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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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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학의 대해]에서 졋지 씨는 말하길, “주기의 가르침은 비록 가장 덜 알려져 있으며 자주 언급되지 않았지만, 전체 신지학 체계에서 가장 중요한 가르침 중에 하나이다.” 그리고 H.P.B.도 [씨크릿 독트린]의 세 가지 근본 명제를 제시할 때, “주기의 법칙의 보편성”을 두 번째로 제시했다. 주기의 법칙은 생명의 모든 부문, 즉 인간 이하의 모든 세계뿐만 아니라 인간과 그 이상의 세계들에서도 보편화되어 있다고 신지학은 주장한다. 모든 행위들, 생각들 그리고 감정들은 하나의 원이 아니라 그 이전 보다 높거나 낮은 스프링의 코일처럼 되돌아온다. 우리가 경험하는 것은 과거로부터 오는 인상들이며 우리가 만들어 내는 것은 적당한 조건이 되면 새로운 형태로 언제가 다시 돌아올 것이다.
 
모든 사건들의 주기적인 회귀의 법칙은 너무나 일반적이어서 그 예나 적용되는 것들을 인용하기가 어렵지 않다. 아마도 천문학에서 이 법칙의 작용하는 가장 많고 분명한 예들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천체들이 항상 순환하는 배열 속에서 사건들의 나선형 형태의 길을 추적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시대라는 거대한 기간을 이해하기 시작할 것이다.
 
우리 지구는 하루에 한번 돈다. 그러나 다른 말 같은 시간이 되었을 때 태양 주위를 도는 원에서 다른 위치로 움직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일년에 한 번 태양 주위를 돈다. 그러나 시작점으로 다시 돌아올 때 그 지점이 움직였다. 왜냐하면 태양 그 자체가 하늘에서 어떤 지점을 중심으로 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돌고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주기적으로 회귀한다. 현현한 어떤 것도 주기의 법칙에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이 없다는 것과 대자연 속에는 보편적인 법칙이 있다는 신지학에 과학이 동의하기 시작했다.



관찰된 주기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날씨의 패턴들 속에서 주기는 수 년간 관심을 끌었으며 기상학의 주요한 부분이 되고 있다. 나무의 나이테의 도움으로 우기와 건기의 주기를 관찰하고 기록되고 있다. 미래에 재발할 것을 예측하기 위해서 빙하기와 온난기의 주기를 기록하고 있다. 지역의 날씨 주기들은 수 년간 농부들을 위한 연감의 중심을 차지하였으며 식물들의 성장 주기와 곤충들의 주기적인 폐해도 항상 농업 세계에서는 핵심적인 요인들이었다.

“생명의 미묘한 조수”라는 리더스 다이제스트(1963년4월) 글에서 자연학자 루더포드 플래트는 신지학의 입장과 일치하는 식물과 동물 그리고 인간과 진행했던 재미있는 실험 결과를 기록했다. 그가 말하길,


거의 모든 식물들과 동물들은 외부의 힘들과 연결되어 있는 특이한 행동 주기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최근에 다양한 연구들을 보면 인간 또한 주기들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체온과 혈압이 주기적으로 올랐다가 내려간다. 기분과 에너지가 주기적인 변화를 따른다.


인간과 하위 유기체들의 바이오리듬이 공기중의 전기나 중력장 그리고 기압의 높고 낮음과 같은 힘들에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많은 연구들이 제시해 준다. 지구상의 이런 힘들은 외부 공간에서 오는 힘들에 영향을 받는다. 즉, 달의 단계, 지구를 둘러싸고 있는 감마 광선들과 X레이, 우주광선들 그리고 지구의 대기에 퍼붓는 대기권 밖에서 오는 다른 전자기장들과 그 전자기장들의 파동에 의해서 영향을 받는다. 예를 들면 태양 흑점의 주기가 우리들에게 영향을 준다. 이런 모든 혼란들 속에는 일시적인 오르내림이 있고, 넓고 규칙적인 움직임이 있으며, 시간 주기, 일주기 혹은 한달 주기 그리고 그보다 더 큰 주기의 리듬이 있다.


