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인터뷰 기사는 콜린 휘트비(Colin Whitby)에 의해, www.themagicofbeing.com에 처음으로 게제 되었음.



우리는 이번 달에, 내가 금년에 읽었던 메시지들 중에서 나에게 가장 많은 영감을 주었던 채널링 메시지를 책으로 발간한 파멜라 크리베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행운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녀가 저술한 내용은 그녀의 웹 사이트에서 무료로 활용할 수가 있으며, 아니면 “예수아 채널링”이라는 책을 구입하여, 한가할 때(내가 선호하는 방법), 읽어볼 수도 있습니다. 이 인터뷰가 여러분에게 유익한 정보가 되기를 바랍니다.



당신의 영적인 각성은 어떻게 시작되었으며, 어떻게 해서, 자기표현(self expression)과 가슴에 초점이 맞추어진 방식으로 삶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나요?


애정문제로 내가 비탄에 빠져 있을 때, 나의 영적인 각성은 시작되었습니다.  내가 26살 때, 나는 학자가 되기 위한 길을 걷고 있었으며, 현대의 과학론(modern philosophy of science)과 관련된 박사학위 논문을 쓰고 있었습니다. 나는 삶에 아주 이성(理性)적인 방식으로 접근했으며, 어느 과학자와 결혼도 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어떤 철학자를 만나게 되었으며, 그 사람과 형이상학(metaphysics)과 영성에 대해 경이로운 대화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영성과 비전(秘傳:esoteric)에 대해, 나는 항상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학업을 위해 그러한 관심을 상당기간 억누르고 있었습니다. 이 사람과 나는 깊은 사랑에 빠지게 되었으며, 그 사람이 내 인생의 사랑(love:전부)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상황은 달랐습니다.
 
형이상학(metaphysics) : 세상의 궁극적인 근거를 연구하는 학문. 경험세계인 현실세계를 초월하여 그 뒤에 숨은 본질, 존재의 근본원리를 체계적으로 탐구하려는 학문으로서 영역적·부분적인 지식이 아니라 보편적·전체적인 지식을 추구한다.


나는 이혼을 했지만, 그 남자는 자신의 여자 친구한테 다시 돌아가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러한 체험으로 인해, 내 가슴은 갈가리 찢기게 되었으며, 내가 철학에 대해 느꼈던 매력도 어느 한 순간에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나는 감정적으로 아주 황폐해 있었으며, 따라서 “가슴에게 말을 거는” 일종의 진정한 앎을 간절하게 갈망하고 있었으므로, 그동안 내가 지니고 있던 이지(理知)주의 (이지를 중요시하고, 다른 일체의 인성<人性>을 경시하는 경향)도 결국 끝내게 되고 말았습니다. 논문은 1997년에 끝냈지만, 대학에 계속 남아, 나는 영적 및 비전의 문헌들을 많이 읽게 되었습니다.


나는 2000년에 영적인 교사이며, 또한 심령술사(psychic reader)였던, 어느 한 여인을 만나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내면적으로 깊은 변형이 이루어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녀는 내가 감정적으로 오래된 고통들을 지니고 있으며, 어린 시절뿐만 아니라, 당시에 내가 기억해내기 시작했던 과거의 여러 전생들로부터 유래된 아픔들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내가 알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그녀의 도움으로, 고통스러웠던 그러한 감정들을 다시 체험함으로써, 나는 그러한 체험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는 해방감을 느꼈으며, 내 생에 처음으로 자유로움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마치 내가 죽었다가,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과도 같았지만, 동시에 내가 비로소 내 자신이 되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정화(淨化 : catharsis)와 해방의 시기를 거치고 난 후, 뒤이어 곧 나는 2001년도에 게릿 (내 남편)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나는 인터넷에서 우연히 영성과 환생에 대한 그의 웹 사이트를 보게 되었으며, 그 후 그와 활발하게 연락을 주고받게 되었습니다. 게릿과 연결된 것은 마치 기적과도 같았습니다. 우리 사이에는 설명할 수는 없지만, 가족과 같은 아주 친숙한 연대감이 있었습니다. 엄청나게 충격적이었던 과거의 애정관계와는 달리, 우리가 함께 하게 된 것은 격정적인 감정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아주 잘 어울리는 깊은 기쁨과 말없는 앎에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게릿은 언제나 소수의 사람들만이 이해하고 있는 비전(秘傳)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영적인 치유사로서 우리가 함께 일하게 된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2002년에 딸이 태어나고 난 후, 우리는 직접 해야 할 일을 만들어내게 되었으며, 나는 그동안 내가 가장 하고 싶어 했던 일, 즉 에너지를 읽고(read), 영적인 교사로서의 일을 하며, 삶에 대한 철학적인 의문들을 의미 있고, 실질적인 방식으로 탐구하는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해서 채널링에 대해 알게 되었으며, 언제 처음으로 채널링에 마음이 끌리게 되었나요?


