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장 : 욕정 사랑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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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성행위(sexuality)는 정말로 영적인 사랑과 인간적인 사랑이 심오하게 결합될 수 있는 관문이 되기 때문입니다. 성행위가 가져다주는 신성한, 치유의 측면을, 왜 남성과 여성들이 체험하기가 힘이 드는 걸까요? 육체적인 본능, 즉 성적인 본능과 관련하여, 여러분은 온갖 종류의 금기 및 금지 사항을 지닌 채 성장해 왔습니다. 몇 십 년 전부터 이러한 금기 사항들이 변해왔지만, 성적인 분야에서의 진정한 자유는 아직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체험하고 있는 욕정(lust : 성욕)을 편안하게 느낄 수 있나요? 그러한 욕정을 즐길 수 있나요? 혹은 성적인 욕망이 육체적인 성행위를 통해 해소하든지(성관계가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아니면 마음의 힘을 통해 차단하든지 해야 하는 실제로 불안감을 가져다주는 제거하고 싶은 것인가요?


자신들의 성적인 욕망을 장난스럽고, 기쁘게 받아들이는 것이 여전히 어려운 실정입니다. 사람들에게 실제로 일어나는 현상은 성욕에 대한 판단 혹은 두려움이 머릿속으로 들어가게 되며, 그 속에 갇히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아니면, 죄책감을 느끼면서 비밀스러운 방식으로 욕정 속에 깊이 빠져들게 되며, 성적인 욕망이 어둠 속에서 일어나는 뭔가로 바뀌게 됩니다. 두 개의 경우 모두, 가슴과 야수(짐승) 간에, 고차원적인 것과 저급한 것 간에, 욕정과 사랑 간에 어떠한 연결도 이루어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동물적인 부분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음으로써, 사랑스럽고 영적인 부분도 차단되고 마는 것입니다


분리되어 있는 것을 다시 연결함으로써, 여러분은 자신의 동물적이고 성적인 본성을 보다 더 편안하게 느낄 수 있나요? 먼저, 몸을 존중해주고, 욕정과 성행위에 대한 시대에 뒤떨어진 판단을 버려야 합니다. 욕정은 육체에 의해 만들어지는 에너지의 자연스러운 흐름입니다. 욕정은 순수한 것이며, 본질적으로 위험하거나, 파괴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러한 욕정을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하세요. 몸에서 욕정을 느끼고, 찌릿찌릿한 느낌을 받을 때마다, 그러한 느낌에 따라 행동할 필요는 없지만, 그러한 느낌을 본질적으로 즐거운 것으로 여기기 바랍니다. 기본적으로, 여러분의 몸에는 보이지 않는 형태로 성적인 욕구(육욕성 : sensuality)가 존재하고 있으며, 그러한 육구로 인해, 여러분이 다른 종류의 육체적인 느낌, 즉 먹고, 마시며, 만지고, 햇볕을 쬐거나, 걸을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누군가와 성관계를 갖고 싶어 하는 성적인 욕구는 이러한 기본적인 육욕성, 즉 인간으로서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욕구를 표현하는 한 가지의 방법입니다. 그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말고, 즐기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성적인 본성은 소중하고, 즐거운 것입니다. 자신의 성적인 본성과 욕정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인다면, 여러분은 그러한 본성을 즐길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러한 본성을 다른 사람과 함께 나눌 수 있으며, 두 사람 간에 더 깊은 연결감이 만들어지게 되면, 욕정의 흐름으로 인해, 실제로 두 사람 간의 관계가 더 가까워지게 되며, 육체적으로뿐만 아니라, 감정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여러분의 가슴은 서로에게 개방되어, 하나로 합쳐지게 될 것입니다.


욕정은 사랑과 순수한 성행위로 이어질 수가 있습니다. 내가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욕정이 두 사람 간의 신성하고, 고귀한(serene) 사랑에 반대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욕정과 사랑은 함께 갈(어울릴) 수가 있으며, 부끄러워하거나, 망설이지 않고, 그러한 욕정에 순종한다면, 욕정은 다른 사람과의 보다 깊은 친밀감을 나타내는 상태(성행위)에 도달하는데 실제로 도움을 줄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욕정을 내버려 둔다면(순리에 맡기면), 즉 감정과 열정의 파도를 타게 된다면, 상황을 통제할 수 없게 될 거라는 뿌리 깊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대개는 그와는 정반대가 됩니다.