비록 과학이 이 분야에서는 발전하지 않았지만 신지학에서는 대륙의 지형을 바꾸는 홍수나 빙하기 혹은 지각의 격변과 같은 기상의 대혼란은 기간이 엄청나게 길지만 모두 주기적이라고 말한다. 기상의 변화와 11년 주기의 태양의 흑점과 관련을 찾으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결론이 확실하지 않다. 인간의 생각과 행동의 동적인 영향을 포함하는 많은 다른 요인들을 감안해야 한다고 신지학은 말한다.


블라바츠키 여사는 [씨크릿 독트린(I,541)]에서 11년 주기에 대해서 언급했다. “이렇게 태양의 만반타라 기간 동안 혹은 생명이 있는 동안 태양이 심장인 태양계 전체를 관통하는 생명액의 규칙적인 순환이 있다. 이것은 인간의 육체 속에서 혈액 순환과 같은 것이다. 인간의 심장이 그러듯이 태양도 그것이 돌아오면서 규칙적으로 수축한다. 단지 그것을 몇 초 만에 하는 대신에 태양의 혈액 순환하는 데 10년이 걸리고 폐를 지나서 정맥과 동맥으로 가기 전에 심방과 심실을 지나가는데 1년이 걸린다.”


역사학자들은 역사적인 주기를 주목했다. 기록된 역사가 있던 시기부터 지구 상에 문명의 전성기가 주기적으로 출현했다. 이런 시기를 필연적으로 암흑기가 따랐다. 그리고 다른 주기에 또 다른 치장을 하고 전성기가 도래했다.



[아이시스 언베일드]에서 H.P.B.는 말한다.


이렇게 우리는 역사 속에서 인간의 진보의 흥망성쇠가 주기적으로 교차하는 것을 본다. 이 세계의 위대한 왕국들과 제국들은 위대함의 절정에 다다른 다음에 같은 법칙에 의해서 쇠퇴한다. 인류가 다시 강력하게 다시 한번 일어설 때까지 가장 최하위 지점에 도달한다. 그 지점은 주기적으로 상승하는 법칙에 의해서 이전에 내려간 지점보다는 더 높은 지점이다.


신지학에 따르면 이것의 원인은 하나의 문명 속에 같이 일하는 엄청난 사람들 전체가 미래 어떤 시기에 함께 환생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것 때문이라고 한다. 졋지 씨는 [신지학의 대양]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개인들과 국가들은 특정한 흐름 속에서 규칙적인 순환 기간 동안에 지구로 돌아온다. 그래서 한 때 작업했던 바로 그 사람들과 문명 그리고 예술들을 지구로 다시 가져 온다. 그리고 국가와 민족 속에 있는 단위들은 보이지 않는 강력한 줄로 함께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주기가 약속된 기간을 다하면 그런 단위들로 구성된 전체가 느리지만 분명하게 다 함께 다른 시대에 새로운 민족과 문명 속으로 출현하게 된다.


이집트 문명과 미국 문명의 유사성이 있으며 특히 고대 로마와 현대 뉴욕이 비슷하다고 지적한 역사학자들이 여러 명 있다.


세부사항까지 들어가지 않고 사업이나 인구, 전염병 혹은 개인들의 병들이 늘어나는 것이 주기적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관찰했다. 개개인의 우울함과 즐거운, 정신적 감정적인 주기들도 주목할만하다. 그리고 많은 관심을 끌지 못했지만 사상과 위대한 가르침들 그리고 그런 가르침들을 가져올 사람들의 주기적인 회귀도 있다. 이 마지막 부분은 “아바타들의 주기”라고 불려지며 나중에 언급한 매우 중요한 것이다.




주기적인 회귀의 원인은 무엇인가?