세스(Seth)의 채널러였던 재인 로버츠(Jane Roberts)의 책을 읽게 됨으로써, 1995년 경에 나는 처음으로 채널링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내 학위논문을 연구하면서, 나는 미국의 하바드 대학에서 한 학기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앞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나는 학문적인 철학에 대해서는 심한 환멸감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대학교 옆에 있던 조그만 책방에서, 나는 세스의 책들을 보게 되었으며, 이 “금단의 열매”(학문적인 기준에 따른 금단)라는 책에 곧바로 매료되었습니다. 이러한 책들이 철학적으로도 심오했을 뿐만 아니라, 매우 사랑스럽고, 영감을 불어넣어주는 책들이라고 나는 느꼈습니다.


이러한 책들을 읽게 됨으로써, 나는 깊은 영향을 받게 되었습니다. 나는 그것이 우주 혹은 내 영혼이 나를 일깨워, 삶에 대한 새로운 방향을 나에게 제시해주었다고 지금 느끼고 있습니다. 그 일이 있은 후, 몇 년 동안, 나는 다른 저자들이 쓴 채널링과 관련된 많은 서적들을 읽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세스가 가장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 나에게는 그 책이 전혀 새로운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채널링과 관련된 서적은 더 이상 읽지 않고 있습니다.


예수아가 당신과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언제 알게 되었으며, 그의 에너지를 뭐라고 설명할 수 있나요?


2002년 어느 날 저녁, 나는 내 남편 게릿과 개인적인 일을 하고 있었으며, 그 때, 나는 전에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어떤 존재가 내 옆에 있다는 것을 눈치 채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에, 나는 내 주위에서 종종 느끼곤 했던, 가이드들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익숙해 있었으며, 이 가이드들은 애정 어린 암시와 쾌활함으로 나에게 행복감을 가져다주곤 했었습니다. 이들은 개인적인 가이드들이었습니다. 하지만 내가 예수아의 존재를 느꼈을 때에는, 그 때와는 아주 달랐습니다. 그 존재는 근엄하고, 깊은 자각을 지닌 에너지체로 느껴졌으며, 내가 이전에는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을 정도로 아주 안정적이고, 선명했었습니다.


처음에는 약간 놀랐습니다. 나는 그 에너지체에게 “당신은 누구냐?”고 물었으며, 그러자 내 내면의 눈앞에 “예수아 밴 요셉”이라는 이름이 아주 선명하게 나타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나는 즉시 이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직감했습니다. 곧바로 내 마음속에는 회의적인 거부감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 전에, 내 영혼은 예수아를 아주 친숙한 존재로 순식간에 인식했습니다. 내 마음은 예수아가 내가 앉아 있는 방에 내 옆에 있을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며, 그러한 생각은 주제 넘는 것이라고 설득했지만, 내 가슴은 예수아가 우리와 아주 가까이 있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라고 나를 안심시켜주었습니다.


예수아는 정말로 우리와 멀리 떨어져, 우리 위에 높은 곳에 존재하는 권위 있는 인물이 아닙니다. 그는 우리의 친구이며, 우리를 결코 심판하지 않기 때문에, 여러분이 신뢰하고, 마음의 문을 열고 받아들일 수 있는 존재입니다. 내가 지금까지 예수아를 알고 있는 동안에도, 비록 그가 아주 직선적이고, 솔직하기는 해도, 나를 결코 심판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예수아는 정말로 내가 내 자신에게 솔직해지고, 내가 지닌 두려움을 직시해야 하며, 이기적인 논리로 그러한 두려움들을 덮으려고 하거나, 정당화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나에게 당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어떤 면에서 보면, 예수아가 단호하지만, 그것은 아주 애정 어린 단호함입니다. 그러한 단호함으로 인해, 여러분은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이 꼭 만족스럽고,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만은 아닙니다. 사랑은 편안함에서 벗어나, 종종 용기 있고, 취약해지도록 요구하기도 합니다.


내 경우에는, 예수아를 채널링할 때, 공개적으로 내 자신을 표현하게 됨으로써, 내 내면에는 이겨내기 아주 어려웠던 많은 두려움과 불안들이 일어났었습니다. 내 본능(혹은 생존의 메커니즘)은 내가 아주 무서운 장소라고 생각했던, 이 세상을 등지고 싶어 했습니다. 예수아는 내가 세상 속에 있으면서도 안전하다고 느끼며,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는 동안에도, 두려워하거나, 분열되는(fragmented) 것이 아니라, 자의식을 지닌 채, 중심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나에게 가르쳐주었습니다.


나는 지금도 이렇게 하는 방법을 여전히 배우고 있으며, 큰 진전을 이루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수아 채널링을 통해, 나는 아주 많은 것들을 받았으며, 전 세계에 존재하는 내 영혼의 가족들과도 연결될 수 있었습니다. 예수아의 메시지로 인해, 전 세계 곳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큰 감동을 받았다는 소감의 편지를 나에게 보내주었습니다. 나는 지구에서 예전보다 더 많은 편안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여기 지구에서 내 영혼이 정말로 하고 싶어 하는 일을 하고 있는데 따르는, 깊은 성취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