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내가 선택했던 여정旅程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의 생활

내게 초등학교와 중, 고등학교를 마치기까지의 삶은 지루하고 답답한 생활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학교 가는 것이 괴롭고 힘든 일이었으며, 지금 남아 있는 초등학교 시절의 기억이라곤 서울역 근처에서 약장사꾼들이 약을 팔기 위해 펼치던 쇼를 종종 구경하던 기억과, 남산의 이승만박사 동상 앞쪽의 수 백 개가 넘는 화강석 계단에 판자를 깔고 앉아 썰매를 타던 기억 정도다.
특별한 사고를 친 기억도 없고, 고등학교 3학년 때에는 학교가기 싫으면 아프다는 핑계로 잠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아, 30일이 넘는 결석일 수를 기록했던 기억은 남아 있다.

가끔씩 미소 짓게 하는 고등학교 시절의 추억 한 가지는, 중3때 키 순서로 52번(약 60명 중)하던 번호가, 고1때 41번, 고2때 19번 정도로 계속 앞자리로 나가게 되자, 고3때 번호를 정하던 날 고의적으로 결석하여, 그 다음날 맨 끝번인 62번으로 정해지고 맨 뒷줄에서 덩치 큰 친구들과 나란히 앉아, 약해진 시력에도 불구하고 안경을 끼지 않고 멍하니 보이지도 않던 칠판을 바라보던 모습이다.
그래도 아주 돌머리는 아니었는지?!  초등학교 시절은 10등 내외의 상위권을 유지했으나,
계속 하향곡선을 그려나가다 고등학교 졸업 무렵에는 겨우 중하위권을 유지했던 것 같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시험 전날 밤새기 외에는 예습, 복습이란 용어 자체를 몰랐던 것 같고, 어디서 생긴 자신감인지 몰라도 고3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할 무렵에는, 대학입시 일주일 전까지도 집중적으로 파고들면 통할 수 도 있다는 배짱으로 서울 상대(당시 수재들이 지원하던 곳)에 입시원서를 넣고 버티다, 시험 당일 날 아침 출신 고등학교 망신시키겠다는 판단에.. 집을 나서서는 시험장소가 아닌 인천으로 놀러가서 “왕중왕” 영화 한 편을 보고 돌아왔으며, 2차는 아예 포기하고 말았다.



      또 다른 나의 일면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기까지 학교 가는 것이 무척이나 힘들고 싫었던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지금 되돌아보면 10대 청소년기 때부터 나는 단순하게 사회가 요구하는 여러 가지 학습의 목적과 목표를 찾았던 것 같다.
“나는 누구인가?”
“生과 死의 앞과 뒤에는 무엇이 있는가?”
“神은 있는가?”  그러한 질문이 내 안에서 솟아올랐다!
내가 하는 일! 내가 해야 할 일들의 의미와 목적지는 어디인가?!에 대한 답을 알고자 하는 의지가 내게는 중요했다.
그러한 여러 가지 존재와 삶이 가지는 본질적인 가치와 의미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던 모습은 지금까지 남아있는 그 당시의 일기와 수필 속에서 확인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해는 실력이 모자라 대학입학을 포기했으나, 그 다음 해에는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위해 대학을 갈 것인지?!”  내 인생의 의미와 최종적인 목적을 스스로 확인하기 전에는, 남들이 모두 대학에 간다고 나도 그 대열에 합류하지는 않겠다는 명확한 생각을 가지고 스스로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남산 도서관에 다니며 여러 가지 관심 가는 책들을 찾아 읽었다.  
2년 정도 도서관 생활을 하던 중 마음에 변화가 찾아왔는데, 그것은 “20년 정도 살아오며 배워 온 지식과 지혜로 우주와 인생에 관련된 궁극적인 답을 구하는 것이 너무 성급한 생각이다!”라는 것이었고. “그러한 답은 앞으로 더 많은 것을 배워가면서 찾아보자!”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3년째 되던 해 나 자신을 정확히 알기 위해서는 인간이 살아온 역사를 공부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서 사학과(史學科)를 선택하여 진학하였고, 그 후의 생활은 전과는 달리 매우 즐거운 생활이 되었다.
지금 되돌아보면 청소년기 고민하며 썼던 일기와 수필, 그리고 대학졸업논문 등을 볼 때 하나의 초점으로 맞추어진 일관된 관심사가 있었고, 그 때 가지고 있었던 내 삶의 최대 과제는 지금까지 변함없이 계속 가져왔던 것임을 알 수 있고, 그 결과로 지금 내가 이러한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대학과 軍생활 이후의 사회생활

