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다음에 이어지는 내용은  1970년까지의 일기와 수필을 요약, 정리한 후
“나의 현재”란 제목으로 쓰여진 글인데 1971년 10월8일 마무리 된 내용입니다.



     2.  나의 현재


가.  나의 우주관, 세계관, 인간관에 대하여

나.  내가 나의 우주 - 세계 - 인간관을 어떠한 자세로 갖고 있을 것이며,
     타인의 그러한 것들에 대한 신념을 어떠한 눈으로 볼 것인가에 대하여.

다.  어떠한 원칙에 의해 나의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을 지향할 것인가에 대하여.



    가.  나의 우주관, 세계관, 인간관에 대하여


1.  가장 중요한 것
2.  우주와 인간
3.  인간능력의 한계와 가정假定
4.  인간은 어떠한 존재인가
5.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6.  내가 지금 이 글을 쓰는 이유
7.  하나의 독립된 개체인 내가 누릴 生
8.  나의 세계관
9.  세계의 평화를 위해 우리가 극복해야 할 것



    1.  가장 중요한 것


우리 인간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가 있다.
그것이 해결되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

그 문제는 무엇인가?
그것은 이러한 문제이다.  
즉 하나의 인간인 나는 어떠한 존재인가? 하는 문제.

나라는 존재가 어떠한 존재인지?!
어느 곳에 있는 존재인지를 아는 것.
그것은 우주를 아는 것이고,
내가 지향해야 할 목표를 아는 것이고.
내가 생을 누릴 자세를 찾는 것이다.

우주의 본질을 깨닫는 것.
내가 달려갈 목표를 찾는 것.
다시 말해 나를 아는 것.
그것은 모든 것을 아는 것이다.

그것을 아는 인간에게는 모든 회의와 의문이 없어진다.
그러한 인간의 마음에는 한없이 맑고 밝은 새로운 세계가 전개된다.

그러한 인간의 정신은 한없이 넓고 무한한 세계를 꿰뚫어 그것과 하나가 된다.



    2.  우주와 인간


결코 그 끝이 있을 수 없는 절대 무한의 공간
그 안에 지구가 있고, 그 위에 인간들이 있다.

결코 그 끝이 없을 수밖에 없는 절대 무한의 공간
그 안에 지구가 있고, 그 위에 내가 존재한다.

우리는 그 절대 무한의 공간을
있는 그대로 정확히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을 깨달은 후에라야
우리 자신을 바로 볼 수 있기 때문에



    3.  인간 능력의 한계와 가정(假定)


과거의 인간들은 가정하기를 좋아했다.
그들은 그들 능력의 한계점에 도달하면 그 한계점 뒤의 세계를
그들 편리한 대로 상상해서는 그것을 믿으려 했다.

왜 그들은 그러한 길을 택했을까?
미지의 세계를 미지(未知) 그대로 두기에는 그들이 너무 약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들의 의식 구조가 무한이란 것을 용납하지 않았기 때문일까?

아무튼 우리 인류가 지금까지 계속 쌓아온 지식, 이성적 사고력의 가치를 부정하지 않는 한에서,  위의 문제와 관련되는 몇 가지 명확한 사실이 있다.  그것은...

첫째  우리 인간들은 우리들이 접하고 있는 자연과 우리들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물리적, 자연적, 사회적 현상에 대하여 왜? 라는 의문을 가지고 그것의 원인 -본질을 분석 이해하려는 욕망(본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

둘째  그 모든 것을 알려는 욕망은 최종적으로 무한한 우주 공간의 본질을 이해하려는 단계에,  그것의 생성(生成)에 의문을 갖게 되는 단계에 이르게 된다는 것.

셋째  하나의 작은 공간은 큰 공간에 포함되고, 큰 공간은 더 큰 공간에 포함되므로..  다시 말해 하나의 한정된 공간은 그보다 더 큰 공간 안에 존재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의 유한한 지구가 포함된 우주 전체는 결코 유한한 공간일 수 없다는 것.

