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자각의 빛을 내면에 비춤으로써, 커다란 기쁨과 고향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깊은 느낌을 가지게 될 것이며, 따라서 모든 관계들을 새로운 관점에서 보게 될 것입니다. 예를 들어, 타인들이 여러분에게 말하는 것들에 대해,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게 될 것입니다. 누군가가 여러분을 비판하거나, 불신한다 해도, 개인적인 면에서 여러분은 그러한 것들을 당연히 받아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영향을 덜 받게 되고, 반응하려고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한 비판을 보다 쉽게 내버려 둘 수 있게 되며, 자기 자신과 상대방 모두에게서, 자기 자신을 방어하고자 하는 욕구도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감정적으로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쉽게 영향을 받는다고 하는 것은 마음속으로 자기 자신을 비하하는 것이며, 따라서 타인들의 부정적인 견해를 믿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 비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타인과의 갈등 속에서 찾으려고 해서는 안 되며, 내면으로 들어가, 감정적인 상처와 교감을 해야 합니다. 이러한 상처들은 이 특정한 거절의 순간보다도 훨씬 더 오래된 것들입니다.


사실, 거절당하는 고통과 관계에서의 모든 고통은 치유되지 않는 탄생이라는 최초의 고통으로 거슬러 올라가게 됩니다. 관계에서의 모든 복잡한 상황들은 그 원인이 아주 가까이에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커다란 발전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느끼는 고통의 원인이 파트너가 어떤 것을 했거나, 하지 않은데 있는 것처럼 보일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여러분이 안고 있는 문제의 해결은 다른 사람의 행동 여하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자신의 내면에서 현재 고대의 근본적인 고통을 치유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라고 나는 말해주고자 합니다. 만약 이러한 사실을 인지하지 못 하고 있다면, 극심한 고통을 불러오게 될 관계의 문제에 쉽게 휘말리게 될 수도 있습니다.


특히 남/여 관계(애정관계)에서, 여러분은 종종 어렴풋하게 기억하고 있는, 하나가 되어 있던 태고의 상태와 유사한 상황을 두 사람 사이에서 만들어내려고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무의식적으로 조건 없는 사랑과 수용이라는 담요 속에 편안하게 둘러싸여 있는 느낌을 다시 만들어내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내면에는 조건 없이 받아달라고 외치고 있는 아이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의 내면의 아이가 파트너의 내면에 있는 아이를 감싸게 된다면, 흔히 아주 숨이 막힐 정도로 꽉 움켜쥐게 되는 결과로 이어지게 됨으로써, 양쪽의 파트너들은 순수한 자기표현을 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여러분은 감정적으로 상대방에게 의존하게 됨으로써, 자신이 행복해지기 위해, 상대방의 사랑과 동의가 필요해지게 될 것입니다. 의존관계는 항상 권력과 통제 문제로 발전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누군가를 필요로 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행위를 통제하고 싶어 한다는 것과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파괴적인 관계의 발단이 되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하나됨을 무의식적으로 동경하는 관계 속에서, 개체성을 버린다고 하는 것은 상대방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해로운 것입니다.


두 사람이 참된 사랑을 하게 되면, 상대방과는 관계없이 두 에너지의 장들은 완벽하게 독자적인 기능을 할 수가 있습니다. 각각의 에너지의 장은 그 자체로 하나의 단일체가 되며, 그러한 단일체를 기반으로 하여, 상대방과 연결이 되는 것입니다. 파트너들 간에 서로 의존적인 관계 속에서는 상대방이 없이는 기능을 발휘하고 싶어 하지 않거나, 발휘할 수 없게 되므로, "유기적인 온전함(organic wholeness)“을 이루기 위해 부자연스럽게 노력을 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이로 인해, 에너지들이 서로 얽히게 되며, 따라서 파트너가 상대방에게 영양분을 제공해주는 에너지의 코드(끈, 줄)를 오라(auric)의 장 속에서 볼 수가 있을 것입니다. 이들은 의존과 통제라고 하는 중독의 에너지를 먹고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유형의 에너지적인 얽힘은 자기 자신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으며, 오직 여러분만이 치유할 수 있는 상처받은 오래된 영혼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오로지 여러분만이 이러한 가장 깊은 고통을 처리하고, 책임을 질 수 있다면, 온전해지기 위해 누군가를 필요로 하지 않으며, 파괴적인 관계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카르마적인 관계들


이러한 맥락에서, 카르마적인 관계들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관계란 다른 생들에서 서로를 알고 있으며, 서로에 대해 강렬한 감정들을 체험했던 사람들 간의 관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카르마적인 관계가 지니고 있는 특징은 파트너들이 내면에 해결되지 감정들, 즉 죄책감, 두려움, 의존성, 질투, 분노 혹은 그와 유사한 감정들을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해결되지 않은 감정적인 부담으로 인해, 이들은 다시 태어났을 때, 서로에게 끌리게 되는 것입니다. 새로 다시 만나게 되는 이유는 당면해 있는 주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기 위해서입니다. 이러한 일은 짧은 기간에 똑같은 주제를 다시 만들어냄으로써, 일어나게 됩니다.