H.P.B.는 [신지학의 열쇠(p.83)]에서 우주 밖에 있는 신의 생각에 반대한다. “우리는 창조를 믿지 않는다. 그러나 엄청난 기간을 포괄하는 주기적인 간격으로 우주가 주관적인 세계에서 객관적인 세계로 주기적으로 연속해서 현현하는 것을 믿는다.” 모든 거대한 주기인 현현기간 시초에 작은 주기들의 기조를 제공해주는 어떤 진동율이 정해진다는 사상의 토대를 마련했다. 이런 주기들이 어떻게 시작되는가는 졋지의 [신지학의 대양(p.118)]에서 말한다. “거대한 주기를 결정하고 작용하는 힘은 영적인 존재로서 여겨지는 인간의 힘이다.” 그리고 크로스비 씨도 [질문과 대답(p.177)]에서 말한다. “이런 모든 주기들은 이 태양계와 우주의 진화 초기에 있던 존재들의 지성과 힘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거대한 주기들을 세운 그런 존재들이 때때로 출현하고 회귀하는 것이다. 주기란 이전에 있던 것이 돌아오는 것이다.” 



수 백 만년 이상 걸리는 칼파와 유가들이 거대한 주기들이다. 그것들은 인간 진화의 주기들로 “진화”라는 주제에서 세부적으로 다룰 것이다. 그런 주기들 중에 하나가 분점들의 세차를 나타내는 25,868년 주기의 항성년(Sidereal year) 주기이다. 분점들의 세차는 하늘의 순환을 끝내는 주기이다. [신지학의 대양(p.121)]에서 졋지는 말하길,



마지막 항성년이 9,868년 전에 끝났다고 말한다. 그 당시 지구 상에서 격렬한 이변들과 국가들의 분할이 있었다고 한다. 이 거대한 기간이 끝남으로써 지구를 우주의 새로운 공간 속으로 들어가게 했다. 지구 자체의 궤도가 아니라 자체의 궤도를 도는 태양이 실제로 앞으로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작은 주기들도 같은 법칙을 따르며 큰 그룹이나 작은 그룹 속에서 함께 활동하는 존재들이나 그것들에 의해서 영향을 받는 개개인들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윤회와 카르마는 인간들에게 직접적으로 적용되는 주기성의 법칙의 두 가지 측면이다. 그리고 주기의 작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것들은 카르마의 법칙의 관점에서 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것들은 카르마의 법칙이 작용하는 수단들이다. 카르마의 법칙은 충동이나 행동 혹은 생각을 보낸 자에게 다시 되돌아가도록 만드는 힘이다. 모든 생명의 본질적인 하나됨(ONENESS)과 그런 하나됨을 보존하는 카르마의 법칙은 인상들을 반드시 돌아오게 만드는 원인들이다.

 


주기들이 물리적으로 우리를 지배하는가?




이 법칙이 우주와 이 세계 속에서 작용하기 때문에 그 법칙은 똑같이 우리들의 작은 세계인 인간의 육체 속에서도 작용한다. 1996년 [내셔널 옵저버]는 시간을 재는 자연의 신비스러운 능력에 대해서 보고했다. “생물학적 시계는 인간의 내적인 기능들뿐만 아니라 다른 생명의 거의 모든 형태들 속에 있는 기능들을 조절하는 리듬믹한 주기들을 자극한다. 인간의 낮과 밤, 질병들, 문젯거리들, 혼란의 시기 및 명백한 순간들 모두가 거대하게 상호 연결되어 있는 생물학적인 주기에 의해서 결정되거나 조화를 이룰 수 있다고 다른 보고서는 말한다.”



생물학적 시계들은 아드레날린 부신을 일깨우면, 부신 분비물들은 심지어 사람이 잠에서 깨어나기 전에 육체로 하여금 그 날 하루의 활동을 준비하도록 만든다. 머리 속에 있는 시계는 심지어 알람 시계가 울리기 몇 분 전에 깨어나도록 만든다. 내면의 시계들은 이른 아침 온도가 낮을 때 사람이 체온이 낮 시간 높을 때처럼 올라가도록 명령을 한다. 심장 박동이 빨라진다. 호흡도 점점 더 빨라진다. 그리고 취침 시간이 다가오면 생물학적 시계들은 잠을 준비하기 위해서 이런 과정들을 내리기 시작한다. 이런 주기들에 대해서 더 많은 이해를 하게 되면 의학적인 치료를 개선시킬 것이라는 것은 당연하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H.P.B.는 [아이시스 언베일드(274)]에서 말한다.