군대 3년과 대학 4년을 마친 후 나는 건축 관련 회사에 취업하여 4-5년 직장생활을 하였으며, 그사이 1년간 사우디아라비아 건축현장에서 일하기도 했다.  귀국한 후에는 주로 주문주택 시공에 관련된 일로 세월을 보내다가, 1990년 초에 물탱크 청소사업을 시작했었고 1993년 후반기부터 7-8년간은 전원주택 시공 개인사업을 운영했었다.
사업을 하는 동안 매우 바쁜 나날을 보냈었으나 큰 소득은 없었으며, 2001년 정도의 시기에 내 천직이 집을 짓는 일이 아니라는 확신을 가지면서 그동안 해오던 사업에서 손을 떼고,  청소년시기 이후 항상 그 답을 구해왔던 “나는 누구인가?!” “존재하는 모든 것의 실상은 무엇인가?!”에 대한 궁극적인 답을 얻기 위한 일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사업을 하면서도 나는 항상 인간과 우주, 신 등과 관련한 궁극적 문제에 대한 탐구를 계속하였었고,  1990년대로 들어서면서 홍수처럼 쏟아진 많은 귀한 책들을 꾸준히 살펴보면서 대화가 통하는 많은 사람들과의 교류도 계속 가져왔는데, 아마도 사업보다 진리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컸던 것 같다.
2001년 이후에는 오로지 나 자신과 우주의 궁극적 실상에 대한 진실 확인에 몰두하였고 인터넷을 통해 전달되는 하루하루의 귀하고 새로운 정보를 통해 시야를 넓혀왔으며, 2004년에 이르러서는 내가 구하던 답에 관한 전체 그림이 파악되고 이해되는 지점에 서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 때 가지게 된 큰 기쁨을 주변 분들과 나누기 위해 평생 생각해 본 적도 없었던 책(‘당신도 신입니다! You are God also!)을 쓰게 되었으며, 이어서 2005년에는 “지구별 졸업여행”을 쓰고 출간하게 되었다.



    한 우물 파기  

지금 이 순간 내가 이번 생에 살아온 전체 여정을 되돌아보면 오로지 한 길을 걸어왔던 것을 알 수 있다. 우리 사회가 유년기 때부터 암기식으로 주입시켜온 제도권의 교육과 종교적 신념!  그러한 것이 편치 않아  학교 가는 것이 그렇게도 싫었던 20세 이전의 시절..
스스로 궁극적인 답을 찾겠다고 결심한 후 그렇게도 후련했던 가슴!  남들처럼 가정을 가지고 생활전선에 뛰어들어 사업을 하면서도 일과시간이 끝나면 그날 상황 끝!
그 후론 내게 관심 있는 책을 읽거나 대화가 통하는 사람들과 만나는 일 등에 쫒아 다니던 생활.

그러한 모든 생활태도를 보거나, 청소년 시기에 썼던 일기나 수필!
“내가 누구인지?!” 알기위해 선택했던 역사학과!  그리고 대학에서 썼던 졸업논문!
지금 내가 나의 삶의 여정을 되돌아보고, 오랜 시간 두드려서 문을 열고 보게 된 진실을 많은 분들과 나누기 위해 글을 쓰고 있는 나의 모습!
이 모든 것을 보면, 태어나서 엄청나게 울어대서 어머니가 함께 울 수밖에 없었다는 옛 이야기를 시작으로 지금에 이르기까지 오로지 한 우물을 팠다는 것을 알 수 있고, 그 결실이 지금 쓰여 지고 있는 이 책으로 나타난다는 것이 참으로 다행스럽고 감사하며..
그동안 보이지 않게 도움을 주어 온 베일 저편의 모든 가족 형제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뜻을 전한다.