이들이 처음 만날 때, 카르마적인 영향으로 인해, 이들은 서로에게 가까이 다가가려는 강한 충동을 느끼게 되며, 얼마가 지나면 이들은 마음속에 지니고 있던, 감정적으로 표현해야 하는 낡은 패턴들을 반복하게 됩니다. 이제 오래된 해묵은 주제와 다시 대면하게 되며, 아마 그러한 주제를 보다 더 계몽적인 방식으로 처리할 수 있는 무대가 마련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주제들과 다시 대면하게 되는 영적인 목적은 이전의 생에서 두 파트너들이 했던 것과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여기에서 한 가지 사례를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전의 생에서, 아주 소유욕이 강하고, 보스 기질을 가졌던 남편과 살았던 여인이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이 여인은 한동안 이러한 성향을 받아들였지만, 어느 시점에서 참을 만큼 참았다고 생각하고 난 후, 그녀는 관계를 끝내게 되었습니다. 그 후, 남편은 자살을 했으며, 그 여인은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죄를 지었다고 믿었습니다. 이 여인이 남편에게 또 다른 기회를 주어야 했을까요? 그녀는 남은 생의 기간 동안, 죄책감을 느끼고 살았습니다. 


또 다른 생에서, 이 두 사람은 다시 만나게 됩니다. 이 둘은 이상하게 서로 끌리게 됩니다. 처음에는 남자가 유난히 멋있어 보이게 되며, 이 남자의 관심도 이 여인에게 집중이 됩니다. 이 남자는 이 여인을 아주 좋아하게 되며, 이들은 밀접한 관계를 가지게 됩니다. 하지만 이제부터 남자는 질투심과 소유욕이 점점 더 강해지게 됩니다. 이 남자는 여자가 바람을 피운다고 의심하게 됩니다. 그녀의 마음속에는 갈등이 일어나게 됩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남자가 자신을 비난하는 것에 대해, 그녀는 화가 나고, 속이 상하지만, 용서하고 그에게 또 다른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이상한 의무감 같은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는 상처를 받았던 사람입니다. 그녀는 “그가 버림을 받았다는 두려움을 지니고 있으므로, 그도 어쩔 수가 없을 거야. 아마 내가 이러한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가 있을 거야.”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녀는 이런 식으로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지만, 사실 그녀는 개인적으로 자신의 경계(영역)가 침범당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관계가 그녀의 자존심에 부정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여인을 가장 자유롭게 해주는 선택은 이제 관계를 단절하고,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남편의 아픔과 두려움은 그녀가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남편의 고통과 그녀의 죄책감으로 인해, 좋지 않은 관계로 이어지게 된 것입니다. 이전의 생으로 인해, 이들의 관계는 이미 감정적으로 누적되어 있었습니다. 이들이 새로 만나게 되는 이유는 그 여인이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모든 것을 순리에 맡기는 방법을 배우기 위한 것이며, 그 남자는 감정적으로 자립하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서입니다.

따라서 진짜 유일한 해결책은 관계를 단절하는 것입니다. 그 여인의 카르마에 대한 해결책은 죄책감을 완전히 버리는 것입니다. 이전의 생에서 그녀가 저질렀던 잘못은 그녀가 남편을 버렸다는 것이 아니라, 남편의 자살에 대해 자신에게 책임이 있다고 느꼈던 것에 있는 것입니다. 아내가 떠나게 되면, 남편은 자신이 지니고 있던 아픔 및 두려움과 또다시 대면하게 될 것이며, 이렇게 됨으로써 남편은 이러한 감정들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대면하게 될 새로운 기회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만나자마자, 이상하리만치 친숙하게 느껴진다면, 그 만남이 카르마적인 것이라는 것을 인식할 수가 있습니다. 대개 상호 간에 서로 끌리게 되고, 강렬한 뭔가를 느끼게 되며, 서로 함께 하면서, 상대를 알고 싶어 하는 충동을 느끼게 됩니다. 기회가 된다면, 이러한 강렬한 끌림은 애정관계 혹은 심각한 사랑의 열병으로 발전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체험하는 감정들은 자신의 쌍둥이 영혼을 만났다고 생각할 정도로 아주 강렬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실상은 겉으로 보이는 것과 같지가 않습니다. 머지않아 그러한 관계 속에는 여러 문제들이 노출될 것입니다.