그러나 인류의 어떤 질병들, 성향들, 행운과 불행들이 어떤 때는 더 빈발하는 주기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육체적, 도덕적인 일에도 유행의 주기들이 있다. 어떤 한 시기에는 “종교적인 모순의 기운이 인간 성질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가장 잔인한 격정을 자극해서 서로 박해하고 피를 흘리며 심지어 전쟁까지 일으킬 것이다. 다른 시기에는 헌정 당국에 저항하는 것이 하나의 유행으로 전 세계 반 이상에서 가장 치명적인 신체적인 불안으로서 동시에 급속도로 퍼질 것이다.”


우리들 본성 속에 있는 무엇이 이런 리듬들의 원인인가


수 년간 이런 리듬들의 원인에 대한 추측들이 있었다. 어떤 주기들은 분명히 천문학적 주기들, 즉 달과 관련 있는 주기들 그리고 일일 주기들과 관련이 있다. 그러나 다른 것들은 여전히 신비이며 물질계 뒤에 있는 힘들을 인정하지 않는 한 신비로 계속 남아 있을 것이다. 어떤 과학자들은 모든 신체적인 리듬들이 심장의 기본 리듬에 맞추어져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더 이상 진전이 없다. 단지 태아의 심장을 인지할 수 있자마자 그리고 혈액이 형성되기 전에 신경들이 심장에 도달하기 오래 전부터 아주 작은 태아의 심장 세포가 박동을 한다는 것을 주목한다. 이것에 대해서 신지학은 어떻게 말하는가? 오컬티즘의 관점에서 이런 현상을 졋지 씨는 이렇게 말한다.




자연에는 물질계 혹은 정신계 모든 부문에서 작용하는 법칙이 있으며, 파동과 억제의 법칙이라고 부를 수 있다. 어떤 때는 진동으로 다시 나타나고, 그리고 다시 끌어당기거나 밀치거나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변화들은 모두 겉모습에 불과한 것이고 바탕에서는 모두 같은 것이다. 식물들 속에서는 수액이 한 방향인 위로 올라가도록 만드는 원인이고 같은 방향으로 돌아오도록 하지 않게 만드는 것이다. 우리들 혈관 속에는 심장에서 나온 혈액이 있다. 그리고 보낸 길인 심장으로 다시 돌아오지 못하도록 하는 작은 밸브들이 있다. 의학계나 해부학계는 혈액이 이런 밸브들을 지나가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그것이 심장에 의해서 전달된 압력인지 혹은 혈관 속에 있는 혈액이 가볍게 눌러주는 외부에서 온 공기 중 압력인지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오컬티스트들은 이런 경험적인 추론에 제한을 받지 않는다. 그들은 중심으로 가서 그 충동이 심장으로부터 오고, 모든 신비가들이 말한 교차하는 진동을 가지고 있는 아스트랄 심장 혹은 아카샤로부터 충동을 받는다고 선언한다. 신비가들은 자연에는 수축과 확장의 교차하는 진동이 있다고 말한다.



언제 인상들이 돌아올 지 무엇이 결정하는가?



[주기적인 인상과 회귀 그리고 진화]라는 글에서 졋지 씨는 말한다: “주기의 법칙은 우리의 진화를 지배하는 지고의 법이다; 우리가 그렇게 많이 얘기하는 윤회도 주기의 법칙이 작용하는 것이고 지고한 법칙이다.” 또한 이 법칙의 한 면은 인상들의 회귀라고 말한다. 어떤 한 나라나 민족의 생각들 혹은 행위들은 인상을 만들게 된다. 상당히 중요한 느낌들이나 싸움들 혹은 사건들은 모두 우리들 속에서 인상을 형성하게 된다. 과거의 위대한 사건들은 우리들에게 인상을 남겼고 그 당시 있었던 사람들에게 인상을 남겼다. 주기의 법칙은 그런 인상들이 되돌아오도록 요구한다.