그러므로 위의 세 가지 사실을 종합할 때, 유한한 생명을 가진 인간이 그들 주위에서 항상 유한한 사물과 접하게 되는 데서.. 모든 것은 유한하리라는 의식구조(신념)을 갖게 되었는데, 우주가 무한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접하게 되자 가정(假定)이라는 수단을 통하여 그것을 유한한 것으로 만들었다는 결론이 나온다.

위와 같은 생각에서 나는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신을 믿지 않는다는 것이, 내가 신의 존재를 부정한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우주 만물을 무한한 것으로서.. 우리 미력(微力)한 인간에게 이해 될 대상이 아니라고 믿고, 그것을 무한 그 자체로서 받아들이려고 하는 내가 어찌 그 불가해한 세계에 대해 왈가왈부 할 수 있겠는가?

그러면 이제 나는 우주, 자연에 대한 나의 견해를 결론적으로 말하겠다.
나는 그것 (우주, 자연)은 절대 무한한 공간으로, 우리 유한한 인간들은 그 우주 전체를 무한한 그 자체대로 받아들일 것이지... 구태여 그것에 어떤 한계를 가하기 위해서 ‘가정’이라는 수단을 사용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4.  인간은 어떠한 존재인가?      


그러면 우리 인간은 어떠한 존재인가?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즉 인간은 그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우주, 그 한 가운데에 자리잡고 있는 유일한 지구상에 존재하는 지적인 동물이라고.
과거의 인간들은 우리 지상의 인간이 우주 전체에 있어서 가장 가치 있고, 그 중심이 되는 존재라고 믿어 왔으나  그것은 일종의 환상이었으리라 믿어지며, 또한 그들이 인간의 영혼을 영원한 것이라고 믿었던 것 역시 죽음이라는 한계를 갖고 있는 인간들이 거기에서 초래되는 허무 -공포 등을 해소시키려는 일종의 도피적인 가정이 아니었나 생각되는 바다.

아마 어떤 사람은 위와 같은 견해에 대하여..  인간에게서 영원한 세계가 있으리라는 희망!  그것을 빼앗는다면 인간은 무엇을 위하여, 무엇에 의지하여 살아가겠느냐고?!  그러한 희망을 상실한 인간 이상으로 비참한 존재는 없으리라고!  반박하리라.

그러나 나는 그러한 항의에 대하여 이렇게 다시 반문하고 싶다.
즉 왜 인간에게 영원한 생이 없을 때 인간은 비참한 존재가 된다고 생각하느냐고?!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유한한 생 - 죽음을 인식하는데서 발생되는 공포심, 그것 때문이 아니겠냐고?!
죽음과 동시에 無로 돌아가는 것이 인간의 참된 모습이라면, 그것을 기꺼이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느냐고?!

사실 나는 그러한 문제 - 즉 인간이 우주의 모든 것 가운데 가장 가치 있는 존재일지?! 인간의 정신이 영원히 존재할 수 있는 것인지? 의 문제는 나의 논리적 이성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그러한 모든 문제를 결코 가정에 의해 해결하고 싶지는 않다.  가정한다는 것 그것은 일종의 체념이 아니겠는가?
나는 모든 것을 정면에서 맞고 싶다. 내게 있어서 체념 - 절망, 그것은 죽음 이상으로 괴로운 것이다.



    5.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  


왜 우리의 선조들은 그들의 이성, 지성(知力)으로 해결될 수 없는 문제들을 그대로 놓아두지 않았을까?  그들에게는 무한이란 것이 용납될 수 없었을까?

왜 그들은 가정(假定)을 세웠을까?
자연의 거대한 힘에 두려움을 느꼈기 때문일까?
그들 자신을 의지하기에는 그들의 용기가 부족하였던 것일까?

왜 그들은 불가능한 것을 불가능한 그대로 인정하려 하지 않았는가?
왜 그들은 그들 능력 안에 있는 것에 만족하고 그것을 가꾸는데 몰두하지 못했던가?!