    전화위복 轉禍爲福  

여담삼아 내게 9세 전 후로 있었던 물리적 충격(사고)에 대한 이야기를 잠시 하겠는데, 이 글을 보시는 분들 중에 유사한 경험이 있는 분들에게 참고가 되리라 본다.

초등학교 시절.. 대략 9세 전 후로 기억되는데, 동네 친구들과 눈을 가리고 술래잡기 놀이를 하던 중  내가 수건으로 눈을 가린 상태에서 골목 안으로부터 바깥쪽으로 향하던 중 2-3개의 계단이 있었는데, 발을 헛딛게 되어 넘어지는 것도 모르고 앞으로 넘어져 머리 우측 앞부분을 맨땅에 크게 부딪친 사고가 있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피는 나지 않았고 속으로 멍이 든 상태에서 정신없이 집으로 돌아가던 기억이 나는데..
그 사고가 있은 후 정신집중이 잘 되지 않는 상태에서 초점을 잃고 멍하니 앞만 바라보는 경우가 그 후 학교를 다니는 과정에서 자주 있었으며, 그런 현상은 군에 입대하기까지 계속되었고 군대를 제대하고 복학하던 시기를 전 후 하여 회복된 것으로 기억된다.
군대생활 중 2년 정도 병원부대의 행정과에서 근무했었는데, 그동안에 머리 부분에 어떤 흔적이 있을까 궁금하여 X-ray 사진을 촬영하여 보았고, 다쳤던 부분에 지름 3~4cm 정도의 희게 석화石化된 부분이 남아 있었던 것을 기억한다.

이 사고가 내게 중요한 의미를 가진 것이라는 것은 천상의 가족인 토비아스(Tobias)가 2000년 전해준 “그리스도의 길 잃은 아이들”이란 메시지를 통하여 확인할 수 있었는데,  그 내용은 2000년을 전 후한 시기에 지구가 멸망하거나 상승할 수 있는 두 개의 가능한 시나리오가 있음을 알고 육화한 영혼들이, 자신이 가지고 온 강력한 ‘그리스도의 빛’ 에너지를 숨기기 위해 보통 10세 이전에 정신적이거나 물리적인 충격을 스스로 선택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 이유는 그러한 그리스도의 에너지를 이해할 수 없는 부모나 사회에 의해 죽임을 당하거나 정신병원으로 보내질 수 있는 위험성을 피하기 위함이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길 잃은 아이들”[새지구시리즈8장, 2000.1.15.]을 읽는 순간, 그것이 내가 겪은 체험과 일치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으며, 나는 이미 그러한 사고가 내게 전화위복轉禍爲福의 좋은 경험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나의 어린 시절 머리에 가해졌던 물리적 충격으로 인해 사고기능과 집중력에 부분적인 장애를 가지게 된 것은, 어린시기에 입력되고 고정관념화 되는 현실적 교육제도와 신념체계로부터 나 자신을 차단하는 보호막으로 작용했었다고 느끼고 있었고, 그 결과로 지금 60을 바라보는 나이에 이번 생에서 내가 하려고 계획했던 일들을 시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 글을 접하시는 많은 분들이 이와 유사한 과정을 통해 부분적인 기능저하의 체험을 가지고 계실 것으로 추측된다.



    열릴 때까지 두드린 문

다행히도 지금까지 간직하고 있었던 청소년 시절의 일기와 수필!
역사학과를 선택하고, 썼던 졸업논문의 내용!
사업을 하면서도 끈질기게 잡고 놓지 않았던 ‘나 자신과 존재하는 모든 것에 작용하는 우주적 원리’에 대한 탐구!
사업이 내 천직이 아님을 확인하고, 궁극적 의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한 생활전선에서의 이탈!
2001년 이후 집중했던 인터넷 등을 통한 탐색!
한평생 두드려 온 문을 열고, 그 기쁨을 나누기 위해 썼던 2권의 책!

이것은 열릴 때까지 문을 두드렸던 결과이며, “두드리면 열린다! 구하면 얻는다!”는 격언을 확인하는 예라고 본다!

아래에 내가 어느 문을 두드렸는지?!를 보여주는 10대 후반 시기에 썼던 일기 일부와 수필 몇 편.  그리고 대학졸업논문의 목차와 결론 부분을 참고를 위해 옮겨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