같은 글에서 졋지 씨는 말한다: “그래서 인간 속에서도 그런 인상들이 되돌아오는 조수가 있다. 즉, 일단 어떤 한 가지 일을 하면 그것을 반복할 성향이 있게 될 것이다. 그것을 두 번째 하면 그 영향을 배가 될 것이고 같은 일을 반복할 성향이 더욱 커질 것이다. 이렇게 우리들 인격에서 주기적인 인상들의 일정한 회귀가 나타난다.



이런 인상들은 되돌아 올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우리들 일부분이고 카르마의 법칙에 의해서 지배되기 때문이다. 언제 돌아올지는 또 다른 문제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주기들의 기간이 최초 충동의 강함 정도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조건이 적합할 때, 카르마적인 조정처럼 가장 영향이 클 때, 건설적인 혹은 교정적인 조치가 가장 클 수 있을 때 인상들이 되돌아온다고 가르침은 지적하고 있다.



같은 글에서 졋지 씨는 이렇게 설명한다:


그러나 개개인이 어디에 있건 문명 속에 있는 개개인은 자신 속에 기록을 남긴다. 그리고 파탄잘리가 설명한 가장 유리한 환경들 속에서 들어갈 때, 어떤 도구를 얻었을 때, 과거의 인상을 끌어낼 것이다. 고대인들이 말하길, 개개의 행위는 그 밑에 하나의 생각을 가지고 있고, 개개의 생각은 정신적인 인상을 남긴다고 한다. 그리고 도구가 제공될 때, 그 때 새로운 조건이 줄이어 일어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자신들 속에 우리가 행했던 모든 것들의 인상을 간직하고 있다. 그리고 다시 반복해서 되돌아왔을 때 어쩌면 중세를 지나서 영국이나 독일, 프랑스로 돌아왔을 때 마침내 지급 제공된 것과 같은 환경에 온 것으로 그것은 자연적으로(물리적으로) 다른 모든 면에서 우리와 우리 뒤에 오는 사람들로 하여금 가장 잘 할 수 있게 해 주는 환경이다.


주기들은 시간의 기간만을 나타내는가


그 법칙은 여러 방법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사건들 사이에 시간을 나타내는 것만 보기도 한다. 즉 그런 사건들의 다시 출현하는 규칙성 같은 것. 이것은 어떤 주기들 속에서 진행된 많은 것이 우리들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나무나 잎 혹은 씨앗의 일년 주기 속에서 일어나는 많은 것이 우리들 눈에 보이지 않는다. 같은 이유로 더 큰 천문학적인 주기들 속에서 우리는 단지 시간의 표시만 인식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신지학을 연구하면 전부는 아니더라도 많은 주기들이 한 해의 계절과 유사한 기간을 거쳐 간다. 그 주기들은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주기들은 유아기, 청년기, 성년기 그리고 노년기를 가지고 있다. 인간의 진화를 연구하면 각각의 인종은 네 개 계절 혹은 유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거들은 크리타 혹은 사티야(황금시대) 유가, 트라타(은시대), 드바푸라(구리시대) 그리고 칼리(철기시대)이다.


황금시대는 인종이 유아기에 있을 때로 위대한 스승들에 의해서 배우고 안내되는 시기이다. 은시대는 젊은 시기로 대스승들이 뒤로 물러나서 입문한 왕들이 그 자리를 대신한 시기이다. 구리시대는 성년의 시기로 인종이 위대한 철학자들과 입문의 학파들의 도움으로 스스로 남아 있는 시기이다. 구리시대인 칼리유가는 물질과 분리감, 영적인 진리들에 대한 무지 그리고 악이 우세한 시대이다. 현재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시기가 칼리유가이다. 많은 불리한 점들과 어려움들이 있으나 또한 많은 유리한 점들도 가지고 있다.