내가 기독교적 가치관에 회의를 품고 그것을 논리적 이성에 의해 과학적으로 분석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우주 전체를 지배하고 있을 어떤 절대적 진리,  그리고 인간의 생의 목적을 찾으려 했었는데..  그것은 무언가 어떤 절대자가 있으리라는 무의식적인 가정에 의한 태도였다.
왜 우리들은 당연한 듯이 가정을 하고 그것을 믿으려 하는가?  왜 우리의 이성 두되-지혜에 이해되는 것 만에 만족하고, 먼저 우리 주변의 일들을 하나하나 해결하면서 모든 불가능에 접근하려 하지 않았을까?

우리 인간은 좀 더 강한 의지력을 가지고 용감하게 우리 자신을 직시하며 우리 앞에 가로놓여 있는 모든 한계를 정면에서 포옹해야 하지 않겠는가?!
좀 더 큰 용기를 가지고 우리의 영역 안에 있는 것을 좀 더 멋있게, 좀 더 아름답게 가꾸려 해야 하지 않겠는가?

좀 더 큰 용기를 가지자.
좀 더 지혜로워지자.
우리가 죽음과 동시에 無로 돌아가는 존재에 불과하다 해도 무엇이 두렵겠는가?  그러한 것이 우리 인간들 본연의 모습이라면 기꺼이 즐거운 마음으로 그것을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는가?

과거에 우리 인간들은 죽음이라는 장벽에, 불가해한 무한의 세계에 도달하여 어떤 절대적인 존재에 모든 것을 의탁했다.  그러나 이제 우리 인간은 그러한 일종의 체념적인 생활에서 벗어나 의연(毅然)히 그 스스로 존재해야만 할 것이다.



    6.  내가 지금 이 글을 쓰는 이유    


지금 내가 위와 같은 글을 쓰는 이유는 현재 생존하고 있는 나 자신의 생을 세상의 어느 것 보다도 가치 있고 귀한 것으로 만들어 보려는 의도에서 인데,  
내가 신, 우주에 대한 나의 의견을 피력하는 것은 참된 신관, 우주관을 가지므로 우리 인간 본연의 모습을 파악할 수 있고,  우리 자신의 본질, 위치를 깨닫는다는 것은 세상의 모든 것 중에서 가장 가치 있고 귀한 것을 갖게 되는 것으로,  그러한 것을 깨달은 인간은 이미 순간에 사는 존재가 아니라 무한 -영원할 수밖에 없는 우주와 하나가 되어 우주가 그러한 인간의 정신(마음) 속에 들어가므로,  자신이 우주의 영원성을 그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서 이다.

그러면 이제 나는 나의 과거의 수필과 이 위에 쓴 약간의 글을 통하여 이글을 보는 분들에게 나의 우주관 인간관의 대체적인 윤곽(輪廓)이 전달되었으리라 믿어지므로..
먼저 독립된 한 개인으로서 내가 누릴 생에 대하여,
그 다음에는 많은 인간들이 모여 이룬 사회의 구성원인 내가 누릴 생에 대하여 이야기 하겠다.



    7.  하나의 독립된 개체인 내가 누릴 생  


그러면 먼저 나는 하나의 독립된 개체로서의 내가 취해야 할 바람직한 생활태도,  내가 지향해야 할 목표에 대한 나의 생각을 말하겠다.

나는 나 자신을 구성하는 육체와 정신을 내 능력이 허용하는 한에서 좀 더 순수한 것으로, 좀 더 아름다운 것으로, 좀 더 강한 것으로 다듬어야 할 것이고, 나의 정신과 육체가 요구하는 것을 이상적인 절제 속에서 자연스럽게 충족시켜 나가는 삶을 누려야 할 것이며..
무한, 영원 할 수밖에 없는 우주를 받아들이는 나의 마음가짐은 구태여 어떠한 가정을 세워서 나의 이성 -지혜가 미치지 않는 미지의 세계를 규정지으려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나로서 이성적인 해결이 불가능한 문제는 불가능한 그대로 놓아두고, 나의 일생을 통하여 진지하고 겸손한 태도로 끊임없이 그 미지의 세계를 파악하려고 노력하는 것이어야 할 것이고,
아마도 현 시점에서, 나는 그 절대 미지의 세계를 나와 대치된 세계로서 극복해야 할 대상이라고 보아서는 안 되고,  그 무한한 세계 그대로를 내 마음 속에 받아들이므로, 그 무한 영원한 세계의 영원성을 나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나 자신의 모든 공포심, 편견 등을 극복해야 할 것으로 --나 자신을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보고 나 자신과의 투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나의 전력(全力)을 집중시켜야 하리라 믿어진다.