대개, 두 사람은 주요 요소들로서, 힘, 통제 그리고 의존성이라는 심리적인 갈등을 겪게 됩니다. 따라서 이들은 잠재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과거의 생에서 유래된 비극적인 요소들을 되풀이하게 될 것입니다. 과거의 생에서, 이들은 연인, 부모, 자녀, 상사와 부하 혹은 기타 어떠한 다른 관계에 있었을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언제나 부정(不貞), 힘의 남용, 이와는 대조적으로, 너무 심한 애정행위로 인해, 서로 간에 내적인 깊은 아픔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들의 만남은 심각한 만남이었으며, 이로 인해 깊은 상처와 감정적인 트라우마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이들이 새로 태어나 또다시 만나게 될 때, 반발 작용뿐만 아니라 서로를 끌어당기는 힘도 아주 강렬해질 수가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에너지가 서로 얽혀 있는 모든 영혼들에게 영적으로 해주고 싶은 말은 다른 모든 사람들이 제 갈 길을 가도록 하고, 서로에게 독립적인 존재들이 되게 함으로써, 자유롭고, 마음대로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언급한 것처럼, 대부분의 카르마적인 관계들은 장기적이고, 안정적이며, 사랑스러운 관계가 결코 아닙니다. 이러한 관계들은 치유적인 관계라기보다, 오히려 해로운 관계들입니다. 만나게 되는 기본적인 목적은 대개 서로를 내버려 두는데 성공하는데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한 번 이상의 과거 생에서 할 수 없었던 것으로, 이제 사랑으로 서로를 놓아줄 수 있는 또 다른 기회가 주어지게 된 것입니다.  


많은 고통과 슬픔을 야기하지만, 벗어날 수 없는 강렬한 감정으로 특징되는 관계 속에 처해 있다면, 부디 여러분에게 다른 사람과 같이 있도록 강요하는 것은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기 바랍니다. 강렬한 감정들은 대개 서로 간의 사랑이라기보다는, 깊은 아픔을 나타내는 거라는 사실도 깨닫기 바랍니다. 사랑의 에너지는 기본적으로 차분하고, 평화스러우며, 마음이 편하고, 의욕을 고취시켜 줍니다. 사랑은 무겁고, 소모적이며, 비극적인 것이 아닙니다. 관계가 이러한 특성들을 띠게 된다면, 그것은 다시 한 번 관계를 시도하는 것보다, 오히려 관계를 끝내도록 내버려 두어야 하는 시기입니다


때로는 “카르마를 함께 나누고”, “그 카르마를 함께 극복해야” 하기 때문에, 함께 있어야 한다고 확신할 수도 있습니다. 두 사람 모두가 엄청나게 고통을 겪고 있으면서도, 관계를 지속하기 위한 구실로, 카르마적인 속성을 불러들이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여기에서 여러분은 카르마라는 개념을 왜곡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카르마를 둘이서 함께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카르마는 개인적인 것입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러한 관계에서 당면하게 되는 카르마는 대개 여러분이 완벽하게 내려놓고, 여러분 스스로가 온전하다는 것을 체험할 수 있도록, 그러한 관계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다시, 카르마를 해결하는 것은 여러분이 혼자서 해야 하는 일입니다. 다른 사람이 여러분의 내면에 존재하는 어떤 것을 자극하거나, 촉발시켜, 여러분들 간에 많은 격한 감정들을 만들어낼 수도 있습니다.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는 상처를 처리하는 것은 타인들의 주제가 아니라, 오직 여러분 혼자서만이 처리해야 도전과제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오로지 자기 자신에 대해서만 책임을 지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꼭 깨달아야 하는 중요한 내용이며, 그 이유는 이것이 관계에서 생기게 되는 주요한 함정들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배우자(동료)에게 책임이 없으며, 배우자 역시 여러분에게 책임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지니고 있는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상대방의 행위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배우자의 내면에 있는 아이, 즉 감정적으로 상처를 받은 부분과 밀접하게 연결됨으로써, 자신이 그 아이를 “구해주어야” 한다고 느끼게 됩니다. 아니면 파트너가 똑같이 그렇게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일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상대방의 무기력함과 피해 의식을 오히려 강화시키게 될 것입니다. 반면에 여러분이 선을 긋고, 홀로 서게 된다면, 궁극적으로는 이렇게 하는 것이 오히려 더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목적지는 전적으로 혼자의 힘으로, 온전하며, 완벽하다고 느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만족스러운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 이것은 진실로 가장 중요한 조건입니다.  