칼리유가는 모든 유가들 중에서 가장 짧다. 황금시대인 크레타 유가의 4분의 1에 해당한다. 아마도 이런 이유 때문에 칼리 유가에서는 모든 것이 더 빠르게 일어나는지도 모른다. 우리들의 모든 경험들, 카르마 그리고 교훈들이 매우 빠르게 일어난다. 그 결과 더 많은 것을 성취할 수 있고,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으며 어떤 다른 시대들보다 이 시대에서 더 많은 진보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이 시대에 혹은 우리들 속에 있는 이기심을 제지하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든 네 배의 효과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신지학의 대양]에서는 칼리유가는 크리슈나의 죽음이 있던 기원전 약 3,102년에 시작되었다고 하며 총 기간은 432,000년이라고 한다. 어떤 사람들에게 이것은 실망스러운 것이나 이런 시대에 개인적으로 집단적으로 많은 것을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우리들 내면의 존재에 영향을 주고 있던 영적인 지식을 적용함으로 상승할 수 있다. 집단적으로 다음 황금시대의 씨앗이 될 핵을 재건함으로써 토대를 세우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두 가지 생각: 하나. 지구 상에 있는 모든 인종들은 같은 유가 속에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칼리유가 속에 있는 반면 다른 그룹들이나 인종들은 유가의 다른 면 혹은 다른 유가 속에 있다. 네 가지 유가들은 각각 사계절 혹은 낮은 유가들을 가지고 있다. 둘. 상응의 법칙을 사용해서 질병들이나 사업들, 흥미거리들, 종교들, 습관들 그리고 유행들과 인간의 다른 많은 활동들을 봄으로써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나의 친구여 황금시대는 지나갔다. 

단지 선만이 그것을 다시 데려올 힘을 가지고 있다. - 괴테

이런 지식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만약 우리가 주기적인 회귀의 법칙에 주의를 기울인다면 정신과 육체를 수련시키려고 시도할 때 많은 시간과 노력을 절약할 수 있다. 우리는 노력의 패턴을 세운다. 우리는 어떤 것을 한 번 하면 다시 하게 된다. 그러면 이제 하나의 주기를 시작한 것이고 세 번, 네 번째는 인상의 회귀로 더욱 많은 충동을 느끼게 된다. 규칙적인 시간에 식사를 하면 소회기가 준비하고 활동하게 된다. 그리고 음식을 적절하게 흡수한다. 만약 하루 주기 혹은 일주일 주기든 같은 주기로 공부를 하면, 그 주기가 되었을 때 정신이 일할 준비가 된다. 그리고 우리는 더 많은 것을 하게 된다. 규칙적인 주기로 운동을 하면 이전에 했던 것을 세우도록 도와주는 인상들의 주기적인 회귀를 만들게 된다.


그러면 습관들이 있게 된다. 습관들은 우리가 어떤 습관을 만들었던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다. 이런 습관이 우리 본성의 일부분이라고 믿게 될 때까지 같은 시간에 반복해서 같은 것을 생각하고, 느끼고 혹은 행동함으로써 주기의 법칙에 따라 그것들을 만들었다. 그것은 좋든 싫든 우리 도구에 우리가 만들어 넣은 어떤 것이다.


우리들 습관들 중에 많은 것들은 유익한 것이다. 예를 들면 걷는 것, 악기를 치는 것, 운전하는 것 그리고 생각하고 사람들을 다루는 방식 등등. 심지어 우리 육체의 활동도 수많은 진화의 역사 동안 내재되어 쌓아온 무수히 많은 복잡한 습관들로 생각할 수 있다. 이것들은 모두 좋고 필요한 습관들이다. 그리고 그것들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없애고자 하는 것들이 있다.