    8.  나의 세계관    


그러면 이제 나는 사회, 국가, 인류라는 큰 집단의 한 구성원인 나로서 누려야 할 생에 대하여, 공적인 내가 지향해야 할 목표에 대하여 생각해 보겠다.

인류라는 큰 집단의 구성원인 나로서 추구해야 할 최대, 최고의 목표는 인류 전체의 행복, 번영이며 세계의 평화이다.  우리 인류는 우리 자신을 그리고 우리의 영역 안에 존재하는 모든 자연을 가꾸고 다듬어, 우리의 정신과 몸이 갈망하는 것을 상호간에 해를 끼침이 없는 절제 속에서 자연스럽게 충족시키는 삶을 누려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인류사회의 평화를 위협하는 일들이 세계 도처에서 끊임없이 발생되고 있다.  

왜 인간들은 서로 질시하며 증오하고 있는가?
왜 그들은 서로의 행복 증진을 위하여 손을 맞잡지 아니하는가?
왜 꼭 상대를 밟고 그 위에 올라서지 않으면 자신이 밟히고 말 것이라고들 생각하고 있는가?

왜 그들은 그들의 가족, 사회, 민족 -국가는 아끼고 사랑하면서..
왜 같은 인간들로 이루어진 타민족, 국가는 증오하는가?
왜 자신의 국가 민족 내에서 지방간의 파벌의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편협한, 저열한 인간들이라고 멸시하면서도 타민족 국가에 대하여는 그들의 자유 권익을 힘으로라도 침해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는가?
너무나 어리석은 인간들이다.  조금만 더 마음을 넓게 가져도 될 것을...

조금만 더 시야를 넓게 가져도,
우리 인류의 사회는 하나로 통합되어 국가와 국가, 민족과 민족이 한 이웃과 같이 화목하게 지낼 수 있을 것이다.

어찌 이 좁디 좁은 지구상에서..  이 넓지도 않은 지구상에서..
왜 서로를 짓밟지 못하여 전전긍긍하고 있는가?



    9.  세계의 평화를 위해 우리가 극복해야 할 것.


그러면 이제부터 나는 평화로운 세계를 건설하는데 있어서, 우리 인간들이 극복해야 할 문제점에 관한 나의 어린 의견을 피력해 보려 한다.

내가 보건대 인류가 지상에 나타난 이래, 지금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경험해 온 사회적(外的)인 투쟁은 대체로 세 가지 원인에 의한 것으로 분류되는데,
그 첫째는 단순한 동물로서의 ‘생존본능’에 의한 것이고
둘째는 ‘이기적 욕망’에 의한 것이고
셋째는 ‘가치관(사상)에 대한 폐쇄적 집념’에 의한 것이다.

즉 투쟁(싸움)의 제1차적인 단계는
‘생존본능’에 의한 투쟁이라 볼 수 있는데, 그것은 다시
1)  생존하기 위한 투쟁  
2)  생존에 대한 위협을 제거하기 위한 투쟁으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1)  생존하기 위한 투쟁은 식량의 부족, 거주지의 확보 등의 문제로 싸움을 하여 확보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 상황에서 비롯되는 싸움이며
2)  생존에 대한 위협을 제거하기 위한 싸움은 물질적 조건이 생존하기에 충분히 갖추어져   있기는 하나, 어떤 타 집단, 타 세력과 대치된 상태에서  자신의 집단, 세력의 힘이 상대방의 힘에 눌리게 될 경우 초래될 생명, 재산, 가족에 대한 위협을 미연(未然)에 제거하기 위하여 경계하고, 적절한 기회를 포착하여 선제공격을 가하는데서 초래되는 싸움을 말한다.

