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모든 것이 존재했다는 것을 안다.

형체로 드러나 표현되기 전에 모든 것은 무한하게 각 각 존재했었다는 것.

어떠한 의식이라도 즉 그대의 모든 생각은 언제나 존재하고 있다.


창문에 먼지가 많이 낀다. 창문을 물로 씻어낸다.

그렇다고 먼지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먼지는 물로 흘러내려 먼지끼리 모일뿐 그 자체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자신의 몸의 때를 벗기어내어도 그것이 전체적인 관점에서 결코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즉 이미 자신이 표현되고 드러난 상태에서의 변화는

자신이 그 표현된것을 아무리 부정한다고 해서 결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단지 멀어질뿐 그것일뿐이다.


차원의 막이 생김으로써 당신은 당신의 모든 것. 전체적인 자신을 표현했을때,

즉 그대의 의식적 흐름 생각의 흐름의 변화를 언제나 지금 현 순간부터 새롭게 창조할수가 있

다.



자신이 어떠한 삶을 살았든 그것은 알면 끝난 일이지,

언제까지나 자신의 모든 것이 아니다. 자신의 전부가 아니다.


표현되어진 것은 모두 소중하지만, 구지 고통과 아픔을 통해서 이제는 할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다.

그것이 도구로써 이용되었더라도 지금 다른이애가 필요한 것이 아닌

자신에게 필요하지 않다면 결코 필요하지 않다는 것.


의식적으로는 항상 무한히 썩여 존재하던 결코 표현하고 싶지 않은 관계들은

선택하지 않으면 된다. 나를 제외한 누구를 위한 다는 것은 이제 다 필요없는 일이다.


즉 머리보다 가슴으로 사는 일이다.

계획하기 보다는 순간을 사는 일이다.


몽둥이가 약이란 말은 존재와 존재의 관계성을 망각했을때 일어나는 일이다.

자신이 무엇이었는지, 자신의 인식이 어느정도인지, 포용하고 허용하는 일은

지금 순간을 바라보는 일이기 보다는 생각의 선택 즉 자신안의 집단적 의식의 선택에 달려있다.


밝음과 어둠이 함께 존재하는 것을 알지만 자신은 밝음만을 밝혀 나아간다.

자신은 언제나 빛인줄 알지만, 더 아름답게 자신을 표현해 나아간다.

자신은 지금 아무리 힘들어도, 더 자신에게 낳은 방향으로 선택해 나아간다.

자신에게 슬픔과 고통들 알면 된것이지, 구지 그것을 영원히 표현해 나아가지 않는다.


누구나 이미 알고 있다는 것. 그것은 우리가 고문당할때 고통이나 실현의 고통이나

단지 어떤 형태로의 관계를 통하던지 고통이라는 의식은 그 자체라는 것이다.

그 관계성이 사라지면 고통또한 사라진다.

즉 상대성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런 관계를 유도하는 자신의 선택이 사라지면 고통이 사라

진다는 것이다. 세상 어느 절규도 아이의 울음이나 결코 다르지 않음을.

각 각 그 순간의 느낌은 그 자체로 그 관계성에서는 극으로써 같다.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은 이미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

세상의 변화는 자신의 선택으로부터 항상 먼저 변화한다는 것.



망각의 공간은 항상 각각 존재 했던것은 순간을 살기 위한 우리의 약속중 하나였을뿐이다.

즉 선택을 자유롭게 함에 있었다. 그러다보니 표현됨 즉 형태의 중요성이 강조되어

그것에 끌려다녔지만, 언제나 자신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는 것.



우리가 차원의 근원을 거슬러 가다보면 자신의 전체적인 모습을 스스로 수없이 많이 깨게 된다.

한두번이 아니라 수없이 많이 깨게 된다. 반대로 차원의 흐름따라 내려오게 되면,

전체적인 하나에서 밝음만을 선택한다는 것이 결코 잘 못된 일이 아님을 아는것.

스스로 밝아지는 것은 자신을 위한것. 자기 자신을 위한것.


차원이 내려오면서 선택되어지고 표현되어지면서 더욱더 자기 자신을 위하게 되는 것.

소중히 하는 것. 모든 차원이 하나로 합쳐지는 것은 없을 것이다.

단 모든 차원이 표현되어진 공간은 존재한다.



단지 항상 자신만이 변화하여 그 상태에 존재하게 된다.





이미 알고 있다면 구지 그것을 계속 표현하기 보다는

아름답게 더 지혜롭게 가꾸는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