요한지를 물어볼 수가 있습니다. 아이가 여러분에게 답하게 하고, 아이가 자기 자신을 아주 명확하게 표현할 수 있게 해주세요. 아이가 얼굴의 표정과 몸짓으로 분명한 의사를 표현하며, 여러분에게 생생하게 말하고 있는 장면을 연상해 보세요. 이것을 통해, 아이는 아마 “네가 직장을 그만두면 좋겠어!” 혹은 “나는 댄스 교습을 받고 싶어.”, 혹은 “나는 놀면서, 더 많은 휴식이 필요해.”와 같이 특정한 답을 제시할 수도 있으며, “내가 항상 상냥할 수만은 없어, 너도 알잖아!”와 같은 보다 일반적인 답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답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가능한 거기에 맞도록 살아가세요. 아마, 여러분은 내면의 아이가 바라는 것을 곧바로 행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자신이 동경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여러분은 작지만 차근차근히 깨닫게 될 것입니다.


화가 나, 놀랬거나, 슬픔에 잠겨 있는 내면의 아이를 사랑과 수용으로 껴안는다면, 아이는 여러분의 내면에 존재하는 천사의 손길에 감동을 받게 되며, 그 결과로서 영혼은 여러분에게 말을 하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감정에서부터 시작하여, 그러한 감정들의 이면에 존재하는 참된 열망을 발견하고, 그러한 열망을 차근차근히 깨달아가는 길을 찾아내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천사와 내면의 아이를 이끌어내고 있는 이미지 속에서, 권위적인 하나님의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상위”부분과 “하위”부분이 역동적으로 진화해가는, 열린 관계 속에서, 서로를 보완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천사는 아이에게 어떤 것도 지시하지 않으며, 또한 아이도 천사를 지배할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이러한 상호 관계 속에서, 지금 이 순간에 자신에게 어떤 것이 옳은 것인지를 찾아내게 되는 것입니다.


천사와 아이 간의 친밀한 관계를 통해, 여러분은 자신의 삶의 목표들을 찾아내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관계 속에서, 정말로 자신을 움직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외부의 어떠한 권위도 이러한 관계를 대신하거나, 여러분을 대신하여, 연결될 수도 없습니다. 스승은 단지 내면의 신성한 장소를 가리킬 수만 있을 뿐이며, 그곳에서 내면의 아이를 소중하게 여기고, 내면의 천사가 의욕을 북돋아주도록 하는 것은 바로 여러분입니다. 여러분은 이곳에서, 참된 자신과 자신의 열정이 무엇인지를 찾아내게 될 것입니다.

영적인 삶을 살아가는 방법에 대한 일반적인 지침은 거의가 다 적절치 않거나, 본질적으로 보편적이지도 않습니다. 진리는 형태가 없습니다. 모든 창조물들은 자신만의 형태를 지니고 있으며, 진리를 살아가는 자신만의 길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기적으로서, 영혼이 지니고 있는 독특한 본질입니다.


진정한 영적인 스승은 “고기를 먹지 말라”든가, “하루에 두 시간을 명상을 해야 한다”와 같이, 구체적으로 해야 하는 것과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여러분에 관한 모든 것은 자신과의 깊은 교감 속에서 자신만의 진리를 찾아내는 거라는 사실을 진정한 스승은 알고 있습니다. 스승들은 길을 가는데, 어떤 것이 도움이 되었다고 표현할 수는 있지만, 그것을 규칙이나, 교리로 만들지는 않을 것입니다.


대다수의 종교적인 전통들이 하나님을 묘사하고 있는 방식을 살펴본다면, 정확하게 말해, 바로 거기에서 일어났던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을 묘사하고 있는 대다수는 전통에 따라 두려움과 권력의 남용을 나타내는 것들입니다. 규칙과 교리를 명확하게 하려는 욕구와 조직을 위계질서화하려는 성향은 항상 두려움과 권력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똑같은 현상이 새 시대의 영성 속에서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많은 예언들과 현재 떠돌고 있는 추측에 근거한 이론들을 살펴 봅시다. 만약에 그러한 예언들에 대해, 자신의 기본적인 느낌과 협의도 하지 않고, 그 예언을 따라간다면, 여러분이 불안해할 수도 있으며, “내가 일을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2012년에 내가 깨달음을 얻지 못하게 되면, 어떻게 되는 거지“ 혹은 내 차크라의 상태가 5차원으로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순수해질 수 있을까?”하고 의심하게 될 것입니다.


확실하게 말해, 이러한 형태의 의문은 여러분의 내적인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바라는 것은 방향을 자기 자신에게 돌리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깨달음(self-realisation)의 정도를 알기 위해, 행성과 별들의 움직임, 기후의 변화 혹은 “상승한 마스터의 판단”에 관심을 집중하지 마세요. 여러분이 바로 자기 우주의 중심이며, 자기 세계의 기준이고, 시금석입니다.

여러분보다 자신에 대해 더 잘 알고 있거나, 자신을 위해 모든 상황을 더 잘 결정할 수 있는 외부의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이전에 외부로 투사했던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속에 존재하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을 비롯한, 모든 창조물들 속에 들어 있는 신성한 요소(principle)는 장난스러운(playful) 힘이며, 개방적이고, 예측할 수 없는 방식들로 성장하고, 진해해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미지에서, “하위(lower)의 것”이 존재하는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하위의 것이 성장과 실현을 위한 연료가 되기 때문입니다. 빛과 어둠은 저마다 해야 하는 역할이 있으며, 여러분이 이 둘을 받아들일 때, 깨닫게 되는 것은 것입니다. 일부의 영적인 그룹들이 염원하는 것처럼, 어둠을 무시하거나, 어둠과 싸우면서, 일방적으로 빛에 다가서려고 하는 것은 불균형과 지구에서의 삶에 미묘한 저항과 경멸을 만들어내게 될 것입니다. 


일들을 잘못되고, 실수를 하는 것은 괜찮은 것이며, 실수를 피하려고 하는 것보다, 오히려 더 크게 성장할 수도 있습니다. “좋지 않은 일들(bad things)” 속에, 빛의 씨앗이 잠들어 있는(잠재해 있는) 것입니다. 내면으로부터 나쁜 것을 체험함으로써, 선(善)이 아름답고, 순수하며, 참되다는 것을 체험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것에서” 배울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 즉 내면에 존재하는 하나님께서는 깊은 곳으로(물질세계 속으로) 뛰어들어, 체험을 통해 알고 가고 계시므로, 앎을 체험에 적용하지 않으십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영적이 아닌 것(non-spiritual)이란 많지가 않습니다. 모든 체험은 신성하며, 의미가 있습니다. 외적인 규칙들, 즉 여러분이 해야 하는 건전하고, 올바르며, 영적인 거라고 가리키는 것에 이끌리지 마세요. 여러분의 가슴이 시금석입니다. 만약 가슴이 옳다고 느끼면, 문제가 없는 것입니다. 다른 모든 것들은 내려놓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