그리고 투쟁의 제2차적인 단계는
‘이기적 욕망’에 의한 투쟁이라 볼 수 있는데
그것은 자신이 생존하기에 필요한 모든 조건이 갖추어져 있고, 또 자신이 생존에 아무런 위협도 느끼지 않는 상태에서 발생되는 것으로, 각 개인 그리고 집단이 결코 한이 없는 그들의 정신적 육체적 욕망을 충족시키려는 ‘이기적 욕망’에 의해 초래되는 싸움이다.

마지막으로 투쟁의 제3차적인 단계는
‘가치관(사상)에 대한 폐쇄적 집념’에 의한 것으로
자신이 확신하는 우주(종교)관, 세계관, 사회, 국가관 등에 강한 집념을 가지고, 그것에 반하는 어떠한 사상도 용인하지 않으려고 하는 데에 기인하는 싸움이다.

대체로 위의 세 가지 원인에 의해 세계의 불안과 공포가 조성되리라 믿어지므로, 이제 나는 그러한 문제들의 비합리성을 지적하므로 우리가 그러한 문제를 극복해야 함을 강조하려 한다.

먼저 ‘생존본능’에 의한 싸움에 대해 살펴보겠는데, 이것은 주로 인류의 문화가 아직 미개한 상태에 있었을 때에 작용한 원인으로 당시 인간의 한정된 사고력, 아직 초보적 단계에 있었던 자연 지배력 등의 문제로, 과거에 있어서는 시대적 조건에 의해 초래된 필연적인 결과였다고 보여지나..
그 과거의 본능적 생활을 영위한 인간들이 갖고 있었던 사고방식 - 상대방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고서는 자신이 생존할 수 없다는 - 이 현대 인간들의 의식 구조에 아직 잔존하고 있는 것에 문제가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그러한 사고방식은 의심할 여지없이 비합리적인 것이다.  현대와 같이 과학기술이 발달된 세계에 있어서는, 인구증가를 적절히 억제함으로써 우리 인간들은 서로를 해치지 않고 상호 협조하는 데에서, 더욱 큰 행복 번영을 누릴 수 있는 것이며..
사실 이러한 것을 그 이유로 든다는 것이 달갑지는 않으나, 현대의 고도로 발달한 파괴무기를 감안하더라도 우리 인간은 이제 과거의 생활에서 비롯된 양자택일(兩者擇一)식의 사고방식을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면 이제 ‘이기적 욕망’에 의한 싸움에 대해서, 그러한 욕망이 최대한으로 억제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 그리고 억제될 수 있으리라는 것에 대해 이야기 하겠다.

자기 자신의, 가족의, 사회-민족-국가의 이익, 행복을 우선적으로 추구하려는 것은 우리 인간들에게 공통된 본능적 욕망이다.  그러나 그러한 욕망이 절제 가운데서 충족되지 않는다면 인간의 사회는 도저히 상상도 못할 정도로 문란해질 것이다.  어찌 자신이 아끼는 것을 빼앗기고도, 자신의 권리 자유를 침해 당하고도 아무런 감정의 변화도 느끼지 않을 인간이 있을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세계에서 증오와 분노, 불안과 공포를 없애기 위해서, 우리의 이기적 욕망을 신중(愼重)한 절제 가운데서 자연스럽게 충족시켜야 할 것이며,
유한한 물질에 대한 욕망보다도 무한한 정신세계를 향한 욕망에 더욱 큰 비중을 두는 것이 타인에게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유익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그러면 이제 끝으로 ‘가치관에 관한 폐쇄적 집념’에 의한 싸움이 어리석은 것이라는 것을 말하겠다.
내가 어떤 한 인간이 자기 자신이 확신을 갖고 있는 가치관(사상) 이외의 어떠한 사상도 배격하는 것을 어리석은 짓이라 함은,
인간이 너무나 무력한 존재라는 생각에서 이다.
어떠한 인간이라도 무한한 우주를 인식하게 될 때, 자신의 능력에 절대적 자신을 가질 수는 없을 것이다.  모든 것의 근본이 되는 문제에 대해서 가정이라는 수단에 의해서 만이 결론을 내릴 수 있는 인간이, 어찌 자기 자신의 판단만이 절대로 옳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겠는가?
가정(假定)은 가정일 뿐이지 결코 의문의 여지가 없는 명백한 사실은 아닌 것이다.