졋지 씨는 같은 글에서 해야 할 첫 번째 일은 이런 습관들이 돌아오는 주기를 확인하는 것이라도 지적한다. 만약 자신감을 잃었을 때 의기소침하는 주기를 가진 다면 혹은 자기 연민이나 없애고자 하는 다른 주기들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그 날과 시간 등을 체크하고 돌아올 때를 잘 경계해야 한다. 일단 주기가 형성되면 준비할 수 있고 그 주기 대신에 반대되는 충동이나 주기를 만들 수 있다. 일단 돌아오는 성향이 무엇인지 이해하면 돌아오는 성향에 직면해서 명랑하게, 자신감 있게 그리고 희망차게 행동할 수 있다. 만약 이것을 규칙적으로 한다면 오래된 습관을 지울 수 있고 새로운 습관을 시작할 수 있다고 말한다. 또한 파괴적이고 이기적인 주기에 대처하는 가장 좋은 방법들 중에 하나는 바로 그 때 나가서 어떤 다른 것을 하는 것이라고 제시한다.


알고 있는 다른 많은 것들이 있다. 겨울에 식물을 정원에 심지 않는다. 계절에 따라서 가고 파도를 따라서 항해한다. 종종 친구가 가장 어두운 시간 속에 있을 때 우리의 도움을 이용할 때이고, 절정에 있을 때는 우리의 충고를 듣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안다. 우리들 대부분은 생각하는 것보다 많이 주기에 대한 지식을 이용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들을 명심해서 그 지식이 우리를 위해 활동하도록 만듦으로써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주기적인 인상과 회귀 그리고 진화]라는 글에서 졋지 씨는 말한다.


당신이 어떤 것을 할 기회가 생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안 하면 어쩌면 다음 100년간 그 기회를 다시 가질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오래된 어떤 것이 주기들의 선을 따라서 당신 앞에 돌아온 것이다. 무시할 수 있듯이, 그것을 무시하면 같은 기회는 수 백 년 간 돌아오지 않을 거이다. 어쩌면 다음 생까지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지만 같은 법칙에 따라서 결국에는 돌아올 것이다.



무엇이 주기의 끝을 표시하는가


한 주기의 끝은 여러 면에서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것이다. 그것은 종종 더 이상 쓸모가 없는 오래된 형태들을 청소하는 것을 수반한다. 그리고 주기들은 서로 겹치기 때문에 우리는 종종 형태들의 파괴와 새로운 형태들을 동시에 본다. 죽어서 파괴되어 가는 나뭇잎들 속에서 부드러운 가지가 새롭게 성장하는 것을 보게 된다.



위대한 주기의 교차로에 새로운 인종의 개발을 준비하기 위해서 오래된 인간들의 작업들이 쓸려져 가는 큰 격변들이 있다고 신지학은 주장한다. [신지학의 대양]에서 졋지 씨는 말한다:



위대한 주기들의 교차로에서는 역동적인 결과들이 일어나며 지구의 극을 바꾸거나 다른 대이변들로 지구의 표면을 바꾸게 된다. 인간은 에너지를 만들고 조장하고 쏟아내는 위대한 발전기이다. 그리고 인종을 구성하는 아주 많은 인간들이 이렇게 에너지를 만들고 배분할 때 분명하고 대이변이라고 하기에 강력한 그런 역동적인 영향인 결과도 생기게 된다.



그 결과들을 지배하는 주요 법칙들은 주기적인 규칙 하에 움직이는 카르마와 윤회의 법칙이다. 인간이 이 법칙들에 따를 뿐만 아니라 모든 물질 원자와 물질 덩어리가 인간과 동시에 지속적으로 변화를 겪게 된다. 그러므로 그것은 사상가가 겪는 것에 상응하는 변화들을 나타낸다. 물질계에서 지구의 고체들 위에 있는 기체들과 함께 작용하는 전기적인 액체와 다른 액체들을 통해서 영향이 나오게 된다. 위대한 주기의 변화로 폭발적인 시점에 도달해서 지진, 홍수, 화재 및 빙하 같은 격렬한 대이변을 유발한다.