치유적인 관계들


관계에도 치유적인 관계와 해로운 관계가 있습니다. 치유적인 관계의 특징은 파트너들이 상대방을 변화시키려고 하지 않고,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존중해준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상대방이 함께 있어 줌으로써 많은 즐거움을 얻게 되지만, 상대방이 주위에 없다고 해서, 불편해하거나, 절망 혹은 외로움을 느끼지는 않습니다. 이러한 관계 속에서, 상대방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서도, 사랑하는 사람에게 이해와 지원 그리고 용기를 북돋아주게 되는 것입니다. 자유와 평화가 관계 속에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때때로 오해가 있을 수도 있지만, 그들에게 일어나는 감정들은 그리 오래가지 않습니다. 파트너들 모두가 용서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 둘 사이에는 가슴으로 연결되어 있음으로, 상대방의 감정이나 실수를 개인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한 감정이나 실수가 고통의 깊은 층들을 자극하지 않기 때문에 이들은 그것에 크게 집착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감정적인 면에서는 두 사람 모두가 독립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힘과 행복을 상대방의 동의나, 존재를 통해 이끌어내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들은 삶의 공백을 채우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새롭고, 활기 넘치는 것들을 보태려고 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치유적인 관계에 있는 파트너들은 한 번 이상의 과거 생들에서 서로를 알고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경우, 위에서 설명한 것과 같은, 감정적인 카르마의 부담은 거의 없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두 영혼들은 과거 생에서 기본적으로 용기를 북돋아주고, 도움이 되었든 방식으로, 서로를 알았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친구들로서, 부모와 자녀로서, 이들은 서로를 영혼의 동반자들로 인식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계는 여러 생들을 거치면서, 서로 떨어질 수 없는 유대감을 만들어내게 되는 것입니다

 

또 다른 사례를 들어보겠습니다. 한 젊은이가 중세 시대의 어느 곳에서, 가난한 가정에서 성장하게 되었다고 합시다. 이 사람은 천성적으로 부드럽고, 감수성이 예민해서, 주의 환경에 잘 어울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의 가족은 열심히 일하는, 다소 거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청년이 지니고 있는 꿈 많은, 비현실적인 천성을 무시하고 있습니다. 이제 이 젊은이가 어른이 되어, 수도원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는 그곳에서도 정말로 행복해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삶이 심하게 규제되며,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 간에 인간적인 따뜻함이나, 동료애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약간 다른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지위가 높은 성직자이지만, 권위의식이 없으며, 이 젊은이에게도 정말로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끔씩, 이 성직자는 요즈음 어떻게 지내는지 안부도 묻고, 정원을 가꾸는 일과 같은 몇 가지 즐거운 소일거리도 맡기곤 합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볼 때마다, 서로를 인정해주고, 마음이 통하는 뭔가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말이 없는 가운데도, 서로는 가슴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들은 아주 자주 만나거나, 많은 말을 하지는 않지만, 그 성직자는 그 젊은 남자에게는 희망과 용기의 원천이 되고 있습니다.


다음 생에서, 이 남자는 여자가 됩니다. 또다시, 그녀는 부드럽고, 꿈 많은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혼자서 살아가는데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그녀가 어른이 되면서, 권위적이고, 보스의 기질을 가진 남자와 결혼을 하게 됨으로써, 꼼짝도 하지 못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남편의 독특하고, 강한 카리스마에 속아 넘어갔지만, 나중에 그녀는 남편의 권위가 자신을 구속하고, 억압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남편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 아주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직장에서, 그녀는 다소 나이가 많은 동료에게 이따금씩 문제를 이야기하게 됩니다. 이 동료는 그녀에게 스스로 자립하고, 자신의 욕구에 충실하라고 용기를 줍니다. 그녀는 그와 이야기를 할 때마다, 그가 옳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알게 됩니다. 그 후, 많은 내적인 갈등을 겪은 후, 그녀는 남편과 이혼을 하게 됩니다. 이제 이 동료와의 접촉은 바뀌게 됩니다. 그녀는 그 사람에게 애정을 느끼게 됩니다. 그 남자가 혼자서 산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녀는 그와 함께 있으면, 오랫동안 서로를 알고 있었던 것처럼, 편안하게 느껴집니다. 이들은 서로에게 다정하고, 편안하며, 힘이 되는 관계를 시작하게 됩니다. 이전의 생에서 두 사람 사이에 흘렀던 호감이 이제 남편과 아내라는 만족스러운 관계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치유적인 관계입니다. 여자는 자신의 남편을 떠나, 혼자서 선택을 해야 하는 중요한 의사결정을 했습니다. 이로써, 그녀는 감정적으로 독립하겠다고 확신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마음이 맞는 영혼과 사랑스럽고, 잘 균형이 잡힌 관계가 가질 수 있는 초석이 마련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