그러면 이상 내가 추구하려는 목표에 대해서 그리고 그것에 이르는 길을 가로 막고 있는 문제점과, 그러한 문제점이 인간의 어리석음에 기인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나의 의견을 피력한 것으로, 공적인 내가 지향해야 할 목표, 세계를 받아들이는 나의 마음가짐에 대한 설명을 마치려 한다.



    나)  내가 나의 우주-세계-인간관을 어떠한 자세로 갖고 있을 것이며,
         타인의 그러한 것들에 대한 신념을 어떠한 눈으로 볼 것인가에 대하여  



    1.  나는 나 자신의 판단 -신념에 의해 살 것이다.  


한 인간이 어떠한 문제에 대하여 결론을 내릴 때, 그는 그 결론이 가장 정확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내가 우주 -세계 -인간에 대하여 내 나름대로 정의할 때 나의 판단이 다른 어떤 판단보다도 정확한 것이라고 생각함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나는 나의 가치관(사상)이 가장 -절대적인 것으로 옳은 것이라고 주장하지는 않겠다.
왜냐?  그것은 내가 나 자신을 완전한 존재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어찌 자기 자신을 완전한 존재로 보지 않는 인간이 어떤 한 가지의 생각만이 옳다고 주장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물론 내가 나의 생각이 가장 옳다고 주장하지 않는다는 것이, 내가 나의 가치관에 의하여 행동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한 인간이 행동을 할 때에, 그는 먼저 자기 자신 속에 갖고 있는 어떤 기준에 의해 마음속에서 어떤 결정을 내리지 않으면 안 된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인간의 모든 행동을 지배하는 것은  그의 마음 -정신인 것이며 그의 마음은 그가 가지고 있는 어떤 기준 - 가치관에 의해 모든 것을 판단 -결정한다.
그러므로 인생이란 것이 어떤 결단의 연속으로 풀이 될 수 있는 한,  나는 항상 선택 -결정하지 않으면 안 되므로, 나는 내가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 입장에 서게 되면, 조금도 주저치 않고 그 때에 내가 갖고 있는 가치관에 따라  결정 -행동할 것이다.



    2.  모든 인간은 자기 나름대로의 세계 -가치관을 창조할 뿐이다.


우리에 앞서 살다 간 많은 철인(哲人) 성인들이 있다.
그들은 각자 그들 나름대로 우주 -세계를 분석하였고, 인간이 나아갈 길을 밝혔다.  그런데 왜 그렇듯 지혜로웠던 인간들이 깨달은 우주 만물의 이치는 서로 상이한가?

나는 그 상이하다는 사실에서, 그리고 내 자신 그러한 것을 찾아보려고 노력하였던 경험에 의해서,  결국 인간이란 그러한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 치루지 않으면 안 되는 극심한 정신적 고뇌를 통하여, 제 마음 -정신 속에 자기 나름대로의 세계를 창조 -이룩할 뿐이지  결코 우주 만물을 보고 거기에서, 즉 외부의 세계에서부터 어떤 원리를 발견하지는 못하는 존재라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내 나름대로 세계 -모든 것을 분석하고 거기에서 얻어지는 결론 - 가치관에 의해 세상을 살아 나갈 것이며,  단지 나와 생각이 같지 않다 해서 남을 우습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고,  항상 진지하고 겸손한 태도로 나의 세계와 남의 세계를 비교해 보고, 남의 세계에 내가 미처 알지 못하던 것이 있다면 그것을 아껴주고, 내 세계를 좀 더 깊이 있고 아름다운 것으로 만들기 위해 흡수할 것이다.