재앙들은 진화의 필요한 부분인가

오래된 형태를 파괴하는 것은 때때로 필요하다. 그러나 이런 파괴가 대재앙 같을 필요는 없다. 하나의 교훈에서 다른 교훈으로 진화해 감에 따라서 우리가 사용하는 형체들은 점점 더 쓸모가 없어진다. 그리고 우리는 더 나은 집과 더 나은 도구들로 이사해야 한다. 오래된 형체들은 재활용되고, 물질들과 생명들은 다시 새롭게 더 좋은 도구들 속에서 사용된다. 그 형체들이 종교이건, 제도이건, 문명이건 혹은 인간의 형체이건 오래된 형체들은 바뀌어야 되거나 파괴되어야 한다. 그것이 파괴가 되는 이유는 이런 형체들을 사용하는 존재들이 변화에 저항하여 얼마 지나지 않아서 변화의 힘들이 폭발하는 시점에 도달해서 대재앙을 겪게 되는 것이다.
 
자연은 이런 변화를 서서히 진행하는 방법을 가지고 있다. 어린 아기의 형태가 사라지고 어릴 적 형태가 사라지는 등 이런 과정들은 서서히 진행된다. 나중에 극적인 동요를 유발하는 방식으로 젊은 시절을 붙잡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모든 생명의 주기적인 성질을 이해하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마음과 변화를 제지하려는 욕망 그리고 어느 정도의 탐욕으로 인해 필요한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서는 격렬한 파괴가 있었다. 우리 모두는 변화를 거부하는 제도나 기관들을 보았고 한 순간에 쓸모 없게 되었다. 우리는 파괴와 변화라는 “작은 주기”를 시작하게 해서 살아 남게 만든 사람들을 보았다. 우리는 법칙을 사용할 수 있고 혹은 그 법칙에 의해서 사용될 수도 있다.



무엇이 아바타의 주기인가


[씨크릿 독트린]은 위대한 주기가 시작할 때 영원하고 진실한 철학의 씨앗을 뿌리기 위해서, 위대한 주기가 끝날 무렵에 우리가 망각해 버린 것들을 상기시키기 위해서 위대한 스승(아바타)들이 환생한다는 것을 나타내 주고 있다. 그리고 주기들은 상호 겹친다고 들었기 때문에 이런 두 가지 충동이 많은 경우에 두 가지 다른 관점에서 본 같은 노력이라고 믿을 수 있다. [신지학의 대양]에서 졋지 씨는 말한다:


아바타들의 주기는 여러 개 작은 주기들을 포함하고 있다. 위대한 주기들을 보면 힌두인들 사이에서 출현한 라마와 크리슈나이고, 이집트인들 사이에 출현한 메네스(Menes)이고, 페르시아인들 사이에 출현한 조로아스터이고, 힌두인들과 다른 동양의 국가들 사이에 출현한 붓다이다. 붓다가 출현한 아바트들 중에 마지막이며 유태인들 사이에 출현한 예수 보다 더 큰 주기이다. 왜냐하면 예수의 가르침들은 붓다의 가르침들과 같은 것이고 예수를 가르친 사람들은 붓다의 가르침으로 채색되어 있기 때문이다. 붓다와 크리슈나를 합쳐놓은 것에 상응하는 또 다른 위대한 아바타 주기는 아직 오지 않았다. 크리슈나와 라마는 군대적이며 집단적이며 종교적인 오컬트 계통이고, 반면에 붓다는 윤리적이고 종교적이며 신비적으로 예수가 따른 계통이다. 모하메드는 어떤 특정한 인종을 위한 작은 중간적인 주기로 집단적이고 군사적이며 종교적인 계통이다.


6세기가 서구 역사에서 가장 암흑시대였다는 것은 상식이다. 피타고라스와 H.P.B.의 2500년 주기의 중간시점이다. 또한 거의 설명하기 불가능한 정신적 영적인 암흑시대인 1000년의 시작이기도 하다.


종교적인 편협과 완고함은 유럽 사람들 정신을 마비시키는 영향을 주어서 안개를 흩어지게 해서 그들의 정신을 자유롭게 하기 위한 특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결정되었다. 14세기 초에 위대한 초인인 쯔온카파(Tsong-Kha-Pa)가 티벳에 태어났다. 라마교 기록에 의하면 붓다의 가르침이 타락한 결과로 이 존재를 통해서 붓다 자신이 환생했다고 암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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