만약 여러분이 성적인 열정과 같은 뭔가를 억제하거나, 통제하려고 한다면, 여러분은 그 힘이 아주 강력하여, 어차피 지게 될 자연스러운 힘에 거슬리게 되는 것입니다. 성적인 열정이 억제됨으로써, 성적인 취향이 뒤틀리게 되고, 심지어 왜곡된 형태로 표현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성행위를 비하하는 형태들은 인간의 본성에 대해서도 언제나 불건전하고, 경직된 판단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이유로, 종교적인 열정(fervor)과 성적인 괴팍함(도착증 : sexual perversity)은 대개 함께(동반) 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성적인 본성에 대해 안전하다고 느끼는 것이 다른 사람과 친밀한 관계를 맺기 위한 첫 번째의 조치가 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몸과 몸이 여러분에게 제공해주고 싶어 하는 체험의 종류를 올바르게 인식하는 것입니다. 물론, 다른 사람과 친밀한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이보다 더 많은 것들이 요구됩니다. 여러분은 다른 존재, 즉 역사와 배경이 서로 다른 환경에 의해 만들어지고 형성된 다른 존재를 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두 사람이 안전하다고 느끼기 위해, 여러분의 가슴은 서로에게 열릴 필요가 있습니다. 상대방이 다른 사람에게 빠지게 되거나, 자신을 불신하는 것에 대비하여, 두 사람은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벽을 쌓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내면에 오래된 감정적인 상처들을 지니고 있습니다. 여러분 각자는 이러한 방어벽을 지니고 있으며, 이러한 방어벽을 자신의 내면에서 인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러분이 자신이 지닌 두려움과 대면하고자 할 때, 그리고 상대방의 아픔을 정말로 이해하고자 할 때, 감정적인 친밀감이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고자 할 때, 가슴속에서 기쁨이 일어나게 되며, 두 사람 간에 치유의 흐름이 생겨나게 될 것입니다. 육체적인 면에서뿐만 아니라 영적인 면에서, 두 사람은 더 가까워지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로 합쳐지는 섬세한 과정을 통해, 사랑의 예술이 정말로 만들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헌신, 인내, 솔직함과 용기가 포함이 됩니다. 그것은 열정적인 것이며, 또한 고도로 영적인 것입니다.


앞에서 내가 지구에서의 인간적인 체험이 소중하다고 이야기했을 때, 내가 언급했던 것이 바로 사랑의 예술을 지칭했던 것입니다. 영혼으로서, 여러분은 형태에 묶여 있지 않습니다. 본질적으로, 여러분은 남성도 아니고, 여성도 아니며, 어린아이도 아니고, 어른도 아니며, 아프거나 건강하지도 않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일시적으로 나타난 것들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그러한 영구적이지 않은(일시적인) 형태들이 어떻게 보면 아주 훌륭하고, 대단히 영적인, 다양한 체험들을 제공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남성 혹은 여성이 된다는 것이 여러분에게 인간적인 사랑을 만들고, 그러한 사랑을 육체적으로, 감정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즐기는 체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 사회에는 성행위에 대해서 많은 혼란이 있습니다. 남성과 여성이 만나게 될 때, 성스러운 교감을 할 수 있는 가능성, 즉 여러분이 고양되어, 인간으로서의 자신들을 초월하여 온전함을 느낄 수 있는 여지가 존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온전함을 영혼(the soul) 혹은 하나님이라 부를 수도 있지만, 놀라운 점은 욕정이 - 육체적으로 서로를 만져보는 - 성행위로 이어지는 관문이 되기는 하지만(forms the entry into it), 이러한 신성한 체험은 전혀 욕정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타고난 세속적인 본성은 천하거나, 불쾌한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해, 성적인 욕망과 영성은 파트너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여러분이 자신의 열정, 자신의 육체적인 그리고 성적인 욕망에 대해 편안하게 느끼라고 촉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만의 속도와 리듬으로 그것(성적인 욕망)을 탐구해 보세요.


사실, 나는 여러분이 이제 자신의 의식을 복부로 내려보내도록 권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의식은 어떠한 초점(집중)에 불과한 것이므로, 이제 그러한 초점이 복부로 향하게 하세요. 이제 그 부위가 어떻게 느껴지는 체험해 보세요. 그리고 여러분의 생식기와 꼬리뼈 차크라, 즉 골반 부위로 더 깊이 내려가게 하세요. 여러분의 초점(집중)이 객관적이고, 중립을 유지한 채, 몸의 그러한 부위로 내려가세요. 이곳은 몸의 훌륭한 일부이며, 여기에서 생명력의 근원을 느껴보세요. 아마 색상을 보거나, 느낄 수도 있습니다. 그러한 생명력, 즉 성적인 욕구와 육체적인 성질(physicality)의 흐름이 두 다리를 거쳐 내려가게 하고, 지구와 연결되는 것을 느껴보세요. 몸에서 이러한 흐름을 느끼는 것이 얼마나 유익하고, 자연스러운 것인지도 느껴보세요.


여러분이 할 수만 있다면, 몸이 지금 뭔가를 필요로 하는지, 그리고 몸이 느끼고 싶어 하는 모든 것을 체험할 수 있도록 여러분이 해줄 수 있는지를 살펴보세요. 여러분의 몸이 일상생활 속에서 더 자주 느끼고 싶어 하는 것이 있나요? 그것이 단순한 것, 즉 여러분의 머리로 회피하고 있는 뭔가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한 욕구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세요. 다시 말해, 몸은 여러분을 고향으로 데려다주고 싶어 합니다. 몸은 영혼에 반대되는 것이 아니며, 몸은 물질의 형태로 존재하는 영혼입니다. 영혼으로부터 여러분을 쫓아내는 것은 여러분의 몸이 아니라, 여러분의 머리입니다. 자신의 몸과 화평을 이루고, 몸이 제공해주는 많은 것들을 즐기세요.