나는 나의 정신세계를 다른 무엇보다도 사랑한다.
나는 나의 세계를 좀 더 귀한 것으로, 좀 더 아름답고 순수한 것으로 가꾸기 위하여 끊임없이 노력할 것이다.



    다)  어떠한 자세로 나는 살아갈 것인가?  


    1.  내가 나아가야 할 목표를 찾아 전진하는 내게 필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나는 먼저 내가 향하여야 할 목표를 정하겠다.  
그리고 일생동안 그 한 가지 목표를 향하여 전진하겠다.

그 목표를 정하는데 있어서
그것이 인간에게 가능한 것인가?  또는 나의 생존시에 성취될 수 있는 문제인가?를  따지지 않겠다.  단지 나는 그것이 나로서 추구해야할 최고의 가치를 갖고 있는 목표인가? 하는 것만을, 내가 지향하지 않으면 안 될 방향인가 만을 따져보겠다.

그것이 내가 나의 모든 것을 바쳐 추구할만한 가치를 갖고 있는 것이라면, 내가 -인간이 지향해야만 할 유일한 목표라면,  무엇이 나의 길을 막을 수 있겠는가?
인간으로서의 한계라는 것이 막을 것인가?!
나의 생존시에 성취할 수 없는 목표라는 것이 나의 뜻을 꺾을 수 있을 것인가?!

아무것도 내가 나아가는 길을 막지 못한다.
내게 있어서 나의 진실 된 마음이 향하는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나의 진실 된 마음이 추구하는 목표를 향하여 나아간다는 것!  
내게는 그것이 가장 만족스럽고 즐거운 일이다.

내가,  내가 목표로 한 곳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
그것은 내겐 별로 중요한 문제가 되지 못한다.
나는 내가 나아갈 목표 -길을 밝혀보고 그것을 향해 끊임없이 전진하는 것!  
그것만으로 만족한다.  

설사 내가 도중에서 쓰러질 수 없다 해도 나는 기꺼이 전진 할 것이다.  내가 나아가야 할 목표,  그것을 찾아 전진하는 내게 필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설사 내가 도중에서 쓰러진다 해도,  
그때의  내게는 아무런 불만도 아쉬움도 있을 수 없다!



    2.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우리가 해야 할 일’


과거의 인간들, 그리고 현대의 인간들 역시 어떠한 목표를 정하기 전에, 항상 그것이 가능한 것인지를 따져보는 습관이 있는 듯 하다.  
다시 말해 그들은 무의식적으로 먼저 그들이 갖고 있는 어떤 절대적 한계를 찾은 후에 자신이 추구할 목표를 찾으려 하는 것 같다는 말이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
우리 인간이 극히 무력한 존재인 것은 사실이나,  나는 인간이기에 극복하지 못할 한계점을 먼저 찾아,  그 안에서 나의 목표를 설정하고, 생을 계획하고 그것에 의해 살아가고 싶지는 않다.

나는 결코 내 능력의 한계가 어디에 있는 가를 먼저 찾지 않겠다.
나는 가장 먼저 내가 추구해야 할 목표 -이상을 찾겠다.

그리고 그 다음에  그 목표에 이르는 길을 가로막고 있는 장애물을 살펴보고, 그것을 가까이에 있는 것부터 하나하나 해결하면서 그 목표에 한 걸음 한 걸음 접근하여 가겠다.

나는 결코 현재에 내가 극복할 수 없는 문제라 해서, 그것을 절대 불가능한 문제로는 규정짓지 않겠다.  현재에 불가능한 문제라고 언제까지나 불가능한 문제일 수는 없지 않겠는가?

나는 결코 불가능이란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다.
내가 일생을 노력하여도 해결 못 할 문제들이 계속 남으리라는 것은 너무나 명확한 사실이나,  내가 최후의 순간까지도 해결 못한 문제라 해서 절대로 해결 불가능한 문제일 수는 없는 것이다.
나는 나의 일생을 통하여 소위 불가능이라고 불리는 것을 하나하나 가능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그것에 도전하겠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라고 지금까지의 인간들은 말해 왔다.
그러나 앞으로의 인간들은 이렇게 말해야만 될 것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